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최고의 순간 바로 직후에, 갑자기 모든 것이 확 뒤집어지리라고는, 우리 중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굉장히 잘 했기 때문에 감동에 젖은 나머지, 잠깐 당황했던 것이 첫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막간 만담쇼 정도를 위해 기용되었던 나와 민호가 이 정도의 연주까지 해내리라고는 처음에는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기획했던 박민주에게는, 우리가 첫 등장부분을 훌륭히 소화해 내었을 때, 과장하면 약간의 회한마저 묻어나는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갑자기 밀어닥친 일종의 안도감이 또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먼저 무대에 나온 민주와 난영이는 숨겨둔 솜씨를 백분 발휘하면서 한 끝도 빠지지 않는 의도된 그대로의 것을 제대로 펼쳤다. 그리고 무대에 선 그 두 사람은 자신들에 비하면, 아마추어임에 분명한 나와 민호를 아마 조마조마하게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뒤에 등장한 우리의 공연도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처럼, 분명히 민주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가 1등이다"라고 생각했으리라 장담한다.

객석에는 환호가 가득했고, 먼저 공연을 끝내고 객석에 내려가 앉아 있는 다른 경쟁자들은 - 캐번스를 포함해서 - 그들 스스로 우리가 월등함을 인정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다. 이제 둘 둘씩 펼쳐졌던 우리의 공연은 넷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는 어지러운 중창으로 연결되고, 다시 한 번 휘몰아치는 나와 민호의 신나는 연주,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박민주의 고음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이제 겨우 절반을 보여 준 반응이 이런데, 아마 우리가 공연을 끝내고 나면, 여기 있는 아이들은 감동의 폭포물살에 휩쓸릴 것이다.

무대 한 켠으로 걸어나가서, 다음 부분을 노래할 박민주를 나는 쳐다 보았다. 자신만만함이 한 껏 느껴지는 그녀는 이제, “그 때 본 그 모습, 비할 바 없어”하고 현란한 중창을 이끌어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부터,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환영과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곳을 지나갈 때
내 심장이 쿵쿵
난 당신의 손을 잡고
우리는 밤새 춤을 추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박민주는 완전히 다른 노래의 가사를 노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가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 오페라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녀의 엄청난 실수요, 거대한 착각이었다. 앞서 설명했던 많은 이유들이 복잡히 뒤섞여서, 잠시 딴 생각을 했는지, 그녀는 사중창도, 비바체 부분도, 마지막 콜로라투라도 다 빼먹고 오페라의 마지막을 노래해 버린 것이다.

박민주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준비했고, 항상 우리를 연습시킨 아이였다. 그리고 박민주는 장난스런 솜씨의 건반연주와 우스꽝스런 바이올린을 이 정도로 대단하게 이끈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기 스스로 이제 겨우 절반을 넘어선 오페라를 갑자기 뚝 끊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민호를 곁눈질로 보았다. 민호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난영이를 보았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하얀 가운과 과장된 뿔테 안경을 쓴 난영의 표정은 사색이 되며 질려가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노래는 너무나 길게 이어져서, 잠시 실수로 치부하고 되돌아기에는 전체 공연이 엉망이 될 수준으로 치달아 버렸다.

나는 민주를 보았다. 노래를 하면서 그녀는 아차 하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했다. 그녀는 머리를 싸 쥐고 주저앉을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나도 알고, 호프만과 미라클 박사도 알고 있다. “show must go on”은 만고불변의 정언명령이다.

누구보다 공을 들여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스스로의 실수가 가장 치명적으로 와닿을 것이다. 박민주는 정말 이 공연을 위해 많이 애썼다. 나나 민호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민주에게 미안해서 그녀를 위해 타지마할이나 피라미드라도 건립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박민주가 저지른 일이었다. 민주는 안간힘을 다해서 확 풀려버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가까스로 노래를 계속 해 나가고 있었다.

박민주의 그 잘못 부른 마지막 노래를 끝으로, 갑자기 뚝 잘리는 것처럼 그렇게 어처구니 없게 오페라는 막을 내려 버렸다. 오페라의 원 내용을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가 준비한 부분만으로도 대단하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예선전때부터 내용을 봐오던 음악선생님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리 대본을 받고 또 “누가 봐도 즐겁고 신나게 오페라 공연을 하면서, 결코 고전음악적인 진지함도 견지하겠다”는 야심찬 시놉시스를 읽었던 교감선생님과 다른 심사위원 선생님도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민호의 신나는 개인기 잔치인 셈 아닌가.

경황 없이 무대 인사를 하고 우리 넷은 무대 뒤로 들어왔다. 난영이는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릴 듯 하다가 어딘가로 뛰어 가 버렸다. 민호는 어느 새 무대 뒤에 와서는 사정도 모르고 “선배가 최고예요"라며 박수치는 예진이와 은혜들에게 휩싸여 역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민주는 노래를 제대로 마치기 위해서 울먹이는 목소리를 참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사이로 참는 듯 하지만,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곧 그녀는 참으로 서럽게 울었다.

