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대가 왜 필요한가? 혁대에 의한 교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사람을 교화하면 그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안 하면 그 반대로 해롭게 하는 것이고. 그 반대의 공식 (公式)보다 이 공식이 보통 더 정확하다. 나는 이 공식에 대한 반박의 시도를 해본 일도, 솔직히 없다. 여러분들 중에서 그런 시도를 했다고 나에게 탓을 덮 어씌우려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문제들에 대한 의식이 둔화되어간다. 완전히 둔해질 정 도로 말이다. 어떤 효과적인 과정도 그 생산적 도구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 지 마시기를! 우리는 진보주의의 길에서 바로 이것을 까먹은 것이다. 도구를 까먹었 다. 더러운 물과 함께 아름다운 아이를 버려버렸다.

기억하시라! 혁대라는 마술적인 단어를. 아이 마음의 부드러운 줄들을 조율하는 가장 긴요한 악기는 혁대다. 이 악기를 가지고 가장 쉬운 곡을 제대로 해도, 그 긍정적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원하고 아름다운, 위대한 것을 접했을 때의 카타르시스와 비교될 만한 효과다. 혁대여, 위대하고 겸손하고 망각된 혁대여...

내 말을 믿지 않으시면, 유연성이 있는 위대한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생각해보시기 를. 사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을 악기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의 혁대와의 대화를 나누면서도 보냈다. 우리의 또 한 명의 친구인 베트호벤도, 늘그막 시절까지 친구, 안면이 있는 이들, 존경하는 청중들을 혁대로 혼내주려고 노력했다. 청중뿐인 가? 그가 그의 영웅적인 5번 교향곡을 두 번째로 지휘할 때 지휘봉 대신에 혁대를 손 에 쥐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러시아인들이 왠지 조금 싫어하는 단구 (短 軀)의 작곡가 바그너를 생각해보자. 그가 자신의 악보를 출판하는 출판사 사장과 자신 의 후원자들을 - 예컨대 바바리의 왕이었던 류드위그를 - 사무실 입구에서 혁대를 손 에 쥔 모습으로 "영접"했다. 그렇게 해야 사장들이 당장 출판을 시작하고 후원자들이 거금을 내주었다. 위대한 에리크 사티 작곡가도, 음악 아카데미에서 1889년에 멘델손 의 "터키 행진곡"을 16 개의 팽팽한 혁대로 연주할 때부터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혁대금" (革帶琴)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악기는, 그 후에 그의 팬인 학부모들이 그 악기를 개별적인 혁대로 찢어버릴 때까지 10여 년 연주됐다.

물론, 저는 자그마한 적자 (赤子)들을 매일씩 혁대로 때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 른 예술의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혁대는 위대한 정신의 축제로, 달력의 빨간 날짜로 남아야 한다. 사실, 혁대를 드는 날을 아예 달력에서 정해도 된다. 노동의 날 5월1일, 혁명의 날 11월7일 등등처럼. 그렇다면, 그 날짜는 민중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 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는, 그만큼 결과가 끔찍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18세기의 프랑스 사람들이 계몽 철학자 (볼테르 등)의 영향으로 정기적 인 혁대 사용을 폐지해버리고 극단적인 경우에만 아무렇게나 아이를 무거운 걸로 때 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몇 십 년 후에 그 무거운 것으로 왕가의 감옥을 쳐부수고, 그 다음에 혁대 대신에 단두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어떤가? 농노를 해방 시킨 알렉산드르 2세가 1861년에 혁대를 폐지했다가 몇 십 년 후에 폭탄을 맞아 죽게 됐고, 그 백성들이 온갖 무기를 사용해 가면서 서로를 피폐케 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왜 교훈을 주지 않는가? 안 된다! 인생 중간 - 내지 끝 -의 교수대보다는 혁대는 훨씬 낫다. 여러분! 재산을 둘러싼 일체 분쟁들을 잠깐 중지들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는 혁대를 중심으로 뭉치시기를! 새로운 부드러운 후속 세대 만세! 우리를 부드 럽게 만드는 혁대 만세!

제 글을 바르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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