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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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는 숭문고등학교 학생으로써 유도를 배운지 2년 3개월된 학생입니다 지금은 열심이 배우는 중이지만요?.....
그래도 검정 띠랍니다
앞으로 열심이해서 좋은 대학 특기생으로 입학할꺼예요
많은 사랑 해주시고요 열심이 운동 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내 취미는 독서와 영화감상 이예요
   ■유도의 역사


     1.유도의 기원

   

     유도의 기원은 멀리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의식주를 얻거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맨손 맨주먹으로 싸워 왔으며, 이러한 수단들이 체계를 이루어

     현대적 의미의 각종 격투기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유도는 이런 격투기로부터 그 기원이 출발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유도라 부르는 스포츠는 일본의 전통적인 유술을 기초로

     하여 1882년 일본 가노지고로 사범에 의해 근대적 운동으로 체계화 된

     것이며, 메이지 15년에 고도관을 세워 청소년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가노지고로 사범은 유도의 교육과 진흥에 그의 인생을 바쳤고 현대

     유도연맹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1909년부터 그는 30년간 쿠베르탱과 같이 올림픽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올림픽 경기 중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유래된 유도는 참신하고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에 의해 창안되었다.

    

     유도는 현재 근대적인 올림픽 경기로 발전한 격투적인 운동이다.

     유도는 기술이 힘보다 위인 것을 인식케 함으로써 격투기 종목 중에서

     기술을 존중하며 발달 하였다.



     유도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술이 가능하며 그와 동시에 서서 하는 동작

     (메치기)과 누워서 하는 동작(굳치기)이 가능하다. 상대방도 역습 (되치기)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런 면들은 유도를 근대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하며 강한 인상을

     남기게 한다. 유도는 양과 질적으로 좋은 기술을 구사하고 지도할 수

     있는 학교유도로 선택, 재구성되면서 진보하여 결국 근대적인 격투기로

     발달하였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함께 유도가 시작되었으며,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

     함께 끝날 것이다!





2. 한국유도의 발달

   1) 1945년 이전

    

     동양 문화를 배경으로 발생한 유도의 근원은 고구려 초 부터 이며

     고려중엽 숙종(1097~1106)때에 이르러 각저 또는 수박이라고 하여

     무사들의 무예로 시행되었다.

    

     유도가 지금과 같은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은 1882년 일본 강도관

     의 가노지고로 사범에 의하여 현재의 스포츠로 체계화되어 '유도' 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 이다.



     우리 나라에는 1909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최초로

     시행되었으며 특히 1930년 6월에는 연희전문학교 (현:연세대학교)가

     운동장에 자리를 깔고 전 조선 중학교 대항 유도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유도의 보급과 발전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시 유도 조직으로서는 1931년에 조선연무관이 개설되었고 1932년에

     는 조선유도연합회를 결성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에서

     유도강국으로 부강하게 되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중동중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명문교였다

    구한말  파란 많은 격동기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회복하려는 숭고한

    뜻을 품고 백농 최규동선생이 조국광복을 위한 길은 오직 인재 양성에

    있다는 위대한 포부아래 설립된지 96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중동학원 설립자 최규동 선생의 동생인 최우동선생께서는 일본 정규 체육

    대학을 졸업하고 본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유도의 활성화 및 지도

    보급에 앞장서고 심판으로 활동한 내용이 한국 유도 발달사와 한국 유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아래와 같은 화려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명문 중동!

    매트위를 누비는 중동의 사자!

    그 화려한 전적과 공로에 대한 최우동선생의 업적은 한국 유도 발달사

    에 현재까지 빛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길이 빛날 것이다.          

