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지혜

"지혜는 땅속에 감추어져 있는 물과 같은 것, 그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본성이다. 땅을 파서 그 물을 샘솟게 하는 것, 그것이 지혜의 배움이다. … 나는 사람의 지혜로운 본성이 흙과 바위 아래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종이 위의 말을 삽과 삼태기로 삼아 샘을 향해 파내려간다. 이 세상에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경작가-馮夢龍 (핑멍룽)- 잠언3장 18 지혜는 붙잡는 자에게 생명의 나무가 되고 지혜를 잡는 사람에겐 행복을 준다. 19 야훼는 지혜로 땅의 터를 놓으시고 슬기로 하늘을 튼튼히 떠받치시며 20 지식으로 깊은 물줄기를 터뜨리시고 구름에서 이슬이 돋게 하셨다. 21 아들아, 잘 생각하고 헤아려 그것들을 잠시도 잊지 말아라. 22 그것이 아름다운 목걸이가 되어 복된 삶을 안겨 줄 것이다. 23 그러면 너는 발을 헛딛는 일 없이 네 인생길을 무사히 갈 수 있다. 24 잠자리에 들어도 두려운 것 없어 몸을 누이면 곧 단잠을 자게 되리라. 25 불의한 자에게 참변을 당하고 갑작스런 화가 닥치더라도 겁내지 말아라. 26 야훼께서 네 곁에 계시어 발목이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신다.
☞ 구약성서/시서와지혜

글순서

1.나의기도

2.나의座右銘

3.사람은무엇으로 사는가

4.明心寶鑑

5.지경(智經)

1.나의기도

부 속 가 (성령송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이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 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의 빛이시어,
우리 맘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우리 삶 그 모든것 이로운것 없으리.
허물은 씻어주고 마른 땅 물 주고, 병든것 고치소서.
굳은 맘 풀어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을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닙니다."-오상의 비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 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십계명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육. 간음하지 마라.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고백기도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소서.

주님의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송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삼종기도

○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성모송)

○ "주님의 종이오니
●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송)

○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성모송)

○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봉헌기도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저희가정을위한기도1

○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
가정생활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
저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성가정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 가정생활의 자랑이며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 집안을 위하여 빌어주시어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시며
언제나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 아멘.

저희가정을위한기도2

○ 사랑이요 생명이신 하느님 아버지,
세상의 모든 가정은 당신의 성삼에서 비롯되었나이다.
● 여인에게서 태어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한 사랑의 샘이신 성령의 도움으로
저희 가정이
생명과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게 하소서.
○ 저희부부의 생각과 행위를 당신의 은총으로 이끄시어
저희 가정의 선익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 자녀들은 가정에서 자신들의 존엄성을 깨닫고
진리와 사랑으로 성숙하게 하소서.
○ 저희 가정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혼인성사의 은총으로 극복하게 하소서.
● 나자렛 성가정의 전구를 통하여 가정이 성화되고
가정을 통하여 세상이 성화되게 하소서.
○ 길이여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저희부모를위한기도

○ 인자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그 은덕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저희가 효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겠나이다.
● 저희 부모는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냈으니
이제는 그 보람을 느끼며
편히 지내게 하소서.
○ 주님, 저희 부모에게 강복하시고
은총으로 지켜주시며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정현이정업이를위한기도

○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귀한 정현이정업이를 주시어
창조를 이어가게 하셨으니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길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 주님, 사랑하는 저희 정현이정업이를
은총으로 보호하시어
세상 부패에 물들지 않게 하시며
온갖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저희부부를위한기도

○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혼인성사로 저희를 맺어주시고
보살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 이제 저희가 혼인 서약을 되새기며 청하오니
저희 부부가 그 서약을 따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 또 청하오니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는 저희 부부의 삶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노동의기도(일을시작하면서)

○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노동의기도(일을마치고)

○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주시고
어려울 때 저희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또한 온갖 위험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아침기도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아멘.

◎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 우리 주 하느님께 권능과 영광
지혜와 굳셈이 있사오니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받으소서.
◎ 아멘.

†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주소서.
◎ 아멘.

저녁기도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잠깐 반성한다.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하루도 이미 저물었나이다.
이제 저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주님을 흠숭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지켜주소서.
◎ 아멘.

식사전기도

†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식사후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며)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부활 삼종기도(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잠언3장

18 지혜는 붙잡는 자에게 생명의 나무가 되고 지혜를 잡는 사람에겐 행복을 준다.
19 야훼는 지혜로 땅의 터를 놓으시고 슬기로 하늘을 튼튼히 떠받치시며
20 지식으로 깊은 물줄기를 터뜨리시고 구름에서 이슬이 돋게 하셨다.
21 아들아, 잘 생각하고 헤아려 그것들을 잠시도 잊지 말아라.
22 그것이 아름다운 목걸이가 되어 복된 삶을 안겨 줄 것이다.
23 그러면 너는 발을 헛딛는 일 없이 네 인생길을 무사히 갈 수 있다.
24 잠자리에 들어도 두려운 것 없어 몸을 누이면 곧 단잠을 자게 되리라.
25 불의한 자에게 참변을 당하고 갑작스런 화가 닥치더라도 겁내지 말아라.
26 야훼께서 네 곁에 계시어 발목이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신다.

하늘에서 땅끝까지"너희는 나의 발자취를 따르라"주평국신부

2.나의좌우명



You are salt and light in the world.

紫虛元君誠諭心文

福生於淸儉.德生於卑退. 道生於安靜.
明生於和暢. 憂生於多慾.禍生於多貪.
過生於輕慢.罪生於不仁.

戒眼, 莫看他非.
戒口, 莫談他短.
戒心, 莫自貪嗔.
戒身, 莫隨惡伴.

無益之言莫妄說.不干己事莫妄爲.
尊君王孝父母.敬尊長奉有德.
別賢愚恕無識.物順來而勿拒.
物旣去而勿追.身未遇而勿望.
事已過而勿思. 聰明多暗昧.算計失便宜.
損人終自失.依勢禍相隨.
戒之在心.守之在氣.
爲不節而亡家.因不廉而失位.
勸君自警於平生.可歎可驚而可畏.
上臨之以天鑑.下察之以地祗.
明有王法相繼.暗有鬼神相隨.
惟政可守.心不可欺.戒之戒之.


( 해 설 )

복은 청념하고 검소한데서 생기고,
덕은 자기를 나추는데서 생기며,
도는 여유러움에서 생기고,
밝고 깨끗한 마음은 화창한 마음가운데 있다.
근심 걱정은 욕심과 많은것을 탐내는 데서 생긴다.
잘못을저지르게 하는것은 경고망동하는데 있고,
죄는 어질지 못한데서 생긴다.
보기를 조심하여 남과 시비를 하지 말라.
말을 조심하여 남의 잘못을 탓 하지 말라.
마음을 조심하여 자기 자신을 분노케 하지말라.
몸을 상할까 걱정된다.
악한 친구와 함께 하지말라.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
어른 존중하고 덕이있는자를 따르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어진이와 어리석은이를 구별하고 무식한 이를 엄신여기지 말라.
이치에 맞는일은 물리치지 말며 떠난일은 생각하지말라.아직 때를 만나지 않았다면 원망하지말라
어리석은 일에 시간을 낭비 하지말고,
잘못된 지난일에 매여 살지말라.
총명한자도 때로는 어리석음이 많고,
매사 빈틈없는자도 실수가 있으니,
결국에는 그자신도 손해보는일이 있다.
세도를 따르면 화가 따른다.
몸과 마음을 항상 조심경계하고 바르게 갖도록 힘써라.
낭비하면 가세가 망하고 청념하지 않으면 직위를 잃게 된다.
이말을 따르는 자들아 평생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 잊지말고 실천하라.
천지에는 밝은법이 언제나 보고있어,
어둠속에 보이지 않는다고 숨어서 악을 행하려고 하지 말라.
천벌을 당할까 두렵지 않느냐.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늘 자신을 경계하라.

"E'lo-i,E'lo-i,la'ma Sabach-tha'ni?"(my god,my god, why hast thou forsaken me?)
The dust returns to the earth as it was,the spirit returns to god who gaive it.
Vanity of vanities,all is vanity,and a striving after wind.
for evrything there is a seasons.
all go to one place,all are from the dust,and all turn to dust aganin.
Behold,what I have seen to be good and to be fitting is to eat and drink and find enjoyment in all the toil with which one toils under the sun the few days of his life which god has given him,for this is his lot.
Every man also to whom god has given wealth and possessions and power to enjoy them,and to accept his lot and find enjoyment in his toil-this is the gift of god.
For he will not much remember the days of his life because god keeps him occupied with joy in his heart.


이곳에들린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이 늘 함께하시길/좋은하루되세요!




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남겼다.
기독교도였던 그는 종교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아니, 살고 있는 것일까.

사내들은 흔히 제 가슴에 품은 포부를 펼쳐 보이기 위해
세상을 산다고 말한다.
그날을 위해 푸줏간 사나이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었던
그 옛날의 한신(韓信)처럼 험한 꼴을 보면서도
꾹 참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포부! 그것은 때로는 아름다운 청운의 꿈으로,
때로는 엄청난 대망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길래 온갖 수모를 견뎌내며
그걸 펼치고자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마저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데에는
15세기 중국 작가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보다 더 효과적인 정보원은
달리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나름의 포부와 능력, 자신감을 갖고
난세와 맞서려 했던 사나이들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나관중은 진수(陳壽)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바탕 삼아 거기에다 자신의 가치관을 더하고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드라마틱한 요소까지 곁들인
얘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역사의 흐름은 물론
세상을 사는 지혜에도 눈뜨게 만든다.
그래서 한번 책장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한다.
이 책이 문학서이자 교양서이기도 하지만
역사서로서, 또 처세의 교본으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참고서로,
기업가나 경영인은 경영철학의 지침서로도 활용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삼국지 영웅론’ ‘삼국지 인간학’ ‘삼국지 경영학’
같은 이름을 단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삼국지의 쓰임새는 이처럼 넓고 다양하다.
이 글에서 이 모든 것을 다 다루지는 않는다.
그저 삼국지 등장인물들의 행적과 인품,
시대상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들 가운데 승자와 패자를 가른 조건이 무엇이었던가를
밝혀보려 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도출된 승자의 조건이 바로 천하 제패의 조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공법은 下策, 꼼수는 上策?

‘삼국지연의’는 소설이긴 하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으므로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먼저 그들이 살았던 공간과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적으로는 지금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하여 지린(吉林)성 이북과 윈난(雲南)성 이남, 신장(新疆)성 이서를 제외한 중국 전역이 된다. 시간적으로는 후한 말기에 터진 황건적의 난(184)으로부터 시작, 위(魏)·촉(蜀)·오(吳)가 정립(鼎立)한 이른바 ‘삼국시대’를 거쳐 사마의(司馬懿)의 손자 사마염(司馬炎)이 삼국을 통일하면서 진(晉)을 건국(265)하기까지 약 1세기에 걸친다.

그렇다면 그 무대가 됐던 중국이란 어떤 곳일까.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인지라 중국인 스스로 ‘천하’라고 불렀다. ‘천하’의 주인은 그래서 ‘천자’가 됐다. 야망이 있는 자는 천하를 자신의 손에 움켜쥐려 했다. 천자를 향한 꿈이었다. 천하 제패의 야망이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하라는 말에서 이미 중국 대륙이 갖는 공간의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중국을 실제로 여행해보면 그 사실을 분명히 실감할 수 있다. 동서와 남북간의 공간이동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자연과 인문환경의 변화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렇게 장대한 공간에선 상대를 밀어내 굴복시키는 전법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밀어내도 그 끝이 보이지 않거니와, 그렇게 밀고 있는 순간 누가 뒤통수를 때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복, 야습, 화공, 허위정보 유포 등이 가세하면 상황은 정말 복잡해진다. 전진과 공격이 절대로 능사가 아닌 것이다. 정공법은 오히려 하책(下策)이 되고, 꼼수같이 보이는 후퇴와 도망, 기습이 상책이 될 수 있다.

모두 13편으로 구성된 병법의 교본 ‘손자(孫子)’에도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장기전을 피하라(제2 작전편)’ ‘적의 의표를 찌르라(제6 허실편)’ ‘기선을 제압해 국면을 전환하라(제7 군쟁편)’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라(제8 구변편)’ ‘지형에 따라 작전을 구사하라(제10 지형편)’ ‘화공의 효과를 높여라(제12 화공편)’ ‘밀정을 최대한 활용하라(제13 용간편)’ 같은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러준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가르쳤다.

싸움이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중국인에게 싸움은 싸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심은 물론 천문, 지리에까지 두루 통달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한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말대로 그들에게 있어 싸움이란 지혜와 용기, 전투력 등 모든 것이 총동원되는 극적 모멘트다. 따라서 그 결과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바뀌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중국은 공간적으로만 스케일이 장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수에서도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만큼 한번 싸웠다 하면 몇십만 대군이 동원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인해전술’을 구사했을 정도이니 그들의 인적 자원은 차원이 다르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양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질적으로도 그러하다. 출중한 인물, 기상천외한 인재들이 부지기수라 그들만으로도 한 나라를 세울 만큼 엄청난 ‘인재 풀’을 형성하고 있다.

‘그릇’이 인물 평가기준

특이한 것은 중국에선 예로부터 인재를 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다. 자연발생적으로도 인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재란 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유능한 리더란 바로 그런 인재들을 찾아내 적소에 배치해서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봤다. 유비(劉備)가 삼고(三顧)의 예를 다해 공명을 군사(軍師)로 맞아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고, 그랬기 때문에 유비는 유능한 리더로 평가받는다.

그렇다고 리더만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인재라 생각하는 자들이 자신의 포부와 능력을 펼칠 장(場)을 열어줄 리더를 선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원소(袁紹)의 아래에 있다가 그로서는 안되겠다 싶어 구조를 찾아간 순욱(荀彧)의 경우가 그 좋은 예다.

공간적으로 장대하고 다양한 인재들이 풀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선 흑과 백의 이분법은 먹혀들지 않는다. 국지적 사고 또한 무용지물이다. 다면적 사고, 전방위 사고, 요즘 말로 해서 ‘글로벌 싱킹(global thinking)’이 요구된다. 그들은 인물을 논할 때 ‘그릇(器)’의 크기를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중국이 갖는 지리적 스케일과 다양한 인재를 포용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였다.

그들이 ‘능력’이라 표현하지 않고 ‘그릇’이라 한 것은 승패를 가리는 것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는 특정 개인의 능력과 운명, 그리고 우연이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하늘이 뜻이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하늘의 뜻이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면 그는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란 시대가 흘러가는 방향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민심이었으니 승자란 민심을 얻은 자를 일컫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1841년 ‘영웅과 영웅숭배’를 쓴 영국의 사학자 칼라일이 출중한 능력을 가진 특정 개인을 영웅이라 칭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인에 초점을 맞춘 데(‘플루타르크 영웅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해 중국인들은 특정 개인과 함께 그를 둘러싼 집단과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춰 인물을 평가했다. 다시 말해 ‘관계’에 주목했던 것이다.

무예에 뛰어나고 학문에 식견이 있는 자는 그 분야의 대가일 수는 있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전문가일 뿐이다. 전문가는 전체를 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자는 재상은 될 수 있으나 천자의 재목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독불장군 또한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선 영웅이 경계의 대상일 수는 있었지만 칭송이나 숭배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대신 어질고 덕 있는 인물이 숭배의 대상이 됐다. 그 덕을 이루는 요체가 ‘그릇’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무능한 인물로 비치는 사람이 덕 있는 인물로 추앙받았던 데는 이런 정신적 배경이 깔려 있다.

인재는 홍수를 이루고



춘추전국시대를 빛낸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맹자(孟子)는 역사를 일러 ‘일치일란(一治一亂)의 반복’이라 정의했고, 나관중 또한 “여럿으로 쪼개진 것은 언젠가 하나로 합쳐지고, 그렇게 합쳐진 것은 언젠가 다시 여럿으로 쪼개진다(分久必合 合久必分)”라는 멋진 말로 ‘삼국지연의’를 시작했다.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는 맹자의 말처럼 진시황에 의해 수습되어 진(秦)이라는 사상 초유의 통일 제국이 탄생했다. 진은 단명했으나 곧 한(漢)이라는 거대 제국에 의해 400년 가까이 지속됐다. 그러던 것이 184년에 일어난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광대한 중국 천하를 놓고 군웅들이 다시 한번 쟁탈전을 벌이는 분열의 시대로 빠져들었다. 삼국지는 이때부터 약 1세기에 걸친 혼란의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삼국시대는 그러므로 분열의 시대였다. 사회를 움직이는 어떤 고정된 잣대나 가치,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선 난세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높은 학식이나 지체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깨나 쓸 수가 있었지만, 기존의 가치체계가 송두리째 무너진 난세에선 그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삼국시대는 야망의 시대였다. 기존의 틀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야심가들이 너도나도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힘 겨루기에 달려들었다. 심판도, 룰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라 하찮은 필부도 운만 좋으면 왕후장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야망의 시대, 자유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인재 또한 둑이 터진 듯 한꺼번에 콸콸 쏟아져 나왔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그 다양한 인물의 면면을 보라.

삼국의 한 축을 이루었던 조조(曹操)와 유비, 손권(孫權)을 비롯하여, 청류와 탁류가 싸우는 통에 어부지리로 얻은 권력을 오로지하다 그만 폭군의 대명사가 돼버린 동탁(董卓), 뛰어난 무예로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다 결국 주군 동탁까지 죽여버린 여포(呂布), 연환계(連環計)로 동탁과 여포를 동시에 괴멸시킨 후한의 사도(司徒) 왕윤(王允)과 그때 미끼가 되기로 자청한 미인 초선(貂蟬), 반(反)동탁군의 대장으로 한때 북방을 주름잡았던 원소, 원소와 자웅을 겨루고자 한 원소의 이복형제 원술(袁術), 유비와 동문수학하고 북방에서 원소와 패권을 다투다 쓰러진 공손찬(孔孫璨), 형주 자사로 한때 유비를 도와준 유표(劉表), 명의 화타(華陀) 등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그리고 위의 조조 아래에는 그를 삼국의 제일인자로 만드는 데 최대의 공로자였던 책사 순욱, 순욱의 생질로서 사려 깊은 일처리와 판단력으로 조조를 도왔던 순유(荀攸), 조조의 심복으로 ‘난폭자’란 별명까지 얻은 애꾸눈 하후돈(夏侯惇), 조조의 자랑스런 선봉장 하후연(夏侯淵), 교묘한 처세술로 군사의 자리까지 오른 정욱(程昱), 조조를 원소와 비교, 모든 면에서 조조가 뛰어나다고 한데다 손책의 죽음을 예언한 곽가(郭嘉), ‘난세의 철새’ 가후(賈珝), 적벽전투에서 패한 조조를 호위해 허도로 철수한, 투구솜씨가 뛰어난 허저(許楮), “사사로운 일로 국사를 망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조조를 끝까지 지켰던 무장 서황(徐晃), 여러 차례 주군을 바꿨으나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하는 위엄으로 오를 토벌하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료(張遼), 군사보다는 학문을 좋아해 다른 장수들과 공을 다투지 않았던 이전(李典), 공손찬 정벌과 관도대전에서 밟히면서도 끝내 용맹함을 잃지 않아 조조가 “나의 한신”이라며 자랑했던 장합, 조비의 등극에 앞장섰던 화흠(華歆), 후한의 헌제를 장안에서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활약하다 위로 가서 태위의 지위까지 오른 종요(種繇), 조조로부터 “2000석의 장수가 모두 가규와 같다면 걱정할 게 없다”고 칭송받은 가규(賈逵), 용감하게 싸웠으나 사로잡힌 몸이 되는 통에 오에 항복, 끝내 그 수치와 분노를 참지 못해 저세상으로 떠나야 했던 무장 우금(于禁), 관도전투에서 발석거로 대항해 승리를 이끄는 데 큰 힘을 보탠 모신 유엽(劉曄), 조조가 동탁 토벌을 위해 의용군을 모집할 때 제일 먼저 달려오는 등 매사에 솔선한 악진(樂進), 괴력 무쌍의 호걸로 조조를 지키다 장렬한 최후를 맞은 전위(典韋), 조조의 뒤를 이어 위왕이 된 조비(曹丕), 문재(文才)가 뛰어난 조조의 차남 조식(曹植), 촉의 승상 제갈량을 쓰러뜨리고 위가 삼국 최고의 강국임을 증명한 사마의 등이 있었다.

조조, 무대에 오르다

유비 아래에는 유비와 도원의 결의를 맺고 유비를 위해 신명을 다 바친 관우(關羽)와 장비(張飛), 유비가 삼고의 예를 다해 군사로 맞아들였던 재사 제갈량(諸葛亮), 냉정함과 침착함으로 무장의 귀감이 됐던 조운(趙雲), 풍모가 좋지 않아 인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애석하게 요절한 방통(龐統), 전장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젊은이 못지않은 기개를 보여줬던 무장 황충(黃忠), 조조도 두려워한 무법자이자 떠돌이 맹장이었던 마초(馬超), ‘읍참마속’의 희생자 마속(馬謖), 무예는 출중했으나 배반을 밥먹듯 하여 공명을 괴롭혔던 맹달(孟達), 활과 마술에 능통했으나 선비로 남길 원했던 미축, 유비를 제갈량에게 소개하여 유비의 아래에 있다 조조가 모친을 인질로 가두자 어쩔 수 없이 그의 수하가 됐던 재사 서서(徐庶),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위탁하고 있을 때 “나는 세상의 움직임을 알 수 없지만 형주에는 시국 정세를 읽을 줄 아는 공명과 방통이 있다”면서 유비가 그토록 찾고자 한 재사들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 사마휘(司馬徽), 유약함의 상징처럼 돼버린 비의 아들 유선(劉禪), 유선의 군사였던 강유(姜維) 등이 있었다.

또 오나라에는 건국의 아버지 손견(孫堅), 그의 후계자 손책, 적벽대전의 최고 영웅 주유(周瑜), 오의 외교 대가 노숙(魯肅), 손견이 낙양의 우물 밑바닥에서 주운 인감이 전국옥새라고 감정한 정보(程普),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진언해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던 황개(黃蓋), 고사성어 ‘괄목상대’의 주인공 여몽(呂蒙), 공명의 형이자 손권의 책사로서 늘 화합을 강조했던 제갈근(諸葛瑾), 의젓함과 냉정함으로 손씨 집안을 도운 육손(陸遜), 손권이 “조조에게 장료가 있다면 나에게는 감녕이 있다”며 치켜세웠던 감녕(甘寧), 손책이 죽자 비통에 빠진 손권에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격려하는 등 그의 참모 노릇을 톡톡히 해낸 장소(張昭), 적에게 포위된 손책을 구하기 위해 육탄으로 맞서 그를 구해낸 무장 주태(周泰), 주군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고 적군을 격퇴했던 능통(凌統) 등이 있었으니, 여기에 원소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한 책사 전풍(田豊), 관도싸움에서 지구전으로 나갈 것을 원소에게 진언한 모신 저수(沮授), 기인 예형과 공자의 후손으로 재기를 자랑했으나 끝내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비운의 공융(孔融) 등을 보태고, 다시 그 사이사이에 등장했던 수많은 인물까지 합친다면 인명 백과사전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다.

삼국시대는 황건적의 난에서 삼국이 정립되는 시기, 조조·유비·손권에 의한 천하 삼분시대,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들이 힘을 겨뤘던 2세 시대 등 크게 3개의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이를 각각 제1, 제2, 제3라운드라 명명하고, 각 라운드별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호족과 환관들의 전횡, 또 그들끼리의 권력투쟁이 극에 달했던 후한 말, 백성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노한 민심은 끝내 민란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자는 태평도의 수령 장각(張角). 머리에 누런 띠를 둘렀다 하여 흔히 ‘황건적’이라 부르는 반란의 주모자 장각은 “갑자년(184)에 한 왕조를 뒤엎고 천하를 평정하면 대길하다”는 말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천하의 행방이 민심에 달려 있음을 그 또한 이렇게 확인시켜줬다. 선거라는 민주적 제도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무엇이 정치의 요체인지는 그 당시의 중국인들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나름대로 훌륭하게 작동시켰던 것이다.

황건적은 전국 8개 주에서 동시 다발로 봉기의 깃발을 들었다. 흑산적과 태평도의 한 갈래인 오두미도도 이에 합세했다. 바야흐로 난세의 회오리가 중국 대륙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정은 권력투쟁을 일시 중단하고 토벌군을 조직해 봉기 현장으로 내려보냈으나 그들을 당해내지 못해 관군들은 여기저기서 밀리고 있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가 곧 조조였다. 황건적이 몰고 온 난세는 30세의 젊은 조조를 난세의 리더로 떠오르게 했다. 당시 24세였던 유비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후일 강동의 실력자가 되는 손견 역시 이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직 조조만이 그런 영광의 대열에 선착한 것이다. 유비가 정치무대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였다.

