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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전 10시 10분경. 도서관 앞에서 바짝 긴장된 마음으로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그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분홍색 블라우스와 짙은 색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것인 작은 하트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한다는 말이, "귀뚫으면 아프지 않냐?" 였다. 많이 초조해 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단순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갑자기 피자먹고 싶지않냐." "피자 부페갈까?" "피자부페. 피자부페." "아싸, 먹으러 나가자! 와! 와!" 하면서 친구들과 길을 나서는 차림새나 분위기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좋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거울을 보고 잠깐이라도 고민을 한 것이었고, 거기서 오늘 하루에 대해 약간 기대도 하고 있다는 뜻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백화점 구경을 했다. 그녀는 운동할 때 입을 운동복을 사겠다고 했다. 그녀가 고른 최종 2안은, 몸의 선이 강조된 노랑색과 시골에서 김맬때 입는 옷 같이 생긴 흰색이었다. "어떤 게 더 마음에 들어?" "노랑색." 나의 묘사에서 드러나듯, 내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것은 노랑색이었다. 나는 누가 옷을 고를 때 어떤 게 더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과감하게 단정적으로 답한다는 결의를 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긴긴 고민끝에 말해봐야, 사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럴바에, 흔들리는 결정자의 마음에, 용기나 반발심, 둘 중에 하나는 북돋아 줄 단정적인 말투가 더 의미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그녀의 갈등은 한쪽으로 몰아지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그 모습. 그 고르고 또 고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답답한 마음에 잠시나마 자전거 타기의 긴장감을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그녀는, "아무거나 사면, 돈 아깝다." 며, 둘 중에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배고프다며 밥 먹으러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백화점에 식당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그녀는 계란의 익은 정도를 약간 의식하는 듯 하기는 했으나, 별 불만을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전망이 좋은 식당이었다. 나는 창밖에 펼쳐진 시내의 집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자전거 생각에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리하며, 자기도 창 밖을 한 번 보았다. 오후에 우리가 본 영화는, 내용이 난리도 아닌 CG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그녀는 깔깔 거리며 웃었고, 나도 즐겁게 보긴 했다. 그러나 어떠한 의미도 갖고 있지 않은 채 그저 정신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를 펼치는 이 영화는 참으로 무의미의 바닥을 치는 것이었다. 영화속에서 펼쳐지는 몇몇 유머들은 내 영혼의 심연을 뒤흔들 정도로 실없었다. 이건 분명히 감동적인 것도 아니고, 교훈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러면서도 재미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에 대한 평을 나누며 극장을 걸어나오는 그 시간에, 뭐라고 할 말이 참 없었다. "정말 연습을 많이 하면, 발로 손뼉쳐도 손뼉치는 소리가 날까?" "발로 치면, 발뼉이라고 해야지." 등등과 같은, 영화에 나온 무념무상의 유머를 인용해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학교에서는 오늘 저녁 자전거 타기를 위해, 결의를 다진 팀이 이미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재찬이는 사람들과 연락을 위한 헤드셋을 나눠 주었고, 천체망원경을 불빛이 잘 보일 도서관 건물 옥상에 설치했다. 나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않은채, 완벽히 조종을 하기 위해 헤드셋을 지급받지 않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전화와 연결된 헤드셋을 들고 항상 서로 대화하면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종욱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내가 지나갈 길 주변을 둘러 보면서, 눈에 안 뜨이게 숨어서 나를 따라갈 길을 정하고 있었다. 