눈물 때문에 인형 분장은 엉망으로 번져서, 그녀는 삐에로처럼 보였다. 민주는 그냥 계속 울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만 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이후로, 사람이 그렇게 하염없이 울어대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제 난 어떡해. 이렇게 큰 실수를 하고...... 미안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무대에서 서? 이제 누구한테 나한테 믿고 뭘 맡기라고 할까. 이제 어떻게 남들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녀는 한참을 울다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시 또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감정이 격해진 사람의 눈물은 강한 동화력을 갖고 있는 법이어서, 괜히 나도 막 눈물이 나올려고 그랬다.

그 때, 그녀는 열 일곱 살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거다. 그녀는 정말로 소중하게 여겨왔던 자신의 어떤 것이, 아주 예전부터 계속 꿈꿔왔던 자신의 어떤 한 목표가, 한 순간에 벽에 부딛히는 좌절감. 그런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에이 뭘 어때. 그래도 재미있게 잘 했잖아. 그만 울자. 힘빠지겠다.”

그런 말을 하면서 대기실에 그녀와 둘이 남아있는 나는 참 난처했다. 나는 옆에서 별로 먹히지도 않는 위로 대사를 하고, 그녀는 듣지도 않고 울고만 있고. 한참을 그런 상태로 계속 있었다. 한 반 시간쯤이 그렇게 지나간 것 같은데, 그 때쯤 대기실에 1학년 방송부 학생이 고개를 내밀고 이야기 했다.

“’호프만 이야기’팀 은상이랍니다. 시상식 때 나갈 준비 해주세요.”

한 마디 딱 하고는 무전기를 들고 다니는 그 학생은 바쁘게 다시 사라졌다.

은상이라. 오페라 절반을 잘라먹었지만, 워낙에 그 절반의 솜씨가 인상적이었기에 우리는 2등상을 받는 것이었다. “내가 실수만 안했으면 1등인데”하는 생각이 다시 팍 들었던지 민주는 다시 또 톤을 높여 울기 시작했다.

“야, 이제 바로 우리차례다. 나가서 상은 받아야지. 은상이면 상금이 얼마냐. 5만원짜리 상품권 아니냐. 고생한 게 있는데 돈은 챙겨야지. 자, 자 그만 울고. 분위기 잡으면서 상 받아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저 앉아 있는 은주를 일으켰다. 삐에로가 된 그녀의 얼굴은 상당량의 콧물까지 첨가되어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호프만 이야기의 올랑피아가 아니라, 시티 라이트의 버지니아 셰릴이었다.

나는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세면대 앞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는 물감칠이 엉망으로 번진 그녀의 얼굴을 씻겨 주었다.

“차가워도 좀 참어. 학생회장한테 학교에 따뜻한 물 나오게 해달라고 욕 좀 해야지.”

내 손에 닿아도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았다. 그녀는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내가 그 차디찬 물로 분장을 지울 때, 그녀의 눈물은 그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울먹이는 숨소리를 내면서 가슴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바깥에서 우리의 이름이 불렸다. 친구들의 박수소리가 다시 한번 크게 들렸다. 민호와 난영이는 어느새 다시 나타나서 먼저 나와 있었다. 민주와 나도 무대 가운데로 나아갔다.

사정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충분히 1등을 할만한데 아쉽다면서 더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상금과 상장을 받아 들고 우리는 뒤돌아서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민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후배들이 준 꽃다발을 치켜들며 싱긋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높이 들었다.

결국 캐번스가 금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 정신 없던 공연은 끝이 났다. 공연 후에 강당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가자, 우리반의 많은 친구들은 저마다 대단하다고 우리를 추켜 세워 주었다. 사격부 후배들은 뭉터기로 찾아와,

“선배,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배.”

하면서 가슴뭉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들이 진짜 완전 난리치는 것 처럼 환호 했는데 보셨습니까?”
“저는 캐번스 팬들 한 가운데서 응원하느라 맞을 뻔 했습니다.”

가끔 특별활동 시간에 가서 보면, 이 사격부 인간들은, 최악 중에서도 최악, 약체 중에서 약체의 실력을 보여주기만 했다. 그래서 그 연습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 여전히 한심해 보이긴 했지만, 그 날 그 인간들은,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환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여간 참 정겨웠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민주에 대한 소식을 뒤로 하고, 나는 그날 민호와 함께 하교 했다. 우리는 학교를 내려 오면서, 처음에 우리가 이거 시작할 때만해도 은상이면 감지덕지 아니었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절대 민주 앞에서 공연 때 일을 다시 돌이키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상품권 받은 걸로 뭐할까?”
“다이하드 1탄부터 3탄까지 전부 다 사는거 어때?”
“다이하드 2탄은 좀 돈 아깝지 않냐?”
“왜, 빨간탄창 파란탄창 재밌잖아.”
“으음… 줄기차게 영화관에서 한 여섯편 연속으로 개봉영화 싹 다 볼까?”
“야, 이 상품권으로 오락도 살 수 있는거 아니냐.”
“맞어. 우리 오락사자.”
“아싸, 오락.”

그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학교를 내려와서는, 결국 이야기 끝에 그날 받은 상품권으로 야구를 보러 갔다. 야구장에서 우리는 성난 황소처럼 용렬히 응원했지만, 그리고 응원가 트로트도 수천명의 아저씨들과 아주 장렬하게 같이 불렀지만, 우리 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투수 때문에 3대5로 패하고야 말았다. 투수 욕을 하면서 야구장을 나설 때, 민호와 나는, 그래도 음악제가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와 보니, 우리처럼 음악제에 대해 결론을 내는 대신, 예상치 못한 두 가지 사건이 뒷머리를 잡아채었다.