조조의 등장으로 사태는 반전됐다. 반군의 기세가 크게 꺾였고, 얼마 안가 주모자 장각마저 병사했다. 그 잔당들이 각지에 흩어져 저항을 계속했지만, 한시름 덜은 조정은 또 다시 권력투쟁의 흙탕물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영제(靈帝)의 죽음이었다. 영제의 황후 하태후가 낳은 소제(少帝)가 제위에 오르자 실권을 장악한 태후의 오빠 대장군 하진(何進)이 원소 등과 힘을 합쳐 환관들을 몰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태후가 이에 제동을 걸었고, 그 바람에 하진만 모살됐다.

이를 목격한 원소는 궁에 들어가 환관 2000여 명의 목을 모조리 베었다. 그러는 사이 이미 하진의 부름을 받고 낙양(洛陽)으로 들어온 동탁은 소제의 신변을 보호하고 패잔병들을 거두어 권력을 장악했다. 동탁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소제를 폐위하고 소제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동생 진류왕을 헌제(獻帝)로 옹립하면서 상국(相國·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황건적의 난 토벌에 공을 세운 조조와 환관들을 쓸어버린 원소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동탁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조조와 원소는 각자 자기네 본거지로 돌아가 전국의 군웅들과 함께 동탁 토벌군을 결성했다. 이른바 ‘반동탁연합군’은 그렇게 해서 권력의 한 축을 이뤘다. 그 즈음 천하는 동탁군과 반동탁군으로 이분됐다.

미인계에 무너진 동탁

연합군의 근거지가 낙양과 가까워 위협을 느낀 동탁은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長安·지금의 서안)으로 천도하는데,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군웅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시작돼 연합군은 분열되고 만다. 덕분에 천하를 오로지하게 된 동탁은 궁 안의 여자들을 마음대로 농락했고, 성 밖에 왕궁 못지않게 으리으리한 전각을 지은 후 거기에다 30년을 먹고도 남을 양식과 재물을 비축하는 등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그래서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곁에는 마술과 궁술에 뛰어난데다, 명마 ‘적토마’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여포가 버티고 있어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천하를 쥔 동탁의 강함은 어떻게든 그를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무리들을 키워내고 있었으니 실은 약함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 일은 즉시 실행에 옮겨졌다. 사도(司徒) 왕윤이 가무에 뛰어난 미인 초선을 미끼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기 시작하자 여포가 양아버지 동탁을 주살하고 만 것이다. 동탁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렇다고 여포의 세상이 된 것도 아니었다. 동탁의 잔당인 이각, 장사 등이 여포를 죽이려 달려들자 그는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왕윤은 처형됐다.

동탁의 죽음과 여포의 줄행랑은 뜻밖에도 조조에게 행운을 안겨줬다. 그런 혼란기에 장안을 탈출, 낙양으로 돌아가던 헌제를 조조가 자신의 근거지인 허창(許昌)으로 모심으로써 대의명분도 얻고 그를 통해 세력도 규합하는 이득을 보았기 때문이다.

조조가 이렇게 권력의 축을 향해 다가서고 있을 때 유비는 변변한 근거지 하나 마련하지 못해 힘 있는 자들을 찾아다니며 몸을 의탁하는 서글픈 나그네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조조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원소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원소는 조조를 자신의 상대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의 이같은 오판은 그후 관도(官渡)싸움에서 대패하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했다. 병력의 수나 군량 면에서 절대 우위에 있던 원소군이 조조군에게 패한 것은 원소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라 원소는 그 때문에 화병이 나서 2년 뒤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조조·유비·손권, 1라운드 A학점

관도싸움 초기 원소군의 진영에 머물고 있던 유비는 의형제 관우가 원소의 양팔 격인 장수 안량(顔良)과 문추(文雛)의 목을 베는 일이 일어나자 더 이상 그곳에 있을 면목이 없어 형주(荊州)를 찾았다. 당시 형주 자사(刺史·지방장관)는 반동탁 연합군의 선봉에 선 유표(劉表)였다. 그는 부임 당시 무법천지였던 형주를, 지역에서 신망이 두터운 괴량·괴월 형제와 채모 등을 초빙해 자문을 구해 평정한 데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정도의 실력까지 갖춘 명실공히 강남의 실력자였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유비에게 변방인 신야(新野)를 맡겼다. 거기서 유비는 한동안 생사를 모른 채 떨어져 있던 관우와 장비 형제를 다시 만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등 형주 시절을 참으로 귀중한 시간으로 활용했다. 그의 취약점은 책사(策士)가 없다는 것. 그래서 수경선생으로 불리는 사마휘로부터 형주에 공명과 방통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삼고의 예를 갖춰가며 공명을 자기 곁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 당시 유비가 이런 재사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형주 땅을 찾았기에 행운을 얻었다고 보면 하늘이 그를 어여삐 보았음에 틀림없는 듯하다.

한편 손권은 건업(建業·지금의 난징)에 도읍을 정하고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작업에 들어갔고, 조조 또한 천하 14개 주를 합병하면서 220년 드디어 위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질세라 유비 역시 유표가 죽은 후 형주를 손에 넣은 데 이어 한중까지 평정하고는 한중왕이 됐고, 다시 익주(益州)마저 손에 넣었다. 그리하여 촉한을 세우고 왕이 됐다. 그 이듬해인 222년에는 손권마저 오왕이라 칭했다. 황하 유역의 위(魏), 강동의 오(吳), 사천의 촉(蜀)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삼국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진행된 제1라운드의 성적만 본다면 조조·유비·손권은 A학점을, 동탁·여포·원소·유표는 F학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A학점을 받은 세 선수만이 제2라운드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탁·여포·원소·유표는 왜 F학점을 받았을까. 이름하여 이들 ‘패자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젊어서부터 배포도 크고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도 있어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는 동탁은 하진의 부름을 받고 낙양으로 입성하는 과정에서도 적은 군사를 대군처럼 보이게 하는 재주를 부릴 줄 알았고, 낙양에 들어와서는 소제를 보호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장수 여포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단기간에 승승장구했다.

사람의 능력 또는 그릇의 크고 작음은 그 지위가 높고 귀해질 때 가장 잘 드러나는지, 그는 정상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이제까지 쌓아올린 것들을 와르르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큰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쥐자 곧바로 이를 사물화했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행동했다. 미인계에도 쉽게 걸려들 만큼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지 못하는 무능도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 온전한 참모 또한 있을 리 없었으니 제동장치 없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독재와 사치, 향락의 길로 마구 치달았다. 전투력이랄 것도 갖추지 못했다. 결국 왕윤의 연환계에 걸려들어 여포가 풀어놓은 자객에게 비명횡사, 독재자의 말로를 몸소 보여줬을 뿐이다. 그는 삼국지 제일의 악역으로 평가받는다.

출중한 무술로 산천초목까지 떨게 했던 여포. 용맹성이란 점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지만 그에게는 ‘머리’가 없었다. 판단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동탁과는 배짱이 맞아 그의 양아들이 됐고 지근 거리에서 그를 지키는 경호실장 노릇을 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것이었다. 의(義)로써 형제를 맺은 유비·관우·장비와는 달리 그 이해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와해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런 문제가 터졌을 때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머리도 없었기에 한번 불이 붙으면 그것으로 끝장이 날 수도 있었다.

자만은 자멸의 길

동탁과 여포 사이에 초선이라는 미인이 끼어들자 두 사람은 자석의 마이너스극이 마이너스극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인간관계가 무엇에 바탕을 둬야 하는지, 인간이 왜 사리분별력을 갖춰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반면교사 노릇만큼은 톡톡히 해냈다.

여포는 독재자 동탁을 주살했다는 이유로 한때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탁의 잔당에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의탁할 곳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그 시절 유비 또한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고 심지어는 빈말일지라도 “나 대신 이 땅을 다스려 달라”는 부탁까지 들었다.

그러나 여포는 달랐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의리 없는 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설령 그를 받아들인 이도 그의 오만불손함을 보다못해 곧 쫓아버리고 말았다. 여포는 원소에 이어 장량, 장막, 유비 등을 찾아 전전하다 결국 조조에게 잡혀 목을 베이며 배반과 오만, 그리고 비굴함으로 얼룩진 삶을 마감했다. 이런 여포의 삶을 보면 출중한 무술과 용맹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배우고 익히려는 것일까. 여포는 그것을 우리에게 되묻는다.

원소는 후한시대 최고의 관직이었던 3공 자리를 무려 네 차례나 연임한 집안의 출신이라 신분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조금도 남부러울 게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하진의 수하가 되어 하진이 환관들에게 주살될 때 궁중으로 들어가 환관 2000명을 순식간에 살육하면서 정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만큼 과단성이 있었고, 보스기질에다 정치적 감각까지 겸비해 반동탁군의 선봉장을 맡기도 했다. 연합군은 비록 공중분해되고 말았지만, 기주(冀州)를 본거지로 한 황하 북방 전역을 차지하는 등 실리도 챙길 줄 아는 실력가였다. 북방의 공손찬까지 쓰러뜨리자 그에게 맞설 자는 조조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조와의 대결은 필연의 수순이었다.

200년 2월, 드디어 원소군은 관도에서 조조군과 맞붙었다. 원소는 이곳에서 실책을 거듭해 패배를 자초함으로써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패배한 데에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누가 보더라도 명문가 출신이었고 머리도 괜찮은 편이었다. 태평성대라면 이러한 조건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겠지만, 그가 살아간 시대는 난세였기에 오히려 그런 조건이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자만심은 버려야 했는데, 그는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예로부터 변혁의 기운은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일어났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중심에선 변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명문가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성향이라 고정관념에 빠져 있게 마련이다. 삼국시대에 큰 족적을 남긴 조조 유비 손견 동탁 여포 공명 사마의 등은 하나같이 변방 출신으로 이렇다할 배경이 없었다. 대신 야망만큼은 컸다. 거칠었기에 웬만한 세파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난세에선 야성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원씨 집안에는 인물도 많았다. 이들의 힘을 한곳으로 모은다면 그보다 좋을 수가 없겠지만, 이런 집안일수록 서로 잘나서 내부갈등을 빚기 십상이다. 원소에게도 원술이라는 이복동생이 있어 늘 속을 끓여야 했다. 원소는 측실 출신이나 원술은 정실 소생이라 다루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원소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옛날에 잘 나가던 시절만 생각했다. 이는 참모들의 진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일을 처결해간 그의 행태로 증명된다.

게다가 그는 젊은 시절에 보여준 과단성은 어디다 내버렸는지 우유부단하기까지 해서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기가 일쑤였다. 그의 정치적인 입지는 물론 생명에도 치명타를 입힌 두 가지의 큰 실책도 여기서 배태됐다.

참모 활용해 타이밍 잡는다

동탁이 죽은 후 헌제가 낙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 참모들은 원소에게 조조에 앞서 헌제를 모셔야 된다고 진언했으나,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조조에게 기회를 내주고 말았다. 그때 원소 수하에 있었던 순욱은 “그에게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조조의 진영으로 들어가 장자방 노릇을 했으니 원소의 손실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조조가 날개를 달았다면 원소는 덩굴째 굴러온 호박을 차버린 꼴이었다.

두번째 실책은 천하의 향배를 가르는 관도싸움을 전후해 일어났다. 그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재기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조조군이 유비군을 정벌하고 있을 때 책사 전풍(田豊)은 조조군을 배후에서 칠 것을 진언했으나, 원소는 자식이 병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허락하지 않았다. 관도의 싸움은 그때 패한 유비가 원소의 진영을 찾아온 까닭에 시작됐으니 결과적으로 전쟁을 부른 셈이 됐던 것이다.

사실 원소군은 병력과 물자 면에서 5대 1 이상의 절대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잘만했으면 조조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용장 안량과 문추가 조조군에 있던 관우의 손에 목이 달아나면서 전세가 급격히 역전되기 전까지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원소군의 뚝 떨어진 사기였다. 그때 참모 저수가 이렇게 진언했다.

“아군의 병력은 적군보다 월등히 우세하지만 용맹성에서는 뒤지고 있습니다. 적군은 군량이 모자라 물량작전에는 우리를 따르지 못합니다. 때문에 적군은 단기결전에 유리하지만 우리에겐 지구전이 유리합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느긋이 버티면서 적을 소모시키는 작전을 펴야 합니다.”

하지만 원소는 그의 조언에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였다.

이에 반해 조조는 “반드시 전황이 호전되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참모 순욱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결정적인 시기에 모신(謀臣)의 진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모신을 곁에 뒀단 말인가. 모신 범증(范增)의 진언에 귀를 닫아버린 항우(項羽)가 홍문(鴻門)의 전투에서 유방에게 패해 손아귀에 다 들어온 천하를 내주고 말았던 것과 같은 실책을 원소 또한 되풀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너무 자신만만한 게 탈이었다. 자만은 자칫 주위의 반발을 사고, 또 자신을 좁은 세계 속에 가두고 만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자신만이 옳다며 참모들의 의견을 무시하다 번번히 타이밍을 놓쳤다. 그는 결국 제1라운드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원소는 관도에서의 패배로 화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 반격 한번 못해보고 저세상으로 갔다. 그 아들들 역시 변변치 못해 조조군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제1라운드에서 탈락한 또 한 사람의 패자는 유표다. 형주 자사로 부임한 초기에는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유비에게도 너그럽게 대해주는 등 인심을 얻고 내실도 기했으나, 주위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옛날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몰락을 재촉한 빌미는 원소의 경우처럼 관도싸움이 제공했다.

관도싸움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유표는 원소로부터 구원요청을 받고 그러마고 승낙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조조를 편든 것도 아니었다. 엉거주춤한 태도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가신 한신과 유선 등이 보다못해 “두 걸물이 기를 쓰고 싸우고 있는 이 틈을 이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승리할 공산이 큰 쪽에 힘을 실어주어 장래를 보장받자”고 졸랐지만,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정세를 살핀답시고 한승을 조조 진영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한승도 믿지 못해 그를 죽이려 들었다.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도 우유부단한 태도로 내부갈등만 증폭시켰다. 그 결과 비록 그 자신이 조조에게 모욕을 당하진 않았지만 그가 죽은 지 8일 뒤에 들이닥친 조조군에게 아들 유종(劉琮)이 목숨을 잃고 땅까지 내줬으니 이 모두가 그의 실책의 소산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 또한 참모의 활용과 타이밍을 잃지 않는 결단력이 리더의 필수요건임을 깨닫게 하는 반면교사다.

과감한 인재등용, 엄정한 신상필벌

조조·유비·손권은 제1라운드에서 자신의 세력을 굳건히 하여 마침내 독자적 왕국을 세웠으니 A학점을 받을 만하다. 제2라운드는 이들 세 선수가 주역이 되어 펼치게 됐다. 2라운드에서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긴 했으나 1라운드의 적벽대전이나 관도싸움 같은, 생사를 가를 정도의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참모와 장수 몇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긴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제2라운드는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진력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때에도 어김없이 많은 조연들이 등장해 주전 선수들을 도왔다. 중국이란 무대가 늘 그래왔듯이 ‘삼국지 게임’ 역시 몇몇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기보다는 팀 플레이를 선호한다. ‘팀장’격인 조조·유비·손권 세 사람은 팀 플레이에서도 자기들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었다. 조조가 신상필벌이란 제도적 잣대로 임했다면, 유비는 일찍이 도원의 결의를 한 사람답게 정(情)과 협(俠)과 성(誠)을 바탕으로 넓은 도량을 과시했으며, 손권은 부하들을 믿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유비와 손권은 사람들 사이의 ‘트러스트(trust)’를 지렛대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나, 조조와의 사이에서는 그런 것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너무나 대조적인 방법으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조조나 유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제 각각이다.

조조에 대해 좋게 평하는 사람은 그의 과감한 인재등용, 엄격한 신상필벌, 현실중시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인재를 거두어 쓰되 모두 제 그릇에 맞게 썼으며, 사사로운 정보다는 능력을 먼저 헤아렸고, 쓸 때에는 지난 허물을 상관하지 않았다”고 조조를 평했다.

그가 인재를 끌어모으는 데 열심이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의 보스기질이다. 보스가 되기 위해서는 권력과 경제력을 갖춰야 하는데, 조조는 그 둘을 다 구비했을 뿐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때를 놓치지 않는 적절한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까지 갖춰 부하들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야망이 컸던 만큼 수하에 많은 인재들을 거느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런 기질은 경우에 따라 참모나 장수들의 진언을 무시하게 만들어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는 무서울 정도의 선견지명과 결단력으로 팀을 이끌어 나갔다.

둘째 이유는 그가 문제 해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야 했다. 셋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전국 각지로부터 많은 인재들을 등용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각 지방으로 자연스레 확대시킬 수 있다는 철저한 계산이었다. 여기에 당근과 채찍이라는 신상필벌의 방책까지 구사했으니 그는 조직운영의 달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조가 기인 예형과 만난 자리에서 수하 문무백관들의 사람됨을 자랑스레 소개한 바 있는데, 그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순욱·순유·곽가·정욱 등의 모사는 기지가 심원하여 소하·진평(陳平)을 능가하며, 장료·허저·이전·악진은 용력을 당할 자가 없어 옛날 잠평(광무제를 도운 장수), 마무(광무제를 도운 장수)도 그들에 미치지 못하며, 만총(滿寵)은 종사에 뛰어나고, 우금(于禁)·서황은 선봉장이며, 게다가 하후돈은 천하 기재이니 모두가 출중하도다.”

또한 조조는 문(文)에도 일가견을 가졌다. 병서는 물론 역사서, 유학서, 문학서 등에 걸쳐 폭넓은 독서를 했으며, 시문을 직접 짓기도 했다. 이는 그가 호학(好學)의 군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기여한 바 컸다.

자기중심주의가 낳은 현실감각

이렇게 장점이 많은 조조이지만 그를 나쁘게 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를 ‘난세의 간웅’이라 부르는 이들이 이 부류에 속하는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든다. 그래서 그가 그토록 중시했던 지(智)도 따지고 보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도 이런 생각이었던지 조조를 비판적 시각에서 묘사한 부분이 자주 눈에 띈다.

조조가 권모술수의 대가라는 점을 일깨우는 일화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날 군대를 이끌고 작전을 벌이던 중 군량이 바닥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되면 작전이고 뭐고 다 소용없게 된다. 조조는 담당 장교를 불러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에게서 “되를 작게 하면 얼마간은 더 버틸 수 있다”는 대답을 끌어내고는 곧바로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미봉책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 곧 탄로가 났다. 병사들의 입에서 “대장님이 우리를 속여 밥을 조금밖에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면서 분위기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조는 담당 장교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는 “병사들의 노여움을 가라앉히려면 네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단숨에 목을 벤 후 잘린 목을 병사들에게 들어보였다. “이 놈은 작은 되를 써서 군량을 훔친 죄로 이렇게 처벌하였다”면서. 병사들이 조조의 엄정한 기강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분노는 진정됐다.

대군을 이끄는 수령으로서 ‘큰 것을 구하기 위해 작은 것은 희생할 수밖에 없다’며 조조의 행동을 두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연 그 방법밖에 없었냐고 되묻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오히려 그는 너무 안이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현실중시, 능력 제일주의라는 것도 어쩌면 이런 자기중심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극진히 보필했던 순욱이나 순유와 같은 명참모를 서운하게 만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으리라.

조조에겐 사람을 믿지 못하는 구석도 있었다. 고향에서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여백사의 여덟 식구를 몰살시킨 일은 그런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동탁이 실권을 잡자 고향으로 되돌아가던 조조는 고향에서 가까운 여백사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됐다. 그때 여백사가 조조를 위한답시고 “조정에서 자네를 잡으려고 이곳에까지 방을 돌렸는데 자네가 어떻게 이렇듯 무사히 왔는가” 하고 저간의 사정을 들려준 다음 마침 집에 술이 떨어져 이웃마을로 술을 사러 나갔다. 그 사이에 조조는 혹시 여백사가 밀고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달아났다.

순욱은 후한 말에 조정에 들어갔다가 동탁이 실권을 잡은 뒤 낙향했다. 그러다 원소의 진영에서 상객 일을 보았으나 그의 그릇이 작다는 것을 알고는 제 발로 조조의 진영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포부를 펼치게 해줄 주군을 찾아다닌 특이한 인물이었다. 조조는 순욱을 보는 순간 “나의 장자방이 되리라” 하며 그를 융숭하게 대했다. 이에 흡족한 순욱은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조조에게 헌제를 맞아들이라고 진언했고,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둔전(屯田)을 설치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내놓는 등 조조의 지혜를 빛냈다.

그는 원소가 싸움을 걸어왔을 때 자신의 군세가 원소군에 미치지 못한다며 한숨짓는 조조를 향해 이렇게 기운을 북돋아줬을 만큼 충직한 모신이었다.

“예전부터 승부는 총사령관의 기량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능력있는 장군은 약소한 세력도 강대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러한 기량이 없으면 강대하던 힘도 쇠퇴하고 맙니다. 이는 유방과 항우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공(公)과 천하를 겨룰 자는 원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원소는 어떠합니까? 외양은 의젓하게 차리고 있지만, 속마음은 시기심으로 뭉쳐 있으며, 일을 맡기면서도 부하를 의심하는 인물입니다. 그 점에서 공은 매사에 구애받지 않고 탁 트여서 사리에 맞게 처결하십니다. 이것은 도량이 크다는 증거입니다.”

쓰임이 끝나면 배에서 내린다

관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도 그는 여러 차례 조조를 안심시키는 계책을 내놓아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는 또 생질인 순유와 후일 북방 책략에 큰 공을 세우는 곽가를 모신으로 추천하는 등 조조를 보필하는 데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순욱은 조조의 말마따나 그의 장자방 노릇을 톡톡히 수행한 셈이었다.

‘장자방(張子房)’이란 유방(劉邦)을 도와 한 제국을 일으킨 일등공신 장량(張良·‘자방’은 그의 자)을 일컫는 것이나, 중국인들은 이상적인 책사나 참모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참모의 역할은 정세를 정확히 읽고 그에 맞는 정략과 방책을 강구하여 보스에게 진언하는 것인데, 장량은 그 일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다음 자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던가를 밝히는 과정에서 장량의 역할도 지적했는데, ‘사기(史記)’ 고조 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막사에서 계책을 짜내 1000리 밖의 승리를 결정짓는 일에서는 내가 자방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로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에서는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며, 또 100만 대군을 통솔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일에서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걸출한 인재로서 그들을 임용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반면 항우는 단지 범증 한 사람만을 썼으나 그마저 끝까지 믿지 못했으니 이것이 항우가 내게 잡힌 까닭이다.”

순욱은 장자방답게 조조가 패업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조 또한 그에 대해 나름대로 보답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사람의 끝은 좋지 않았다. 조조가 더 이상 순욱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조조가 그에게서 더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도 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이루고자 한 것을 모두 이뤘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둔 인생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서로 달랐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조조는 스스로 천자가 되려 했는데 반해 순욱은 한 왕조의 부흥을 꿈꿨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면 달리 길이 없다. 누군가 한 사람은 배에서 내려야 한다. 순욱은 그 일로 가슴앓이를 하다 세상을 하직했다.

순욱의 죽음은 천재를 주군으로 섬긴 수재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조조에게도 득될 것이 없었다. 그나마 그를 돕고 때로는 과속을 못하게 브레이크 노릇을 해내던 순욱이 사라졌으니 조조는 긴장이 풀어지고 활력도 사그라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조조에게 드리운 것은 희망의 무지개가 아니라 검은 구름떼 같은 모순덩어리였다. 목적과 수단의 괴리, 정치와 군사의 모순, 멀어져 가는 민심, 이 기회에 아부하여 일신의 영달이나 노리려는 아첨배들…. 이런 것들로 하여 조조는 서서히 비극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순욱은 정치노선으로 조조와 갈등을 겪지 않았다 해도 그의 쓰임이 다하면 언젠가는 조조의 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이었다. 장량 역시 그랬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어보았던 장량은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자 스스로를 낮추고 자리나 재물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유방이 권하는 고관 자리를 사양하고 변방의 한직을 택해 주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그후 한신 등 역전의 공신들이 차례로 숙청됐지만 그는 천수를 누렸다. 그는 손자가 말했던 대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택해 지선(至善)의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톱과 브레인의 ‘주파수’ 맞추기

그렇다면 명참모의 필수조건이란 어떤 것일까. 전문적인 식견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정치적 야망을 죽이는 일도 당연히 포함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 참모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시대에도 종종 이야깃거리가 되는 톱(top)과 브레인(brain) 사이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에서 부서장과 브레인이 술집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브레인은 톱에게 일의 맥락(context)을 명료하게 이해시킬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런 분위기를 잘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브레인은 어떻게든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톱에게 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톱은 꼭 그 브레인이 아니어도 정보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소스가 많으니 걸림돌이 아주 많다.

