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KOREAN] : 1.버려진 노인들(old people) 2.무목적시대(no purpose) 3.원시인(wonsiin) 4.야만의 풍습( yaman) 5.생존포로(survived p.o.w) 6.황색도시(yellow city, 미국 아시안 작가 특집작!!) -7.-해방공간(free zone)--
[IN ENGLISH] : --YELLOW CITY--- --PAPER GRANDMOTHER-----HUNCHBACK(Published CD in Slovakia!!)-- --- --SURVIVED P.O.W-- - Everyday love story ('박무직 선생의 최종결론') - WRITER'S Diary -------------------------
이 이야기는 현재 이 순간에도 도시의 뒷골목에서 그리고 바로 눈 앞의 길거리에
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우리를 낳고 길러준 어미 아비들이, 또 우리의 할아
버지 할머니들이 그 자식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소외당하고 버림받고 있는
현실을 쓴 것이다.
거리에 낯선 바람이 불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올리며 한
할머니가 겨울 낙엽을 태우고 있었다. 이른바 극빈자 보호 조치로 오늘 이 할머
니는 거리 청소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 할머니 옆에는 다른 할머니와 또 다른
할머니들과 그리고 몇몇 할아버지들이 둑방길 근처에 버려진 휴지들을 줍고 또
낙엽을 쓸어 모으고 있다. 따뜻한 겨울 햇살을 피해서라기보다는 찬 겨울 바람을
피하기 위해 머리와 귀를 하얀 수건으로 덥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은 보통 모자나
방한용 귀덮개가 달린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다. 마치 세상일들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하루 벌어서 들어 오는 돈, 이른바 일당 15000원.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없어서
는 안 될 살기 위해서 꼭 벌어야 할 돈이었다.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는 되
어야 끝나는 중노동이었다.
이 할머니는 근처 움막과 같은 비닐 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도
식구들이 있었건만 모두 이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이 모두
결 혼해서 버젓이 살아 있건만 어느 쪽에서도 찾아가지도 찾아오지도 않는다. 벌
써 7년째, 서로 아무 소식 없이 지낸다. 그것이 아들과 딸들에게는 좋은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내쫓은 것이다. 집은커녕 생활비
마저 주지 않으니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자식들을 미워만 할 수 없다. 제발 자신이 같이 살지 않
더라도 모두 잘 살아나가기만 해주면 자신은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 나가리라 생각했다.
이 생활에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낯설기만 했던 것들도 익숙
해져서 더 이상 서글프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가 눈을 감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신의 복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자꾸만 눈에 삼삼한 손자 녀석들의 모습. 큰 아들에게서 난 손자는
이제 여덟 살이 되었겠지. 그 녀석 돌 잔치를 하자마자 헤어졌으니까. 그 녀석 기
저귀는 내가 다 갈아주고 빨았었지……, 그렇지만 하나도 힘든 줄 모르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 때 제 어미와 제 아비는 바깥일을 하느라고 집에는 나와 손자 영환
이 둘뿐이었지, 할머니는 행복했던 그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영환이 말고도
동생 영수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제껏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할머
니는 멀리 지방으로 간 두 딸들에게 이미 여러 손주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이미 그런 손자와 손녀들을 그려보고 또 생각
하면서 잠을 청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꿈 속에서 모든 손자들을 다 만나볼 수
가 있었다. 손자들은 할머니를 아주 잘 따랐다. 언제나 잘 놀아주는 친구요 또한
사탕이나 떡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꺼내주는 요술 할머니였다. 그러나 아무도 실
제 만나지는 못했다. 그저 가끔 아니 매일 꿈처럼 그려보는 것이었다.
영환이와 영수 말고는 이름도 모르고 보지도 못한 할머니와 손자 손녀들. 할머
니의 나이 이미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아 있지 안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면 죽기 전에 그 손자 손녀들 얼굴이나 한번 어루만져 보
는 것이 마지막 남은 소원이었다. 이 할머니 외에도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도
사정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것도 들어서 다 알게 되었다. 모두가 쫓겨난 노인
들이 이렇게 양로원처럼 모여 살게 된 것이었다.
할머니 이름은 이순복이었다. 나이 열 아홉에 시집와 모두 뒤늦게 자식 셋을
본 할머니였지만 왜놈들 밑에서나 육이오 전쟁통에도 그 자식들 굶기지 않고 길
러내었던 것이다. 남편은 전쟁 때 국군에 들어간 후 행방불명이 되어 혼자서 그
자식들을 키우며 남편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했건만 남편은 이
날 이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이제는 죽은 사람으로 체념하고 작년 추석 때부터는
남몰래 남편의 제사상을 차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두 있어 준다면 허망한 제사는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큰 아들 집은 같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하루는, 손자 영환이가 보고 싶어 찾
아 가보았지만 이미 이사를 하고 난 다음이라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만 딱아내며 그 먼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
었다. 왜 그리 슬프던지, 왜 그리 그 날 따라 눈물이 자꾸 나던지, 이제는 영환이
마저 못 볼 것이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런
살아갈 보람도 없는 듯했다. 뭘 믿고 이제 이 낡은 육신을 먹여 살리며 살아나간
다는 말인가? 이순복 할머니는 그 날 이후 돈벌이도 행상도 나가지 않고 움막 같
은 방 안에만 갇혀 있었다. 그리고 밥 한 술 뜨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면서는 정
신이 오히려 아늑해지고 보이지 않던 남편이 꿈 속이 자주 나타났다. 이렇게 죽
으면 오히려 편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순복 할머니가 거의 의식이 가물거
릴 무렵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던 자주 같이 일을 나가곤 했던 김순
옥 할머니가 이상히 여겨 한번 들러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겨우 이순복 할머니
는 물 몇 모금을 마시고, 미음을 조금씩 먹으면서 다시 살아 가게 되었다.
김순옥 할머니는 그야말로 제 발로 걸어서 집을 나온 것이었다. 며느리 구박에
자식마저 여편네를 거드니 더 이상 그런 꼴을 참지 못해 하루 아침에 보따리를
싸들고 뛰쳐나왔다. 사글세 방을 잡아주고 편히 사시라고 하던 이순복 할머니의
자식이나 며느리보다는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글세 방에서는 불과
석 달밖에 살 수 없는 돈만을 이순복 할머니는 받았으니까. 그래서 그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미리 이 할머니는 이 움막 같은 비닐 하우스로 들어왔던 것이었
다.
하루를 살기 위해 무료를 달래기 위해 시름을 잊기 위해 오늘도 이순복 할머니
는 작업을 나왔다. 깡마른 얼굴에 여전히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러니 오늘은 자기
를 구해준 김순옥 할머니도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낙엽을 줍고 휴지를 줍는데
말벗을 할 동무가 생겨 심심하지 않았다.
이 겨울을 넘기고 나면 봄은 오겠건만 그들 두 할머니의 가슴 속에는 늘 겨울
만 남아 있었다. 김순옥 할머니는 바로 옆에서 종이 한 장 줍는데도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다. 잦은 기침과 가래 끓는 쉰 목소리, 김 할머니는 늘 가슴을
주먹으로 탁탁 치며 가슴이 답답한 것을 물리쳐 보려고 했다. 폐병을 앓아도 단
단히 앓고 있다고 이 할머니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신도 어찔어찔한 현기증에
지독한 소화불량과 오른쪽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통증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이
마와 등줄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병원은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래, 영감은 어떻게 되었수?"
이 할머니가 김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난리 때 죽었지요. 말로는 미군기 폭격이라더구만..., 그게 평양을 쑥대 밭으로
만드는데, 하루종일 요강 항아리 만한 쇳덩어리가 하늘에서 말도 못하게 떨어
지고..., 그 때 아들 하나 딸 하나도 저희 아바이 따라 저 세상으로 같지비......"
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자 목이 메여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할머니는 그걸
바라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래서 김 할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을 데리고 남
으로 넘어와서 죽을 고생하며 아들을 키우고 장가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아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었다.
그 때 저 쪽에서 반장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딱딱거리기 전에 하던
이야기를 두 할머니는 멈추고 일어섰다. 손에는 커다란 비닐 주머니가 쥐어져 있
었다.
저녁이 되면서 슬슬 눈발이 나리고 있었다. 노인들은 이제 버려진 휴지와 낙엽
줍기를 멈추고 제각기 가지고 온 도시락과 물병을 들고 흩어졌다. 김순옥 할머니
는 거친 기침을 쏟아내고 있었다. 눈바람이 그의 약한 폐를 쓸어내기 때문이었
다. 그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이순복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등을 탁탁 세
게 때려주었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자기들의 움막을 향해 걸어 갔다. 어느 새 눈
발이 굵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할머니는 더욱 몸을 밀착시키며 서로에게서 떨
어지지 않고 걸어나갔다. 머리에 싸맨 수건과 목도리에도 눈이 달라붙어 쌓이고
있었다. 멀리 넓은 밭 가운데로 자신들의 움막이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가서 몸이라도 좀 녹이고 갑시다."
이 할머니가 김순옥 할머니에게 말했다. 김 할머니는 또 기침을 쏟아낼까봐 한
손으로 입을 털어 막은 채 대답대신 힘들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할머니는 움막에 마주 앉아 뜨거운 설탕물을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김순옥
할머니는 기침도 사그러들고 이제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이순복 할머니
는 늦은 저녁 밥상으로 콩나물국을 끓이기 위해 콩나물 뿌리를 똑똑 따면서 자기
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김 할머니를 바라보며 어떤 죽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불쑥불쑥 느껴져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자신도 잊고 잊던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이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어질
어질한 현기증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이 통증은 견디기 힘든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오래 살아 꼭 손자 손녀들이 어느 만큼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보
고 싶었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남으로 내려오는데......"
김 할머니는 얼었던 몸이 풀리자, 옛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걸 이 할머니는 한숨한숨 듣기 시작했다.
"꽁꽁 얼어붙은 대동강을 건너 여섯 살이 된 아들놈 하나를 데리고 오는데, 글
쎄 이 놈이 자꾸 뒤쳐지고 등과 양손에 든 이불 보따리와 솥, 밥 그릇, 쌀 포대
기는 무겁고 여간 힘이 들어야지, 아이고,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휴,
그런데 때놈들이 인민군과 같이 밀고 내려와 모조리 죽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피난 가는 사람들 입에 돌지, 마음은 급하고 발은 무거운데 아들놈은 징징
울며 따라오지 못하지, 정말 앞이 캄캄한 절박한 심정인데……."
김 할머니는 거기까지 말하다, 다시 기침과 한숨을 번갈아 했다. 이 할머니는
움막 한 켠에 있는 풍로 위 냄비에 콩나물을 얹으러 무거운 몸을 훅 하며 일으켰
다.
"그래서..., 나 하고 아들놈은 점점 피난민들보다 쳐졌지비......"
김 할머니는 이 할머니가 냄비 물을 붓는 것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얼마나 갔을까, 날은 어두워지는데 글쎄 그 피난하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가 않아 가지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겠음메,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디 빈 집이라도 있으면 찾으려고 했는데, 민가 하나 보이지 않는 산 길이라
겨우 찾고 찾은 것이 큰 바위 밑이었지비, 그래서 그 밑에 들어가 이불 병풍처
럼 두르고 두 모자 앉아 뭐라도 좀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 사람 소리
가 나지 않게음둥. 간이 콩알 만해 가지고 아들놈을 꼭 끌어안고 있는데……."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김 할머니는 담배를 하나 빼어 입에 야무락지게 물고
는 불을 탁하고 붙였다.
이순복 할머니는 이제 손바닥만한 밥상에 밥 그릇 두 개를 놓고, 다시 콩나물
을 담을 그릇을 찾고 있었다. 보통 혼자서 먹던 것이 오늘 김 할머니가 와서 없
는 그릇을 찾기도 여간 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걸 바라보던 김 할머니가,
" 그냥 한 술 뜨면 되지 그릇은 무슨 그릇을 찾아?"
하고 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김 할머니는 담배 연기를 뱉아내며 동시에 기침도 뱉아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 할머니가,
" 아이고, 그럴 담배 뭐하러 피우노?"
하고 말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김 할머니는 기여코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 나서야 흙바닥에 담배를 버리며
발로 비벼 껐다. 움막 안 바닥은 그대로 검고 축축한 흙이었다.
"인민군이나 때놈인가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해 가지고 있는데, 웬 난데없이."
김순옥 할머니는 아까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글쎄, 그게 국군에서 낙오한 군방군이었던게지비. 옷은 다 떨어진 거지꼴이었
고 거저 총 한 자루만 들고 있더구만. 우리는 그 사람 아니었더라면 아마 살아
내려오지 못했을 게야."
이순복 할머니가 밥상을 다 차리고 들고 오고 있었으므로 김 할머니는 이야기
기를 서둘러 마칠려고 했다.
"세 사람이 남으로 내려오다, 결국 하루만에 중국 때놈 군인들에게 들켰는데,
글쎄, 우리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자기 혼자 그놈들과 총을 쏘고 있었지, 아마
죽었을 거야......"
"쯧쯧, 세상에."
이 할머니가 밥상을 놓으며 혀를 끌끌 찼다.
"고마운 사람들은 일찍 저 세상으로 데려 간다니까."
"그 군인도 서울이 집이라 처 자식까지 있다고 했지비. 금호동이라든가."
그 순간 밥을 뜨려던 이 할머니는 숟가락을 그 길로 밥상 위에 탁 놓고 말았
다.
육이오 전쟁 때 이순복 할머니가 살던 곳이 바로 서울 금호동이었다.
뜻밖에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듣게된 이 할머니는 김 할머니가 돌아간 다음에
도 움막 한 구석에 멍하니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차라리 김 할머니의 넋두리를 듣지 않아았더라면 이렇게 가슴이 콱 막히는 일
은 없었을 텐데 하고 이 할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생각했다. 그라고 이제는
정말 남편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남편이, 중공군에 잡혀
포로가 된 후, 인민군에게 넘겨져 아직 북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남편이 죽었다
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을 오래 지속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서야 이 할머니는 다시 일을 하러 나올 수가 있었다.
'생각하면 무얼하나, 이미 죽은 것을.'
이 할머니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이사를 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영환이
를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원처럼 생각되
었다. 어디에 가서 어떻게 찾나? 이순복 할머니는 다시 가슴이 막막해져 옴을 느
꼈다. 그리고 내일은 영환이가 살던 동네에 다시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마음먹
었다.
겨울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그 긴 겨울이 끝나가면서 일거리도 자연 줄어
들었다. 한동안 김순옥 할머니를 만나는 것도 뜸해졌다. 김 할머니 집은 꽤 많이
떨어진 곳이어서 마음놓고 한번 찾아가는 것도 어려웠다. 그 동안 기침은 좀 나
아졌는지, 이 할머니는 괜히 이런저런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김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길거리에 붙은 각종 광고를 떼는 일을 하기
위해 구청 앞으로 나가봤지만 김순옥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
다.
이 할머니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김 할머니
를 수소문해보았다. 그러나 만사 헛사였다. 김순옥 할머니는 이미 죽은 지 열흘이
나 지난 다음이었다. 김 할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던 한 할아버지가,
"그 할머니 말이야요? 벌써 지 세상으로 간지 오래요. 가슴에서 피를 한 바가
지 쏟아놓고 혼자서 죽어 있더구만..., 겨울이라 시체도 하나 썩지 않고..., 그래
서 내가 구청에 신고했지."
그게 다였다. 그것이 김순옥 할머니의 죽음 전부였다. 이 할머니는 다시 가슴이
허망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허무하지 않는 희망이라
고는 손자 영환이뿐이라는 사실.
'분명 여기였지.'
이 할머니는 영환이가 살 던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깡마른 겨울 날이었
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새파란 하늘이 얼어 붙어 있었
다. 그 밑을 이순복 할머니 혼자서 옆구리의 통증을 달래기 위해 지팡이를 집고
낡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낡은 하얀 한복이 할
머니의 작은 몸짓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목에는 굵고 넓은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근처에 낯이 익은 여자에게 몇 번이고 물어보았지만, 아들 내외가 어디로 이사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동회에 가서 한번 물어보시지요? 거기 가면 어데로 이사 갔는지 다 적혀 있을
테니까요."
하고 남겼던 마지막 말을 의지해 이 할머니는 어사무사한 동회를 찾아 다시 언덕
빼기를 오르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걸어서인지 다시 가물가물 현기증이 나고 오른
쪽 옆구리가 몹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아들 내외가 새로 이사간 동네는 강남에 있는 조그만 서민 아파트였다
그러나 똑같은 아파트들이 꽉 찬 가운데서 한 집을 찾아내기란 그야말로 구우
일모격이었다. 이 노인은 지칠 대로 지쳐 벌써 몇 번이나 차가운 시멘트 계단에
주저 앉았다. 숨이 가빠왔다. 벌써 저녁이 되려는지 어둑어둑해지고 있어서 이 할
머니는 마음이 가팠다. 지하철로 가면 편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걸 탈 줄도 모
르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걷고 또 걸으며, 묻고 또 물을 때마다 길을 잘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 겨우 시내 버스를 탔지만 그 속에서도 숨쉬
기가 갑갑하고, 또 왜 그렇게 길은 막히는지 이 할머니는 오로지 영환이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고통스러웠다.
00아파트 3동 501호. 이 할머니는 그 쪽지를 몇 번이고 들여다 보고 또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둘 뛰어나올 때마다 혹 영환이가 없나 싶어 자세
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영환이의 얼굴 모습을 눈 앞에 그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갔을까? 텅 빈 놀이터에 아이들이 몇몇 뛰어 놀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설마 싶었는데, 점점 다가 갈 수록 또렷이 영환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 할머니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픔도 어질거림
도 모두 잊고 말았다. 그리고는 힘차게,
"영환아!"
하고 불러 보았다. 그러나 영환이는 소리나는 쪽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다시 미끄
럼을 타기 시작했다. 이 할머니는 좀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가까이서 불
렀다.
"영환아!"
그러니 이번에도 영환이는 물끄러미 할머니를 볼 뿐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영환이를 마지막 본 것이 몇 년은 되었으니까......, 그새 많이도
컸구나.'
할머니는 영환이가 올라간 미끄럼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영환아."
하고 말했다.
"할머닌 누구세요?"
영환이가 분명한 목소리로 의아하게 물었다.
" 응, 네 할머니란다. 할머니 모르겠니?"
"네? 우리 할머니라고요?"
영환이는 한참 할머니의 남루한 모습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리고도 여전히 고
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그런 영환이가 더 없이 귀엽고 가슴 벅찼다.
"영환아, 그래, 네 할머니란다. 영환이가 어릴 때 할머니가 안고 키웠는걸."
영환이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어
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요? 아빠나 엄마는 할머니 이야기는 안 하시는데……."
이 할머니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림자가 스친다. 그러나 다시,
"그래, 그래."
하고만 말할 뿐이었다. 이 손자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
이 못 나서 생긴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좀 더 자주 아비 어미
몰래 영환이를 찾아보지 않은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가슴만 더 못질
을 하듯 아려왔다.
이 할머니는 결국 영환이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주고 돌아섰다. 영환이는
겨우겨우 안심하며 아이스크림을 받아 물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못내 아쉬워하며
영환이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는 영환이에게 어
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며 이순복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그 작은 아이도 핏
줄이라고 뭔가 당기는 것이 있었나 보다.
이 할머니는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지난 며칠간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사라
지고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남편의 젊은 얼굴을 떠올리며, '우리 영환이, 당신
도 하늘에서 보았지요.' 하고 가슴 속에서 말해 보았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할머니는 따뜻한 햇살에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 날 이후 이순복 할머니는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영환이가 있는 곳으로 버스
를 타고 갔다. 다행히 새로 이사간 곳이 강남이라 둑방길 옆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영환이는 만날 때마다 조금씩 할머니에게로 다가왔다. 그것은 분명히 이
할머니에게는 잊혀졌던 경이였다. 이 할머니는 서너 살 아기처럼 새록새록 다시
나이가 드는 느낌이었다.
영환이는 갈 수록 할머니를 따랐다. 하루는 촉촉이 봄비가 오는데도 놀이터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집에는 하지 않고 있음
에 분명했다. 영환이도 그만한 생각쯤은 있었다. 할머니와 손자가 아직 추운 3월
의 봄비를 맞으며 놀이터에 앉아 아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영환이의 얼굴에서
도 웃음 소리가 흘러 나오고 할머니는 시종 미소를 잊지 않는다.
"할머니, 할머니는 그런데 왜 우리 하고 같이 안 살아?"
영환이는 할머니 옆에 바짝 붙어 그렇게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망설여졌다. 아직 눈바람이 다 녹지 않았지만 물기를 머금어 검
게 보이는 나무 가지들 위에는 분명 촉촉한 생명이 호흡하고 있었다. 어딘가 모
르게 새파란 빛깔들을 띄우고 있었다.
"음, 좀 있다가 가시 다 같이 살 게 될 거야. 지금은…."
다음 말을 할머니는 이을 수가 없었다. 사람 사는 일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영환이를 꼭 끌어 안고
말았다. 그리고는 나직히 말했다.
" 이렇게 할머니가 자주 영환이한테 찾아오면 되지?"
엉환이는 입술을 꽉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집에서 걱정할까봐 이 할머니는 영환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보이며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결코
할머니는 눈물이나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영환이도 할머니 안녕, 하면서 아
파트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할머니는 영환이를 뒤로 하고 총총걸음으
로 살며시 아파트 뒷길로 돌아섰다. 누가 보기 전에 어서 빨리, 그런 심정이었다.
둑방길로 돌아오는 길 양옆으로도 검은 땅이 물기를 흠뻑 띄운 채 파릇파릇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제 봄인가 뵈어' 이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두터
운 하얀 목도리를 다시 여미고 있었다.
봄이 되면서 할머니의 일거리는 다시 많아졌다. 동회나 구청에서 시키는 잡일
이 많아지게 되면서 이순복 할머니는 영환이 만나는 것이 조금씩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 영환이도 겨울방학, 봄방학이 모두 끝나고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와 만날 시간도 그 만큼 줄어 있었다.
할머니의 일이란 주로 길거리 벗겨진 칠을 다시 한다든가, 오물을 줍는다든가,
여름이 되면 잡초를 베는 일 따위였다. 그래서 작업도 대개 둑방길 근처 동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게 고작이었다.
영환이는 자기에게 그렇게 잘 해주던 할머니를 자주 만날 수가 없게 되자, 좀
시무룩해졌다. '정말 우리 할머니가 맞다.' 영환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 '할머니
가 보고 싶다.' 하고 생각이 드는 날이 많아져 학교에서도,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면 할머니가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가슴 속에 그려보곤 했다. 그렇지
만 요즈음은 그 생각이 영 빗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환이는 오늘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가 있다는 둑방길 동네로 한번 찾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있었다. 강남에 있
는 큰 체육관 앞이라는 소리를 영환이는 잊지 않고 있었다.
잠실 체육관 앞에서 이제 국민하교 1학년생인 영환이는 홀로 내렸다. 낯선 거
리, 생전 처음 보는 건물들에게 영환이는 조금 주눅이 들었다. 이제 돌아갈 길이
더 걱정이 되어 무서워졌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도 없었다.
"둑방길이 어디예요?"
영환이는 키가 큰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응? 둑방길?"
키 큰 행인이 꼬마를 한번 쳐다보고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탄천쪽을 한
팔로 가리키며,
"저 쪽인데."
하고 역시 고개를 못내 갸우뚱거리며 가르쳐주었다. 요 어린 꼬마 녀석이 한적한
둑방길을 물어오는 게 영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둑방길엔 사람들이 걸어 다니지 않았다. 자동차들은 제법 다니고 있
었지만 학교에서 배운 인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영환이는 길가를 따라 조심조심
걸어갔다.
오른쪽으로는 얕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게 탄천이었다. 그리고 메마른
풀들이 시든 채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하늘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 차들이 쌩쌩
빨리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영환이는 바짝 긴장해서 어서 빨리 할머니의 집이
나타나주길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집에서 걱정할 엄마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련
거렸다. '엄마는 분명 화를 낼 거야.' 영환이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거
워지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어깨에 맨 가방을 다시 추슬러 보았다.
둑방길은 끝도 없이 멀게만 보였다.
이순복 할머니는 오늘에야 하던 일거리를 아침 일찍 끝내고 낮에는 영환이가
사는 아파트로 향할 수가 있었다. 모처럼이라 비싼 빵집에 들러 빵도 많이 샀다.
그리고 버스를 다고 기분 좋게 영환이가 사는 곳까지 왔지만은, 그 놀이터에서
암만 기다려도 영환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벌써 제 집에 들어간 건가 싶어
저녁 무렵까지 기다려보았지만 영환이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녀석, 어디라도 아
픈 겐가?' 하며 할머니는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하는 수없이 그냥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잠실 체육관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거기에서 훨씬 움막이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위험한 둑방길을 조금만 걸어가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영환이를 못 보고 와서 그런지 몸이 훨씬 더 피곤했다. 움막이 어두움 저 편에
겨우 희미하게 보일 때쯤에는 한 발자국 발을 뗄 수 없을 만큼 힘이 부쳤다. 바
로 그 때였다.
"할머니! 할머니!"
누군가 그렇게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둠 저 쪽에서 조그만 아이가 달려오
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정신 버쩍 들었다.
그 때 다시 할머니,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영환이가 할머니의 치마폭으로
확 달려 들어왔다.
"할머니! 흑흑! 할머니!"
이 할머니는 놀라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치마폭을 끌어 안고 우는 영환이를
감싸 안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부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안고
흑흑거리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둑방길의 양켠과 하늘이 짙은 어둠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밤이 꽤 깊었기 때문에 영환이를 데리고 같이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오늘은
어찌 되던 손자와 같이 지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할머니는 마음이 무
겁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한편 아들 내외가 걱정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다시
죄여 드는 느낌이었다.
'이걸 어떡하나?' 이 할머니는 영환이의 찬 손을 꼭 잡고 둑방길을 걸어 가며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환이 집 전화 아냐?"
영환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 할머니하고 잘래?"
엉환이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둠이 너무 짙었기 때문에 둑방길엔
차들이 거의 끊어지고 있었다.
영환이는 집 걱정이 되었지만 할머니가 잡아주는 손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에,
또 할머니의 치마폭 냄새가 좋았기 때문에 오늘은 할머니 집에서 자야겠다고 생
각했다.
"그럼. 집에다 전화를 하자."
지난 8년간 한번도 걸지 않았던 아들의 집이었다. 아니. 한번도 만나지도 못했
던 아들 내외였다. 그러나, 영환이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아들 내외가 걱정하
지 않도록, 전화는 반드시 걸어야만 했다. 전화가 있는 곳은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왼편으로 들어서서 꽤 많이 걸어야만 했기 때문에 이 할머니는 영환이 앞에 앉아
서 영환이의 옷깃을 여미고 자신이 두르고 있던 두터운 목도리를 영환이 목에 빙
둘러 주었다.
"배 고프지?"
이 할머니는 내려가다 가게라도 있으면 우유하고 빵을 좀 사 먹여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순복 할머니는 새로 따뜻한 밥을 지어 영환이와 나누어 먹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 서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아들이 올 시간이었다. 아까 벌벌 떨리는 소리로 아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 아들은,
"아니, 지금 뭐 정신이 있는 겁니까?"
하고 다짜고짜로 펄펄 뛰기만 했다. 그 욕을 전화 내내 듣기만 하다 결국 둑방길
움막에 제 어미가 사는 곳을 일러주고 지금 금방 영환이 찾으러 갈 테니 꼼짝 말
고 있으라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게 1시간 전이었다.
이제 아들은 둑방길로 접어들었을 게다. 이 할머니는 아들이 무서웠다. 잠든 영
환이 옆에 앉아 이 할머니는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이든 영환이의 새록거리는 숨소리를 들
으며 이 할머니는 꼼짝도 않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자신이
못나서 그런 것만 같았다. 기구한 팔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얼마 살지 못하고
영환이를 더 보지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순복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삐지직, 바로 그 때 움막의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이 할머니의 아들
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영환이 어디 있어요!"
이 할머니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벌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 동안, 지난
세월 동안 아들도 많이 늙어 있었다. 이마엔 굵은 주름살이 잡혀 있었고, 그것은
무슨 칼에 배인 상처처럼 아주 보기 흉하게 사선으로 각인 되어져 있었다. 그리
고 머리카락은 이 할머니가 보기에도 놀랄 만큼 하얗게 변해 언뜻 보면 자기와
같은 노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카랑카랑해서 다른 사람의
성질을 건드리기에 딱 좋은 신경질적인 음색이었다.
영환이는 아직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얼굴에는 꿈나라를 보고 다니는 모
습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의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영환이를 흔들어 깨우고 있
었다.
"영환아! 어서 빨리 일어나!"
오늘 피곤했던 영환이는 겨우 눈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
를 보며 약간 겁에 질리는 모습이었다.
"이 놈의 자식! 어서 내려오지 못해!"
영환이는 할머니를 보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어린 영환이의 신발을 신켜주었다. '괜찮다,
영환아, 이 할머니가.....' 이 할머니 스스로도 다음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손자가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할머니! 흑흑."
영환이가 드디어 울음을 터뜨리며 할머니의 품 속에 안겨 들었다. 이 할머니도
그런 영환이를 꽉 안아주었다.
"야, 이 놈아, 어서 빨리 가잔 말이다. 너 집에 가서 혼 좀 나야 정신 차리겠
냐!"