진수 선배는 완성된 무선 중계 시스템을 들고 식당 주변을 왔다갔다하면 지붕위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았다. 정일환 박사는 내 자전거에 달라붙어 마지막까지 연결 부분과 기계작동을 점검했다. 휴스턴 컴퓨터 앞에 앉은 박명아 교수님도 종욱이 짠 네트워크 모듈과, 정일환 박사가 짠 원격 조종 모듈, 그리고 휴스턴 컴퓨터의 인공지능 신경망 프로그램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며 돌아가는지 수십번도 더 검토하고 있었다. "식당입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헤드셋에다 대고 진수 선배가 말했다. 박명아 교수님이 가장 먼저 답했다. "휴스턴에서 듣고 있습니다. 문제 말씀하세요." "식당에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자전거가 들어올 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 때 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볼 거 같은데요." "함부로 안테나를 뽑을 수 없겠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굉장히 항의가 심할 거 같습니다." 돌아다니고 있던 재찬과 종욱까지 걸음을 늦추며 고민에 빠졌다. 답을 내놓은 것은 정박사님이었다. "멜라니온에서 말합니다. 그러면, 지붕위에서 보고 있다가, 자전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때만 잠깐 안테나를 바꿔 연결하면 어떻겠습니까? 한 3,4분 정도만요. 그러면서 노트북에 저장된 다른 동영상을 식당 텔레비전에 보내주면, 그렇게 크게 항의 받을거 같지는 않은데요." "구급 입니다. 혹시 정확히 못볼수도 있으니까, 제가 따라가다가 무선기지국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연락하겠습니다. 제 연락 받고 안테나 연결하시면 될겁니다." "그러면 되겠네요." "식당, 알아 들으셨습니까?" "봉수봉인." 알아 들었다는 말이었다. 다시 장소는 학교에서 십여킬로미터 떨어진 시내. 나와 그녀는 영화가 끝나고 백화점에서 좀 걸어가면 있는 옛날 동양척식 주식회사 건물에 갔다. 1920년대 후반에 지어진 이 고생창연한 건물은 지금은 작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녀도 나도 미술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풍경화를 보면서, 그녀는 중학교때 잠깐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꽤 재미있었고, 나는 "더 록" 영화에서 본 내용들이 생각나서 갑자기 흥에 겨워 질문을 했다. 덕분에 미술관의 다른 그림들도 이야기 할 거리들이 계속 생겼다. 저녁은 샤브샤브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식당에 앉았을 때쯤 해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재찬이 보낸 것이었다. 학교에 있는 네 군데의 팀. 즉, 휴스턴, 구급, 식당, 망원경이 모두 준비완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작은 전화기 화면에 띄어쓰기 없이 다닥다닥가득 쓴 메세지의 내용에 따르면, 자전거의 상태도 문제 없고,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잘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중압감을 느꼈다. 그걸 떨쳐버리려고,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말을 좀 많이했다. 그러다 보니, 어릴때부터 갖고 있던 컴플렉스라든가, 내가 충격먹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사건같이 별로 말 할 필요 없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리저리 너무 풀어 놓고 있었다. "휴스턴 들으십시오. 지금 일정 마치고, 학교쪽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내가 보낸 문자 메세지를 받고 재찬이 말했다. 휴스턴 컴퓨터 앞에는 정박사님과 박교수님이 있었다. "좋습니다. 휴스턴에서 말합니다. 전체 마지막 점검한번 해 보겠습니다. 프리어리티 높은쪽에서부터 점검합니다." 박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정박사님이 체크표를 들고, 헤드셋에 들려오는 보고를 듣는다. 그러면서 표에 각 팀의 상황을 기록해나간다. "응급, 이상없습니다. 현재 출발거리 0미터, 도착거리 854미터입니다. 주행도로와 8미터 떨어진 곳에서 정상대기 중입니다." "멜라니온, 전원 넣고 부팅 끝냈습니다. 무선 신호 정상으로 잡힙니다. 네트워크 속도 5메가BPS 전부 다 나옵니다." "휴스턴, 시스템 온라인입니다. 메모리 문제 없습니다." "식당, 준비 완료 입니다. 노트북 부팅했고, 현재 지붕에 올라온 채로 대기중입니다. 높아서 약간 무섭긴 합니다." "망원경, 잘 보입니다. 통신 상태 양호합니다." 헤드셋에다 대고 돌아가면서 말하고 있는 그들은 팽팽한 떨림을 느꼈다. 나만큼이야 떨고 있으랴만은, 그들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내가, 도전할 순간이 지척에 다가 온 것이다. "잘 해 봅시다.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 분주했던 일주일 동안의 작업이 마지막으로 최후의 강렬한 침묵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점검을 끝으로 모든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조용한 순간. 