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프리트의 희극



"우리신랑이쁜신랑먼데서아프면안되*^^*"

나는 문자 메세지를 보고 전화를 성벽 아래 멀리 흐르는 네카강에 내던저 버리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로밍 한답시고 빌린 이 플립도 폴더도 뭣도 아닌 것 처럼 보이는 일본제 전화가 배상액이 600달러나 된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같이 온 일행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성 아래 마을의 모습을 보며 탄성에, 사진에, 난리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볼 수록 짜증만 날 뿐이다.

독일은 지겹다. 무슨 악연인지 몰라도 나는 유럽에 다섯번이나 왔으면서도, 다섯번째인 지금까지 오직 단 한 번도 독일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칸트의 저주에 걸린 것인지. 망해먹을, 따지고보면 칸트랑 비교해봐도 불공평하다. 쾨니히스베르그도 백년 가까이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인 판에, 나는 무슨 재수가 옴이 붙어, 지긋지긋하게 독일에만 오게 되는지 모르겠다. 올 때마다 하이델베르그가 아름답다고 여기에 온 것도 꼭 딱 떨어지는 다섯번째다.

대학 새내기의 치기로 동생과 함께 처음 한국을 떠나 보았을 때, 괜히 "여기저기 막 다니지말고 한 나라만 제대로 돌아보자" 한 것이 화근이요, 말이 뿌린 씨앗이었다. 그냥 남들처럼 런던, 파리, 취리히, 로마, 베네치아를 구경할 것을. 그 때 바이에른 구석구석을 다 돌았건만, 무슨 악연인지 그 후로 이상하게 유럽에만 왔다하면 나는 독일로 가는 여정 뿐이었다. 그 말의 씨앗은 잭의 콩나무가 된 것이다.

나는 기를 쓰고 그나마 참신함을 느껴보고자, 두번째 유학간 삼촌을 만나러 왔을 때는 프로이센을 돌아보려고 했고, 세번째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게 되었을 때는 작센을 샅샅히 뒤지며 뭔가 참신함을 발견해보고자 용을 썼다. 네번째 학회가 열려 이곳에 왔을 때는 옛 동독 지역의 남은 한 톨까지 돌아다녀 보았다.

그야말로 좀 심하게 "한 나라만 제대로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나를 너무 유치하다고 하지마라. 남들이 해외 출장을 갔다고 하면 뭔가 동경을 하는 그 눈빛에 2할만이라도 되는 낭만을 원할 뿐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너무도 익숙한 자판기 맥주를 따라마실 때는 한숨이 푹 나왔다. "너도 유럽 여행 가 봤으면 파리 샹젤리제 거리 가 봤겠네? 나는 거기가 베니스나 바티칸보다 훨씬 멋있더라"하고 말하던 학부때 학과 최고의 미인이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놀리는 듯 귀에 쟁쟁히 다시 울리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다섯번의 독일 방문중에 이곳 하이델베르그는 때마다 한 번도 빠뜨려본 적이 없다. 나에게 이 곳은 대전 지역 대학교 고학번 학생들에게 지긋지긋한 계룡산 MT와 같은 것이요, 6호선 대학교에 다니는 서울 대학생들이 수유리로 떠나며 여행의 묘미를 조금도 가질 수 없는 것과 완벽히 느낌이 같다.

하이델베르그. 한국인 여행객과 일본인 여행객은 모두 똑같은 안내책자를 같이 보는데, 나는 그 책자에 소개된 '하이델베르그의 먹을만 한 곳' 섹션을 모조리 다 방문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미국인 여행객과 영국인 여행객에게 가장 유명한 안내책자를 따라, 맛집의 차집합들을 방문해 보았다.

고등학교때 중국어를 배운 나는, 이번에는 중국인들이 보는 안내책자를 구해서 "Can Ting" 섹션을 뒤지는 처량한 짓을 하고 있다. 아뿔싸. 뒤져보니, 이 중국책은 처음에 보았던 일본책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그럼 또 동료 여행객들에게 만만한 "붉은 황소"행이냐.

딱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나는 여자친구(라는 명사도 대명사도 아닌 단어로 불리는 아이)가 보낸 그 문자 메세지를 보았다.

송강 정철의 몇 대 손이 어떻게 가지를 친 엄한 집안에서 자라났다고, 유머처럼 자기 소개를 하던 새내기 환영회에서 그녀를 처음으로 보았다. 누구의 몇 대손이라니. 코메디 만화책에서 웃음의 재료로 남발하는 설정이였으나 귀엽긴 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어림없이 튀려고 한다는 생각에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먼 곳에서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신랑이쁜신랑먼데서아프면안되*^^*". 모든 다른 생각들이 들기 전에 짜증이 솟구쳤다. 나는 마을의 붉은 지붕들이 고색창연히 저녁햇빛을 반사하는 저 아래를 향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치고 싶었다. "안되가 아니라 안돼란 말이다-!"