아들은 영환이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낚아 채었다. 영환이는 더 큰 소리로 울며
할머니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손에 손자는 질질 끌려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영환이는 갔다. 이 할머니는 찬 바람이 들어와 덜커덕거리는 움막의 문
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거기엔 짙은 어둠만이 까맣게 덮쳐와 있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온 영환이는 호된 야단을 맞았다. 매로 맞고, 손바닥으로 맞
고, 그러면 그럴 수록 영환이는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영
환이 자신도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왜 할머니를 내버려두고 사는가?
왜 아버지 어머니는 할머니를 싫어하는가? 할머니의 집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러
나, 할머니의 품속은 아주 따뜻했다.
영환이는 날이 갈 수록 말이 줄어들고 시무룩한 날이 많아졌다. 친구들과도 어
울리지 않고 혼자서 학교 놀이터 한 구석에서 놀다가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
다. 언젠간 다시 할머니에게 찾아 가리라, 영환이는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이순복 할머니도 봄이 되면서 다시 일거리가 많아졌지만 조금씩 들어 오는 돈
을 벌어도 예전처럼 신이 나지 않았다. 오직 보고 싶은 손자 영환이 생각뿐이었
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찾아갈 수도 없었다. 찾아가면 영환이에게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노랗고 빨갛고 하얀 꽃들 대신에 푸른 잡초들만 자라기 시작하는 둑방길 동네
에도 따뜻한 봄 햇살은 내리쬐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움막집 한 곳에서 이 할머니
는 오른쪽 옆구리 통증에 시달리며 오늘은 일도 나가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 누가 아침밥과 점심을 해 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이 할머니는 그저 햇
볕이 비닐 천장 위를 지나가는 것을 누워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가물거리
는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영환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모두 일을 하러 나갔기 때문에 둑방길 움막들은 낮에는 늘 텅 비어 있었다. 다
만 이 좁은 길에도 지나가는 차들이 요즈음 부쩍 많아져 차소리만 끊임없이 이
할머니의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봄날이 가고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영환이는 학교가 마치자 아침부터 생각해 두었던 할머니 집으
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가보았던 둑방길을 다시 어떡해 찾을지 막막했
다. 그래서 일단 버스를 타고 잠실 체육관 앞까지 가기로 했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영환이는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집 걱정을 하고 있었
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올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영환이는 가슴이 떨렸다. 그리
고 호되게 어머니에게 할머니를 만났다고 맞았던 뺨이 다시 얼얼해와 영환이는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다.
잠실 체육관 앞에 내렸을 때는 영환이 혼자만이 우산을 쓰지 않고 있었다.. 줄
기차게 봄을 보내는 마지막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전에 한번 왔을 때 무작정 지나가는 행인이 가르쳐주는 데로
갔기 때문에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환이
는 아무에게나 물어보기로 했다.
"아저씨, 둑방길 어디로 가요?'
그러나 행색이 말끔한 그 신사는 모르겠다는 소리만 짧게 귀찮다는 듯이 내뱉
고 휑 사라졌다. 이번에는 젊은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영환이의 옷은 이미 비에
축축이 젖어 있었다.
"둑방길? 음, 잘못 왔어.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한참 더 가야 돼."
"몇 정류장 더 가야 되는데요?"
영환이는 애처롭게 물었다.
"버스 타고 운전사 아저씨한테 물어봐."
젊은 여자는 그렇게만 말하고 또 사라졌다. 분 냄새가 빗속에서도 코를 찔렀다.
영환이는 그 여자가 길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한번 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며,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영환이는 버스
토큰을 파는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아주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였다.
"여기서 버스 타고 가다 고속도로 들어가기 전에 세워달라고 해."
그리고는,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토큰을 내어줄 뿐이었다.
영환이는 이제 더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전에는 분명 여기서 한참을 걸어
가다 할머니를 우연히 만날 수 있었지만 그 때도 할머니 집을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 때도 얼마나 죽을 고생을 하다가 밤이 늦어 겨우 둑방길에서 할머
니를 만나지 않았던가?
영환이는 하는 수 없이 버스를 집어 탔다. 그리고는 운전사 옆에 바짝 붙었다.
"아저씨, 둑방길 앞에 좀 새워주세요?"
얼굴이 검은 운전사는 비에 젖은 어린 아이가 재미있다는 투로,
"아까 네가 탄 곳이 둑방길 입군데?"
하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영환이는 아찔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와 움막 같았던 할머니의 집을 이야기하
자 운전사는 다시 웃으며,
"아, 거기는 둑방길 반대편인데 내 가다가 내려주지."
하고 말하며 다시 영환이 기분과는 완전히 딴판인 웃음을 흘렸다.
영환이 집에서는 또 한번 난리가 났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인데다, 비마
저 추즐추즐 내리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벌써 마쳤을 영환이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할머니한테 간 거 아냐?"
영한이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그 할망구는 되져버리지 죽지도 않고, 애나 살살 꼬셔 내서는."
영환이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이제 여섯 살인 영환이 동생 영수를 데리고 이 할머니
가 사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영환이 할머니가 둑방길 어디에 사는지 영환이
아버지도 몰랐지만 우선 그날처럼 가보는 수박에 없었다. 두 사람은 몇 년전에
새로 찬 승용차를 타고 둑방길이 있는 잠실로 향했다. 영환이 걱정을 하는지 이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먼저 하는지 모를 만큼 그들 두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 욕
을 해대고 있었다. 그걸 여섯 살 짜리 영수가 눈을 말똥거리며 조금 불안한 듯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형을 찾아간다는 것과, 그리고, 언젠가 형에
게 들은 할머니 집이 있는 곳으로 차가 가고 있다는 것은 영수도 알 수 있었다.
영수는 왜 엄마 아빠가 이렇게 할머니 욕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
수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형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 할머니는 우리 아빠의
엄마라고. 그런데도 아빠는 할머니 욕을 한다, 그 할머닌 우리 할머니가 아닌지도
몰라, 영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가 내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분명 이 근방이었는데…."
영환이 아버지는 이마에 배긴 짙은 사선의 주름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둑방길엔 어둠이 가득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리는데 오고 가는 차들
의 모습만이 보일 뿐, 저 멀리 비닐하우스 안에는 사람들이 사는지도 모를 만큼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 저기로 내려가보자구."
영환이 어머니는 영수에게 우산도 제대로 받쳐주지 않고 혼자 앞으로 걸어 갔
다. 그러면서도 내내 쓰레기 냄새가 지독하다고 코를 한 손으로 막고 있었다. 영
수는 짧은 다리로 어기작어기작 둑방길에서 내려 제 엄마의 뒤를 비를 맞으며 힘
들게 따라가고 있었다.
찢어진 비닐 하우스 안에는 시금치나 파 따위가 심어져 있었지만 영환이 아버지
는 숨을 씩씩거리며,
"제기랄! 이거 똥 냄새가 지독하구먼. 그런데 이 놈의 할망구가 어디 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하고 가래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영수는 오랜만에 어둠이 내리는 푸른 자연을 바라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사방이 회색 시멘트로 막힌 아파트 동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바
람과 어둠과 빗줄기가 둑방길 들녘에는 펼쳐져 있었다.
비닐 하우스 위에 검은 콜타르가 발린 천을 덮은 곳이 사람이 사는 곳인 모양
이었다. 그래서 영환이 아버지는 그 곳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욕을
해대면서, 또 뒤쳐진 영수에게 빨리 오라고 성화였다.
이제 하나 남은 곳은 그야말로 초라한 움막이었다. 변소인지 사람이 사는 곳인
지 모를 정도였지만 그걸 보는 순간 영환이 아버지는,
"저기야, 그래, 맞아."
하고 말하며 부리나케 자기 아내와 영수를 내버려두고 비를 맞으며 뛰기 시작했
다. 그의 아내도,
"여봇! 여보!"
하면서 영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남편 뒤를 따라갔다.
영수는 순간 어둠 속에서 본능적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엄마!"
하고 울부짖으며 달려갔다.
영환이 아버지가 움막의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영환아!"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영환아!"
영환이는 없었다. 다만 낡은 나무 평상에 낡아빠진 이불을 덮고 있는 이순복
할머니가 겨우 이불을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영환이 어디 있어요?"
이 할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아들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 할머니는
이렇게 알아 누운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때, 나무 문이 또 삐지직 여리고 영환이 어머니와 영수가 뒤따라 들어왔다.
영환이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가 누워 있는데 다가서다 말고는 깜짝 놀라며 갑
자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한 것을 간신히 균형을 잡
고 섰다. 이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나 말라 마치 뼈만 남은 형상이었기 때문에 영
환이 아버지 같은 사람도 너무나 놀랐던 것이었다. 영환이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
니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환이?"
이 할머니는 영환이라는 말을 간신히 중얼거렸다. 한 달만에 처음으로 사람과
나누는 대화라기보다는 신음 소리에 가까운 헛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겨우 물
만 마시고 이제껏 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영환이라는 말을 중얼거려 왔기 때문
이었다.
이 할머니의 맏며느리인 영환이 어머니는 문을 들어설 때부터 코를 쥐틀어 막
고는 어서 빨리 나가려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영수도 이상한 냄새에 얼굴을 조
금 찡그리고 있었지만 한발 두발 누워 있는 이 할머니 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영환이 여기 안 왔어요!"
이 할머니의 아들은 크게 다시 크게 소리쳤다.
이 할머니는 이제 조금 정신이 드는지 고개를 옆으로 약간 흔들었다. 바로 그
때 영수가 그의 아버지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영수는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형이 말한 할머니는 아주 좋다고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무서움을 참고 다시 할머니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그 때 할머니가
머리맡에 놓아둔 물을 찾아 손을 뻗혔다 그리고는 간신히 사발에 담긴 물을 마시
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영환이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려 겨우 물 사발
을 그의 어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뭔가 영환이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서 그랬는
지 아니면 이 할머니를 버린 그가 조금이라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있어서 그랬
는지는 알 수 없다. 하여간에 할머니는 물을 몇 모금 입에 넣고는 조금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바로 자기 옆에 와 있는 영수가 영환이로 보이는지,
"영..., 화...,나..."
하고 입을 열었다.
영수는 조금 놀랐지만,
"영순데."
하고 말했다.
그 때 영환이 아버지가,
"저리 가 있어!"
하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영수는 문 쪽으로 뒷걸음을 쳤다. 제 엄마도,
"영수야! 이리 오지 못해!"
하고 앙칼지게 말했다.
'영환이가 길을 잃었구나.'
할머니는 그렇게 혼자서 겨우겨우 가물거리는 생각의 끝을 잡아내고 있었다.
제 아비 말로 이리로 왔을지도 모른다고 그랬지. 그래, 이 비오는 밤에 영환이가
제 할미를 찾아 헤매고 있을 생각을 하자 이 할머니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불
을 밀어붙이며 몸을 일으켰다. 한 달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 있던 사람에
게 어디서 그런 기운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할머니는 똑바로 일어나 앉아 다시 물을 한 사발 쭉 따라서 마셨다. 그리고는
고무신을 신고 움막 앞으로 나갔다. 밤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할
머니의 머릿속에는 오직 영환이 생각뿐이었다.
낮은 들 움막집 쪽에서 할머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둑방길 위로 올라섰다.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그 깊은 밤, 인적이 끊기고 자동차마저 달리지 않는 둑
방길 위를 죽음을 기다리던 한 노파가 비틀거리며 걸어 가고 있었다. 아니 그것
은 걸어 가는 게 아니라 쪼그리고 앉아서 움직여 가는 것이었다.
오른쪽 옆구리 통증이 이제는 배 전체로 퍼져 있어, 이 할머니는 두 손으로 배
를 움켜 잡으며 한발 한발 앉은 채 걸어나가며 칠흑 같은 어두운 둑방길에서 손
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새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빌었다. 제발 우리 손자 영
환이를 찾게해달라고.
숨이 가빠왔다. 눈앞은 어두움 때문인지, 아니면 눈이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
었다.
영환이는 할머니의 움막을 겨우 찾아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영환
이는 여섯 시간도 넘게 둑방길의 반대 쪽에서 헤매다 겨우 묻고 물어 다시 둑방
길로 접어들 수 있었던 탓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얼마간 할머니가 누웠던 이불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불에선 할머니의 냄새
가 많이 났다.
'할머니는 어디에 갔을까? 곧 돌아 오실까?'
영환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혼자 무서움을 달래며, 비닐 위를 때리는 빗소리
를 들으며 잠에 빠지고 있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영환이는 갑자기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 소리에 잠을
깼다. 혼자 빈 움막에 있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영환이는 서둘러 움막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시커먼 밤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기 뿌리고 있었다.
영환이는 무작정 저 멀리 아파트 촌에서 빛나는 불빛을 의지해 걸어나갔다. 낮
에는 더워서 땀이 났지만 지금은 으스스한 한기가 들었다. 가도 가도 아파트 촌
의 불빛은 멀리만 있었다. 둑방길엔 인적도 없었고 차들도 다니지 않는 것으로
보아 꽤 밤이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도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집으
로 갈 것인지 어린 영환이는 걱정이 되어 금방이라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큰 길까지 나가 택시를 탈 셈으로 두려움과 추위를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
다.
쏟아지던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 지면서 영환이는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낮부
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배가 고파왔다. 둑방길 옆 탄천에 물 흐
르는 소리만 들릴 뿐 적막과 칠흑 같은 암흑이 어린 영환이 앞에 펼쳐져 있을 뿐
이었다.
영환이는 걷고 또 걸었다. 아파트 불빛이 점점 가까워 지는 듯했다. 그런데 바
로 그 순간, 고개를 바짝 들고 긴장해서 걷던 영환이는 무엇에 툭 걸리며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스팔트에 고인 차가운 빗물이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영환이
는 서서히 일어나려다 방금 넘어진 뒤를 휙 돌아보았다.
분명 무언가 흰 물체가 누워 있어 영환이는 등골이 으시시했다. 비명 소리도
나오지 않고 턱을 덜덜덜 떨고만 있었다. '귀신인가?' 영환이는 그런 생각이 들
었다. 분명 어두움 속에서도 그것은 사람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니다. 술 취한 사람일지도 몰라.' 영환이는 스스로에게 오히려 그렇게 위로하
며 다시 누워 있는 물체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흰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영환이
는 분명 술 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버리고 그 쪽으로 용기를 내어 그 쪽으로
한 발 다가섰다. 그러자, 영환이에게 '할머니?'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할머니였다. 영환이 할머니였다. 어린 영환이는 비에 축축이 젖은 할머니를 마
구잡이로 흔들며,
"할머니! 할머니!"
하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눈을 감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린 손자는 할머니
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싸늘한 할머니를 붙잡고 다시 마 구 흔들며 할머니,
v할머니를 외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둑방길 저 멀리 어
둠 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Homepage
"전의를 상실한 현대인 이야기***김영관 소설집 <회오리바람>!!!....교보문고, 종로서적,영풍문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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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에 봄은 지쳐 있었다.
4월이건만 목련조차 피지 않았다.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은 너무나 화려한 봄날을 두고 견디기 힘들어 내뱉은 말이
건만, 꽃도 채 피지 못한 4월의 추위가 잔인하게 보인다.
우리의 주인공 이현익과 하종명도 똑같이 짙은 겨울에 지쳐 있었다. 예년 같으
면 벌써 개나리라도 피었어야 할 계절이건만 2월이면 필 목련조차 이제 겨우 꽃
봉오리를 열려는 마당이어서 이현익과 하종명은 알 수 없는 불안과 고독마저 느
끼고 있었다. 왠지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그들의 목 깃을 파고 들었지만 그들은
계절을 의식하고 있지는 못했다. 생활과 현실에 억눌려 가위 눌린 숨을 쉬고 있
는 꼴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단지 월급과 방학으로 구분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똑같은 나이, 스물 두 살의 이현익은 자동차 판매 영업 사원이었고, 하종명은
대학 2학년이었다. 그러면, 우선 이현익의 이야기부터 해보기로 하자.
이현익은 고등학교를 재작년에 졸업하고 2년간 신문 구석 구석에 난 신입 사원
채용 광고를 보아 오던 끝에 운 좋게도 이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 취직할 수 있었
다기보다는 천신만고 끝에 일자리를 얻은 셈이었다. 견디긴 힘든 2년간의 굴욕과
상실감이 있었다. 무엇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자신을 많이도 괴
롭혔다. 그 동안의 술과 담배가 살이 찌지 않은 자신의 몸에 붙은 살을 또 떼어
갔지만 용케도 젊다는 이유만으로 견딘 세월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허우대가 멀쩡하고 키도 크고. 강인하게조차 느껴지는 얼굴 모
습과 단정한 말솜씨 덕분에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제치고 당당히 일자리를 얻은
것이었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양복을 입은 말쑥한 모습으로 첫 출근을 할 때,
이현익은 길고 어둡고 갑갑한 지하를 막 빠져 나온 지하철에서 본 목련 꽃처럼
봄은 왔노라고 생각했다. 아, 긴 겨울은 가고 이제 봄은 왔다고 생각했지만 지하
철 문이 열리고 계단을 내려 오면서 실실 불어오는 찬 바람에 이현익은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길 건너에서도 휘황찬란하게 전시된 자동차들이 보였다. 이현익은 건널목에서
푸른 불을 기다리며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첫 출근 날이라 그렇겠지만 너무나도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일종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고 익숙하진 않은 양복이 불편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시커먼 바지에 색이 빠진 낡은 잠바 하나
가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새하얀 와이셔츠에 감색 양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여서 자꾸 자신의 위 아래를 쳐다보곤 했다.
눈부신 새 차들이 이현익을 압도하며 비웃고 있었다. 그는 약간 기가 꺾이는
듯했지만,
"어이 이현익씨, 이리 좀 와봐요."
하고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과장인가, 대리인가, 아직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기만 한 이현익은 순간 식은땀
이 등골에 좍 베이는 듯했다.
"박 대리한테 가서 고객 명단부터 훑어 봐요."
누가 박 대리인지 빙 둘러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사람이 과장이라
고 이현익은 혼자 단정해 버렸다. 불안감과 공포마저 느껴졌다.
하종명은 대학 2학년이고, 패배주의자, 염세주의자, 과대망상주의자, 피해의식
자, 비겁자, 나약자, 방관자, 절망주의자, 냉소주의자로 보면 틀림없다.
이제 곧 군대에도 가야 되니 그에게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절망과 패배와 무미
건조함의 연속이었다. 학교나 집이나 재미 없어 죽을 지경이었고, 늘 알 수 없는
불안이 그를 휩싸고 돌았다. 그나마 술과 담배를 배운 것이 그가 아직 스물 두
살의 인생을 견디게 해주는 도구였다.
학교 공부도 되지 않고 마음 잡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긴 겨울이
가고 서서히 2학년의 봄은 오고 있었지만 개강을 하고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그는 어디서도 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겨우 싹이 돋기 시작한 개나리를 보
며 봄이라도 느껴 보려고 했건만 이 놈의 개나리는 올해 따라 왜 이리 더디게 피
는지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작년 같이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본 흐드러
지게 핀 개나리의 노란 촉감은 그를 일시적이나마 대학의 환상과 낭만에 젖게 했
던 기억을 남겼으니까.
하종명은 오늘도 대낮에 시뻘건 해를 안고 타박타박 도시 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방금 빠져 나온 숨막히던 지하철, 낮이라 사람들이 별로 붐비지
않았지만 지하철 안의 공기를 쾨쾨히 썩어 있어 늘 그의 약한 폐를 더욱 쿨럭거
리게 했다.
제기랄, 이거 아니면 도대체 탈 게 없나.
그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지하철을 빠져 나오자마자 가래침을 탁 땅바닥에 뱉
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는 한 5분 걷다 보면 나타나는 자동차가 진열된 자동차
파는 곳 앞을 지나면, 하루라도 빨리 운전을 배워, 아르바이트라도 열심히 해서,
저 가운데 눈 여겨 보아 둔 싼 자동차를 한 대 사야지 하는 생각을 공상처럼 하
곤 했다. 그리고, 예쁜 여자를 하나 태워 신나게 바닷가를 달리며 사랑을 속삭이
는 장면을 그려 보기까지 했다. 바로 그 지점은 그를 그야말로 꿈처럼 잠시나마
그를 현실에서 이탈시켜 주는 자동차 판매 대리점 앞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실 돈 있는 친구들 가운데 벌써 자기 집 차나, 진짜 자기 차를 굴리는 녀석
들을 보면 하종명은 주눅이 들 정도로 부러웠다. 자신에게는 도저히 실현불가능
한 일처럼 느껴졌다. 또 그런 녀석들과는 도무지 친하지도 못했다. 끼리끼리 노는
것이었다.
7500000원. 전시된 자동차 가운데서 가장 싼 차의 값이었다. 거기에다 자동 변
속기니 에어컨이니 보험료니, 등록세니 다 하면 10000000원은 넘을 것이다. 하루
하루 생활비도 넉넉하지 못한 대학생이 무슨 돈으로 그걸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가 실력이나 능력이 있어 비싼 과외 선생 자리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아
닌 처지였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자가 아까부터 자동차를 유리 너머로 구경하고 있단 것을
이현익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현익은 첫 출근이라 그런데 한 눈을 팔 만큼 한
가롭지 못했다. 벌써 온 몸에는 땀이 진득하게 베여 있을 정도였다. 숨이 터질 듯
이 답답한 것을 이현익은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얻은 일자리인데 죽어
도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였지만 신경이 날을 갈고 있었다.
그래서 바깥에서 안을 드려다 보고 있는 허름한 행색의 그 대학생이 곱게는 보
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런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괜히 유리에
손자국이나 더럽게 내고 가면 벌써 아침부터 두 번이나 닦은 그 큰 유리를 다시
닦아야 하는 일은 첫 출근한 이현익의 몫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시원한 바깥 바람이나 쐬면서 유리 창문을 닦는 일이 전혀 환기
가 되지 않고 있는 듯한 실내에서 고객 명단을 일일이 검토하는 일과 또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는 여러 업무를 듣는 것보다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기도 했다.
언제가 퇴근 시간인지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까마득했다. 이제 그 대
학생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벌써 밖은 밤이 다가서고 있었다. 이제야 퇴근인 것이다.
밤 8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이현익은 목이 타서 어디라도 가서 축축한 맥주로
목을 적시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 큰 술집에 들어가 마시는 것도 처량한 일이
었기 때문에 이현익은 구멍 가게를 서둘러 찾았다. 대개 요즘 구멍 가게 안에는
의자가 한 둘 있기 마련이어서 거기에 앉아 아이들 과자를 안주로 병 맥주 한두
병 마시면 값도 싸고 혼자 적당히 조용하게 생각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모퉁이에 겨우 자리를 하나 끼고 앉은 구멍 가게 안으로 이현익은 쑥 들어섰
다. 마흔은 훨씬 넘었을 것 같은 새치가 유난히 하얗게 돋은 키 큰 주인은 그냥
다른 손님과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 이현익의 등장에도 아랑곳 하지지 않았다.
약간은 김이 빠지는 가게 풍경이었지만 우선 맥주가 들은 냉장고를 살피고 병 맥
주 하나를 쑥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이들 과자 봉지가 쌓인 곳에 가서
아무 거나 하나 집어 들려다가 마침 그 곳에 작은 골뱅이 통조림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걸 집어 들었다. 주인은 그제야 이현익에게 돈을 받으려고 돌아 보았다.
"아저씨, 이거 여기서 좀 먹고 가도 되죠."
이현익은 약간 불안스럽게 이야기했으나 주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저 쪽 안쪽으로 가세요."
하고 퉁명스럽지도 다정스럽지도 않는 목소리로, 늘 겪는 흔한 일처럼 그렇게 말
해 버렸다. 어찌 되었건 이현익은 통조림과 맥주 한 병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서
니, 거기에는 작은 식당이란 느낌마저 들 정도 큰 공간과 제법 큼직한 탁자가 두
개, 나무 의자가 서너 개나 놓여 있었다.
주인이 갖다 주는 젓가락과 병 따개와 컵 가운데서 이현익은 병 따개만 골라
집어 들고 맥주를 땄다. 그리고는 컵에 따르지도 않고 그대로 마셔 버렸다. 그리
고는 골뱅이 통조림을 집게 손가락으로 위로 뚜껑을 따 올렸다. 이럴 때는 깡통
맥주가 더 어울릴지도 몰랐지만 값은 값이면 양이 많은 병 맥주가 이현익에겐 아
직 더 어울리는 술이었다.
그래도 마시지 않은 것보단 찬 맥주가 순간적으로 이현익을 식혀 주었다. 아,
하루의 피로, 아니 벌써 오래 누적된 듯한 피로가 몸을 적시고 있었다. 담배 맛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가게 안으로 쑥 들어 왔다. 이현익은 무
심코 그를 올려다 보았다. 순간 어디서 좀 본 듯 같기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어서 이현익은 그를 다시 한 번 바라보려다 에이, 뭐, 별 것 아니다, 라는 투로
다시 맥주를 병 채로 마셔 버렸다. 졸졸, 벌써 한 병이 다 된 것이다. 그런데 골
뱅이 안주는 아직 몇 말리 더 작은 깡통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현익은 한
병을 더 마셔,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까 맥주를 꺼냈던 냉장고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까 들어 왔던 그 남자가 냉장고 앞에서 이리저릴 살피더니
이현익과 똑같은 하이트 병 맥주를 한 병 끄집어 내고 있었다.
이현익은 동지를 만난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조심조심 유심히 살펴 보았
다.
'학생인가? 학생 치고는 너무 꾀죄죄한 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결국 대학생쯤으로 이현익은 규정짓고 있었다.
"저 이거 여기서 좀 마시고 가도 되죠?"
그 남자가 그렇게 주인에게 말했다. 그것마저 아까 이현익이 주인에게 하던 태
도와 똑같았기 때문에 이현익은 주인의 예, 하는 무뚝뚝한 대답 소리와 동시에
안 쪽으로 들어오는 그를 눈을 내리깔고 살피고 있었다.
그는 조금 어두운 이 안 쪽으로 들어 와서는 이현익에게 등을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안주는 무슨 과자 봉지를 집어 들고 있었는데 그걸 찢는 소리가 제법 요
란하게 이현익의 귀에 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
는 그 남자가 비싼 안주 대신에 선택한 최선의 안주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
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도 거의 이현익과 같아 보였기에 그는 이상하게 경계심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년배에게 느껴지는 이상한 경계 심리와 적
대감은 거의 동물적 본능인지도 몰랐다. 자신의 영역과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동물적 본성이 인간의 자리에도 감돌고 있었다. 주인은 이미 그들에게 자리를 내
준 늙은 사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약간의 경계심 외에는 젊은 사자들
을 아랑곳조차 하지 않았다.
아까 한 병을 더 마실까, 그냥 갈까 하던 결정은 그 남자의 출현으로 결국 한
병 더 마시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말았다. 이상한 기류가 이현익으로 하
여금 꼼짝없이 그 자리에 굳어 버리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그 남자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이현익의 나이 또래처
럼 연약한 느낌조차 주고 있었다. 스물 두 살이라는 나이는 이 시대에 아주 보잘
것 없는 애어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옆에 시커먼 가방이 하나 놓여 있는 걸로 봐서 분명 학생일 거라는 느낌이 들
었다. 그리고 그가 만약 재수생이라면 이런 곳에는 더더욱 들어 오지 않을 것이
라는 생각이 그를 대학생으로 단정짓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취기가 돌면서 그의 등이 더욱 답답하게 또 다정하게 보이기 시
작했다.
하종명도 두 병째의 맥주를 다 마셔가고 있었다.
도대체 대학 2학년이 술에 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
각을 그는 아까부터 계속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나약과 허무의 날들.
술이 부대끼고 있었다, 뱃속에서.
그래서 앉은 자세를 바꾸기 위해 왼 다리를 꼬아 앉아다 다시 오른 쪽으로 돌
려 앉아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이 속이 더부룩하니 불쾌했다. 도무지 이 술 먹
는 일이 아니면 스무 살의 젊음에 아무 할 일이 없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할일
없어져 버린, 없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하종명은 그런 것을 생각하며 집중하고 있었지만 역시 더부룩한 속이 그를 어
서 여기서 자리를 뜨도록 만들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에도 집
중할 수 없는 자신이 슬퍼지기까지 했다. 무기력. 삶의 의욕 좌절은 이 대학이라
는 사회에 들어오고나서 비로소 돋아나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우리의 하종명은 결코 악인이 아닐 것이란 생각은 독자 여러분도 들 것이다.
나는 그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이 그저 전해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재구성해서
쓰고 있지만 쓰면서도 어쩐지 그가 몹시 애처롭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런 초
라한 구멍 가게에 들어와 쾨쾨한 냄새마저 나는 지저분한 탁자에 앉아 맥주와 과
자 안주를 먹고 있다는 것들이 왠지 그를 요즈음의 신세대 젊은이와는 너무 다르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하종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 이상 앉아 있을 돈도 없었다.
그 때 하종명과 이현익의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둘 다 달갑지 않은 눈매를
쏘아 부친 순간이기도 했다. 그 순간에 이현익은 그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하종명은 맥주 두 병 값을 치르고 드르륵 가게 문을 나서
고 있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이현익은 이리저리 머리 속을 굴려 보았지만 좀처럼 생각의 꼬리를 잡아내지
못했다. 자신도 이미 두 병의 맥주가 바닥나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이현익은 그
런 몰골을 그려 보면 이마가 좁고 눈썹이 짙고 눈매가 날카롭게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갔고, 얼굴은 좀 넓적한 편이고 코와 입술은 뭉턱 두툼한 것이 언뜻 보면 권
투 선수나 아프리카 원주민을 떠올릴 수도 있는 게 머리카락마저 몹시 굽실거렸
다. 그것은 첫 출근하던 오늘 아침과는 전혀 딴 판인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조금 전에 나간 하종명은 얼굴 색이 하얗고 언뜻 보기에 잘 생긴 얼
굴이라 할 수 있으나 어디 하나 뚜렷하게 잘 생긴 것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잘 이루었다는 것에 그의 지성을 약간 느낄 정도였다.