첫번째 사건은 채린이의 분노였다. 그 이유인 즉슨, 채린이가 우리를 위해 투입하고 빌려주었던 많은 도구들을 우리는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채린이가 가져온 각종 다양한 도구들을 우리는 분장실로 들고 들어갔었는데, 어제 공연이 끝나고 경황 없는 통에, 그걸 제대로 챙겨서 갖고 내려 오지 못했던 것이다.

물감이며 붓 몇 개는 뒤늦게 가도 그대로 있었지만, 화장품들과 소형재봉틀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게 합하면 돈으로 해도 한 삼십만원 되느니만큼, 채린이는 깜짝 놀랐던 것이다.

일단 채린이로서는 화가 날 여지가 다분했다. 지들끼리 공연을 잘 끝냈다고 애들이 좋아하는데, 우리들 못지 않게 의상과 소도구에 공을 들였던, 채린이에 대해서는 우리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 받을 때, “의상 준비와 소도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채린 학생에게 이 공을 돌립니다”라는 대사는 못할 망정, 그녀가 빌려준 것들을 우리는 그냥 홀라당 까먹고 내팽개친 것 아닌가. 우리도 정신이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나쁜 놈들이었다.

그런데 채린이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은, 또한 채린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민주의 태도였다. 민주는 그 날 하루 종일 넋나간 사람처럼 그냥 한 숨만 푹푹쉬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채린이는 “책임자”라고 생각한 박민주를 찾아가서 재봉틀을 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민주는,

“몰라. 이제 어제 공연에 대해서는 생각 안하고 싶어.”

라고 얼굴도 보지 않고 이야기 했다나 뭐래나.

아마도 평소에 민주와 약간의 대립관계를 갖고 있는 채린이의 과장이 전혀 섞여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채린이는, 민주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몸둘바를 몰라하면서 얼마나 돈을 갚아주면 되겠냐고 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에게는 이제 더 이상 이 일을 이끌어나가거나 마무리 지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분명 민주에게 채린이가 찾아 왔을 때에도 ‘뭐 이런 일까지 생기나’ 싶은 당혹감이 진을 빠지게 했을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나와 민호가 채린이에게 찾아가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고는 우리가 돈을 모아서 갚아주겠다고 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민주 걔 보기만해도 진짜 뚜겅이 열릴 것 같어.”

라면 손사래를 치는 채린, 그리고 그녀의 넘쳐흐르는 짜증과 분노였다.

두번째 사건은 음악 선생님의 호출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우리 팀 전부를 점심 시간에 불렀다. 불과 어제 아침만 해도 최고의 팀이었던 우리는, 이제 다시 모이니 무진장 어색한 네 사람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잘 모르는 음악 선생님은 상당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학교가 이번 달 말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한 군데 나가는 게 있거든. 거기서 학생들이 공연을 하는 순서가 있어. 원래는 음악제에서 우승한 팀이 공연하기로 의논을 해 놨는데.

캐번스가 우승팀이긴 한데… 사실 고등학생들 록밴드 같은 건, 다른 학교에서도 다 하는 거고, 그렇게 특색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 오페라는 일단 보기에 굉장히 신기하고, 또 참 독특하잖아. 그래서, 캐번스 애들한테 양해를 구해서 텔레비전 출연은…… 너희들이 은상팀이긴 하지만… 너희들이 했으면 하는데 말야.”

음악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 우리들이 “예?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손뼉치며 좋아라 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민주의 표정은 더 어두워 졌고, 우리는 어떤 좀 막막한, 뭔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느낌 같은 것이 들었다.

일종의 업친데 덥친 격이었다. 감독 겸 제작자는 의욕을 잃었고, 장비는 홀랑 다 날려 먹었으며, 기술팀은 우리를 저주하고 있는데, 경쟁사의 반발이 예상되는 다소 불법적인 2차 공연을 준비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일단 우리는 별 긍정도 부정도 없이 교무실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민주가 “그래도 별 수 없이 마무리는 지어야지”하는 생각을 갖고,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하자. 시간이 얼마 남았으니까, 언제까지는 누가 뭘 하고, 언제까지는 누가 뭘 하면, 이 정도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야.”라며 우리를 세워 놓고 정리해 주길 기대했다.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캐번스가 과연 무색해 할만큼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는 그야말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조용히 걸어서 교실의 창가 쪽, 자기 자리로 가서 그냥 앉았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딱히 아무 대책도 없이 3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3일 동안, 참 나는 어색했다. 일단 난영이는 예전부터, 멀리서 볼 때마다, 괜히 잘보이려고 긴장하다가 어색함을 느껴왔고, 거기에 더하기 이제는 학교 복도에서 민주를 만나도 굉장히 어색했다. 두 사람 외에도 우리 팀에, 특히 민주에게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채린이와 마주쳐도 아주 심하게 어색하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학교에서 피해다녀야 할 사람이 세 명씩이나 된다는 것은 심하게 피곤한 일이었다.