"무난하다"는 말을 "문안하다"라고 쓰는 것에 처음 경악한 수 년전에는 물론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그녀는 꼭 고양이처럼 방긋 웃는 꽤 예쁜 아이였다. 맨날 내 친구들이 인터넷으로 에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보거나, 끝없는 술자리와 야식으로 주말의 무료함을 달랠때, 나는 그녀와 팔짱을 끼고 다니면 그렇게 내가 잘난 느낌이 들 수 없었다. 당시 나의 힘들어간 목과 어깨는 터미네이터의 골격 강도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175cm의 신장에도 얼굴이 꽤 귀여울 뿐만 아니라, 확실히 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의 나처럼 오직 호르몬 신호만을 근거로 여자를 판단하는 모든 남학생들에게 중요한 요소이자, 모든 요소였다. 무척이나 키가 큰 편인 나는 다른 사람보다 그녀와 함께 다니면 폼이 났다. 전문용어로 말해, 그림이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 그럴듯함에 빨려들었던 것이다.

학과 친구들이 같이 밥을 먹을 때 마침 옆에 앉은 그녀에게, 나는 동생과 여름방학 때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뮌헨의 호프집들과 퓌센 근방의 아름다운 성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벽돌로 포장된 길을 돌아돌아 올라, 반쯤은 폐허가된 산 중턱에 있는 하이델베르그 성에 오르면, 다닥다닥 지붕을 맞대고 있는 중세풍이 물씬나는 하이델베르그 시가지와 네카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했다.

강을 가로 질러 걸린 옛 다리가 해질녁이 될 수록, 얼마나 멋진지, 그리고 산 성벽에서 다리 너머 강끝에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질 때, 나는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는 말을 할 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특히 "노을"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그녀의 표정은 뭔가 흔들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녀는 그 때부터 나한테 "친한 척"하기 시작했다. 밥 먹을 사람 없다며 밥사달라고 조르는 아주 고질적인 접근법부터, 괜히 숙제에 대해 의논한다던가 갑자기 별로 웃기지도 않은 내 정장 양복이 웃기다고 놀린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지난 주말 얼마나 심심했던가에 대한 감상과, 가슴을 강조한 그녀의 니트 상의 덕분에 그녀에게 값비싼 유럽 초컬릿과 장미와 분홍색 편지를 보냈다.

처음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어색하기도 했고, 뭔가 어긋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한 달쯤 지나니까 즐거워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녔고,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허리를 안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는 내 가슴팍쪽에 살며시 안겼다. 첫 키스를 강의실 건물 뒤 느티나무 아래서 했고, 그녀는 깜짝 파티로 내 생일에 아이스크림 케익을 챙겨주었다.

나는 그 즈음부터 그녀와 항상 붙어다니기 시작했다. 점심을 같이 먹고, 몇몇 수업들을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들었고, 저녁을 같이 먹고, 주말이면 같이 놀았다. 나는 그러면서 점점 더 그녀를 알아가게 되었고, 그녀와 정이 들어갔다.

"목소리 들으면서 이야기하다가 잠들고 싶어"

그러면서 하염없이 전화통화를 하다가 잠이 들어보았는가하면, 그녀가 봄 독감으로 부들부들 떨때 그녀를 업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병원에서 초조하게 의사의 대답을 기다릴 때는, 나는 그녀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어떤 깊은 느낌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나는 사람들 앞에 들리기 민망한 목소리로 전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지기도 했다. 옹알이 같은 혀짧은 목소리로 "밥은 마시께 머거쪄?"라고 한다던가, 그녀가 애교를 부리며 자신을 칭하는 것에 부합하여, "우리 애기는 너무너무 귀여워 보고시포~~~"하는 나의 거대한 덩치를 뒤엎어버리는 대사를 구사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나를 두들겨 팰듯 했지만, 나는 오히려 뿌듯한 느낌으로 핸드폰에 뽀뽀했고, "잘자~안녕쪽쪽" 같은 문자 메세지를 습관처럼 날리곤 했다.

그러던, 그러던 어느날,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제3의 눈이, 제6감이, 혜안이 서서히 천천히 열리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로 독일을 갔다 온 다음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에게 같이 들은 오늘 수업 중에서 선형대수이론의 실용적인 적용에 내가 얼마나 감격했는지를 떠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가 좀 지겨워하고 있으며, 좀 짜증을 내는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농담을 하나 하기로 했다. 그녀는 대체로 나의 유머를 무엇보다 즐거워 했기에.

"베이비복스에 간미연 알지? 내가 간미연으로 삼행시하나 지어 볼까?"

그녀는 눈빛이 다시 맑게 돌아왔다. 나는 의기양양히 읊었다.