이현익은 뭔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이었다. 그가 나가고부터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이현익은 자신을 억제 할 것도 없이 맥주를 한 병 더 가져와
잔에 따러 마셨다. 뭐 별 것 나인 일에도 흥분 잘 하고 자신을 억제 못하고 내일
없는 민족 근성으로 노는 것이 한국 사람의 특징이니 이 시대의 젊은이 이현익이
라고 어디 다르겠는가. 어지간히 수양이 안 된 사람은 좀처럼 내일과 다음의 희
망을 간직하고 있기 어려운 법이다.
이현익은 다시 내일의 자동차 대리점 일들이 걱정이 되었다. 거의 대학 졸업자
들인 그 작은 대리점에서 유일하게 고졸 출신이 그가 오늘 하루만에 벌써 묘한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 어찌 이 이현익이라는 젊은이의 잘못이겠는가, 그
대리점의 못 난 자들과 또 이 사회와 인간이 이룩한 인류에 그 책임이 있지 않겠
는가. 무슨 불교의 말처럼 전생에 자신이 진 업보라면 다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문제이지만.
출근 열흘째.
이현익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서 벌써 지쳐 있었다. 멋지게 살아 보리라던 꿈
은 이미 그의 가슴 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기계
적 도시 사회 생활. 이게 아니면 다른 것으로 먹고 살기에도 마땅한 것이 도시의
한 노동자에게는 주어지기가 쉽지가 않다. 어찌 보면 이 도시는 서로가 서로를
적당히 속여 가며 밥을 얻어 먹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추악한 돈은
모두 노동자들의 땀과 시골 사람들의 땀방울 속에서 나온 것들인데다 중간에서
그걸 정치적 사기로 갈취한 잘 사는 놈들이 다시 이현익과 같은 사람들을 고용해
서 그 돈을 조금 나누어 주며 자신들의 배를 더 뚱뚱하게 기름지게 채우다 일찍
디져 가는 꼴이랄까.
점심은 정식으로 먹었지만 맛은 지독히 없는 밥이었다. 아침에 이미 지독히 피
운 담배 탓인지 소화도 잘 되지 않았지만 이현익은 식당 문을 나오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도시는 한 낮인데도 뿌옇게 흐려 있었다. 먼지와 매연과 더러운 냄
새들로 꽉 찬 이 도시에서 그 자신이 매연을 뿜는 자동차를 파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좀 죄를 짓는 느낌마저 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어 주는 구실을 했다.
봄 날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비칠 무렵이었다.
이현익은 햇볕과 땀에 번쩍거리는 자동차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암만 닦아 보
아도 더 이상 윤이 날 것 같지도 않게 번들거리는 자동차를 신주 모시 듯 왁스와
마른 걸레로 땀방울을 쏟아가며 그는 열심히 신 들린 듯 닦았다. 그렇게 닦다가
차가 마치 닳아 없어지기라도 바라듯 이현익은 익익, 소리를 내며 차를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그런데 정신없이 이게 내 차냐, 이게 내 차냐, 하며 닦고 입 안에 쓴 맛까지 내
가며 닦고 있는데 자꾸 오른 얼굴 쪽으로 뭔가 시선이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살짝, 아니 훅하고 용기를 내어 돌려 보았더니 아니 며칠 전에 있었던
그 거지 같은 대학생 모습의 녀석이 자기를 빤히 드려다 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
고 그 녀석의 얼굴은 바로 얼마 전 구멍가게 안에서 자기와 같이 맥주 두 병에
아이들 과자를 안주로 술을 마시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순간 이현익은 묘한 기
분이 들었다. 저걸 그냥, 하는 미움과 불쾌감, 동시에 그럴 이유가 없다는 이성적
판단, 아무래도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신이 현재 땀 흘리
며 이 대리점에서 제 차도 아닌 번들거리는 차나 닦고 있다는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리라는 이성적 판단이 들기까지 꽤 오랫동안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창 문 밖의 녀석은 처음에는 그가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치를 못 챈 듯했
다. 그도 그럴 것이 환한 밖에서 유리 안쪽의 동태를 살피는데는 아무래도 불리
하기 때문이었지만, 창 문 밖의 녀석도 이윽고 이현익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
란 듯이 창 문에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현익은 속으로 자식,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원래 이현익은 이렇게 비관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불과 이 열흘
간의 대리점 생활에서 저도 모르게 수많은 열을 받았는지 어느 새 사람이 좀 변
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들었던,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라는 이
성적 판단이 이현익을 하류의 인간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
다.
그러나 다음 순간 두어 발 물러났던 창 밖의 녀석이 다시 창문으로 재 도전해
왔을 때 이현익은 묘한 적의 같은 것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 맹수가 맹수를 보고
싸우기 직전의 으르렁거리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이 행동이
었으므로 이번에는 그도 이성적 판단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저 쪽의 적도 만만치 않았다. 두어 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창문에
몸을 더 붙이고 유리에 한 손으로 햇볕 가리개를 만들며 이현익을 뚫어지고 보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분명 하종명은 자동차를 더 보기 위해, 그리고 이현익에게는
어떤 적의도 없는 마음으로 그랬지만, 분명 그런 행동은 차를 닦는 이현익에게는
위협적인 행동으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는 맹수와 같은 적의를 품고
으르렁거리는 입 모양을 했는데도 불고하고 저 쪽에서 더 가까이 접근해 왔다면
분명 자기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하는 다른 맹수의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현익은 상대 맹수가 자기보다 셀지도 모른다는 동물과 같은 겁보다는 인간으
로서의 일종의 굴욕감이랄까, 패배감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순순히 겁을
먹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녀석을 향해 으르렁거리려고 해보았
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그렇게 벌어지지가 않았다.
이상했다. 이현익은 자신의 엉덩이 쪽 꼬리뼈가 불알 쪽으로 말려드는 것 같은
오그라짐을 느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창 문 밖의 녀석을 향해 제대로 고개
조차 들지 못한 채, 그래도 이쪽의 체면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차를 더 열심히 빡
빡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종명으로서도 이현익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별로 잘못 한 것도 없다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 그로 하여금 더 창
문에 붙어 서게 만든 이유였다. 그도 예전엔 이 정도의 용기도 없는 약골이었지
만 이상하게도 대학이라는 사회에 들어 오고부터는 열을 많이 받아 그런지 무작
정 돌출하는 돌발적 오기 같은 것이 지난 1년여 동안 몸에 배여 들고 말았던 탓
이었다.
그것은 분명 이성적 판단과는 먼 거리가 있는 비정상적 환경에서 배웠달까, 뭐
좀 이상한 음지에서 싹 튼, 아니 분명 희망적 건설적인 생명적인 감정이 아닌 습
한 음습한 비겁하고 일종의 탐욕이 감추어진 더러운 감정의 느낌이었다.
하여간에 신경 쓰지 않고 가장 값이 싼 흰 색 차만 주시하려고 하종명은 눈에
힘을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차는 눈에 보이지 않고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이현
익의 존재가 신경이 쓰여 아주 불쾌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이현익과 아뿔싸 눈이 마주쳤을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끼는 듯 섬
짓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를 어디선가 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생각의 꼬리
를 밟은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하종명은 그가 바로 며칠 전 구멍가게에서 혼
자 술을 마시던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이것은 거의 동물적인 육감에서 비롯된 틀
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금방 그는 다시 차에 집중했다. 그게 또한 차디찬 대학에서 배운 소위
사회 적응이라는 가식적 인위적 행동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이현익 같은 인간의
존재는 잊고 차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현익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은 그가 차를 닦으며 일하는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었기에 다음 순간부터 하
종명은 그가 신경에 거슬려 그가 그렇게 갖길 소망하는 그 대리점에서 가장 값
싼 흰색의 차를 멀리하고 이탈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쪽의 이익
도 전의를 회복하고 다시 그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 붙이는 것을 어두운 창문
을 통해서도 분명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뒤로 물러서면서 인도를 따라 몇 걸음 걸으며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
각은 술뿐이었다. 왜 이럴 때 술밖에 생각이 안 나게끔 되어 버린 건지 몰랐지만
분명 대학에 들어오고부터 생긴 병이었다.
왜냐하면 전에는 그렇지 않았고 쉽게 그럴 수도 없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었
다. 그 때까지가 건전, 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인생의 단계였다고
나 할까.
술집을 찾았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는 돈 오천 원밖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
에 역시 전에 먹었던 그 구멍가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가 여기서 가
장 가까운 최단의 최하의 술집이었다.
이현익은 오늘이 입사 후 아니 대리점 입대 후 처음 맞는 숙직이었다. 비싼 자
동차를 지키는 경비 임무와 다름 없는 것이 숙직이었다. 밤 열 시 모두가 퇴근하
고 나니 이현익은 차라리 한숨을 돌릴 만 했다. 과장과 대리들은 그가 보기에 모
두 도끼 날 눈을 가진 비인간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아 출세하기를 인간들이 동물 못지 않게 바라고 있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뼈저리게 느낀 지난 열흘간이었다.
밤 12시를 알리는 뻐꾸기 시계가 열 두 번을 울렸다.
저 놈의 뻐꾸기가 유일하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이 대리점 안의 인공 새였
다. 그 뻐꾸기가 문을 열고 나와 울릴 때면 계곡의 물소리까지 울려 나오곤 했는
데 그 뻐꾸기 시계는 어린이들이 제 엄마와 아빠를 따라 이 대리점에 자주 들어
온다는 데서 착안을 해서 머리 좋은 과장이 사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뻐꾸기가 문을 탁 닫고 제 집으로 들어갈 때는 또 얼마나 매정하게 들어가는
지 어떨 때는 당장이라도 그 놈을 꺼내 기어코 한번 더 울려 보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었다.
이현익은 한 대의 담배를 더 피우고 이미 문이 내려진 대리점 안을 슬쩍 둘러
본 다음 대리점 뒤쪽의 창고 같은 작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가 내일 아침
까지의 숙직실이었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낯 설고 좀 으스스한 기분도 드는 것이 영 잠이 오지 않
았다. 무슨 통조림 통 안에 들어와 있다거나 우주선 캡슐 안에 갇힌 답답함마저
느껴졌다.
뻐꾸기 시계보다도 과장은 왜 푸른 나무가 심긴 화분이라도 갖다 두지 않았는
지 몰랐지만, 공기마저 밀폐된 공간 안에서 점점 줄어 드는 것 같았다.
하종명은 자정이 넘은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병 맥주 두 병에 소
주까지 한 병 걸쳤기 때문에 이미 그는 만취된 상태였다.
자정의 밤거리는 아직 술렁거리고 있었다. 하종명은 속이 울렁거리면서 뭔가
금방에라도 토해 내고 싶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은 꼭 뱃속의 내용물이 아니라
정신적 탈출구를 찾아 보고 싶은 욕구였다. 정액을 배설하고 싶은 충동은 흥분된
성욕으로 그를 내몰고 있었고 또 한편 파괴적 충동으로 그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현재의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밤거리에 짧은
치마를 입고 암내를 피우며 걸어 다니는 여자들의 부푼 엉덩이를 노려 보았지만
그들은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었고 파괴할 물건들은 전부 시멘트와 아스
팔트로 덮여져 있었다.
유리!
그 때 그게 가장 파괴할 수 있는 쉬운 물건으로 그의 취한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게 도시였다. 이게 현대인의 병리적인 정신이었다.
그러나 아직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하종명이 마음 놓고 유리를 깨부수기
에는 쇼윈도우의 불빛이 너무나 강력한 서치라이트의 불빛처럼 그를 무섭게 감시
하고 있는 듯해서 그는 용기가 감히 나지 않았다.
더워 오르는 열기를 재울 수가 없어 그는 무작정 거리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
다. 야수의 모습으로 비틀비틀 이리저리 걸으면서도 그는 욕망을 잠재울 수 있길
스스로 빌고 있었다.
후닥닥 빗물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이현익은 잠시 몸을 뒤척이다 비가 많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창 밖은 4월의 비답지 않게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현익이 잠들고 있는 자동차 대리점 앞에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
으면서 검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비를 피할 생각은 조금도 없
는 듯 비틀거리며 계속 자동차 대리점 앞을 왔다갔다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대리점 뒤쪽으로 쏟아지는 비를 끌고 사라져 버렸다.
후닥닥, 쿵쿵, 다시 빗소리겠지 하며 이현익은 몸을 뒤척였지만 계속되는 그 소
리가 단지 빗소리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그의 의식은 또렷해지
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현익이 약간 겁에 질려 그 소리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는 순간 자
동차의 엔진 소리가 나더니 와장창!! 하는 큰 소리가 나면서 자동차의 폭발음이
요
란하게 쐐앵하며 들렸다. 그 때야 비로소 이현익은 대리점 안의 자동차! 하는 생
각이 들면서도 금새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자다 깬 상태여서 그런지 상당히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은 금방 조용해졌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현익은 밖으로 나갈까 말까를 망설이면서 조금씩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조금 열어 보았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고 있었다.
아뿔싸, 자동차 대리점의 대형 유리문이 그대로 박살이 나 있는 것이 비 내리
는 가로등 불빛에 한눈에 드러났다.
이현익은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 깨어진 유리문 앞에 있어야 될 흰색 액센트 승용차가 사라졌음을 그
때서야 비로소 이현익은 의식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박살난 유리문을 멍하니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유리 조각을 밟으며 밖으로 나왔을 때 불과 몇 십 미터 떨지지 않은 곳에
흰색 승용차가 인도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이현익은 육감적으로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기로 뛰었다.
야간 조명등도 켜지 않은 채 흰색 액센트 승용차는 키 큰 가로수에 그대로 박
혀 있었다. 분명 어제 낯 자신이 열심히 닦았던 그 자동차의 앞쪽 본네트가 가로
수에 일그러져 있었다. 이현익은 운전석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자동차를
훔친 자가 운전대에 머리를 파묻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일종의 묘한 분노와 적의에 무작정 문부터 열려고 했지만 일그러진 문이 잘 열
리지지 않았다.
간신히 문을 열고 난 다음, 운전석에 엎드린 녀석을 확 일으켜 세웠을 때 이현
익은 깜짝 놀라 한 발 물러서고 말았다. 이마와 코에 피를 흘리는 모습에 놀랐다
기보다는 분명 그 자는 어제 낯 대리점을 안을 빤히 들여다 보던, 그리고 구멍
가게 안에서 그와 같이 맥주를 마셨던 바로 그 자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정신은 있는지 음음, 하고 그 자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 소리와 함께 지독
한 술내새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쏟아지는 밤비 때문인지 이현익은 자신의 분노
가 어느 새 가라앉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어서 그를
이 자리에서 피신시켜야 된다는 묘한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그 때 왜 그런 감정
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현익은 서들러 그 청년을 차에서 끌어 내렸다.
"이봐. 정신 차렷!"
주위는 인적조차 없는 깊은 밤, 더군다나 비마저 쏟아지고 있었기에 이현익은
점점 야릇한 기분에 빠져 들면서 단순히 교통 사고가 난 사람을 구해주는 느낌으
로 바뀌었고 그리고 그 자가 정신을 차리며 스스로 코피를 닦을 때,
"자네 나 알겠지?"
하고 이현익은 하종명에게 말했다.
하종명이 비에 흠뻑 젖은 얼굴을 끄덕이며 떨고 있었다.
"어서 가."
이현익은 하종명의 등을 떠밀었다.
순간, 하종명은 술에 취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이현익도 잠시 그와 눈
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다시,
"어서 가. 어서 여기서 꺼지란 말이야!"
하고 외치며 하종명의 두 어깨를 밀어 저쳤다. 그 바람에 하종명이 두어 발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는 아직도 술에서 들 깬 상태였다.
하종명이 빗속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현익은 순간 그를 따라 저 어둠 속으로, 저 빗줄기 속으로 같이 가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도 내일을 살기 위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비가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빗물이 얼굴을 타
고 시원하게 흘러 내렸다. 왜 자신이 그 자를 순순히 보내 주었는지 스스로도 이
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온 몸에 쏟아지는 비처럼 가슴은 시원해 왔다.
단순 절도라면, 자동차 대리점으로서는 겨우 그 대리점 안에서 가장 값 싼 차
한 대가 부서진 정도의 손해뿐이다. 그건 새발의 피다. 이현익은 그런 생각이 들
었다.
그리고 제발 그 자가 끝까지 무사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끝>
김 영 관 ---------------------------------------------------------------------
옛날에 원시인이 살았다. 그런데 그 원시인의 어버이는 유인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 방에 있는 사전에 의하면 유인원이란 다름 아닌 사람의 조상이었다. 그런데 그 유인원이 아직 이 인간의 세상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은 나는 최 근에 알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집 옆 집에 사는 한 인간이다. 그 인상 은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긴 수염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이상한 울 부짖음 소리마저 그의 집에서 들리게 되었다. 간 밤에도 나는 늑대의 울음 소리와 비슷한 한 동물의 울부짖음을 내 창문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내 방의 창문이 바로 그와 마주보는 곳에 달려 있 었다. 그의 방에는 늘 불이 꺼져 있었으며, 좀처럼 인기척을 느끼기 어려운 방이 었다. 내가 그를 최근에 본 것이 석 달 전이었다. 그 날은 우연히 내가 일 있어 새벽 2시에야 집으로 기어 들어 왔는데, 술이 만취된 나는, 계단을 올라오다가 갑자기 등골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고 위를 쳐다본 순간 그 괴물이 아니 그 유인원이 두 발로 딱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내 운동 신경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나 는 아마 아직 병원에서 골절 치료를 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으라차, 두 번 뒹굴면서 떨어졌기 때문에 나는 가벼운 찰과상에 그친 것을 그 다음 날 아침 에 눈을 뜨고 알았다. 그게 그를 설핏 본 가장 최근의 일이다. 그 이후로 석 달째 나는 그의 인기척 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유인원이 왜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 있었을까? 좀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 방에는 바나나라곤 없다. 하여간에 나는 삭막해져 가는 세태에 그 유인원을 어느 새 그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그가 제발 창문에 나타나주길 소원하면서, 쌍안경 까지 준비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린 보람이 있어 나는 침을 질질 흘리는 그 유인원을 보고야 말았 다, 그야말로 흥클한 유인원이었는데 여기로 이사온 지 1년만에 가장 똑똑히 보 았던 최초의 모습이었다. 쌍안경 덕분에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그 밖에 그 큰 코며 움푹 패인 고릴라 같이 생긴 눈이며 귀며, 덥수룩한 털로 덮 인 얼굴까지 너무나 똑똑히 본 나는 역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쌍안경을 집어 치웠지만, 나는 그 날 밤 다시 그 유인원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일까? 아니면 유인원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유일한 우리의 조상 일까? 섬칫하면서도 나는 끝내 일말의 애착을 그에게서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때려 치우고 그 유인원을 파악하는 일에 골몰하게 되었던 것이 다. 하기야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하루 종일 만화방을 지키는 일이었 지만, 그것도 내 생계에는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벌이였다. 그런데, 그 유인원은 벌이가 아니라 분명 먹이를 찾는 것 같았다. 그 날 밤 내 방 앞 계단에 서 있었 던 이유도 분명 먹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 전에 플라스틱 과일들이 장식된 내 방문을 최근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그 과일들 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에는 포도, 사과, 귤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살구, 바나나까 지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유인원은 분명 내가 일을 나갔을 때, 내 방문 앞에 붙어 있는 바나나를 눈독 들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게 가짜인 줄은, 그가 그 계단을 성큼 뛰어와(날라 왔는지도 모르지만, 왜냐하면 그의 방과 내 방 문까지는 3미터는 족히 될 고공이었기 때문이다) 맛을 보고 난 다음에야 알았을 것이다. 그 플라스틱 바나나는 아직 한 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채 있다. 나는 그에게 먹을 것을 좀 사주기로 다짐했다. 무엇보다 바나나가 제일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만화방 보는 값으로 번 일당 만 원을 고스란히 바쳐 나는 바 나나를 샀다. 그러나, 이걸 그에게 어떻게 전해 주느냐가 문제였다. 3미터를 날아 갔다 날아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점잖게 사람처럼, 그의 방문을 노크할 수도 없 는 일이었다. 그러자면, 1층으로 내려가 옆 집을 오른 쪽으로 한 바퀴 돈 다음 벨 을 눌어 그 집 주인을 부르고, 2층에 사는 고릴라, 아니, 유인원을 좀 만나러 왔 다고 해야 될 판인데, 그 주인이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 않으면 다행일 짓이라 그 건 도저히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내가 일을 나가가 전에 방문 앞에 걸어둔 플라스틱 바나나 대신에 진짜, 이 바나나를 걸어둔다는 묘책이 었다. 자다가 생각해도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다음 날 내가 만화방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닌게 아니라, 바나나가 감쪽 같이 사라져 있었다. 난 무척 기뻤다. 이제 그와 친구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 다. 그런데, 그 바나나를 내가 계속 사 줄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한 밤에 내가 잠들어 있는데 분명 누군가 내 방 문을 쿵쿵 두드 리는 것이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구세요오?" 나는 좀 겁이 났다. "저쪽에서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사람, 아니 그 유인원이 내 방으로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육감은 들어 맞았 다. "크윽, 크으." 무시무시한 저음의 고릴라 소리, 아니 유인원의 소리였다(내 방에 있는 사전에 의하면 고릴라도 분명 유인원과 속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유인원이란 고릴 라보다 훨씬 진화한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사시나무 떨리듯 떨고 있었다. 비마저 뿌리는지 추즐, 추즐, 소리가 기분 나쁘게 창문 밖에서 들리고 있었다. 다시 콩쾅, 하면서 문이 세게 흔들리며,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서질 판이었다. "크윽 , 응 틔 느응 응." 나는 제발 이 밤이 빨리 가고 찬란한 아침 해가 떠오르길 빌고 있었다, 그러면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그 만화방으로 달려가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독서를 하 러 오시는 어린이들과 또, 어른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리라 다짐했지만, 이제 문 은 고릴라, 아니, 유인원의 힘에 의해 부서질 직전이었다. 나는 분명 그 부서지기 시작한 틈으로 그 털이 북실북실한 그의 손을 보고야 말았다. 분명, 사람의 손은 아니었다. 그 때, "그 2층에 왜 그렇게 시끄러워!" 하고 우리 집 주인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뚱뚱한 우리 주인님이시여, 내 충성을 다 받쳐 일하오리다. 나는 분명 그렇게 다짐했다. 밖이 조용해졌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청계천에 가서 미제 자물쇠란 자물쇠는 다 들춰 보고 거금 3만원을 투자해서 자물쇠 3개를 사서 내 방문에 2개 더 채우고, 하나는 창문에 달아 놓았다. 그리고 만화방에 가서는 밤이 늦도록 손님을 대접하면서, 제발 그들이 한 시간 이라도 더 머물러 주길 간절히 기원했지만, 12시가 되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나 는 이제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불씨라곤 없는 만화방을 지키기도 뭐해서, 하 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내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고릴라, 아 니, 유인원은 더 이상 날 찾아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차츰 안정을 되찾고 있었 다. 그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면서 나는 다시 그 유인원을 그리워 하고 있었 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간혹 들려오던 그 울부짖음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 고 낮이고 밤이고 그의 창문은 꼭꼭 잠겨 있는 날이 많았다. 나는 혹 그가 아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비오는 밤에 찾아올까 싶어 자물쇠를 점검한 다음 난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너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 방 창문이 남향이니까,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의 창문은 북향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낮이고 밤이고 윤곽조 차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밤 12시가 가까우면 그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대개 내가 내 방으로 돌아올 무렵이었다. 나는 그가 내 시각에 맞춰 일어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유인원이 야행성인가 싶어 또 사전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가끔 밤에 나와 먹이를 찾기는 하지만 대개 낮에 활 동함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조금씩 무료해졌다. 그가 보고 싶었다. 어쩌면 저 렇게도 보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기야 우리 집 주인도 코빼기 한 번 보기 힘 드니 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이상할 건 없지만, 난 그가 그의 방 안에 정글이나, 우리를 만들어 놓고 칩거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상책인지도 모른 다, 밖에 나와 봐야 차 조심, 길조심, 불조심해야지 사람 조심해야지,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이제 그 안에 자기 영역을 꾸며 놓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 다. 그렇지만, 이제 용기를 내어 그를 직접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어, 아저씨, 저어." 생전 처음 얼굴을 보는 옆집 주인은 그야말로 뚱뚱했다. 난 그 때서야 비로소 우리 집 주인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알게 되었다. "저어, 아저씨, 위 층에 사는." 나는 위층에 사는 고릴라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유인원이라고 해야할지 다음 단어를 찾는데 고민하고 있었다. "아따. 그 사람, 뜸들이는구만잉?" "아저씨, 위층에는 누가 삽니까?" "아무도 안 사는디?" "네? 아무도 안 살다뇨, 왜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 아니, 털이 북실북실한 사람이 살잖아요?' "이 놈이 미쳤나,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저리 가잉?" 나는 미친 놈 취급을 받으면서 물러났다. 그러나, 아무도 안 살다니. 분명, 그 유인원은 그 날 밤도 창문에 불이 켜지면서 존재했다. 분명 고릴라 같은 두상에, 온 몸이 털로 덮인 윤곽을 나는 창문 틈으로 바라 보았다. 그래서 난, 그를 직접 방문(?)하기로 다짐했다. 그렇지만, 다시 그 뚱뚱한 주인에게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3미터 고공을 날라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널 판자를 걸 쳐 놓고 그의 방문을 두드리기로 작정했다. 이만한 모험심이 생긴 것은 오로지 그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나는 이 각박한 세태에 하나의 원시인을 만난다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로 요즘 내가 손님들과 어울려 만화를 너무 본 탓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기는 들었다. 그를 찾아 가는 날을 10월 10일 중국 명절인 쌍십절 로 정했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 날이 길일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것도 요즘 무협지를 너무 봐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를 찾아 가는데 무슨 날인들, 그 게 아니라, 실상은 일말의 불안감을 미신으로 타파하자는 속셈도 깔려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10월 10일의 밤은 가을비가 슬슬슬 뿌리고 있었다. 그의 방에는 아직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난 그가 잠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리고 내 손에는 바나나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일종의 스릴을 감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나는 유인원과 대면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 무슨 말 을 할까도 생각해 두었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난 그 말을 하기로 마음 먹 었다. 비마저 뿌리는 깊은 밤에 2층과 2층 사이를 널빤지 하나로 건넌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막 그 집 2층 난간에 첫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바식하고 바로 그 방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간이 덜컹하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조 마조마.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하고 머리털이 부쩍 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그 울부짖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태껏 들은 소리 중에서 제일 큰 소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 다. 그런데 그 소리엔, 일종의 슬픔이 섞여 있었다. 분명 사냥감을 포획했다거나, 좋아서 웃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비록 사람이지만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 다. 그것도 요즘 동물의 왕국을 너무 본 탓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알아서 나쁠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숨을 죽이며 그의 방문 앞까지 왔다. 이미 내 몸은 빗물에 다 젖 어 있었다. 안에서는 여전히, "크응, 앙. 킁윽-, 으은은응."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동물의 왕국에서 본, 들은, 소리는 저것보다도 우렁찬 고릴라의 소 리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분명히 어디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찰라, 방문이 휙 열리더니, 그 고릴라가, 아니 그 유인원이 뛰쳐 나왔 다.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난간을, 아니 그 3미터의 고공을 그야말로 날라 내 방으로 들어와 자물쇠 3개를 다 잠갔다. 그러자 저 편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그의, 아니 고릴라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쾅하고 났다. 나는 그 날밤 잠을 자지 않고 내내 보초를 서다시피 내 방안을 돌아 다녔다. 다음 날 그 그리운 해가 뜨자, 나는 부리나케 내 방을 뛰쳐나와 만화방으로 가 서 전에 없던 대청소를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자 생전 얼굴도 보이지 않던 주인이 오늘은 왠 일인지 치장을 하고 나와서, "음, 열심히 하고 있구만. 꼭두새벽부터." 하고 칭찬을 했다. 누가 지금 그 칭찬 듣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나. 나는 아직 어 젯밤의 환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환영이 아니라, 분명 보았던, 그 거대 한 털북숭이 고릴라, 그래 분명 고릴라의 형상이었다. 그런데도 오후가 되자 난 그를 자꾸 유인원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좀 더 사람의 모습에 가까운 고릴라, 유인원으로 그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분명히 그를 다시 만나야 하 는 숙명을 생각했다. 그와 나는 이제 한 동족 같아졌다고 생각했다. 적도 자꾸 싸 우다 보면, 나중에는 친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나와 그 유인원은 적도 아니며, 원 수도 아니다. 서로가 한 차례씩 방문을 좀 이상하게 주고 받은 친구인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가 두렵지 않았다. 그가 마치 나의 형제처럼, 아니 형님처 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밤에도 창문을 열어 놓고 그의 방문을 쳐다 보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그의 방에 불이 켜지는 나날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사나흘씩 불이 켜지지 않는 때도 있었다. 나는 그가 멀리 여행(?)이라도 갔다 오는 건가 싶었다. 그도 그리울 것이다. 그 밀림과 정글이. 어쩌다가 이 생판 낯선 서울 땅에 들어와서 저런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가 참으로 처량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날이 갈 수록 그의 방에는 불이 더 켜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이사갔 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재차 용기를 내어 이번에는 대낮에 그의 방을 정식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물론 날 미친 놈 취급하는 그 뚱뚱하기 그지없는 고릴라, 아니 유인원 댁 주인을 그치지 않는 방법으로, 다시 그 3미터의 고공을 나를 수야 없 겠지만, 전에처럼 기어서라도 갈 작정을 굳혔다. 11월 11일. 나는 그 날을 다시 길일로 잡았다. 뭔가 숫자가 겹치면 좋다는 생각 에서였다. 그날은 11월의 날씨답지 않게 꽤 포근했다. 나는 한 손에 꽃을 들고 또 한 손에 바나나를 들고 그를 찾아 갔다. 물론 만화방은 임시로 어린 단골손님들 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또똑똑. "계십니까?" 