보다 못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민호 였다. 사실 그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까웠다.

“우선 우리가 직접 캐번스 애들을 설득을 하자. 그래서 일단 텔레비전 공연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하는 거야. 그리고나서, 텔레비전 공연을 하려면 준비물을 사고 해야 되니까, 제작비를 좀 달라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보는 거지.

그렇게해서 제작비를 타 내면, 그 제작비로 채린이에게 잃어버린 물건값을 갚아주면 되지. 그리고 마지막 공연은 깨끗하게 성공을 해서, 뭔가 이상해진 우리 팀웍도 보강을 하는 거야.”

민호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려는 듯 좀 자신있는 목소리를 꾸며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용기는 커녕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음이, 거의 표현주의적으로 티가 났다.

말은 좋다. 그런데 캐번스가 왜 공연을 양보하며, 또한 학교에서 우리에게 돈은 왜 주며, 그 돈을 채린이에게 준다한들 화를 풀 것이며, 또 그 모든 게 잘 넘어간다고 해도, 과연 이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잘 뭉쳐서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나는 진수와 두성이를 찾아가, 캐번스의 공연권 양보를 종용하고 있었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며, 더 이상 이렇게 뭔가 갑갑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점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였다.

“텔레비전이란게 말이지. 사실 참 위선적인거 아니냐.”

그렇게 말을 꺼낸 나는, 진수와 두성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같이 걸어가면서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논지인 즉슨, 진정으로 멋진 록밴드라면, 클럽, 거리, 음반사 오디션 무대 등등의 언더그라운드에서 커야지, 청소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어릿광대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록의 정신에 위배되며 펑크의 신념과 어긋난다. 이것은 경직된 학교 문화와 자본주의의 선전성, 그리고 사회에 잔존한 파시즘과 인기에 영합하는 저열한 아이돌 물결에 휘말리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저 위대한 레드 제펠린과 AC/DC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시대의 반항아 캐번스 아니던가. 그렇게 무너질 수는 없지 않겠냔 말이다.

나는 참으로 사기에 가까운, 사실상 사기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행히도, 나의 친구 진수는 완전히 거기에 휘말려서,

“텔레비전은 진정으로 록의 영혼을 노래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거대한 기성의 질서에 휩쓸리지 않는닷!”

하면서 아주 영예롭게 불참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두성이는 그와는 좀 다른 각도로 텔레비전 공연이 학교 홍보 행사로 다소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데, 좀 진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두성이는 진심으로 우리 공연을 감동하며 보았기 때문에, 학교를 대표하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한다는, 나로서는 다소 눈물겨운 말로, 우리에게 공연을 양보하겠다고 했다.

내가 진수와 두성이를 포섭하여, 캐번스가 우리 팀에게 공연을 넘기도록 설득하는 동안, 민호는 선생님들 사이를 오가면서, 공연을 위해서 제작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민호는 굉장히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나같이 생사기를 치지 않고도 무난히 의견을 몰아갈 수 있었다.

민호는 음악제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가 지출한 비용 목록을 공개하면서, 이게 의외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 비용 목록이 어디서 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10대때부터 사문서 위조를 했다거나, 분식 회계를 했다고 여기서 밝히고 싶지는 않다. 민호가 들이민 목록과 숫자의 힘은 상당해서, 결국 학교에서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실비를 계산해서 제작비를 주리라고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에도 민주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사실 민주에게 변화는 많았다.

무척 사교적인 편이었던 민주가 난영이 외에는 눈에 띄게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줄인 것 같았다. 민주는 꼬박꼬박 나가던 기획사 연습실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대신 민주는 굉장히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그 누구보다 학교 공부에 열성적으로 변했다. 혹여 민주의 부모님께서 민주가 연예 기획사 다니는 것을 “헛바람 들어서 애 망칠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면, 감개무량할 만큼 극적인 변화였다.

곧 텔레비전 녹화 날짜가 1주일 전으로 다가왔다. 민호는 민주와 난영이에게 이미 캐번스가 공연을 양보했으며, 공연이 끝나면 제작비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토록 우리 사정을 잘 이해해 주고, 시원한 용단을 내려준 캐번스놈들과 음악 선생님은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말은 안했지만, 이제 곧 민주가 다시 일어나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공연 내용의 업그레이드 계획을 들고 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비록 1주일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일사분란한 그녀의 지휘아래 다시 한 번 최고의 결속력을 보여주면, 분명 더 멋진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자신감에 찬 기대도 꽤 했다.

하지만 민주는 우리를 불러 모으지도 않았고, 새로운 계획을 이야기 해 주지도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우리는 음악제가 끝난 이후로, 한 소절 노래, 한 마디 연주도 다시 해 본적이 없었다. 이러다간 공연 자체가 무산되어 버릴 분위기였다.

기다리다 못한 민호가 나서서 다시 아이들을 모았다. 그렇게 네 명이 모이는 것도, 엄청 오랜만의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똑같이 다시 한 번 더 하면, 좀 재미 없어 할 거니까, 뭔가 좀 더 멋있게 보일 새로운 걸 집어 넣어보자. 아이디어 없냐?”

우리는 아이디어 회의를 한답시고 음악실에 모였는데, 그러고 한참을 지나도록 아무런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았다.