요체는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우리 시대의 고민만은 아닌 듯, 이에 대해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세난(說難)’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유세(遊說)의 곤란함은 나의 지식으로써 상대편을 설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데 있지 않다. 또 나의 변설로써 상대편에게 나의 의사를 철저히 밝히거나 자기가 말할 바를 종횡무진으로 다 말하기가 어려워서도 아니다. 대체로 설득의 곤란함은 상대편의 심정을 통찰하고 상대편의 심정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맞추어 끼우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게 지나치면, 아니 잘못 이해하면 톱의 비위만 맞춰주는 꼴이 되고 만다. 최고 권력자가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이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사태를 제대로 보고하자니 톱을 불편하게 할 것 같고,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내 자신의 무능이나 잘못을 드러내는 꼴이 되기도 하니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푸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 하나는 톱이 평소 아랫사람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부담감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털어놓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브레인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각색해 톱의 주파수에 맞도록 하는 일이다. 둘 다 결코 쉬운 일일 수는 없다. 유능한 톱이 되는 것이나 브레인이 된다는 것이 모두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조조에게서 번뜩이는 재기와 날카로운 통찰력이 느껴진다면 유비에게서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편안히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비를 일러 흔히 정과 협의 인물이라고도 한다. 그건 물론 장점이다.

장각이 이끄는 황건의 반란군이 유주(幽州·지금의 허베이성 일대) 근방에 이르렀을 때 유주 자사 유언(劉焉)이 의용군을 모집한다는 방을 곳곳에 내걸었다. 신장 7척5촌에다 양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이고, 양 팔을 뻗으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예사롭지 않은 체형을 가진 28세의 젊은이 유비도 한 왕실을 부흥하겠다는 일념에 주저없이 모병에 응했다.

그때 8척 거구에 표범 같은 머리, 번뜩이는 눈, 호랑이 같은 수염에다 우레를 닮은 목소리, 거친 말과 같은 힘을 가진 장비를 만나 의기투합,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수염이 2자나 되는데다 얼굴이 붉고 봉황의 눈에, 누에가 누운 듯한 짙은 눈썹을 가진 9척의 건장한 사나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관우였다.

이들은 그곳에서 가까운 장비의 집 뒤뜰 도원에서 ‘동년 동월 동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날에 죽기로 약속’하면서 의형제를 맺었다. 키가 제일 작은 유비가 맏형이 됐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어질고 슬기로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유비에게서는 그때에도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의형제의 뜻을 굳이 따진다면 ‘의미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겠으나, 중국사회에선 아주 흔한 관습이었다. 유비의 조직은 이러한 의협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어 법치에 기반을 둔 조조의 조직과는 성격이 판이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비(非)체제 성격이 강한 의협 쪽을 선호했다. 기계적인 제도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덕으로 사회가 운영되기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금의 중국 무협영화에서도 확인되는 바다.

사람을 모아 천하를 쥐어주는 德

덕이란 계산을 초월하는 가치이자 세계다. 계산의 세계에서 1+1은 2가 되지만 덕의 세계에선 10도 되고 100도 될 수 있다. 유비의 덕은 그가 개울에서 노인을 두 번이나 업어 건네준 일화로도 확인된다. 노인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억지였다. 하지만 유비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를 업고 싫은 내색 한번 비치지 않고 두 번이나 개울을 건넜다. 그렇다고 그에게 뭐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일로 유비는 ‘쪼다’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는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다. 손자가 병법에서 으뜸으로 쳤던 것이 바로 덕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덕이라면 용(用)은 사람에게 뭔가를 따지게 하는 것이기에 손자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얻을 것은 있지만 빼앗길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를 멀리 하겠는가. 덕이란 이런 것이다. 나무가 크면 큰 그늘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그 아래서 쉴 수 있다. 그릇이 크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사람은 덕이 있는 자에게 모여든다. 맹자 또한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천하에 도가 있으면 소덕(小德)이 대덕(大德)의 부림을 받고, 소현(小賢)이 대현(大賢)의 부림을 받는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부림을 당하고,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의 부림을 받는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이다. 하늘을 따르는 자가 살아남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유비는 사마휘에게서 공명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형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깊은 융중(隆中)의 산속에 위치한 공명의 초려(草廬)를 세 번이나 찾는 성의를 보였다. 처음 두 번은 그를 만나지도 못하고 허탕을 쳤고, 세번째는 낮잠을 자고 있는 공명을 깨우지 못해 밖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관우와 장비가 “그까짓 촌놈한테 형님이 뭐하러 몸소 가보려고 하시오. 아무나 하나 보내서 불러오면 그만일 걸” 하고 만류했지만, 유비는 듣지 않고 끝까지 성의를 다했다.

유비의 이런 행동은 두 번을 협박하고도 응하지 않자 마지막엔 “거절하면 목에 포승줄을 묶어서라도 데려오라”고 사자에게 엄명을 내려 기어이 사마의를 자기 앞으로 끌어낸 조조의 경우와 너무 달라 흥미를 자아낸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공명을 마주한 유비는 그에게 이렇게 간청했다.

“내 비록 이름이 없고 덕은 박(薄)하나 원컨대 선생은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산에서 나오시어 도와주십시오. 비(備)가 삼가 가르침을 받자오리라.”

공명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양(亮)이 오랫동안 전야에 묻혀 지내 세사에 게으른 터라 존명을 받잡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유비가 아니었다.

“선생이 나오시지 않으면 저 어린 백성들을 어찌하라 하십니까?”

이렇게 나오는데 누가 그 청을 뿌리치겠는가. 유비에겐 그런 대의명분 이 있었다.

삼고초려가 주위 사람들에겐 부질없는 짓거리로 비쳤을지 몰라도 유비는 이를 통해 그토록 갈망하던 천하의 재사 제갈량을 자기 곁으로 끌어들이는 쾌거를 이뤘다. 공명은 이른바 ‘천하 삼분지계’를 헌책하여 그 은혜에 보답했다.

“동탁의 난 이래 천하에 군웅이 할거하고 있으나 최강자는 단연 조조입니다. 그는 원소보다 열등한 군사력을 갖고도 교묘한 계책으로 원소를 패퇴시켰고, 지금은 천자를 등에 업고 100만 대군을 호령하니 이겨내기란 극히 어렵습니다. 강남의 손권은 장강(長江)을 방패로 삼아 안전한데다 백성들이 그를 따르니 이 나라와는 원조할지언정 다퉈서는 안됩니다.”

“이 땅 형주는 북으로는 한수(漢水)가 흐르고, 남으로는 바다이며, 동으로는 오와 접하고, 서로는 파촉(巴蜀)과 통하는 천혜의 요충지입니다. 그런데 유표는 패기가 부족해 이를 능히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하늘이 당신께 주신 절호의 선물인 셈입니다. 형주를 차지하고 기름진 들이 1000리나 펼쳐진 이웃 익주를 점령하십시오. 그리하면 틀림없이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행정과 인사관리의 달인 손권

유비는 그 자리에서 공명을 군사(軍師)로 삼고는 스승의 예를 다했다. 그의 진언에 따라 형주를 손에 넣으니 천하의 조조마저 “교룡(蛟龍)이 이제 물을 만났구나” 하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형주의 장악은 단지 오랜 떠돌이 생활을 청산한다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바라고 바라던 바를 유비는 공명을 얻음으로써 이뤘다.

이들이 만들어낸 절묘한 콤비 플레이를 흔히 ‘어수지교(魚水之交)’란 말로 표현한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이를 두고 “고기와 물이 삼고 끝에 만났으니 바람과 구름이 사해에 인다”고 읊었다. 기존의 가치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사람들 역시 이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난세에, 유비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과 협과 성으로 어떠한 상황에도 결코 깨뜨려지지 않는 단단한 인간관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유비의 장기인 트러스트는 두 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졌다. 하나는 멤버들간의 강한 결속력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알아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하는 자발성이었다. 시스템 위주로 가동된 조조의 조직에서 기대할 수 없는 트러스트 덕분에 유비는 난세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난세를 경영하는 수완까지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변변치 못한 그였지만 이런 가공할 만한 자산을 가졌기에 끝내 한 마리 교룡이 될 수 있었다.

손권은 조조와 유비에 비해 인상이 강하지 못하다. 스스로 피땀 흘려 기틀을 다진 창업자가 아니라 아버지 손견, 형 손책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출발했기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그는 3분된 천하의 한 축을 움켜쥐고도 천하를 얻으려는 의욕을 한 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현상유지에 급급했던 손권을 일러 ‘삼국지 인물기행’을 쓴 일본의 중국문학자 모리야 히로시는 ‘수성(守成)에 능한 조연 배우’라고 혹평했다.

그는 변화하는 정세에 따라 어떤 때는 촉과 손을 잡고, 어떤 때는 위와 동맹을 맺는 등 정세에 대응하는 유연성을 보인 것 같으나 본질에서는 수동적이었다. 그가 집착했던 것은 유비가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 형주의 귀속 정도였다. 손권보다 15세 위였던 손책도 일찍이 그의 이러한 성향을 꿰뚫어보고는 아무래도 그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았던지 죽기 전에 손권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만약 강동의 백성을 몰고 조조와 원소가 다투는 틈을 타 천하를 노리고 싸우는 일이라면 너는 나보다 못하다. 그러나 어진 사람을 불러들이고 능력 있는 이를 뽑아 그들과 함께 강동을 지키는 일이라면 너는 나보다 나으리라.”

손권은 형의 유지를 따랐다. 모험을 피하고 인재를 끌어들여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부하를 믿고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는 그의 인물평은 그래서 나왔다. 그가 인재들을 가까이한 것은 형의 유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에 비해 인구가 적고 벽지라는 강동의 열악한 조건이 한몫 거들었다. 인재를 널리 구하는 일에서 그만큼 불리했기에 소중히 다룰 수밖에 없었다. 손권은 토착 호족들과도 어울려 그들의 지원을 받아내는 등 인화에선 누구 못지않은 강점을 보였다. 그 성공비결에 대해 그는 이런 말을 자주 들려줬다.

“상대의 장점을 높이 사주고, 대신 단점은 곧 잊어버린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 누구나 단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만 부각시키면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반대로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주위에서 분위기를 띄워주면 놀라운 성과를 발휘한다. 손권은 인사관리의 달인답게 그 솜씨를 십분 발휘하여 지극히 열세인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혼비백산케 했고, 형주 공방전에선 천하의 명장 관우를 쓰러뜨렸다.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던 여몽을 발탁, 중책을 맡기면서 공부할 것을 권면해 ‘괄목상대’의 고사를 탄생시키는 인재로 키워냈던 것을 보면 사람을 다루는 면에서 손권은 조조를 분명히 앞섰다. 하지만 그의 강점은 행정분야에 국한됐다. 전쟁이나 정치에선 그렇지 못했다. 정치적 야망을 버리고 오직 행정가로 일관했던 것이다.

요절한 참모들

다행히 그에게는 주유 노숙 여몽 육손 제갈근 등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장수와 참모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이 큰 힘이 돼주었다. 그러나 손권으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들은 모두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떴다. 죽마고우 손책을 도와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손권의 든든한 지지에 힘입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오의 총사령관 주유는 형주를 손에 넣으려다 번번이 공명에게 저지당하자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미 주유를 내셨다면, 왜 또 제갈량을 내셨나이까?” 하고 애달프게 외치며 죽으니, 이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주유의 사후 전군지휘관이 된 노숙은 형주를 유비에게 내주면서 그와 동맹관계를 수립해 조조를 견제할 것을 진언하는 등 오의 외교방침을 바꾸는 데 진력했다. 유비가 형주를 기반으로 해서 익주를 손에 넣으며 세력을 급격히 키워나가자 두려움을 느낀 손권이 유비를 칠 계획을 세웠지만, 노숙은 끝까지 촉과의 동맹을 권해 두 나라 사이에선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4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노숙의 뒤를 이어 군권을 맡은 여몽은 노숙과는 달리 촉과의 동맹보다는 형주를 되찾는 일에 골몰했다. 그 결과 형주를 손에 넣고 형주 책임자 관우마저 잡아들이는 등 손권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 또한 46세로 죽었다.

그나마 장수한 것은 육손이었지만 그는 말년에 후계자 문제에 말려든 죄로 손권에게 질책받고는 이듬해 63세로 세상을 떴다. 인재들이 이렇게 차례로 떠나가면서 손권의 시대도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됐다.

변방에서 몸을 일으켜 마침내 천하를 삼분한 조조·유비·손권은 걸출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조조의 경우 통찰력과 결단력, 적극적인 인재 활용, 엄격한 신상필벌, 유비의 경우에는 의협에 바탕을 둔 굳건한 인간관계, 손권의 경우에는 뛰어난 인사관리와 진언 경청이 승인(勝因)이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그런 몇 가지 요인만으로 그들이 승자가 됐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듯하다. 한때는 장점이었던 것이 조건이 바뀌면 단점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맞물려 때로는 플러스 방향으로, 때로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의 성적이나 태도를 평가하거나 회사나 기관에서 직원의 인사고과를 평정할 때에도 여러가지 평가항목을 마련해 각 항목마다 주어진 기준에 따라 점수를 부여한다. 하물며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의 자질을 평가하는 데 어찌 몇 가지 항목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이들에 대해서도 인사고과 평정방식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각자의 장점과 단점은 물론 성향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챙기다가 이런 성적표가 이미 작성돼 있음을 발견했다. 일본의 월간지 ‘역사가도(歷史街道)’ 1993년 7월호는 일본의 삼국지 전문가 세 사람(중국문학자 모리야 히로시, 작가 후지모토 기이치, 사학자 가노 나오사다)에게 설문지를 돌려 그 결과를 채점표로 만들었다.

종합평점은 조조-손권-유비 順

평가항목은 결단력, 통솔력, 실행력 등 20가지로 각 5점 만점이었는데, 채점결과 조조가 88.1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다음이 83.6점의 손권, 유비는 79.7로 꼴찌였다(표 참조). 조조가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은 위나라가 강국이니 이해할 수 있다지만, 손권이 유비를 앞선 것은 좀 의외다. 하지만 채점표를 들여다보니 그럴 법도 하다. 손권은 각 항목에서 대체로 고른 점수를 얻은 데 비해 유비는 기복이 심했다. 카리스마, 정의감, 운에서는 최고점을 얻은 반면 재력, 구상력(構想力), 후계자 육성, 교양에선 최저점을 받았다. 손권은 인재활용에서만 최고점을 받았으나 어느 항목에서도 3.3점 아래는 없다. 조조도 포용력에서는 3.0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조조는 예상대로 결단력, 실행력, 구상력, 재력, 권모술수, 교양 등 무려 6개 항목에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그가 최고점을 얻은 항목은 개인적 재능이나 특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런 그가 인망이나 포용력, 민정수완 등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점을 받은 것을 보면 인간관계나 사회관계, 즉 공공적 분야에선 취약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비의 경우 최하점을 얻은 구상력, 재력, 교양은 어떻게 보면 약점이라 하기 어렵다. 변변한 기반 없이 교룡이라 불렸으니 오히려 치하할 일일 수도 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도가(道家)적 태도를 견지했기에 그 스스로 무언가를 꾸미고 짜낼 까닭이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구상력에서 최하점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점을 받아야 마땅하다. 구상력이라는 게 모두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또 그 지향하는 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비전 같은 것이라면 말이다.

조조·유비·손권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짓는 이 시점에서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만약 당신이 참모의 자질을 갖고 있다면 이 세 인물 가운데 누구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고 싶은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들에 대한 독자의 평가가 될 것이다.

제2라운드가 끝나가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킨 것은 다름 아닌 관우의 죽음 때문이다. 오의 여몽이 꾀를 내어 총사령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고는 그 자리에 육손을 앉혔다. 관우는 육손이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의 공격에 대비하던 군사들을 조조 쪽으로 돌렸다. 여몽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형주로 공격해 들어갔다. 앞에서는 조조군이, 뒤에서는 여몽의 오군이 밀려들자 충의와 용맹으로 똘똘 뭉친 관우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마지막은 정말 관우답지 못했다.

그게 219년의 일인데, 그 이듬해에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것 같던 조조마저 장자 비(丕)에게 양위하고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로 치면 살 만큼 산 나이였다. 조비는 즉위하자마자 헌제가 양위하는 형식을 빌려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한 왕조는 명실공히 사라졌다. 이 엄청난 일을 조조는 끝내 이루지 못했는데, 젊은 조비는 서슴없이 해냈다. 그의 이러한 과단성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것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미숙함의 발로일 수도 있다.

왕위를 찬탈당한 헌제는 이듬해 알 수 없는 이유로 불귀의 객이 됐다. 그 소식을 접한 유비는 헌제에 대한 상례(喪禮)를 다한 다음, 위(220∼265)의 조비에게 질세라 스스로 황제가 되어 한실(漢室)의 적통자임을 대외에 과시하니, 그것이 이른바 촉한(221∼263)이다.

관우를 잃은 터라 유비는 즉위식이 끝나자 곧 복수전에 돌입했다. 조운(趙雲) 등이 “경계할 자는 손권이 아니라 새로 떠오르는 조비”라며 극구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일이 꼬이려고 해서인지 출병준비를 서두르던 장비가 부하의 손에 암살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의형제 관우에 이어 장비까지 잃게 되자 유비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그래서 복수심이 더 강렬해졌는지 그는 계획대로 동정(東征)을 감행했다. 결과는 대패였다.

나를 닮은 자를 경계하라

관우의 죽음으로 유비도 마음의 평정을 잃어 판단력에 문제가 생겼는데, 결국 그것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의 심신이 어떠했겠는가. 그는 제갈량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 63세였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삼국지’는 이렇게 전한다.

“승상의 재주는 조비의 열 배나 되니 반드시 한실을 부흥시켜 천하 대업을 이룰 것이라 믿소. 다만 근심되는 것은 내 아들 선(禪)이 변변치 못함이오. 아무쪼록 태자를 보좌하되, 그 보람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대가 제위에 올라 대업을 성취하기 바라오.”

이에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신을 믿음이 이와 같으시니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해 새 황제 폐하께 충의와 정절을 다 바치겠습니다.”

유비는 다시 태자 선에게 유언했다.

“너는 승상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그를 아비처럼 따라야 하느니라.”

굳이 유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실패의 원인은 나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기 전까지 그걸 깨닫지 못해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비가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 것이다.

조조, 유비와 20년 이상 나이차가 나는 젊은 손권이 오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만, 유비의 죽음으로 삼국지 제2라운드 게임은 끝났다. 조비와 유선을 새 선수로 맞아들인 가운데 제3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엔트리 상에는 주전선수가 조비와 유선, 손권이라고 돼 있었지만, 실제로 경기에 임할 선수는 위의 사마의, 촉의 제갈량, 오의 손권이었다. 이것만 봐도 제3라운드 경기가 그리 간단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찬탈의 오명이 늘 따라다녔던 조비. 그는 위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여러가지 궁리를 다했지만, 재위 7년 만에 숨을 거두면서 위의 영광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뒤로 조예, 조방, 조모, 조황 등이 제위에 올랐으나 너무 어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실권은 승상인 사마의, 사마사(司馬師), 사마소(司馬昭) 등에게 맡겨놓다시피 했다.

조조가 사마의를 발탁했으나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사마의 또한 그것을 내색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사마’라는 성은 고대 중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리던 관명. 이를 보면 그의 집안은 대대로 군사(軍師)를 배출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라면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마의는 조조와 닮은 점이 많다. 조조가 그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도 현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 기질, 그 못지않게 사마의도 두둑한 배짱을 가졌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흑심을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그것도 자기 못지않은 능력과 배짱을 가진 자가 지켜보고 있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니 조조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후일 그가 세운 나라가 사마 집안에 의해 무너져 조조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 그의 선견지명을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그의 불운을 슬퍼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제갈공명의 인품

촉의 사정도 위에 비해 그리 나을 게 없었다. 유선이 제위에 올랐다고는 하나 유약하기 이를 데 없어 공명이 국정을 도맡아 꾸려가야 할 처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명은 유비와의 약속이 없었다 해도 유선을 제치고 국정을 농단할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일에 몸소 수범을 보였고 청렴했으며, 무엇보다도 부지런했다.

공명의 목표가 한실의 부흥이었으니 위와의 대결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 사마의와의 싸움은 필연적이었다. 공명은 북방 공략을 위해 유선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렸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고 익주는 피폐해 있습니다. 진실로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때입니다. 그러나 폐하를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은 궁궐 안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충실한 장수들은 궁궐 밖에서 자신의 몸을 잊고 있습니다. 선제의 각별한 은총을 추모하고, 폐하께 그 보답을 하려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적을 토벌하여 한실을 부흥시킬 공적을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신은 큰 은혜를 받은 감격을 이기지 못해 금일 먼길을 떠나고자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말씀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떠난 227년의 제1차 북벌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고사만 만들어내고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이듬해 겨울, 제2차 북벌도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위의 사마의가 수성전으로 나와 승기(勝氣)를 뺏을 기회를 도무지 주지 않는데다 군량만 축내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사마의는 군사집안 출신답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손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다시 2년간의 준비 끝에 234년, 공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북방으로 향했다. 싸움을 걸었으나 사마의는 이번에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속이 탄 공명은 족두리와 치마저고리를 함에 넣고는 이런 글과 함께 사마의에게 보냈다. 그의 성질을 건드려 싸움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중달(仲達·사마의의 자), 그대가 기왕 대장이 되어 중원의 군마를 통솔하였음에 날램을 잡아 자웅을 결할 생각은 아니하고 토굴만 굳게 지키고 도전(刀箭·칼과 화살)을 피하니, 아녀자와 무엇이 다르다 하리. 이제 사람을 시켜 족두리와 치마저고리를 보내니, 싸우지 아니 하려면 두 번 절하고 받을 것이며, 혹시나 아직도 남자의 흉금으로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았거늘 일찍이 회답하여 날을 정하고 싸움을 결단하라.”

사마의는 서찰을 읽고도 태연했다. 오히려 사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 승상의 침식과 일의 번한함은 어떠한가?”

“승상께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주무시며, 대소사 어느 하나 눈 아니 거치심이 없사옵고, 드시는 것은 하루에 불과 몇 승(升)이오이다.”

이를 듣고 난 사마의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장수들에게 “공명이 그렇게 식소사번(食少事煩)하니 어찌 오래갈까”라고 하고는, 사자에게는 이렇게 일렀다.

“돌아가거든 승상 팔자가 기구하다고 여쭈어라.”

오장원(五丈原)의 진지로 돌아온 사자는 공명에게 사실대로 복명했다. 이에 공명은 무릎을 치며 “그가 참으로 나를 깊이 알았구나!” 하고 탄복했다.

사마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공명은 오장원에서 54세의 일기로 세상을 하직했던 것이다. 공명은 출사표에서도 밝혔던 대로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이나 구차히 보전하려고 제후에게 알려 영달을 구하지도 않는’ 성품 때문에 유비가 떠난 뒤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그의 인품을 빛나게 하지만, 촉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솔선수범하는 인물의 비애

모든 대소사를 공명이 관여해야 한다면 우선 그의 건강을 심히 해쳐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다.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누가 대신 그의 자리를 메울 것인가. 설령 그런 결정적인 위기가 도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면 다른 사람들은 그나마 하던 일을 손에서 놓게 된다. 인화도 생산성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촉이 바로 이런 꼴이었다.

유선이 일을 적절히 배분해 공명에게는 쉴 여유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면 유비가 꿈꿨던 한실 중흥은 이뤄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선은 그런 재목이 못 됐다. 유선이 그러하다면 공명 스스로라도 그렇게 끌고 갔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설혹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해도 2인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처신한다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기에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상대가 유비였다면 주파수가 맞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나, 유선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 천하의 공명도 주파수를 맞추지 못한 게 아닌가싶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부하의 잘못에 대해서도 대신 벌을 받고, 최고의 전공을 세웠으면서도 가진 것은 고작 밭 몇 마지기라며 청렴을 떨었으니 사람들이 일을 찾아 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을 잘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돌아가야 하고, 그걸 갖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것인데, 승상 스스로 그것을 막는 꼴이 되었으니 누가 은공을 기대하고 공을 세우려 들겠는가.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처신하는 사이에선 트러스트보다 강한 힘이 없겠지만 그렇지가 못하다면, 또 그럴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면 공정한 신상필벌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명이 유비·관우·장비가 떠나고 자신만 홀로 남았다는 사실, 다시 말해 조건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잠시 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때의 공명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한 불안감은 북벌을 서두르는 그의 행동에서 절정에 달했다. 유비 또한 그렇게 가지 않았던가.