나는 조금 떨고 있었지만 아래 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연신하고 있었다. 막상 떨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부재중이었다. 신발도 없고, 아니 유인원이 신발을 신을 리도 없겠지만, 아니 온통 소주병 깨 진, 더러운 길거리를 걸으려면 그도 신발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안은 조용했다. 나는 그래서 저어기 실망했지만, 다시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없을 때 그의 동굴을 아니 그의 보금자리(?)를 한 번 보자는 생각이었다. 삐꺽,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냄새를 코를 털어 막고 말았다. 그야말로 과천에 한 번 갔을 때 그 여우나 늑대 우리에서나 나던 그런 냄새였다. 간신히, 코를 털어 막고 안을 보았다. 아, 안은 분명 열대지대였 다. 후끈한 열기 감돌고 온통 덩굴나무며, 잎이 넓은 야자수로 장식(?)되어져 있 었다. 그리고 그건 조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진짜 나무들이었다. 나는 그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았다. 냄새와는 달리 그 안은 의외로 아늑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보았다. 마른 풀들이 깔린 자리였는데, 바로 그 유인원이 취 식을 하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 방 창문의 윗부분이 보였다. 키 큰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 양반이라면 가만히 앉아서도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자 리였다. 내가 늘 창문을 열어 놓고 있었으니 그는 날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 각이 들었다. 그는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먹이를 구하러 나간 것일 까? 아니면, 누구 친구라도 만나러 간 것일까? 친구? 그에게도 친구가 있을까? 나는 그 때 갑자기 과천 어린이 대공원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혹 그가 그 먼 과천까지 갔다 오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친구도 만나고, 먹이도 구하고. 그런데 이런 대낮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 이 보면 당장에 잡아 먹어 치우든지 아니면, 동물원에 팔든지, 양심 있는 놈이라 면 기증하든지 할 것인데. 나는 날이 갈 수록 궁금해졌다. 그날 밤도 분명 고릴라의 방에는 불이 들어 왔 다. 나는 피곤도 하고 또 밤에 찾아 가는 것은 전번처럼 실례가 될까 싶어 다음 날로 미루어 두었다. 겨울이 다가 오면서 만화방 일은 점점 더 바빠졌다. 게으르기 그지 없는 단골 손님들이 점점 날이 추워지자 여기를 자기들 은신처로 삼고 있었다. 너구리를 잡 으려는 것도 아닐텐데 중학생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들이 벌써 담배를 꼬나 물고 피우질 않나, 어린 놈들도, "아저씨, 여기 콜라 한 잔 주세요." 하면서 발을 꼬고 앉아 안방마님 행세를 하지 않나, 나 참 내가 비록 만화방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날이 갈 수록 더러운 꼴 못 볼게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 고릴라 손님, 아니 그 유인원을 점점 더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렇지만, 낮에는 부재중인 것 같고, 밤에는 늦게나 되어야 들어오니 도무지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생각해 낸 것이 아침 방문이었다. 사실, 아침에는 그가 아직 자는지(고릴라가 늦잠 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아니면 있어도 보이지 않는 건지, 또 외출이라도 하는 건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12월 12일, 나는 다시 한 달만에 그의 집 방문일 을 정했다. 전에 사 둔 꽃은 다 시들어 버렸고, 그 바나나는 내가 다 먹어 버려서 나는 다시 거금 일만 원을 들여 꽃과 바나나를 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침 일찍 나가 그의 집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사실 나는 그가 어디로 드나드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대문과 2층 난간 의 3미터 고공을 번갈아 주시하느라 정신 없었다. 그러나, 2시간을 기다려도 그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 주제에 하루 만화방 문 닫을 수도 없는 일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바나나를 먹으며, 나는 다시 만화방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에 집어 치웠던 쌍안경을 다시 꺼내(사실 이 쌍안경도 어린 손 님이 놓고 간 것을 사흘을 기다려도 그 주인이 나타나질 않기에 내가 임시로 보 관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특히 새벽녘에 그를 주시해 보았다. 그러나 꽉 닫힌 창 문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속이 탔다. 나의 우호를 이렇게도 몰 라주는가 싶어 그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새벽의 방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1월 1일. 겨울 새벽은 너무 추웠다. 나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추워서 사시나무 떨듯 떨며 그의 방문 앞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미친 놈 취급 받지 않으 려고 그 댁 주인 집 경유는 애당초 포기하고 3미터 고공을 그야말로 조심조심 기 어 건너왔던 것이다. 이미 손은 얼어 터져 있었다. 똑똑똑. "계십니까?" "크응-." 그래, 분명 그가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잘못 하다간 바나나를 떨어뜨릴 뻔했 다. 남에게 주는 선물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안 될 일이고, 또 그게 먹는 거라면 더더욱 그랬다. 드디어 문이 삐꺽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나온 것은 그 집 주인이었다. 난 내가 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꿈쩍꿈쩍 뜨고 다시 보았지만, 분명, 그 뚱뚱한 주인이었 다. "누구시오?" "예, 저어-." 나는 또 그때 일이 생각나 일찌감치 미친 놈 취급받기 전에. "네, 저, 전에 일도 사과 드릴 겸 바나나와 꽃을 좀 사왔습니다." "아니가, 이런 꼭두새벽에." 그 뚱뚱한 주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꽃보다 분명 바나나에 눈독을 들이고 있 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여기서 사십니까?" "응, 아냐, 어제는 하도 추워서 말이야, 아래 층에 불이 꺼졌거든." 나는 차마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의 보금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누구 또 미친 놈 취급하기도 싫었다. 나는 내가 아무래도 요즘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 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나는 내 머릴 처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 다름 없이, 이상 징후는 없었다. 돈 게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그 집 주인과 고릴라 아니, 유인원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등신은 아니 다. 뚱뚱하다는 것을 빼고는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과 그 집 주인은 하나도 닮은 데가 없었다. 유인원은 키라도 컸지, 그 주인은 너무나 땅땅했다. 그리고 머리가 민둥머리였다.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그래도 털이나 많지, 그런 대머리는 아니었 다. 게다가 부리부리한 우리의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 눈과는 달리 이건 단추 구 멍만한 눈 하고는 나는 또, 그 뱀의 입술처럼 얇은 주인의 입을 보고는 그 유인 원의 듬직한 두터운 입술이 그리워지기조차 했다. 그런데 나를 한가지 의심하게 하는 것은 내가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 양반을 본 것이 대개 깊은 밤이나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날이었고, 또, 놀라 도망가면서 설핏 본 것이라는데 있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나는 너무나 똑똑히 그 유인원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이 각박한 세상에 나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 는가? 나는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을 믿으면 믿었지 다른 사람을 믿을 수는 없 었다. 그래서 나는 혹 그 주인이 고릴라를 사육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 서 나한테 능청을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곰도 사육하면서 산 곰 배를 뚫어 쓸개에 고무 파이프를 꽂아 놓고 그 즙을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팔아 먹는 놈까지 있는 판인데 그 고릴라의 간이나, 쓸개를 못 먹으라는 법도 없 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분노에 치를 떨었다. 내 환상이냐, 아니면 사 육이냐, 길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며, 그 야자수의 보금자리며를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육은 아니었다. 세상에 고릴라 사육한다는 말 들어 본 적도 없고, 또한 그날 이후 난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 몇 번이나 들락거리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할 수 있었다. 분명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어디 외출 갔다 들어온 사람처럼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난 마지막으로 방문 시간을 밤 12시 로 정했다. 좀 늦은 시각이지만 그 방법 외엔 그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난 다시 세 번째로 꽃과 바나나를 사서 그 난간에서 기다렸다. 11시 50분. 이제 그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오늘은 2월 2일 이었다. 그런데 이제 몇 분만 지나면 2 월 3일 된다는 게 나를 좀 꺼림칙하게 하고 있었지만, 그까짓 미신에는 눈을 돌 리기로 했다. 이윽고 내 야광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처버처벅. 무언가 공중을 날라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밤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 랜만에 별들이 몇 개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난 서울 하늘에도 별들이 이렇게 살아 있는 줄은 그야말로 몇 년만에 처음 보는 것 같아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크윽, 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앗! 그 고 릴라, 유인원께서 날 희끄무리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 갔다 오십니까?" 난 첫 마디가 너무나도 쉽게 나오는 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나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크윽, 끙" 아까와는 좀 다른 억양으로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리고 그는 , 그의 방 쪽으로 가자는 시늉으로 그 긴 팔로, 검은 팔로 나를 방 쪽 으로 이끌었다.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란 것을 알았다. 나는 그와 나란 히 걸으면서 그의 육중한 둔부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두상이 며, 카칠카칠한 털이며,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는 것 같았지만, 애써 태연하게 그와 보조를 맞추었다. 그가 먼저 방문을 열었다. 또 그 냄새가 났다. 찌릿한 코를 톡 쏘는 역겨운 냄새. 나는 속으로 청소 좀 하 고 살아라는 말이 나왔지만, 감히 그 앞에서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 며 그의 방으로(아니 우리인지도 몰랐지만) 들어섰다. 그리고 그가 불을 켰다. 불 켜는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라고는 처음 들어 봤지만, 그게 동물적인 고릴라가 아 니라, 인간적인 유인원이라서 다 그럴 게라고 나름 대로 추측했다. 막상 소굴에 오고 나니 두려움도 덜 했다. "크을 킁." 어떻게 왔수 그 말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난 그가 한 손에 가득 바나나 를 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와중에도 이런 추운 겨울날에 어디서 저 바나나 를 다 따온다는 말인가 싶었다. "네, 저 옆 집에 사는 박돌식이라고 합니다, 왜 일전에 한 번 뵈왔죠." 나는 그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말했다. "바로 옆 집에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인사도 못하고 해서." "크을, 응." 자기도 마찬가지란 시늉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크윽, 큭 응 으읔." 하는 꽤 긴 단어를 구사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가진 바나나를 탐내는 모양이었다. 난 선뜻 그것을 그 앞에 내어 주었다. 그리고 꽃도 같이 주었지만, 그는 꽃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다만 바나나부터 하나 까서 먹기 시작했다. 그가 가지 고 온 바나나도 상당한 양이 옆에 있었지만 욕심 많게 내가 가져온 것부터 먹고 있었다. 나는 그가 고릴라에서 더 진화한 유인원이라고 확신했다. 앉아 있는 모습이며 어느 정도 언어 구사 능력을 보이는 것도 다 그런 예일 거라고 생각했다. 차츰 시간이 흘러 갈 수록 나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그런 어떤 적의도 나에게 품 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전에 이 댁 주인 아저씨께서 여기서 주무시고 나오시는 것 같은데…." 나는 다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나도 몰랐다. "크윽, 응 크으으읕 긍,응"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무슨 설명을 하는 것 같은데 알아 들을 수가 없 으니 답답했다. 그에 비하면 이 유인원은 내 말을 분명 알아 듣고 있으니 그가 2 개 국어를 구사하고 난 하나밖에 모르는 신세였다. 그리고도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내가 못 알아 듣는 것을 알았는지 자꾸 그 이 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언어란 묘한 것이어서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나는 힘겹 게나마 그의 말을 대강 이해했다. 그것을 간단히 말해 보면, 주인 아저씨는 바로 v자기의 할아버지뻘에 속하는 친척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아프리카에서 여기까지 찾아 와서 기거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자세한 내막까지야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로서 나는 첫 번째 궁금증이 하나 풀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주인은 왜 2층 에 아무도 안 산다고 했을까? 나는 그걸 이 고릴라, 아니 유인원에게 물어 볼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 볼 말의 성격이었다. 나는 그가 좀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 그만 그에게 작별을 고하고 또 다음에 한번 더 찾아 오겠다고 말했다. 그도 작별이 섭섭한지 문간까지 나와 배웅을 하 며, "크윽, 응." 하고 말했다. 끝에 응자가 붙는 말은 분명 좋다, 반갑다, 라는 뜻임을 나는 하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나만이 하나 더 아는 듯한, 그 중학교 때 영어 배우던 느낌이 새삼 들었다. 이제 이웃이 하나 생긴 셈이다. 이 곳에 이사 와서(이사 짐이라고 해봐야 가방 하나뿐이었지만) 나는 2년만에 이웃 같은 이웃을 하나 얻은 셈이었다. 이 아파트 와 단독 주택이 밀집한 서울에서 나는 그야말로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 고, 어린 아이 잡고 말할 수도 없고, 또 그 놈들도 까져서 도무지 내가 당하기만 하는 판이라, 난 그들과 이야기 하기 싫던 차에 이렇게 듬직한 이웃을 하나 얻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궁금증은, 그가 낮 동안에 어디를 갔다 오는 것일까? 분명 바나나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디를 어떻게 갔다올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건 다음에 찾아가 그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한 번 물어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가 걸어서 밖으로 나올 리는 요새 같은 세상에 만무하고 해서 나는 또 2월 2일 밤 11시 50분에 찾아 갔다. 오늘은 술까지 한 병 사들고 오랫동안 그와 이야 기해 보자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또 제 시간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도 몹시 반가운지 나 를 보자마자 두 손을 잡고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우린 둘이 마주하고 앉았다. 안 주는 바나나였다. 술은 그가 좋아할 것 같은 막걸리로 정했다. 어쩐지 양주나 맥 주, 따위의 냄새나는 독한 술은 그가 싫어할 것 같은 나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래, 어딜 매일 그렇게 갔다오슈?" 나는 그가 내 형님뻘이 아니라, 친구뻘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할 아버지뻘이 된다는 이 댁 주인 양반의 나이가 이제 예순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응, 틔, 과처-." 분명 과천이라는 소리였다. "그래, 그 바나나도 과천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오?"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y "그럼?" "크응. 킁, 가라-시." 가라-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나는 머리를 굴렸다. 가라-시? 옳지! 바로 가 락시장이라는 말이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 시이, 아이 시이." 하면서 영어를 했다. 그리고 보면 중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내 영어 실력도 괜찮 은 것 같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 못 알아 듣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도 만날 그 히어링인가 뭔가는 한국말에 익숙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나 나나, 둘 다 2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 쪽이 3개 국어 를 조금 하는 것이니, 좀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해 나는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고릴라와 술까지 마시는 기분은 더 좋았다. 그래 나나 또 인간의 본성 인 꼬치꼬치 캐묻기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과천에는 왜 갔수?"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원래 얼굴이 검어서 술이 취한지 안 취하는지 얼굴 색 을 보고는 몰랐지만 그의 말이 조금 꼬이고 있었다. "크으응, 킁크으--어어, 크크크크, 으."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술 취하지 않은 말도 이제 겨우 알아 듣게 yy된 판인데, 혀 꼬부리지는 고릴라, 아니 유인원의 소리는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신경질이 났지만, 꾸욱 참을 수밖에 없 었다. 홧김에 고릴라가 무슨 짓을 할지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난 그 과천에 간 이야기며 가락 시장에 간 이야기는 다음에 말짱할 때 듣기로 하고 접어 두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노래나 하나 부르자고 했다. 그러자 그가 먼 저, "쿠웅-킁킁, 으응나나나나나나-." 하면서 두 손을 벌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나는 그가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 보면서 꽤 한국 문화에 동화 되었구나 싶었다. 아프리카 춤이라고는 믿기 어렵 게 우리 춤사위를 늘어 놓았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나는 그래서 요새 텔레비전에서 인기 있는 만화 정글북 에 나오는 노래를 불렀다. "마음을 놓고 꿈을 꾸어라-. 정글의 왕자-." 이게 아프리카 리듬도 아닐 텐데 고릴라는 더 없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향수까지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에 우리는 그야말로 즐겁게 밤을 새워가며 노래와 춤을 추었다. 이윽고 새벽이 왔을 때는 나는 추워서인지 고릴라와, 아니 유인원과 꼭 껴안고 자고 있었다. 그나 나나 둘 다 외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일 터로 나갈 시간이 되자 그는 몹시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 암놈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은 그 고릴라가 어떻게 집을 빠져나가 , 시내를 다시 빠져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날라 가는 것은 그의 덩치로 봐서 무리겠고, 그렇다고 옷 한 벌 없는 그가 분장을 하고 나가는 것도 아닐 테고,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아니 친구로서 그의 안전을 생각하는 문제였다. 간 밤의 숙취가 들 깬 나는 머리가 고릴라에게 뒤통수를 한 방 얻어 맞은 것처 럼 띵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 손님들에게 연신 짜증을 내면서 똑바로 앉아 책 을 보라느니, 그리고 콜라는 설사할 때 외에는 안 먹는 게 좋다니, 하면서 별 투 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앞으로 고릴라와의 과음을 피하도록 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자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안만 먹어도 얼굴 색 하나 안 변하고 끄 덕도 없으니 공연히 심술이 날 지경이었다. 둘이 같이 먹었으면 같이 취해야지 누구는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하고 누구는 말짱하고. 2월 22일. 나는 이제 이웃집 드나들 듯 그를 찾아갔다. 여전히 내 손엔 막걸리 가 3통 쥐어져 있었다. 그와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만화방 보는 일도 지겨웠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지 그 날은 12시가 넘어도 그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 교통 사고라도 당했나, 아니면 , 강도, 아니 그럴 리 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고릴라와 싸워 이긴 강도 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 기 때문이다. 내 야광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자 나는 철수를 다짐했다. 이미 난 2통의 막 걸리를 고릴라의 방 앞에 앉아 먹어 치운 탓에 그럭그럭 취기라 돌았다. 어딜 갔 나? 설마 누구 또 다른 친척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 집 주인 할아버지 빼고는. 과천 친구 집에도 그리 오래 머물기는 뭐할 텐데, 난 혼자 별을 바라보며 애미 자식 기다리는 심정으로 별에 별 생각을 혼자서 다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제 심각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어 디서 죽은 게 아닐까? 아니면 과천에서 사육사에게 잡히기라도 했단 말인가? 또 가락시장 맨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드디어 밤이 되면 그를 찾아 나서는 일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어디를 갔단 말이냐, 이 친구야. 나는 슬퍼졌다. 유일한 이 동네 친구인 그가 없어졌다는 것은 나에게 큰 외로움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밤 12시. 이윽고 나는 로프와 회중전등, 그리고 담요를 싸들고 과천으로 출발했 다. 유일한 단서는 그것 뿐이었다. 내가 고릴라, 아니 유인원 언어를 조금 할 줄 아니까, 과천에 가서 그 유인원과인 고릴라 친구에게 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2월 24일. 같은 숫자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 좀 뭐했지만, 나는 택시를 집어 타고 과천으로 출발했다. 택시 운전사가 내가 든 로프를 보고 겁을 집어 먹는 것 같았지만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 리고 그가 제발 무사하길, 내 친구인 그가 살아 있길 간절히 빌면서 나는 택시가 밤길을 가르며 과천 쪽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 볼 도리밖에 없었다. 이 놈이 빙 돈다거나 하면 내가 가진 돈이 만 원뿐이었기에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몰랐기 때 문이었다. 이윽고 택시는 무사히 과천 대공원 앞에 도착했다. 나는 돈 일만 원을 지불했 다. 그것도 2000원 깍은 것이었는데 택시 운전사는 두 말도 없이 그걸 받아 챙기 고는 휭 달아나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이 대공원 문은 꽉 닫혀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관리원들을 피해 후문 쪽으로 갔다. 그리고 낮은 담을 불쑥 뛰어 넘었다. 아무리 낮다고는 하지만 고릴라 댁, 아니 유 인원 집에 드나들던 3미터 고공 타기가 많이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회중전 등을 땅으로 비추면서 난 한발 두발 걸어서 갔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고 있 었다. 난 이제 봄이 왔구나 싶었다. 전에도 겨울에 한 번 왔었는데, 그 때는 물이 y꽁꽁 얼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방향 감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 게 표지판을 비추어 보았다. 얼룩말, 홍학, 갈림길이었다. 나는 짐작으로 얼룩말 쪽을 택했다. 아무래도 홍학보다는 얼룩말 쪽이 고릴라와 더 가까운 혈통일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원숭이 우리가 보였다. 그러나 원숭이들은 추워서인지 모두 집에 들어 가고 밖에는 한 마리도 없었다. 겨울이구나, 그렇지, 그 때도 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들이 우리 뒤쪽에 있는 집에 들어가 유리관 속으로만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해놓은 것을 기억해 내었다. 거기는 입구부터 쇠문으로 잠겨져 있었다. 그래서 사면이 콘크리트로 된 거기 를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 때 나는 밤 하늘에 빛나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는 데, 별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원숭이류 우리 위 지붕에 환풍기가 금색으로 반짝 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거기로 올라갔다. 밤이고 또 미끄러웠지만, 내 친구 고릴라, 아니 유인원 을 찾겠다난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올라갔다. 간간이 들려 오는, 바다사자의 울음 소리인지 새들의 카악거리는 소리인지 몰라도 오히려 그 소리가 나를 응원이라도 해 주듯 고맙게 들렸다. 그리고 내가 나사 못을 풀고 쿵하고 떨어진 곳은 바로 거대한 고릴라의 코 앞 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도 나를 이해할 것이다, "크윽. 응"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자 그 고릴라가 희미한 불 빛 속에서 눈을 꿈벅거리더니, "크윽, 응." 하고 말했다. 분명 좋다, 반갑다 하는 응자가 들어가 있었다. 난 그들의 말을 잘 배워 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대화부터는 잘 풀려 나가질 않았다. 아 무래도 내 친구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 훨씬 이 고릴라 보다 진화한 종족임에 틀 림 없었다. "크을 , 크으응킁?" 나는 아는 말이라곤 다 사용해 다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이 여기 오지 않았느 냐고 말했다. 잠이 들깬 이 고릴라는 머리를 글적글적 눈을 꿈벅쑴벅하고만 있었 다. "크으드, 은으키으, 응." 나는 제발 알면 이야기해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 때야 비로소 이 고릴 라도 내 심정을 알았는지, "크을, 크윽 으으응." 며칠 전에 왔다 갔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통 오질 않더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좀 더 시간을 끌며 자세히 물어 보았더니, 그는 저녁 시간만 되면 여기 서 나간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때 사육사들이 자기들을 우리에 가두어 놓으 러 오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도록 일찌감치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소는 항상 뒤 편 산 쪽이라고 했다. 혹, 어디 가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크윽, 느르으을." 저녁 먹이 구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드디어 그가 낮에는 사육사 몰래 이 우리에 숨어 들어와 다른 고릴라들과 섞여 놀다가, 밤이면 가락시장에 가서 바나나를 구하는 것이라는 최종 결론에 이 르렀다. 이미 시계는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가락시장으로 갈 돈도 차비도 없었다. 난 거기서 집까지 걸어 갈 생각을 하니 벌써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집으로 갈 수 밖에. 걸었다.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나도 울부짖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아니, 막 바로 만화방으로 출근한 시간은 아침 9시였다. 그런데, 도대체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어디로 갔을까? 벌써 몇 날째 깜깜 무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길 간절히 빌었지만, 일말 의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유인원의 할아버지뻘에 속한다는 그 뚱뚱한 주인 을 찾아보기로 생각했다. "아저씨, 위층 고릴라, 아니 유인원, 아니 아저씨 조카뻘 되는 -." "이 놈이 미쳤나." 하면서 그 집 주인은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다가 결국, "아저씨, 크으, 응." 이라는 내 말을 듣고는 날 그 집 안으로 들어 오라고 했다. 나는 분명 같은 친척끼리라 그들이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아저씨 도 내 말을 알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아프리카에 가 있어." "왜요? 어떻게요.?" "음, 그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거든." 그리고 그 전갈이 분명 과천을 경유해서 왔을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과천에 가면 큰 물새장이나, 야생 조류 새장이 있는데, 흔히 그 곳을 탈출한 큰 새들이 보란 듯이 새장 위에 또 다른 둥지를 털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분명 그들 이 아프리카까지 통신을 맡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갈매기류는 지구를 한 바 퀴 돌 정도로 멀리도 가니 다른 새라고 못 갈 것도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거기까지 갔느냐라는 질문을 하려는데, 그 아저씨가 동물적 육 감이 발달해서 그런지, "내가 며칠 전에 인천에서 몰래 화물선에 태웠지." 하고 말해 버렸다. 나는 그가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 주길 바랐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우선 외 로워서 못 견딜 판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해야될 질문을 아저씨에게 하지 않 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 마당에 그런 것 꼬치꼬치 캐묻기도 뭐해서 관 두 었다. 배로 아프리카까지 가려면 두 달은 더 걸릴 것이고, 또 돌아온다고 해도 몇 달 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돌아온다는 보장도 할 수 없는 판국이었다. 그는 과 연 돌아올까? 아아, 그로부터 몇 달간 나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과 마주치던 밤이며, 또 그와 나눈 이야기며, 술이며, 난 환상처럼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찬란한 여름이 왔을 때 거짓말처럼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똑똑똑. "크윽 응." 나는 두 말도 없이 문부터 열었다. 아, 그가 거기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크윽, 응."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래서 우린 다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단조로운 일상은 되풀이 되었고 나는 왜 그가 돌아 왔으며, 그 아저씨는 어떻게 자기 할아버지뻘이 되는지 묻지 도 않았다. 묻고 싶지도 않았다. 따지고 묻는 것은 그나 나나 제일 싫어 하는 항 목이었다. 아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사정도 좋지 않은 것은 동물의 왕국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또 그가 유인원의 혈통을 타고 났으며 거기서 자기 할아버지뻘 되는 그 뚱뚱보 주인은 몇 세대만에 제일 머리가 비상한 유인원으로 태어나 우연히 바닷가로 나왔다가 한국으로 오는 배를 신기해서 타 본 것이 이렇게 정착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뚱뚱보 주인이, 향수병을 못 이겨 과천으로 가서 그랜드 고릴라를 보고 그가 자기와 같은 밀림에 살던 친 구임을 알고는 아프리카로 연락을 취해 왔다는 것이었다. "크윽, 트으트으느으느크응." 고릴라, 아니 유인원은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자 신이 한국에서 좋은 약들을 가지고 갔지만, 이미 살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고릴라 보호지역도 해마다 줄어 들어 고릴라와 같이 사는 유인원들은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기도 하고, 또 요즘엔 가 뭄이 심해 아프리카 사람들 못지 않게 자기들도 죽어 간다는 슬픈 이야기들을 계 속했다. 나도 조용히 그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같은 혈족이 뚱뚱 보 주인뿐이며, 친구라곤 나뿐인 것 같았다. 그도 외로운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 v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그와 난 전에와 똑같은 반가운, 신비로운 날들을 맞이 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그가 사람들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불편 했지만, 우리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3미터의 고공을 오고 가며 술을 나누었고, 게다가, 어떨 때는 그 고릴라, 아니 유인원의 할아버지뻘 되는 뚱뚱보 주인마저 합세해 그야말로 셋이서 즐거운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도 역시 정글북과 동물의 왕 국이었고, 그나 나나 가끔 틈이 나면 과천에 가기도 했다. 물론 그는 밤에만 같이 갔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뜨일 염려도 없었고, 또 돌아올 때도 그가 안내하는 산길을 따라가면 두 시간에 만에 우리 집 뒤 산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까지 있 었다. 그리고 어떨 때는 내가 낮에 한번 만화방이 쉬는 날에 가 보았는데 아니나 다 를까, 그가 자기 친구와 어울려 즐겁게 놀면서 나를 보고, "크윽, 응." 하며 아는 체를 했다. 그 소리를 알아 듣는 사람은 그 우리를 지켜 보는 사람들 가운데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비밀 사인을 주고 받는 것처럼 즐겁기 v까지 했다. 그리고 사육사들도 낮에는 거의 이 곳을 지나다니지 않으니 아무 염 려 없다고 했다. 설사 오더라도 한쪽 귀퉁이나, 탈출구로 빠져나가 산에 숨으면 감쪽같이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에 그 사육사가 돌아간 다음에 오히려 맛있는 점 심을 공짜로 얻어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즘에는 밤만 되면 과천의 동물들을 모두 우리에서 풀어 주고 그 들만의 정글을 다시 찾는다고 했다. 물론 거기의 대장은 우리의 유인원이었다. 그 는 인간에 못지 않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난 만화방 보는 일도 이젠 예전처럼 지겹지 않았다. 그래서 청소도 더 열심히 하고, 어린 단골손님도 친절하게 대해 주고, 그래서 만화방은 날로 번창해 가고, 우리 주인은 드디어 3년만에 내 일당을 하루 만 원에서 이만 원으로 파격적으로 올려 주었다. 나는 그 날 바나나를 사들고 우리의 유인원 친구를 찾아갔음은 물 론이다. 그리고 그 날 기분이 좋아 과천까지 가서 다른 동물들과 하나가 되어 우 리는 잔치를 벌였다. 난 완전히 동물들과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다시 낙엽이 지고 겨울이 찾아 왔지만, 우리들은 하얀 눈과 겨울과 인간과 유 인원이 하나가 된 멋진 겨울을 나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이런 비밀이 존재한 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혈 통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유인원은 이런 말도 했다. "크으르 크으으." 인간 쪽에선 자신들이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기들 이 우리 밖에 있는 인간들을 구경하고 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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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손바닥에 자신의 마음을 나태내는 표식이 있었다.
