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전술

몽골인들은 말위에서 평생을 보내는 유목민이자 사냥꾼이다.

어릴때부터 말타기와 무기 사용법을 익혔으며 특히 다단식 합성궁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신체가 건강한 60세이하의 남성이라면 누구나 사냥과 전투에 참가해야 했으므로 통일 몽골족의 병력은 몽골 전체 성인남자의 수와 같았다.

기강이 엄격하여 전리품은 집단이 함께 소유했고 전투에서 전우를 버리면 죽음으로 보상받았다.

이 같은 엄격한 기강과 강력한 지도력,정보수집력 및 조직력으로 몽골군은 평범에서 진정한 군대가 되었다.

몽골군은 십진법으로 십진법을 사용하여 10명,100명,1000명,10000명 단위로 부대를 편성했다.

그래서 사상자가 늘어나고 여러 이유로 병력이 감소되어 정원을 채웠던 경우는 없었다.

10000명 부대는 주력 전투부대로써 독자적으로 장기전을 채웠으며 오늘날의 사단과 같았다.

병사들은 대부분 1000명 부대단위로 구분되었으며 1000명부대는 오늘날의 연대와 같다. 몽골 원주민은 그들만으로 1000명 부대를 편성했다. 타타르족과 메르키드족 같이 정복당한 부족들은 각 부대에 분산 편성되어 조직적인 반항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칭기즈칸은 여러 부족에서 10000명을 뽑아 개인 경호 부대를 만들었으며 이 부대에 선택되는것은 명예로웠다. 초기에 이 부대는 각 부족의 중요 인물을 볼모로 삼아 각부족의 반역을 막는 역활을 했으나 몽골제국이 점점 커지면서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성장했다.

몽골군사들은 처음에 전리품외에는 보수가 없었으며 진급은 공로에 따라 결정되었다.

하지만 정복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새로운 보수 체계가 시행되었고 나중에 장군들은 계급을 자식에게 상속할수 있게 되었다.

병사 한명이 전쟁에 나갈때 보통 다섯마리의 말을 끌고 나갔음므로 말을 빨리 갈아 타고 빨리 진격할 수있었다. 20세기에 기계화 부대가 생겨날때까지 대몽골군보다 빨리 이동하는 군대는 없었다.

몽골군은 주로 경쾌하게 무장한 경기병과 만구다이,궁기병으로 다단식 합성활을 사용해 싸웠다.

합성궁은 사정거리가 길고 관통력이 좋았으며 휴대하기 편했다.

중귁인과 이슬람인을 공성 기술자로 쓰고 보병,수비대와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중기병들은 정복한 군대에서 뽑아서 썼다.

몽골군은 화력,빠른 기동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잔혹하다는 평판을 적극 이용했다. 몽골군은 적보다 훨씬 빠르고 과감하게 이동하였다. 몽골군은 적을 분산시켜 빠른 화살로 전멸시켰다.

적을 포위하여 수적 우위를 노렸으며 말을 먼저 공격해 말에서 기병을 떨어뜨려 악화시켰다.

몽골군의 경기병은 중기병과 싸울때 도주하는 척하면서 적군 중기병들의 힘을 소진시켰다.

그러다가 몽골군은 갑자기 돌아서서 반격을 하였다. 몽골군은 매복과 기습공격에 매우 능했으며

몽골군의 장군들은 정찰병을 최대한 활용하고 병력을 동시에 이동시켜 불리한 상황에 있는 적을 찾아냈다.

몽골군은 공포심을 최대한 활용했다. 도시를 점령한후 주민들을 한명도 남김없이 학살해 버리면 다음 도시는 겁에 질려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몽골군이 접근하는대로 도시들이 연이어 항복해버리곤 했다.

몽골군의 전술은 휴르노흐와 투르크가 사용하던 방법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 궁수로서 그들의 화살은 350미터나 400미터 이상 멀리 있는 사람도 쏘아 맞힐 수 있었다. 사슴 무리에 몰래 접근하는 법은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정찰조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며 사냥할 때에 몰이대형으로 달아나는 야생동물들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법은 적군을 양익으로 포위할 수 있는 우회기동법을 가르쳐주었다. 몽골군은 침묵 속에서 기수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다가 돌진의 순간 비명과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는데 이는 사냥물을 흥분시키고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사냥꾼방식이었다. 사냥감을 지치게 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기진맥진하게 한 뒤, 포위하여 조직적인 살육으로 끝을 내는 거대한 몰이사냥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만일 적이 완강하게 방어하면 전열을 열어주어 적이 도망칠 수 있도록 했다가 추격하면서 가능한 많은 도주자들을 베어버렸다. 이렇게 날개모양의 전투대형으로 적을 에워싸는 방법은 오래 전부터 행해져 온 영원불변의 전술이었다.