"간, 간단히 말해서.
미, 미분가능하면.
연, 연속이다."

썰렁한 유머에는 썰렁함 때문에 피식거리는 헛웃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맹세코 그때 그녀는 뭔가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공대생의 영혼을 따뜻하게 냉소하는 이 걸작 유머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었다.

물론 이따위 나르시스트의 저급 유머 하나에 대한 견해 차이로, 그녀와 소원해 진 것은 아니다. 그 우스꽝스런 사건은 그저 기억나는 이정표일 뿐이다. 관찰 결과 나는 그녀가 그토록 자신이 열심히 몰두하는 학업에서 그 어떠한 깨달음의 즐거움도, 학문적 욕심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일러 전개나 함수의 재귀적 호출을 이용한 알고리즘 같은 것에 아주 약간은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 약간의 흥미 정도는 느껴도 되잖아. 하지만 그녀에게 모든 공부는 오직 학점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학점은 취직과 연봉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나역시 순수한 학문만이 위대하며 모든 기계적이고 수단적인 공부는 가소롭다고 주장하는 변태는 아니다. 하지만, 시험 이틀전에 밤을 새워서 족보의 풀이를 모조리 다 외워버리고, 시험을 쳐서 족보에 나온 문제는 100점을 나머지는 0점을 맞은 뒤에 A- 학점에 브이자를 그리며 다음날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나를 전형적인 잘난척하는 남자라고 마음껏 욕해도 좋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비극과 그 고고학적 발견에 대해 감동을 먹은 어느날, 나는 그녀가 2차대전과 6.25와 베트남전쟁이 일어난 순서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리골레토에서 만토바가 리골레토의 집에 몰래 들어온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비틀즈라는 말을 듣고 내 머릿속에서 Something의 곡조가 흐를때, 그녀의 머릿속에 질겅질겅 씹으면 새콤한 맛이 나는 과일맛 과자가 떠오른다면, 조금은 실망할 법도 하지 않은가.

그래도, 그걸로 혼자 고상 떨면서 여자를 무시하며 점점 싫어하는, 나는 그 딴 놈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그녀를 분명히 한 때 사랑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들은 귀여웠다. 보호본능을 일으켰고, 페미니즘 교양 시간에 입밖에 내면 이미지만 망치는 단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언정, 그런 그녀는 백치미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삶을 살아오고 살아가는 방식이고 나는 그녀의 그런 독특한 성격까지 좋아할 수 있었다.

결정타는 그와는 정반대의 각도에서 찾아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XY 염색체가 발현해 내는 건강한 행동 유발 동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사랑을 표현하는 물리적 행위들을 하고 싶었다.

우선 나는 현대 사회의 영상 매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겠다. 세상에는 우리의 머릿속에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텔레비전과 영화와 광고속의 영상들이 너무 많다. 즉 나는 어릴 때부터 흑백 영화 속의 소피아 로렌과 컬러 영화 속의 모니카 벨루치에 넋이 나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강하고도 굳건하게 자신만의 신조와 지조를 지켜나갔다. 그녀의 온몸은 강력한 이념의 방어막으로 철저히 닫혀 있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내용의 제1단계의 시작단계의 한 스텝을 펼치기도 전에, 그녀는 떨리는 내 손과 입술을 거부했다.

이것은 처음에 내가 비웃었던, "송강 정철 가문 몇 대 손 어쩌고 자기소개"의 통렬한 복수였다. 그녀의 사상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철두철미하게 완결되어 있었다. 이 사회가 아직까지 치사한 순결관념을 갖고 있다는 전근대성에 나는 역사적인 분노마저 느꼈다.

나는 그녀가 "건전한 관계"라고 끝까지 굳게 믿고 있는 그것이, 사실은 건전한 것이 아니라는 나의 믿음을 납득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나는 세련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헐리웃 드라마들을 교묘하게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그녀의 관념을 열려고 했다. 또 책을 선물하고 소설을 추천하면서, 문학으로 포장된 자유로운 에로스의 날개로 뭔가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동년배 또래 집단에서 이런 저런 경험담들이 나오면, 잘난척하고 싶어하게 되는 그 치기를 이용하기 위해,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친구들과 그녀를 자주 만나도록 뒤에서 사주하기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굳건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강 정철 시리즈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런 그녀의 굳건함은 점차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왠지 내가 이상한 것만 좋아하는 동물적인 놈으로 몰리는 기분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플라톤의 사상을 애초부터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정은 그때까지만해도 분명히 좋았다. 적어도 그녀와 함께하는 나는, 휴일에 밤새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 말고도 할일이 있었다. 그 사실이 다른 내 친구들에 비해 묘한 우월감을 갖게 해서 나는 이러한 고난과 역경에도 그녀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 번 고고한 정신 세계에 빠져보고자 결심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어느 새벽에 내 앞에 나타난 좀 뚱뚱하고 한심스러워 보였던 내 친구였다.