유선은 공명이 전사한 뒤로도 29년이나 더 제위에 머물렀다. 유비가 촉을 세운 지 42년째 되던 263년, 사마소가 이끄는 위군이 쳐들어와 붙잡힌 몸이 되면서 촉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환관과 무능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다 그런 꼴을 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뒤엔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위를 쓰러뜨리고 진(晉)을 건국했다. 진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280년, 육손이 죽은 뒤 실수를 거듭하면서 근근히 꾸려가고 있던 오마저 괴멸시키고 말았다. 삼국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중국 대륙엔 새로운 통일왕조 진이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진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기틀을 구축한 사마의는 과연 조조·유비·손권에 앞서는 인물이었을까. 그는 조조가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을 정도이니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나 세 사람보다 더 출중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의 승인은 오히려 그가 상대했던 조비·유선 등 2세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싸움이란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것이기에.

영웅은 1대로 끝난다. 선대가 구축한 재산과 권위 등 외형적인 것들은 상속될지 모르지만,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노하우는 DNA 위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어서 절대로 유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세상의 법칙인데, 2세들은 종종 그 사실을 몰라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조식·유선이 그러했고,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손권도 그런 모습을 보이곤 했다. 자기가 피땀 흘려 체득하지 않은 것은 결코 자기것이 되지 않는다. 그걸 무시하고 일을 저지른다면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천하제패의 조건

삼국시대는 참으로 험난한 세월이었다. 그것도 막을 내렸으니 이제 제3라운드의 성적을 정리해보자. 역전의 용사들이 사라진 뒤라 경기장은 스산했다. 오직 공명의 출사표만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을 뿐이다.

이 글의 주제는 천하제패의 조건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결론은 이러하다. 인심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 제 때를 맞추어 결행하는 결단력, 인재를 끌어들이고 그들이 제 몫을 다 하도록 만드는 인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신중해야 할 때와 과감해야 할 때를 가릴 줄 아는 능력과,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 같은 것 말이다. 왜냐하면 말년의 공명에서 보듯이 원리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때에 맞춰 변화를 부릴 줄 모른다면 뜻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시(時)’ 아니던가. 이때의 시는 고정된 어떤 ‘시점(time)’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시간에 ‘적절한(timely)’이란 뜻에 가깝다. 그만큼 그들은 동적(dynamic)인 사고를 지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강조할 것은 절대 소탐대실(小貪大失)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영웅이 1대로 끝나듯 아무리 강성한 대제국이라도 천년 만년 지속되지는 않는다. 지속만이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영속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게 자칫 세상을 살아가고픈 의욕을 꺾어놓기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보여준 생각의 크기와 행동의 고매함이, 그 인간은 물론 그가 이룩한 조직이나 국가에게 무궁한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있기에 그러하다. 천하제패의 조건은 그런 것이 아닐까.



5.明心寶鑑(명심보감)
繼善篇(계선편:선행에 대한 글)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자왈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위화니라)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는다."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소열이 장종에 칙후주왈 물이선소이불위하고 물이악소이위지하라)
한(漢)나라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장차 죽으려 할 때 후주(後主)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작은 선이라고 해서 하지 않아서는 안되며 작은 악이라고 해서 하지 말라."

莊子曰 一日不念善이면 諸惡이 皆自起니라
(장자왈 일일불념선이면 제악이 개자기니라)
장자(莊子)가 말하였다. "하루라도 선(善)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惡)이 저절로 일어난다."

太公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란 須貪하고 惡事란 莫樂하라
(태공왈 견선여갈하고 문악여롱하라 우왈 선사란 수탐하고 악사란 막락하라)
태공(太公)이 말하였다.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른 듯이 하며, 악한 말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착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이란 즐기지 말라."

馬援曰 終身行善이라도 善猶不足이요 一日行惡이라도 惡自有餘니라
(마원왈 종신행선이라도 선유부족이오 일일행악이라도 악자유여니라)
마원(馬援)이 말하였다. "몸을 마치도록 선(善)을 행하더라도 선은 그래도 부족하고, 단 하루 악(惡)을 행하여도 악은 저절로 남음이 있다."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守요 積書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讀이니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하여 以爲子孫之計也니라
(사마온공왈 적금이유자손이라도 미필자손이 능진수요 적서이유자손이라도 미필자손이 능진독이니 불여적음덕어명명지중하여 이위자손지계야니라)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였다.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킬 수는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는다고 볼 수 없다. 남모르는 가운데 덕(德)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교를 하느니만 같지 못하다."

景行錄曰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不相逢이랴 讐怨을 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경행록왈 은의를 광시하라 인생하처불상봉가이랴 수원을 막결하라 노봉협처면 난회피니라)
≪경행록(景行錄)≫에 말하였다.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느 곳에 살든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회피하기 어렵다."

莊子曰 於我善者도 我亦善之하고 於我惡者도 我亦善之니라 我旣於人에 無惡이면 人能於我에 無惡哉인저
(장자왈 어아선자도 아역선지하고 어아악자도 아역선지니라 아기어인에 무악이면 인능어아에 무악재인저)
장자가 말하였다. "나에게 착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함이 없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함이 없다."

東嶽聖帝垂訓曰 一日行善이면 福雖未至나 禍自遠矣요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나 福自遠矣니 行善之人은 如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은 如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니라
(동악성제수훈왈 일일행선이면 복수미지나 화자원의요 일일행악이면 화수미지나 복자원의니 행선지인은 여춘원지초하여 불견기장이라도 일유소증하고 행악지인은 여마도지석하여 불견기손이라도 일유소휴니라)
≪동악성제수훈(東嶽聖帝垂訓)≫에 말하였다. "하루 선한 일을 행하면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재앙]는 저절로 멀어질 것이요, 하루 악한 일을 행하면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더해지는 것이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 갈려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이지러짐이 있다."

子曰 見善如不及하고 見不善如探湯하라
(자왈 견선여불급하고 견불선여탐탕하라)
공자가 말하였다. "선함을 보거든 미치지 못할것과 같이하고, 선하지 않음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하라."

天命篇(천명편:천명을 두려워하는 글)

孟子曰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니라
(맹자왈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이니라 )
맹자(孟子)가 말하였다. "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康節邵先生曰 天聽이 寂無音하니 蒼蒼何處尋고 非高亦非遠이라 都只在人心이니라
(강절소선생왈 천청이 적무음하니 창창하처심고 비고역비원이라 도지재인심이니라)
소 강절(邵康節) 선생이 말하였다. "하늘의 들으심이 고요하여 소리가 없으니 푸르고 푸른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높지도 않고 또한 멀지도 않다. 모두가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玄帝垂訓曰 人間私語라도 天聽은 若雷하고 暗室欺心이라도 神目은 如電이니라
(현제수훈왈 인간사어라도 천청은 약뢰하고 암실기심이라도 신목은 여전이니라)
≪현제수훈(玄帝垂訓)≫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사사로운 말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 속에서 마음을 속일지라도 귀신의 눈이 보는 것은 번개와 같다."

益智書에 云惡이 若滿이면 天必誅之니라
(익지서에 운악관이 약만이면 천필주지니라)
≪익지서(益智書)≫에 말하였다. "악의 그릇이 가득 차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죽인다."

莊子曰 若人이 作不善하여 得顯名者는 人雖不害나 天必戮之니라
(장자 왈 약인이 작불선하여 득현명자는 인수불해나 천필육지니라)
장자가 말하였다. "혹 사람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하여 훌륭한 이름을 얻는 자는 사람이 비록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

種瓜得瓜요 種豆得豆니 天網이 恢恢하여 소而不漏니라
(종과득과요 종두득두니 천망이 회회하여 소이불루니라)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어서 보이지는 않으나 새지 않는다.

子曰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자 왈 획죄어천이면 무소도야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나쁜 일을 하여>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順命篇(순명편:운명에 순응하는 글)

子曰 死生有命이요 富貴在天이니라
(자 왈 사생유명이요 부귀재천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명(命)이 있고, 부귀(富貴)는 하늘에 달려 있다."

萬事分已定이어늘 浮生空自忙이니라
(만사분이정이어늘 부생공자망이니라)
모든 일은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은 부질없이 스스로 바쁘구나.

景行錄云 禍不可倖免이요 福不可再求니라
(경행록운 화불가행면이요 복불가재구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화는 요행으로는 면해서는 안되고, 복은 두 번 다시 구할 수 없다."

時來風送등王閣이요 運退雷轟薦福碑라
(시래풍송등왕각이오 운퇴뢰굉천복비니라)
때가 오니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등王閣)으로 불어 보내고, 운(運)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薦福碑)에 떨어졌도다.

列子曰 癡聾고啞도 家豪富요 智慧聰明도 却受貧이라 年月日時 該載定하니 算來由命不由人이니라
(열자 왈 치롱고아도 가호부요 지혜총명도 각수빈이라 연월일시 해재정하니 산래유명불유인이니라)
열자(列子)가 말하였다. "어리석고 귀먹고 벙어리라도 집은 호화롭고 부자요, 지혜 있고 총명한 사람도 도리어 가난하게 된다. 운수는 해와 달과 날과 시가 모두 처음부터 정해져 있으니, 계산해 보면 부귀는 명(命)으로부터 말미암지 사람에 말미암지 않는다."

孝行篇(효행편:효행에 대한 글)

詩曰 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鞠我하시니 哀哀父母여 生我구勞샷다 欲報深恩인대 昊天罔極이로다
(시 왈 부혜생아하시고 모혜국아하시니 애애부모여 생아구로샷다 욕보심은인대 호천망극이로다)
≪시경(詩經)≫에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아 애닯다 부모님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고 수고하셨다. 그 은혜를 갚고자 하나 넓은 하늘처럼 끝이 없어라."

子曰 孝子之事親也는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고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고 祭則致其嚴이니라
(자 왈 효자지사친야는 거즉치기경하고 양즉치기락하고 병즉치기우하고 상즉치기애하고 제즉치기엄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기거하심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그 즐거움을 다해 드리며, 병이 드시면 근심을 다하고, 초상엔 슬픔을 다하며, 제사지낼 때엔 엄숙함을 다한다."

子曰 父母在어시든 不遠遊하며 遊必有方이니라
(자 왈 부모재어시든 불원유하며 유필유방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부모가 살아 계시면 멀리 가서 놀지 않으며, 노는 것이 반드시 일정한 곳이 있어야 한다."

子曰 父命召어시든 唯而不諾하고 食在口則吐之니라
(자 왈 부명소어시든 유이불락하고 식재구즉토지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아버지가 명하여 부르시면 즉시 대답하며 머뭇거리지 말고 음식이 입에 있거든 이를 뱉을 것이다."

太公曰 孝於親이면 子亦孝之하나니 身旣不孝면 子何孝焉이리오
(태공왈 효어친이면 자역효지하나니 신기불효면 자하효언이리오)
태공이 말하였다.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 또한 나에게 효도하나니, 내 자신이 이미 효도하지 않았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

孝順은 還生孝順子요 五逆은 還生五逆兒하나니 不信커든 但看畯(처마 첨)頭水하라 點點滴滴不差移니라
(효순은 환생효순자요 오역은 환생오역자하나니 불신커든 단간첨두수하라 점점적적불차이니라)
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또한 효도하고 순한 자식을 낳으며, 부모에게 거역한 사람은 또한 거역하는 아들을 낳는다. 믿지 못하겠거든 저 처마 끝의 낙수를 보라. 방울방울 떨어짐이 어긋남이 없다.

正己篇(정기편:몸을 바로하는 글)

性理書云 見人之善이어든 而尋己之善하고 見人之惡이어든 而尋己之惡이니 如此라야 方是有益이니라
(성리서운 견인지선이어든 이심기지선하고 견인지악이어든 이심기지악이니 여차라야 방시유익이니라)
≪성리서(性理書)≫에 말하였다. "남의 착한 점을 보고서 나의 착한 것을 찾아보고, 남의 악한 것을 보고는 나의 악한 점을 찾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야 바야흐로 유익하다."

景行錄云 大丈夫當容人이언정 無爲人所容이니라
(경행록운 대장부당용인이언정 무위인소용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대장부는 마땅히 남을 용서할지언정, 남에게 용서를 받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太公曰 勿以貴己而賤人하고 勿以自大而蔑小하고 勿以恃勇而輕敵이니라
(태공 왈 물이귀기이천인하고 물이자대이멸소하고 물이시용이경적 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나를 귀히 여김으로써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자기를 크게 여겨 자기만 못한 남을 업신여기지 말며, 용맹을 믿고서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지니라."

馬援曰 聞人之過失이어든 如聞父母之名하여 耳可得聞이언정 口不可得言也니라
(마원 왈 문인지과실이어든 여문부모지명하여 이가득문이언정 구불가득언야니라)
마원이 말하였다. "남의 과실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과 같이 하여 귀로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말하지 말 것이니라."

康節邵先生曰 聞人之謗이라도 未嘗怒하며 聞人之譽라도 未嘗喜하며 聞人之惡이라도 未嘗和하며 聞人之善이면 則就而和之하고 又從而喜之니라 其詩曰 樂見善人하며 樂聞善事하며 樂道善言하며 樂行善意하고 聞人之惡이어든 如負芒刺하고 聞人之善이어든 如佩蘭蕙니라
(강절소선생 왈 문인지방이라도 미상노하며 문인지예라도 미상희하며 문인지악이라도 미상화하며 문인지선이면 즉취이화지하고 우종이희지니라 기시 왈 낙견선인하며 낙문선사하며 낙도선언하며 낙행선의하고 문인지악이어든 여부망자하고 문인지선이어든 여패난혜니라)
소 강절 선생이 말하였다. "남의 비방을 들어도 성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남의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남의 좋지 못한 소문을 듣더라도 이에 동조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남의 착한 것을 듣거든 곧 나아가 어울리고 또 따라 기뻐할지니라. 그의 시에 이렇게 썼다. '선한 사람 보기를 즐겨하며, 선한 일 듣기를 즐겨 하며, 선한 말 하기를 즐겨하며, 선한 뜻 행하기를 즐겨 하며, 남의 악한 점을 듣거든 가시를 몸에 진 것 같이 여기고, 남의 선한 점을 듣거든 난초를 몸에 지닌 것 같이 여기라.'"

道吾善者는 是吾賊이요 道吾惡者는 是吾師니라
(도오선자는 시오적이오 도오악자는 시오사니라)
나의 선한 점을 말하여 주는 사람은 곧 나를 해치는 사람이요, 나의 나쁜 점을 말하여 주는 사람은 곧 나의 스승이다.

太公曰 勤爲無價之寶요 愼是護身之符니라
(태공 왈 근위무가지보요 신시호신지부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근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가 될 것이요, 신중함은 몸을 보호하는 신표이다."

景行錄曰 保生者는 寡慾하고 保身者는 避名이니 無慾은 易나 無名은 難이니라
(경행록 왈 보생자는 과욕하고 보신자는 피명이니 무욕은 이나 무명은 난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생(生)을 보전하려는 자는 욕심을 적게 하고 몸을 보전하려는 자는 명예를 피할 것이니, 욕심을 없애기는 쉬우나 명예를 바라지 않기는 어렵다."

子曰 君子有三戒하니 少之時엔 血氣未定이라 戒之在色하고 及其長也하여는 血氣方剛이라 戒之在鬪하고 及其老也하여는 血氣旣衰라 戒之在得이니라
(자 왈 군자유삼계하니 소지시엔 혈기미정이라 계지재색하고 급기장야하여는 혈기방강이라 계지재투하고 급기노야하여는 혈기기쇠라 계지재득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세 가지 경계하는 것이 있으니 연소할 때는 혈기가 정하여지지 않았는지라 경계할 것이 여색(女色)에 있고,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혈기가 바야흐로 강성한지라 경계할 것이 싸움에 있고, 몸이 늙음에 이르러서는 혈기가 이미 쇠해졌는지라 경계할 것이 얻으려는 데 있다."

孫眞人養生銘云 怒甚偏傷氣요 思多太損神이라 神疲心易役이요 氣弱病相因이라 勿使悲歡極하고 當令飮食均하며 再三防夜醉하고 第一戒晨嗔하라
(손진인양생명 운 노심편상기요 사다태손신이라 신피심이역이요 기약병상인이라 물사비환극하고 당령음식균하며 재삼방야취하고 제일 계신진하라)
≪손진인 양생명(孫眞人養生銘)≫에 말하였다. "성냄이 심하면 특히 기운을 상하고, 생각이 많으면 크게 정신을 손상한다. 정신이 피로하면 마음이 사역 당하기 쉽고, 기운이 약하면 병이 서로 일어난다.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을 심하게 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음식을 고르게 하며, 재삼 밤에 술 취하는 것을 막고, 새벽에 성내는 것을 제일 경계하라."

景行錄曰 食淡精神爽이요 心淸夢寐安이니라
(경행록 왈 식담정신상이요 심청몽매안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음식이 담박하면 정신이 상쾌할 것이요, 마음이 맑으면 꿈과 잠자리가 편안하다."

定心應物하면 雖不讀書라도 可以爲有德君子니라
(정심응물하면 수불독서라도 가이위유덕군자니라)
마음을 정하여 사물(事物)에 대응하면, 비록 글을 읽지 않았더라도 덕이 있는 군자라 할 수 있다.

近思錄云 懲忿을 如救火하고 窒慾을 如防水하라
(근사록 운 징분을 여구화하고 질욕을 여방수하라)
≪근사록(近思錄)≫에 말하였다. "분을 징계하기를 불을 끄듯이 하고, 욕심 막기를 물을 막듯이 하라."

夷堅志云 避色을 如避讐하고 避風을 如避箭하며 莫喫空心茶하고 少食中夜飯하라
(이견지 운 피색을 여피수하고 피풍을 여피전하며 막끽공심다하고 소식중야반하라)
≪이견지(夷堅志)≫에 말하였다. "여색 피하기를 원수 피하듯이 하고, 바람 피하기를 화살 피하는 것 같이 하며, 빈속에 차를 마시지 말고, 밤중에 밥을 적게 먹어라."

荀子曰 無用之辯과 不急之察을 棄而勿治하라
(순자 왈 무용지변과 불급지찰을 기이물치하라)
순자(荀子)가 말하였다. "쓸 데 없는 변론(辯論)이나 급하지 않은 일은 버려 두어 다스리지 말라."

子曰 衆이 好之라도 必察焉하며 衆이 惡(오)之라도 必察焉이니라
(자 왈 중이 호지라도 필찰언하며 중이 오지라도 필찰언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여러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酒中不語는 眞君子요 財上分明은 大丈夫니라
(주중불어는 진군자요 재상분명은 대장부니라)
술 취한 가운데 말이 없음은 참다운 군자요, 재물에 대하여 분명함은 대장부이다.

萬事從寬이면 其福自厚니라
(만사종관이면 기복자후니라)
모든 일에 너그러움을 좇으면 그 복이 저절로 두터워진다.

太公曰 欲量他人인대 先須自量하라 傷人之語는 還是自傷이니 含血噴人이면 先汚其口니라
(태공 왈 욕량타인인대 선수자량하라 상인지어는 환시자상이니 함혈분인이면 선오기구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타인을 헤아리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를 반드시 헤아려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니,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기의 입이 더러워진다."

凡戱는 無益이요 惟勤이 有功이니라
(범희는 무익이오 유근이 유공이니라)
모든 유희(遊戱)는 무익하고, 오직 근면만이 공(功)이 있다.

太公曰 瓜田에 不納履하고 李下에 不整冠이니라
(태공 왈 과전에 불납리하고 이하엔 부정관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남의> 외 밭에서 짚신을 고쳐 신지 않고, <남의>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

景行錄曰 心可逸이언정 形不可不勞요 道可樂이언정 身不可不憂니 形不勞則怠惰易弊하고 身不憂則荒淫不定이라 故로 逸生於勞而常休하고 樂生於憂而無厭하나니 逸樂者는 憂勞를 其可忘乎아
(경행록 왈 심가일이언정 형불가불노요 도가락이언정 심불가불우니 형불노즉태타이폐하고 심불우즉황음부정이라 고로 일생어로이상휴하고 낙생 어우이무염하나니 일락자는 우로를 기가망호아)
≪경행록≫에 말하였다. "마음은 편안할수 있을지언정 육체는 수고롭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요, 도는 즐길수 있을지언정 몸은 걱정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육체가 수고롭지 않으면 게을러서 어그러지기 쉽고, 몸이 걱정하지 않으면 주색(酒色)에 빠져서 안정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편안함은 수고로움에서 생겨 항상 기쁘고 즐거움은 근심에서 생겨 싫증이 없나니, 편안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근심과 수고로움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耳不聞人之非하고 目不視人之短하고 口不言人之過라야 庶幾君子니라
(이불문인지비하고 목불시인지단하고 구불언인지과라야 서기군자니라)
귀로는 남의 나쁜 것을 듣지 말고, 눈으로는 남의 단점을 보지 말고, 입으로는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아야 군자에 가깝다.

蔡伯개曰 喜怒는 在心하고 言出於口하나니 不可不愼이니라
(채백개 왈 희로는 재심하고 언출어구하나니 불가불신이니라)
채백개(蔡伯개)가 말하였다.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말은 입 밖으로 나가는 것이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宰予 晝寢이어늘 子曰 朽木은 不可雕也요 糞土之墻은 不可?(흙손오) 也니라
(재여 주침이어늘 자 왈 후목은 불가조야요 분토지장은 불가오야니라)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거늘,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은 흙손질을 못한다."

紫虛元君誠諭心文曰
(자허원군성유심문 왈)≪자허원군 성유심문(紫虛元君誠諭心文)≫에 말하였다.

福生於淸儉하고 德生於卑退하고
(복생어청검하고 덕생어비퇴하고)복은 청렴과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자기를> 낮추고 물러서는 데서 생기며
道生於安靜하고 命生於和暢하고
(도생어안정 하고 명생어화창하고)도는 안정에서 생기고, 생명은 화창함에서 생긴다.
患生於多慾하고 禍生於多貪하고
(우생어다욕하고 화생어다탐하고)근심은 욕심이 많음에서 생기고, 재앙은 탐욕이 많은 데서 생기며
過生於輕慢하고 罪生於不仁이니라
(과생어경만하고 죄생어불인이니라)과실은 경솔하고 교만한 데서 생기고, 죄악은 어질지 못한 데서 생긴다.
戒眼하여 莫看他非하고 戒口하여 莫談他短하고
(계안하여 막간타비하고 계구하여 막담타단하고)눈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그릇된 것을 보지 말고,입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하지 말고,
戒心하여 莫自貪嗔하고 戒身하여 莫隨惡伴하며
(계심하여 막자탐진하고 계신하여 막수악반하며)마음을 경계하여 스스로 탐내고 성내지 말고, 몸을 경계하여 나쁜 짝을 따르지 말며
無益之言을 莫妄說하고 不干己事를 莫妄爲하며
(무익지언을 막망설하고 불간기사를 막망위하며)유익하지 않은 말은 함부로 하지 말고, 나에게 관련 없는 일은 함부로 하지 말라.
尊君王孝父母하고 敬尊長奉有德하고 別賢愚恕無識하며
(존군왕효부모하고 경존장봉유덕하고 별현우노무식하며)임금을 높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존장(尊長)을 존경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받들며,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분별하고 무식한 사람을 용서하라.
物順來而勿拒하고 物旣去而勿追하며
(물순래이물거하고 물기거이물추하며)일이 순리로 오거든 물리치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거든 뒤쫓지 말며,
身未遇而勿望하고 事已過而勿思하라
(신미우이물망하고 사이과이물사하라)몸이 아직 <때를> 만나지 않았거든 원망하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거든 생각하지 마라..

聰明도 多暗昧요 算計도 失便宜니라
(총명도 다암매요 산계도 실편의니라)총명한 사람도 어두운 때가 많고, 계산도 편의를 잃는 수가 있다.
損人終自失이요 依勢禍相隨라
(손인종자실이요 의세화상수라) 남을 손상하면 마침내 자기도 손실을 입을 것이요, 세력에 의존하면 재앙이 서로 따른다..

戒之在心하고 守之在氣라
(계지재심하고 수지재기라)경계할 것은 마음에 있고, 지킬 것은 기운에 있다.
爲不節而亡家하고 因不廉而失位니라
(위부절이망가하고 인불염이실위니라)절약하지 않음으로써 집을 망치고 청렴하지 않음 때문에 지위를 잃는다..