그것은 숨길 수 없는 현재의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겉으로 아무리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도 해도 손등에 흰 색이 나타나면 분명 슬픈 것이다. 또 아무리 거짓말
을 잘 해서 남을 속이려고 해도 그의 손등에 나타나는 색깔이 검은 색이면 그는
분명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장갑을 끼고 다니는 사람은 일단 의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추운 겨울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외에는 사람들은 장갑을 끼고 다
니지 않았다.
또 예를 들어 한 사람을 좋아한고 할 때 으례히 손등에는 붉은 색이 나타나고,
화가 나을 때는 파란 색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네 가지 색 검은 색, 파란 색, 흰
색, 붉은 색으로 모든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사
람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고 난 다음부터 사람들 세상은 참으로 달라졌다. 이
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속일 수가 없었다. 단 겨울을 빼고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솔직하게 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손등에 드러나기 때문이며, 손을 감추는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국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김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갔다. 물론 김의 손등은 붉은 색으로 불타 올
라 있었다. 그런데 여자를 만나서 고백을 하고 있는데 점점 여자의 손등이 파랗
게 변하는 것을 김은 발견했다. 김이 자신이 사랑을 고백하는데 여자가 화를 내
고 있다면 여태껏 분명 헛 사귀어 온 것이었다. 김의 손등이 흰 색으로 변하면서
몹시 우울해졌다. 김은 여자에게,
"그 동안 미안했어."
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유쾌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만 그녀의 손등의 색깔은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못된 마음의 표시인 것이다.
김은 그 여인을 잊기 위해 바람 부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
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 주리라 마음 먹어다. 그러자 김
의 손등이 붉은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음의 승화였다. 그는 아낌없이 한 여
자를 사랑했고 오늘 그 여자에게 비로소 첫 고백을 했는데 막상 여자의 본심을
알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이렇게 가을비에 몸과 마음을 씻고 나
니 후련했다.
한편 여자는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손등을 꼭 감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천
한 마음의 색깔인 검은 색이 너무나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
지만 이 여자는 며칠이 지나면 다시 자신의 손등이 붉은 색으로 바뀌리라 다짐하
며 오늘의 수모를 참으며, 오히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김을 증오하고 있
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결국, 손등을 감춘 벌로 먼 나라로 유배되고 말았다.
길거리에 퇴근 시간이 가까어 오면서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서로들 조심스
레 길을 걸어가며 조용히, 또는 유쾌하게 웃으며 이야기 하고 이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청년들이 떼를 지어 오면서 한 노인의 어깨를 닥 치며 지나갔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약간 비틀거렸다. 그래서 노인이,
"에끼 이 놈들 !"
하고 호탕을 치자 노인의 손등은 금방 파란 색으로 변했다. 그 색깔로 봐서 여건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청년들이,
"뭐야, 늙은이가!"
하면서 욕을 했다. 그러자 그들의 손들이 전부 아주 지저분한 검은 색으로 점점
바뀌고 있었다. 그 깡패 같은 놈들도 부끄러운 것은 알았는지,
"아니? 아니? 내 손이?"
하면서 꽁무니를 빼며 으슥한 골목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러한 풍습은 전부 인간이 유인원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는
데 그 유래는 침팬지가 서로 반가울 때 붉은 엉덩이를 서로 비비는 풍습에서 유
래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서로 좋다는 붉은 색뿐이었는데 인간이 점점 못되지면
서 검은 색과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말끔히 한 여자를 잊고 새롭게 생활을 하고 있는 김의 손등은 언제나 붉
은 색이었다. 즐겁고 홀가분한 나날이었다. 연민이 복잡한 감정 따위는 날려 버
리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러나 손등의 색깔이 슬픈 흰색으로 가끔씩 변하는 날
이 종종 생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이렇게 혼자 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단 증명이었다. 그래서 김은 다시 한 여자를 찾기로 생각했다. 그
러자 마음이 즐거운지 손등이 붉은 색으로 변했다.
그 여자는 양지 바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도
오늘 처음 보는 듯한 여자였다. 햇살이 그녀의 어깨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샛
노란 햇살이었다. 눈이 부셨다. 그녀는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고운 손등에는 멀
리서 보아도 빨간 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행복한 것이다, 김은 그
렇게 생각했다. 무슨 책이기에 저렇게 움직일 줄 모르고 즐거운 것일까? 김은 별
로 책을 읽는 편은 못 되지만, 오늘은 그 책을, 아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조금 다가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둘은 얼굴이 마주쳤다.
그 순간 김의 손등은 샛빨간 색으로 물들여졌고 여자의 손등은 그대로였다. 김은
그대로 지나쳤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김은 그녀를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났다.
"무슨 책입니까?"
"네?"
"무슨 책을 그렇게 보세요?"
"우리나라 소설 책이에요."
"재미 있습니까?"
"네."
"제목은?"
"회오리바람."
"좋은 제목이군요?"
"아세요?"
"네."
그녀의 손등도 김의 손등도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날 이후 가끔 그자리에서 그렇게 만나곤 했다.
"이 책 빌려 드릴까요? 전 다 읽었는데."
여자가 말했다.
"이 가운데서 무엇이 제일 재미 있습니까?"
김이 물었다.
"전선."
여자가 대답했다.
"그래요?"
김은 그 책을 받고서도 읽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을 읽은, 바로 자신이 쓴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은 과장으로 발령이 나지 않았다. 벌써 7년째 대리였다. 그의 손등도 그 날
만은 파란 색으로 질려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아내가 또 투정을 부릴 것을 생
각하면 김은 더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없는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마음 고
생이 많았다. 게다가 김은 소설로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아낸 그야말로
박봉을 쪼개 쓰고 있었다. 아이도 벌써 둘이었다. 언젠가 회사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여인이 바로 김의 아내가 된 것이다. 아내의 손등에는 늘 그 날 햇살 같았
던 발간 색으로 물들여져 있었지만, 때로는 검은 색을 띠기도 했다. 그 날은 그
의 남편 김이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 술주정를 하는 날이었고, 돈이 없어 쩔쩔
매는 날들이었다. 김은 점점 술이 늘고 있었다. 돈이 그까짓 갓 별 건 아니다고
생각하며 아내와 행복한 신혼 살림을 꾸렸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김은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점차 견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번에 새로 과장이 된 박은 그의 동료였지만, 사장에게 갖은 아부와 부하들을
못 살게 굴면서 자신의 이익을 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검은 손등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장도 늘 검은 손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병상린
꼴로 인사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고 보면 김과 같이 샛빨간 손등을
가진 자는 이 회사에 몇몇 되지 않았다. 거의 검은 손등을 가진 자가 많앗다. 그
래서 김은 자신의 손등이 붉다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용기
가 나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도 점점 검은 손등을 가진 자들이 붉은 손등을 가진 자들보다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검은 손등이 오히려 정당한, 세상을 능숙하게 처세한
자들처럼 행세하고 있는 판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제 검은 손등을 무관심하게 보기 시작했고 자신의
손등이 검게 변해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 나라의 규율이 무너지고
있었다. 검은 손등을 감추지 않게 되었으므로 점점 유배를 당하는 자들도 줄어
들고 있어, 하루가 다르게 붉은 손등을 가진 자들이 설 땅이 줄어 들고 있었다.
이제 붉은 손등은 비웃음 거리의 표적이 되고 있어, 일부러 손등을 검게 물들이
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김은 자신은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가난을 참았으나 이상하게도 손등
은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마음에도 모가 나고 있었던 것
이다. 세상 보기 싫고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분명 그늘에서 좋은 일 하는 사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으련만, 김의 눈에는 모두가 더럽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도 어느 새 검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뿐이 아이엇다.
아내와 두 아이의 손등에도 검은 반점이 생기고 있음을 김은 종종 목격할 수 있
었다. 그것은 너무나 괴로운 현실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온 가족의 고통이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사람들 손은 이제 붉은 색을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모두 점점 마음의
거짓 상태인 감정이 없는 검은 색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붉은 색의 손을
가진 자를 만나는 날이면 그야말로 행운이 찾아온 날이었다.
야만의 풍습은 선이었을까? 악이었을까?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김에게도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굴복이 필요하단 말인가?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의 손이 검게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독자들
과는 거리가 있는 타인이니 가난하게 정직하게 살아가길 바라는가? 난 독자들이
원하는 쪽으로 그려 나가겠다. 아직 결정을 못했으면 천천히 알려달라. 독자를
무시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나의 손도 검게 변했으므로, 순수 창
작물도 내놓을 수 없다. 구미에 맞아야 잘 팔리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나 독자나 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구미에 맞는 게 반드시 현재 한국인의
진정한 고뇌를 반영한다고 할 수 없다. 왜냐, 건방진 말이지만 작가는 어느 정도
의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안 그런 작가도 수두룩하지만, 작가 정신이 상
실된 사람들도 많지만, 시대와 사회를 꿰뚫어 보는 눈은 그들 어릴 때부터 이상
한 환경과 습성에서 화석처럼 굳어져 생성된 것이기에 고고학자들이 화석을 믿듯
여러분들은 진정한 작가를 믿어야 한다. 당 시대에 우습던 글들이 20년, 30년 후
에 비로소 감탄을 하며 읽는 경우가 많지 않는가. 여러분이 잘 아는 이상의 날개
도 마찬가지였으며, 윤동주는 자신의 시집이 나온 줄도 모르고 죽었다. 그러나
윤동주는 말하지 않았는가. 내 이름자 묻힌 무덤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작가는 작가를 이해했고 이해한다. 동 시대 현재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동시대의 글을 동시대의 작가들은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연을 아는 것이
다. 물론 100%의 확률은 아니다. 다만 현재인보다 그 확률이 높을 뿐이다.
이제 결정했는가, 독자들이여.
검은 손인가, 아니면 붉은 손인가?
이 세상에 얼마나 다중인격자가 많은가!
한 인간의 몸 속에 여러가지 인격과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
쁜 일일까? 성장 과정에서 잘못 큰 사람, 잘못 배운 사람, 소설가의 몸 속에는
분명히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 단순하지 않는 사람일 수록 다중인격자가 되기 쉬
운 법이다.
우리의 주인공 김은, 손바닥에 색깔이 나타나 사람들이 마음을 속일 수 없었던
야만의 풍습이 점점 사라지면서, 결국 회사를 때려 치워고. 요즈음은 다중인격으
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이중인격자, 아니 다중인격자가 아닌가 하는 번
뇌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시장에서 물고기를 팔며 밥을 먹는다. 생선말이다.
이 생선 장수의 다중인격이라면 물고기 값을 속인 다거나 물이 간 생선을 싱싱
하다고 속여 파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천만에, 그게 아니다. 장
사보다도 평소에 오고 가며 사는 와중에 느끼게 되는 자신의 모순과 불합리, 불
쾌함, 폭발하는 성질, 착한 척하다가 못된 먹은 자가 되어 버리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거난 지하철을 탈 때 김은 시선을 어디에도 둘 수가 없었다. 마주앉
은 사람 빤히 쳐다 보다가는 시커면 손을 가진 자들에게 한 방 욕이나 주먹을 얻
어 맞을 수도 있겠고, 또 설사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면 어
색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건 상대방 쪽도 마찬가지인지 자꾸 김의 눈
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은 어떤 날은 상대방에게 고운 다정한 눈길을 보
내다가 또 어떤 날은 신경질적인 눈매를 하다가 또 어떤 날은 아주 위협적인 눈
초리를 하다가, 또 어떤 날은 아주 무관심하다는 무시하는 표정을 짓곤 했던 것
이다. 이런 것들이 요즘 김의 고민이었다.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 눈길 하나조차
제대로 바로할 수 없는 자신이 아주 못나고 몹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이 간신히 생각해 낸 수법이 바로 눈을 감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었
다.
그러나 그것도 목적지가 짧을 때나 통용될 수 있는 수법이지 밤새도록 잠 푹
자고 나와서 상쾌한 아침부터 눈을 감고 있으려니 그것 또한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김이 집에서 나와 시장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40분은 타고 가야 한다. 그 40분
이 매일 아침 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졌다. 마치 지옥행 열차를 타고 가는 기분
이 매일 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염라대왕을 만나러 간다면 스릴이라도 있을 테지
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고 시커먼 땅속에서 지하철의 굉음과 탁한 공기와 사람들
속에서 계속 참고 있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고통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시장가에 새로 들어온 낯선 사람들. 또 전부터 알
던 사람들과도 뜸하게 만나면서 다시 인사하기가 자꾸만 서먹서먹하게 느껴져 결
국은 그들을 피하게 되는 증상이라든지, 그야말로 사람 만나기가 겁이 나고 피하
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생에 자신이 없어지고
자신이 뭐 잘못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면서 바로 살지 못하
고 있는 듯한 자신에 대한 불만이 계속 늘어만 갔다. 김의 손바닥은 이미 새카맣
게 변해 있었다.
다중인격.
자신의 몸 속에 또 다른 자신이 행동하고 있는 자. 야만의 풍습이 사라지면서
이중인격보다 더 복잡한 다중인격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군.'
김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벌써 다중
인격자의 특성인지도 모른다. 자기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 다중인격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기가 온통 매연에 질식되어 있어 보통 사람에게
도 공연히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고, 짜증과 신경질이 나게 할 수도 있으며,
또한 시끄러운 소리, 초록 빛이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 때문에 그럴 수도 있
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정상적으로 일하지만 기분이 상쾌하기는커녕 파괴적
성격이 돌출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한 인간의 욕심과 상대를 무시해야 마음이
편한 이상 성격에서 유래할 수도 있지만 그 근본 원이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아직
이 시대의 의학으로서는 풀기가 힘들었다.
그런 판에 보통 사람인 김이 자신의 모순을 술술 풀어 행복해지기는 여간 어렵
지가 않다. 김은 물론 술과 담배를 먹는다. 그것 때문에 몸이 건강하지 않아서,
위궤양과 두통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그 한 요인뿐만이 아닐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간 복잡하지가 않는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김은 지금 나이
사십을 살고 있다. 물론 결혼도 했고 청소년이 된 두 아들이 있다. 사춘기의 자
식들이 애를 먹여 그럴 수도 있고, 부부싸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중인격자가 되었느냐, 다중인격자이기 때문에 그래도 김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집에서도 편치 않느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물
음과 똑같은 것이다.
말이 좀 복잡해졌지만 다중인격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독자들도 한동안 참
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 자체가 다중인격인지도 모르고 또 이 글
을 이상하게 써 나가는 작가 자체가 다중인격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물고기 값을 깍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만 요즈음 그 때마다 김은 이
상하게도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
런 손님들에게,
"아이고 손님, 그렇게 깍다가는 물고기 먹을 것도 없겠수다."
하고 농담도 곧 잘 했지만 요즈음은 이상하게 그게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
해 보았자 쓸데없는 소리일 것 같고 결국 안 살 손님은 안 사고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요즘은 손님들도 좀 이상해져 빤히 생선을 보다가 그냥 휙 사라져 버
리니 언제 에누리를 해 주니 안 하 주니 하며 재미있는 실랑이를 벌일 틈도 없었
다. 마치 슈퍼마켓에서 물건 살 대처럼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산기만 바라보다가
검은 비닐 봉지에 싸 주는 물건을 들고 나오는 것처럼 물고기를 그렇게 사 가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에 자연히 김도 묵묵히 물고기 대가리를 몇 마리 잘라
서 검은 비닐 봉지에 넣어 주고는 말없이 거스름 돈만 내주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장사도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았다. 돈도 좋지만 뭐 사는 재미도 좀
있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점점 자기가 이상한지 손님들이 이상한지 분간이
서질 않으면서 머리가 띵 해지는 현상과 함께 불쾌했던 것이다.
그렇게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기분이 나쁜 게 당연했고 또 땅속 경치를 구경하
는 천연 동굴도 아니고 산소 부족. 먼지와 석면 가루가 검은 동굴을 날라 다니는
곳에서 더욱 기분이 나빠진 채로 집에 와 밤참을 먹으면 으례 소화불량성 욕이
식구들에게 나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 자책감에 비참해지곤 했다.
'왜 좀 참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이미 자신의 인격은 상실된 것이었다. 두 자식의
아버지로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체면은 덕은 사리진 다음이었다. 그것이 몹시
괴로운 김이었다. 그렇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하
는 자신이 저주스러울 정도였다.
언행의 불일치. 생각과 다르게만 행동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걷잡지 못하는 까
닭은 무엇일까? 언제부터일까? 이런 습관이 자신을 지배한 것은? 김은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 했다.
김은 만성 두통, 만성 위염, 만성 인후염, 만성 비염도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
서 몸이 괴롭기 때문에 정신력이 버티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야만의 풍
습이 사라진 사회의 모순으로 다중인격이 형성되었기 때문일까? 역시 알지 못할
해답에 머리만 지끈지끈해 올 뿐이었다.
요즘은 심장이 쑤시고 귀까지 멍한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물고기 장사도
신물이 난 지 오래다. 어떻게 사나? 무얼 하고 사나? 몸이 먼저냐? 정신이 먼저
냐? 때려 치우고 들어 앉으면 나을 병일까? 그러면 식구들은 누가 먹여 살리나?
영국 속담에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
고, 한 달이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1년이 행복하려면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평
생이 행복하려면 정직하라고 했다. 그러한 면에서 김은 정직하다. 그런데도 행복
하지 않다면 이 영국 속담도 마지막 부분, 평생에서 완전한 해답은 제시하고 못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미로 같은 이 도시의 인생, 인간.
독자 여럽분은 이 김이라는 사람이 불행한 원인을 알겠습니까? 아니면, 행복한
겁니까? 그저 그렇습니까? 아직도 김이 진실을 다 이야기하지 않고 뭔가 감추고
있는 이중인격자로 보입니까? 아니면, 이 글의 작가가 다중인격입니까? 아까 소
설가는 다중인격자라고 했으니까요. 김 또한 소설가였으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
오.
그렇지만 김은 생선 장사를 때려 치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
냥 물러 나면 자신과 인생에 패한 도피자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
신의 다중인격 증상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였다. 발명된 곳에서 고치자, 라는 생
각이었지만, 과연, 사회에서 도시에서만 그 발병의 원인이 있는 것일까? 성격적
유전은, 환경적 유전은, 받은 교육의 모순은 또 없었을까?
김은 야만의 풍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김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생각이었다.
그게 아직 그를 견디게 해 주는, 그래도 정직하게 물고기를 파는 생선 장수로 남
게 해 주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검은 손으로 더 이상 소설은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갓 잡아 온 물고기들이 파닥파닥 살아 싱싱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때면
생명력이 움트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차츰 줄어 들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건 분명 물고기들이 덜 싱싱해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이 썩고 있
기 때문이라고 김은 생각했다. 어떻게 움직이든 인생의 재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김은 자신이 이제 벼랑 끝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만이 아니라 이제 거리를 걸을 때도 예전보다 더 다른
사람들의 눈이 거슬렸다. 모두 검은 손바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외국인과 마주보며 걸어 오게 되었을 때 그 외국
인이 일부러 김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겸손마저 느껴지는 모습으로
스쳐 지나 갔을 때,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붉은 손을 보았을 때, 김은 그
는 우리보다 분명 문명과 예절이 발달된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편했
다. 그래서 김 스스로도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눈울 슬쩍 내려 깔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 외국인은 남자였는데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어쩌면 좀 외로운 듯한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이 도시의 졸부들과는 너무 달랐다. 적어도 상식과 예
의를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먹고 마시고 흥청대고 사기 치고 공갈하고 남 깔보는데만 뛰어난 이 도시의 졸
부들, 남녀들. 김처럼 정직하게만 살아도 괜찮겠지만 열 명에 서너 명이 인간 덜
된 놈들이라면 나머지 사람들도 다 보기 싫어지게 마련이다. 만약 지하철 안에서
마주앉은 사람들 가운데 둘 셋만 시끄럽게 떠들어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에잇, 지
하철 시끄럽고 꼴 보기 싫은 놈들 많아서 못 타겠다, 하며 지하철에 탔던 사람
모두를 욕하게 돠고 마는 것이다. 착하고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들마저 결국 싸잡
혀 욕을 먹고 마는 것이다. 이 모순은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아니 유인원에서 머
리가 발달하면서 생겨나게 된 인건의 영악한 성격 탓이다. 누가 이 모순을 어떻
게 깨부술 수 있겠는가! 이 도시에서 사는 한 지하철 안 탈 수도 없고 사람 안
볼 수도 없고, 그렇다면 어디 깊은 산 속으로라도 들어가야 할 판이다, 김은 그
렇게 혼자 요즘 쌩각하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정직하다는 것만으로 악마성은 없는 것일까? 정긱한데도 손바닥이 검다는 것
은 그걸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열흘이면 열흘, 한 달이면 한 달, 1년이면 1년
과연 하루도 빠짐없이 정직하게 살았던 것일까? 하루라도 악마성이 나타난 날은
없었을까? 한 인간의 폐쇄된 뒷면에 숨겨진 악마성. 이중성. 간사함. 교활함. 욕
망. 김에게 과연 그게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 시장가 사람들이나 심지어 식구들에게조차도
몇 마디 하지 않았다. 설사 말을 한다하더라도 늘 당하는 쪽은 김이었다. 상식과
예의도 없는 대부분의 그들은 욕과 주먹질부터 해 왔다. 그래서 김은 물러섰다.
피곤했다. 산다는 것이. 절간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김은 운전을 배웠다. 그래서 어딘로든지 조용한데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하
던 물고기 장사를 때려 치울 수는 없었지만 운전 면허를 따고 싼 차를 한 대 샀
다.
그리고 물고기 장사마저 때려 치울 수는 없었지만 김은 이틀이 멀다하고 야외
로 나갔다. 시원했다. 푸른 하늘, 초록의 나무들, 바람. 그러나 문제는 돌아올 때
였다. 밀리는 차들, 탁한 공기. 매연. 회색 빛 도시의 건믈, 검은 하늘. 그리고 잠
을 자고 나도 다음 날이면 불쾌한 아침이 또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혼자 나갈 때보다 일요일 아침쯤에 아내와 자식들 모두를
태우고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혼자 가면 꼭 바람 맞은 남자나, 홀아
비처럼 힐끔힐끔 검은 손을 가진 자들이 쳐다보고 있어 야외로 나온 기분이 싹
가시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오늘 문 닫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결코 장사를 때려 치우지 않았다. 또 어떨 때는 청소년이 다 된 아이들이 이제는
각자 제 인생을 찾아 검은 세상으로 홀로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운전 피로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했다. 엉망인 교통 질서, 못되게 운
전하는 검은 손의 남녀들. 정말 그들의 눈동자는 지하철 앞에 앉은 자들 못지 않
게 김을 피곤하게 했다. 그들 또한 김에게 피로를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김은 자
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 탓만을 했다.
하여간에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김은 자동차 타고 나
가는 것도 좀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장사는 아내가 도맡아 했다, 그런 아
내가 남편인 김에게 큰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남편
이 걱정되기도 하고 또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김은 아예 이주를 생각했다. 조용한 시골이나, 숲 속으로 들어 가는 것
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걸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내는,
"당신 미쳤수? 장사는 어떡하고 뭐 먹고 살고, 또 아이들 교육은 어떡하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아내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김은 슬슬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좀 더 자신
이 참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지만 김은 이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이
언젠가 곧 실현될 이주를 따져보고 있었다.
아내와도 이야기가 잘 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김을 비
난하고 있다고 김은 벌써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분명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김의 마음이었다.
열 살 때의 생각이 다르고 스무 살 때의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서른 살
때 세상을 느끼는 생각도 물론 다르고 마흔, 쉰, 예순에 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
이 다 다르다. 그러니까 세상은 모순과 불합리 속에서 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좀 더 젊었을 때는 불합리와 모순
과 파괴성과 악마성 속에 살았을 수도 있으며 그가 그러했을 때 인격을 갖춘 사
람들은 그에게 피로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양쪽도 불합리 속에서 생겨난 다중
인격으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또 현재도 그렇게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슬플 때의 흰색 손과 화가 났을 때의 파란 손마저 잘 볼 수가 없었다. 사
람들은 모두 감정이 썩고 있는 것이었다. 더러운 검은 손이 지배하는 다중인격자
들의 세상이 되고만 것이었다.
그렇지만 김은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야만의 풍습이 생겨나 저
마다 손에 흰 새과 파란 색과 검은 색과 붉은 색으로 자기 마음을 나타내고 검은
손을 가진 자는 부끄러워 살 수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손을 감추는 자는 영원히 유배되고 마는 세상이 오기를 빌었다. 그 야만의
형벌이 그 야만의 풍습이 다시 찾아 오는 세상. 그 야만은 깨끗하고 순수하고 정
직한 것이 아니었을까, 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건강한 붉은 심장처럼 모두가 그런 마음의 색깔을 가진 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김은 간절히 빌고 있었다.--- ----문학세계1996년11월호---
--------------------------------------------------- .......................................... 김 영 관------
이제 열 명중 세 명 남았다.
나, 김 대위, 최 일병.
전선에는 이미 포성이 멎은 1954년의 겨울. 열 명의 국군 포로 가운데 우리 셋
만이 유일한 생존자다.
일곱 전우들은 이미 이 곳 포로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강 하사, 박 상병, 이 일병, 또,….
우리들은 남쪽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감방 구석에 쥐들이 또 밥통을 노려 보고 있다. 한 놈도 아니고 둘, 셋, 넷, 아
니 도무지 수를 셀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붙은 바깥보다 쥐들에게도 이 안이 따뜻한 모양이다. 혓
바닥으로 핥아 먹은 우리들의 밥통에는 밥풀 하나 붙어 있지 않지만, 먹을 것이
없긴 이 곳 쥐들이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밥이 줄면 저 쥐들을 잡아 먹어야 될 것이다.
김 대위와 최 일병은 뼈만 남은 해골이다.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만져
보면 그들과 다를 바 없다.
햇볕마저 들지 않는 수용소 감방 12호실.
음습하고 썩는 냄새가 이 감방을 휘휘 돌아 다니다 결국은 우리들 폐와 몸 속
으로 빨려들고 만다.
천정 위로는 북쪽의 모진 겨울 바람이 위윙 소리를 내며 훑고 지나간다.
3년전 1951년의 봄.
우리 중대는 밀려오는 공산군과 중공군의 추적을 받으며 후퇴하고 있었다.
경기도 서북방 00지역.
닷새 동안의 전투 끝에 우리 중대는 거의 전멸 상태였다. 남은 중대원은 불과
서른 정도였다. 다리가 그대로 잘려 나간 부상병, 윤곽을 알아 보지 못할 정도로
갈기갈기 찢긴 선임하사의 얼굴. 제대로 총이나 멜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중대장
김 대위, 그리고 최 일병과 몇몇 뿐이었다.
중대 진지를 포기하고 서둘러 후퇴하면서 우리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죽는 것
과 포로가 되는 것. 그것은 어느 쪽이나 우리들에게는 두려운, 무서운 현실로 다
가서고 있었다.
우리들 후방까지 적들이 들어와 이미 우리의 퇴로는 막힌 거나 다름없었다.
식량도 탄환도 물도 의약품도 모두 바닥나 있었다. 서른 명의 생사는 각자의
손에, 그리고 중대장 김 대위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눈발마저 간간이 뿌리는 3월 밤의 추위, 이미 열흘째 갈아 신지도 못한 축축한
양말, 손가락과 발가락은 심한 동상에 걸려 있었다.
퇴로는 없다.
중대장 김 대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그리고 내일은?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병사들에게 놔 줄 몰핀도 없었다. 저들의 신음 소리는
늑대의 울음처럼 적들에게 들릴 것이다.
항복?
항복과 퇴로.
적들은 야금야금 뱀의 긴 혓바닥으로 우리를 훑어 오고 있다.
공포!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은 배고픔과 추위와 공포 속에서 전율하고 있을 뿐
이다.
날이 밝고 있었다.
우리는 밤새 불을 피울 수조차 없었다.
겨우 물 몇 모금.
오늘은 퇴로를 찾아 탈출을 하든 적에게 잡아먹히든 할 것이다, 중대장 김 대
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 밤 우리는 겨우 몇 킬로를 이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신음 소리도 내지 않
고 죽은 선임하사의 시체를 풀 더미 속에 버려 두었다.
다음 죽음은 한 쪽 다리가 잘려 나간 오 상병 차례가 될 것이다. 심한 고통과
출혈로 그는 벌써 몇 시간째 의식조차 없었다.
얼마나 갔을까?
날이 완전히 밝아 더 이상의 하산은 중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
기 적의 총탄이 우리들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적들은 이미 우리가 적당한 사냥물로 노획될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음에 틀림
없었다.
나지막한 능선에서 우리가 피할 데라고는 아무 곳도 없었다. 우리들은 땅바닥
에 머리를 처박은 채 전우들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적들의 무슨 고함 소리가 들리고, 중대장 김 대위가 먼저 총을 던지고 일어섰
다.
항복.
나와 최 일병, 그리고 또 대여섯 명이 일어나 있었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의식 없던 오 상병의 가슴에서도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고, 다른 전우들도 모두 나뒹굴어져 있었다.
3월의 회색 하늘. 희뿌연 포연 속의 들녘에서 적들이 우리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예정된, 열 명의 전우가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북한군 제 21사단 포로 수용소.