"너 우리학교에서 키스하기 제일 좋은 장소가 어딘줄 아냐?"
"어디인데?"
"산책로 돌아가는 언덕배기에 나무 아래로 숨겨져 있는 벤취."
"에이, 거기가 뭘."
"거기서 키스하면 정말 분위기 좋아서, 키스 계속하게 된다니까. 어떤 적막한 공기속에 뭔가가 있어."
"헛소리 하지마라."
"맞다니까. 오후 늦게 부터, 해질녁까지, 저녁을 지나, 깊은 밤까지, 거기서 계속 키스 할 수도 있다니까. 너 그거 아냐? 한 네 시간 동안 200번 정도 키스하잖아. 그러면 그날 밤 내내 이상하게 멀미나는 것 처럼 어지럽고 머리가 좀 아프고 그렇다. 그건 키스 멀미라고 할만하지."

그러면서 씨익 웃는 그 한 때 한심스러웠던 놈의 표정. 도대체 그 놈이 그런 면상으로 2백번씩 키스를 하며 무슨 짓을 했을까가 상상의 꼬리를 물어나갔다. 그러자 가슴이 확뜨거워지면서 온몸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패배감을 느꼈다. 아, 나는 플라톤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유치하고 비열한 20세기말에 태어난 남자인 것이다.


그렇게 카운터 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고 있는 나를 다운시켜버린 것은 그녀의 공포스런 태도였다. 내가 드디어 미혹에서 깨어나 혀짧은 소리로, "따랑해~우리 애기는 나 안보고 시포쪄?" 하는 것이 병신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건만. 그녀는 뭔가 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날 부터, 나를 "남편"이라든가, "신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소속감을 느낀다거나, 자신의 사랑의 깊이를 보증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아직 이십대 초반인 정상적인 남자인 나에게는 한 단어 한 단어가 가슴을 퍽퍽 때렸다. 그런 말들은 어림없는 오버 액션으로 보였다.

마치 축구나 암산에 좀 재능있는 어린이를 텔레비전 쇼에서 보여주며, 말끝마다 "신동" "신동"하는 것의 느낌에 곱하기 백만이라고나 할까.

"다른 남자들이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내 눈에 우리 신랑이 제일 예쁜걸."

이런 말들이, 문득 문득. "아, 이 아이가 드디어 자기 망상에 휘말리고 있구나."하는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다. 저것은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니라, 자기 선언적인 되뇌임이었다. 예를들면,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집. 신랑이랑 나랑 살 수 있는 작아도 이쁜 우리집. 그럼 항상 내가 신랑을 맞아 줄텐데요."

이런 대사는 그야말로 나를 한없이 심난하게 했다.

내가 넉 다운 되어, 드디어 링에서 실려 내려올 수 밖에 없던 날을 나는 아주 생생히 기억한다. 나에게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대해 새내기 때 이야기했던, 그 아이를 나는 아주 오랫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장학생으로 뽑혀 독일로 연수를 가느라 학교를 떠나 있었다. - 하필 독일이라는 것에 나는 감을 좀 잡았어야 했다.

그 아이가 오랫만에 돌아온지도 한 달 가까이 지났건만, 이제는 전공과정도 세부 전공도 좀 나뉘어서 나는 그때까지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밥이나 한끼 먹자며 그녀와 토요일 점심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나는 학과 최고의 미녀였던 그녀와 한 때 친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거의 짝사랑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녀는 학과에서 공부를 거진 제일 잘했고, 60년대 재즈를 좋아했으며, 하이네의 시를 즐겨 읽곤 했다. 또 그녀는 내가 엡실론-델타로 정의하는 극한의 정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때, 누구보다 명쾌하게 그 정의를 이해시켜준 탁월한 강사이기도 했다. 코쉬의 극한 정의에 대해 이야기 할 떄, 그녀의 나즈막하고 나긋한 차분한 목소리는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저렇게, 그녀에게 한 때 내가 흑심을 숨기고 추근댔던 덕택에 아직까지도 그녀와 나는 미약한 친분관계가 남아있어서, 오랫만이지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났던 그 토요일은,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 내린 비가 밤 사이 그친 그 다음의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그래도 구름이 좀 남아있었는데, 점심쯤이 되자 끝내주게 멋진 맑디 맑은 파란 하늘과, 아직 물기가 가득한 갖가지 묘한 모양의 뭉게구름들이 절로 사람을 들뜨게하는 날씨였다.

