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드디어 한글로 이렇게 소개를 하네요. 혹시라도 저에 대해 잘 모르시거나 궁금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저의 출생을 돌이켜보면.. 전 1977년 11월5일 서울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구 고려병원) 에서 태어났어요. 아빠와 엄마의 첫번째 자식이었고 덕분에 첨 4년 반동안은 귀염도 많이 받았죠. (제 남동생 형욱이가 태어나기 전 까진..)
제 고향얘기를 잠깐 하자면.. 태어난곳은 서울이지만 전 고향을 충북 제천으로 여기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충청북도 제천군 봉양면 삼거리죠. 그곳은 저희 아빠께서 태어나서 자란곳이고 저도 또한 시골을 자주 접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거길 고향으로 생각 하고 있어요. 그곳은 어떤곳이냐 하면.. 제천 시내서 약 30 분 거리의 맘좋고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산골마을 이죠. 요즘엔 도로가 포장이 되서 얼마 안걸리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비포장도로라서 한시간도 넘게 걸리는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요. 마을에 있는 공공시설 이라고는 마을회관 하나랑 작은 가게 하나가 전부.. 거기도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많이들 이사 가고 이젠 사람들이 많이 안 남았죠. 제 친지들도 대부분 서울로 이사하고 이젠 큰엄마 두분만 거길 지키고 계세요. 홀로 고향을 지키고 계신 큰엄마들을 자주 찾아뵈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게 아쉽네요.
다시 제 어릴적 얘기를 하자면.. 태어나서부터 유치원때 까지 서울 사당동에 살았어요. 단독 주택이었는데 참 기억이 많이 남는 곳이죠. 거기서 7살때 까지 살았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 근데 얼마전 살던곳을 가보니 그집은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더군요.. 그걸 본순간 어릴적 추억이 살아진듯한 섭섭한 기분 이랄까? 많이 슬프더군요. 암튼 전 거기서 유치원을 2년간 다녔고요, 초등학교를 들어갈때쯤 개포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개포동서는 아파트에 살았고 초등학교 5학년 중간까지 약 6년을 있었어요. 개포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참 재밌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 겨울에 학교 운동장서 스케이트 타고,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그때 친한친구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 하군요. 목동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연락이 끊겻걸랑요. 친한친구 였던 윤성, 기환, 지영, 욱주, 영미, 대희.. 뭐하고 사는지는 몰라도 다들 잘지내기를 바랄뿐 이죠.. ->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요즘 장안의 화제 "모교사랑" 덕분에 윤성, 영미, 기환이를 찾아서 다시 친한친구가 되었습니다. 2000년 여름엔 같이 동해로 놀러도 갔었죠~! 후후~ 연시 인터넷의힘은 상상을 초월한다더니 덕분에 옛친구도 찾고 넘 좋네요~~
암튼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목동으로 이사를 가서 서정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첨에 전학을 가니 넘 어색 햇는데 곧 좋은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죠. 그때 사귄친구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가장 친한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7단지멤버였던 진호, 치호, 호창, 웅, 성웅, 정우, 석영, 동훈, 혜란 등과는 아직도 만나 같이 놀고하는 친한 사이죠. 제가 미국에 있느라고 친구들을 5년넘게 못봤는데도 그동안 연락을 계속 꾸준히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네요. 역시 어릴적 같이 지낸 동창들이 최고라니까!^^ 목동선 학교말고도 학원을 다녔는데 학원 친구들하고도 넘 재밌게 놀았어요. 그 무서운 원장을 이리저리 피해 땡땡이 치면서 오락실 다니고 먹을거 사먹고.. 그때 같이 다니던 친구들 치호, 희용, 승준, 승업, 용하, 영주, 장은.. 그땐 학원의 문제아들 였는데 이젠 다 의젓한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되었죠. 맨날 함께 지내며 놀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참.. 미국 얘기가 나왔는데, 전 목동중학교 3학년때 미국에 가게되었어요. 이모가 미국에 계셔서 갈여건이 되었기에 어린나이에 유학이란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죠. 첨엔 문제많은 조기유학을 간다는게 두려웠지만 이왕이면 영어도 빨리 배우고 일찍 가는게 좋을것 같다고 가족끼리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글구 그땐 왜 또 그리 가고싶었는지.. 그때 몰아친 유학열풍에 친했던 친구인 승준이마저 가고 거기에 자극을 받은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니 반은 바람들어 간거나 다름없죠~^^ 암튼 우여곡절끝에 아무것도 모를 어린나이에 미국을 가게 되었고요. 그때 제나이 겨우 만 15살, 이젠 돌아갈수도 없으니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목표 반, 글고 해낼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반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죠.