**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 조선 중학교 유도대회 ***

회수
개최일시
우승학교
준우승학교

1
1930.6.21
보성고보
 

2
1931.6.6
보성고보
배재고보

3
1932.6.4
중동학교
보성고보

4
1933.6.3
중동학교
중앙고보

5
1934.6.4
중동학교
경신고보

6
1935.6.1
중동학교
중앙고보

7
1936.6.27
중동학교
숭인상업

8
1937.6.12
보성고보
경성공업

9
1938.5.13
보성고보
계성학교

10
1940.5.24
전적 기록 미비
 

11
1941.5.24
계성학교
중동학교





   ☞ 한국유도발달사 ~ 이향래 123p : (현)한양대학교수. 대한유도회부회장

   ☞ 한국유도사 ~ 이홍종 81~165p : 경기대학교 체육대학장 역임



   ♣ 중동유도부는 학교체육대회의 통제가 극심했던 일제말기인 1929~1941년도

      전 조선 중학교유도대회와 특히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 조선 중학교유도대회

      에서 5년연속 우승하고있었다. 이때 매트위를 누비며 10여년 활동한 중동의

      사자! 명단은 : 김광배, 이정헌, 양희식, 인영환, 정태현, 김계술, 박용수,

      한성율, 조경열, 전영선, 김용덕, 김영선, 김장근, 임응자, 나종환, 이상태,

      임춘수, 이상돈, 최정수, 민준식, 유익무, 최상오, 박래영, 김주항, 이상호,

      남중현, 최재무, 최상두, 이인식, 박용수, 이용수, 김광호, 임응구, 민준식,

      조용기선수등의 활약으로 명성을 날렸다.



   ☞ 동아일보, 1936년 6월 28일 제5599호,p2 기사에는 제7회 대회는 1936년

      6월 27일 중동을 비롯하여 숭인상업, 중앙, 휘문, 보성, 대동팀 6팀이 참가

      하여 진행되었는데 중동이 휘문을 4:2로, 보성을 3:0으로, 숭인을 5:1로

      격파하고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연희전문학교 주최의 제7회 전조선 중학교

      무도대회는 27일 오후 1시부터 연전도장에서 행한 바 다음의 성적으로 중동

      이연승하여 5년째 우승하였다.

  

    ☞ 한국유도발달사. P124~125

       제3회 대회는 1932년 6월 4일 연희전문학교 교정에서 개최되었다.

       참가교는 보성, 배재, 중동, 양정, 경신, 중앙 등 6개교였다. 열띤

       경쟁을 벌인 결과 배재와 중동이 경신과 중앙을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며, 준결승에서는 보성과 중동이 배재와 양정을 제압하였다.

       중동과 보성의 우승 각축은 중동의 승리로 끝나 우승의 영예는 중동이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중동학교는 1936년 제7회 대회까지 무려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유도의 명문학교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 1945년 이전 일제 시대때의 유도는 ....

       일본식민지 시대로 경찰과 중학교 및 그외 몇몇도장이 중심이 되어 한국

       유도 보급 발전에 견인차 역할 내용을 기록으로 보아 알 수 있다.

       특히 각 시도 경찰서 유도장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2) 1945년 이후 ~ 현재

     

      1945년 10월 재경 유도 유단자 100여명은 조선유도연맹

      (대한유도회)을 결성함으로써 다시 한국유도는 부활하게 되었다.

      1946년에 대한학생유도연맹을 발족해 많은 선수를 배출했으며

      1950년 6.25동란으로 10여년 동안 우리사회는 혼란과 시행착오로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도덕관념이 무너지고 재반 질서가 흐트러졌으나

      1953년에는 한국유도의 앞날을  이어나갈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대학과정의 대한유도학교가 설립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유도를 통하여 국민의 심신 연마에 기여하고 민족

      상무 정신을 계승, 현대화하며 체육문화의 창조 및 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재단법인 한국유도원이 발족되었다.



● 한국유도원의 변천 과정



● 대한유도회의 변천 과정



● 대한유도학교의 변천 과정 (현 : 용인대학교 40년사 수록됨)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최고의 체육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 유도학교



    ※ 1953년 유도 중견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지 45주년을 맞이한

       대한유도학교는 체육대학으로 변모하면서, 다시 종합대학인 용인대학교로,

       또 세계 속의 대학으로 꾸준히 급성장 발달 하였다.

       국제수준의 체육시설를 완비하고 국내 최고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경기기술 개발과 함께 과학적 방법으로 기술을 연마

       함으로써 차세대 체육지도자로서의 실력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있는 본교 출신 체육인들과 재학중인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우리나라 체육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며 더욱 노력하고 있다.                   

●유도경기의 발달 과정



   ⊙과학 문명의 발달과 비례하면서 유도 경기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도 경기 초기에는 체급 경기가 아닌 무차별로 시작하였으나 유도 발전의

   촉진을 위하고 국제적 조류에 따라 1964년부터 3체급 (경량급, 경중량급,

   중량급,)으로 나누어 체급별 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으며 그 후 5체급을 거쳐

   현재는 7체급에 이르고 있다.