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웃으면서 난영이와 농담을 할 뿐이었다. 사실 나는 기대가 무너지는 것이 심해져서, 민주에게 약간 짜증까지 났다.

뭔가 어색하고, 조용하고 나른하지만 왠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세시간에 걸친 모임은, 고작 마지막 장면에서 위에서 꽃가루를 뿌린다는 의견 하나를 내고 끝이 났다. 난영이와 민주는 부모님께서 집에 데려가려고 기다린지 한참이 지났다며 바삐 사라졌다. 아무런 연습 계획도 맞추지 못했는데.

“에라, 뭔가 될대로 돼라.”

더 이상 뭘 해보는 것은 민호의 능력 밖이었다. 이제 민호가 손을 놓았다.

녹화를 하루 앞 둘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단 1초도 연습 한 번 해 보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녹화 하루 전이 되자,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일단 나는 민호와 둘이서, 우리가 맡은 부분이라도 한 번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민호와 나는 점심을 거르고 점심시간 내내 연습을 했다. 다행히 약간 실수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하나도 까먹지도 않았고, 민주가 가르쳐 준 묘수며 비책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긴 했다.

“이게, 이래서 뭐가 잘 되겠냐.”
“도리 없잖어.”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점심 때 유일무이한 연습을 마쳤다. 그 날, 날씨는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 무렵이 되자, 나는 뭔가 마지막으로 성의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저녁 역시 거르고 학교 뒤편 산으로 올라갔다. 지난 봄과 여름, 항상 연습하던 그 산기슭에 다시 올라가니,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산에서 저 아래 시가지에 지는 노을 빛을 보며, 나는 노래를 불러 보았다. 두 소절을 부르고 나니까, 저 멀리서 거기에 대답하는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민호였다.

“나도 연습하러 산에 올라 왔쥐.”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배가 고프면 소리도 잘 안난다고 했던가. 점심과 저녁을 줄줄이 거른 우리 둘은 서로를 만나게 된 것이 기뻐서, 배고픔을 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성의 있게 노래를 불러 봤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일종의 지성이면 감천 효과가 생겼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새로운 소식이 들려 왔다. 민주가 마지막으로 연습을 한 번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민주가 다시 기운을 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래도 학교를 대표하는 공연을 앞두고 최소한 예의는 갖춰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뭐든 좋았다. 우리의 대장이 드디어 돌아와,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밤 9시 반에 음악실로 모이기로 했다. “그래, 될 것은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극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나 싶었고, 마지막에 보인 희망의 빛에 나는 자뭇 위풍당당함까지 느꼈다.

잠깐 시계를 잘못 봐서 10분이 늦은 아홉시 사십분에, 나는 미친 듯이 뛰어서 음악실에 도착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야야 늦어서 미안하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잖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며 등장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 막판 연습이 효율 이천퍼센트 달성하도록 정말로 흥겹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실 문을 와락 열고, 아주 즐거운 얼굴을 하고는 딱 들어섰는데. 참 그 때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날 그 때까지도, 잘 지내던 장난영과 박민주가, 그 두 사람이 얼굴을 붉히고는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싸움이 커지기 전에 말리려고 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민호도 두 사람이 싸운다는데 말리기는커녕 거기다대고 못견디겠다면서 짜증을 벅벅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와서 연습을 시작할 그 찰나에, 싸운 두 사람은 홱 돌아서 음악실을 나가 버렸다.

“이…이게… 뭐냐?”
“아씨. 몰라 몰라. 머리 아프다.”

민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의자를 뒤로 밀었다.

형광등이 켜진 음악실의 창밖은 아주 깜깜했다. 아홉시 사십분. 우리는 좀 허탈해하고 약간은 짜증을 내면서 거기에 대책없이 퍼질러져 앉아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한 10시쯤이 되자, 우리는 한 숨을 푹푹쉬면서,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책상 저쪽 끝을 보거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창 밖을 보면서, 축 늘어져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단 한 번도 연습을 해보지 못하고 내일 무대에 서야 할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맥이 빠져 앉아 있던 끝에, 우리는 마냥 그러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돈 값은 해야지.”
“그래, 돈 값을 해야지.”

민호와 나는 한숨소리와 웃음소리를 섞어서 한 번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음악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우리가 하기로 한 게, 마지막 장면에서 꽃가루 날리는 걸 하기로 했잖어.”
“꽃가루가 떨어질 때, 그 팔랑팔랑 하면서 종이가 돌 때 앞뒤가 색깔이 달라야지 더 화려해 보이거든.”
“앞뒤 색깔이 다른 종이를 사야 되는거네.”
“아니면 단색 종이 두 장을 사서 붙이든지.”
“너무 가벼우면 안될 거야. 그러면 잘 안떨어지고 그냥 깃털처럼 막 흩날리잖어. 우리가 하려는 거는 눈처럼 사르르르 쏟아지는거 아니냐.”
“그렇지.”
“살짝 코팅이 돼 있으면 빤짝빤짝하고 보기 좋은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유일하게 우리가 “의결”을 본 종목인, 꽃가루를 준비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밤에 우리는 학교 아래로 내려와서 문방구들 사이를 뛰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시간이 너무 늦어 가게들이 문이 닫혀 있었다. 우리는 서로 길을 나누어 흩어져서 바쁘게 학교 주변 골목들을 헤집었다.