"낮에는 늙은 늑대의 경계심으로, 밤에는 갈가마귀의 눈으로 지켜보아라. 전투에서는 적을 매처럼 덮쳐라." 따라잡기 어려운 기동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던 몽골군은 초원의 늑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가 적이 경계심을 늦추면 다시 돌아와 덮쳤다. 몽골군은 마치 영양과 호랑이를 사냥하듯, 적을 사냥했던 것이다. 또 몽골은 적을 발견하자마자 한 사람이 서너 대씩 화살을 쏘아대면서 돌진한다. 적이 꺾이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면 그들은 자기군사가 있는 곳으로 거짓 퇴각하여 적을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험한 지형의 함정으로 유인하여 전위와 양익에 배치된 몽골의 경기병들이 화살을 날려 적을 쉴새없이 공격하여 적진을 흐트러뜨린 뒤 갑작스럽게 반격을 가하였다. 적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도록 후퇴하면서 통과하는 지역을 약탈하거나 잘 선택된 지점에 기다리고 있다가 적이 줄을 지어 지나가기 시작하면 튀어나와 기습하기도 하였다.

"몽골군이 행군할 때는 아무리 작은 부대라도 항상 정찰병을 사방에 파견하여 복병을 조심하였다. 그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약 100-200 km 정도를 정찰하였으며 토착민들을 붙잡아 전투하기에 적합한 장소 및 야영이 편리한 곳 또는 양식 등의 사정을 알아왔다. 또 지휘자의 막사는 항상 높은 곳을 잡고 그 주위에 순찰 경비병을 두었다. 어떤 막사든지 두 필의 말을 밤에도 안장을 풀어놓지 않은 채 만약의 사태를 위해 대비해 두고 그 밖의 말은 방목해 두었다. 막사는 해가 저문 후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여 적의 야습을 막았다." "전투에 들어갈 때는 높은 곳에서 적정을 자세히 살핀 후 유리할 때는 싸우지만 불리하면 싸우지 않았다. 전진을 중지하고서 적정을 잘 정찰하여 약점이 발견되면 고작 백기로서도 1만이 넘는 적을 포위할 수 있었으며 1천기를 가지고서도 1백 리의 간격을 메꿀 수 있었다. 적의 견고한 진을 돌파하는데 전군의 10분의 3을 선봉대로 충당하였으며 적과 부딪치면 삼삼오오로 흩어진다. 한곳에 모며 있으면 포위 당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이 흩어지면 이쪽도 흩어지고 반대로 한 곳에 모이면 이 쪽도 모인다."

몽골의 경기병들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들은 재빨리 돌아다니면서 적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적군이 진지를 구축하거나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며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였다. 적군이 발견하고 공격하려면 재빨리 달아나고 주둔해 있던 자리에서 전열을 정비하려면 어느새 다가와 공격을 퍼부었다. 전열의 맨 앞에 선 경기병들이 적의 기동력을 잃게한 후 중무장한 기병대가 돌격하였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병력수가 많아도 이를 감당해 내지 못한다. 만약 돌격부대가 격퇴를 당하면 그 다음 부대가 계속하며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파고든다. 중기병들은 대부분 육박전을 펼쳤으므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긴칼과 창을 꼬나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화살로 적의 인마를 주로 살상하였으며 백병전은 가능한 한 피하였다. 이러한 몽골의 경기병과 중기병은 화북을 휩쓸었고 중동과 러시아에서도 위세를 떨쳤다.

기타 몽골군 보병에 대해서 적의 기병이 쳐들어오면 후퇴해서 수비를 견고히 한 다음 반격하기도 하고, 적이 성안을 지키며 나와 싸우지 않으면 소 또는 사람이 타지 않은 말을 내보내어 적을 혼란케 하였으며, 적이 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책을 설치했을 때에는 기병으로 하여금 활을 쏘아가면서 그 주위를 돌게 하여 적을 피로하게 만든 후 공격을 감행하였다. 지구전도 가끔 써서 적의 식량이나 연료가 떨어져 동요하게 될 때 서서히 접근해서 싸웠다. 몽골군의 수가 적을 때에는 나무판자로 흙먼지를 일으켜 대병력인 것처럼 보이게 하며 겁을 먹게 하며 돌격하기도 하였다. 혹은 잠시 교전했다가 식량, 무기를 버려 둔 채 도주하여, 적이 이겼다 생각하고 추격해 오는 것을 이용, 복병이 일거에 역습하였다. 변화무쌍한 전술이며 자기들이 승리했을 때는 철저하게 추격을 감행 몰살하며, 패했을 때는 사방팔방으로 도망쳐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