   그 후 동양에서는 남자 운동 종목으로만 알고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으나

   유도가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지면서 유럽에서는 어린아이 때 부터 남·여 평등

   하게 유도를 시작하고 있으며 제1회 세계 여자 유도 선수권 대회때 부터 여자

   도 똑같이 남자와 체중이 다른 7체급으로 경기를 하고있다.



★남자유도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보급, 발전 되었다고 하지만 여자 유도는

   유럽에서 동양으로 역 보급되었다는 것을 성적으로 보아 알아 볼 수 있다.

    제2회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 참가보고서 1982.12

    단장:김종선(이화여대 교수) 코치:최경택 (선수촌 강화위원)



⊙기술적인 측면



   격투적인 운동으로서 유도의 발전은 기술이 힘보다 우인것을 인식케하여 힘이

   약한 사람이 힘 센 사람을,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을 메치고 또 능가

   한다는 (유능제강) 내용으로 배우고 기술을 존중하면서 발전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도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현재의 기술을 무시할 수 없지만

   유럽에서 제창한 선 체력 후 기술이란 말이 나오고 부터 같은 조건이면 힘이

   센 사람  또는 키 큰 사람이 유리하다는 내용으로 변화하고있다. 또 대한유도회

   경기이사 김정행 교수의 올림픽 관전평  (88년 유도지9.10월호)에 의하면 "「힘

   의 유도」가「기술의 유도」를 눌렀다." 라고 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1.프랑스는 기술은 없으나 체력을 바탕으로한 저돌적인 공격으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

  2.소련은 지구력보다 근력을 이용한 순발력이 뛰어난 스타일

  3.일본과 한국은 체력이 열세인 반면 찬스를 포착, 정확한 기술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이나 한국과 일본이 다같이 갖고 있는 헛점은 만일 선수들이

    결정적 찬스를 만들지 못하면 공격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게 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의 동양권 유도가 상승세에 있는 구라파 유도에

    앞서가는 길은 그들과 대등한 체력 배양 외에는 별다른 묘약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 당시 그 지적은 아주 애리하였다. 이번 올림픽경기를 보면서 유도는 이미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양의 전유물이 아니고 온 세계에 퍼져있는 스포츠임을

    성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 한국유도 최초 해외 시범



    한국유도가 최초로 해외 사절단으로 진출한 것은 1955년 7월에서 10월까지

    3개월간에 걸쳐 구라파지역 순방이었다.

    단장 박정준 7단, 감독 석진경 8단, 주무 방영두 7단, 현역 선수로는

    권용우 5단, 이석도 5단, 현동섭 4단이 선발되었다.

   

●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유도 성적



    유도는 2차대전 이후 급속히 국제화의 길을 걷게 되어, 1956년에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2년마다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대회 경기종목에 유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66년에는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후 여자유도

    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 실시되었다.

    우리 나라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마침내 제12회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박종학선수가 우승한 것을 시점으로 1984년 L.A 올림픽경기

    에서 안병근, 하형주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유도에서 금2(김재엽.이경근), 은1, 동3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강국

    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92년 스페인 바로셀로나 올림픽 경기에서 금1

    (김미정), 은1, 동2개의 성적을,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경기에서 금2

    (전기영, 조민선), 은4, 동2개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유도강국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경기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은2(조인철,

    정부경), 동3개로 근대 올림픽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유도의 역사


     1.유도의 기원

   

     유도의 기원은 멀리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의식주를 얻거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맨손 맨주먹으로 싸워 왔으며, 이러한 수단들이 체계를 이루어

     현대적 의미의 각종 격투기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유도는 이런 격투기로부터 그 기원이 출발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유도라 부르는 스포츠는 일본의 전통적인 유술을 기초로

     하여 1882년 일본 가노지고로 사범에 의해 근대적 운동으로 체계화 된

     것이며, 메이지 15년에 고도관을 세워 청소년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가노지고로 사범은 유도의 교육과 진흥에 그의 인생을 바쳤고 현대

     유도연맹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1909년부터 그는 30년간 쿠베르탱과 같이 올림픽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올림픽 경기 중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유래된 유도는 참신하고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에 의해 창안되었다.

    

     유도는 현재 근대적인 올림픽 경기로 발전한 격투적인 운동이다.

     유도는 기술이 힘보다 위인 것을 인식케 함으로써 격투기 종목 중에서

     기술을 존중하며 발달 하였다.