처음간 미국은 생각했던거와는 달리 넘 고요하고 한적하더군요. 이모네서 지냈는데 시외곽에 살았거든요. 거긴 대중교통수단이 없으니 운전을 못햇던 저로선 매일 방콕만 돌아다니며며 지냈죠. 그당시 넘 심심한 나머지 할게 하도없어 공부를 했음다.. 할일이 없으니 책이라도 보게되더군요, 헤헤. 덕분에 고등학생땐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햇죠. (지금은 책과 담쌓았지만..T.T) 첨 한 1년간은 영어가 안되서 넘 힘들었는데, 어려서 그런지 금방 따라갈수 있게 되더라구요. 6개월 있으니까 귀가 트이고, 9개월 있으니까 말문이 열리고, 1년째 되니 책이 보이면서 작문이 가능~~ 나도 모르게 영어란 남의나라말에 익숙해져가는 제자신이 신기 했음다. 특히 전 한국학생이 거의 없다시피한 곳을 다녔기 때문에 좀더 빨리 배울수 있었던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의 이 유창한 발음?은 다 그때 만들어진듯, 헤헤. 암튼 이모네서 생활했기 때문에 어린나이에 유학가서 나쁜길로 안빠져들고 무사히 지냈구요^^ .. 이렇게 이럭저럭 약 4년반을 지내면서 스프링필드 고등학교 (Springfield High School) 를 졸업하고, 97년 여름 펜실베니아주의 스테이트 칼리지 (State College) 란 도시로 대학을 오게되었어요.
스테이트 칼리지는 제가 다니는 펜실베니아주립대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가 있는 인구 약 40,000 이 사는곳인데 (완전 시골이라고 할수 있음) 도시인구의 80% 이상이 대학과 관련된 전형적인 대학촌이죠. 전 그곳에서 1년간 룸메이트인 Lee 와 기숙사 생활을 햇음다. Lee 는 피츠버그에서 온 미국아이인데 착하고 공부잘하는 모범생 스타일이죠. (나랑은 정 반대^^) 또한 우람한 외모 (키 195 cm) 와는 다르게 순수하고 내성적인면도 많은애 에요. 걔와 1년간 지내면서 서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같이 지냈죠. 아직도 Lee 와는 종종 만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임다.
