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오끼섬 사이로 EEZ를 새로 긋자!왜 독도에서 EEZ를 못 그었는지 말해라.
남해 최동단 끝에 위치한 다대포(多大浦)항.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 파도가 거세면서도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또한 다대포항이다. 또한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 휘하의 거북선 독격장 정운(鄭雲)장군이 전사한 곳이라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경치좋고 유서깊은 반도(半島)를 보유하고 있는 곳도 바로 이 다대포항이다.그러나 2001년 9월 13일 오후의 다대포항은 을시년스럽도록 썰렁했다. 원래는 남해안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부촌(富村)이었는데... 선창가에서 한일어업협정파기, 재협상촉구국민서명운동본부 박찬종씨를 만난 정지호씨(42)는 첫마디부터가 바닷가 사람답다. 『 와 인자 시작했습니꺼 』 왜 이 운동을 이제야 시작하느냐는 힐책이었다. 정씨의 분노는 계속된다. 『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 왜 EEZ(배타적 경제수역)라인을 독도와 일본의 오끼섬 사이에 긋지 않았는지 박대표가 대통령한테 좀 물어보라』고 목청을 높인다.다대포 어촌계장 최주태씨(42)는 좀 침착하지만 처참한 현실을 얘기한다.『협정전에는 다대항 소속 100여척의 소형 저인망 어선들이 척당 월 1500~2000만원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2~3명이 조업을 나가니까 월 4~5백만원은 벌었지요. 대마도 남방 160마일 정도의 일본의이시마 근처에까지 조업을 했으니까요. 현재 이곳 어선들의 어획고는 80%이상 줄었습니다. 출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 기름값도 나오지 않습니다. 저기 묶여 있는 배들을 보십시오, 배가 썩어가고 있을 정도입니다.』실제 완전히 썩어 선명(船名)인 양진 1호의 페인트 칠마저 희미해진 이 배의 선주 허우영씨(사망당시 42)는 한일어업협정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문마저 도는 주인공. 허씨는 한일어업협정으로 출어해역이 줄어든데다가 자신의 선박이 저속이어서 어획이 원활하지 못하자 홧김에 소주를 너무 많이 마시다가 급사했다는게 주변의 이야기이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고3, 고1짜리 자녀 2명과 함께 고물배 한척만 물려받은 미망인 장윤옥(42)씨 『 같은 어부들이 선창가에 포장마차를 열게 해주어서 라면팔고 커피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하고 박대표앞에서 눈물을 지었다.
남편은 어업협정이후 죽었지만 그간 세월이 흘러 큰 아이는 군에 입대해 있고 둘째는 고 3이 되었다면서 남편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해도 남편을 죽인 한일어업협정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한이 서린 호소를 하고 있다. 장씨의 포장마차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소형기선저인망 어선 해구호(16t)의 선주 김용석씨(47)는 어업협정지도를 가르키며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격분했다.김씨의 주장은 간단했다.『울산 앞바다에서 울릉도, 독도 사이로 그어간 EEZ라인은 울산 앞바다에서 일본의 오끼섬 사이로 그어져야 한다』는 것.『저는 국민학교밖에 못나왔고 30년간 고기만 잡아서 어려운 이야기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산과 대마도 사이 50㎞를 25㎞씩 나누어 가졌다면 독도와 오끼섬 사이의 140㎞를 70㎞씩 나누어 가져야 되는거 아닙니까』김씨는 한일어업협정 이후에 『다대포항은 죽었다』단언한다. 항차에 포항가자미를 잡아 몇천만원의 어획을올렸던 옛날이 다시 돌아올 일이 없다고 체념하고 있다. 쌍소리까지 섞어 정부를 비난한다. 정부가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다고 김씨는 굳게 믿고 있다.다대포 선창가에는 활어를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들 200여명이 활기찬 삶을 살아왔다. 한일어업협정 전까지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기선저인망어선들이 잡아오는 살아 펄펄뛰는 자연산 고기를 사고 팔아 살아왔던 활어 노점상들은 현재 냉장수입물고기를 사고 팔아 생계를 잇고 있다. 수입이 얼마나 줄었느냐는 물음에 『노점상 권리비를 포기하기 아까와서 나와 본다』는 대답이다.『 옛날에는 참 좋았심더. 돈이 도니까 다대포인심도 좋았는데 이제 돈 몇만원 빌리기가 어렵게 되었심더. 빌어먹을 정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한 아주머니의 말이다.돌아서서 나오는 다대포 선창가의 해양경찰대 다대포 지소 입구에 현판이 걸려있다. 『해양주권 확보』 서명운동 자원봉사자 오재욱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