11시가 가까워 갈 때쯤, 우리는 헉헉대면서 다시 만났다. 결론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팅이 살짝 된, 약간 무게가 나가는, 앞 뒤 색깔이 다른, 알록달록한 종이 수십장이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에는 흔한 색종이 한 뭉치 구할 곳도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뭔가 노력이라도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민호와 나에게, 참 가혹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길가 보도 블럭에 주저 앉았다. 그런데, 그 때, 딱 마지막을 포기하기 직전에, 눈에 전봇대에 붙어 있는 “러시아 미녀 무용수 20명!”이라고 쓰여진 나이트클럽 포스터가 눈에 들어 왔다.

“야, 저거 어떻냐.”

내가 손으로 포스터를 가리키자, 민호의 얼굴 표정이 확 밝아졌다. 민호는 전봇대에 있는 나이트 클럽 포스터를 떼냈다. 야한 색깔과 야한 사진들. 종이 무게도 딱 적당했고, 광택이 있는 종이 재질도 좋았다. 앞쪽에는 붉은색, 푸른색, 살색들이 많이 있었고, 포스터 뒷면은 흰색이었다. 색깔이 다르다. 한 조각에 한 색깔만 들어가도록 잘게 자르면, 딱 우리가 구하던 그 색색깔의 꽃가루가 되는 것이었다.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우리는 일단 눈에 보이는 나이트클럽 포스터들을 다 떼서 모았다. 다섯장이었다.

“한 서른장이나 마흔장쯤 더 있어야 겠는데.”

우리는 골목 골목과 길가 여기저기를 뒤지며 포스터를 떼서 모았다. 벌써 2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학교 주변 주택가며 골목길들을, 우리는 그 가을날, 11시가 넘는 밤시간에, 야한 포스터들을 떼면서 누비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팔도미녀 항시대기”라고 쓰인 좀 심하게 야한 포스터를 떼고 있을 때는,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굉장히 안좋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비슷한 포스터 수십개를 한 쪽에 들고, 아주 즐거워하며, 탐욕스럽게 “팔도미녀 항시대기”포스터를 뜯고 있었으니, 아마 무슨 변태 수집가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떻게 잘만하면, 불법 포스터 제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으로 이미지 개선을 할 수 있을 듯도 했지만, 그런저런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 아주머니 말고도 그 날 밤에 몇몇 행인들이 우리를 굉장히 문제스런 눈빛으로 훑어보고는 지나갔다.

한 서른 장 가까이 포스터를 모으고 나니까, 점심 저녁을 굶고, 오늘 하루 종일 수업듣고 공부하랴, 노래 연습하랴 뛰어다니랴 무척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야 배고프지 않냐?”
“뭐 좀 먹자.”

우리는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돈을 모으니, 내가 70원이 있었고, 민호가 90원이 있었다. 합이 160원이었다. 아무것도 사먹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사먹을 수 없긴.”

우리는 160원으로 라면을 한 봉지 샀다. 그리고 생라면을 부숴서 스프를 뿌린 다음에 흔들었다. 짭짤하고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정말 맛있을 것 같았다.

“진짜 맛있다. 진짜.”
“돈 조금만 더 있으면 너구리 샀는데. 이거 너구리로 해 먹으면 특급 맛있거덩.”
“이것도 맛만 좋구만.”

우리는 구멍가게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둘이서 생라면 부순 걸 나눠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런 우리 앞에 일단의 동네 꼬마들이 둘러치며 나타났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굉장히 기뻐하면서 동네의 야한 포스터들을 모으고 다니자, 무척 신기하게 여겨서 호기심에 우리를 한 한 시간전부터 따라다니던 아이들이었다. 한 초등학교 2학년쯤 되는 아이가 두목인듯 보였고, 미취학 아동들인 듯한 아이들 4명이 더 딸려 있었다. 이 아이들은 포스터 스무장을 끼고 생라면을 나눠 먹는 우리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우리는 잠시 정신을 차리니 좀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웃기기도 하여, 아이들에게 물었다.

“저기요…. 그거 우리도 쫌 주시면 안돼요?”

초등학교 2학년이 굉장히 부끄러워 하면서, 우리가 먹는 생라면을 나눠 달라고 했다.

“이걸 뭘 나눠 달라고 하냐.”

민호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날 밤에 우리는 아이들과 다함께 생라면 한봉지를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다 나눠 먹고는, 다시 포스터를 떼러 뛰어 다녔다.

다음날, 저녁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드디어 바닷가 근처에 있는 방송국 공개홀로 향했다. 그날은 날씨가 좀 흐려서 아침에 살짝 비가 왔고, 종일 내내 잔뜩 흐려 있었다. 우리는 어제 좀 무리를 했기 때문인지 아주 피곤했다. 더군다나 방송국에서는 이것저것 지시하고 주의를 주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서, 더 귀찮고 뭔가 힘들었다.

마침내 모든 장비들을 다 준비해서 우리는 무대 뒤로 들어갔다. 무대 뒤로 들어가면서, 나는 스쳐지나가는 말로 민호에게.