     유도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술이 가능하며 그와 동시에 서서 하는 동작

     (메치기)과 누워서 하는 동작(굳치기)이 가능하다. 상대방도 역습 (되치기)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런 면들은 유도를 근대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하며 강한 인상을

     남기게 한다. 유도는 양과 질적으로 좋은 기술을 구사하고 지도할 수

     있는 학교유도로 선택, 재구성되면서 진보하여 결국 근대적인 격투기로

     발달하였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함께 유도가 시작되었으며,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

     함께 끝날 것이다!





2. 한국유도의 발달

   1) 1945년 이전

    

     동양 문화를 배경으로 발생한 유도의 근원은 고구려 초 부터 이며

     고려중엽 숙종(1097~1106)때에 이르러 각저 또는 수박이라고 하여

     무사들의 무예로 시행되었다.

    

     유도가 지금과 같은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은 1882년 일본 강도관

     의 가노지고로 사범에 의하여 현재의 스포츠로 체계화되어 '유도' 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 이다.



     우리 나라에는 1909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최초로

     시행되었으며 특히 1930년 6월에는 연희전문학교 (현:연세대학교)가

     운동장에 자리를 깔고 전 조선 중학교 대항 유도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유도의 보급과 발전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시 유도 조직으로서는 1931년에 조선연무관이 개설되었고 1932년에

     는 조선유도연합회를 결성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에서

     유도강국으로 부강하게 되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중동중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명문교였다

    구한말  파란 많은 격동기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회복하려는 숭고한

    뜻을 품고 백농 최규동선생이 조국광복을 위한 길은 오직 인재 양성에

    있다는 위대한 포부아래 설립된지 96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중동학원 설립자 최규동 선생의 동생인 최우동선생께서는 일본 정규 체육

    대학을 졸업하고 본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유도의 활성화 및 지도

    보급에 앞장서고 심판으로 활동한 내용이 한국 유도 발달사와 한국 유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아래와 같은 화려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명문 중동!

    매트위를 누비는 중동의 사자!

    그 화려한 전적과 공로에 대한 최우동선생의 업적은 한국 유도 발달사

    에 현재까지 빛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길이 빛날 것이다.          

**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 조선 중학교 유도대회 ***

회수
개최일시
우승학교
준우승학교

1
1930.6.21
보성고보
 

2
1931.6.6
보성고보
배재고보

3
1932.6.4
중동학교
보성고보

4
1933.6.3
중동학교
중앙고보

5
1934.6.4
중동학교
경신고보

6
1935.6.1
중동학교
중앙고보

7
1936.6.27
중동학교
숭인상업

8
1937.6.12
보성고보
경성공업

9
1938.5.13
보성고보
계성학교

10
1940.5.24
전적 기록 미비
 

11
1941.5.24
계성학교
중동학교





   ☞ 한국유도발달사 ~ 이향래 123p : (현)한양대학교수. 대한유도회부회장

   ☞ 한국유도사 ~ 이홍종 81~165p : 경기대학교 체육대학장 역임



   ♣ 중동유도부는 학교체육대회의 통제가 극심했던 일제말기인 1929~1941년도

      전 조선 중학교유도대회와 특히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 조선 중학교유도대회

      에서 5년연속 우승하고있었다. 이때 매트위를 누비며 10여년 활동한 중동의

      사자! 명단은 : 김광배, 이정헌, 양희식, 인영환, 정태현, 김계술, 박용수,

      한성율, 조경열, 전영선, 김용덕, 김영선, 김장근, 임응자, 나종환, 이상태,

      임춘수, 이상돈, 최정수, 민준식, 유익무, 최상오, 박래영, 김주항, 이상호,

      남중현, 최재무, 최상두, 이인식, 박용수, 이용수, 김광호, 임응구, 민준식,

      조용기선수등의 활약으로 명성을 날렸다.



   ☞ 동아일보, 1936년 6월 28일 제5599호,p2 기사에는 제7회 대회는 1936년

      6월 27일 중동을 비롯하여 숭인상업, 중앙, 휘문, 보성, 대동팀 6팀이 참가

      하여 진행되었는데 중동이 휘문을 4:2로, 보성을 3:0으로, 숭인을 5:1로

      격파하고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연희전문학교 주최의 제7회 전조선 중학교

      무도대회는 27일 오후 1시부터 연전도장에서 행한 바 다음의 성적으로 중동

      이연승하여 5년째 우승하였다.

  

    ☞ 한국유도발달사. P124~125

       제3회 대회는 1932년 6월 4일 연희전문학교 교정에서 개최되었다.