빛나는 젖은 검정 아스팔트와 세상의 바람에는 청량감이 가득했다. 캠퍼스의 잔디끝에는 덜마른 빛방울들이 방울 방울 맺혀 있었고, 군데 군데 물이 괴인 웅덩이에는 멀리서 보면 푸른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그렇게 맑게 개인 멋진 토요일 점심때, 나는 그녀와의 약속장소인 캠퍼스 끝, 학교 뒤쪽으로 나가는 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를 보았다. 그 장면은 지금 내 머릿속에 120프레임짜리 고해상도 동영상처럼 너무나 또렷하게 남아있다.

하얀 그녀의 얼굴에 차갑게 검은 빛의 긴 생머리. 그리고 내 뺨에 살짝 바람이 일었고, 한 걸음 두 걸음, 그녀가 고개를 돌렸고, 나를 발견했다. 내가 표정관리를 어떻게 할까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왜 나는 이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숨이 헉 막혔다. 심장은 방망이질 쳤다. 그 때 만약 목소리가 떨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인사했다면, 나는 각의 삼등분을 작도했으리라. 그녀에게는 어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바로 다음 순간에 어느 늙수레하게 생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저씨 같은 녀석이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주 익숙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나는 번개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안겼다. 그 녀석은 그녀를 엉큼하고 느끼하고 음탕하고 재수없게 여기저기를 좀 더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밥 맛있게 먹어라"

하고 오직 승리자만이 지을 수 있는 자신있는 미소를 짓고 표표히 사라졌다. 어느새 생긴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것이다.

내가 그 날 그녀와 밥을 먹으면서 어떤 감정속에서 무슨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며 얼마나 번민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신다. 그녀는 독일에 머물면서 녹색당의 노선에 대해 느낀 자신의 견해나, 독일식 교육제도가 과연 한국에도 정착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혹은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광들과 함께 반지4부작을 즐긴 이야기를 했던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딴 게르만족놈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왔겠는가. 그 날이 내 외로운 복싱의 최후였다. 나는 결심했다. 사귀고 있는 그녀와 결별하겠다고. 그리고 진정으로 존재만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리고 20대 다운 정열이 있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짝을 찾아 도전하겠다고. 범작이 아니라 대작에 도전하겠다고.

그리하여, 나는 다섯번째로 "제6회 국제 전산 기상 연구 학회"에서 "결정 인자에 의한 구름 생성 기작에 관한 반이론적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 위해 독일에 또 다시 오면서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무작정 그녀를 만나서 헤어지겠다고 하자. 그것만이 내 청춘의 가닥을 다잡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델베르그를 돌아보고 독일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밤, 나는 한국에만 돌아가면 몇 년이나 같이 지낸 그녀에게 이별을 통고한다는 죄책감과 비장함에 또 다시 한 번 감상의 나래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같이 온 일행들과 함께, 독일 하늘의 별을 볼 수 있고, 악사들의 연주도 멋진, 노천의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나는 이제 능숙하게 "Bitte"를 한 다섯 번쯤 섞어서, 딱 하이델베르그 액센트로 맥주와 안주들을 주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독일어를 할 줄 아는지 놀래서 동기 여학생이 물었다.

"어, 독일어 되게 잘하시네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순간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촛불이 내는 영롱한 빛에 그녀의 까만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동자는 순수했고, 깊었다. 태풍에 대해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그녀가 이토록 아름다웠음을 나는 내 족쇄에 묶여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불현듯 처음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 하이델베르그의 노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녀를 환상에 빠지게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 다섯번째 독일행에서 결심한 것에 대해, 뢰벤브로이가 올라와 있는 이 맥주 테이블은 지금 나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좋다. "독일어를 어디에서 배웠냐"라.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무엇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아군의 전력은 막강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이성의 빗장을 잠식해들어갈 맥주 속 옅은 농도의 알콜. 붉은 꽃으로 장식된 옛 다리 너머의 광장. 사람들의 떠드는 독일어와, 플룻과 첼로로 연주하는 비엔나 왈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밤. 이 밤 나는 릴케가 되어 테이블 앞의 그녀를 사로잡으리라.
"어쩌다보니 독일에만 이번이 다섯 번째 거든요."
"그래요?"
"처음에는 동생이랑 여행왔고, 다음에는 유학간 삼촌이 초대해서 왔고, 세번째에는 교환학생으로 왔고, 네번째는 학회때문에 왔었어요."
"예."
"여기 하이델베르그도 좋지만, 남서부에 알프스쪽에 멋진 경치가 많아요."
"그런가요?"
"아니면 서쪽에 로맨틱 가도에도 돌아볼 곳이 많고."
"예."
"아니면, 어...... 또 어디가 괜찮지......"
"......"

이상했다. 뭔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더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재미없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고, 결국 항상 개그로 폭소를 물고다니던 결혼한 연구실 선배의 무용담에 그녀는 이목을 돌렸다. 그 날 밤은 그렇게 왈츠 음악 속에 묻혔다.