“에이, 짜증나는데 공연 도중에 확 난동이나 부릴까.”
“그러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돈 다 준다.”

라고 했다.

대기실의 시설은 학교 강당 뒤쪽보다 좋기는 했지만, 그날은 날씨가 안 좋았기 때문에, 뭔가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민주와 난영이는 대기실 들어오기 직전에 잠깐 보긴 했다만, 그 이후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주인공 학생들이 누구죠?”

방송국의 엔지니어가 나타났다. 민주가 주인공이었지만, 민주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시죠?”
“주인공 마이크를 한 번 테스트 해보려고 하는데요.”
“일단 제가 한 번 볼께요.”

민호가 마이크를 받아 들고 엔지니어와 사라 졌다.

공연 시작 한 1분전까지, 그렇게 무대 뒤에는 나 혼자만 있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그래서 다시 한 번 그저 아무 생각을 안하려고 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될 코드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짚어 보았다.

그리고, 1분을 남기고, 민주와 난영이와 민호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모두 의상을 다 갖춰입고 분장을 다 마친 후였다. 누가 분장을 해 주었는지, 민주의 무표정한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비로운 인형처럼 보였다.

곧 사회를 보는 코메디언의 소개 멘트가 들렸다. 우리 차례였다. 민주와 난영이가 무대로 나아갔다.

우리가 다같이 연습을 한 것이, 음악제 이후로 한 번도 없었건만, 민주와 난영이의 솜씨는 여전했다. 특히 민주의 노래는 다시 들으니까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 때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29분이었다. 그런데 스튜디오의 환한 조명은 꼭 한낮처럼 밝았다.

민주는 그 조명 속에서 노래했고, 그 노래와 연기를 조금도 헤치지 않으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자동인형 올랑피아는 그 큰 눈을 깜빡거리면서 허공을 응시했고, 기교적인 멜로디를 멋지게 만들어 보내자, 객석에서는 감탄이 흘러 나왔다. 무대 뒤의 나도 무의식적으로 객석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나와 민호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주먹을 한 번 부딪히고는 달리듯 무대 중앙으로 나아갔다.

“하나”
“둘”
“셋”
“넷”

우리는 말을 빠르게 주고 받으며 능숙하게 신나는 연주를 이어나갔다. 연주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음악제 공연에서 이 부분을 즐겁게 보았던 관객들은 이번에는 익숙하게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춰 주었다.

내 피아노는 정신 없이 달려 나갔다. 그 절정부분에서 멜로디는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미끄러지고, 거기에 기교적인 민호의 바이올린이 덧대어질 것이다. 연습 부족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으며, 우리는 아주 잘 맞춰 나갔다. 그런데, 나는 난데없이 그 한 가운데에서 긴 C코드를 하나 쿵하고 찍으며, 노래를 멈춰 세웠다.

악보에는 절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무대 앞쪽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볼, 민주와 민호, 난영의 모습들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특히 무대 뒤로 들어오기 직전에 헛말로 내기를 했던 민호는 “저 놈이 내 돈 털어먹으려는 욕심에 맛이 갔나?” 하는 기가 찬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잠시 두근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좀 차분해 진 듯 싶자, 나는 애초에 내가 할 줄 알았던 유일한 연주였던 록큰롤 코드를 짚어 나갔다.

나는 블루스 리듬으로 좀 천천히 소리를 끌어나가면서,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지어내서 노래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내 실력 밖의 일이었으니까. 그 때, 나는, 처음 민주와 난영이가 우리 앞에 걸어와서 제안을 하던, 그 엄청 졸리던 늦봄 오후가 생각이 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다정하고 우아했던 시절을 사랑했었으며,
그리고 또한, 당신의 아름다움을, 진실이었든 거짓이었든, 사랑했었던가를.

그러나 다만, 한 사람이, 그대 순례자의 영혼을 사랑했고,
또한 변해가는 표정의 그 슬픔들을 사랑했던 것을.”

그것은 문학 선생님이 내일 모레 치는 중간고사에 나온다고 했던 세 편의 시 중에 “당신이 나이가 들거든” 이었다. 뭘 하는지 알아챈 민호는 내 대사를 받아 아주 유연하게 노래를 만들어 이어 붙였다.

“그리고, 달빛 비치는 창살가에 앉아,
혼잣말해주오. 좀 슬픈 목소리로. 어떻게 사랑이 날아가버렸고,
또한 저 높은 산 위로 지쳐 올라가서는,
결국은 별들의 무리 한 가운데에 그 얼굴을 감추었던가하는 것을.”

민호의 서정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끝나자, 아마 전교생은 공연 자체의 재미에 대한 생각과, 노래와, 시와, 달랑 이틀 남은 중간고사 생각이 엉망으로 얽혀서 굉장히 기묘했을 것이 틀림 없다. 나는 그 대사들을 읊으면서, 잠깐 민주를 쳐다 보았다. 민주는, 그대로 무표정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올랑피아 인형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 민호와 나는 동시에 순식간에 멜로디를 반전시켜서, 다시 애초의 신나고 빠른 원래 멜로디로 되돌아 갔다. 다시 능숙하게 우리 연주는 이어졌고, 역시 모두가 환호해 마지 않는 훌륭하기 그지 없는 민호의 바이올린 연주로 우리 부분은 마감되었다.