       참가교는 보성, 배재, 중동, 양정, 경신, 중앙 등 6개교였다. 열띤

       경쟁을 벌인 결과 배재와 중동이 경신과 중앙을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며, 준결승에서는 보성과 중동이 배재와 양정을 제압하였다.

       중동과 보성의 우승 각축은 중동의 승리로 끝나 우승의 영예는 중동이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중동학교는 1936년 제7회 대회까지 무려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유도의 명문학교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 1945년 이전 일제 시대때의 유도는 ....

       일본식민지 시대로 경찰과 중학교 및 그외 몇몇도장이 중심이 되어 한국

       유도 보급 발전에 견인차 역할 내용을 기록으로 보아 알 수 있다.

       특히 각 시도 경찰서 유도장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2) 1945년 이후 ~ 현재

     

      1945년 10월 재경 유도 유단자 100여명은 조선유도연맹

      (대한유도회)을 결성함으로써 다시 한국유도는 부활하게 되었다.

      1946년에 대한학생유도연맹을 발족해 많은 선수를 배출했으며

      1950년 6.25동란으로 10여년 동안 우리사회는 혼란과 시행착오로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도덕관념이 무너지고 재반 질서가 흐트러졌으나

      1953년에는 한국유도의 앞날을  이어나갈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대학과정의 대한유도학교가 설립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유도를 통하여 국민의 심신 연마에 기여하고 민족

      상무 정신을 계승, 현대화하며 체육문화의 창조 및 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재단법인 한국유도원이 발족되었다.



● 한국유도원의 변천 과정



● 대한유도회의 변천 과정



● 대한유도학교의 변천 과정 (현 : 용인대학교 40년사 수록됨)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최고의 체육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 유도학교



    ※ 1953년 유도 중견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지 45주년을 맞이한

       대한유도학교는 체육대학으로 변모하면서, 다시 종합대학인 용인대학교로,

       또 세계 속의 대학으로 꾸준히 급성장 발달 하였다.

       국제수준의 체육시설를 완비하고 국내 최고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경기기술 개발과 함께 과학적 방법으로 기술을 연마

       함으로써 차세대 체육지도자로서의 실력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있는 본교 출신 체육인들과 재학중인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우리나라 체육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며 더욱 노력하고 있다.                   

●유도경기의 발달 과정



   ⊙과학 문명의 발달과 비례하면서 유도 경기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도 경기 초기에는 체급 경기가 아닌 무차별로 시작하였으나 유도 발전의

   촉진을 위하고 국제적 조류에 따라 1964년부터 3체급 (경량급, 경중량급,

   중량급,)으로 나누어 체급별 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으며 그 후 5체급을 거쳐

   현재는 7체급에 이르고 있다.

   그 후 동양에서는 남자 운동 종목으로만 알고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으나

   유도가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지면서 유럽에서는 어린아이 때 부터 남·여 평등

   하게 유도를 시작하고 있으며 제1회 세계 여자 유도 선수권 대회때 부터 여자

   도 똑같이 남자와 체중이 다른 7체급으로 경기를 하고있다.



★남자유도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보급, 발전 되었다고 하지만 여자 유도는

   유럽에서 동양으로 역 보급되었다는 것을 성적으로 보아 알아 볼 수 있다.

    제2회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 참가보고서 1982.12

    단장:김종선(이화여대 교수) 코치:최경택 (선수촌 강화위원)



⊙기술적인 측면



   격투적인 운동으로서 유도의 발전은 기술이 힘보다 우인것을 인식케하여 힘이

   약한 사람이 힘 센 사람을,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을 메치고 또 능가

   한다는 (유능제강) 내용으로 배우고 기술을 존중하면서 발전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도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현재의 기술을 무시할 수 없지만

   유럽에서 제창한 선 체력 후 기술이란 말이 나오고 부터 같은 조건이면 힘이

   센 사람  또는 키 큰 사람이 유리하다는 내용으로 변화하고있다. 또 대한유도회

   경기이사 김정행 교수의 올림픽 관전평  (88년 유도지9.10월호)에 의하면 "「힘

   의 유도」가「기술의 유도」를 눌렀다." 라고 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1.프랑스는 기술은 없으나 체력을 바탕으로한 저돌적인 공격으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

  2.소련은 지구력보다 근력을 이용한 순발력이 뛰어난 스타일

  3.일본과 한국은 체력이 열세인 반면 찬스를 포착, 정확한 기술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이나 한국과 일본이 다같이 갖고 있는 헛점은 만일 선수들이

    결정적 찬스를 만들지 못하면 공격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게 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의 동양권 유도가 상승세에 있는 구라파 유도에

    앞서가는 길은 그들과 대등한 체력 배양 외에는 별다른 묘약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 당시 그 지적은 아주 애리하였다. 이번 올림픽경기를 보면서 유도는 이미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양의 전유물이 아니고 온 세계에 퍼져있는 스포츠임을

    성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 한국유도 최초 해외 시범



    한국유도가 최초로 해외 사절단으로 진출한 것은 1955년 7월에서 10월까지

    3개월간에 걸쳐 구라파지역 순방이었다.