이것이 바로 폭풍전의 고요다. "휴스턴, 들으십시오. 지금 막 서문 진입했습니다." 내가 그녀와 함께 학교로 들어오는 걸 먼 발치에서 보고 종욱이 말했다. 저녁놀이지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이날 따라 노을이 아주 붉게 온 하늘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다. 기숙사 앞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저녁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우리처럼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온 학생들. 근처 아파트에서 잠깐 바람쐬러 소풍나온 가족들로 꽤 오가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자전거 타고 갈까?" 용감하게도 그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나였다. 그게 낫다. 내가 먼저 당당히 제안하는 쪽이 의심을 덜 사고, 완벽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그런 기획과는 달리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니 자전거구나." 내가 자전거에서 자물쇠를 풀고 있자니, 그녀가 보고 말했다. 그녀는 자전거 바구니에 담긴 무거워 보이는 붉은 보자기를 싼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것은 멜라니온 무선 서버가 연결된 평형 유지 시스템이었다. "비밀." 나는 장난스럽게 웃는 표정을 흉내내며 그렇게 말했다. 이것이, 어제 밤새도록 궁리해서 생각해낸, 기계장치의 정체를 숨기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이다, 빨래 할 옷가지다, 실험에 쓸 재료다. 별 이상한 핑계를 다 떠올려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냥 "비밀"이라고 말하고, 나중에 그녀를 놀래켜줄 무슨 선물이라도 되는 양 위장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게, "울컥불컥 시댁이야기"의 이야기들을 참조한 결론이었다. "구급입니다. 현재 자전거 탑승 상태입니다." 나와 그녀를 보고 있던 종욱이 말했다. 나는 자전거 위에 타고 핸들을 꼭 잡은 채 정면의 길 끝을 응시했다. 그녀는 뒷자리에 가볍게 옆으로 앉았다. "됐어. 가." 그녀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속으로 하나 둘 셋, 세고 페달을 밟아야지. 잠깐만, 그게 아니라 우선 발로 도움닫기를 조금 하고, 속력이 약간 붙으면 그 다음에 페달을 밟아야지. 이제 더위도 한풀 꺾였는데,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저녁 먹고 들어오냐?" 딱 나가려고 하는데, 박자를 깨며, 누가 옆에서 불렀다. 놀라서, 나는 출발도 하기 전에 넘어질뻔 했다. 정애 선배와 선배의 남편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했다. 나는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내 옆으로 아주 작은 자전거 한대가 휑하니 지나갔다. 그것은, 정말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아이의 전형적인 표정. 딱 그대로 웃고 있는, 지나였다. 지난주 토요일, 장보러 갔을 때 자전거를 발견한 것이 일주일 전인데. 그 일주일 동안, 지나는 기어이 자전거를 사고 만 것이다. 언제 타는 법을 익혔는지, 지나는 웃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정애 선배 주위를 자유 자재로 빙빙돌고 있었다. 지나는 자전거 타고 놀고, 정애선배와 남편은 그걸 보기 위해 학교에 놀러 온 것이었다. "지나......" 지나의 웃는 소리가 나에게 까지 생생히 들려 왔다. 이런게,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고, 이런게 바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나는 정말로 심란했다. 아무 생각없이 빨리 내달려서 모든 걸 끝내자. 그런 생각이 그 심란한 와중에 소용돌이 쳤다. 다시 한 번, 하나, 둘 하고 숫자를 속으로 헤아렸다. "자전거 출발했습니다." 종욱이 말했다. "휴스턴, 어떻습니까?" "평형 정보 요동이 수신됩니다. 출력 정상 송신 됩니다. 휴스턴 신경망 정상 가동 중입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5미터를 내달릴 때, 나의 심장박동수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과는, 일단 성공. 성공이었다. 장비들은 정확히 예상대로 동작하여, 비틀거리는 내 자전거를 완벽히 잡아주고 있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이것이 그동안 수없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뒤집어지고, 쓰러지고, 나뒹군 결과요, 대가였던 것이다. 나는 그 넘실거리는 기쁨으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그녀를 의식하여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저 수백번도 더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 본척, 페달을 밟기만 했다. "휴스턴 대답하십시오. 현재 25미터 전진했습니다. 연산 상황 어떻습니까?" "초당 10번 피드백입니다. 정밀도 허용치 10의 마이너스 8승까지 내려갑니다." 박 교수님이 답했다. 