1998년 여름 근 6년만에 첨으로 한국을 갔어요. 오랜만에 가는 집이니 정말 좋더군요. 하지만 솔직히 첨엔 적응이 안되서 고생좀 햇죠. 그동안 모든게 넘 많이 변해서 뭐가뭔지 얼떨떨하더라고요. 암튼 그당시 한국에서의 3달은 평생 잊지못할 즐거운 시간 였음다. 가족과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술집, 놀이공원, 나이트.. 눈깜짝할 사이 다 갔죠. 넘 즐거운 시간 엿기에 다시 미국엘 올땐 발걸음이 안떨어 지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국서 좀더 오래 머물수 있는지 연구를 하던차에 교환학생을 생각하게 되었고요. 제 전공이 국제경영 이라서 무조건 반년이나 일년간 외국에 나가있어야 하는데 꿩먹고 알먹는셈으로 한국엘 가기로 맘먹은거죠. 실은 독일로 갈생각 였는데 여러 이유로 생각을 바꿨어요. 그중 가장큰건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서이죠. 지금까지 근 7년을 떨어져 왔고 앞으로도 군대와 대학원 까지 5년 이상은 더 떨어져 살아야되는데 혼자생활에 지친 저로선 넘 힘들었거든요. 일은 계획대로 잘풀렸고 99년 가을학기부터 2000년 봄학기를 연세대학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6월 말~9월 초 (99년)
교환학생하기전 여름방학동안 대우그룹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던곳은 서울역 앞 (주)대우 본사빌딩에요. 넥타이 메고 출근하는게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첫 사회경험인 만큼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가 주로 한일은 회계장부관리, 해외프로젝트 영문번역, 보고서작성도움, 팩스보내기, 복사하기, 커피타기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인턴으로서의 경험을 잘 간직한뒤 담에 정식으로 일할때 더 열심히 해야죠. 직딩 화이링!!
1년간 연세대에서의 교환학생 기간.. 정말 재밌기도 하구 많은것을 얻은 시간 였습니다. 물론 신촌 유흥가의 유혹에빠져 공부보단 노는거에 더 열중한 나머지 두학기동안 2점대의 낮은학점을 받긴했어두^^ 후회는 안되네요. 그동안 그리웠던 한국에서의 대학생활과 동아리활동 (GMT와 IYC) 을 통해 새로사귄 많은 친구들이 성적보다 더 중요한거 아닐까요~~^^ 암튼 연세대에서 사귄 친구들 및 형, 동생들.. 명진, 은정, 현주, 신남, 진혁, 성원, 진권, 승석이형, 욱이형, 지수, 태균이형, 성욱이형.. 모든게 낯설었던 나에게 그동안 잘대해준거에대해 참 고마운 생각이 드네요. 연세대에서의 1년은 끝났지만 모두들과 계속 연락하고 종종 만나며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군요.
제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히 말하자면.. 우선 조만간 군대를 다녀오는게 첫번째 입니다. 늦게 군대를 가서 고생은 하겠지만 大대한민국의 사나이로서 열심히 복무를 할 생각!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학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직장경력을 3~4년 쌓으려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 한국, 홍콩중 한곳에서 주식시장과 관련된 금융쪽업무나 정부기관 관련 컨설팅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후 경영대학원에 진학해서 MBA를 받고 투자은행이나 컨설팅회사에서 10년정도 더 경력을 쌓은뒤 그후에는 아버지처럼 정부기관에서 공무관련 일을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계획일뿐 훗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지만 일단 현재의 목표를 세운만큼 그걸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가 저에대한 소개였음다.. 별로 흥미없는 얘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 제 짧은인생이 여지껏 별로 흥미진진하지가 못해서요~^^ 이제부턴 멋지게 살도록 노력할테니 열심히 사는 저를 지켜봐 주세요!!
UPDATE
나라의 부름을 받고 2001년 2월12일날 입대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군대.. 늦게가는 만큼 열심히 복무해서 조국을위해 이한몸 바칠 각오 되있습니다. 카투사로 가게되었고 부대배치는 입대후 2달이 지난 4월 10일경에 받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지금 생각은 집근처 용산, 또는 멀리 부산이나 대구에 배치받아 새로운 환경에 살아보고 싶습니다. 암튼 어느곳을 가더라도 실망하지않고 군생활 열심히할 각오 되있습니다. 제대하는 2003년 4월까지 모두들 국방으니 제게 맡기고 몸 건강히 편히 계시길 바랍니다. 단결!!
UPDATE 2
26개월간의 화려한 군생활을 마치고 민간인으로 돌아왔습니다. 대구에 위치한 Camp Walker에서 동료 부대원들과 함께 지내며 제자신을 다시한번 돌이켜 볼수 있었던 값진 시간 였습니다. 군생활의 교훈을 거울삼아 앞으로 더욱더 멋진 사나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단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