    단장 박정준 7단, 감독 석진경 8단, 주무 방영두 7단, 현역 선수로는

    권용우 5단, 이석도 5단, 현동섭 4단이 선발되었다.

   

●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유도 성적



    유도는 2차대전 이후 급속히 국제화의 길을 걷게 되어, 1956년에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2년마다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대회 경기종목에 유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66년에는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후 여자유도

    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 실시되었다.

    우리 나라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마침내 제12회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박종학선수가 우승한 것을 시점으로 1984년 L.A 올림픽경기

    에서 안병근, 하형주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유도에서 금2(김재엽.이경근), 은1, 동3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강국

    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92년 스페인 바로셀로나 올림픽 경기에서 금1

    (김미정), 은1, 동2개의 성적을,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경기에서 금2

    (전기영, 조민선), 은4, 동2개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유도강국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경기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은2(조인철,

    정부경), 동3개로 근대 올림픽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유도의 역사


     1.유도의 기원

   

     유도의 기원은 멀리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의식주를 얻거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맨손 맨주먹으로 싸워 왔으며, 이러한 수단들이 체계를 이루어

     현대적 의미의 각종 격투기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유도는 이런 격투기로부터 그 기원이 출발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유도라 부르는 스포츠는 일본의 전통적인 유술을 기초로

     하여 1882년 일본 가노지고로 사범에 의해 근대적 운동으로 체계화 된

     것이며, 메이지 15년에 고도관을 세워 청소년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가노지고로 사범은 유도의 교육과 진흥에 그의 인생을 바쳤고 현대

     유도연맹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1909년부터 그는 30년간 쿠베르탱과 같이 올림픽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올림픽 경기 중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유래된 유도는 참신하고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에 의해 창안되었다.

    

     유도는 현재 근대적인 올림픽 경기로 발전한 격투적인 운동이다.

     유도는 기술이 힘보다 위인 것을 인식케 함으로써 격투기 종목 중에서

     기술을 존중하며 발달 하였다.



     유도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술이 가능하며 그와 동시에 서서 하는 동작

     (메치기)과 누워서 하는 동작(굳치기)이 가능하다. 상대방도 역습 (되치기)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런 면들은 유도를 근대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하며 강한 인상을

     남기게 한다. 유도는 양과 질적으로 좋은 기술을 구사하고 지도할 수

     있는 학교유도로 선택, 재구성되면서 진보하여 결국 근대적인 격투기로

     발달하였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함께 유도가 시작되었으며,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

     함께 끝날 것이다!





2. 한국유도의 발달

   1) 1945년 이전

    

     동양 문화를 배경으로 발생한 유도의 근원은 고구려 초 부터 이며

     고려중엽 숙종(1097~1106)때에 이르러 각저 또는 수박이라고 하여

     무사들의 무예로 시행되었다.

    

     유도가 지금과 같은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은 1882년 일본 강도관

     의 가노지고로 사범에 의하여 현재의 스포츠로 체계화되어 '유도' 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 이다.



     우리 나라에는 1909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최초로

     시행되었으며 특히 1930년 6월에는 연희전문학교 (현:연세대학교)가

     운동장에 자리를 깔고 전 조선 중학교 대항 유도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유도의 보급과 발전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당시 유도 조직으로서는 1931년에 조선연무관이 개설되었고 1932년에

     는 조선유도연합회를 결성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에서

     유도강국으로 부강하게 되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중동중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명문교였다

    구한말  파란 많은 격동기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회복하려는 숭고한

    뜻을 품고 백농 최규동선생이 조국광복을 위한 길은 오직 인재 양성에

    있다는 위대한 포부아래 설립된지 96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중동학원 설립자 최규동 선생의 동생인 최우동선생께서는 일본 정규 체육

    대학을 졸업하고 본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유도의 활성화 및 지도

    보급에 앞장서고 심판으로 활동한 내용이 한국 유도 발달사와 한국 유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아래와 같은 화려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도명문 중동!

