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장이 이구일의 연구를 훔친 "낙하산 특허"는 분명히 치약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구일이 연구한 아미노카프로산은 불소화나트륨을 섞는 데 쓰이는 촉매이긴 했다. 불소화나트륨은 이를 깨끗하게 하는 성분이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미노카프로산을 넣어서 치약에 불소화나트륨을 잔뜩 집어 넣으면 더 좋은 치약이 만들어져야 했다.

하지만, 42.6도 이상의 불소화 나트륨을 집어 넣어 보았자 더 이상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시중의 치약에는 40도 정도의 불소화나트륨이 들어가 있었으므로, 굳이 비싼 아미노카프로산으로 불소화나트륨을 치약에 더 때려 넣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후계자 경쟁에서 밀리고 있던 사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낙하산 특허"를 써서, 아미노카프로산으로 90도의 불소화나트륨을 넣은 치약을 개발해 내어 놓았다. 그런데, 기적적이게도, 학계의 정설을 완전히 뒤엎고 90도짜리 불소화나트륨 치약은 훨씬 더 좋은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치약의 성능에 감탄했고, 비싼 돈을 내고 우리 회사의 제품을 샀다. 연구원들이며 경쟁사는 경악할 뿐이었다.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치솟았고, 모두가 비웃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사장은 드디어 당당한 그룹의 후계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위대한 대학자는 아닐지라도 성실한 학생이었던 이구일은, 얼마후 그 구석진 대학원 연구실에서 치명적인 사실을 알아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알아낸 바로 그 사실을, 나는 혜옥 선배네 팀의 프로그램을 통해, 오늘에야 알게 된 것이다.

불소화나트륨을 집어 넣기 위해 치약에 촉매로 첨가되었던 아미노카프로산은, 라이세르직산 중에틸아미드와 비슷한 물질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낙하산 특허"를 위해 이구일과 사장이 만든 물질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였다. 우리회사에서 치약에 넣고 있는 것은 LSD와 비슷한 환각제였던 것이다.

즉, 사람들은 정말로 이가 하얗게 되어서 우리 치약이 좋다고 생각한게 아니었다. 우리 회사 치약으로 이를 닦고 나면, 무심코 아미노카프로산을 먹게 되고, 그러면 약한 환각 상태에 빠져서 그냥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래서 괜히 더 이가 하얗게 보이고, 거울 속의 자신이 더 돋보이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사람들은 우리 치약이 이가 더 잘 닦인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었다. 이구일의 계산으로는, 이 치약에 포함된 정도의 아미노카프로산이 장기간 쌓이면, 단지 이를 닦는 것 만으로 2천명 중에 한 명꼴로는 중독이나 심각하나 발작 증세를 보일 수 있었다.

이구일은 먼저 사장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사장 자리에 오른 그는 "낙하산 특허"가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바뀌는 것을 바랄 턱이 없었다. 더군다나 환각 작용이 나타나긴 했지만, 아미노카프로산은 법에 걸릴 것이 없는 생소한 물질이었고, 수십년이 흐른 뒤에 그 부작용이 발견 된다고 해도, 그 때 가서는 자기 지위가 흔들릴 위험도 없었다. 불법도 아닌데, 그가 이 거대한 기업의 가장 높은 자리를 굳이 희생해 가며 포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장은 이구일에게 돈을 좀 쥐어주고, 한매봉 교수에게 말해, 그를 당장 졸업시키도록 했다. 이구일은 얼마 후, 사장에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더 이상 아미노카프로산을 넣은 치약을 제조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장은 취임한 첫 해 매출을 주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이구일의 말을 무시했다.

결국 이구일은 식약청에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식약청에서는 식품재료로 분류되지 않는 미량 첨가물은 환경부 담당이라는 답을 보내 왔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구일은 지금의 서울 시장이 장관으로 있던 환경부에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었다.

환경부의 회신은 기가 막힌 것이었다.

"귀하의 자료에는 쥐와 토끼에 대한 동물 실험 결과의 인용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인체에 영향을 직접 증빙할 자료가 없으므로, 민원은 기각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쥐와 토끼에게 분명히 해롭지만, 사람에 대한 결과는 없으니까 환각제로 판정할 수 없다고? "인체에 유해함이 실험으로서 증명된" 이라는 조항을 그딴식으로 해석한단 말인가? 그럼 시장을 야구 배트로 두들겨 팼을 때 어떻게 되는지 실험 결과가 없으니, 시장을 방망이로 다듬이질 해도 된단 말인가?