勸君自警於平生하노니 可歎可驚而可畏니라
(권군자경어평생하노니 가탄가경이가사이니라)그대에게 평생을 두고 스스로 경계할 것을 권고하노니, 탄식할 만하고 놀랄 만하고 두려워할 만하다.
上臨之以天鑑하고 下察之以地祇라
(상림지이천감하고 하찰지이지기라) 위에는 하늘의 거울이 그대를 굽어보고, 아래에는 땅의 신령이 그대를 살피고 있다.
明有王法相繼하고 暗有鬼神相隨라
(명유왕법상계하고 암유귀신상수라)밝은 곳에는 왕법(王法)이 서로 이어져 있고, 어두운 곳에는 귀신이 서로 따르고 있다.
惟正可守요 心不可欺니 戒之戒之하라
(유정가수요 심불가기니 계지계지하라)오직 바른 것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속여서는 안되니, 경계하고 경계하라.

安分篇(분수를 편안히 하는 글)

景行錄云 知足可樂이요 務貪則憂니라
(경행록 운 지족가락이요 무탐즉우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수 있을 것이요, 탐욕에 힘쓰면 근심하게 된다.".

知足者는 貧賤亦樂이요 不知足者는 富貴亦憂니라
(지족자는 빈천역락이요 부지족자는 부귀역우니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하여도 즐거울 것이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富)하고 귀(貴)하여도 역시 근심한다..

濫想은 徒傷神이요 妄動은 反致禍니라
(남상은 도상신이요 망동은 반치화니라)
지나친 생각은 오직 정신을 상할 뿐이요, 허망한 행동은 도리어 재앙을 부른다..

知足常足이면 終身不辱하고 知止常止면 終身無恥니라
(지족상족이면 종신불욕하고 지지상지면 종신무치니라)
만족할 줄 알아 늘 만족스러워 하면 종신토록 욕되지 아니하고, 그칠 줄을 알아 늘 그치면 종신토록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書曰 滿招損하고 謙受益이니라
(서왈 만초손하고 겸수익이니라)
≪서경(書經)≫에 말하였다. "가득 차면 덜림을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

安分吟曰 安分身無辱이요 知幾心自閑이니 雖居人世上이나 却是出人間이니라
(안분음 왈 안분신무욕이요 지기심자한이니 수거인세상이나 각시출인간이니라)
≪안분음(安分吟)≫에 말하였다. "분수에 편안하면 몸에 욕됨이 없을 것이요, 기미를 알면 마음이 저절로 한가할 것이다. 비록 인간 세상에 살더라도 도리어 인간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子曰 不在其位하여는 不謀其政이니라
(자 왈 부재기위하여는 불모기정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는 것이다.".

存心篇(존심편:마음을 보존하는 글)

景行錄云 坐密室을 如通衢하고 馭寸心을 如六馬면 可免過니라
(경행록 운 좌밀실을 여통구하고 어촌심을 여육마면 가면과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밀실(密室)에 앉았어도 마치 네거리에 앉은 것처럼 여기고, 작은 마음을 제어하기를 마치 여섯 필의 말을 부리듯 하면 허물을 면할 수 있다.".

擊壤詩云 富貴를 如將智力求인대 仲尼도 年少合封侯라 世人은 不解靑天意하고 空使身心半夜愁니라
(격양시 운 부귀를 여장지력구인댄 중니도 연소합봉후라 세인은 불해청천의하고 공사신심반야수니라)
≪격양시(擊壤詩)≫에 말하였다. "부귀를 만약 지혜와 힘으로 구할 수 있다면, 중니(仲尼 : 孔子)도 젊은 나이에 제후에 봉해졌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푸른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한밤중까지 근심하게 한다." .

范忠宣公이 戒子弟曰 人雖至愚나 責人則明하고 雖有聰明이나 恕己則昏이니 爾曹는 但常以責人之心으로 責己하고 恕己之心으로 恕人이면 則不患不到聖賢地位也니라
(범충선공이 계자제 왈 인수지우나 책인즉명하고 수유총명이나 서기즉 혼이니 이조는 단당이책인지심으로 책기하고 서기지심으로 서인이면 즉불환부도성현지위야니라)
범 충선공(范忠宣公)이 자제를 경계하여 말하였다. "사람이 비록 어리석을지라도 남을 꾸짖는 데엔 밝고, 비록 총명함이 있다 해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엔 어둡다. 너희들은 항상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 없다." .

子曰 聰明思睿라도 守之以愚하고 功被天下라도 守之以讓하고 勇力振世라도 守之以怯하고 富有四海라도 守之以謙이니라
(자 왈 총명사예라도 수지이우하고 공피천하라도 수지이양하고 용력진세라도 수지이겁하고 부유사해라도 수지이겸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총명하고 생각이 밝더라도 어리석음으로 <자기를> 지키고, 공이 천하를 덮을 만하더라도 겸양으로 지키고, 용맹이 세상에 떨칠지라도 겁냄으로써 지키고, 부유하기가 온 세상을 차지할 정도라도 겸손으로써 지켜야 하느니라.".

素書云 薄施厚望者는 不報하고 貴而忘賤者는 不久니라
(소서 운 박시후망자는 불보하고 귀이망천자는 불구니라)
≪소서(素書)≫에 말하였다. "박하게 베풀고 후하게 바라는 사람에게는 보답이 없고, 몸이 귀하게 되어 천했던 때를 잊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施恩이어든 勿求報하고 與人이어든 勿追悔하라
(시은이어든 물구보하고 여인이어든 물추회하라)
은혜를 베풀었다면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하지 말라..

孫思邈曰 膽欲大而心欲小하고 知欲圓而行欲方이니라
(손사막 왈 담욕대이심욕소하고 지욕원이행욕방이니라)
손사막(孫思邈)이 말하였다. "담력은 크고자 하되 마음가짐은 섬세하고자 하고, 지혜는 원만하고자 하되 행동은 방정하고자 하라.".

念念要如臨戰日하고 心心常似過橋時니라
(염염요여 임전일하고 심심상이사과교시니라)
생각마다 싸움터에 나아가는 것처럼 임해야 하고, 마음마다 늘 다리를 건널 때와 같이 해야 하느니라..

懼法朝朝樂이요 欺公日日憂니라
(구법조조락이요 기공일일우니라)
법을 두려워하면 아침마다 즐거울 것이요, 공적(公的)인 일을 속이면 날마다 근심한다..

朱文公曰 守口如甁하고 防意如城하라
(주문공왈 수구여병하고 방의여성하라)
주 문공(朱文公)이 말하였다. "입 지키기를 병과 같이 하고, 뜻 막기를 성을 지키는 것처럼 하라.".

心不負人이면 面無慙色이니라
(심불부인이면 면무참색이니라)
마음이 남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다..

人無百歲人이나 枉作千年計니라
(인무백세인이나 왕작천년계니라)
사람은 백 살을 사는 사람이 없건만 부질없이 천 년의 계획을 세운다..

寇萊公六悔銘云 官行私曲失時悔요 富不儉用貧時悔요 藝不少學過時悔요 見事不學用時悔요 醉後狂言醒時悔요 安不將息病時悔니라
(구래공육회명 운 관행사곡실시회요 부불검용인시회요 예불소학과시회요 견사불학용시회요 취후광언성시회요 안불장식병시회니라)
≪구래공 육회명(寇萊公六悔銘)≫에 말하였다. "관원은 사사롭고 굽은 일을 행하면 벼슬을 잃을 때 뉘우치게 되고, 부자는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뉘우치고, 재주는 어렸을 때 배우지 않으면 시기가 지났을 때 뉘우치고, 일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필요할 때 뉘우치고, 취한 뒤에 함부로 말하면 술이 깨었을 때 뉘우치고, 몸이 편안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들었을 때 뉘우칠 것이다.".

益智書云 寧無事而家貧이언정 莫有事而家富요 寧無事而住茅屋이언정 不有事而住金屋이요 寧無病而食추飯이언정 不有病而服良藥이니라
(익지서 운 영무사이가빈이언정 막유사이가부오 영무사이주모옥이언정 불유사이주금옥이오 영무병이식추반이언정 불유병이복양약이니라)
≪익지서(益智書)≫에 말하였다. "차라리 아무 사고 없이 집이 가난할지언정 사고 있으면서 집이 부유하지 말 것이요, 차라리 사고 없이 초가집에서 살지언정 사고 있으면서 좋은 집에 살지 말 것이요, 차라리 병이 없이 거친 밥을 먹을지언정 병이 있어 좋은 약을 먹지 말 것이다.".

心安茅屋穩이요 性定菜羹香이니라
(심안모옥온이요 성정채갱향이니라)
마음이 안정되면 초가집도 편안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景行錄云 責人者는 不全交요 自恕者는 不改過니라
(경행록운 책인자는 부전교요 자서자는 불개과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남을 꾸짖는 자는 사귐을 온전히 할 수 없고, 자기를 용서하는 사람은 허물을 고치지 못한다.".

夙興夜寐하여 所思忠孝者는 人不知나 天必知之요 飽食煖衣하여 怡然自衛者는 身雖安이나 其如子孫에 何오
(숙흥야매하여 소사충효자는 인부지나 천필지지요 포식난의하여 이연자위자는 신수안이나 기여자손에 하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충성과 효도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알아줄 것이요,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어 안락하게 제 몸만 보호하는 자는 몸은 비록 편안하겠지만 그 자손은 어떻게 할 것인가? .

以愛妻子之心으로 事親이면 則曲盡其孝요 以保富貴之心으로 奉君이면 則無往不忠이요 以責人之心으로 責己면 則寡過요 以恕己之心으로 恕人이면 則全交니라
(이애처자지심으로 사친이면 즉곡진기효요 이보부귀지심으로 봉군이면 즉무왕불충이요 이책인지심으로 책기면 즉과과요 이서기지심으로 서인이면 즉전교니라)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어버이를 섬긴다면 그 효도가 극진할 것이요, 부귀를 보전하려는 마음으로 임금을 받든다면 어느 곳에 간들 충성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사귐을 온전히 할 것이다..

爾謀不臧이면 悔之何及이며 爾見不長이면 敎之何益이리오 利心專則背道요 私意確則滅公이니라
(이모부장이면 회지하급이며 이견부장이면 교지하익이리오 이심전즉배도요 사의확즉멸공이니라)
너의 꾀가 좋지 못하면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으며, 너의 소견이 좋지 못하면 가르친들 무엇이 이로우리요?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도에 어그러지고, 사사로운 뜻이 굳으면 공(公)을 멸(滅)하게 된다..

生事事生이요 省(생)事事省이니라
(생사사생이요 생사사생이니라)
일을 만들면 일이 생기고, 일을 덜면 일이 줄어든다..

戒性篇(계성편:성품을 경계하는 글)

景行錄云 人性이 如水하여 水一傾則不可復이요 性一縱則不可反이니 制水者는 必以堤防하고 制性者는 必以禮法이니라
(경행록 운 인성이 여수하여 수일경즉불가복이요 성일종즉불가반이니 제수자는 필이제방하고 제성자는 필이예법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아서 물이 한 번 기울어지면 회복할 수 없고 성품이 한 번 방종해지면 바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니, 물을 제어하는 것은 반드시 제방(堤防)으로써 하고 성품을 제어하는 것은 반드시 예법으로써 하여야 한다.".

忍一時之忿이면 免百日之憂니라
(인일시지분이면 면백일지우니라 )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

得忍且忍이요 得戒且戒하라 不忍不戒면 小事成大니라
(득인차인이요 득계차계하라 불인불계면 소사성대니라)
참을 수 있으면 우선 참고, 경계할 수 있으면 우선 경계하라. 참지 않고 경계하지 않으면 작은 일이 크게 된다.

愚濁生嗔怒는 皆因理不通이라 休添心上火하고 只作耳邊風하라 長短은 家家有요 炎량은 處處同이라 是非無實相하여 究竟摠成空이니라
(우탁생진노는 개인이불통이라 휴첨심상화하고 지작이변풍하라 장단은 가가유요 염량은 처처동이라 시비무실상하여 구경총성공이니라)
어리석고 흐린(탁한) 자가 성을 내는 것은 다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 위에 화를 더하지 말고 다만 귓전을 스치는 바람결로 여겨라. 장점과 단점은 집집마다 있고 따뜻하고 싸늘한 것은 곳곳마다 같다. 시비(是非)란 본래 실상이 없어서 마침내는 모두가 다 헛것이 된다.

子張이 欲行에 辭於夫子할새 願賜一言爲修身之美하노이다 子曰 百行之本이 忍之爲上이니라 子張曰 何爲忍之닛고 子曰 天子忍之면 國無害하고 諸侯忍之면 成其大하고 官吏忍之면 進其位하고 兄弟忍之면 家富貴하고 夫妻忍之면 終其世하고 朋友忍之면 名不廢하고 自身忍之면 無禍害니라
(자장이 욕행에 사어부자할새 원사일언 위수신지미하노이다 자 왈 백행지본이 인지위상이니라 자장 왈 하위인지닛고 자 왈 천자인지면 국무해하고 제후인지면 성기대하고 관리인지면 진기위하고 형제인지면 가부귀하고 부처인지면 종기세하고 붕우인지면 명불폐하고 자신인지면 무화해니라)
자장(子張)이 떠나고자 함에 공자(孔子)에게 하직을 고하면서 <말하기를>, "한마디 말로 몸을 닦는데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자,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그 으뜸이 된다" 자장(子張)이 말하기를, "어찌 하여 참습니까?"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害)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나라를 이룩하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들이 참으면 집안이 부귀해지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마칠 수 있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없어지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다."

子張曰 不忍則如何닛고 子曰 天子不忍이면 國空虛하고 諸侯不忍이면 喪其軀하고 官吏不忍이면 刑法誅하고 兄弟不忍이면 各分居하고 夫妻不忍이면 令子孤하고 朋友不忍이면 情意疎하고 自身不忍이면 患不除니라 子張曰 善哉善哉라 難忍難忍이여 非人不忍이요 不忍非人이로다
(자장 왈 불인즉여하닛고 자 왈 천자불인이면 국공허하고 제후불인 이면 상기구하고 관리불인이면 형법주하고 형제불인이면 각분거하고 부처불인이면 영자고하고 붕우불인이면 정의소하고 자신불인이면 환부제니라 자장 왈 선재선재라 난인난인이여 비인불인이요 불인비인이로다)
자장이 "참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말하였다. "천자(天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공허하게 되고, 제후(諸侯)가 참지 않으면 그 몸을 잃고, 벼슬아치가 참지 않으면 형법에 의하여 죽게 되고, 형제가 참지 않으면 각각 헤어져서 따로 살게 되고,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을 외롭게 하고, 친구끼리 참지 않으면 정의(情意)가 소원해지고, 자신이 참지 않으면 근심이 덜어지지 않는다." 자장이 말하였다. "좋고도 좋으신 말씀이로다. 참는 것이 어렵군요 참는 것이 어렵군요. 사람이 아니면 참지 못할 것이요,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景行錄云 屈己者는 能處重하고 好勝者는 必遇敵이니라
(경행록운 굴기자는 능처중하고 호승자는 필우적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자기를 굽히는 자는 중요한 지위에 처할 수 있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난다."

惡人이 罵善人커든 善人은 摠不對하라 不對는 心淸閑이요 罵者는 口熱沸니라 正如人唾天하여 還從己身墜니라
(악인이 매선인커든 선인은 총부대하라 부대는 심청한이오 매자는 구열비니라 정여인타천하여 환종기신추니라)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을 꾸짖거든 착한 사람은 모두 대꾸하지 마라. 대꾸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맑고 한가롭고, 꾸짖는 자는 입에 불이 붙는 것처럼 뜨겁게 끓는다. 마치 사람이 하늘에 침을 뱉으면 도로 자기 몸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我若被人罵라도 佯聾不分說하라 譬如火燒空하여 不救自然滅이라 我心은 等虛空이어늘 摠爾飜脣舌이니라
(아약피인매라도 양롱불분설하라 비여화소공하여 불구자연멸이라 아심은 등허공이어늘 총이번순설이니라)
내가 만약 남에게 욕설을 듣더라도 거짓으로 귀먹은 체하여 시비를 가리려 하지 마라. 비유컨대 불이 허공에서 타다가 끄지 않아도 저절로 꺼지는 것과 같다. 내 마음은 허공과 같거늘 다 너의 입술과 혀만 나불거리는 것이다.

凡事에 留人情이면 後來에 好相見이니라
(범사에 유인정이면 후래에 호상견이니라)
모든 일에 인정(人情)을 남기면 뒷날 좋게 서로 보게 된다.

勤學篇(근학편:배움을 부지런히 하는 글)

子夏曰 博學而篤志하고 切問而近思면 仁在其中矣니라
(자하왈 박학이독지하고 절문이근사면 인재기중의니라)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널리 배워서 뜻을 두텁게 하고,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해 나가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

莊子曰 人之不學은 如登天而無術하고 學而智遠이면 如披祥雲而覩靑天하고 登高山而望四海니라
(장자 왈 인지불학은 여등천이무술하고 학이지원이면 여피상운이도 청천하고 등고산이망사해니라)
장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하늘에 오르려는데 재주가 없는 것과 같고,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상서(祥瑞)로운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며 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禮記曰 玉不琢이면 不成器하고 人不學이면 不知道니라
(예기 왈 옥불탁이면 불성기하고 인불학이면 부지도니라)
≪예기(禮記)≫에 말하였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의(道義)를 알지 못한다."

太公曰 人生不學이면 冥冥如夜行이니라
(태공 왈 인생불학이면 여명명야행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움이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라."

韓文公曰 人不通古今이면 馬牛而襟니라
(한문공 왈 인불통고금이면 마우이금거니라)
한문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고금의 일을 통달하지 못하면 마소에 옷을 입힌 것과 같다."

朱文公曰 家若貧이라도 不可因貧而廢學이요 家若富라도 不可恃富而怠學이니 貧若勤學이면 可以立身이요 富若勤學이면 名乃光榮이니라 惟見學者顯達이요 不見學者無成이니라 學者는 乃身之寶요 學者는 乃世之珍이니라 是故로 學則乃爲君子요 不學則爲小人이니 後之學者는 宜各勉之니라
(주문공 왈 가약빈이라도 불가인빈이폐학이요 가약부라도 불가시부이 태학이니 빈약근학이면 가이입신이요 부약근학이면 명내광영이니라 유견학자현달이요 불견학자무성이니라 학자는 내신지보요 학자는 내세지진이니라 시고로 학즉내위군자요 불학즉위소인이니 후지학자는 의각면지니라)
주 문공이 말하였다. "집이 만약 가난하더라도 가난 때문에 배우는 것을 버리지 말 것이요, 집이 만약 부유하더라도 부유한 것을 믿고 학문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가난한 자가 만약 부지런히 배운다면 입신(立身)할 수 있을 것이요, 부유한 자가 만약 부지런히 배운다면 이름이 더욱 빛날 것이니라. 오직 배운 자가 훌륭해지는 것을 보았으며, 배운 사람으로써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배움이란 것은 곧 몸의 보배요, 배운 사람은 곧 세상의 보배이다. 이 때문에 배우면 군자(君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小人)이 될 것이니, 후에 배우는 자는 마땅히 각기 힘써야 한다."

徽宗皇帝曰 學者는 如禾如稻하고 不學者는 如蒿如草로다 如禾如稻兮여 國之精糧이요 世之大寶로다 如蒿如草兮여 耕者憎嫌하고 鋤者煩惱니라 他日面墻에 悔之已老로다
(휘종황제 왈 학자는 여화여도하고 불학자는 여호여초로다 여화여도혜여 국지정량이요 세지대보로다. 여호여초혜여 경자증혐하고 서자번뇌니라 타일면장에 회지이노로다)
휘종황제(徽宗皇帝)가 말하였다. "배운 사람은 낟알 같고 벼 같지만, 배우지 않은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도다. 아아, 낟알 같고 벼 같음이여!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온 세상의 보배로다. 쑥 같거나 풀 같음이여 밭을 가는 자가 미워하고 밭을 매는 자가 걱정스러워 한다. 다른 날 담장에 얼굴을 대한 듯 할 적에 <배우지 않은 것을> 뉘우친들 이미 늙었도다."

論語曰 學如不及이요 猶恐失之니라
(논어 왈 학여불급이요 유공실지니라)
≪논어(論語)≫에 말하였다. "배우기를 미치지 못할 것처럼 하고 <때를> 잃을까 두려워할지니라."

朱子曰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하며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하라 日月逝矣라 歲不我延이니 嗚呼老矣라 是誰之愆고
(주자 왈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하며 물위금년불학이내년하라 일월서의라 세불아연이니 오호노의라 시수지건고)
주자가 말하였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해와 달은 가니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가?"

少年易老學難成하니 一寸光陰不可輕이라 未覺池塘春草夢하여 階前梧葉已秋聲이라
(소년이로학난성하니 일촌광음불가경이라 미각지당춘초몽하여 계전오엽이추성이라)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길 수 없어라. 못가의 봄 풀은 꿈에서 아직 깨지 못했는데,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누나.

陶淵明詩云 盛年은 不重來하고 一日은 難再晨이니 及時當勉勵하라 歲月은 不待人이니라
(도연명시운 성년은 부중래하고 일일은 난재신이니 급시당면려하라 세월은 부대인이니라)
도연명의 시에 말하였다.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는 새벽이 두 번 있기 어려우니, 때에 이르러 마땅히 학문에 힘써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荀子曰 不積<足圭>(반거름규)步면 無以至千里요 不積小流면 無以成江河니라
(순자 왈 부적<규>보면 무이지천리요 부적소류면 무이성강하니라)
순자가 말하였다.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요, 작은 물이 모이지 않으면 강하(江河)를 이룩하지 못한다."

訓子篇(훈자편:아들을 가르치는 글)

景行錄云 賓客不來면 門戶俗하고 詩書無敎면 子孫愚니라
(경행록 운 빈객불래면 문호속하고 시서무교면 자손우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집안이 비속(卑俗)해지고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어진다."

莊子曰 事雖小나 不作이면 不成이요 子雖賢이나 不敎면 不明이니라
(장자 왈 사수소나 부작이면 불성이요 자수현이나 불교면 불명이니라)
장자가 말하였다. "일이 비록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자식이 비록 어질지라도 가르치지 않으면 현명하지 못하다."

漢書云 黃金滿영이 不如敎子一經이요 賜子千金이 不如敎子一藝니라
(한서 운 황금만영이 불여교자일경이요 사자천금이 불여교자일예니라)
≪한서(漢書)≫에 말하였다. "황금이 상자에 가득함이 자식에게 경서(經書) 하나를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기술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至樂은 莫如讀書요 至要는 莫如敎子니라
(지락은 막여독서요 지요는 막여교자니라)
지극한 즐거움은 글을 읽는 것만한 것이 없고, 지극히 요긴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만한 것이 없다.

呂滎公曰 內無賢父兄하고 外無嚴師友요 而能有成者 鮮矣니라
(여형공 왈 내무현부형하고 내무엄사우요 이능유성자 선의니라)
여 형공(呂滎公)이 말하였다. "안으로는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벗이 없으면 성공하는 자가 드물다."

太公曰 男子失敎면 長必頑愚하고 女子失敎면 長必추疎니라
(태공 왈 남자실교면 장필완우하고 여자실교면 장필추소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남자아이가 교육의 기회를 놓치면 자라서 반드시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여자아이가 교육의 기회를 놓치면 자라서 반드시 거칠고 솜씨가 없게 된다."

男年長大어든 莫習樂酒하고 女年長大어든 莫令遊走하라
(남년장대어든 막습낙주하고 여년장대어든 막령유주하라)
남자가 자라나거든 풍악이나 술을 익히지 말도록 하고, 여자가 자라나거든 놀러 다니지 말도록 하라.

嚴父는 出孝子요 嚴母는 出孝女니라
(엄부는 출효자요 엄모는 출효녀니라)
엄한 아버지는 효자를 길러내고, 엄한 어머니는 효녀를 길러낸다.

憐兒어든 多與棒하고 憎兒어든 多與食하라
(연아어든 다여봉하고 증아어든 다여식하라)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치고, 아이를 미워하거든 먹을 것을 많이 주라.

人皆愛珠玉이나 我愛子孫賢이니라
(인개애주옥이나 아애자손현이니라)
남들은 모두 주옥(珠玉)을 사랑하지만, 나는 자손이 어진 것을 사랑할지니라.