휴스턴 컴퓨터의 신경망 가속 프로그램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의 균형을 정확히 계산해서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정박사님이 연결해 놓은 멜라니온의 제어 시스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 만약 한치의 오차가 생기면 큰일 난다. - 평형시스템을 움직여 핸들을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터미널 화면을 보고 있는 박명아 교수님의 표정은 그처럼 신날 수가 없었다. 박명아 교수님은 모두가 듣고 있는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지만, 정말 멋있지 않나?" 기쁨은 기쁨대로 즐거웠지만, 또한 나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구령을 붙이며 떨리는 다리를 계속 내딛고 있었다. 그녀가 내 등에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나는 심하게 의식하여 등줄기를 곧게 폈다. 모든 것이 상상하던 그 모습 그대로 였다. 평온하고 차분하지만, 유유하고도 날렵한 속도감. 지나가는 가로수들과 초록색 잔디들. 우리 곁을 지나가는 다른 자전거들. 저녁 노을. 속도가 붙은 자전거는 시원하게 공기를 흩뿌렸다.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바람은 그녀의 머리칼로 이어져 흐를 것이다. 그러면 그녀가 머리를 다시 만지는 모습은 분명히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보기 좋겠지. 그렇지만, 나는 자전거 핸들을 꼬옥 붙잡고 앞쪽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식당 나오십시오. 식당 들립니까?" "식당입니다. 현재 위치 알려 주십시오." "현재 250 미터 지점 통과했습니다. 안테나 연결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무선 기지국 작동합니다." 식당 지붕 위의 진수 선배는, 잽싸게 위성 안테나의 선을 뽑아다가 회로판에 꽂았다. 노트북 키보드를 타이핑했다. 곧 중계 프로그램이 돌기 시작했다. 평소에 수줍음이 많은 편이었던 진수 선배가, 갑자기 분위기에 휩쓸려서 지금은 식당 지붕위에 올라가서 접시 안테나를 들고 설치고 있는 것이다. 진수 선배가 위성 안테나를 뽑자, 식당의 텔레비전들의 화면이 일제히 나갔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경제뉴스 케이블 방송이나마 보고 있던 사람들은 잠깐 의아해 했다. 곧, 화면은 다시 들어왔다. 안테나는 무선 기지국으로 쓰고 있기에, 다시 들어온 화면은 진수 선배의 노트북에서 보내는 "Do You Want To Know A Secret?"의 공연 실황이었다. "식당 기지국 온라인 입니다." "휴스턴에서 말씀드립니다. 신호 잘 잡힙니다." "전송 속도 얼마 정도인가요?" "4메가 BPS까지는 나오는데요." "오키도키!" 지붕위의 진수 선배는 웃으며 허공에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진수 선배가 배선을 잘 못 연결했는지, 식당 건물 외부 스피커에서도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Listen.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하는 노래 가사가 주변으로 울려퍼졌다. 진수 선배는 정확하게 계획대로 작동하는 무선장비가 흥에 겨워서, 나오는 노래의 코러스까지 따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갑자기 경제 뉴스에서 왜 옛날 노래를 들려주는지 궁금해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와 그녀에게도, 그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Do you promise not to tell? Closer. let me whisper in your ear..." 고개를 돌리면 지붕위에서 안테나를 붙잡고 있는 진수 선배가 보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다가 만에 하나 지금까지 잘 타고 오던 자전거가 넘어지며 어쩌나, 하는 미신 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노랫소리에 맞춰서 까닥까닥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인제 반도 넘게 왔다. 조금만 더 가자"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자전거 핸들을 더 힘주어 움켜 쥐었다. "휴스턴에서 네트워크 모니터링 합니다. 식당으로 들어옵니다. 3초, 2초, 식당으로, 들어 왔습니다." "정상 수신입니까?" "이상 없습니다. 응급 팀이 보기에도 괜찮은가요?" "괜찮습니다." 이제 식당 지붕에 있는 간이 무선기지국으로 신호를 전송하며 자전거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가 출발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 말도 하고 있지 못했다. 말을 하면,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넘어질 것 같았다. 나는 옆으로 앉은 그녀의 어깨가 내 등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뭐라고 물었다. 나는 자전거에 너무나 집중하고 있던 나머지 잘 못 알아 들었다. 머릿속에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 그 여름 월요일을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 저녁마다 하던 전화 통화들. 