이구일 박사는 기가 막혔지만, 이미 그는 사장으로부터 별별 해괴한 명예훼손죄는 불공정경쟁행위죄등등을 덮어쓰고, 허구헌날 재판장이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취직할 구멍은 모두 막혔고, 법원에 시달리는 것 아니면, 멍하니 집에 누워 있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온갖 핑계로 만들어낸 소송은 끝없이 이어져서, 대기업을 상대로한 그 모든 소송들을 일일이 다 이긴다고 해도, 법원에서 불려가 있는 시간때문에 몇 년 동안 정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었다.

오직 한 가지 희망은, 환경부에서 아미노카프로산을 환각제로 판정하는 것 뿐이었다. 결국 이구일은 무서운 짓을 하기로 했다. 그는 밤마다 자신의 옛날 대학원 실험실에 나가 치약에서 아미노카프로산을 추출해 자신의 몸에 주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들을 조사하여 표로 만들어 진정서에 첨부해서 환경부에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구일은 계속해서 자기 몸에 치약에서 추출한 환각성분을 주입해 나갔고, 그는 점차 심각한 중독증세에 빠져 갔다. 그렇지만, 환경부에서는 계속해서 "이 정도로는 충분히 치명적으로 유해한 물질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판정만 왔다. 이구일은 오기가 발동하고, 또한 어느 정도는 환각제의 약기운이 돌아서,

"오냐, 그럼 내가 이러다 죽으면 그때는 내말을 듣겠지."

라고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나날이 조금씩 아미노카프로산을 더 투여해 가면서 계속 진정서를 보냈다.

환경부 장관인 시장이, 사장의 부탁이나 지시를 받고 일부러 그 진정서를 거절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괜히 귀찮은 일 벌이기 싫어한 공무원들이 그냥 자기가 다른 부서로 자리 옮길 때 까지 일 안터지게 하려고, 무작정 며칠만 더 며칠만 더 하면서, 계속 이구일의 진정서를 돌려 보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이구일은 수십통의 기각 편지를 받으면서, 계속 환각제 주사를 자기 몸에 찔러댔고, 그러던 중 결국 다음과 같은 회신을 받았다.

"귀하의 실험에 따른, 아미노카프로산의 환각 효과는, 아미노카프로산 자체가 환각 효과가 있는지 혹은 그와는 별도로 귀하 스스로가 다른 원인에 의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본 기관은 귀하의 진정서를 수리할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당신이 원래 미쳐서 미친 것인지, 아미노카프로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구일은 아마 그 때 가장 큰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온 몸을 망쳐가며 한 정신 나간 짓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이었다. 이구일은 한 며칠 소리지르고 술 먹고 행패부리고 헛짓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억울해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을 갖고는 그나마 뭐라도 해보려고 9급 공무원 시험을 공부해 보려고 도시락을 싸갖고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부터, 도서관 사람들은 이구일을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정신병자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쯤부터, 일반 소비자들 중에서 아미노카프로산 치약에 대한 중독자들과 발작현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닦고 하얀 이를 보며 기뻐하던 이들은, 점차 그 이를 닦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우리 회사 치약 매니아들이 되었다. 그들은 인터넷 모임을 만들었고, 혜옥 선배는 그 모임의 회원 중 하나였다. 그들에게 점차 이를 닦는 것은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쾌감이었고, 나날이 갈 수록, 아미노카프로산이 부족해지면 공포감과 정신 발작에 시달리는 비율이 높아 졌다. 사건 이후 귀신에 시달리는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내가 혜옥 선배를 만나서 "신들의 황혼"을 보았던 그날. 혜옥 선배는 인터넷 모임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과 나와 함께 롯데 호텔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만날 사람은 치약 매니아들 중에서 가장 고수로 이름이 높았던 바로 그, 이구일이었던 것이다.

그 때 이미, 이구일의 뇌는 구둣발에 밟힌 맛동산 과자 부스러기 같이 형편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발작을 일으켜 환각 속에서 외계인 공주의 레이저 총을 훔치고, 한 손에는 도시락 폭탄을 든 채, 지옥의 원흉으로 보였을 시장이 있는 극장 앞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이구일은 죽었고, 신문에서 오랫만에 이구일이라는 이름을 본 사장은, 이제는 내가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나를 마이애미로 급히 보내 잠시 일에서 떼어 놓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던 정신나간 테러범이, 사실은 얼마나 외롭게 버텨 왔는지 알게 되었다.