이동 중인 전투 사단이었기에 임시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부상을 입은 전우들도 있으련만 그들은 그대로 들개처럼 버려졌다.
우리들 열 명만 혹독한 취조를 받았다.
탈출.
나는 그 때부터 이미 그걸 생각하고 이었다. 여기서 죽으나 탈출하다 죽으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열 명은 임시 수용소 안에서 두려움과 추위와 배고픔에 다시 떨고 있었
다. 그렇게 3년을 보내면서 결국 우리는 셋 남았다.
때로는 굶주려 죽고, 병으로 죽고, 때로는 아군기의 폭격에 죽고, 때로는 절망
과 공포 속에서 죽고 , 때로는 탈출하다 적들의 손에 죽어 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는지 우리는 더 이상 아무데로도 이동하지 않았다.
"국방군 포로레 3000명도 넘어."
우리들은 인민군 졸병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며, 완전히 남쪽으로부터 격리된
채 버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3000명의 존재가 소리도 없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탈출!
그게 우리를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우리는 북쪽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몰랐지만 곧 사상 전향을 위한 교화소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선 이 허술한 임시 수용소에서 탈
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우리들은 인민군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게 우리
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탈출을 감행키로 했다.
무엇보다 최 일병이 걱정이었다. 기침은 갈 수록 심해지고 피를 토하고, 이 곳
의무대에 갔다 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가 제 아비와 어
미를 만나려는 최 일병의 마음만은 철석 같았다. 그래서 그를 내버려 두지 않기
로 김 대위와 나는 다짐했다.
판자와 흙으로 만든 임시 수용소의 벽을 파고 뜯어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러
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보초와 이 사단 밖으로 나가기까지가 문제였다.
탈출길은, 의무대를 몇 번 오고간 최 일병에게 맡겨 두는 수밖에 없었다.
모진 북풍이 윙윙 소리를 내며 울던 밤, 우리는 드디어 감옥의 흙벽을 다 긁어
내고, 판자로 대강 가리어 두었다. 때는 이 곳 보초 가운데 고참병이 설 무렵으로
정했는데, 이 녀석은 혼자 몇 시간을 서기가 무료하고, 추위가 견디기 어려웠는지
꼭 수용소 옆으로 돌아가 혼자서 바지 단추를 풀고 한참 동안 손을 집어넣어 실
룩거리던 놈이었다. 우리는 오늘 밤도 그 녀석이 제발 그렇게 해 주길 간절히 빌
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우리의 무기는 유리 조각과 못뿐이었다.
눈 앞 철조망 지대만 벗어나면 우리는 일단 탈출을 성공한 것이다.
김 대위가 먼저 철조망 쪽으로 기어갔다. 보초가 이 곳으로 오려면 몇 분이 더
걸린다. 김 대위는 손에 옷을 둘둘 감고 하늘을 보고 엎드린 채 누워서 철조망
밑을 조금씩 기어나가며 매달린 깡통이 소리가 나지 않게 붙잡기도 하고, 철조망
이 옷에 닿지 않도록 위로 밀면서 간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유난히 매서운 북풍이 몰아치고 있었으므로 딸랑딸랑
하는 깡통 소리에 인민군 보초들은 아예 귀를 돌리고 있었다. 적들은 따발총과
회중전등이 고작으로, 서치라이트 따윈 보이지도 않았다.
보초가 이 곳으로 다시 걸어왔다가 돌아기기 시작하자, 나는 잽싸게 철조망으
로 뛰어가가 엎드렸다.
하늘에 쏟아진 별빛들이 모진 복풍에 가물거리고 있었다.
하나, 둘.
이렇게 추운 밤에도 나는 땀을 흘리며 철조망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얕게 깔린 철조망이 좀처럼 내 옷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손에 헝겊을 두르고
철조망을 밀고 있었지만, 손에서 피가 뚝뚝 내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보
초의 딸그락딸그락 하는 총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도, 이래서는 안 된다, 점점 철조망 속에 잡힌 짐승
처럼 될 뿐이다, 하면서 자신과 철조망을 달래며 발 뒤꿈치로 흙을 밀고 나갔다.
다행히 김 대위가 통과하면서 땅바닥과 철조망의 간격이 조금 벌어져 있어서, 나
는 쑥 하고 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다음은 검은 수풀 속으로 낮은 포복으
로 기어 들어 갔다.
목이 막히며 가슴 속에서 뭔가 치솟아 올라 기침이 나려 했지만, 그대로 입을
틀어 막았다. 그 때, 인민군 보초 하나가 내가 막 통과한 철조망을 앞으로 다가서
고 있었다. 꽤 키가 작은 왜소하게 보이는 병사였다. 소년병인지도 몰랐다. 순하
디 순하게 생긴 시골 소년 같은 병사들이 여기에는 많았다. 그들은 늘 우리를 우
울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다음은 최 일병 차례였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곳 철조망까지 올 수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최 일병은 가쁜 숨을 땅바닥으로 몰아 쉬면서 철조망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바람에 딸랑거리는 깡통이 예리한 빛을 차갑게 쏘아부치고 있었다. 거
기까지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소년병 같은 보초가 두 번을 지나가고서야 최 일병은 철조망 밑으로 겨우 올
수 있었다.
나와 김 대위는 최 일병이 어서 무사히 빠져나와 주길 극도의 긴장감과 약간의
이탈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
그러나 최 일병의 옷이 철조망에 걸리고, 당황한 최 일병이 무리하게 밀고 나
가면서 깡통이 큰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었다.
"누구얏!"
소년병 보초가 회중전등을 비추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최 일병에게 회중전등이 비치면서 그의 새파란 얼굴이 들어났다.
그리고 그 앞에는 소년병의 긴 총이 있었다.
일순간 묘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년병이 최 일병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여러 개의 회중전등 불빛과 적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나와 김 대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검은 수풀 속을 뛰어 달아나기 시작
했다.
나무에 얼굴이 할퀴고,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우리 둘은 탕, 하는 한 발의 총
성을 들으면서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어둠 속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개성 근처의 야산.
우리는 거기에 벌써 일주일째 숨어 있었다.
우리는 도로 곳곳에 검문을 하는 적 병사들을 볼 수 있었지만, 밤새 산을 타고
남하했기 때문에 적의 추적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위망이 남쪽으로
점점 압축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나와 김 대위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었다.
탈옥한 포로라면 이번에는 바로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김 대위와 나는 탈진한 상태여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김 대위는 중
대장으로서 나를 지켜 주었고, 나 역시 믿을 사람은 중대장 하나뿐이었기에 우리
는 온갖 두려움과 추위와 배고픔을 서로 달래며 절망을 떨쳐버리곤 했다.
꼭 돌아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보고 싶은 식구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
다. 죽어도 그들 앞에서 죽자고 우리 두 사람은 맹세했다.
김 대위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부모가 남쪽에 있었다.
피에 대한 그리움은 모진 것있다.
"중대장님 아이들은 몇 살입니까?"
절망을 잊기 위해, 공포를 잊기 위해 나는 중얼거렸다.
"큰 애가 여섯, 둘째 아들놈이 네 살…."
김 대위 역시 그냥 나직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우리들은 소나무 껍질을 씹고 있었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움푹 파인 땅 속에
서 둘은 꽉 껴안다시피 얼굴을 맞대고 몸과 다리에는 소나무 가지와 낙옆을 잔뜩
덮고 있었다.
뭔가 더 묻고 이야기해야 했지만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해낼 수가 없었다.
절망 때문일까? 두려움과 배고픔 때문일까? 그러나 분명 대화는 좀 더 있어야 했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부모님은요?"
나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신의주…."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생기면서 김 대위는 혼자 남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나는 순간 김 대위는 나보다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부모가 이
북쪽에 살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탈출한 포로로 지금 북녘 땅에서 부모의 생사조차 모른 채 벌
벌 떨며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분명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만은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나를 존재하도
록 버티게 해 주는 한 가닥 희망이었다.
차디 차가운 달이 소나무 꼭대기에 걸려 휘엉청 밝게 빛나고 있었다.
며칠 전 어느 농가에 널어 놓은 옷가지들을 훔치지 않았더라면, 부엌에 있던
누룽지와 식은밥, 간장과 신 김치를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벌써 들짐승처
럼 추위와 굶주림에 산 속 어디선가 죽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휴전선이 삼팔선 대신에 새로 생긴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쪽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우리는 다 헤어진 옷에 복쪽의 모진 바람을 그대
로 맞으며, 벌써 열흘째 굶주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민가도 보이지 않았다.
초근목피와 눈덩이가 우리의 식량이었다. 간혹 산토끼와 들짐승을 만났지만 그
들을 잡는다 해도 불을 피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쫓지 않았다.
짐승처럼 쫑기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였다.
탕탕탕!
적 수비대의 총성에 우리는 그대로 엎드렸다.
눈 앞에는 장대보다 높은 철조망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달 빛 속에서 얼
어붙은 철조망은 우리 가슴을 그대로 가르는 것이었다.
적 수비대의 서치라이트 불빛이 쏜살처럼 번득이고, 적들의 발자국 소리가 어
두움 바로 저 편에 들리면서 우리는 눈 앞 철조망에 그대로 달라붙었다.
차디차게 얼어붙은 달을 향해 하늘로 오르려는 거미. 그 가는다란 거미줄을 타
고 얼마나 오를 수 있을까. 두 마리의 거미는 철조망에 붙어 손에 피를 쏟으며
징징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새끼들! 꼼짝마!"
장전되는 적들의 총이 나와 김 대위의 등을 쑤시며 들어왔다.
아. 어머니!
나는 순간 까만 밤하늘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절규하고 있었다.
김 대위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그 거미 위로 적들의 발길이 덮치고, 나는 적의 총구에 옆구리와 등을 세차게
맞고서야 두 번째 거미로 다시 땅에 툭 떨러졌다.
그로부터 우리가 다시 겪었던 쓰리린 40년의 세월.
1995년, 통일이 되고서야 나는 싸늘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아버지와 어머니
를 만날 수 있었다. 내 나이 예순 여섯. 스물 두 살에 적의 포로가 되어 44년만에
나는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지만, 지난 44년간 나는 이미 잊혀진 사람이 되
어 있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향의 흙마저 변해 있었다.
나는 작년 이른 다섯 살에 죽은 김 대위의,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를 아내와 두
아들을 찾기로 했다.
내가 죽기 전 그것만이 나에게 남겨진 사명이었다.
지남 44년간 김 대위의 아내와 아들들이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했듯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가슴에 못이 박힌 44년의 남
과 북의 어미 아비와 자식과 아내….
그러나 김 대위는 북에 있던 어머니를 몇 년간 만날 수 있었지….
남에서는 전사자로 완전히 잊혀져 있던 우리는 1960년 신의주 교화소에 수용되
어 있었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악질 반동 새끼.
나와 김 대위는 하루 16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강냉이 밥 한 숟갈도 얻어 먹을 수가 없었다.
채석장과 산림 벌채, 그리고 탄광. 거기를 전전하면서 나와 김 대위는 오직 살
기 위한, 최소한의 밥을 먹기 위한, 굶주린 짐승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여든이 넘은 김 대위의 어머니가 교화소로 찾아 왔다.
김 대위가 이 곳 신의주 출신이라는 것을 안 교화소 간부의 배려 때문이었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이게, 부모와 자식의 정은 완전히 갈라 놓을 수 없다는
사실.
그 나이 많은 간부는 자신의 신상에 미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김 대위의
어머니를 찾아준 것이었다.
김 대위의 어머니는 또렷이 자식을 알아보았다.
김 대위의 눈에서 거친 눈물이 쏟아졌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피눈물이 그의 어머니 눈에서도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짧은 몇 년.
아들은 아직 국방군 포로였다.
김 대위의 어머니가 더 이상 교화소로 찾아오지 않았을 때, 김 대위는 그 간부
로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 들어야 했다.
병든 짐승과 같은 김 대위의 슬픔과 절망.
그 교화소 간부가 아니었더라면 김 대위도 그 때 죽었을지도 몰랐다.
의무실에서 김 대위는 두 달만에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거기서 그는 나를 생
각하며 점차 생기를 회복했노라고 힝다.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희망을 믿어야 된다는 것!
그러나 나와 김 대위는 다시 견디지 못할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피로
이어진 사람들을 차츰 잊어가고 있었고, 우리들 또한 잊혀지는 사람이 되고 있었
다.
10년의 세월.
내 나이 마흔 하나. 김 대위 쉰 둘이 된 1970년이 되어서야 우리는 교화소를
나왔다. 그들의 말대로 위대한 지도자 동지 덕분에 사상이 교화된지는 몰랐지만,
우리들 가슴 속엔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된다는 것. 그리고 만나야 된다는 것.
그러나 그 간부의 마지막 말처럼 여기서 적응하며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을 것
이라는 자연의 적자생존 법칙이 그 후 25년간 우리를 살아 있도록 해 주었다.
인간의 잔악성은 남과 북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선도 남과
북 어디에서도 존재했다는 것. 그게 지난 25년간 우리가 배운 것이라면 배운 것
이었다.
김 대위는 신의주에 남고, 나는 중강진으로 갔으나 얼마 안 있어 다시 신의주
로 올 수 있었다. 그것도 그 교화소에 있던 간부의 주선 때문이었다. 그는 김 대
위와 비슷한 쉰 다섯의 나이에, 갸름한 얼굴로 평양에선가 어디선가 고등학교까
지 마친 사람이었다. 나는 나중에야 이 사람이 반정부 활동을 하는 지하 조직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황지혁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남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북에서는 이것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었다.
나와 김 대위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3000명의 국군 포로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을 그렸고, 가족들을 그렸다.
우리는 교화소에서 2시간 떨어진 포탄을 만드는 군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구석구석 매케한 화약 냄새와 쇠 냄새가 맴돌던 음침한 공장 안에서 귀를 찢는
소음을 들으며 하루 15시간의 노동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배고픔과 추위는 훨씬 덜했다. 자유가 그리웠다. 정치 보위부 소속 안
전원들이 늘 우리를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다. 한여름 파리떼 같은 그들과 때
로는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반동의 낙인이 찍힌 우리들은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혼인.
우리들은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김 대위는 남한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나는 탈출 후 받은 모진 고문 때문에 이미 생식 기능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주위에서 늦장가라도 가라고 했지만, 나는 이 나이에 무
슨 소용이겠소, 하며 그냥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빼앗긴 자유와 인간.
그 속에서 남성의 상실은 나를 더욱 슬프게, 고독하게 만들었다. 아주 빨리 늙
어 버렸다. 의기소침은 더 심해졌다. 그와 함께 남한에 대한 애착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여기 이 땅에 그대로 내 뼈를 묻을 도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았던 북남 7·4공동성명은 북쪽 정권의 대남 선전
에 이용되면서 동토는 더욱 얼어붙고 있었다.
교화소 간부 황지혁이 가담하고 있던 지하 조직은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
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반정부 활동을 하는 인원이 꽤 많다는 사실은 들을
수 있었다. 또 정치범이나 사상범들이 수용소마다 꽉 차 있다는 것도 황지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함흥, 원산과 더불어 이 곳 신의주에서도 언젠가는 인
민 봉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쉰이 훨씬 넘은 황지혁의 나이로 보아 그가 그 반정부 운동인 인민 자유
화 투쟁에서도 상당한 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의주 교외에 있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도 나름대로의 행복 같은 것은 있었다.
서로 못 먹으면서도 잔치나 일이 있으면 가서 손발을 걷고 도와주기도 하고, 나
와 김 대위에게도 그들 마을 시람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언제 통일이 될지, 어떻게 통일이 될지, 도대체 살아서 한 번이라도 가족들을
만날 수나 있는 것인지, 그렇게 마음 한 구석을 갉아먹으면서 암담한 세월은 흘
러가고 있었다.
탕탕, 탕탕탕!
군수 공장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던 나와 김 대위는 동시에 밖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거리로 밀려나와 무슨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거리가 술렁이며 묘한 기운이 감돌았던 것이 이제 터진 것이다.
인민 자유화 운동!
1980년 신의주 인민 봉기가 일어난 것이었다.
<배 고파서 못 살겠다, 우리에게 자유와 민주를 달라, 부자 세습 김일성은 물
러가라! 우리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인민 자유화 투쟁을 계속하리라!>
거리에 나뒹구는 전단을 나는 몰래 집어들었다.
아, 자유의 봄은 올 것인가?
나는 순간 무한한 기대감에 빠져들었다.
거리에는 한여름의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지난 30년의 세월도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교화소 간부 황지혁.
나는 그가 이번 인민 봉기를 주동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큰 봉기에 그
의 목숨을 걸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원산과 함흥쪽에서도 동시에 터져 준다면 이 동토에도 해빙의 봄은 올 것이라
는 생각.
인민군들이 무장을 한 채로 트럭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이미 인파로 꽈 차 있었고 함성과 노랫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따따따따 땅!
나와 김 대위도 머리를 숙였다.
점면에 나서 있던 인민 자유 대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인파는 순식간에 우왕좌왕 흩어지며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잔인한 놈들! 개보다 못한 놈들!
누군가 그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황지혁.
그는 푸른 하늘 높이 펄럭이는 깃발을 들고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나가고 있었
다.
그리고 외치기 시작했다.
"여기 자유와 혁명이 있다. 우리는 보다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비
겁하고 더러운 자들은 물러가라! 여기는 행복하게 살아온 우리 선조의 땅이었
고, 영원히 푸르게 살아갈 후손들의 땅이다! 더러운 독재자들은 피를 머금기
전 사라져라! 우리는 자유와 민주와 희망을 원한다!"
그가 그 말을 마쳤을 때, 거리에는 묘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인민들의 함성
도 진압군의 총성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평화!
썩어빠진, 치사한 생각을 가진 무리들과 황지혁의 승부!
그 때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이 허공을 가르며 불어왔고, 하늘의 구름과 태양마
저 춤을 추었으며, 나뭇잎들은 푸르다 푸르다 못해 진저리를 치며 바람 소리에
답하고 있었다.
황지혁의 가슴에서 샛빨간 피가 푸른 하늘로, 바람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김 대위는 지옥 같았던 교화소 안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
고, 삶과 죽음을 드나던 나와 김 대위가 헤어지지 않고 혈육처럼 의지하며 살아
올 수 있었다.
황지혁은 그렇게 이 세상을 살다 갔다.
더 이상의 인민 봉기도 없었다.
이 얼어붙은 북조선에서 해방 후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시위. 신의주 인민 봉
기!
역사의 물결은 또 다음 거센 파도를 바라고 있었다.
인민군 병사의 말대로라면 3000명이 넘는 국방군 포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
을까?
나는 최근에야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포로 교환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y 그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북한에 있었던 3000명의 전우들은 지금 살아나 있을
까?
언젠가 황지혁이 말했었지.
국방군 포로 대부분은 수용소에서, 교화소에서 혹한과 중노동과 굶주림에 시달
리다 태반이 죽었다고. 나머지 사람들도 지금은 살아 있는 쪽이 적을 것이라고….
그들에겐 무엇보다 외로움과 절망이 더 무서운 적이었다고….
그들에게도 피로 이어진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과 남은 그들을 잊고 말았다.
역사와 전쟁과 정치와 사람들에게 잊혀 버린, 지워져 버린 인간들.
그렇게 죽고 죽은 북과 남의 포로와 혈육들의 영혼은 아직도 구천에서 떠돌고
만 있으리라….
죽어도 죽지 못하는 슬픈 영혼들.
어김없이 이 동토에도 계절은 찾아오고 또 바뀌었다.
1994년 여름 김일성이 급사하자 술렁이던 북조선 정권은 해가 바뀌면서도 그의
아들 김정일이 결국 대를 잇지 못하고 대규모 인민 봉기로 무너지고 있었다.
물론 황지혁이 주동이 되었던 신의주 인민 봉기 이후로 산발적인 인민 자유화
투쟁은 북조선 곳곳에서 있었지만 이번 봉기는 전국적인 대규모 항쟁이었다.
나는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이미 예순 여섯이었다. 내
옆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김 대위가 죽은 지도 벌써 일곱 달. 김일성이 갑작스
럽게 죽기 한 달전이었다. 만약 김일성이 먼저 죽었더라면 김 대위는 죽지 않았
을지도 몰랐다. 그의 가슴에 마지막 불꽃이 다시 타오를 수 있었을 테니까.
김 대위는 죽기 전 말했다.
"내가 죽거든 내 뼛가루를 반은 어머니 무덤가에, 그리고 나머지는 고향 집 앞
마당에 뿌려 주게.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주게…."
미안하다?
44년간을 생사조차 모르고, 아니 죽은 줄로만 알게 해서, 갈라져 있어 미안하다
는 , 김 대위에게 그 44년의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44년 동안 묵묵부답이던 통일은 불과 반 년만에 서둘러 왔다.
북한 전역에 걸친 인민들의 항쟁과 군부간의 알력으로 인민 자유 정권이 들어
서고 몇 달 후, 나는 신의주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달려 내려올 수 있었다.
1995년의 겨울이었다.
서울의 거리는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이미 들끓고 있었다. 뒤숭숭한 가운
데서도 나라 전체가 생동감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이방인처럼 서울에 들어왔고,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예순 여섯
의 노인으로 서울역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대구는 김 대위의 고향이었다.
나는, 신의주에서 서울로 올 때처럼, 대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가슴을 저미
는 눈물이 자꾸 솟구쳐 나왔다.
조국….
전쟁과 포로와 43년간의 생존.
누구라도 찾지 않으면, 나는 완전히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흽싸였다.
그건 어떤 절망보다도, 죽음보다도 두려운 것이었다.
이 세상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아무도 이야기할 사람이
남한 땅에는 없다는 것….
나는 한시라도 빨리 김 대위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다.
김 대위가 말한 대로 대구 변두리 어느 학교 옆에 있다던 김 대위의 집을 나는
묻고 물어 겨우 찾아 내었다.
예순이 넘은 김 대위의 아내와 둘째 아들 내외가 같이 살고 있었다. 김 대위가
말했던 첫째 아들은 전쟁 때 죽었고, 그 대신 씩씩한 청년의 두 손자가 있었다.
김 대위의 집은 낡고 초라한 한옥이었지만, 마당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지난 44년을 내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이야기하는 동안 김 대위의 아내와 아
들은 자세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았다.
김 대위의 아내는 유골 하나, 군번표 하나없는 남편의 전사 통지를 믿을 수 없
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온 44년은 김 대위의 죽음 소식이었다.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 김 대위의 아내와 아들이 그의 뼛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43년간 생존했던 한 포로의 흔적이 겨울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통일에 휩쓸려 술렁거리는 남한 땅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아무도 만
날 사람이 없고,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다.
무서운 고독이 엄습했다.
다시 절망이…. 외롭게 느껴졌다.
소란스러운 거리를 지나 나는 대구역으로 갔다.
이정표.
제주도,부산, 광주, 대구, 대전, 춘천, 서울, 평양, 원산, 함흥, 신의주.
신의주….
나는 반쯤 남은 김 대위의 유골 상자를 들고 신의주행 기차에 올랐다.
이미 차창 밖은 어둠이 내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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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이켜보면 꿈 같은 인생이었다.
내 나이 쉰 다섯.
내 젊은 날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그때는 누구보다도 정직
하다고 정의를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건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니 최소한의 가족들만을 위해, 그것보다도, 무엇보다도
자기 몸 하나를 위해서도 착하고 베풀며 살아오지 못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앙상한 빈 껍데기뿐, 속이 차지 않은 텅 빈 껍질 속에 웅
크리고 흉악한 자신의 정체를, 몰골을 비로소 직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는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언제나 말뿐이었다. 생각뿐이었다. 실질 행동에서
는 누구보다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보다 나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정의와 지식을 내세우
지도 않았고, 다만 착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선업을 쌓아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몰래몰래 악업만을 쌓고 있었다. 타인들과의 교류를 철저한 고립
의 성 속에서만 해왔다. 결과는 식구들에게 나 타인들에게나 악영향을 미쳤을 뿐
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그것들을 다 말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번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고 그것 또한 죄악이므로 관두겠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이 청소부 일을 하는 장덕현씨와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나와 장덕현, 아니 우리들은 뭇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주로 밤에만 일한다. 거
리를 쓰는 것도 새벽녘이며, 다른 집 앞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한밤중에 한다.
나와 같은 나이의 장덕현이 무엇보다 겁을 내는 사람은 그보다 나이가 젊은 사
람들이다.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또 자기보다 나이가 몇 살 적은 사람들과 부닥칠 때
마다 장덕현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직업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초라한 몰골에, 냄새나는 쓰레기들
을 줍는 자신의 몸에서도 썩는 냄새가 나는 직업이 싫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장덕현보다는 조금 덜 해서인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아니 모든 사람들을 만날 때면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숙이거나 하는
정도였다.
내가 특히 들어가기 싫어 하는 곳은 아파트 안과, 무슨 연립주택이니 빌라니
하는 호화로운 곳이었다.
거기에 들어가면 나는 무슨 지옥에라도 온 것처럼 무서웠다.
너무나 조용해 숨소리마저 빨아들일 것 같은 답답함이 그런 곳에는 떠돌아 다
니고 있었고, 쥐새끼 한 마리 얼씬 하지 않는 곳에 갑자기 무슨 인기척이라도 나
는 순간은 그야말로 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빌라는 우리들에게 가장 무섭고 악명을 떨치는 곳이었다.
그 빌라는 고급 주택가 조용한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나와 장덕현이 번
갈아 가며 그곳 쓰레기들을 치워냈던 것이다.
나는 한국빌라에 갈 때면 언제나 노란 모자를 평소보다 푹 눌러 쓰고 들어가
될 수 있는 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쓰레기들을 수레에 싣고 부리나케 나왔기 때
문에 늘 등에는 땀이 축축이 베여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동네.
그 동네 사람들 역시 나와 마주치는 것을 꺼렸고, 또 어느 여편네들은 흐린 날
에도 시커먼 안경을 쓰고 내가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동차 경적을 빵빵 울리며 차를 후진시키곤 했다.
입 놔뒀다 뭐 하려고 그러는지.
“조금 비켜주세요.”
하면 내가 황송해서라도,
“예예.”
하고 냅다 비킬텐데, 자동차로 쓰레기통을 밀듯이 후진하니, 나는 정말로 속이 쓰
라렸다.
모욕.
그래, 이게 바로 모욕이라는 거지.
모멸감…….
두 명의 수위들조차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이 한국빌라의 수위들도
한국빌라 사람들 만큼이나 유세를 부린다.
그러나 그 수위들은 평소 늘,
“돈 있는 놈들 꼭 병신처럼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전기, 수도, 보일러 하나 못만
지니…….”
하고 한국빌라 사람들을 욕하곤 했다.
그런 그들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한테 유세 부릴 건 또 뭐람?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러했다.
1995년의 한국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 한국빌라에서 또 마주치기 싫은 두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각각 30대와 20대의 남자 둘이었는데, 그들은 담배를 피우러 늘 복도와
계단 밑에 잘 나와 있었기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잘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의 청년은,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야말로 그 뭐더라, 그래, 신세대, X
세대, 오랜지족하는 모양으로 생긴 녀석인데, 마르고 큰 키에 쪽 째진 양 눈을 하
고 있었다.
제 아비 나이인 나 앞에서도 아무스스럼없이 담배를 쪽쪽 빠는 녀석은 나만 보
면 쳇, 하는 투로 침을 탁 뱉고 서둘러 담배를 쪽쪽 빨고는 옳게 끄지도 않은 채
층계를 총총 올라가버리곤 했다.
제가 나보고 쳇,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더러운 청소부라 무시한다는 것만은 명백했다.
그리고 30대의 남자는 결혼한 것 같기도 하고 안한 것 같기도 한 사람이었는
데, 늘 수염이 까치르하고 찡그린 얼굴이었고, 또 평일에도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회사에 나가는 것도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저렇게 집
에만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 했지만, 무얼 하는 사람이건 그는 오히려 내가 수레
를 끌고 나타나면 피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얼른 꺼버리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
라갔고, 또 한번은 나와 복도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그는 순간 매우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어찌 보면 나에게 인사를 하는 듯하게 고개를 슬쩍 숙여버
리곤 했다.
내 처지에,
"예…,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꺼내기도 이 동네에서는 좀 망설여졌다.
하여간에 낮이고 밤이고 이 한국빌라는 수위와 아까 그 20대 청년과 30대의 남
자를 빼면 그야말로 인기척이라곤 나지 않는 쥐 죽은 듯한, 아니, 자동차들이 많
아서(그것도 외제 승용차들로 보이지만), 한 집에 두세 대는 갖고 있는 듯해서,
나는 자동차들이 올 때면 수레를 끄는 내 모습이 좀 부끄럽기도 해서 얼른 고개
를 숙이곤 했다.
동수가 세 동밖에 되지 않는 이 한국빌라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쓰레기 종양제
실시 후에도 내 작은 수레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자면
그야말로 곡예를 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이 가물거릴 만큼 수레는 무겁고, 경사는 급했다. 자
칫 잘못 하다가는 수레에 깔려 죽을 판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내와 두 아들
을 생각하며 불끈 힘을 내고 한발 두발 언덕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동네 쓰레기 하치장까지 20분을 더 내려와 쓰레기를 쏟고, 다시 그
언덕길을 올라 다른 집들의 쓰레기를 싣고 내려오고, 그리고 또 실으러 가고 오
고……, 밤 10시부터 시작한 작업은 새벽 서너 시가 되어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
다. 한겨울이나 여름이나 몸은 늘 파김치가 되었고, 옷에서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
고, 가슴이 답답했지만 참고 견디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배우지 못한 내가 이 나이에 무슨 다른 걸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쓰레기 하치장이 있는 곳에는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어 벌써 몇 년째 동
네 늙은 술 주정뱅이와 일군들, 그리고 나와 장덕현 같은 청소부들이 소주나 막
걸리를 한 잔씩 할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도저히 막걸리집이라고는 할 수도 없
는것이 천정도 없고, 그저 겨울이면 바람막을 판자를 한두 군데 세운 정도여서
노천에서 마시는 거나 다름없었다.
