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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대 목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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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는 교회

언젠가 누가 물었다. "목사님! 교회가 많은데 마치 좋은 영화 등급 매기듯이 별 표시로 교회 등급을 매기면 어떨까요? 그러면 평신도들이 교회 선택하기가 쉬울 텐데요." "그거 재미있겠네요. 하지만 별 표시를 하나 밖에 받지 못한 교회가 가만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했다.

교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래서 사실상 나쁜 교회, 좋은 교회로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며 샤핑을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좋은 교회, 누가 훌륭한 목사"라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판단이 옳을까? 만일 좋은 교회, 나쁜 교회로 판단을 내릴 만한 올바른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프랑스 현대철학자 리쾨르(Paul Ricoeur)는 "악의 상징"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서의 세계는 죄 또는 악에 바탕하고 있지만 그 세계관은 죄 속에 매몰되어 의지를 상실하는 비관주의가 아니라 세계 긍정의 희망을 주는 낙관주의라는 것이다. 희망의 세계관을 가르치고,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다.

헌금 많이 하는 이는 하나님께 순종 많이 하는 이로 대우받고, '위에서 이야기하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어야 하는 이'가 충실한 신도가 되고, 교회가 필요할 때 헌금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형편에 있는 이가 죄책감을 느끼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포와 불안에 빠질 일이 많은 세상에서 평화로운 마음을 찾도록 도와 주지 못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모든 이들이 납득할 때까지 대화와 토론을 거쳐 평화롭게 결정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다.

이슬람교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독수리 알이 우연한 기회에 닭에게 품어져 부화된 후 그 독수리는 닭과 같이 자라게 되었다. 그 독수리는 닭처럼 모이를 쪼아 먹고 고작 두 세자 높이 밖에 날아 오르지 못했다. 어느 날 진짜 독수리가 나타났다. 이때 닭인 줄 알고 있던 독수리가 선배 닭에게 물었다. '저 멋있고 위엄 있는 분은 누구지요?' 선배 닭이 대답했다. '저 분은 독수리라는 분이지. 감히 너 같은 존재는 꿈도 꿀 수 없는...' . 닭인 줄 아는 독수리는 다시 모이를 쪼아먹었다." 종교는 희망을 가르쳐야 한다. 독수리처럼 날 수 있는 이에게 닭처럼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할 일이 아니다.

콜로라도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이나 거의 매일 같이 일어 나는 강도 사건 등 위협과 불안 요소가 가득한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마음의 평화다. 희망과 함께 마음의 평화를 주는 교회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