같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 갈 때 식당 스피커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왔을 때, 문제 풀던 종이 위에 적혀 있던 글씨. "잠깐 얼굴보러 도서관에 왔더니, 없군. 맨날 싸돌아다니면 공부는 언제하나". 그 무렵,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휴스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정박사님은 이상한 숫자를 보기 시작했다. "휴스턴입니다. 갑자기 네트워크 속도가 떨어집니다. 지금 2메가 BPS 겨우 넘는데요. 각자 체크 하십시오." "식당에서 보고 드립니다. 역시 네트워크 속도가 계속 떨어지는게 보입니다." "응급쪽에서 파악하는 상황은 아직 이상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시스템이 잘 잡아주고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간다면, 곧 네트워크 연결이 끊기고 문제가 생긴다. 정일환 박사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듯한 빠른 손놀림으로 어지럽게 터미널 화면을 바꿔 가면서 프로그램의 각 부분을 살폈다. "네트워크 모듈은 테스트 잘 했나?" "예, 그 부분은 종욱이 학생이 테스트 철저히 해서 보고 했습니다. 휴스턴 컴퓨터 메모리 릭키지도 분명히 처리하고 넘어가고 있고요. 지금 아예 기지국 쪽에서 부터 속도 저하가 감지되거든요. 더 앞 단, 더 앞쪽 문제 같습니다." 정일환 박사는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지만, 얼굴 표정은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식당입니다. 속도가 1메가 BPS 까지 떨어지려고 합니다. 500킬로 BPS 이하로 떨어지면, 시스템 연결이 끊길 텐데요. 이대로면 30초 채 못갑니다." 진수 선배의 당황한 외침이 울렸다. 정박사님이 뒤지다 뒤지다 원인을 파악 못해서, 유닉스 OS의 네트워크 설정 부분까지 검토하고 있을 때, 박명아 교수님이 한 단어를 발음했다. "배터리." 진수 선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예?" 정 박사님은 그 때 깨달았다. "아아... 배터리..." 어제 밤에, 신경망 프로그램에 자료를 많이 입력시킨다고 자전거를 이리저리 주행시킨 결과, 자전거에 장치된 원격 조종 시스템의 배터리를 너무 많이 소모했던 것이었다. 프로그램 연결과 개발에만 신경쓴 나머지, 모두가 자전거에 장치된 장비의 배터리를 깜빡했던 것이었다. 이래서는 아무 도리가 없었다. 시스템이 꺼지고, 자전거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그 전에 자전거를 세워서 막는 수 밖에 없었다. 배터리가 계속 버텨 주기를 바랄 뿐이었지만, 야속하게도 신호감도는 계속 약해지고, 네트워크 전송 속도는 자꾸만 느려졌다. "현재 800킬로 BPS 밖에 안나옵니다." "휴스턴 쪽에 묻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가서 자전거 세울까요?" 안 보이는 곳에서 계속 자전거를 따라오던 종욱이 그렇게 말했다. 자전거의 위치는 이제 막 장막지역으로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장막지역은 624미터 지점에서 약 30미터쯤 이어지는, 나무에 가려서 응급팀이 자전거를 볼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자전거에서 발사되는 초록색 레이저를 망원경으로 보고, 상태를 판단해야 한다. "장비 부서지는 문제도 있고 하니까, 지금 자전거를 세우는게 어떨까요?" 안절부절하던 정일환 박사는 체념한 목소리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러는 사이에, 자전거는 장막지역, 높다랗게 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 뒤로 사라져 버렸다. "600킬로 BPS밖에 안나오는데요. 잠시 후에 네트워크 두절됩니다." 적막했다. 박명아 교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으음..."하는 소리를 냈다. 아마도 그 의미는, "만약에 자전거가 장비를 박살내면 그래도 내가 내 돈으로 물어주는 게 제일 모양이 좋겠지. 학생들 한테 재미난 거 한 번 가르쳐 준 셈 치지뭐. 그래도 돈은 좀 아까운데..." 일 것이다. 네트워크는 두절 되고, 나무 사이로 사라진 자전거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자전거가 넘어져 있지 않으면 여유롭게 자전거를 세운 뒤에 대강 둘러대고 자전거를 철수 시키면되고, 자전거가 넘어져 있으면, 당황한 파일럿을 도와서 뒷일을 수습하면 되었다. "지금, 원격 조종은 완전히 놓은 상태입니다." "신호 없습니다."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했던 종욱이 정 박사에게 묻는다. "응급팀 들어갈까요?" 실패는 씁쓸한 법. 종욱에 답하는 정일환 박사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들어가세요." 종욱은 마지막으로 괴력을 발휘. 날쌔게 자기가 타고 있던 자전거 방향을 돌렸다. 그는 마구잡이로 보도 블럭을 뛰어 넘고, 풀과 울타리 사이를 헤집으면서 최고의 속도로 달렸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을 어지럽게 가로지르며 달려서 그는 최대한 빨리 자전거가 있는 도로로 진입하려 했다. 종욱의 마지막 몸부림. 그 우당탕탕 하는 소리를 헤드셋으로 전해 듣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아주 우울한 기분이었다. 