늙은 주모가 한데 내어놓은 솥에 콩나물국이나 선지국, 해장국을 늘 부글부글
끊여놓았고, 안주라고 해봐야 김치나 두부 정도였다. 그리고 이 늙은 주모는 나이
가 예순은 되어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쉰 다섯이라고 했다.
남자보다 더 시커먼 얼굴은, 세수를 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더러웠고, 머리칼은
하얗게 세어서 거의 백발인데, 그것마저 제대로 빗지 않아 귀밑으로 늘 흥클어진
흰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 새벽에 여기서 먹는 한 잔의 술은 우리들의 뱃속을 훈훈하게
녹여 주는데 그저 그만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들은 밤새 일어난 일들과 각자
집안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다.
깨진 유리가 쓰레기 봉지를 뚫고 나와 목장갑을 낀 손도 성할 날이 없는 우리
들이 붉은 피를 씻고 헌 신문지나 휴지로 상처를 싸매고 한 잔의 막걸리를 걸칠
때도 있었으며, 더러운 냄새와 갖은 먼지를 마신 폐를 씻기 위해 독한 소주를 마
실 곳도 우리들에게는 천국 같은 여기뿐이었다.
이 허술한 막걸리집, 아니 임시 주막 바로 위로는 거대한 철로가 달리고 있었
다.
밤 늦게까지 철로를 가르는 기차의 굉음이 요란했지만, 오히려 값싼 술을 마시
는데는 왠지 적적하지 않는, 거대하고 힘찬 쇳덩어리가 달리고 있다는 것이 정겹
게조차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사람들을 싣고 기차는 연일 매시간 달리고 있다.
움직이는 쇠덩어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나나 기차나 똑같지 않은가…,
죽은 것은 움직이지 못하고 썩은 냄새가 날 뿐이다.
비록 내 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더라도 나는 죽지 않고 오늘도 살아서 저 기
차의 굉음을 들으며 밤하늘을 바라보며, 맵고 짠 김치를 안주로 컬컬한 막걸리로
목을 적신다…….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어준다는 것!
살아야 된다는 것!
그날은 여름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이미 밤은 깊었는데 나는 오늘 따라 유난히 많은 쓰레기들을 싣고 그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오려 했을 때, 한국빌라 쪽에서 장덕현이 산더미 같은 쓰레기들을
수레에 싣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 왜소한 그가 유난히 작아 보였고, 쓰레기 더미가 그의 등뒤에서 그를 짓
누를 듯한, 엄청난 높이로 쌓여 있었다.
몰골이 연약한 그가 끄는 수레는 마치 작은 개미가 저보다 몇 배나 큰 벌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나는,
"어이, 장씨, 빨리 와! 어서 가서 한잔 하자구!"
하고 힘든 그를 일부러 재촉했다.
장덕현은 고개를 겨우겨우 끄덕이며 내 옆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확, 하며 열기가 뿜어져 나왔고, 장씨는 거친 숨을 훅훅 내쉬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쓰레기가 이렇게 많아?"
내가 말했다.
우리는 언덕빼기에서 내리막으로 내려가기 전에 수레의 손잡이를 머리위로 올
린 채 한 대의 담배를 물고 있었다.
장씨는 그 담배마저 숨이 막히는 듯 몇 모금 빨지도 않고 꺼버렸다.
거친 여름밤비가 우리들 머리 위에서 가로등 불빛을 타고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장씨가,
"빨리 갑시다…, 가서 좀 쉬어야죠."
하고 말하며 수레를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담배를 덜 피운 채 였기
때문에,
"으응, 장씨, 조심해…."
하고 말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유난히 불안해 보였다.
나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수레를 다시 끌었다. 장씨는 나보다 조금 앞서 한
발 두발 천천히 전신의 힘으로 수레를 두발로 버티며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이봐! 장씨. 힘들면 나하고 같이 내려가지, 내 것은 여기 벽 쪽에 세워두면 되
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나 장씨는,
v "괜찮아요……."
하고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장씨의 발이 거꾸러진 듯하더니 거대한 수레가 장씨가 그대로
밀어버리고 있었다.
"아악!"
장씨의 외마디 비명이 순간적으로 들리고, 거대한 쓰레기더미의 수레는 어둠과
빗속을 가르며 아래로 질주하고 있었다.
"이봤! 장씨!"
나는 있는 힘껏 내 수레를 세우고, 장씨에게로 달려갔다.
빗속에서도 장씨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만질 수 있었다.
장씨는 의식이 없었다.
"이봐! 장씨 정신차렷!"
나는 고함을 질렀지만, 장씨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가 입고 있던 주황색 웃옷을 벗어 장씨의 머리를 싸매고 그를 등에 업
었다. 그리고는 병원을 향해 언덕길을 뛰어 내려갔다.
내 등에 축축하면서도 뜨거운 장씨의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봐 장씨 정신 차리라구! 조금만 더 가면 병원이야!"
나는 아무 대답도 없는 장씨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발 살아만 있어주
길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있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2.
시커먼 얼굴, 땀 냄새, 하얀 건 두 눈과 이빨뿐이다.
아직 겨울도 가시지 않은 초봄인데도 유난히 둥근 내 얼굴에선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이 지옥 같은 언덕길을 오르자면 그야말로 뼛골이 빠지는 것 같았다.
조수인 김군이 아까부터 머리를 땅에 박고 열심히 밀고 있지만 200장의 연탄을
실은 수레는 좀처럼 앞으로 나갈 줄 몰랐다.
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김군에게는 더 그러하리라.
이제 겨우 열 여섯 살.
v 종이 봉투나 편지 봉투에 풀칠을 해서 생계는 잇는 그의 어머니. 또 불구인 그
의 아버지…….
나는 구멍가게와 연탄 배달을 같이 하는 주인이 연탄 배달부를 하나 더 구해야
겠다는 말에 김군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글쎄, 너무 어려서……, 힘은 있던가?"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하게 발린 주인이 말했지만, 나는 그때 무작정,
"예예, 아주 튼튼한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해서, 김군이 연탄배달을 나와 같이
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군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더 이상 고등학교에는 진학조차 할 수 없었다.
나쁜 길로 접어들지 않은 것만도 요즈음은 다행이었다.
김군은 너무 몸이 약하다. 주인이,
"아니, 뭐야, 배싹 말랐잖아!" 하고 욕질을 해대었을 때도 나는,
"그러나 마른 장작이 불이 세다고 여간 악바리가 아닙니다." 하고 말해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김군이 뒤에서 연탄 수레를 미는 힘은 참으로 없었다.
물론 밀어주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만, 무슨 국민학생들이 미는 것처럼 어떨 때
는 내가 손잡이를 끌고 가는데 도리어 방해가 되기도 했다.
김군의 말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편지 봉투 한 장을 풀로 붙여 받는 돈은 5
원이라고 했다.
나는 연탄을 배달하며 연탄 한 장에 50원을 배달비로 받는다. 100장을 배달하
면 5000원을 버는 셈이다.
그러나 김군의 집은 편지 봉투를 1000장 붙여야 5000원을 받을 수 있다.
김군은 그나마 나보다 30원이나 적은20원을 받는다.
나는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장가도 못 가고 있다.
혈혈단신…….
지독했던 고아원 생활.
어렴풋한 어머니의 얼굴…….
내가 여섯 살 때 어머니는 나를 고아원에 맡겨둔 채 떠났다.
그때 한없이 울었던 기억밖에, 고아원문을 뛰쳐나가던 어머니의 모습밖에는 기
억나질 않는다.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나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고아원장의 억센 손이 얼마나 미웠던가…….
나는 발버둥을 치고 그의 손을 물었지만 이미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왜 나를 버리고 갔을까…….
나와 김군은 어느새 언덕길을 다 올라와 있었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오히려 땀에 젖은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오늘 배달하는 집은 이사온 지 며칠 되지 않는 집이었다.
동네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무슨 집이라면 그 집 냄비뚜껑
숫자까지 세어낼 수 있었다.
"연탄 왔습니다―."
그 집 대문 앞에 수레를 세우며 내가 소리쳤다.
김군은 완전히 지쳤는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 때 삐꺽하고 나무 대문이 열리더니 예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네―, 아이고, 어서 이 쪽으로." 하고 말하며 대문을 열었다.
처음 보기에도 정감이 가는 할머니였다.
나는 김군을 재촉해 짧고 굵은 연탄 집게로 양 손에 두 장의 연탄을 집었다.
김군도 나와 같이 연탄을 집어들고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지게에 연탄을 열 장씩 가득 쌓아 올려 지고 들어갔을 테지만
오늘은 지게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김군도 있으니까 이렇게 두 사람이 스물 다섯
번만 하면 백 장은 가볍게 나를 수 있는 것이었다.
전에 이 집에 연탄을 나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
리는 부엌 뒤로 돌아가 좁은 통로에 연탄을 쌓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얼굴이 곱고 둥그스름한 얼굴이었다.
마당에는 그의 며느리인 듯한 여자가 빨래를 한다고 빨래 방망이로 옷가지를
탁탁 치고 있었다.
그리고 블록 담쪽으로는 노란 개나리가 아기자기하게 자라 있었다. 아마 양지
쪽인데다 벽이 있어 다른 데보다 훨씬 일찍 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활짝 피려면 아직 열흘은 더 걸릴 테지만 나는 문득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
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그 때 방에서 할머니의 손자로 보이는 아이가 호기심에 어린 눈동자로 나를 빤
히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할머니를 좀 닮은 듯한 둥근 얼굴이었다.
나를 보고 생긋 웃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음―, 너 몇 살이야?" 하고 내가 물어 보았다.
아이는,
"여섯―," 하고 말하며 연탄을 집은 집게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무심히 부엌 뒤를 돌아가다 아까 그 아이가 말한 여섯이라는 것 때
문인지 내가 저만 할 때 어머니와 헤어졌던 그 때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김군이 바지런한 덕택에 100장의 연탄이 부엌 뒤 한쪽 벽에 다 쌓였다.
김군은 땀은 빨빨 흘리며 수레에 집게를 꽂고 있었다.
"할머니, 다 했습니다―."
마루에 앉아 내내 우리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내 쪽으로 내려왔다.
"올해 몇이우?"
"서른 둘입니다."
"서른 둘이라……, 그래 장가는 갔수?"
"아니, 노총각입니다. 할머니가 중매 좀 서주시게요?"
"음, 내 그러지."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나와 김군은 그로부터 한 달에 한번 꼴로 그 집에 연탄을 실어다 날랐다.
할머니는 그 때마다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는 둥, 부모님은 뭘 하시느냐는 둥
이것저것 물어왔다. 그래서 내가 고향이 어딘지는 모르고, 경기도 성남에 있는 고
아원에서 자라다 열 여섯에 고아원을 뛰쳐나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깜짝 놀라면
서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마루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내려와
"몇 살에 고아원에 들어갔다고……?"
"아마 여섯 살 때쯤입니다."
그 때 할머니는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것 같았고, 그로부터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그 집 연탄 배달도 차츰
뜸해질 수밖에 없었고, 또 배달을 가도 할머니는 그때마다 집에 없었다. 며느리
말로는 요즈음 절에 자주 가신다고 했다.
그 집에 할머니가 없는 날은 나도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정하게 대하던
할머니에게 왠지 자꾸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연탄 배달도 없이 공연히
그 집을 찾아들기란 뭐해 관두었다.
김군의 아버지는 병세가 날로 나빠지고 있었다.
편지 봉투를 풀로 붙이는 일로는 병원은커녕 약값도 빠듯한 듯했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직 술을 마시는 모양이었다.
마른 김군의 얼굴에 슬픈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거리엔 이미 찬 바람이 쉴 새 없이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다시 그 할머니 집에 연탄 배달이 잦아졌지만, 할머니는 아무래도 나를 자꾸
피하는 것만 같았다.
하루는 내가 그 집 며느리에게,
"할머니는 또 절에 가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아뇨, 안방에 계시는데요?" 하고 스물 다섯쯤 되어 보이는 며느리가 말했다.
그의 남편이 회사를 다니며 이 집 생계를 꾸려나가는 모양이었다.
김군과 내가 연탄을 다 들이다 놓고 대문간을 막 나올 때, 그 집 아들인 듯한
신사가 낡은 봉투를 들고 들어오며,
"아이고, 수고 하십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미안한 듯이,
"예예."
하며 그의 얼굴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나처럼 둥근 얼굴이 너무나 나와
같은 인상이어서 순간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빈 수레를 끌고 김군과
언덕을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나보다는 나이가 두세 살 적어 보이는, 내
얼굴과 아주 닮은 아까 그 집 아들의 모습이 왠지 자꾸 떠올랐다―.
김군은 시종 말없이 수레를 끌고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 겨울은 김군의 아버지가 무사히 넘길 수 있을는지, 나는 날로 병이 심해
져 요즈음은 밥도 술도 거의 먹지를 못한다는 김군의 아버지가 몹시 걱정이 되었
다. 한번은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가지 못한 자신이 못나게까지
느껴졌다.
눈이 내리려는지 겨울 하늘에 짙은 구름들이 낮게 내려안고 있었다.
내가 김군의 집에 찾아가게 된 날은 바로 김군의 아버지가 죽은 다음 날이었
다. 한번 가본다고 벼르던 것이 그의 장례 날에 가게 된 것이다.
찌든 가난 속에 세간이라고는 그야말로 솥과 냄비와 숟가락뿐이었다.
오늘만은 김군의 어머니도 편지 봉투에 풀칠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정신
을 놓고 멍하니 앉아 찾아오는 문상객도 없는 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나는 연탄 수레를 깨끗이 씻어 놓았다. 밤이 깊어지면, 이 수레에 김군의
아버지를 싣고 묻으며 갈 것이다.
장지라고도 따로 없는 동네 뒤편 야산에 아무도 모르게 묻어야 한다.
친척이라곤 한두 사람, 그리고 이웃집 아낙 한둘이 다녀가고 더 이상 사람은
오지 않았다. 가난하고 병들고 찌든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자를 찾아 오
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예로부터 그렇지 않는가, 정승이 죽으면 찾아오지 않
아도 정승의 말이 죽으면 문상객이 발을 잇는다고…….
나와 김군은 죽은 김군의 아버지를 나무 관에 넣고 연탄 수레에 실었다.
김군의 어머니가 수레를 붙잡고 깊은 밤길에 우리를 따랐다.
밤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죽은 김군의 아버지가 가는 길에 하늘에서 뿌려주는 마지막 축복이었다.
달빛과 별빛마저 잠든 산길에 하얀 눈길을 따라 겨우겨우 오르면서 우리 세 사
람은 아무런 말도, 울지도 않았다.
김군의 한 점 혈육이 떨어져나간 것이지만, 김군은 나보다 더 행복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나보다는,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김군이, 오늘 죽은 아버지를 묻으러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은 것
이 아닐까?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 수레 수리, 눈 내리는 소리만이 사각거리는 겨울 야산
에는 암흑과 고요가 감돌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은 잘 파지지도 않았다.
나는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는 마음이 들어 곡괭이로 연신 헛질을 해대며 땅을
팠다. 이 깊은 겨울밤에 볼 사람도 없겠지만 혹시 잘못 되면 묻어놓고도 다시 이
장을 해야 했다.
도시에서 김군의 아버지가 편안히 묻힐 땅 한 평도 없는 것이다.
김군의 어머니는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요 며칠 사이에 더 늙어버렸
고, 무명 치마가 더 거칠게 밤바람 속에서 흐느적거렸다.
김군은 시종 삽으로 내 옆에서 자기 아버지의 무덤을 파는 것을 도왔다. 김군
의 침묵과 슬픔이 내 심장 고동 속으로 흘러들어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의 어두움 속에서 실종 되어버린 나의 흔적이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는 누구이며, 어머니는 또 왜 나를 버렸는
가!
얼어붙은 땅을 파는 곡괭이가 흔들리며 캥캥 소리를 낸다.
캥캥! 쾅쾅!
어머니! 아버지!
나는 가슴이 저려와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이 나리고 있었다.
눈은 숲에도 땅에도 무덤 속에도 내리고 있었다.
그 때 김군의 어머니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흑……."
작은 소리였다.
가난은 죽음 앞에서마저 통곡할 자유가 없었다. 소리 죽여죽여 흐느낄 수밖에
없는 김군과 그의 어머니는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의 죽음을 가슴 속 세상에서
만 슬퍼할 수 있었다.
언 땅을 다 팠을 즘에 눈발이 그치고 있었다.
값싼 나무 관을 나와 김군과 그의 어머니 셋이 들었다. 무겁지도 않았다.
이윽고 삽으로 얼어붙은 흙을 다시 나무 관 위에 덮을 때도 김군은 울지 않았
다. 가난이 그의 감정마저 집어 삼킨 줄 몰랐다. 무딘 감정과 표출하지 않으려는
심정이, 냉정함과 비정함이 섞이지 않으면 도시에서 견딜 수 없는 가난!
그들에게 매연과 호흡과 연탄 먼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들에게 화학성 독
물질과 풀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난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건강한 폐와 살
갗을 기꺼이 바쳐야 했다.
흙이 다 묻히고 작은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마치 아기 무덤처럼 작았다.
내가 곡괭이와 삽을 연탄 수레에 싣고 있을 때 김군과 그의 어머니는 조용히
무덤 앞에 꿇어 앉아 있었다.
나는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
다. 눈발이 그치고 어느 새 새파란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거리엔 세차고 차가운 바람이 흩어진 나뭇잎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 할머니 집엔 한 달에 두 번씩 가는 일도 있었다. 연탄을 때는 집들이 해마
다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언덕빼기에 꽉 찬 영세민들의 집엔 겨울을 나는데
연탄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번번이 모습을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오늘은 마당에 나와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었다.
더욱 우울해진 김군은 말없이 연탄을 나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김군에게 말을
별로 건네지 않았다. 다 사람 사는 일임을 그도 곧 알게 될 테니까…….
연탄을 다 옮길 때까지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마당을 서성이던 할머니는 손수
돈을 들고 대문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할머니는 내 눈을 지긋이 응시하면서 나에게 연탄 값을 손에 꼭 쥐어주었다.
나는 좀 쑥스럽고 겸연쩍어 고개를 숙였다. 우리 어머니도 살아 계신다면 이
할머니 나이쯤 되었을 게다. 그 순간 둥글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할머니의 얼굴에
그대로 겹쳐지는 듯한 착각에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그 때,
"성수야!" 하고 할머니는 울부짖으며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할머니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을까? 하고 좀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금방, 이
할머니가……, 설마…… 우리 어머니…. 아아 나는 고개를 뒤흔들었다.
"성수야! 성수야! 내가 네 에미다. 성수야! 으흑……."
아까 겹쳐졌던 어머니의 둥근 얼굴에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돋아 있었다. 그리
고 두 눈엔 붉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날 버린 어머니!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어머니가 지금 바로 내 앞에 현실로 서
있음을 나는 비로소 실감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이와 고아원 이야기 했을 때부터 이 할머니, 아니 어머니
는 나를 알아차렸던 것이리라!
그리고도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거친 눈물이 쏟아졌지만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
가난에 못 이긴 어머니는 결국 나를 고아원에 버리고 남의 첩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본 부인을 쫓아내고 남편과 같이 살다가 그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망해서
죽은 뒤로 지금 이 곳에 와 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런 어머니를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날 이후, 나는 숱한 번민을 계속 하면서도, 긴 외로움의 끝을 찾아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3.
나는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 유모차에 탄 어린 아기 둘이 손을 잡고 놓지 않던 기억을!
두세 살이 될 듯한 형제 아이가 이국의 낯선 공항에서 갈림길이 될 줄 어찌 알
고서 둘이 잡은 손을 꼭 놓지 않았다.
마치 이제부터 각각 다른 이국의 집으로 보내져 영원히 형제가 아니게 헤어져
살아야 될지도 모르는 운명을 그 아이들은 알고나 있는 것일까?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그 두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보모들과 입양기관 사람들 몇몇뿐이었
다.
나는 그 때 첫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려던 길이었다.
그러나 분명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과 또 그 아이들 데리고 가려는 노란 머리의
미국인들을 바라보며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목에 이름과 나이가 적힌 팔찌를 찬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국의 공
항에서 그대로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기와 바람과 기온이 다른 싸늘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어린 두 형제는 유
모차에 탄 채 두 손을 아직 놓지 않고 두 눈을 또록또록 뜨고 있었다.
형인 듯한 아이는 드디어 엉엉 울어재키고 있었다. 공항이 떠나갈 듯한 울음
소리에 이제 한 살이 되었을까 한 동생이 형을 따라 크게 울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질것 같았다.
외국 입양을 시킬려면 같은 집에 형제를 보내지 않고 각각 무슨 물건처럼 형제
를 떼어놓는 어른들의 비정함에, 외국인들의 무정함에 나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
다.
한 아이만 받겠 다는 외국인 그래서 형제를 떼어 한 아이만 보내는 한국 입양
기관. 이 얼마나 비정한 파렴치한 행위란 말인가!
머리가 노란 마흔 살쯤 되었을까 한 외국인 여자가 동생을 형으로부터 떼어 놓
으며 불쑥 끌어 안았다.
"오 마이 비유티풀 베이비!"
나는 그 외국인이 아이를 무슨 장난감처럼 소유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엉엉 울어재키는 형과 외국인의 이상한 냄새에 경계심을 느끼고 형에게 돌아가
려고 발버둥치는 어린 동생.
그래도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은 보모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외국인들 앞
에서 이제 체념을 하고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이국의 땅. 이국의 겨울, 이국의 이별!
나는 허리를 숙여 울고 있는 형에게로 갔다. 이제 두 살쯤 되었을까. 쌍둥이처
럼 닮았지만 동생보다는 훨씬 크고 눈매도 무언가 사태를 의식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나는 입양 기관 사람들과 외국인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그 형인
아이에게,
"응응, 울지마……."
하며 아이의 볼을 어루만졌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울음을 그치고 애원의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두
살쯤 되면 분명 자기와 같은 얼굴의, 자기와 같은 까만 머리카락을 의식할 줄 안
다.
나는 그 아이의 팔목에 끼워진 플라스틱 팔찌를 만져 보았다.
<김종수. 두 살, 한국> 이라고 적힌 글씨를 바라보며 나는 눈 물이 왈칵 쏟아
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다시 아이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 때 다시 외국인 가족들이 그 형에게 왔다. 이번에는 예순을 넘었을 노부부
였다. 그들은 나에게 잠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이상한 놈이 그들의
아이를 뺏으려는 게 아닌지 하는 눈초리였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쓸 쓸한 노년
을 노리개 삼아 보낼 아이를 뺏으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이를 보호하고픈 분노에 휩싸였다.
보통 두 살짜리 아이들 같으면 신발도 신고 뛰어다닐 수도 있고 말도 잘 할 텐
데 이 아이는 맨발에 유모차에 앉아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발육부진을 보이고 있었
다. 그러나 동생 이름만은 계속 외쳐대며 울부짖고 있었다.
"지수야―앙! 지수야―앙!"
그 때 지수는 형을 바라보며 파닥거렸지만, 이미 억센 외국인 여자의 팔에 안
겨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도 떠날 수도 없었다.
노란 머리의 예순을 넘은 외국인 노부부가 나에게 익스큐즈 미를 속삭이며 종
수를 들어올렸다.
종수의 팔과 다리는 그냥 뼈가 붙어 흐느적거리는 것처럼 앙상했다.
종수는 계속 이미 동생 지수가 빠져나간 허공을 향해 울부짖었고, 한국인 보모
들도 울고 있었지만, 외국인 노부부는 유유하게 종수를 안고 걸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종수를 지켜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것밖에
할 수 없는 방관의 처지가 이미 익숙한 나였기에.
지나가는 외국인들 한둘이 그런 종수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나는 종수와 지수가 부디 행복하게 자라나 곧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
지만, 종수와 지수의 울음 소리를 절규를 끝내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무거운, 짓눌린 가슴으로 낯선 타인으로, 제3의 방관자로 다시 귀국
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겨울 하늘은 음울하게 짙은 구름이 깔려 있었다.
종수와 지수. 두 형제의 외국땅 입양에 대한 기억은 불과 몇 달만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는 나대로 회사일로 바쁘게 뛰어다녔고, 승진을 생각하고, 실적을 생각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 때의 가슴 아팠던 기억들이 어떻게 몇 달만에 아스라히 살아질 수가 있을
까?
쉽게 감동하고 쉽게 냉정해버리는 나의 이기주의에도 나는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점점 돈과 권력과 소유를 향해 스스로 질곡의 감정에서 허우적거릴 뿐
이었다. 일종의 파괴성과 포악성 마져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감지하고 있
었다.
그런데, 요즈음 해외 입양아들에 관한 기사가 유난히 자주 눈에 띄게 되었다.
그것은 아픈 사람 눈에 약국이 많아 보이는 것이나, 또 자기의 아내가 임신을 했
을 때 길거리에 배가 부른 여자들이 왜 그렇게 많아 보이는지 하고 느낄 때와 똑
같은 이치였다.
머리 속에는 잊혀지지 않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종수와 지수……. 겉으론 말끔히 잊고 살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남아 있었던 것이
다.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하고 살뿐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스스로 모멸감에
빠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부끄러운 자신을 느끼면서도 나는 나를 다시 속아 넘
어가게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국의 공항에서 보았던 종수와
지수 보다도, 또 그때 느꼈던 슬픔 보다도 역시 이기주의자로서 내가 중요했던
것이다.
잊고 잊히며 살이 가는 것이 편리한 현대적 방식이라는 생각, 아니 습관, 아니
세뇌. 종수와 지수라는 두 아이의 이름을 잊지 않았던, 잊지 않게 되었던 그 까닥
은 그 신비롭기조차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물건을 다른 나라에 사고 파는 현
대인이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빨리 쉽게 잊을 수 있는 아이들의 이름, 그러나
한편으론 장사꾼의 수완으로 그 아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을 수도 있었다면 나는
잔인한 놈이라밖에 부를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슬퍼서 내 자신을 감당해
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쉽게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나를 이 세상에서
살아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지금 내 옆에는 잔인한 세상이 입
을 버리고 있을 뿐, 구렁이처럼 나를 삼키려고 도사리고 있을 뿐이지 종수와 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나는 스웨덴으로 입양간 한국인 청년이 자기를 낳아준 부모
를 애타게 찾는 글을 읽었다.
두 살에 그 곳으로 건너가서 이제 스무 살이 되어 18년만에 핏줄을 찾는 내용
이었다. 스웨덴, 저 머나먼 북유럽에 북극을 마주보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나는
다시 아득한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다른 반대편 대륙 북미
에 간 종수와 그 동생 지수 또한 때가 되면 이 청년처럼 자신들의 부모를 찾으려
고 할 것이다. 버린 부모와 버려진 자식들이 있는 이상 이 찾고 찾으려는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로소 종수 형제가 무사히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해보았다. 태어나 처
음으로 해보는 기도 같았다. 그것은 조용하고 아늑한 기쁨을 주는 자기정화였다.
뭔가 바쁜 곳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스스로를 수양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나는 나
를 위해서라도 종수와 지수를 그 마지막 모습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 동안 한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서 다른 일을 시작해보자
는 의도였지만 현대 생활이라는 거대하고도 그저 헛돌기만 하는 수레에서 결코
벗어나 있지 못했던 것이다.
나에게도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고, 마흔을 바라보는 아내
가 있었다. 나는 그들과 또 회사를 오고가며 지난 10년을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돈도 조금 벌었고 회사도 번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 그렇게 즐
거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
다.
그런데 그것은 김종수라는 한국인 입양아가 자신의 부모와 동생 지수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소식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듣고부터는 나의 인
생에 대한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 또한 마흔 다섯의 나이에
지쳐있었으므로, 실의에 빠진 무의미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고 있
었던 때이므로 장난감 수출에 대한 상담을 하고자 사장인 내가 직접 이국의 땅
에 와서 힘껏 다시 한번 뛰어보자는 의도였지만 몸과 마음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던 터에 10년도 더 지난 당시의 종수 이야기는 나를 꼼짝없이 이제 중학생
되었을 종수를 만나 보게 했던 것이다.
거기는 한국 어느 신문사의 미국지사였다. 낯선 땅에서 같은 민족 사람을 만날
기회는 의외로 많기 마련이어서 종수를 만나는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제 13
살이 된 종수는 불현듯 동생 지수와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이
이 한국의 신문사 문을 두드리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종수는 나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13살 나이에 이제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꽤
조숙해보이는 얼굴이었다. 10여년전의 아련한 아기 얼굴은 도무지 지금의 종수와
겹쳐지지 않았다. 나와 같이 새까만 눈동자에는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배여 있었
다. 아득한 그리움이랄까, 어린 나이에 우수에 젖은 듯한 눈망울은 나를 순간적으
로 견디기 힘들게 했다. 밝고 명랑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는 보여지지
않았고, 게다가 종수가 2살 때 헤어진 한 점 혈육 동생 지수에 대한 그리움, 그리
고 부모에 대한 사무침, 이국의 땅에서 그 동안 겪었을 차디찬 차별이 어린 종수
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눈시울이 뜨겁기도 하고 또 어떤 분
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는 종수보다 서툰 영어로 말했다.
