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重力)

유리 한인 (작곡가; 무직)

"무거운" 음악과 "가벼운" 음악을 이야기할 때, 다들 다 아는 듯한 폼을 잡는다. 설명

을 안 해도 다 이해된다는 것처럼. 그러나, 그러한 중대한 문제들은 이론성과 구체성

을 요구한다. 숨어서 해결하거나 불문에 부치면 안 되는 문제라서... 특히 음악처럼 시

끄러운 것에 대해서 이론적·구체적 접근이 필요하단 말이다.

본질을 따지자면, "음악"이란 것이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한 소리, 공기 등의 허공

의 움직임, 그리고 소리를 내는 곳에 너무 가까이 와서 고막이 움직이기 시작한 - 그

래서 "청중"으로 불러지는 - 사람들의 느낌이다. 그러나, 공기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무겁다", "가볍다"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규정할 수 있는가? 답하노라, 상트페테르부

르크의 "센노이"시장과 "말체브"시장에서 해본 몇 개 실험의 결과인 즉, 예,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가벼운" 음악의 경우에는, 그 소리들이 줄이나 건반을 치자 위로 따나버려 대기의 맨

위까지 날아간다. 거기에까지 날아가서 수포처럼 터진다. 그러나, "심각성 음악"이 그

반대로 악기에서 땅으로 떨어져 거기에다 기어다녔다가 듣는 사람을 찾아 그 몸에 달

라붙어 귀, 코, 눈을 거의 밀폐시켜버린다...

(내가 무얼 이야기했는가? 내가 말을 한다는 그 사실을, 나 자신도 가끔 못 믿는다)

그러나, 다시 물리학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경·중 음악 사이의 차이를 미미하

다고 봐야겠지요. 미미하다라고 하기보다도, 우리 억지로 갖다 붙인, 우리의 생리적

감각의 차이지, 물리적 차이는 아니다.

(이 몹쓸놈아, 입을 닥칠 때가 아직 안 왔나?)

소위 "심각성 음악" (심각하게 독한 음악?)을 보통 하체에 힘을 주어 안락 의자에 깊

이 앉아 있는 자세로 듣곤 한다. 얼굴도 머리도 캄캄해져 땅으로 기울어진다. 어찌 할

수 없이 손 - 내지 다른 막대기로 - 턱을 괴어야 한다.

...소위 "심각성 음악"을 보통 의자에 깊이 앉아 자꾸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약간의 기침

을 하면서 귀의 아랫부분으로 듣는다. 그렇게 기침을 하다가 중병에 걸리기도 하고

큰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대량학살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겹게도 의미 없는 명칭이

지만, "심각성 음악"이라는 명칭에 붙여진 것이다. 듣다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

이다.

...소위 "심각성 음악"을, 환자 상태의 심각함에 따라 앉거나 약간 눕거나 완전히 누워

서 듣는다. 가장 심각한 - 무거운 - 작품 (진혼곡이나 느린 행진곡)을, 차라리 죽어서

관속에서 누워서 듣는 편이 더 낫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독일의 "위대한 관현악

작곡가" (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브람스, 바그너, 브루크너 등)의 작품을 들어야 한

다.

(나는 벌서 30분이나 침묵해서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지요? 괜히 "심각성 음악"을 건드린 것이지요? 그러한 이

야기를 꺼낸 것은, 경망스러운 행동으로 자신을 더럽힌 짓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심각성 음악"이 가하는 마음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보통 그것을 휠체어

에 앉아 전신·부분 마취를 당해서 듣는다. 특별히 어려운 경우에는, 듣는 사람을 의

자에다 묶어놓음으로서 지휘자와 타악기 연주자들의 기분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연주

가 끝나자 단원들이 악기를 끌고 무대를 내린다. 내리면서 죽은 이처럼 침묵한다. 그

러나, 경직된 얼굴 표정과 침묵을, 아주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는 것도 인정해야 할 사

실이다.

"가벼운 음악"이 그 반대다. 전통대로, "가벼운 음악"을 보통 춤을 추면서, 가벼운 걸

음으로 배회하면서 듣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걷기에, 듣는 사람들이 쾌감을 느낀

다. 쾌감을 느끼다가 죽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지만, "가벼운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

들이 결국 죽는 것만큼 맞는 이야기다. 그 죽음이 예술사에 해약을 끼치고... 그렇다고

놀라지 마시기를. 듣는 사람들이 대개 다 예술을 해치니까.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내가 말하는 소리를 이미 거의 못 듣는다. 이미 이 글을 마치고 신문지를 찢어버릴

때가 온 것 같다. 그렇게 해야 단기간이나마 행복감을 얻는다).

결론은.. 물론, 경·중 음악 사이에 아무런 차이점이 없고, 구별하지 못하는 두 개의

개념으로 봐야 마땅하다. 아리따운 여성과 함께 두 번이나 그 누명이 자자한 베르디

의 진혼곡의 몇 개의 악장이라도 듣고 같이 춤을 춰보세요! 그러다가 스트라우스나

그 아들의 볼카를 듣다가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니까 그러한 심각하지도 못한 난

센스를 가지고 머리를 무겁게 할 필요가 있는가?

...답을 안 해도 된다. 내가 그 답을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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