省心篇 上(성심편상:마음을 살피는 글)

景行錄云 寶貨는 用之有盡이요 忠孝는 享之無窮이니라
(경행록운 보화는 용지유진이요 충효는 향지무궁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보화는 쓰면 다함이 있고 충성과 효성은 누려도 다함이 없다."

家和貧也好어니와 不義(誼)富如何오 但存一子孝니 何用子孫多리오
(가화빈야호어니와 불의부여하오 단존일자효니 하용자손다리오)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거니와 정의(情誼)가 좋지 않다면 부유한들 무엇하랴. 다만 한 자식이라도 효도하는 자를 둘 것이니 자손이 많은들 어디에 쓰리오?"

父不憂心因子孝요 夫無煩惱是妻賢이라 言多語失皆因酒요 義斷親疎只爲錢이니라
(부불우심인자효요 부무번뇌시처현이라 언다어실개인주요 의단친소지 위전이니라)
아버지가 마음에 근심하지 않음은 자식이 효도하기 때문이요, 남편이 번뇌가 없음은 아내가 어질기 때문이다. 말이 많아지고 말을 실수함은 술 때문이요, 의리가 끊어지고 친한 사람이 소원해짐은 단지 돈 때문이다.

旣取非常樂이어든 須防不測憂니라
(기취비상락이어든 수방불측우니라)
이미 비상(非常)한 즐거움을 취했거든 모름지기 헤아리지 못하는 근심을 방비해야 한다.

得寵思辱하고 居安慮危니라
(득총사욕하고 거안여위니라)
영예(榮譽)를 얻거든 욕됨을 생각하고, 편안함에 거처하거든 위태함을 생각할 것이니라

榮輕辱淺하고 利重害深이니라
(영경욕천하고 이중해심이니라)
영화가 가벼우면 욕됨이 얕고, 이(利)가 무거우면 해(害)도 깊다.

甚愛必甚費요 甚譽必甚毁요 甚喜必甚憂요 甚藏必甚亡이라
(심애필심비요 심예필심훼요 심희필심우요 심장필심망이라)
심히 아끼면 반드시 심하게 허비할 것이요, 심히 칭찬 받으면 반드시 심한 헐뜯음을 받게 된다. 기뻐함이 심하면 반드시 심히 근심하고, <보화(寶貨)를> 심히 보관하면 반드시 심히 잃는다.

子曰 不觀高崖면 何以知顚墜之患이며 不臨深泉이면 何以知沒溺之患이며 不觀巨海면 何以知風波之患이리오
(자 왈 불관고애면 하이지전추지환이며 불임심연이면 하이지몰닉지환 이며 불관거해면 하이지풍파지환이리오)
공자가 말하였다. "높은 낭떠러지를 보지 않으면 어찌 엎어져 떨어지는 환란을 알 것이며, 깊은 샘에 임하지 않으면 어찌 몸이 빠져 죽는 환란을 알 것이며, 큰 바다를 보지 않으면 어찌 풍파의 환란을 알겠는가?"

欲知未來인대 先察已然이니라
(욕지미래인대 선찰이연이니라)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지나간 일을 살필지니라.

子曰 明鏡은 所以察形이요 往古는 所以知今이니라
(자왈 명경은 소이찰형이요 왕고는 소이지금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밝은 거울은 얼굴을 살피는 수단이요, 지나간 일은 오늘을 아는 방법이다."

過去事는 明如鏡이요 未來事는 暗似漆이니라
(과거사는 명여경이요 미래사는 암사칠이니라)
지나간 일은 밝기가 거울과 같고 미래의 일은 어둡기가 칠흑과 같다.

景行錄云 明朝之事를 薄暮에 不可必이요 薄暮之事를 포時에 不可必이니라
(경행록 운 명조지사를 박모에 불가필이요 박모지사를 포시에 불가필 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내일 아침의 일을 저녁때에 기필하지 못하고, 저녁때의 일을 포시( 時: 오후 네 시)에 기필하지 못한다"

天有不測風雨하고 人有朝夕禍福이니라
(천유불측풍우하고 인유조석화복이니라)
하늘에는 예측 못하는 비바람이 있고,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화복이 있다.

未歸三尺土하여는 難保百年身이요 已歸三尺土하여는 難保百年墳이니라
(미귀삼척토하여는 난보백년신이요 이귀삼척토하여는 난보백년분이니라)
석 자 되는 흙 속(무덤)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서는 백년의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이미 석 자 되는 흙 속으로 돌아가선 백년 동안 무덤을 보전하기 어렵다.

景行錄云 木有所養이면 則根本固而枝葉茂하여 棟樑之材成하고 水有所養이면 則泉源壯而流派長하여 灌漑之利博하고 人有所養이면 則志氣大而識見明하여 忠義之士出이니 可不養哉아
(경행록 운 목유소양이면 즉근본고이지엽무하여 동량지재성하고 인유소양이면 즉천원장이유파장하여 관개지리박하고 인유소양이면 즉지기대이식견명하여 충의지사출이니 가불양재아)
≪경행록≫에 말하였다. "나무가 기르는 바가 있으면 뿌리가 견고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져 동량(棟樑)의 재목을 이루고, 물이 기르는 바가 있으면 샘의 근원이 세차고 물줄기가 길어서 관개(灌漑)의 이익이 넓고, 사람이 기르는 바가 있으면 지기(志氣)가 커지고 식견이 밝아져 충의(忠義)의 선비가 나오니, 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自信者는 人亦信之하여 吳越이 皆兄弟요 自疑者는 人亦疑之하여 身外에 皆敵國이니라
(자신자는 인역신지하여 오월이 개형제요 자의자는 인역의지하여 신외에 개적국이니라)
스스로 믿는 자는 남도 또한 자기를 믿어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와 같은 적국 사이라도 형제와 같이 될 수 있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자는 남도 또한 자기를 의심하여 자기 외에는 모두 적국(敵國)이 된다.

疑人莫用하고 用人勿疑니라
(의인막용하고 용인물의니라)
사람을 의심하거든 쓰지 말고, 사람을 쓰거든 의심하지 마라.

諷諫云 水底魚天邊雁은 高可射兮低可釣어니와 惟有人心咫尺間에 咫尺人心不可料니라
(풍간 운 수저어천변안은 고가사혜저가조어니와 유유인심지척간에 지척인심불가료니라)
≪풍간≫에 말하였다. "물 바닥의 고기와 하늘가의 기러기는 높이 <하늘에> 뜬 것은 쏘아 잡고, 낮게 물 속에 있는 것은 낚아 잡을 수 있거니와, 오직 사람의 마음은 지척간에 있음에도 이 지척간에 있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畵虎畵皮難畵骨이요 知人知面不知心이니라
(화호화피난화골이요 지인지면부지심이니라)
범을 그리되 껍데기는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알지 못한다.

對面共話하되 心隔千山이니라
(대면공화하되 심격천산이니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이야기는 하지만, 마음은 천산을 격해 있다.

海枯終見底나 人死不知心이니라
(해고종견저나 인사부지심이니라)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바닥을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太公曰 凡人은 不可逆相이요 海水는 不可斗量이니라
(태공 왈 범인은 불가역상이요 해수는 불가두량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무릇 사람은 앞질러 점칠 수 없고, 바닷물은 말[斗]로 헤아릴 수 없다."

景行錄云 結怨於人을 謂之種禍요 捨善不爲를 謂之自賊이라
(경행록 운 결원어인을 위지종화요 사선불위를 위지자적이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남과 원수를 맺는 것은 재앙의 씨를 심는 것이라 하고, 선한 것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라 한다."

若聽一面說이면 便見相離別이니라
(약청일면설이면 변견상이별이니라)
만약 한 편의 말만 들으면 곧 서로 이별함을 보게 된다.

飽煖에 思淫慾하고 飢寒에 發盜心이니라
(포난에 사음욕하고 기한에 발도심이니라)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욕을 생각하고, 굶주리고 추우면 도심(盜心)을 발(發)한다.

疏廣曰 賢而多財則損其志하고 愚而多財則益其過니라
(소광 왈 현인다재즉손기지하고 우인다재즉익기과니라)
소광(疏廣)이 말하였다. "어진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허물을 더한다."

人貧智短하고 福至心靈이니라
(인빈지단하고 복지심령이니라)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지고, 복이 이르면 마음이 영통(靈通)해진다.

不經一事면 不長一智니라
(불경일사면 부장일지니라)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是非終日有라도 不聽自然無니라
(시비종일유라도 불청자연무니라)
시비 거리가 종일토록 있을지라도,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진다.

來說是非者는 便是是非人이니라
(내설시비자는 변시시비인이니라)
와서 시비를 말하는 자는, <이 사람이야말로> 곧 시비하는 사람이니라.

擊壤詩云 平生에 不作皺眉事하면 世上에 應無切齒人이라 大名을 豈有鐫頑石가 路上行人이 口勝碑니라
(격양시 운 평생에 부작추미사하면 세상에 응무절치인이라 대명을 기유전완석가 노상행인이 구승비니라)
≪격양시≫에 말하였다. "평소에 눈썹 찡그릴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이를 갈 원수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크게 난 이름을 어찌 딱딱한(뜻 없는) 돌에 새길 것인가. 길가는 사람의 입이 비석보다 낫다."

有麝自然香이니 何必當風立고
(유사자연향이니 하필당풍립고)
사향이 있으면 자연히 향기로울 것이니, 어찌 반드시 바람을 향하여 서겠는가?

有福莫享盡하라 福盡身貧窮이요 有勢莫使盡하라 勢盡寃相逢이니라 福兮常自惜하고 勢兮常自恭하라 人生驕與侈는 有始多無終이니라
(유복막향진하라 복진신빈궁이요 유세막사진하라 세진원상봉이니라 복혜상자석하고 세혜상자공하라 인생교여치는 유시다무종이니라)
복이 있어도 다 누리지 마라. 복이 다하면 몸이 빈궁해질 것이요, 권세가 있어도 다 부리지 마라. 권세가 다하면 원수와 서로 만난다. 복이 있거든 항상 스스로 아끼고, 권세가 있거든 항상 스스로 공손하라. 인생에 교만과 사치는 시작은 있으나 대부분 끝이 없다.

王參政四留銘曰 留有餘不盡之巧하여 以還造物하고 留有餘不盡之祿하여 以還朝廷하고 留有餘不盡之財하여 以還百姓하고 留有餘不盡之福하여 以還子孫이니라
(왕삼정사유명 왈 유유여부진지교하여 이환조물하고 유유여부진지록하여 이환조정하고 유유여부진지재하여 이환백성하고 유유여부진지복하여 이환자손이니라)
≪왕참정 사류명(王參政四留銘)≫에 말하였다. "남음이 있고 다 쓰지 않은 재주를 남겼다가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남음이 있고 다 쓰지 않은 봉록(俸祿)을 남겼다가 조정에 돌려주고, 남음이 있고 다 쓰지 않은 재물을 남겼다가 백성에게 돌려주며, 남음이 있고 다 쓰지 않은 복을 남겼다가 자손에게 돌려주라."

黃金千兩이 未爲貴요 得人一語가 勝千金이니라
(황금천냥이 미위귀요 득인일어가 승천금이니라)
황금 천 냥이 귀한 것이 아니요, 사람의 좋은 말 한마디를 듣는 것이 천금보다 낫다.

巧者는 拙之奴요 苦者는 樂之母니라
(교자는 졸지노요 고자는 낙지모니라)
재주 있는 사람은 재주 없는 사람의 노예요, 괴로움은 즐거움의 어머니이다.

小船은 難堪重載요 深逕은 不宜獨行이니라
(소선은 난감중재요 심경은 불의독행이니라)
작은 배는 무거운 짐을 견디기 어렵고, 깊숙한(으슥한) 길은 혼자 다니기에 마땅치 못하다.

黃金이 未是貴요 安樂이 値錢多니라
(황금이 미시귀요 안락이 치전다니라)
황금이 귀한 것이 아니요, 안락이 돈보다 값어치가 많다.

在家에 不會邀賓客이면 出外에 方知少主人이니라
(재가에 불회요빈객이면 출외에 방지소주인이니라)
집에 있을 때 손님을 맞아 대접할 줄 모르면, 밖에 나가서야 바야흐로 주인이 적은 줄을 안다.

貧居鬧市無相識이요 富住深山有遠親이니라
(빈거요시무상식이요 부주심산유원친이니라)
가난하면 번화한 시장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고, 부유하면 깊은 산 중에 살아도 먼 곳에서 오는 친구가 있다.

人義는 盡從貧處斷이요 世情은 便向有錢家니라
(인의는 진종빈처단이요 세정은 변향유전가니라)
사람의 의리는 다 가난한 데로부터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곧 돈 있는 집으로 향한다.

寧塞無底缸이언정 難塞鼻下橫이니라
(영색무저항이언정 난색비하횡이니라)
차라리 밑 빠진 항아리는 막을지언정, 코 아래 가로놓인 것(입)은 막기 어렵다.

人情은 皆爲窘中疎니라
(인정은 개위군중소니라)
사람의 정분(情分)은 다 군색한 가운데서 소원하게 된다.

史記曰 郊天禮廟는 非酒不享이요 君臣朋友는 非酒不義요 鬪爭相和는 非酒不勸이라 故로 酒有成敗而不可泛飮之니라
(사기 왈 교천예묘는 비주불향이요 군신붕우는 비주불의요 투쟁상화는 비주불근이라 고로 주유성패이불가범음지니라)
≪사기(史記)≫에 말하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제례 올림에도 술이 아니면 제물(祭物)을 올리지 못할 것이요, 임금과 신하 그리고 벗과 벗 사이에도 술이 아니면 의리가 두터워지지 않을 것이요, 싸움을 하고 서로 화해함에도 술이 아니면 권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술에 성공과 실패가 있으니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된다."

子曰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는 未足與議也니라
(자 왈 사지어도이치악의악식자는 미족여의야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면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자와는 서로 더불어 <도를> 의논할 수 없다."

荀子曰 士有妬友則賢交不親하고 君有妬臣則賢人不至니라
(순자 왈 사유투우즉현교불친하고 군유투신즉현인부지니라)
순자가 말하였다. "선비에게 질투하는 벗이 있으면 어진 이가 가까이 하지 않고, 임금에게 질투하는 신하가 있으면 어진 사람이 오지 않는다."

天不生無祿之人하고 地不長無名之草니라
(천하생무녹지인하고 지부장무명지초니라)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大富는 由天하고 小富는 由勤이니라
(대부는 유천하고 소부는 유근이니라)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려 있고, 작은 부자는 근면에 달려 있다.

成家之兒는 惜糞如金하고 敗家之兒는 用金如糞이니라
(성가지아는 석분여금하고 패가지아는 용금여분이니라)
집을 이룰 아이는 똥(거름)을 아끼기를 금같이 하고, 집을 망칠 아이는 돈 쓰기를 똥과 같이 한다.

康節邵先生曰 閑居에 愼勿說無妨하라 재說無妨便有妨이니라 爽口物多能作疾이요 快心事過必有殃이라 與其病後能服藥으론 不若病前能自防이니라
(강절소선생 왈 한거에 신물설무방하라 재설무방변유방이니라 상구물다능작질이요 쾌심사과필유앙이라 여기병후능복약으론 불약병전능자방이니라)
강절(康節) 소 선생(邵先生)이 말하였다. "한가롭게 살 때 삼가 해로울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겨우 해로움이 없다고 말하자마자 문득 해로움이 생기리라. 입에 상쾌한 물건이 많으면 병을 일으킬 수 있고, 마음에 상쾌한 일도 지나치면 반드시 재앙이 있으리라. 병이 난 후에 약을 먹기보다는 병나기 전에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 낫다."

梓潼帝君垂訓曰 妙藥이 難醫寃債病이요 橫財는 不富命窮人이라 生事事生을 君莫怨하고 害人人害를 汝休嗔하라 天地自然皆有報하니 遠在兒孫近在身이니라
(재동제군수훈 왈 묘약이 난의원채병이요 횡재는 불부명궁인이라 생사사생을 군막원하고 해인인해를 여휴진하라 천리자연개유보하니 원재아손근재신이니라)
≪재동제군수훈≫에 말하였다. "신묘한 약이라도 원한에 사무친 병은 치료하기 어렵고, 뜻밖에 생긴 재물은 운명(운수)이 궁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지 못한다. 일을 내면 일이 생기는 것을 그대는 원망하지 말고, 남을 해치면 남이 해치는 것을 너는 꾸짖지 말라. 천지는 자연스레 모두 보답함이 있나니 <그 보답이> 멀게는 자손에게 있고 가까우면 자기 몸에 있다."

花落花開開又落하고 錦衣布衣更(경)換着이라 豪家도 未必常富貴요 貧家도 未必長寂寞이라 扶人에 未必上靑소요 推人에 未必塡溝壑이라 勸君凡事를 莫怨天하라 天意於人에 無厚薄이니라
(화락화개개우락하고 금의포의갱환착이라 호가도 미필상부귀요 빈가도 미필장적막이라 부인에 미필상청소요 추인에 미필전구학이라 권군범사를 막원천하라 천의어인에 무후박이니라)
꽃이 졌다 꽃이 피고 피었다 또 지며, 비단 옷도 다시 베옷으로 바꿔 입는다. 호화로운 집이라고 해서 반드시 언제나 부귀한 것도 아니요, 가난한 집이라 해서 반드시 오래 적적하고 쓸쓸하진 않다. 사람이 부축하여도 반드시 하늘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요, 사람을 밀어도 반드시 깊은 구렁에 떨어지진 않는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모든 일에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하늘의 뜻은 사람에게 후하거나 박함이 없다.

堪歎人心毒似蛇라 誰知天眼轉如車요 去年妄取東隣物터니 今日還歸北舍家라 無義錢財는 湯潑雪이요 당來田地는 水推沙니라 若將狡譎爲生計면 恰似朝開暮落花니라
(감탄인심독사사라 수지천안전여차요 거년망취동인물터니 금일환귀북사가라 무의전재는 탕발설이요 당래전지는수퇴사니라 약장교휼위생계면 흡사조운모락화니라)
사람의 마음이 독하기가 뱀 같음을 한탄할 만하다. 누가 하늘의 눈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알겠는가? 지난해에 망령되이 동쪽 이웃의 물건을 취했더니 오늘은 다시 북쪽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의리가 없는(정의에 어긋난) 돈과 재물은 끓는 물에 눈을 뿌리는 것과 같이 없어질 것이요, 뜻밖에 오는 전지(田地)는 물이 모래를 미는 것과 같다. 만약 교활함과 속임수를 가지고 생계를 삼는다면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과 흡사하다.

無藥可醫卿相壽요 有錢難買子孫賢이니라
(무약가의경상수요 유전난매자손현이니라)
약으로도 재상의 목숨을 고칠 수 없고, 돈으로도 자손의 어짊을 사기 어렵다.

一日淸閑이면 一日仙이니라
(일일청한이면 일일선이니라)
하루 동안 마음이 깨끗하고 한가로우면 하루 동안의 신선이다.

省心篇 下(성심편하:마음을 살피는 글)

眞宗皇帝御製曰 知危識險이면 終無羅網之門이요 擧善薦賢이면 自有安身之路라 施仁布德은 乃世代之榮昌이요 懷妬報寃은 與子孫之危患이라 損人利己면 終無顯達雲仍이요 害衆成家면 豈有長久富貴리요 改名異體는 皆因巧語而生이요 禍起傷身은 皆是不仁之召니라
(진종황제어제 왈 지위식험이면 종무나망지문이요 거선천현이면 자유안신지로라 시인포덕은 내세대지영창이요 회투보원은 여자손지위환이라 손인이기면 종무현달운잉이요 해중성가면 기유장구부귀리요 개명이체는 개인교어이생이요 화기상신은 개시불인지소니라)
≪진종황제어제(眞宗皇帝御製)≫에 말하였다. "위태로움을 알고 험한 것을 알면 마침내 그물에 걸리는 일이 없을 것이요, 선한 사람을 들어 쓰고 어진 사람을 천거하면 몸을 편안히 하는 길이 저절로 있다. 인(仁)을 베풀고 덕(德)을 폄은 곧 대대로 영화롭고 창성할 것이요, 시기하는 마음을 품고 원한에 보복함은 자손에게 위태로움과 재앙을 끼쳐주는 것이다. 남을 해쳐 자기를 이롭게 하면 마침내 현달하는 자손[운잉(雲仍)]이 없을 것이고, 뭇 사람을 해롭게 해서 집안을〈크게〉 이룬다면 어찌 장구한 부귀가 있겠는가? <죄를 지어> 이름을 고치고 <목이 베이어 죽는 형벌에 처해져 머리와> 몸이 따로 놓임은 모두 교묘한 말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재앙이 일어나고 몸이 상하게 됨은 다 어질지 못함이 부르는 것이다."

神宗皇帝御製曰 遠非道之財하고 戒過度之酒하며 居必擇隣하고 交必擇友하며 嫉妬를 勿起於心하고 讒言을 勿宣於口하며 骨肉貧者를 莫疎하고 他人富者를 莫厚하며 克己는 以勤儉爲先하고 愛衆은 以謙和爲首하며 常思已往之非하고 每念未來之咎하라 若依朕之斯言이면 治國家而可久니라
(신종황제어제 왈 원비도지재하고 계과도지주하며 거필택린하고 교필택우하며 질투를 물기심하고 참언을 물선어구하며 골육빈자를 막소하고 타인부자를 막후하며 극기는 이근검위선하고 애중은 이겸화위수하며 상사이왕지비하고 매념미래지구하라 약의짐지사언이면 치국가이가구니라)
≪신종황제어제(神宗皇帝御製)≫에 말하였다. "도리(道理)가 아닌 재물은 멀리하고 도(度)에 지나치는 술을 경계하며, 거처함에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사귈 때는 벗을 가리며, 질투를 마음에 일으키지 말고, 남을 헐뜯는 말을 입에서 내지 말며, 동기간(同氣間)에 가난한 자를 멀리하지 말고, 타인 가운데 부유한 자를 후하게 대하지 말고,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는 일은 근검(勤儉)을 첫째로 삼고, 대중을 사랑함은 겸손과 화목을 첫째로 삼을 것이며, 언제나 지나간 나의 잘못을 생각하고, 매양 미래의 허물을 생각하라. 만약 나의 이 말에 의거한다면 나라와 집안을 다스림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高宗皇帝御製曰 一星之火도 能燒萬頃之薪하고 半句非言도 誤損平生之德이라 身被一縷나 常思織女之勞하고 日食三飡이나 每念農夫之苦하라 苟貪妬損이면 終無十載安康이요 積善存仁이면 必有榮華後裔니라 福緣善慶은 多因積行而生이요 入聖超凡은 盡是眞實而得이니라
(고종황제어제 왈 일성지화도 능소만경지신하고 반구비언도 오손평생 지덕이라 신피일루나 상사직녀지로하고 일식삼손이나 매념농부지고하라 구탐투손이면 종무십재안강이요 적선존인이면 필유영화후예니라 복연선경은 다인적행이생이요 입성초범은 진시진실이득이니라)
≪고종황제어제(高宗皇帝御製)≫에 말하였다. "한 점 작은 불티도 능히 만경(萬頃)의 섶을 태우고, 한 마디 그릇된 말도 평생의 덕을 그르치고 훼손한다. 몸에 한 오라기의 실을 걸쳐도 항상 베 짜는 여자의 수고를 생각하고, 하루 세 끼니의 밥을 먹어도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라. 구차하게 탐내고 시기해서 남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마침내 10년의 편안함도 없을 것이요, 선(善)을 쌓고 인(仁)을 보존하면 반드시 후손들에게 영화가 있으리라. 복(福)은 대부분 선행(善行)을 쌓는 것을 통해서 생기고,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가고 평범을 초월하는 것은 다 진실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王良曰 欲知其君인대 先視其臣하고 欲識其人인대 先視其友하고 欲知其父인대 先視其子하라 君聖臣忠하고 父慈子孝니라
(왕량 왈 욕지기군인대 선시기신하고 욕식기인인대 선시기우하고 욕지기부인대 선시기자하라 군성신충하고 부자자효니라)
왕량(王良)이 말하였다. "그 임금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신하를 살펴보고, 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벗을 살펴보고, 그 아비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자식을 살펴보라. 임금이 성스러우면 그 신하가 충성스럽고, 아비가 인자하면 자식이 효도한다."

家語云 水至淸則無魚하고 人至察則無徒니라
(가어 운 수지청즉무어하고 인지찰즉무도니라)
≪가어(家語)≫에 말하였다.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친구가 없다."