무슨 병신짓이냐. 하늘이 내린 기회를 날려버렸다. 나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중국 영공으로 들어설쯤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몇 년 동안 내 여자친구와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여자들에게 접근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완전히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혀짧은 소리로 닭살 돋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신이 팔려, 기술을 잃어버린 것이다. 진솔한 모습과, 꾸미고 가꾼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약간의 위선이 팽배하며, 조금은 복마전도 있는 그 접근의 기술을 상실해 버린 것이었다. 머리로는 계산을 하고 계획을 하다가도, "왜 이런 바보같이 빙빙 돌기만 하는 짓을 해야하지?"하는 의문이 떠올라, 모든 것을 망쳐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보니, 문제는 그 뿐만이아니었다. 대체로 주변에 대부분의 나와 안면이 있는 여자들은 내가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고를 수 있는 남자들은 이 이공계바닥에 널려있다. 나는 그레고리 펙도 장동건도 아니므로, 괜히 복잡하게 얽히기 싫은 그녀들이 나를 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장기간의 연애가 낳은 부작용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녀와 헤어진다고 하면, 한 1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락해 물어볼, "여자 친구는 잘 있냐?" "깨졌어." "언제." 그 이야기를 어떻게 구십번 정도 하는가.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차단 당한 듯 했다.

그런 와중에 나의 전화에는 정기적으로,

"신랑이랑 빠이빠이 너무 아쉬워 울 신랑 오랫만에 보니 넘 예뽀. 사랑해요. 조심해서들어가"

이런 문자가 오고. 고달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나는 무기력하기만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런 어둠속에 빠진 나의 영혼에게 구원의 빛을 내려 준것은 애늙은이놈에게 잡혀있던 나의 공주였다.

"세계 전산 기상 연구 학회 - 강우 및 적설 분과 소속 연구원 대표 결과 발표 자료"

연구실의 지도 교수님이 던져준 논문 보고서 디스켓을 컴퓨터에 꽂은 순간 전화가 왔다. 그 논문 보고서는 교수님이 다음 학회 때 나와 함께 출장 가서 기념연설을 할 내용이었기에 꽤 긴 시간동안 신중하게 모양을 잡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전화는 나에게서 삼일밤낮 동안 신중을 앗아간 단초가 되었다.

"지금... 시간있니?"

전화기 너머의 공주는 좀 울고 난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필경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 목소리를 듣고,

"아니, 지금 전산 기상 연구 학회 강우 및 적설 분과 소속 발표 자료 정리해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정신병자는 지상에 없으리라.

"왜 그러는데?" "지금 좀...... 만날 수 있을까?"
"그래, 내가 너 있는 곳으로 지금 갈께."

나는 연구실을 박차고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사연인 즉슨 그녀가 이별을 당했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이제 그 비열한 애늙은이 마왕의 마수에서 그녀는 풀려난 것이다. 이 무슨 그림 동화의 클라이막스 같은 멋진 부분인가.

그녀는 많은 아름답고 재능있는 여학생들이 그렇듯이, 시기하는 자들이 많을 뿐 동성 친구들은 몇 없었다. 그나마 그녀의 동성 친구들은 지금 휴학중이거나 조기 졸업했기에, 연인에게 이별을 당한 그녀가 외로움속에서 슬픔의 고통을 받을 때 만나기를 청할 사람은 바로 나. 나 뿐이었다.

내가 그녀의 아픔을 악용한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약간 교활하다고 내 양심이 욕할 지언정, 지상 최대의 작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화단 앞 붉은 벽돌 위에 걸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달빛과 가로등에 그녀의 하얀 목이 빛났다. 머리칼에 가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사하라 사막에 부임한 에르빈 롬멜 장군과, 전국 총선 투표함 앞에 선 유권자와, 울고 있는 그녀 앞의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친 짓일지도 몰랐다. 아주 성격 이상한 놈으로 보이면서 이미지를 망치면, 도덕적인 수치스러움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기회는 평생에 쉽게 오지 않는 것임에 분명했다. 오묘하게 분위기가 고조되는 잠시의 순간, 마치 익숙치 않은 연인이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 아주 잠깐만 조성 되듯. 10초 후에 비참한 패잔병이 될지언정, 그 짜릿한 도전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항상 수십년을 두고 기억 속에서 아쉬운 것은 날린 돈이나 잠시간의 힘듦이 아니라, 아깝게 놓친 기회이지 않은가. 나는 눈 딱 감고 한 번 저지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자, 어떻게든 되어라.

들리지 않게 심호흡을 하고는,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척하며, 슬쩍 끌어안았다. 팔에 아주 어색하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내 가슴이 뛰는 소리가 내 귀에 직접 들렸다.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짧지만 아주 명백하게 의식에 남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안겼다. 나는 험프리 보가트와 김동률을 섞어 놓은 목소리를 구상하며, 가능한한 최대한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괜찮아. 힘 내."