"종수야, 이 아저씨도 한국에서 왔단다."
그 때야 종수는 나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 왔다. 내가 바로 자신을 도와줄 메시
아라도 되는 듯이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종수를 한번 만나보자고 왔던 나 자신의 이기주의를 느꼈
다. 그리고 임기응변이라도 하듯이 나는 종수의 동생 지수를 내가 찾아주어야겠
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기주의 아니 사업적 습관은 그의 부모를 돌아가
찾아주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몹시 과로웠지만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신문사 지국에는 나와 종수 그리고 주재기자 한 명뿐이었었다, 그 주
재기자는 나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새치가 많이 돋아 쉰이 훨씬 넘어 보였고 이마
에 주름살이 깊이 박혀 있었다. 그는 무슨 기사를 쓰면서 우리들을 지켜볼 뿐이
었다
종수는 미국 사람들과 똑같은 말과 몸짓으로 나에게 말했다.
"제 동생 지수를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엄마도……."
종수는 조금 떨고 이었다. 그리고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띈 얼굴을 하고 있었
다 잠시 주위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음, 찾을 수 있을꺼야. 찾을 수 있고말고…."
나는 그렇게 자신있게 말했지만 막상 일이 눈앞에 닥친 것처럼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졌다.
그로부터 석 달간 나와 종수와 또 그 주재기자는 10여년 전에 헤어진 종수의
동생 지수를 차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종수의 미국인 부모는 종수가 동생
을 찾는데 그렇게 나서지 않았다. 그들도 예전보다는 늙어서인지 아니면 뭔가 못
마땅한 것인지 몰랐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도 좋지는 않았다. 종수가 사춘기에 들
어서면서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는 몸짖이 그들에게는 못된 동양인의 반항쯤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여간에 우리들은 미국 각 입양기관과 외무성 그리고 언론기관을 찾아다니며
이제 11살이 되었을 동양 아니 한국에서 온 입양아를 무고 또 무었다. 거기엔 숱
한 외국인 입양아들이 건너와 있엇지잔은 한국에서 온 입양아들이 상당히 많았
다. 게다가 김지 수라는 한국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많은 한국인 입양아들을 하나하나 찾고아다니던 끝에 우리
는 이미 외국인 이름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지수를 찾아냈던 것이다. 폴영, 이것
이 지난 10년간 지수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지수는 의로로 명랑했다. 살도 많이 쪘고 키도 종수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형
제는 선뜻 서로를 알아보지 모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몇 분의 시간 흐를 동안 나
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난 10년의 세월도 형제의 핏줄을 갈라놓진 못했다.
형인 지수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며 동생을 끌어 안았다.
"지수야! 지수야! 으흐흑."
동생 지수도 그제야 어렴풋이 말로만 들어왔던 이국의 땅에 나란히 입양되었던
형이 그토록 만나보고 싶었던 형이 눈 앞에 있음을 실감이라도 하듯,
"형? 형, 형!"
하고는 소리 없는 눈물 흘리며 형을 끌어 안았다.
둘은 분명 영어를 쓰지 않았다. 종수는 지난 세월 가슴에 고이 간직해왔던 지
수라는 말을, 그리고 지수는 남몰래 학교 도서관 영한 사전에서 찾아보았던 형이
라는 말을 외쳤던 것이다.
다시 형과 동생이 떨리는 손을 잡았다.
나는 그것을 벅찬 감동을 안고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부모를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국의 땅에서
도 서로 떨어진 .그들이 자주 서로를 만나는 일이었다. 비록 그것이 어려울지라도
그들은 자주 만날 것이다.
이제 나에게 남은 일은 한국으로 돌아가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와 헤어졌던 지
점에 다시 내가 찾아가 종수와 지수 부모의 흔적을 찾는 일이었다. .
4.
시린 손을 오므리고 아침부터 헌 종이상자를 찾는 할머니가 있다.
나이는 예순을 넘어 보이는데 약간 구부러진 허리 말고는 여간 당차지 않는 걸
음걸이다.
이 할머니는 집에 두 손녀가 있고 이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이상자를 찾아
줍고 모아 파는 것이다.
내가 이 할머니를 볼 수 있는 것은 아침에 출근할 때나, 또 일찍 퇴근할 무렵
이었는데, 그게 벌써 몇 년은 된 듯하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치곤 했지만, 굵은 끈으로 몇 장이나 되는 종이상자를 등
에 매고 지하철역 부근이나 근처 국민학교를 배회하는 모습을 몇 년인가 보고 나
서는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연히,
"할머니 뭐 하세요?"
하고 말을 건넨 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절을 하고 안부를 묻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그 할머니는,
"아이고, 예, 그저……."
하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양복을 입은 멀쩡한 신사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좀 이상하고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추운 겨울이나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늘 종
이상자를 묶을 끈을 두 손에 야무지게 휘어 감고, 종종 걸음으로 사방을 다니는
할머니에게 나는 자주 관심이 갔다.
'저렇게 생계를 이어간다는 말인가!'
나는 가슴이 저려졌다.
겉모습만 말쑥한 나는 늘 도시의 혼탁함에 속병을 앓고 있었지만, 언뜻 보기에
도 할머니는 너무나 건강했다. 좀 마른 모습을 빼고는 혈색이고 눈동자며 걷는
모양이 도저히 예순이 넘은 할머니라고는 보기에 어려웠다.
"할머니 나이는 얼마세요?"
내가 언젠가 물어보았다.
"허,이른 둘이라오……, 요즈음은 영 몸이 말을 잘 안 들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내 추측이 틀린 것이다.
나와의 이야기보다는 하나의 빈 상자라도 더 찾는 것이 급한 할머니…….
영세민 보조금 월 10만원과 종이상자를 팔아 버는 30만원으로 세 식구가 살아
간다고 했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며느리마저 몇 달 뒤에 집을 나가버려 어린 두 손
녀를 손수 키운다는 할머니는 눈물이 글썽거리곤 했다.
아이들 도시락마저 제대로 싸주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는 말에, 제 어미와 아비
가 보고 싶어 우는 손녀들을 부둥켜 안고 같이 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말
에, 뒤돌아서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떻게든 할머니를 도와야 한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지만 늘 생각뿐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양복 서류 가방을 들고 매일 회사를 기계처럼 오고 가
는 나는 무력한 인간에 지나지 않은 지 이미 오래였다.
눈물은 흘려도 돕지 못하는 사람의 위선에 나 스스로 치를 떨면서도 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한 날은 내가 밤 늦게 취해서 돌아오는데 할머니와 딱 맞닥뜨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머니는 등에 많은 종이상자를 지고 있었다. 휑뎅그렁한 늦가을 바람이 우리
들 곁을 스치고 지하철역 계단 쪽으로 휩쓸려 가고 있었다.
높은 지하철 다리 위로는 휘둥근 보름달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왜 이래 늦었수. 한 잔 하신 모양이구려."
"예,할머니. 한 잔 했습니다. 오늘은 종이상자 많이 파셨어요?"
"뭘, 늘 그렇지……."
나는 그때 길 저쪽에 과일을 파는 트럭을 발견했다.
1톤짜리 푸른 색 트럭에 늘 과일을 파는 데였는데, 평소 가격표가 조금 비싼
것 같아 무심히 지나치던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이 할머니에게 저 과일들을 듬뿍 사드리고 싶었다.
"할머니, 여기 잠깐만 계세요?"
나는 그 말을 마치지기도 전에 길을 뛰어갔다.
어두움 속에서도 누우런 감과 사과, 포도 송이들이 트럭 위에 가득 실려 있었
다.
나는 가격도 묻지 않고 감 열 개, 사과 열 개, 포도 열 송이를 달라고 이야기
했다.
"할머니, 이거 과일인데 집에서 손녀들과 같이 드세요―."
할머니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깜짝 놀라면서,
"아니, 아니, 안돼, 무슨 과일을."하고 말하며 손을 지었다.
나는 결국 그 과일을 할머니 품에 안겨주고 을씨년스런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도 시원하게, 그리고 아직 높다랗게 둥그렇게 밤하늘에 빛나는 보름달을 바라보
며 집으로 돌아왔다.
몇 달만에 느껴지는 생의 희열이랄까, 기쁨이랄까, 나는 저어기 기분이 좋아 휘
파람과 유행가를 읊조리기까지 했다. 묵묵히 굳은 얼굴로 귀가하던 평소와는 달
랐다.
인생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이윽고 겨울 어느 날 밤.
나는 지하철역 계단을 쓸쓸히 내려와 걷고 있을 때 멀리 앞서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고, 나는 문득 그냥 한번 따라가 보았다.
어떻게 사시는지…….
비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돌고 돌아 판자 대문을 삐꺽 열고 들어가는 할머니…
….
나는 대문 밖에서 조금 멈칫거렸다. 들어갈 수도 없고 그냥 갈 수도 없고 찬
바람은 불고 밤도 깊어지고 있었다.
낡은 판자 대문이 바람에 후다딱 딱딱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하늘엔 별도 달도 보이지 않고 희뿌옇게 그리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대문 틈새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마 이 집 어느 한 방을 빌려 있을 것
같은 할머니와 두 손녀는 새나오는 불빛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초라한 목조 기와집, 쓰러져 가는 지붕과 처마, 허물어진 담, 대문…….
나는 담배를 피우며 그냥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대문을 삐꺽 열며 나오고 있었다.
나는 무슨 죄라도 지은 듯 얼른 오던 길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다볼 수도 없었는데, 다시 대문이 콱 소리를 내며 닫히는 듯했다.
나는 다시 돌아섰다.
대문 옆 쓰레기통 바닥에 방금 버린 연탄이 아직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찬 바
닥에서 올라오는 연탄가스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머무를 아무 이유가 없어진 듯했다.
그리고 그들 세 식구가 평안히 잠들길 빌며,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 길을 걸어
타박타박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 동료들과 술을 거나하게 들고 취해 다시 그 지하철역에서
내려 과일을 사들고 무작정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밤이 꽤 깊은 시각이었지만 술에 취한 사람에게 시간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무 대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들겼다.
골목을 타고 불어오는 세찬 겨울 바람에 술이 순간순간 깨는 것 같았다.
누군가 신발을 끌며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낡은 대문이 끼익 열렸다.
"죄송합니다―, 여기 할머니 집 맞죠?"
"네?"
이 집 주인인 듯한 중년을 넘어선 여자였다.
"왜 그 종이상자……."
"죽었어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해 다시,
"아니, 왜 그 종이상자 주워서 팔고, 또…, 그래, 그 손녀 들이랑 같이 사시는?"
"도대체 누구세요? 참, 네, 며칠 전에 연탄 가스로 다 죽었다니까요!"
"넷?"
나는 정신이 왈칵 들었다.
그러나 이미 대문이 콱, 하며 닫히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대문 앞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다시 방금 그 여자가 한 말을 생
각해보았다.
'……며칠 전에 연탄 가스로 다 죽었다니까요…….'
내 손에 든 종이 봉지에서 과일들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5.
나는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
한 평도 안되는 토끼집 같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여기는 달동네보다 더 비참
했다.
폐를 앓는 사람, 꼽추, 곰배팔이, 거지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여기는
인간 이하의 지대였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 나는 이곳으로 얼마 전 굴러 들어온 막일
군이었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간 나는 술과 노름으로 공사판을 떠돌다 돈도 다
떨어지고 장마철이라 일거리도 없는 처지였다.
한데 나가 자도 여기 보단 나을 것 같은, 이 더럽고 냄새나는 동네에서 내가
할 일이란 아침에 일을 찾으러 나갔다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밤에 들어 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지난 봄에 경기가 좋을 때에는 번듯한 집에 방 하나를 빌려 쓰고 있어
서, 그 집 더운 물로 목욕도 하곤 했지만, 여기서는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
에 속했다.
번화한 아파트들이 늘어선 이 영등포에도 철로 변에는 이런 토끼집들이 늘어서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겉만 휘황한 상점과 백화점들 뒤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꼽추, 곰배팔이, 절름발이, 봉사, 벙어리, 바보, 어쩌면 이런 사람들만 찌든 가난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세상은 다 저 잘났다고 우겨대고 아우성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들의 정신은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더 약하고 썩었고 미친 것으로만 보였다.
병신 같은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일을 나갔을 때 그들은 정말로 몸과 마음이
성한 데가 없는 불구자들이 많았다. 걸음을 옳게 걷지 못하는 부자들, 가치 판단
을 옳게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투성이였고, 젊은 년놈들은 미친 개지랄이나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그들의 집을 수리해주거나 벽돌을 나르거나, 페인트를 칠하는
막일군으로서 그들과 자주 만나거나, 또 보거나 했다.
그들은 감히, 감히, 나한테, 나 같은 놈한테 말을 걸지도 못했고, 걸려고 하지도
않았다.
저희들은 외제 물과 맥주를 마시면서도 나한테 수돗물 한 잔 줄지도 몰랐고,
간혹 일하는 파출부를 시켜 가져다 주는 주스조차도 컬컬한 우리들의 갈증을 풀
어주지 못했다. 역겨운 냄새가 그 주스에서 났다. 그걸 마시면 더 목이 탈 뿐이어
서 나는 늘 수돗물을 틀어 갈증을 해소하곤 했다.
그러나, 이 동네에 굴러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더러움과 시끄러운
싸움 소리를 빼면, 부잣집 동네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불안, 초조, 가슴 답답함들이 훨씬 덜했다. 적어도 이 동네에서는 내가 그들 보
다 낫다는 우월감 때문일까?
나는 겉은 멀쩡했지만, 이미 속병이 심했다. 얼굴 색은 술 몇 잔에도 아예 하얗
게 되기 일쑤였고 위장병마저 도져 있었다.
일자리 없는 요즈음 장마철은 그 병이 더욱 심했다. 할 일이 없기에 자연히 술
과 담배만을 찾았고, 그래서 몸이 자주 말라가고 밥맛조차 없었다.
비가 꾸역꾸역 내리는 영등포 철로변에 자리한 이 동네에서 장마철은 더 지옥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포장도 하지 않은 골목은 진흙탕이 되었고 수채에서 새어나온 오물이 도처에
널려 있어 코를 막지 않고는 다닐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이 동네 아이들은 그 더러운 수챗구멍에서 흐르는 물 위에서 물장구를
쳤고, 꼽추와 병신들이 처마 밑에 모여 히히 웃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래, 저들에게도 행복은 있다, 나는 점점 그렇게 생각했다. 굳은 얼굴, 말 붙이
기도 꺼려지는 부자 동네 사람들보다, 여기 사람들의 얼굴엔 때때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하루는 꼽추와 곰배팔이가 막걸리를 받아놓고 처마 밑 살평상에서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마도 가고 무더위가 쏟아지는 낮이 였으므로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 뒤로 가
서 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1미터도 안되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바라보
며 나는 부잣집 동네 아파트들이나 여기나 집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기는 마
찬가지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장기는 꼽추가 곰배팔이를 영락없이 몰아붙이는 판이었다. 오른쪽 팔뚝이 없는
곰배팔이는 왼손으로 죽은 꼽추의 장기 말을 연신 뒤집었다 바로 하고는, 다시
뒤집고 있었다.
꼽추는 이제 이겼다는 투로 요즈음 구하기도 힘든 200원짜리 솔 담배를 한가치
꺼내 입에 꼬아 물고는,
"이봐, 자네 오늘 또 한 잔 사게 생겼네―,히히."
하고 말했다.
마흔을 넘은 듯한 곰배팔이는, 쥐고 있던 꼽추의 장기 말 대신에 얼른 꼽추의
솔 담배를 하나 빼어 물고는
"잔소리 말고 불이나 좀 줘!"
하고 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한 수 훈수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불 난 데 부채질 하는 꼴이라도 될까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물러섰다. 아무래도 꼽추가 곰배팔이 보다는 한 수 위인
듯했다.
씹팔!
날씨는 더럽게 더웠다.
이렇게 말짱 더운 날엔 또 그리 일자리가 막상 많지도 않았다.
거리에 차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저녁만 되면 영등포 일대는 지독한 먼지와 매
연으로 하늘이 붉게 보였다. 뭐, 그, 저녁 노을이라는 어릴 때 시골에서 보던 그
런 게 아니었다.
해는 어디로 숨었는지 빌딩들 때문에 알 수도 없었고, 구름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뿌연, 안개 낀 듯한 붉은 먼지와 하늘이 온통 발갛게, 기분 나쁜 색깔로 달
아 있었다.
무슨 괴기 영화에, 귀신이나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뿌리는 붉은 연막 같은 현
상이 벌써 몇 년전부터 이 영등포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그럴 때는 아직 괜찮은 내 폐에서도 굵은 기침이 쏟아지기 일쑤였고, 담배를
피우면 구역질이 올라왔고, 가래에선 시퍼렇고 또 시커먼 것들이 나왔다.
정말 이러다간 숨도 못 쉬고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게
다가 찜통 같은 더위가 가세해 도시는 식을 줄 몰랐고, 손바닥 만한 선풍기에서
마저 매캐하고 후끈한 바람이 나와 곰배팔이 집 앞에 펴놓은 살평상이 아니면 도
저히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꼽추와 곰배팔이는 딸린 마누라와 자식 새끼들이 있기 때문인지, 사나흘에 한
번꼴로 살평상에 나와 자곤 했기에 나와는 잘 마주치지 않았다.
혼자 살평상에 누워 한 뼘 남짓하게 뚫린 밤하늘을 바라보아도, 이건 시커멓지
도, 푸르지도, 훤하지도 않는, 희뿌연 안개 낀 듯한 하늘이 보일 뿐이어서, 나는
도대체 보기가 싫었다.
곰배팔이 집 처마 밑에 살평상이 처져있었고, 골목 맞은 쪽엔 꼽추가 들락거리
기 딱 좋을 만큼의 반쪽 짜리 판자 대문과 변소가 있었다. 그래도 자기네 집 변
소가 있다는 것은 이 동네에선 부자에 속하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거의가 골목
끝에 붙은 두 칸 짜리 공동변소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지간하면 그 간이 공동변소에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 들어가면 똥을 누
고 오는지 엉덩이에 똥을 다시 발라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좀 큰 빌딩 안에서 늘 실례를 하고 있었
다.
'어서 여기를 떠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내가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5만원 짜리 여길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길거리나 지하철역에서 자더라도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꼽추와 곰배팔이는 영세민 보조금과 각자 그들의 아내들이 행상이나 품을 팔러
나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모양이었다.
또 그들의 아이들은 거지꼴을 하고 동네를 누비고 다녔지만 모두 밝고 건강했
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찌든 가난과 병신 부모라는 사회의 냉대와 멸시는 이 어린이들이 사춘기가 되
면 반역을 꾀한다는 것을!
어느 어린이들보다 튼튼한 이 아이들이 제일 위험한 시기는 사춘기였다. 그들
은 제 부모나 같은 부랑아나 깡패나 범죄자들이 되기가 쉬웠다. 그것은 바로 남
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삶 때문이었고 부자 놈들 대부분의 위선과 더러
운 돈 때문이었다.
돈, 돈, 돈…, 돈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판이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꼽추나 곰배팔이나
살평상에 나와 자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날은 내가 억백으로 취해 그 골목
길로 들어오다 살평상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한기마저 으시시 드는 가을비가 추절추절 뿌리고 있었고, 낙숫물이 처마에서
뚝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에 골아 떨어지면서도 어서 하루라도 빨리 여길 떠나야겠다고 중얼거리
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무슨 소리에 비몽사몽간에도 눈을 부시시 반쯤 열어 귀를 기울였다.
"이 사람, 비가 오는데 여기서 잠이 들다니……."
꼽추의 소리였다.
"그래 어서 집으로 데려다주어야겠는걸."
곰배팔인 듯했다.
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아니, 아니,……."
나는 겨우 몸을 비틀어 그렇게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그 순간 누가 나를 냅다 업었다.
나는 취한 중에도 그게 꼽추인 걸 알았다. 깡마른 그의 등에 낙타의 등처럼 솟
은 봉우리가 내 뺨에 와 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뒤에서 내 엉덩이를 받치고 있었는데, 분명 두 손으로 받치
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게 곰배팔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내 방에 불이 켜지는 듯하더니 꼽추가 나를 이불에 뉘었다. 나는,
"왜 이래, 왜 이래 가란 말이야……."
하고 혀 꼬이는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 젊은 사람이 몸을 생각해야지……, 쯧쯧, 성한 몸을 가지고……, 이보
게 가세."
"그래, 웬 술을 그렇게 마셔가지고는 하룻밤 푹 자면 내일은 괜찮겠지."
분명 꼽추와 곰배팔이의 말이었다.
나는 제발 저 병신들이 꺼져주길 소리치고 있었다.
"나가, 이 병신들아! 어서 꺼져!"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천장이 빌빌 도는 것 같아 몸을 돌려 눕고 말았
다. 꼭 죽을 것만 같이 괴로웠다.
"여보게……, 그만 나가세……."
다음 날 아침, 내가 기억한 그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6.
그녀가 시장 바닥을 길 때면 누구나 한 번은 멈칫거렸다.
두 다리가 완전히 없기 때문에 양 손에 굵은 고무를 끼우고 작은 발통을 단 나
무 위에 배를 얹고 손으로 노를 젓듯 앞으로 나가는 여자.
땅바닥을 기다시피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머리 위에는 조그만 돈 통이 놓여
져 있고 낡은 마이크와 노래 반주가 흘러나오는 앰프가 있다.
구슬픈 유행가 곡조…….
쯧쯧 안 됐다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표정을 짓지만 막상 돈을 던져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 때 한 여자 아이가 놀란 동그란 눈으로,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
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와!"
그 아이 어머니의 날카로운 소리다.
아이는 마지못해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돌려 아까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이의 마음에 불안과 호기
심, 그리고 불쌍한 사람일 거라는 추측이 맴돈다.
지나가는 행인 아주머니 한 사람이 아무 말없이 엎드려 기는 여자에게 돈 천원
을 넣는다.
그것 또 아이는 빤히 쳐다본다. 그렇지만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는 그녀보다 더
빨리 걸어갔기 때문에 그녀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이윽고 행인들 둘 사이로 아이
의 눈길이 그녀를 찾지 못한다.
그로부터 몇 날 며칠 아이는 자주 시장에서 본 그 여자의 모습이 아련거렸다.
왜, 그럴까?
그 아주머니는 왜 땅을 기어서 다닐까? 이게 그 여섯 살 난 여자 아이의 의문
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만약,
"으음, 불쌍한 사람이야. 잘 도와주어야 한단다. 다리가 없어 팔로 다니니까…
…."
하고만 말해주었어도 그 아이는 다음부터는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있을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요령처럼 익힌 현대인들에게 그 아이
의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 오히려 미운 말을 듣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어느 쪽도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행복한 자가
있다면 그것은 돼지다.
매일 아침 시장이 설 때면 땅을 기어 나와 시장이 파하면 땅을 기어 돌아가던
여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장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슬픈 운명처럼 노래 가락이 구슬프다.
이미 여자로서의 모든 것을 버린 여인. 창피와 자존심과 모멸은 살아가야 한다
는 생존 앞에서 그 자리를 잃었다.
그녀에게도 남편이 있으며 두 다리가 멀쩡한 두 아들이 있다.
비록 쓰러져 가는 움막일지언정 집이 있고 가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살기 위해 살아나가기 위해 오늘도 복잡한 사람들 틈 사이로 비
집고 기어다닌다.
오후가 되면서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이 비를 뿌린다. 비는 점점 세차지며 저
녁을 맞는다.
그녀의 몸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있다.
허벅지라고 하기에도 힘들 만큼 짧게 남은 곳에 물이 닿아 찹다.
다행히 고무를 낀 양 손은 괜찮지만 그 고무에 진흙이 튀어 있다.
그리고 낡은 웃옷에는 빗물이 흠뻑 젖어 있고,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
진다.
그렇지만 앰프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녀의 구성진 목소리가 빗줄기를 가
른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운명!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서른 여섯 평생을 기며
살아온 것이다.
행인들의 걸음에 진흙이 그녀의 얼굴에 다시 튄다. 그렇지만 얼굴을 돌리거나
들거나 하지 않는다. 씻으면 되는 얼굴―.
바로 그 때 쨍그랑. 하며 동전이 떨어진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다. 코가 진흙에
닿는다. 그렇지만 동전을 던진 사람을 똑바로 보지는 못 한다.
바로 그 아이였다.
오늘도 다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여섯 살 소녀는 기어코 동전 하나를 집
어넣었다. 그리고는 조금 겁에 질린 얼굴로 재빨리 자기 엄마 곁으로 간다.
땅을 기는 여자는 어린 아이건 어른이건 누군지도 보지 않고서 절을 연신 한
다. 그러나 이미 발자국 소리로 느낌으로 조그만 아이인 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저만한 사내 아이가 둘이다. 넷, 여섯 살.
그녀가 집으로 기어서 돌아가면 누구 보다도 먼저 나와 그녀의 등에 오르는 두
아들……. 그러면 그녀는 두 아들을 태우고 집안을 한 바퀴 돈다.
"우리 장군님들 나가신다!"
그녀는 크게 외치며 하루의 고뇌를 또 잊는다,
이제 거동도 그녀만큼이나 하지 못하게 된 술주정뱅이 남편이 비시씩 문을 연
다.
"그래, 오늘은 많이 벌었어?"
그녀는 이 남편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이 하늘 아래 그녀를
떠받치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이 못내 애석하다. 제발 오래오래 자식들과 살아주
기를 바라며 그녀는 남편에게 돈과 약을 내놓는다.
약이라고 해봐야 간장약! 수북히 쏟아진 동전들 속에 오늘 시장에서 넣은 여섯
살 아이의 돈도 들어 있으리라!
아들과 남편이 그 동전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막내 아들에게 무엇보다
재미있는 놀이감이다.
"하나, 둘, 셋……."
남편의 가는 목소리에도 윤기가 흐른다.
간혹 천 원짜리 지폐도 두세 장이 들어 있다. 이 만큼이면 내일 까진 쌀 떨어
지지 않고 살 수 있다. 하루를 공쳐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축축이 내리는 빗속의
그녀 집에 모닥모닥 피어오른다.
다음 날은 하늘이 유난히 푸르게 말짱했다. 오랜만에 도시의 하늘과 얼마 남지
않은 풀과 나무들이 생명의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아침 일찍 나와 시장가를 맴돈다. 간혹 시장가 사람들이 그녀에
게 점심을 거저 주기도 해서 그녀는 이 시장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
아가면 식구들이 있고…….
오늘은 운이 좋은지 연신 동전이 땡그랑 땡그랑 바구니에 떨어진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 대신에 그녀는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돈
을 거저 받을 것이 아니라 빗이나 행주, 비누 바구니, 수도 꼭지에 달아 물을 절
약하게 하는 고무꼭지, 주걱이나 국자를 걸게 하는 걸이 따위를 팔면 어떨까 생
각한다. 그러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오랜만에 잊었던 미소
가 입가에 흘렀다. 어서 어서 저녁이 되고 내일이 오면 그녀는 새로운 장사를 하
리라 마음 먹었다. 그걸 오늘 돌아가 남편과 이야기하고 내일은 도매점에 가서
몇 가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기울었는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이 붐볐기 때문에
그녀는 내일을 생각하고 조금 더 노래를 부르며 시장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너무 어두우면 늘 그녀 집으로 돌아가는 쪽에 있는 작은 도로를 기어 건너가는
것이 위험했지만, 그녀는 이제 시장을 한 바퀴만 더 돌 작정이었다.
바로 그때 또 동전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그녀 바구니에 떨어진다. 분명 500원
짜리 동전은 아니다. 그리고 어른이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동전을 던진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마 어제도 제 엄마와
같이 와서 자기에게 동전을 넣었을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다.
그녀는 그 아이가 겁을 먹을까봐 살며시 미소를 띠다가는 얼른 시장 바닥을 기
어 앞으로 나가버렸다.
귀여운 아이였다. 벌써 철이 든 것 같은 눈매…….
그녀는 완전히 어두워진 시장을 벗어나 집으로 기어왔다.
"드르륵, 드르륵"
그녀가 배와 손으로 끄는 도르래가 붙은 나무판대기 소리가 난다.
이제 작은 이 길만 건너 골목으로 접어들면 그녀의 집이었다. 두둑한 동전 바
구니가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 오늘도 이 많은 동전들은 또 셀 그녀의 남편과
사랑스런 두 아들…….
그녀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어두운 데다가 아스팔트
바닥을 기기 때문에 차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어두움 저쪽에서 햇트라이트를 괴물의 눈처럼 밝힌 승용차
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녀는 허우적대며 도르래를 밀고 나아갔지만, 승용차는 그녀 위를 덮치고 그
대로 달아나버린다.
"악―."
그녀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동전 바구니에서 많은 동전들이 땡그랑 소리
를 내며 아스팔트 바닥에 난무한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인다.
마침 그 옆을 아까 동전을 하나 집어넣은 여자 아이와 그의 엄마가 지나간다.
소녀 아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만 하는 틈 사이로 시장을 기어다니며 노래하
던 아줌마의 얼굴을 본다. 얼굴과 목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본 소녀 아이는 흠칫
놀라 자기 엄마의 손을 꼭 잡으면서도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엄마, 아까, 그, 시장에 있던 아줌마가……, 저기, 다쳤어……."
"그런 것 보지 말고 어서가!"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손을 더욱 힘껏 잡아끈다.
어디선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밤의 어둠을 뚫고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린 아이는 사이렌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밤하늘 쪽을 바라본다.
서울 하늘에 좀처럼 뜨지 않던 별이 하나 반짝 거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