許敬宗曰 春雨如膏나 行人은 惡(오)其泥녕하고 秋月揚輝나 盜者는 憎其照鑑이니라
(허경종 왈 춘우여고나 행인은 오기니녕하고 추월양휘나 도자는 증기조감이니라)
허경종(許敬宗)이 말하였다. "봄비는 기름과 같으나 길가는 사람은 그 진창(흙탕물)을 싫어하고, 가을달이 밝게 비치나 도둑은 그 밝게 비추는 것을 싫어한다."

景行錄云 大丈夫見善明故로 重名節於泰山하고 用心精故로 輕死生於鴻毛니라
(경행록 운 대장부견선명고로 중명절어태산하고 용심정고로 경사생어홍모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대장부는 선(善)을 보는 것이 밝은 까닭에 명분과 절의를 태산보다 중히 여기고, 마음 쓰는 것이 깨끗한 까닭에 죽고 사는 것을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여긴다."

悶人之凶하고 樂人之善하며 濟人之急하고 求人之危니라
(민인지흉하고 낙인지선하며 제인지급하고 구인지위니라)
남의 흉한 것을 민망히 여기고, 남의 선한 것을 즐거워하며, 남의 급한 것을 건지고, 남의 위태로움을 구제하라.

經目之事도 恐未皆眞이어늘 背後之言을 豈足深信이리오
(경목지사도 공미개진이어늘 배후지언을 기족심신이리오)
눈으로 경험한 일도 모두 다 참되지는 아니할까 두렵거늘, 등뒤의 말을 어찌 족히 깊이 믿을 수 있으리요?

不恨自家汲繩短하고 只恨他家苦井深이로다
(불한자가급승단하고 지한타가고정심이로다)
자기 집 두레박 끈이 짧은 것은 탓하지 않고, 단지 남의 집 우물 깊은 것만 탓한다.

贓濫이 滿天下하되 罪拘薄福人이니라
(장람이 만천하하되 죄구박복인이니라)
부정한 재물을 취하는 사람이 천하에 가득하되, 죄는 복이 적은 사람에게 걸린다.

天若改常이면 不風則雨요 人若改常이면 不病則死니라
(천약개상이면 불풍즉우요 인약개상이면 불병즉사니라)
하늘이 만약 상도(常道)를 바꾸면 바람 불지 않으면 비가 오고, 사람이 만약 상도를 바꾸면 병이 나지 않으면 죽는다.

壯元詩云 國正天心順이요 官淸民自安이라 妻賢夫禍少요 子孝父心寬이니라
(장원시 운 국정천심순이요 관청민자안이라 처현부화소요 자효부심관 이니라)
≪장원시(壯元詩)≫에 말하였다. "나라가 바르면 천심(天心)도 순하고, 벼슬아치가 청렴하면 온 백성이 저절로 편안하다. 아내가 어질면 남편의 화가 적을 것이요, 자식이 효도하면 아버지의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子曰 木從繩則直하고 人受諫則聖이니라
(자 왈 목종승즉직하고 인수간즉성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나무가 먹줄을 좇으면 곧아지고, 사람이 간(諫)함을 받아들이면 거룩하게 된다."

一派靑山景色幽러니 前人田土後人收라 後人收得莫歡喜하라 更有收人在後頭니라
(일파청산경색유러니 전인전토후인수라 후인수득막환희하라 갱유수인재후두니라)
한 줄기 푸른 산은 경치가 그윽하더니 앞사람이 가꾸던 전토(田土)를 뒷사람이 거둔다. 뒷사람은 거두게 된 것을 기뻐하지 말라. 다시 거둘 사람이 뒷머리에 있다.

蘇東坡曰 無故而得千金이면 不有大福이라 必有大禍니라
(소동파 왈 무고이득천금이면 불유대복이라 필유대화니라)
소 동파(蘇東坡)가 말하였다. "까닭 없이 천금을 얻는다면 큰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큰 재앙이 있다."

康節邵先生曰 有人來問卜하되 如何是禍福고 我虧人是禍요 人虧我是福이니라
(강절소선생 왈 유인이내문복하되 여하시화복고 아휴인시화요 인휴아시복이니라)
강절 소선생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운수(점괘)를 묻되, '어떠한 것이 화(禍)와 복(福)입니까?' 하자, '내가 남을 해롭게 하면 이것이 화요, 남이 나를 해롭게 하면 이것이 복이요.'라고 하였다."

大廈千間이라도 夜臥八尺이요 良田萬頃이라도 日食二升이니라
(대하천간이라도 야와팔척이요 양전만경이라도 일식이승이니라)
큰 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여덟 자 방에 눕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 있더라도 하루에 두 되 먹는다.

久住令人賤이요 頻來親也疎라 但看三五日에 相見不如初니라
(구주영인천이요 빈래친야소라 단간삼오일에 상견불여초니라)
오래 머물면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게 하고, 자주 오면 친하던 사이도 멀어진다. 다만 사흘이나 닷새만에 서로 보아도 처음 <보는 것과> 같지 않다.

渴時一滴은 如甘露요 醉後添盃는 不如無니라
(갈시일적은 여감로요 취후첨배는 불여무니라)
목이 마를 때 한 방울의 물은 감로수(甘露水)와 같고, 취한 후에 잔을 더하는 것은 없는 것만 못하다.

酒不醉人人自醉요 色不迷人人自迷니라
(주불취인인자취요 색불미인인자미니라)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요, 女色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다.

公心을 若比私心이면 何事不辦이며 道念을 若同情念이면 成佛多時니라
(공심을 약비사심이면 하사불판이며 도념을 약동정념이면 성불다시니라)
공(公)을 위하는 마음을 사(私)를 위하는 마음에 비긴다면 무슨 일인들 되지 않을 일이 있을 것이며, 도(道)를 향하는 마음을 만약 정념(情念)처럼 한다면 부처의 경지가 이룩된 지 오래일 것이다.

濂溪先生曰 巧者言하고 拙者默하며 巧者勞하고 拙者逸하며 巧者賊하고 拙者德하며 巧者凶하고 拙者吉하나니 嗚呼라 天下拙이면 刑政이 撤하여 上安下順하며 風淸弊絶이니라
(염계선생왈 교자언하고 졸자묵하며 교자로하고 졸자일하며 교자적하고 졸자덕하며 교자흉하고 졸자길하나니 오호라 천하졸이면 형정이 철하며 상안하순하며 풍청폐절이니라)
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교자(巧者)는 말을 잘하고 졸자(拙者)는 침묵하며, 교자는 수고롭고 졸자는 한가하다. 교자는 남을 해치고 졸자는 덕성스러우며, 교자는 흉(凶)하고 졸자는 길(吉)하다. 아아! 천하가 졸(拙)하면 형벌로 다스리는 정치가 없어져, 위(임금)는 편안하고 아래(백성)는 순종하며, 풍속이 맑고 폐단이 없어지리라."

易曰 德微而位尊하고 智小而謀大면 無禍者鮮矣니라
(역 왈 덕미이위존하고 지소이모대면 무화자선의니라)
≪주역(周易)≫에 말하였다. "덕(德)은 적으면서 지위가 높으며, 지혜는 작으면서 꾀하는 것이 크면 화를 당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

說苑曰 官怠於宦成하고 病加於小愈하며 禍生於懈惰하고 孝衰於妻子니 察此四者하여 愼終如始니라
(설원 왈 관태어환성하고 병가어소유하며 화생어해타하고 효쇠어처자니 찰차사자하여 신종여시니라)
≪설원(說苑)≫에 말하였다. "관리는 지위가 성취되는 데서 게을러지고, 병은 조금 나아진 데서 심해지며, 재앙은 게으른 데서 생기고, 효도는 처자에서 약해진다. 이 네 가지를 살펴서 끝까지 삼가 끝맺음을 처음과 같이 할지니라."

器滿則溢하고 人滿則喪이니라
(경행록 운 기만즉일하고 인만즉상이니라)
그릇이 차면 넘치고, 사람이 차면(자만하면) 잃는다.

尺璧非寶요 寸陰是競이니라
(척벽비보요 촌음시경이니라)
한 자의 구슬이 보배가 아니요, 오직 광음(光陰 : 짧은 시간)을 다투어라.

羊羹이 雖美나 衆口는 難調니라
(양갱이 수미나 중구는 난조니라)
양고기 국이 비록 맛은 좋으나, 여러 사람의 입을 맞추기는 어렵다.

益智書云 白玉은 投於泥塗라도 不能汚穢其色이요 君子는 行於濁地라도 不能染亂其心하나니 故로 松柏은 可以耐雪霜이요 明智는 可以涉危難이니라
(익지서 운 백옥은 투어니도라도 불능오예기색이요 군자는 행어탁지라도 불능염란기심하나니 고로 송백은 가이내설상이요 명지는 가이섭위난이니라)
≪익지서(益智書)≫에 말하였다. "백옥을 진흙 속에 던져도 그 빛을 더럽힐 수 없고, 군자는 혼탁한 곳에 갈지라도 그 마음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힐 수 없다. 그러므로 소나무·잣나무는 서리와 눈을 견디어 내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위난을 건널 수 있다."

入山擒虎는 易어니와 開口告人은 難이니라
(입산금호는 이어니와 개구고인은 난이니라)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기는 쉬우나, 입을 열어 남에게 고하기는(부탁의 말을 건네기는) 어렵다.

遠水는 不救近火요 遠親은 不如近隣이니라
(원수는 불구근화요 원친은 불여근인이니라)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이서 난 불을 끄지 못하고, 먼 곳의 일가 친척은 이웃만 같지 못하다.

太公曰 日月이 雖明이나 不照覆盆之下하고 刀刃이 雖快나 不斬無罪之人하고 非災橫禍는 不入愼家之門이니라
(태공 왈 일월이 수명이나 부조복분지하하고 도인이 수쾌나 불참무죄지인하고 비재횡화는 불입신가지문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해와 달이 비록 밝으나 엎어놓은 동이의 밑은 비추지 못하고, 칼날이 비록 잘 들더라도 죄없는 사람은 베지 못하고, 나쁜 재앙과 느닷없는 화(禍)는 조심하는 집 문에는 들지 못한다."

太公曰 良田萬頃이 不如薄藝隨身이니라
(태공 왈 양전만경이 불여박예수신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좋은 밭 만 이랑이 하찮은 기술을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다."

性理書云 接物之要는 己所不欲을 勿施於人하고 行有不得이어든 反求諸己니라
(성리서 운 접물지요는 기소불욕을 물시어인하고 행유부득이어든 반구제기니라)
≪성리서(性理書)≫에 말하였다 "남을 접하는 요체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고, 행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거든 돌이켜 자기 몸에서 찾아라."

酒色財氣四堵墻에 多少賢愚在內廂이라 若有世人跳得出이면 便是神仙不死方이니라
(주색재기사도장에 다소현우재내상이라 약유세인도득출이면 변시신선불사방이니라)
술과 색과 재물과 기운의 네 담 안에 수많은 어진 이와 어리석은 사람이 그 방에 갇혀 있다. 만약 세상 사람 중에 이 곳을 뛰쳐나오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곧 신선의 죽지 않는 방법이다.

立敎篇(입교편:가르침을 세우는 글)

子曰 立身有義하니 而孝爲本이요 喪紀有禮하니 而哀爲本이요 戰陣有列하니 而勇爲本이요 治政有理하니 而農爲本이요 居國有道하니 而嗣爲本이요 生財有時하니 而力爲本이니라
(자 왈 입신유의하니 이효위본이요 상사유례하니 이애위본이요 전진유열하니 이용위본이요 치정유리하니 이농위본이요 거국유도하니 이사위본이요 생재유시하니 이력위본이니라)
공자가 말하였다. "입신(立身)에 의(義)가 있으니 효도가 그 근본이요, 상사(喪事)에 예(禮)가 있으니 슬퍼함이 그 근본이요, 싸움터에 대열(隊列)이 있으니 용맹이 그 근본이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치가 있으니 농사가 그 근본이 되고, 나라를 지키는 데 도(道)가 있으니 후사(後嗣)가 그 근본이요, 재물은 생산함에 시기가 있으니 노력이 그 근본이다."

景行錄云 爲政之要는 曰公與淸이요 成家之道는 曰儉與勤이니라
(경행록 운 위정지요는 왈 공여청이요 성가지도는 왈 검여근이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정사(政事)의 요점은 공평과 청렴이요, 집을 크게 이루는 길은 검약과 근면이다."

讀書는 起家之本이요 循理는 保家之本이요 勤儉은 治家之本이요 和順은 齊家之本이니라
(독서는 기가지본이요 순리는 보가지본이요 근검은 치가지본이요 화순은 제가지본이니라)
독서는 집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이치를 따름은 집을 잘 보존하는 근본이요, 근면과 검약은 집을 다스리는 근본이요, 화목과 순종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근본이다.

孔子三計圖云 一生之計는 在於幼하고 一年之計는 在於春하고 一日之計는 在於寅이니 幼而不學이면 老無所知요 春若不耕이면 秋無所望이요 寅若不起면 日無所辦이니라
(공자삼계도 운 일생지계는 재어유하고 일년지계는 재어춘하고 일일지계는 재어인이니 유이불학이면 노무소지요 춘약불경이면 추무소망이요 인약불기면 일무소판이니라)
≪공자삼계도(孔子三計圖)≫에 말하였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 날에 하는 일이 없다."

性理書云 五敎之目은 父子有親하며 君臣有義하며 夫婦有別하며 長幼有序하며 朋友有信이니라
(성리서 운 오교지목은 부자유친하며 군신유의하며 부부유별하며 장유유서하며 붕우유신이니라)
≪성리서≫에 말하였다. "오교(五敎)의 조목(條目)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서로 친함이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三綱은 君爲臣綱이요 父爲子綱이요 夫爲婦綱이니라
(삼강은 군위신강이요 부위자강이요 부위부강이니라)
삼강은 임금이 신하의 벼리(근본)가 됨이요,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됨이요,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된다는 것이다.

王燭曰 忠臣은 不事二君이요 烈女는 不更(경)二夫니라
(왕촉 왈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니라)
왕촉(王燭)이 말하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忠子曰 治官엔 莫若平이요 臨財엔 莫若廉이니라
(충자 왈 치관엔 막약평이요 임재엔 막약염이니라)
충자(忠子)가 말하였다. "벼슬을 다스림에는 공평한 것만한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해서는 청렴만한 것이 없다."

張思叔座右銘曰 凡語를 必忠信하며 凡行을 必篤敬하며 飮食을 必愼節하며 字劃을 必楷正하며 容貌를 必端莊하며 衣冠을 必肅整하며 步履를 必安詳하며 居處를 必正靜하며 作事를 必謀始하며 出言을 必顧行하며 常德을 必固持하며 然諾을 必重應하며 見善如己出하며 見惡如己病하라 凡此十四者는 皆我未深省이라 書此當座隅하여 朝夕視爲警하노라
(장사숙좌우명 왈 범어를 필충신하며 범행을 필독경하며 음식을 필신절하며 자획을 필해정하며 용모를 필단장하며 의관을 필숙정하며 보리를 필안상하며 거처를 필정정하며 작사를 필모시하며 출언을 필고행하며 상덕을 필고지하며 연낙을 필중응하며 견선여기출하며 견악여기병하라 범차십사자는 아개미심성이라 서차당좌우하여 조석시위경하노라)
≪장사숙 좌우명(張思叔座右銘)≫에 말하였다. "무릇 말을 반드시 충성되고 미덥게 하며, 무릇 행실을 반드시 돈독히 하고 공경히 하며, 음식을 반드시 삼가고 알맞게 하며, 글씨를 반드시 반듯하고 바르게 쓰며, 용모를 반드시 단정하고 엄숙히 하며, 의관을 반드시 엄숙하고 바르게 하며, 걸음걸이를 반드시 편안하고 자상히 하며, 거처하는 곳을 반드시 바르고 정숙하게 하며, 일하는 것을 반드시 계획을 세워 시작하며, 말을 하는 것을 반드시 그 실행 여부를 생각해서 하며, 평상의 덕(德)을 반드시 굳게 가지며, 승낙하는 것을 반드시 신중히 대응하며, 선(善)을 보거든 자기에게서 나온 것 같이 하며, 악(惡)을 보거든 자기의 병인 것처럼 하라. 무릇 이 열 네 가지는 모두 내가 아직 깊이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자리의 귀퉁이에 해당하는 곳에 써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보고 경계하노라."

范益謙座右銘曰
(범익겸좌우명에 왈)≪범익겸 좌우명(范益謙座右銘)≫에 말하였다

一不言朝廷利害邊報差除요
(일불언조정리해변보차제요)
첫째 조정에서의 이해와 변방으로부터의 기별(소식)과 관직의 임명에 대하여 말하지 말 것이요,
二不言州縣官員長短得失이요
(이는 불언주현관원장단득실이요)
둘째 주현(州縣) 관원의 장단과 득실에 대하여 말하지 말 것이요,
三不言衆人所作過惡之事요
(삼은 불언중인소작과악지사요)
셋째 여러 사람이 저지른 악한 일을 말하지 말며,
四不言仕進官職趨時附勢요
(사는 불언사진관직추시부세요)
넷째 벼슬에 나아가는 것과 기회를 따라 권세에 아부하는 일에 대하여 말하지 말 것이요,
五不言財利多少厭貧求富요
(오는 불언재리다소염빈구부요)
다섯째 재리의 많고 적음이나 가난을 싫어하고 부를 구하는 것을 말하지 말며,
六不言淫說戱慢評論女色이요
(육불언음설희만평론여색이요)
여섯째 음탕하고 난잡한 농지거리나 여색에 대한 평론을 말하지 말 것이요,
七不言求覓人物干索酒食이요
(칠불언구멱인물간색주식이요)
일곱째 남의 물건을 요구하거나 주식(酒食)을 구하고 찾는 일을 말하지 말 것이다.
又人附書信을 不可開坼沈滯요
(우인부서신을 불가개탁침체요)
그리고 남이 편지를 부탁하거든 뜯어보거나 지체시켜서는 안되며,
與人竝坐에 不可窺人私書요
(여인병좌에 불가규인사서요)
남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 남의 사사로운 글을 엿보아서는 안되며,
凡入人家에 不可看人文字요
(범입인가에 불가간인문자요)
무릇 남의 집에 들어가서 남의 문자를 보지 말며,
凡借人物에 不可損壞不還이요
(범차인물에 불가손괴불환이요)
남의 물건을 빌었을 때 손상시키거나 돌려보내지 않아서는 안 된다.
凡喫飮食에 不可揀擇去取요
(범끽음식에 불가간택거취요)
무릇 음식을 먹음에 가려서 버리거나 취해서는 안될 것이며,
與人同處에 不可自擇便利요
(여인동처에 불가자택편리요)
남과 같이 있으면서 제멋대로 편리만을 가려서는 안 된다.
凡人富貴를 不可歎羨抵毁니
(범인부귀를 불가탄선저훼니)
무릇 남의 부귀를 부러워하거나 헐뜯어서는 안 된다.
凡此數事에 有犯之者면 足以見用意之不肖니
(범차수사에 유범지자면 족이견용의지부소니)
무릇 이 몇 가지 일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그 마음씀의 어질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於存心修身에 大有所害라 因書以自警하노라
(어재심수신에 대유소해라 인서이자경하노라)
마음을 보존하고 몸을 닦는 데 크게 해로운 것이 있다. 이 때문에 이 글을 써서 스스로 경계하노라

武王이 問太公曰 人居世上에 何得貴賤貧富不等고 願聞說之하여 欲知是矣로이다 太公曰 富貴는 如聖人之德하여 皆由天命이어니와 富者는 用之有節하고 不富者는 家有十盜니이다
(무왕이 문태공왈인거세상에 하득귀천빈부부등고 원문설지하여 욕지시의로이다 태공 왈 부귀는 여성인지덕하여 개유천명이어니와 부자는 용지유절하고 불부자는 가유십도니이다)
무왕(武王)이 태공(太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데 어찌하여 귀천과 빈부가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원컨대 그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고 이를 알고자 합니다." 태공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부귀는 성인의 덕과 같아서 다 천명에서 말미암거니와 부자는 쓰는 것이 절도가 있고 부유하지 않은 자는 집에 열 가지 도둑이 있습니다."

武王曰 何謂十盜닛고 太公曰 時熟不收 爲一盜요 收積不了 爲二盜요 無事燃燈寢睡 爲三盜요 冗懶不耕이 爲四盜요 不施功力이 爲五盜요 專行巧害 爲六盜요 養女太多 爲七盜요 晝眠懶起 爲八盜요 貪酒嗜慾이 爲九盜요 强行嫉妬 爲十盜니이다
(무왕 왈하위십도닛고 태공 왈시숙불수 위일도요 수적불료위이도요 무사연등침수위삼도요 용라불경이 위사도요 불시공력이 위오도요 전행 교해 위육도요 양녀태다 위칠도요 주면나기 위팔도요 탐주기욕이 위구도요 강행질투 위십도니이다)
무왕이 말하였다. "무엇을 열 가지 도둑이라고 합니까?" 태공이 대답하였다. "때맞게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지 않는 것이 첫째의 도둑이요, 거두고 쌓는 일을 마치지 않는 것이 둘째의 도둑이요, 일없이 등불을 켜놓고 잠자는 것이 셋째의 도둑이요, 게을러서 밭 갈지 않는 것이 넷째의 도둑이요, 공력(功力)을 들이지 않는 것이 다섯째의 도둑이요, 오로지 교활하고 해로운 일만 행하는 것이 여섯째의 도둑이요, 딸을 너무 많이 기르는 것이 일곱째의 도둑이요, 대낮에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기를 게을리 하는 것이 여덟째의 도둑이요, 술을 탐하고 욕심을 즐기는 것이 아홉째의 도둑이요, 심히 질투하는 것이 열째의 도둑입니다."

武王曰 家無十盜而不富者는 何如닛고 太公曰 人家에 必有三耗니다 武王曰 何名三耗닛고 太公曰 倉庫漏濫不蓋하여 鼠雀亂食이 爲一耗요 收種失時 爲二耗요 抛撒米穀穢賤이 爲三耗니이다
(무왕 왈 가무십도이불부자는 하여닛고 태공 왈 인가에 필유삼모니다 무왕 왈 하명삼모닛고 태공 왈창고루람불개하여 서작난식이 위일모요 수종실시 위이모요 포살미곡예천이 위삼모이니라)
무왕이 말하였다. "집에 열 가지 도둑이 없는데도 부유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태공이 대답하였다. "그런 사람의 집에는 반드시 삼모(三耗)가 있습니다." 무왕이 말하였다. "무엇을 삼모라고 이름합니까?" 태공이 대답하였다. "창고가 새고 넘치는데도 덮지 않아 쥐와 새들이 어지럽게 먹어대는 것이 첫째의 낭비요, 거두고 씨뿌림에 때를 놓치는 것이 둘째의 낭비요, 곡식을 버리고 흩어지게 하여 더렀?서조왈 연이 확면여여는 천야라 오하위수리오 인관왈 연즉환여곡하리라 서조왈 오여여자시이일이니 곡이속여의니라하고 이인이 상양이라가 병기어시하니 장시관이 이문왕하여 병사작하니라)
인관(印觀)이 장에서 솜을 파는데 서조(署調)라는 사람이 곡식으로써 솜을 사 가지고 돌아가더니 솔개가 그 솜을 채 가지고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다. 인관이 서조에게 솜을 돌려보내며 말하기를, "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으므로 너에게 돌려보낸다." 하니, 서조는 말하기를, "솔개가 솜을 채다가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이 한 일이다. 내가 어찌 받겠는가?" 하였다. 인관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솜 값으로 받은> 너의 곡식을 돌려보내겠다." 하자, 서조가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준 지가 벌써 두 장[市]이 지났으니, 곡식은 이미 너에게 귀속되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다가 솜과 곡식을 다 함께 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물이 없다면 메마른 흙더미일 뿐이고, 사람에게 지혜가 없다면 걸어 다니는 시체 일뿐이다. 지혜가 사람에게 쓰이는 것은 물이 땅위에 흐르는 것과 같다. 땅이 움푹 파여 있으면 거기에 물이 가득찰 것이고, 인사(人事)에 곡절이 있으면 거기에 지혜가 가득 찰것이다. 고금의 성패와 득실을 두루 살펴보건데 이것에서 비록되지 않은것이 없다. 걸.주임금은 어리석었지만, 탕.무왕은 지혜로왔고, 전국칠웅중 여섯 나라는 어리석었지만 진나라는 지혜로왔다. 항우는 어리석었지만, 유방은 지혜로웠고, 수나라는 어리석었지만, 당나라는 지혜로웠으며, 송나라는 어리석었지만 원나라는 지혜로웠고, 원나라에 비해 명나라가 더 지혜로웠다. 굵직한 일들을 들어보면 세세한것을 알수 있다.