    매트위를 누비는 중동의 사자!

    그 화려한 전적과 공로에 대한 최우동선생의 업적은 한국 유도 발달사

    에 현재까지 빛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길이 빛날 것이다.          

**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 조선 중학교 유도대회 ***

회수
개최일시
우승학교
준우승학교

1
1930.6.21
보성고보
 

2
1931.6.6
보성고보
배재고보

3
1932.6.4
중동학교
보성고보

4
1933.6.3
중동학교
중앙고보

5
1934.6.4
중동학교
경신고보

6
1935.6.1
중동학교
중앙고보

7
1936.6.27
중동학교
숭인상업

8
1937.6.12
보성고보
경성공업

9
1938.5.13
보성고보
계성학교

10
1940.5.24
전적 기록 미비
 

11
1941.5.24
계성학교
중동학교





   ☞ 한국유도발달사 ~ 이향래 123p : (현)한양대학교수. 대한유도회부회장

   ☞ 한국유도사 ~ 이홍종 81~165p : 경기대학교 체육대학장 역임



   ♣ 중동유도부는 학교체육대회의 통제가 극심했던 일제말기인 1929~1941년도

      전 조선 중학교유도대회와 특히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 조선 중학교유도대회

      에서 5년연속 우승하고있었다. 이때 매트위를 누비며 10여년 활동한 중동의

      사자! 명단은 : 김광배, 이정헌, 양희식, 인영환, 정태현, 김계술, 박용수,

      한성율, 조경열, 전영선, 김용덕, 김영선, 김장근, 임응자, 나종환, 이상태,

      임춘수, 이상돈, 최정수, 민준식, 유익무, 최상오, 박래영, 김주항, 이상호,

      남중현, 최재무, 최상두, 이인식, 박용수, 이용수, 김광호, 임응구, 민준식,

      조용기선수등의 활약으로 명성을 날렸다.



   ☞ 동아일보, 1936년 6월 28일 제5599호,p2 기사에는 제7회 대회는 1936년

      6월 27일 중동을 비롯하여 숭인상업, 중앙, 휘문, 보성, 대동팀 6팀이 참가

      하여 진행되었는데 중동이 휘문을 4:2로, 보성을 3:0으로, 숭인을 5:1로

      격파하고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연희전문학교 주최의 제7회 전조선 중학교

      무도대회는 27일 오후 1시부터 연전도장에서 행한 바 다음의 성적으로 중동

      이연승하여 5년째 우승하였다.

  

    ☞ 한국유도발달사. P124~125

       제3회 대회는 1932년 6월 4일 연희전문학교 교정에서 개최되었다.

       참가교는 보성, 배재, 중동, 양정, 경신, 중앙 등 6개교였다. 열띤

       경쟁을 벌인 결과 배재와 중동이 경신과 중앙을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며, 준결승에서는 보성과 중동이 배재와 양정을 제압하였다.

       중동과 보성의 우승 각축은 중동의 승리로 끝나 우승의 영예는 중동이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중동학교는 1936년 제7회 대회까지 무려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유도의 명문학교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 1945년 이전 일제 시대때의 유도는 ....

       일본식민지 시대로 경찰과 중학교 및 그외 몇몇도장이 중심이 되어 한국

       유도 보급 발전에 견인차 역할 내용을 기록으로 보아 알 수 있다.

       특히 각 시도 경찰서 유도장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2) 1945년 이후 ~ 현재

     

      1945년 10월 재경 유도 유단자 100여명은 조선유도연맹

      (대한유도회)을 결성함으로써 다시 한국유도는 부활하게 되었다.

      1946년에 대한학생유도연맹을 발족해 많은 선수를 배출했으며

      1950년 6.25동란으로 10여년 동안 우리사회는 혼란과 시행착오로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도덕관념이 무너지고 재반 질서가 흐트러졌으나

      1953년에는 한국유도의 앞날을  이어나갈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대학과정의 대한유도학교가 설립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유도를 통하여 국민의 심신 연마에 기여하고 민족

      상무 정신을 계승, 현대화하며 체육문화의 창조 및 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재단법인 한국유도원이 발족되었다.



