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로 한국에 귀국한 "서태지" 와 3박 4일 (서태지와의 환상체험)
1. 첫만남 5월이었다. 나는 San Fransico, L.A, New york, New Orealons, 마이애미내쉬빌, 멤피스, Chicago, 하와이 등의 음악도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고 그래서 약간 들떠있었다. 그리고 출발하기전 이상한 음악이 들려왔다. 난 알아요 서태지였다. 침 희안하고 대담했다. 그리고 신선. 무겁지도 않았고 동심 같은게 있으면서도 어딘가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난 알아요는 두 주일도 안돼서 단숨에 한국 가요계를 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 노래가 1등을 차지하기 직전 나는 대한항공을 타고 미국으로 가고 있었다. San fransico 한인방송에서는 음악하던 후배 최송무가 디제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나는 출연했다. 그리고 디제이가 지금 한국에서는 무슨 노래가 히트하냐고 했을때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곧장 대답했다. 난 알 아요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은빛 물고기였다. 그 순수한 역동성을 누가 말리나. 그리고 한달 후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서태지와 짜장면을 먹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2시의 데이트에 출연했고 그 방송은 여름방학 특집이었고 나는 그 원고를 썼다. 그래서 매우 늦은 점심을 먹은 셈이었다. 디제이 김기덕 형과 서태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먹었다. 그때 이주노와 양현석은 어딜 갔었나? 하여튼 셋 뿐이었다. 그때 서태지는 짜장면을 기자리면서도 연신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대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고 흥얼거리는 랩을 하고 있었다. 짜장면을 비비면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서태지는 짜장면을 먹으면서 음악을 하는게 아니었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서태지는 음악을 하면서 도중에 그냥 마지못해 짜장면에 언듯 손을 대는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순수하게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 광인은 처음이었다. 2. 두번째 만남 그 이후 서태지는 신화 그 자체였다. 새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서태지는 잘 나가고 있었고 한국 문화에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1994년 10월 케이비씨 앞. 그날은 가요 톱 10을 하는 날이었다. 아이 비 씨 문앞에는 두 개의 팬클럽 회원들이 플랑카드를 펼쳐들고 있었다. 하나는 알 이 에프를 좋아하는 팬클럽이었다. 또 하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팬 클럽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들이 들고 있는 노란색 글씨의 플랑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서태지가 역사를 바로 세운다" 아직 역사 바로세우기란 말이 신문에 나지 않을 때였다. 그리고 두달 후 그해 연말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란 표현을 했고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있었다. 이상하고도 특이한 일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서태지를 케이비에스에서 만났다. 그러니까 케이비에스 본관 5층 라디오 작가실 앞에 있는 엘레베이터 앞이었다. 서태지는 빨간 물로 머리를 물들였고 이주노와 양현석도 초록과 노란물을 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열대의 정글에서 자라난 자연같았다. 서태지를 아는 체 하려다 그만 두었다. 3. 세번째 만남 이번에는 샘터였다. 지난해 1996년 5월이었다. 동승동 대학로 셈터사가 있는 밀다원 커피 숍에서 그러니까 서태지는 은퇴했고 캐나다에서 스키를 타고 있다는 미확인 보도가 떠돌았다. 그때 나는 모 출판사로 부터 서태지의 책을 써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때 특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불현듯이 그가 보고싶었다. 아이처럼 말하고 천재롭게 행동하는 서태지. 그가 보고 싶었다....
나는 출판사 측에 서태지의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서태지는 잘 다루어야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마지막 희망이니까. 그러나 그 기획은 며칠 안가서 무산되고 말았다. 갑작스레 서태지가 연락처를 옮겨 버린 탓이었다. 역시 서태지다왔다.
서태지와의 3박4일 서태지는 내 방에 있다. 나의 아파트에 있다. 서태지의 귀국은
그가 잠적할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비밀스러웠다. 그는 마치 우디 알렌같은 분위기로 변장을 했고 헐렁한 코트로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는 새벽에 나를 찾았다. 그는 긴 시간 비행을 한 사람 답지 않게 기가 있었다. 그로부터 3박 4일간 나는 그와 함께 있었다. 그는 예민하고도 매우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그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그는 이따끔 어디론가 전활르 했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의 그는 아름답기 까지 했다. 나는 그를 위해 나의 방을 내 주었고 그는 그곳에서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에서의 3박 4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내 방에서 맨 처음 한일은 그의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엄마... 나..태지... 그럼..잘 지내지...엄만? 음.....그래요... 태지는 나에게 그랬다. 거처를 수시로 비밀리에 옮길 수 밖에 없는 말 못할 얘기가 있다고 나는 그의 말에 더 이상 자세히는 묻지 않았다. 나도 어느정도 짐작했던 일이기에. 3박4일간 서태지는 분명 나와 같은 아파트에 함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갱 뮤직처럼 걸어다니기도 했고 랩의 한 부분처럼 그의 눈빛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그는 한밤중에 썬글라스를 쓴채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라 나를 염구에 두지도 않은 듯 싶기도 했고, 고기가 먹고 싶다기에 고기를 구워주자 아주 잘먹기도 했다. 그리고 그만의 특유의 버릇인 뻐끔 담배를 피워 물기도 했다. 그는 가늘게 웃었고 그 미소가 나를 싸아게 했다. 그는 한국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고 여전히 자신의 팬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팬들의 부모들보다도 더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국내활동을 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보내어진 그 숱한 엽서들을 지금 까지도 단 한장 버린 적이 없다. 지금도 그 엽서와 선물들은 세명의 집에 가장 소중하게 보관돼 있다. 그리고 한번은 엽서등을 나르던 사무실 직원 한 사람이 실수로 엽서를 한 장을 땅에 털어뜨렸다가 서태지를 몹시 화나게 한일도 있었다. 그날 그 사건 때문에 사무실이 뒤집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그에게 다시 음악활동을 재개 할 생각이 없냐고 얘기를 묻기도 했으나 그에 대해서 서태지는. 노 코멘트. 그냥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늘 옷을 입고 잠들었다. 그래서 나는 서태지의 알몸을 본적이 없었다. 그가 문득 나의 아파트를 떠나간 후에 나는 그 가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새벽.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의 스케줄 메뉴에는 1월 31일 둑도 2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1주년 기념식 서기회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