어떤이가 비난하며 말했다. 가장 지혜롭기는 순임금만한 이가 없지만, 어리석은 부모 때문에 고초를 격었다. 공자만큼 지혜로운이도 없지만, 진 과 채나라에서 고난을 당하였다. 서쪽 이웃집의 아들은 육예(六藝)를 익힌 선비지만, 자기의 재능을 팔지않아서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동쪽에 이웃집 아들은 무식쟁이였지만, 힘들이지 않고 제후처럼 집에 노비를 100명씩두고 호강하고 살았다. 그러니 어리석은이는 어럽게 살고, 지혜로운이가 잘 산다는 이치가 어디에 있다는가?

그대는 우물파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우물을 파는 사람은 겨울에는 옷을 다벗고 여름에는 털옷을 입으며, 땅속으로 내려 갈때는 줄을 잡고 내려가고 땅위로 올라올 때는 삼태기를 잡고 올라온다. 그렇게 하여 평지에서 샘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다. 만일 흙을 다팠는데 바위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변고(變故)이다. 대대로 큰 나무를 심었던 사람은 그 나무를 이용하여 바위를 부수고 샘을 솟구어 내어 온 마을을 촉촉이 적셔준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는 바위만 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거기에서 샘을 본다. 어떤 변고가 지혜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해도, 지혜는 결코 변고 때문에 궁핍해지지 않는다.

어떤 이가 또 말했다. 그러나 지낭(智囊)이라는 것은 한나라 재상 조착을 저작거리에서 불태워 죽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그것을 취하려 하는가?

아니다! 아니다! 조착은 어리석어서 죽은 것이다. 그가 황제 앞에서 전쟁을 말했을 때, 그말을 듣고도 두려움이 가득 했다. 조착이 제후들의 봉토를 삭감 했을때,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때 조착은 황제에게 이조치를 끝까지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지혜롭지 못했던 유일한 부분이다. 제후들의 비난은 빗발치듯 계속되었고 결국 조착은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자기몸을 지키는데는 어리석었지만 국익을 도모하는데는 여전히 지혜로왔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그를 명신의 반열에 올려 노은 것이다. 요즘 천박한 물이들은 제몸 지키는데는 무척 지혜롭지만 국익을 도모하는데는 너무어리석다. 이런 무리들과 비교해보라. 누가 훌륭한자이고 누가못난자인가?

어떤이가 또 말하였다. 그대가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지혜란 사람의 본성에서 생기는것인가. 아니면 종이(책)위에서 나오는것인가?

나는 지혜란 물과 같다고, 땅속에 감추어져 있는 물과 같은 것, 그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본성이다. 땅을파서 그물을 샘솟게하는 것, 그것이 지혜의 배움이다. 우물과 도랑을 파놓으면 그 물은 강하에 합류할수 있다. 나는 사람의 지혜로운 본성이 흙과 바위 아래갇혀 있는것을 안타깝게 여겨, 종이 위의 말로 삽과 삼태기를 삼아 샘을 향해 파내려간다. 이세상에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지혜를 선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람을 고려 하지않고 그일을 고려하며, 그일을 고려하지않고 그 지혜를 고려했다. 간악한 인간이나 개도둑일지라도 어느것 하나 내 약상자 안에서는 침과 뜸 아닌 것이 없다. 나는 그중 하나를 거미줄로 삼아 장차 그물 질할만큼 키워 나갈것이며, 그중 하나를 누에고치로 삼아 장차 큰 집을 지을 만큼 크게 키워 나갈 것이다. 계곡을 보라. 온갖 물이 모두흘러 들어오지만, 계곡의 왕이 그것을 골라 받아들이던가? 풍(馮)선생은 이름이 몽용(夢龍)이고 자는 유룡(猶龍)이며 동오(東吳)지방의 기인이다.

제1부 상지부(上智部)

지혜는 원래 정해진틀이 없다. 처해진 국면에 따라 잘 들어 맞는 것이 높은 지혜다. 높은 지혜는 무심한 상태에서 합치는것이지 천번만번 궁리해서 이룰수 있는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잘한것을 얻고 좋아하지만 나는 큰 것을 얻고도 말이 없다. 사람들은 가까운 것을보고 근심하지만 나는 먼 것을 보고 미소짓는다. 사람들은 움직일수록 어지러워지지만 나는 고요한 가운데 저절로 바르고, 사람들은 항상 속수무책으로 안달하지만, 나는 언제나 여유롭고 능숙하다. 그래서 높은 지혜를 가진자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언제나 쉽게 처리하고 거친일을 접해도 항상 섬세하다. 그 마음은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은밀한데까지 들어가고 그 행동은 사람들의 상상을 넘어선다. 처음에는 어긋나는것 같지만 사실은 합치되고 겉으로는 거스르지만 사실은 순탄하다. 아! 이와 같은 지혜는 정말 높은 것이 아니겠는가! 높은 지혜는 배워서 익히는 것이 아니다. 높은 지혜는 성인과 범부가 모두 똑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하의 바보도 날때부터 상상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촉발시켜 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

1.견대(見大): 대체(大體)를 생각한다.-성인의 일거 일동은 언제나 상식을 뛰어넘는다. 범부들은 그저 놀랄뿐이지만 영웅호걸은 쉽게 그 뜻을 알아차린다. 성인은 대체를 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2.원유(遠猶): 원대하게 도모한다.-생각이 원대하지 못하면 작은 일만 할 뿐이다. 길흉화복은 예고없이 뒤바뀐다.

3.통간(通簡): 하는일 없이 다스리다.-세상에는 본래 아무일도 없는데, 용열한 사람들은 괜이 안달하고 근심한다. 세상사의 이치를 통달하기 만하면 모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이제 어려운일들이 얼음 녹듯 풀릴 것이다.

4.영인(迎刃): 능란하게 처리하다.-앞에는 험난한 산이 막고있고 뒤에는 거친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사람들은 속수 무책이지만 나만홀로 여유를 부리면서 능수능란하게 일을 해결해나간다.

제2부 명지부(明智部)

이우주에는 밝음과 어두움의 다툼만 있을 뿐이다. 뒤엉켜 혼돈한 것은 어두움이고 활짝열린 것은 밝음이다. 난세는 어두움이고 치세는 밝음이며, 소인은 어두움이고 군자는 밝음이다. 맑지못한 물은 썩어버리고 밝지못한 거울은 형상을 비추지 못하며,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운무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초의 심지를 최대한 돋우어 봤자 그 빛은 담벼락을 반도 넘지 못한다. 그러나 붉은 태양을 실고 하늘을 내달리는 저 황금마차는 팔해를 다비치고도 넉넉히 남는게 있다. 밤을 낯으로 알고 있는 맹인이 눈먼 말을 타고 가는구나! 깊은 수령에 빠지지않는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일까! 어두운 이에게는 일어나지 않은일이 밝은이에게는 이미 끝난일이고 어두운이에게는 꿈속의 광경이 밝은이에게는 분명한 현실이고, 어두운이에게는 혼돈의 미로가 밝은이에게는 탄탄한 대로이다. 그러므로 밝은이는 남들이 알 수 없는 일들을 알고 남들이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판단한다. 밝은이는 그밝음을 가지고 손해를 피하고 이득을 모으며 이름을 높이고 사업을 성취한다. 밝음은 영원히 그치지않는다.

5.지미(知微): 작은 기미에서 미래를 읽어낸다.-환난은 사소한것에서 일어나고 경사는 작은일에서 만들어 진다. 어리석은 무리들은 들어나지도 않은 흉한 기미도 먼저 다가가 건드린다. 세상이치에 어둡기 때문이다.

6.억중(億中): 정확히 추측해 낸다.-사물의 정황을 분명히 관찰하고 사업의 근본을 명확히 파악하라. 아무리 교활한 술수를 쓰더라도 절대 속일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게 하라.

7.부의(剖疑): 미심쩍은 것은 끈어버리다.-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거짓뿐이고 세상에 가득찬 것은 뿌연 안개뿐이다. 밝은 눈없이 어떻게 나아갈수 있겠는가? 하늘의 태양처럼 밝게 비추어라. 요망한 허상을 산산이 부수어라.

8.경무(經務): 지혜롭게 나랏일을 경영하다.-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세련된 재주보다 진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갈수 있는 역량은 재주가 아니라 성실함에 있다.

제3부 찰지부(察智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속담에 '깊은 못의 물고기를 살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라는말이 있듯이, 남의 잘못과 삿된 마음을 들어 내놓고 낱낱이 살피는 것은 좋지않다. 그래서 성인은 은밀한 야행을 중시하고 남들이 알지못하는데에서 노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아라. 빛나는 눈동자가 없다면 어떻게 야행을 하면서 넘어지지않을수 있겠는가? 밝음과 살핌은 같이 진행 되는 것이다. 밝음이 없으면 살필수 없고, 살핌이 없으면 밝힐수 없다. 하늘에서 태양이 밝게 빛나고 내얼굴에서 환한 빛이 말한다고해서, 세상 어느 구석에 어두운 그림자가 없겠으며 어느후미진 골목에 억울한 탄식이 없겠는가? 낱낱이 살피고 명백히 따져야한다. 이제 깊은못의 물고기는 도망치고 못된 범행과 삿된 마음은 살아질 것이다. 참된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면 천하에 억울한 백성이 없을것이고 삿된짖을 근절시기면 천하에 헛된 죽음이 없을 것이다.

9.득정(得情): 진정한 정황을 파악한다.-교모한 혀를 놀려 흑백을 뒤 바꾼다. 거짖이 온 세상을 뒤 덮고 있으니 진실은 들어 날길이 없다. 진실한 정황을 꿰뚤어 보는 지혜가 있다면 언제든지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10.힐간(詰奸): 삿된 짓을 취조하다.-법도가 바르지 않으면 신하가 교활해지고 백성이 사악해 진다. 그러면 온갖 나뿐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것이다. 노련한 농부처럼 독초들을 모조리 베어내고 숨은 뿌리까지 잘라내야 한다.

제4부 담지부(膽智部)

천하의 무슨일이건 간에 그 시작은 담력이고 그 완성은 지혜이다. 물이 깊은 것을 알면 들어 가지 않고 불이 뜨거운 것을 알면 손대지 않을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그런데 지금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손대도 데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어째서 꼼짝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것이냐! 겁쟁이들아, 그건 담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혜는 심장에 담겨 있고 담력은 쓸개에 담겨 있다. 심장은 임금이고 쓸개는 신하이며 지혜는 임금이고 담력은 신하이다. 임금은 명을 내리고 신하는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이 명을 내렸는데도 신하가 움직이지 않거나 명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바로 임금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담력이 부족하면 지혜로 단련시키야하고 담력이 넘치면 지혜로 제지하여야한다. 지혜는 담력을 낳을수 있지만 담력은 지혜를 낳지 못하는 법이다. 옛날 조사관이라는 사람은 다른사람의 쓸개를 1000개 먹으면 천하무적의 용기가 생겨난다고 믿고는, 사람을 죽이고 그쓸개를 꺼내어 술에 담가 먹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담력을 빼앗아 자기의 담력에 보태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짖인가! 반듯이 다른사람의 지혜를 얻어서 자기의 지혜에 보태야 할것이다. 지혜가 노련해질수록 담력은 더욱 강건해지는 법이다.

11.위극(威克): 용감한 기상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다.-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물리지않고 용을 채찍질해서 여의주를 빼앗은 행동이 그냥 나오는 것이겠는가? 기묘한 지혜가 있기 때문에 과감함도 가능한 것이다.

12.식단(識斷):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다.-지혜는 식견을 낳고 식견은 담력을 낳는다. 용감하게 밀고 나아가야 할때 머뭇거린다면, 결국 모든 재난을 당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제5부 술지부(術智部)

지혜는 술수를 낳는 근원이고 술수는 지혜가 변화된 쓰임이다. 지혜롭지않으면서 술수를 말하는 것은 꼭두각시 인형이 온갖 재주를 부려 봤자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될뿐 사업에는 아무 보탬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술수 없으면서 지혜를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배를 조종하라고 시켜놓고는 마치 자기가 직접 키를 잡고 노를 젓는 것처럼 뽐내는 것과 같다. 머리로는 모든 항로와 지형지물을 손바닥보듯 훤히알고 있지만, 한번험한 협곡을 만나거나 성난파도에 부딪치면 꼼짝하지못한채 그저 살려 달라고 소리만 지를 뿐이다. 그러니 그배가 뒤집히지 않을수 있겠는가? 자벌래가 몸을 움츠리고 새매가 엎드려날며 사향노루가 배꼼을 오므리는것, 그것이 바로 술수이다. 미물도 그런 술수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술수가 없겠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어떤 술수가 있는가? 모르는 사람은 '성인의 지혜도 언젠가 다하는날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성인의 술수는 곤궁해지는 때가 없다.'고 말한다. 완곡하게 몸을 숙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 당신을 공격해 올 것이다. 속내를 감추고 엎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당신을 넘어뜨릴 것이다. 위장술을 써서 자신을 보호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당신을 곤경에 몰아 넣을 것이다.

13.위사(委蛇): 몸을 낮춰 순종하라.-진흙에서 피는 연꽃을 보라. 연꽃이 더러운 진흙에 뿌리를 박는 이유는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통곡하지만 나중에는 웃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길한 결과로 열매 맺을 것이다.

14.유수(謬數): 엉뚱하게 거꾸로 행동하다.-돌맹이인 것 같지만 사실은 보옥이다. 칼날을 뭉뚝하게 죽이고 그 안에 아주 날카로운 칼날을 숨겨라. 총명함을 감추고 멍청하게 행동하라. 꿈꾸는 성공의길은 깊숙이 감추어 두어라.

15.권기(權奇): 기발한 웅변의 지혜.-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라. 다만 나의속내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라. 거짓과 진실을 번갈아쓰고 정직한 방법과 괴이한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라. 반드시 성공하리라.

제6부 첩지부(捷智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사를 성취하는 사람은 100년 세월을 두고 싸우지 한 순간을 두고 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순간이 바로 100년의 시작이다. 당신의 다리로 1리를 갈수 있다면 이제 가장 먼저 달려가는 데 주력해야한다. 경쟁이란 단지 찰라의 시간을 다투는 것일 뿐이다. 1리가 쌓여 10리가되고 10리가 쌓여 100리가 되면, 먼저간 한자라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달리기도 그런것이거늘 하물며 지혜의 늦고 빠름은 또 어떻겠는가? 그 결과가 1000리나 1만리의 차이로만 그치겠는가? 커다란 술통을 탁트인 사거리 가운데에 놔두어 보자. 제일 빨리 도착한 사람은 흠벅 취할것이고 뒤이어 오는 사람은 맛만 볼 것이다. 그러나 가장늦게 오는 사람은 입술도 축이지 못한채 돌아가야한다. 아름드리나무의 잎을 하나 따낸다면 하루종일 걸려도 다 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을 바람이불고 찬서리가 내리면 하루밤사이에 온 숲의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군다. 이것이 천지자연의 조화가 보여주는 민첩함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민첩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영묘함은 만변하는 상황에서도 넉넉하게 응할것이고 창졸간의 상황에도 허둥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오직 기민하게 반응하는자만 가능한일이다. 아! 세상이 변하지않고 그대로 멈추어 나를 기다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16.영변(靈變): 민첩하게 기지를 발휘하다.-승패의 단서는 실낱같이 미미하다. 패배의 조짐을 없애기만 하면 그대로 승리하는 것이지만, 아무나 그 일을 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재빠른 기지를 갖춘 사람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17.응졸(應卒): 역적을 우대하여 내부의 불만을 잠재워라.-서강에 물이 넘처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목마른 자에게는 물 한잔이 천금의 보옥보다 훨신 귀하다. 원대한 계획만 꿈꾸지 말고 현재의 상황을 타개해 갈 지혜를 짜내라.

18.민오(敏悟): 기민하게 뜻을 파악하라.-색종이로 만든 꽃은 아무리 예뻐도 봄바람의 비웃음만 받을 뿐이다. 인위적인 노력은 힘만들뿐이다. 억지로 궁리하거나 계획하지말라. 처한 상황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순간의 지혜에 모든걸 맡겨 두라.

제7부 어지부(語智部)

지혜는 말이 아니고 말로하는 지혜는 참된 지혜가 아니다. 제잘대기만 하는 자들은 분명 곤궁해지고 만다. 대장부에게 어찌 말이 필요하겠는가? 정말 그렇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라. 두 개의 혀가 싸울때에는 이치에 합당한 사람이 이길것이고 두 개의 이치가 다툴때에는 언변이 좋은 사람이 이길 것이다. 말한마디는 구정(九鼎)보다 무겁고 10만 대군보다 강하다. 작은쪽지 하나는 조정의 군신보다 현명하고 혓바닥에서 나오는 권력은 천하를 좌우한다. 말 한마디로 천하가 태평해지고 말한마디로 온 세상이 전쟁터가 된다. 군자는 말한마디를 지혜롭다 여기기도 하고 지혜롭지 않다고도 한다. 지혜가 내면에서 윤택해지면 지혜로운말이 바같으로 넘처날 것이다. 이런 말이야말로 세상을 구하는 좋은 말이다.

19.변재(辯才): 언변의 재주를 발휘하다.-한마디 말로 천량 빚을 갚고 한마디 말로 나라가 망한다. 군자들이여! 출중한 언변을 비난하지 말라. 세상 모든일은 말에 의존한다.

20.선언(善言): 훌륭하게 설득하다.-혀에도 척추가 있다. 지혜롭게 잘 활용하라. 안으로는 정밀하고 신묘하게 다듬고, 밖으로는 은밀하고 미묘하게 발언하라. 웃고 대화하면서 구중포위(九中包圍)에서 벗어 날수 있다.

제8부 병지부(兵智部)

송나라의 명장 악비장군이 이렇게 말했다. "장수는 인자해야하고 지혜로와야 하며 미더워야하고 용감해야 하며 위엄이 있어야 한다. 이 다섯가지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서는 않된다." 나는 이다섯가지 가운데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란 안 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인자함을 알고 미더움을 알며 용감함을 알고 위엄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군대의 장수는 알지못하는 것이 있을까 걱정해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장수와 지혜로운 장수가 싸우면 지혜로운 장수가 이기고 보통 지혜로운 장수와 매우 지혜로운 장수가 싸우면 매우 지혜로운 장수가 이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매우 지혜로운 장수는 싸우지 않고도 이길수 있고 100번싸워 100번 이길수 있으며, 정직한 전술로 이길수 있고 위장전술로도 이길수 있으며, 참신한 작전으로 이길수도 있고 옛 병법을 모방해서 이길수 있다. 천시는 항상 다르고 지리는 늘 변하는 것이다. 적군의 실정도 항상 다르고 아군의 기세도 늘상 변한다. 지혜로운 장수는 이모든 것을 세밀하게 파악한다음 전투에 임하여 승리를 쟁취한다. 고금의 전략 전술은 모두 이안에 갖추어져 있다.

21.부전(不戰): 싸우지 않고 승리한다.-소리보다 형체가 더 분명하듯이, 무력보다는 계책을 쓰는게 승산이 높다. 육탄전 보다는 위세로 누르는 것이 더 낫고, 위세로 누르는 것보다는 담판으로 압도 하는것이 더 낫다.

22.제승(制勝): 완벽한 승리를 이루어 내다.-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은 따로 없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해결책을 만들어라. 비바람도 손안에서 불릴수 있는 지혜를 항상 갖추고 있어라. 그러면 100번 싸워도 지지않을 것이다.

23.궤도(詭道): 속임수를 써서 적군을 이겨라.-길은 평평해야 하지만 전술에는 속임수가 있어야 한다. 텅 빈 것을 가득찬 듯 속이고 가득찬 것을 텅빈 듯 속여라. 적이 어두우면 내가 밝을 것이고 내가 살아나면 적은 죽을 것이다. 기묘한 속임수는 무궁무진하니 절대 그 속내를 내보이지 말라.

24.무안(武案): 기지를 발휘하여 승리를 쟁취하라.-의술을 배우다보면 건강을 해칠때도 있고 병법을 익히다보면 병사를 죽일 때도 있다. 그렇다고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수 없다. 정확하게 배우는데 온 힘을 집중하라.

제9부 규지부(閨智部)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 "여자는 재능이 없는게 덕이다." 정말 그런가? 어째서 그런가? 기린은 상서로운 동물이지만 생쥐한마리 잡지 못하고 봉황은 문체가 화려하지만 토끼새끼도 사냥하지 못한다. 옛날 무왕은 자기아내 읍강을 으뜸가는 개국 공신으로 꼽았다. 공자는 읍강의 재능이 아홉 공신들과 똑 같다고 극진히 칭송했다. 언제 공자가 읍강의 재능 때문에 그녀의 덕을 깍아 내린적이 있는가? 재능이란 지혜일 뿐이다. 지혜롭지 않으면 멍청할 뿐이다. 재능 없어야 덕스로울수 있다고 한다면 천하의 멍청한 아낙네들은 모두 덕을 갖춘 사람이 란 말인가? 남자는 해이고 여자는 달이다. 해는 빛을 발하고 달은 그 빛을 비춘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것이다. 해가 저물면 달이 대신한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도와 주는 존재다. 이것이 해와 달의 지혜이고 해와 달의 재능이다. 그런데 어째서 해는 빛나야 하고 달은 어두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해와 달은 함께 빛날 뿐이어거늘 어째서 애써 둘로 나누려 하는가? 그래서 나는 여인들의 지혜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명한 여인은 어리석은 남정내보다 뛰어나고 용감한 여장부는 못난 암사내보다 훌륭하다. 효성스런 며늘이나 정조 곧은 열여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쉬지 않고 기록하고 쉴세 없이 칭찬한다. 그러나 그런 여인들은 규방의 기린과 봉황일 뿐 배울 만한 지혜는 별로 없다.

25.현철(賢哲): 현명한 여인들을 본받아라.-오직 현명한 사람에게만 본 받을것이 있다. 저 멋진 군자를 보고 부러워하지 말라. 다 현명한 아내가 만들어 준 것이다. 대장부들이여! 어찌 여인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 하는가!

26.웅략(雄略): 용감한 여장부들에게 배워라.-사내도 앞치마를 두를 수 있고 아녀자들도 검은 관을 쓸수 있다. 여장부들은 대문 밖을 나서지 않았지만 그 지모는 천리까지 이르렀다. 용렬한 사내들아, 저 여장부의 모습을 보고 졸렬한 자신을 부끄러워 하라.

제10부 잡지부(雜智部)

어떻게 지혜에 '잡되다'는 말을 붙었는가? 왜냐하면 약삭빠르고 교활하며 꾀바르고 자잘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바른 지혜가 교활한 지혜에서 얻을 것은 없지만 가끔은 교활한 지혜에 당할때가 있다. 큰지혜가 자잘한 지혜에서 얻을 것은 없지만 가끔은 자잘한 지혜에 속아 넘어 갈때가 있다. 그 교활함은 깨뜨리면 바른 지혜가 이길 것이고 그 자잘한 지혜를 간파하면 큰 지혜가 이길 것이다. 더구나 교활함을 바른 지혜로 귀속시키면 바르게되지 않는 것이 없고, 자잘한 지혜를 큰 지혜에 집어넣으면 크게 되지 않는것이 없다. 교활한 지혜도 바른 지혜가 될 수 있고 바른 지혜도 교활한 지혜가 될 수 있으며, 자잘한 지혜도 큰 지혜가 될 수 있고, 큰 지혜도 자잘한 지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활하고 자잘한 잡된 지혜들도 모두 구비한다면, 세상에 남아 있는 지혜는 없을 것이다. 어째서 모든 지혜를 다모으려 하는 것인가? 태산도 한 삼태기 흙이 없으면 태산이 될 수 없고, 바다도 작은 물줄기 하나가 없으면 바다가 될 수 없는법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잡된지혜'를 붙이는 것이다. 읽는이에 따라, 잡된 것을 좋은 것으로 변화 시켜도 좋겠고 잡된 것을 빼버리고 그 지혜만 채취해도 좋겠다.

27.교할(狡猾): 교활한 인간에 대하여 알아두라.-지혜가 날마다 깊어지는 것처럼 간교함도 날마다 노련해진다. 간사한 인간에 대해 미리 알아 두어야 간교함이 더 노련해 지기전에 물리칠 수 있다.

28.소혜(小慧): 자잘한 지혜를 잘 활용하라.-작은 불꽃들이 여기 저기서 반짝이고 있다. 반딧불이의 빛은 불어도 꺼지지않고 주머니에 넣어도 어두워 지지않는다. 작은 빛을 모아 두면 큰 빛을 밝힐 때 분명 쓸모가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