● 한국유도원의 변천 과정



● 대한유도회의 변천 과정



● 대한유도학교의 변천 과정 (현 : 용인대학교 40년사 수록됨)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최고의 체육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 유도학교



    ※ 1953년 유도 중견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지 45주년을 맞이한

       대한유도학교는 체육대학으로 변모하면서, 다시 종합대학인 용인대학교로,

       또 세계 속의 대학으로 꾸준히 급성장 발달 하였다.

       국제수준의 체육시설를 완비하고 국내 최고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경기기술 개발과 함께 과학적 방법으로 기술을 연마

       함으로써 차세대 체육지도자로서의 실력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있는 본교 출신 체육인들과 재학중인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우리나라 체육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며 더욱 노력하고 있다.                   

●유도경기의 발달 과정



   ⊙과학 문명의 발달과 비례하면서 유도 경기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도 경기 초기에는 체급 경기가 아닌 무차별로 시작하였으나 유도 발전의

   촉진을 위하고 국제적 조류에 따라 1964년부터 3체급 (경량급, 경중량급,

   중량급,)으로 나누어 체급별 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으며 그 후 5체급을 거쳐

   현재는 7체급에 이르고 있다.

   그 후 동양에서는 남자 운동 종목으로만 알고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으나

   유도가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지면서 유럽에서는 어린아이 때 부터 남·여 평등

   하게 유도를 시작하고 있으며 제1회 세계 여자 유도 선수권 대회때 부터 여자

   도 똑같이 남자와 체중이 다른 7체급으로 경기를 하고있다.



★남자유도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보급, 발전 되었다고 하지만 여자 유도는

   유럽에서 동양으로 역 보급되었다는 것을 성적으로 보아 알아 볼 수 있다.

    제2회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 참가보고서 1982.12

    단장:김종선(이화여대 교수) 코치:최경택 (선수촌 강화위원)



⊙기술적인 측면



   격투적인 운동으로서 유도의 발전은 기술이 힘보다 우인것을 인식케하여 힘이

   약한 사람이 힘 센 사람을,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을 메치고 또 능가

   한다는 (유능제강) 내용으로 배우고 기술을 존중하면서 발전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도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현재의 기술을 무시할 수 없지만

   유럽에서 제창한 선 체력 후 기술이란 말이 나오고 부터 같은 조건이면 힘이

   센 사람  또는 키 큰 사람이 유리하다는 내용으로 변화하고있다. 또 대한유도회

   경기이사 김정행 교수의 올림픽 관전평  (88년 유도지9.10월호)에 의하면 "「힘

   의 유도」가「기술의 유도」를 눌렀다." 라고 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1.프랑스는 기술은 없으나 체력을 바탕으로한 저돌적인 공격으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

  2.소련은 지구력보다 근력을 이용한 순발력이 뛰어난 스타일

  3.일본과 한국은 체력이 열세인 반면 찬스를 포착, 정확한 기술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이나 한국과 일본이 다같이 갖고 있는 헛점은 만일 선수들이

    결정적 찬스를 만들지 못하면 공격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게 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의 동양권 유도가 상승세에 있는 구라파 유도에

    앞서가는 길은 그들과 대등한 체력 배양 외에는 별다른 묘약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 당시 그 지적은 아주 애리하였다. 이번 올림픽경기를 보면서 유도는 이미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양의 전유물이 아니고 온 세계에 퍼져있는 스포츠임을

    성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 한국유도 최초 해외 시범



    한국유도가 최초로 해외 사절단으로 진출한 것은 1955년 7월에서 10월까지

    3개월간에 걸쳐 구라파지역 순방이었다.

    단장 박정준 7단, 감독 석진경 8단, 주무 방영두 7단, 현역 선수로는

    권용우 5단, 이석도 5단, 현동섭 4단이 선발되었다.

   

●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유도 성적



    유도는 2차대전 이후 급속히 국제화의 길을 걷게 되어, 1956년에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2년마다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대회 경기종목에 유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66년에는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후 여자유도

    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 실시되었다.

    우리 나라는 1960년대 이후 꾸준히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마침내 제12회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박종학선수가 우승한 것을 시점으로 1984년 L.A 올림픽경기

    에서 안병근, 하형주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유도에서 금2(김재엽.이경근), 은1, 동3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강국

    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92년 스페인 바로셀로나 올림픽 경기에서 금1

    (김미정), 은1, 동2개의 성적을,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경기에서 금2

    (전기영, 조민선), 은4, 동2개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적인 유도강국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경기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은2(조인철,

    정부경), 동3개로 근대 올림픽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우리집은요..
아빠 엄마 형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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