곧 매끄럽게 올랑피아와 미라클 박사의 중창이 더 해졌고, 우리도 노래를 계속했다. 이렇게 네 명이 소리를 맞춰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서, 우리도 우리의 소리가 신기하고 반가웠고, 또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올랑피아는 당당하고도 자신감있게 연주를 이끌어 나갔다. 무대 위에서, 닥터 미라클과 호프만과 에이저는 그 힘있는 올랑피아의 지휘를 완전히 믿고 따라갔다. 올랑피아는 눈부신 조명속에서도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저 멀리 허공을 자연스럽게 보고 있었다. 올랑피아는 정말로 마음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동 인형의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노래를 하면 죽는 운명을 가진 슬픔과 두려움을 똑똑히 보여 주었다. 노래를 하며 움직일 때, 한 가닥씩 흐트러져나간 그녀의 머리칼은, 뒤에서 보면 밝디 밝은 빛을 산란하면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본래 밤하늘처럼 까만 색이었던 그 머리칼은 어슴프레한 붉은 색깔이었다. 올랑피아의 하얀 뺨에 살짝 땀이 맺힌 것이 보였다.

이 날 공연에서, 우리 모두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특히 민주는 정말로 압권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공연은 기가 막힌 박민주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고음의 아리아와, 어젯밤 학교 근처 동네 꼬마 다섯명과 생라면을 먹으며 만들어낸, 아름답게 흩날리는 저 멋진 꽃가루가 하염없이 쏟아지면서 마무리 되었다.

공연이 끝나자, 텔레비전에 나왔던 많은 학생들에게 꽃다발을 주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축하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무대 위에 었던 연예인들에게 싸인을 받으려는 수많은 학생들로 스튜디오 전체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으나, 나와 민호는 누구보다 빨리 방송국에서 빠져 나왔다.

그 긴긴 하루를 보낸 우리 둘은 홀가분한 심정으로 방송국을 나섰다. 나와보니 요란한 방속국안과 달리, 거리는 그냥 여느 날과 똑같은 바닷가의 시내였다. 아침에 비가 온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길가의 가게들은 네온사인을 켜둔, 여느 많은 날들 같은 시원한 가을밤이었다.

“내가 가진 돈 다 준다고 했으니까. 뭘 사긴 사야지.”

민호는 주머니의 돈을 톡톡털어서, 순대, 떡볶이와 음료수를 샀다. 민호와 나는 그 길로 주욱 걸어나가서 방송국 근처 백사장에 앉았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밤바다와 그 위에 뜬 달을 보면서 순대를 먹었다.

다음날, 약속대로 학교에서는 제작비를 지급했다. 음악선생님은 잘했다고 아주 기분 좋아 하시면서, 제작비에다가 “너희들 회식비로 쓰라고 한 십만원 더 얹었다”며 봉투를 주셨다.

나중에 퀴즈 순서에 나갔던 아이들이나, 무대 관리에 자원봉사로 동원되었던 아이들은 그런저런 회식비를 타서 푸지게 회식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돈을 고스란히 채린이에게 줬다. 그래봤자, 채린이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다 사기에는 부족할 금액이었으니.

다만 우리는 “한 번 만져 보지도 못하고” 돈을 넘기면 안타까우니까, 돈을 꺼내서 다같이 돌려서 한 번씩 만져 보기는 하고 (이건 내 아이디어 였다.) 채린이에게 정말로 미안한 마음으로 제작비를 넘겼다.

그렇게 공연은 일단락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이 넉 달 정도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의외로 내 생활에 그렇게 큰 변화를 갖고 오지는 않았다. 변화가 한 가지 있다면, 공연 때 뭔가 느낌을 받아서 새로 사격부에 들어온 후배 하나가 생겼고, 그 해 겨울부터 나는 그 후배와 사귀게 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민주는 그로부터도 몇 달이 지난 후에, 나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 왔다. 편지 내용은 뭐, 생략하겠다.


3.

불과 얼마전의 일처럼 생각되고, 그 날 이후로 내가 더 많이 자라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새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그 해로부터, 9년이 지났다.

민호와는 여전히 가끔 만나서 헛소리를 하면서 순대에 소주를 기울이고 있다. 난영이는 작년에 결혼을 했고, 나는 무척 아쉬운 마음으로 결혼식에서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아, 참,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공대에 갔고, 변호사도 고위 공무원도 아닌, 방탄 소재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민주는 법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졸업식날 사진을 같이 찍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몇 번 그녀와 연락을 해보려고 시도 해 봤는데, 이상하게도 졸업 후 지금까지 줄곧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참 어려웠다. 그러던 끝에, 우연히 채린이를 통해 연락이 닿아서,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내일 저녁 여섯시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곳에서는 굉장히 멀리 떨어진 도시의 한 이태리 식당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다.

나는 한 10분쯤 먼저 나가 있을 작정이다. 아마 새로 나온 과학잡지를 뒤적거리며 앉아 기다릴 것이다. 시계를 보고 여섯시 정각이 되면, 나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거기 서 있는 모습을 바라 볼 것이다.

-- 2005년 3월 성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