의식을 잃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정신이 남아있는지 불분명한 상태로 혜옥 선배는 그냥 가끔 헛소리를 하기만 했다.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지, 가끔 재채기를 하며 치약 거품을 토해내면서 내 이름을 중얼 거리기도 했다. 잇몸에서는 끝없이 피가 흘렀다.

나는 피곤함과 당황스러움이 겹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눈 앞에 검은 머리칼이 하나 내려 온 것이 보였다.

그것은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쑤욱 내려온 귀신이었다. 눈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지만, 입꼬리는 새빨갛게 웃고 있었다. 그 드러낸 하얀 이빨은 하나하나 마다 뾰족한 끝을 보였다. 톱니 같은 웃음이었다. 나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뒷덜미를 잡는 느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정신이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기분 나쁜 긁는 소리 같은 목소리가 낄낄거리며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저런 표정이 어떻게 나오냐면 말이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다음에 뒤통수를 쳐서 죽여. 그러면, 피가 머리로 흘러서 빠져 나오거든. 그러면 얼굴에는 핏기가 빠져서 하얗게 되고, 입술에만 피가 차서 빨갛게 되지.

그리고, 거꾸로 매달아 놓으니까, 다물고 입던 입이 점점 벌어지고 입 양쪽이 천천히 당겨져서 기막힌 웃는 표정이 나온단 말이야. 재밌지 않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웃는 사진은 거꾸로 매달아서 피뽑으면서 찍으면 되는 거야.

너도 저렇게 죽으면, 볼만할 거야. 피가 반대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경찰이 조사했을 때, 언제 죽었는지 알아내기도 한참 더 어려워 진다고."

머리털이 쭈뼛 서게 하는 그 목소리는, 아마 내 입을 막으려고 사장이 고용한 폭력배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이 놈이 나를 죽이고 붙잡힌다고 해도, 돈만 건네 받았을 뿐 사장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니, 사장은 아무 일 없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치약은 끝 없이 팔려 나갈 것이다.

나는 얼굴에 씰룩씰룩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 느꼈다. 내가 누구의 명예를 걸고, 무엇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지 알게 되었건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귀신의 얼굴이 덮쳐 왔다.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득히 먼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려 왔다.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내 앞에는 천사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 빌어먹을 내가 이렇게 죽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일요일마다 교회나 좀 더 열심히 다닐걸.

"정신 들어?"

천사는 할인 매장 직원 유니폼을 입고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에...음음...."

나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아직 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발음이 잘 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마 발작 때문에 내가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 오자, 병원에서는 내 전화기에서 가장 전화가 많이 오고 간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장 근무 하다 말고 정신 없이 뛰어 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울먹이는 소리가 치밀어서 말을 잘 하지 못하고는 한 마디 한 마디 길게 끊어 말했다.

"죽은 줄 알았잖어...... 야. 안그래도 어제 누가 40대 과로사 사망율이 높다고 해서....."

그녀의 얼굴에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왜 쓸데 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녀의 얼굴에 있는 여드름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방향을 옆으로 살짝 꺾어지게 하는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내가 40대냐?"
"너 늙어보이잖어."
"늙은게 아니라 중후한 품격과 노련한 안정감이 느껴지는 게지."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피식 웃었다.

"유머 감각 그냥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려라."

라디오에서는 제니퍼 위즈너가 어느 학교의 기말고사 어쩌고 하는 사연을 읽어주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생각나는게 있는지, 일어서서 플라스틱 통을 하나 꺼내 왔다.

"너, 오늘도 야근하는 거 같길래, 내가 이거 싸갖고 놀래켜 줄려고 너네 연구소로 가고 있었는데."

안에 든 것은 수박이었다.

그녀는 눈물 때문에 약간 얼굴이 더러워 보인다는 극히 사소한 특기사항이 있긴 했으나, 그녀는 특유의 보조개가 지는 얼굴로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가만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내일은 무조건 칼퇴근해서 그녀와 같이, 어디 야간 개장하는 수영장에라도 가겠다고 진짜 굳게 결심했다.


-- 2005년 7월, 선유도 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