라고 나즈막히 말했다.

그렇게 5분간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그녀와 헤어져 다시 논문 보고서의 모양을 잡으려고 연구실로 달려오는 길은 그 어떤 롤러코스터 레일보다 신나는 길이었다. 나는 흥분감으로 가득차 뛰어오면서 "아싸-" "오예!"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뛰어올라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아,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를 사랑한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연구실로 돌아와서 나는 괜히 핫핫하고 호쾌하게 웃으며 연구실 선배에게 아무 쓸떼 없는 농담을 던졌다. 아직도 변함없이 에로 비디오와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내 오랜 친구들을 불러, 무한대의 맥주를 사주고 싶었다.

컴퓨터로 파일을 열자, 논문의 제목은, "중부 아프리카의 국지적 기상 이변에 관한 이론적 원인 연구"였다. 중부 아프리카. 최근 중부 아프리카에서 한 마을만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거나, 몇 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골짜기에만 극심한 가뭄이 드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 원인을 컴퓨터 계산을 통해 밝혀낸 논문이었다.

아, 아프리카라니. 나는 감개 무량했다. 귓가에 지긋지긋한 독일어 대신 스와힐리어나 아프리카 액센트의 영어와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나는 드넓은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상상했다. 혹은 온갖 열대과일과 왁자한 열기로 가득한 시장을 생각했다. 정글을 돌아보며 기이한 야생동물들을 볼 사파리 투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곳이 아니라도, 빅토리아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2000년 전부터 자유의 여신상보다 높은 전망을 제공했던 피라미드가 있는 카이로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런게 다 무슨 상관이랴. 드디어, 독일 연방 공화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도장을 내 여권에 찍어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맥주를 샀다. 내 친구들은 저 짠돌이 녀석이 왠일이냐 싶어 얼씨구나 하고 몰려들어 푸지게 판을 벌렸다. 언젠가 공대 대학원생의 평균 임금이 노숙자의 평균 현금 구걸량과 100원대까지 같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건만, 그날 쓰는 돈은 아깝지가 않았다.

목으로 콸콸 넘어가는 맥주 속에서, 나는 이제 지겨운 쾰쉬 비어가 아니라 진귀한 아프리카의 열대 열매로 만든 과일주의 향기로운 맛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나의 공주인 그녀로 온통 가득찼다.

이제 나는 정말로 과감하게 내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기만 하면 된다. 좀 더러운 놈처럼 보여도 할 수 없다. 그 송강 정철 가문의 가지의 후예인 여학생과 나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최면 같은 대사를 약 60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하지만 이별을 고하고, 사랑을 얻을 그 이율배반적인 순간은 아깝께도 연기될 수 밖에 없었다. 교수님과 연구실 선배들은 내가 편집하고 있는 논문이 매우 급한 것이며, 실제 보고서 문서 형식으로 주고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이제 마감일이 눈앞에 다가 왔기에, 편집이 끝나는 데로 곧장 국제 특송으로 보내야만한다고 했다. 그렇게 동료들은 긴박한 분위기를 한껏 조성했다.

JPEG, PDF, DVI, HWP, DOC, XLS, BMP, TXT, GIF, HTML, OUT 온갖 귀찮은 파일들을 한데 묶어서 그럴듯하게 뽑아내는 것은 내 최고의 특기였지만, 그렇기에 우리 연구실에서 이런 업무는 나에게 의존적이었다. 나는 하루 걸러 하루씩 밤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몸을 다듬고 목소리를 연습하고, 대사를 준비하고 분위기를 잡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격무 속에서 나는 아프리카의 맑은 하늘과 사바나의 바람을 상상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최신 기법을 써서 계산하면, 중부 아프리카와 같은 환경에서 비가 내리는 작용을 예측할 수 있음을 길게 설명하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수식속에서 나는 정글을 적시는 스콜의 문학적인 정취를 애써 상상했다. 이 일만 끝나면, 끝내 주는 여자 친구를 새로 만들고, 내년에는 아프리카에 가자. 나를 안쓰럽게 여긴 선후배들이 시켜주는 배달 피자 정도로 끼니를 때우며 나는 잠에서 깨어 의식있는 순간의 정확히 100%를 연구실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내가 이제 여자를 대하는 솜씨르 거의 잃어버렸다고 해도, "뭔가 잘 풀리고 있으면, 약간 뜸을 들이되 너무 뜸들이면 망한다"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된 기초 중의 기초를 잊어버렸을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전거 타는 방법이나 젓가락질, 한국어와 같이 한 번 익히며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본능적으로 나는 지금이 뜸들임을 멈출 때임을 느꼈다. 그런데 나는 저주스런 공대생의 운명 덕분에 그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점점 위험해져가고 있었다.