그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맞추어 가슴에 돌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바로 그 때 였다. "제발 나와라 제발 나와라"하면서 도서관 옥상에서 망원경을 들여다 보고 있던, 나의 그레이트 에센셜 룸메이트 재찬이 극적인 메세지를 타전했다. "초록색 불빛이 보입니다! 초록색 불빛이 보입니다!" 자전거가 이상 없을 때 쏘아 보내기로 한, 초록색 레이저 포인터 불빛이 재찬의 망원경에 포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내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휴스턴 말합니다! 응급팀 철수하세요. 진입 취소입니다." 헤드셋에다 대고 박 교수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곧, 재찬의 망원경에 나무 사이로 나타난 나와 그녀와 내 자전거의 모습이 들어 왔다. 나는 약간 겁먹고 심하게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긴 했지만,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넘어지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원격조점 시스템이 배터리가 다해서 꺼졌다고는 상상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스템 정상작동을 표시하는 작은 LED가 하나 달려 있긴 했지만, 아까 이야기 했잖은가. 나는 너무 너무 굳어서, 정면, 길 앞 말고는 아무 곳도 못 보고 있었다. 나는 오직 핸들을 꼭 붙잡고 페달을 밟기만 했다. 다만 머릿속으로 한 생각은 "장막 지역에서 레이저, 장막 지역에서 레이저"하는 말 뿐이었다. 장막지역에 들어 섰을 때, 핸들에 붙어있는 전조등 레버를 밀면, 뒤쪽으로 초록색 레이저 포인터 불빛이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걸 키고 달려야만, 내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리는게 된다. 패시브 시큐리티 시스템. 계속 나는 그 생각만 하면서 달리다가, 휴스턴도, 멜라니온도 모두 끊어진 줄은 꿈도 못꾸고, 그저 우직하게 페달만 밟았던 것이다. 하늘 끝까지 초록색 불빛을 비추면서. "혼자서도 잘타네. 혼자서도, 혼자서도. 잘 타네." "다시 구급팀 시야 확보 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오늘밤에 장주 갈비에서 잔치 한 번 하죠." 그렇게 해서, 나는 팔백오십사미터의 도로를 완주해 내고야 말았다. 여학생 기숙사 앞에서, 그렇게 나는 당당히 자전거를 세울 수 있었고, 영광스러운 두 다리를 굳건히 땅에 디딜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는 진이 빠져서 털썩 주저 앉아 헉헉거리고 싶었다. "기사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려섰고, 나는 짐짓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자전거에서 내리는 그 때, 나는 한참 전부터 원격조종장치가 꺼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게 도대체 언제부터 꺼져 있었던 것인가? 나는 놀란 나머지 "으허"하는 비명소리를 낼뻔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곱하기 일백만의 경악감을 느꼈다. 일주일만에 여학생 기숙사에 와보니, 이 방향에서는 내 기숙사 뒤편이 보였다. 그녀의 방인 북향에서는 아마 연극무대처럼 환하게 기숙사 뒷길이 내려다 보였을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밤마다 나는, 수없이 거기서 자빠지고 있지 않았는가. 그녀가 그런 내 모습을 보았을 가능성은 100퍼센트 였다. 인심 후하게 써도, 99퍼센트였다. 혼자서 자전거를 못타서 계속 넘어졌다 일어나고, 넘어졌다 일어나고. 친구에 선배에, 교수님까지 모아서 자전거를 타겠노라고 날마다 밤을 새우는 나를 보고, 과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그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너무나 편안하게 내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정말로 내가 자전거 타기에 능숙하다고 생각하는 듯이 내 등에 머리를 기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잠깐 놓치고 있던, 너무나 그녀다운 완벽주의자 얼음칼의 완벽한 연기였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그저 믿음이었는가. 도무지 한 마디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나에게, 그녀는 내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다음부터는 그냥 걸어서 들어오자. 자전거 타고 오니까 그냥 휙휙 지나가고 재미 없다. 뭐 바쁜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 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걸어오는게 훨씬 더 좋지 않어? 혼자 자전거 타고 휙 지나가는 애들 보면, '쟤는 애인이 없어서 혼자다니는 게지. 그러니까 저렇게 걷는게 재미없어서 빨리다니지'하면서 같이 비웃어 주고 말야."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탔던 날은, 그렇게 마무리지어지고 있었다. -- 2005년 8월, 서울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