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현장-- 온두라스 재기 돕는 국제구호단체·선교사들중미 역사상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허리케인 미치'로 인 해 온두라스는 지형이 바뀌었 다.지난해 10월 말 온두라스를 할퀴고 지나간 허리케인 미치의 상흔은 과거 어느 태풍보다 훨 씬 끔찍했다.최대의 휴양지로 각광 받던 카브리해 연안의 도시 들은 모두 침수됐고 전국의 다 리가 대부분 붕괴됐다.또 전체인구의 10%에 해당하는 60만명 이 상의 이재민들이 집과 가족을 잃었다.허리케인으로 인한 사망자 8천여명,실종자 5천여명으 로 현지에서는 사상자를 3만여명 으로 추산하고 있다.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는 허리케인 미치가 24시간동안 머물렀던 곳이다.도시 곳곳에 파손된 도로와 건물들은 전쟁의 흔적을 보는 듯했다.북쪽에서 남쪽으로 150㎞ 가량 이어진 촐 루테카 강이 수도 중심부를 흐르는데,허리케인 미치로 인해 물 줄기를 따라 범람해 강가 마을 을 휩쓸어 버렸다.이에 따라 국가경제의 근간인 농작물의 70% 가 피해를 입었다. 전국의 성당 교회 학교들은 난민수용소로 사용되고 있었다.수 도 근교에 위치한 라몬아마야 아마도르지역을 방문했다.흰색과 파란색의 A형 비닐텐트들이 야 트막한 산 전체를 뒤덮고 있 었다.태풍으로 집을 잃고 교회나 학교에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꼬로니야 소토의 5백여 가정이 그곳에 있었다.위생시설이 없는 이 난민촌은 국제구호단체들로 부터 식량을 공급받고 있었다. 슬리퍼조차 신지 못한 아이들의 발은 나무토막처럼 거칠었고 발 바닥은 이미 곰팡이균에 감염돼 있었다. 수도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산로렌조에 는 98가구중 두 가구만 남아 있 었다.나뭇가지와 진흙벽돌로 지어진 집들은 흔적도 찾을 수 없 었고 지붕과 나뭇가지만 잔해로 남아 있었다. 산로렌조의 보건교육사 빠스토라(37)씨는 4일동안 지붕위에 서 다섯명의 자녀를 데리고 구조 를 기다렸다고 말했다.“물이 점점 차올라 더 이상 대피할 곳 이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지붕 위로 올라갔어요.아이들은 춥고 배고프다며 울부짖는 상황에 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구조대를 기다렸어요”또 미치가 휩쓸고 간 지역엔 전염병의 검은 그림자 가 드리워져 있었다. 멕시코 군인과 경찰이 데리고 온 훈련견이 시체발굴작업에 참 여하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온두라스의 국민들은 아직도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 고 있다.집과 가족을 잃어버 리고 울부짖던 이들에게 절망과 불안이 해일처럼 덮치고 있었 다.그들은 집과 가족 뿐아니라 희망과 용기도 잃어버렸다.삽과 곡괭이를 들 힘도 잃어버린 듯 했다. 큰 재난으로 정신적 충격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떡과 복 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 교단의 선교사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 가 돼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었 다. 온두라스의 인구는 6백만명 가량이며,면적은 남한보다 조 금 크다. 종교는 가톨릭 86%, 개신교 11%. 1999년 1월 16일 {국민일보} 기사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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