초조함에 쫓기며 오늘은 밥도 먹지않고 밤샘을 해서, 반드시 내일 해가 뜨기 전에는 일을 끝내자고 작심을 했다. 일을 끝내고, 바로 전화하고 뛰어 가야지. "이런 말하기 정말 힘들었어. 우리는 좀 뭔가 안맞는것 같아." "이런 말 정말 옛날 부터 하고 싶었서. 나 너 정말 좋아해." 그렇게 하자. 이를 악물고는 또 열심히 수십개의 단축키들을 익숙히 눌러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애써 심상치 않은 느낌을 저버리고 논문에만 집중하려 했다.

"디벨스"

디벨스. 논문 속에서 디벨스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너무나 익숙한 독일의 흑맥주 브랜드를 발견하고 나는 뭔가 이 논문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스며 있음을 느꼈다. 대체 아프리카 중부 지방의 국지적 기상 이변을 이야기하는 논문에 맥주 브랜드가 왜 나타난단 말인가.

기왕에 맥주 브랜드가 나왔으니,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 하다 못해 기네스라는 이름들이라도 등장하길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문서를 뒤적였지만, 크롬바커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올 뿐이었다. 크롬바커라는 말을 발견했을 때의 경악스러운 느낌. 아, 나는 그 단어가 볼드체로 설정되어 있는 줄 알고, 다시 글꼴을 바꾸려고 할 정도였다.

디벨스. 크롬바커. 쿵. 쿵 하고 내 가슴팍을 때리며 불길하게 점차 시나리오가 마지막 대파국으로 치닫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길게 연구 방법과 실험 장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대해 설명하던 보고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지어지고 있었다.

"이상의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몹시 흥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앙 아프리카의 독특한 지질학적 환경 덕분에, 홉과 맥아를 대규모 태양 채광 방식으로 처리하여 맥주를 제조하는 방법이 최근 개발되었습니다.

19세기말 독일 제 2제국이 유일하게 개척한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카메룬에는, 알리안츠 금융 그룹 계통의 자본이 현재까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연고로 하여 5년 전부터, 디벨스(쿵!) 크롬바커(쿵!) 같은 독일 맥주 브랜드들이 초대형 양조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카메룬에는 최근 급격히 태양채광방식 처리의 맥주 양조 공장이 집중되었습니다. 태양채광방식은 재료 물질을 노천에서 에틸 알콜 처리하므로,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넓은 면적에 걸쳐 대규모로 에틸 알콜을 살포하게 됩니다. 이때 알콜에서 떨어져 나온 수산화 작용기는 중앙 아프리카 기후 특유의 미세한 공기중 먼지와 결합하게 됩니다.

이렇게 먼지와 결합한 알콜의 수산화 작용기가 많아지게 되면, 저기압의 영향에 따라 이러한 수산화 작용기가 강우 결정절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알콜의 수산화 작용기는 기습적인 폭우를 내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컴퓨터 계산을 통한 이론적 연구로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주 공장의 알콜 처리에 의한 기상 이변을 저희는 "드렁큰 월드(drunken world)" 현상이라고 이름 짓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중세 한국의 유명한 문학 작품인 "관동별곡"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근덧 가지마오 이 술 한잔 먹어 보오.

북두칠성 기울여 창해 물 부어내어
저 먹고 날 먹여 서 너 잔 받고나니

바람이 솔솔불어 양 어깨를 추켜드니
구만리 먼 하늘에 언뜻하면 날겠구나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눠
억만창생을 다 취케 만든 후에
그제야 고쳐 만나 또 한 잔 하잣고야.'

관동별곡이 수 세기 동안 널리 읽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구절은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상의 내용을 모든 연구비를 지원한 독일 맥주 길드에 헌정하며, 내년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열리는 맥주 과학 연구 발표회에서 최초로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

전위적이었다.

잠시 좀 멍해져 있을 때 거짓말처럼,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 것도 아닌, 문자메세지가 왔다.

"고맙단말하고싶어너덕분에용기내서그사람이랑다시합치게됐어정말고마워"

그리고, 운명은 최후로 나를 조롱했다. 마치 짜맞춘 듯 몇 초 쯤 후에 다시 나의 여자친구에게서 또 문자메세지가 왔다.

"아직도니이름글자로써논것만봐도가슴이두근거려보고시포정말로보고시포"

맥이 탁 풀렸다. 나는 기가차서 그냥 허- 웃었다.

이듬해 여섯번째로 독일, 그리고 하이델베르그에 갔다온 뒤, 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장학금에 지원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 독일로 확 유학을 와 버렸다.

그리하여, 뮌헨 공대에 다니고 있는 지금, 나에게 단 한 가지 소박한 소망이 있다면, 주말에 시간을 좀 내어 두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서는, 오스트리아 국경 너머 잘츠부르그에라도 한 번 가보는 것이다.

-- 2003. KAIS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