1973년 5월 17일
(잠이 깨었을 때에:)
내 귀여운 딸아, 침착하여라. 기쁠 때에나 괴로울 때에나 평화를 잃지 말아라. 네 영혼에 대한 내 자비의 선물이기 때문에 아무도 네게서 빼앗을 수 없는 그 평화를! 가시들이 장미꽃들보다 먼저 오고, 또 장미꽃들은 언제나 가시와 같이 온다.
1973년 5월 20일
(잠이 깨었을 때에:)
세상의 운명은 갈림길에 놓여 있다. 숭고한 내 마음에서 난 어린 자녀들아, 너희들의 하느님께로 가는 길로 들어서거라.(주님, 젊은이들의 문제는 중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실히 문제가 중대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들의 탓이다. 이 문제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에 대한 책임과 내게 대한 책임을 자각할 때에야 비로서 해결될 것이다. 젊은이들의 영혼 안에서 잠들어 있는 타고난 너그러움을 의무와 참된 사랑의 방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부모와 교육자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젊은이들이 앞장을 서서 가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을 성덕과 예의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의 모범으로 자기들을 따라오게 이끌고, 향주덕(向主德)의 실천과, 인간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성사에 계신 하느님을 앎과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존경함으로 자기들을 따라오게 이끌며, 육체에서가 아니라 성령에게서 나오는 행위와 이웃에 대한 박애와 사랑으로 자기들을 따라오게 끌어들임으로써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에게 육체의 생명을 주었지만 그들의 무관심과 우상숭배로 영혼의 생명은 주기를 거부하는 어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지켜보는 어린 아이들이다. 선과 악에 대한 의식이 많은 사람에 있어서 없어졌고, 이 통탄할 상태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즉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임무를 게을리한 사람들, 즉 자녀들의 건전한 교육을 게을리한 사람들은 그들이 품에 안아서 키운 자녀들의 버림과 무관심으로 인하여 고통과 설움을 맛볼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오직 이기적이고 근본적인 기초가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에 자녀들이 그들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불행을 마련한 꼴이 된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는 오직 사랑과 기도와 보속으로만 구원할 수 있다.
1973년 5월 26일
내 딸아, 내 비참은 내 자비의 물결 속에 잠겨 있다. 다만 네 첫 번 충동을 감시하여라. 끊임없이 내 현존 안에서 살고, 내 앞에 아무리 작은 자라 하더라도 아무도 유혹을 면하지 못한다고, 그러나 내가 그에게 내미는 손을 잡기만 하면 유혹에 대항할 만한 은총을 모두에게 준다고 생각하여라.
참된 지혜는 이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계명에 비추어 생활하고 실천한 사람의 빛남 가운데에서 활짝 피어나는 것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라.
대적해 싸워야 할 적은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으므로, 그들의 나쁜 경향에 대한 싸움에서 서로 거룩하게 하라는 말도 그들에게 하여라.
적을 항상 너희 이웃에서 보지 말고, 우리 너희들 안에 적을 알아보는 것을 배워라. 그러면 그와 싸워서 이기기 위하여 내게 너희와 같이 있기 때문에 적에 대한 승리가 있는 것이다.
1973년 5월 27일
나는 모든 민족들의 영적인 교정을 위하여 네 안에 있다. 내 거룩한 현존은 네 인성에 점점 더 뚜렷이 느껴질 것이고, 네 인성을 완전히 잠글 것이다.
1973년 5월 28일
바람은 내 자비의 열매이다. 그리고 믿음은 내 사랑의 선물이고, 애덕은 내 사랑의 방사(放射)이다. 내 계율을 가지지 않은 세상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런데 이 계율은, 현시대에 적응시켰지만 내가 결정하였기 때문에 항상 유효한 권위에, 내가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지배자이기 때문에 항상 유효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교회와 교회의 적법(適法)한 권위에 대한 항거는 타락한 천사들의 “non servicam" ("섬기지 않겠다”)와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내 자녀들아, 너희들의 행복은 너희들이 너희 주위에 주는 행복이여야 한다.
1973년 5월 29일~30일에 걸친 밤
온 세상의 모든 잘못으로 인하여 네 하느님이 받으시는 모욕에 대한 용서를 빌어라. 대관절 네가 기껏해야 내 자비나 받을 만한 불쌍한 죄인 말고 다른 물건일 수 있느냐 말이다. 네가 완전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믿는 것은 겸손이 대단히 부족한 것이 될 것이다. 완덕을 향한 노력은 필요하고 거기에 이를 수 있는 하느님의 도움을 받을 만하다.그러나 어떤 사람의 영혼에든지 항상 변변치 못한 부분이 있어 영혼으로 하여금 할 수 있는 대로 하느님의 자녀들의 거룩한 겸손을 가지게 한다는 것도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야릇한 활동에 대한 종합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솔직하면, 그들이 세상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를 알아차리고 소름이 끼칠 것이다. 세상에 지금처럼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적이 일찍이 없었고, 그분의 자비에 이다지도 가까이 간 적이 없었다.
어린이들에 대한 성(性)교육은 그들에게 순결과 단정과 생명 존중과 내 계명에 대한 복종의감정을 일으키느냐? 그 가엾은 어린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호기심을 선동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극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계율이냐?
자연은 어린이의 천사 같은 순결을 악의로 마비시키는 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가 오면, 자연이 직접 어린이에게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들에게서 저 퇴폐의 결과를 보아라. 저 살인자들은 사제의 권한과 아버지, 어머니의 권위에 마땅히 드려야 하는 존경과 숭앙의 감정을 소멸시킨다. 가톨릭 교회의 장래인 젊은이들의 해방은 때로는 정당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사회에 대하여 좋지 못한 기분을 가진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멍에한 멍에는 아무리 기분좋은 것이라도 떨쳐버리고, 가정의 관계까지도 지니기에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활기와 너그러움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이 항의의 바람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오솔길에서 방황하며, 격정들의 고삐가 풀렸다.
만일 그들에게 아름다움과 신성한 것과 순수한 사랑과 단정(端正)과 영원한 진리에 대한 감각을 돌려주지 않으면, 세상의 장래는 어떠하겠느냐?
내 영광과 내 사랑을 위하여 교육해야 할 영혼들에서 내 계명을 부수는 자들에 대항하여 작은 영혼들이 힘차게 일어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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