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카쿠(遊郭)란 에도시대에 遊女(=창녀)가 집단으로 모여서 영업을 하던 公娼을 뜻하며, 遊里 또는 惡所라고도 했다. 도시의 발흥과 더불어 私娼이 발생하여 각지에 산재했는데, 막부정권 초기인 1617년에 제도화하여 유녀촌을 정식으로 허가하고, 창녀를 일정 구역내로 통합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무사나 쵸오닌(町人)의 유흥가로 번성하였으며, 에도(江戸)에는 요시와라(吉原), 쿄오토(휄?에는 시마하라(島原), 오오사카(大阪)에는 新町에 있었고, 삼도(三都) 이외에도 나가사키(長崎)・나라(奈良)등 전국의 도시에 공창을 허가했다. 에도의 요시와라에는 전성기의 경우 5,000~6,000명의 유녀가 있었가고 한다. 특히 에도에서 유곽이 발달한 이유는 参勤交代중에 다이묘오(大名)는 가족과 함께 거주하게 하였으나, 수행하는 가신들은 그러한 의무가 없어 대부분 단신부임을 했기 때문에 남녀의 인구비율이 약 6:4로서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인구의 불균형 상태에서 무사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 위한 차원에서 막부가 나서서 유녀촌을 형성하고 관리를 했다고 한다.
에도(江戸) 후기에는 교양과 용모를 갖춘 유녀가 문학과 카부키(歌舞伎)의 願材가 되기도 했다. 메이지(明治) 이후에도 존속되었지만, 1957년 매춘방지법의 시행에 의해 소멸했다.
그러나, 東京都
타이토오쿠(台東区)의 아사쿠사(浅草) 부근에 있는 요시와라(吉原)는
오늘날에도 옛 홍등가의 전통을 이어 소오푸란도(Soapland)라는
이름의 섹스산업이 번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