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그는 누구인가

칭기즈칸은 몽골의 초대황제로 예수게이의 장남으로 1147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 바토르는 쿠랄칸의 손자다. 그에 의하여 몽골인들은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이러한 상황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의 신붓감을 고르러 가던중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했으며 타이튜트족의 족장인 탈크타이 키릴투크가 그를 죽이러 하였다. 그는 탈크타이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어 있었으나 소루칸 시라라는 그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노인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그는 아버지에 의해 족장이 된 케레이트족의 토굴르칸에게 의지하였고 그에게 어린시절을 보냈다. 후에 약혼녀인 부르테와 혼인하였으나 메르키드족의 족장 칠게르 보코의 침입으로 아내를 배앗겼다. 그러나 잘리와르족의 족장이자 의형제인 쟈무카에게 도움을 얻어 메르키드족을 멸망시키고 아내를 되찾았다.후에 쟈무카의 동생 다이잘을 죽인 이후로 그는 쟈무카와 싸워 패하였으나 토굴르칸과 동맹을 맺고 쟈무카를 격파하였다. 게다가 그는 점점 몽골 전토를 통일하기 시작해 알탄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타타르족을 격파하였고 오이라트족과 운기라드족을 병합하였다. 게다가 타이튜트족을 습격하여 탈크타이의 목을 베고 타이튜트족을 서쪽으로 몰아냈다. 게다가 케레이트족의 족장인 토굴르칸은 나이가 늙어가자 후계자를 정하게 됐는데 그는 아들인 셍굼은 있으나 마나라고 생각하고 테무친을 후계자로 정했다. 그러자 셍굼은 숙부 자카칸부와 쟈무카와구 짜 토굴르칸에게 사정하여 테무친을 죽이자고 했다. 토굴르칸은 자꾸 반대했으나 어쩔 수 없어 테무친을 공격했으나 테무친은 오히려 카사르와구 기마부대를 짜서 토굴르칸을 격파하였다. 토굴르칸은 셍굼,자카칸부와 함께 나이만족의 땅으로 도망쳤으나 오히여 죽임을 당했다. 이리하여 케레이트를 멸망시킨 테무친은 나이만족을 공격하였다. 나이만족의 족장인 타양칸은 아들 크쉬룩과 쟈무카와 연합하여 테무친과 싸웠으나 패하고 쟈무카와 함께 처형당했다. 오직 타양칸의 아들인 크쉬룩만 목숨이 살아 동투르키스탄으로 후퇴하였다. 후에 그는 1206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위구르족인 타타통가를 부하로 삼고 위구르문자를 글자로 채택했다. 그는 1209년부터 서하를 공격하여 서하를 점령하고 1211년부터 안 바가이칸을 살해한 알탄제국를 공격해 만리장성을 이미 넘었고 알탄군을 6번이나 연거푸 격파하였으며 알탄의 황제로부터 말 2000필을 받은뒤 다시 기병을 양성하고 1215년 알탄제국의 수도 북경을 함락하였다. 그는 거기서 야율초재를 등용하였으며 그와 함께 모든걸 맡았다. 그는 1218년 서요로 도망간 크쉬룩을 공격했다. 크쉬룩은 21만 대군으로 대항하였으나 패배하고 도망치다가 반란을 일으킨 회교도들에게 처형당했다. 이리하여 칭기즈칸은 서역으로 가는길을 열었다. 칭기즈칸은 1219년에 코라즘제국의 황제인 무하마드에게 신하가 돼라고 사신을 보냈으나 그가 듣지 않고 사신을 죽이자 1220년에 코라즘제국으로 쳐들어갔다. 그는 먼저 오트랄을 함락시키고 나중엔 부하라를 함락시켜 코라즘을 위기로 보냈으며 사마르칸드도 5일만에 함락시켜 코라즘을 말발굽으로 짉밝았다. 결국 코라즘의 황제인 무하마드는 이란에서 대항을 했으나 패배하고 카스피해에서 칭기즈칸이 보낸 2명의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 페르시아를 가로질러 도망가는 무하마드를 추격하기 위해 파견된 체페 노얀과 수보타이 바아투르는 무하마드가 죽은 뒤에도 계속 서쪽으로 진군했다. 이 두 몽골 장군은 압바스 칼리프 제국을 파괴하기 위하여 바그다드를 출발하려다 다시 하마단을 기습해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마시 코카서스 북쪽의 스텝 지역으로 내려와 이곳의 동맹군인 알란인, 레즈기인, 킵착 투르크인들과 마주쳤다. 체페와 수보타이는 투르크 - 몽골의 형제애에 호소하기도 하고 약탈물의 일부를 주기도 하면서 킵착인들이 동맹군을 배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동맹의 다른 구성원들을 격파하고 마지막에는 킵착인들을 격파하고 약탈물을 되찾았다. 그러자 킵착인들은 러시아에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약 8만이 러시아군이 드녜프르 강을 따라 내려왔다. 몽골인들은 적이 지칠 때까지 퇴각하였고 이것을 적이 약한 것이라고 생각한 키예프의 왕자는 돌격을 감행했다. 결국 이들은 몽골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 재난은 러시아에 정치적으로는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블라디미르의 유리 대공과 그의 군대는 전장에 당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무사했고 몽골인들도 크리미아의 수닥과 솔다이아에 있던 제노아인들의 창고를 노략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체페와 수보타이는 볼가 강을 건너 카마 강가의 불가르인들과 우랄 산맥의 캉글리 투르크인들을 격파하는 것으로 원정을 마치고 칭기스칸과 시르다리아 북부 초원에서 합류하였다.칭기즈칸은 1225년에 코라즘의 황태자를 뒤쫒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했다. 거기서 카불시를 점령하고 바미안에서 승리하였으며 나중엔 인더스강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인더스강에서 인도의 이슬람왕조인 가즈니 왕국과 싸워 인더스강을 탈환하였고 부탄왕국까지 점령하였다.칭기즈칸은 1226년 몽골로 되돌아왔으나 서하제국이 반란을 일으켜 1227년 그들과 싸우다가 80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으로 몽골군은 서하의 수도인 영하를 함락했고 주민 전체가 살육당했다. 그의 뒤를 이어 오고타이가 황제가 되어 몽골을 이끌였으며 몽골제국은 17세기 1634년까지 이어졌다.
나는 몽골의 푸른늑대다.
너희는 신의 군대다.
우리의 신인 쾌쾌 탱그리와 시조 불테치노는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너희에겐 패배란 없다.
나를 따르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칭기즈칸에 대한 평가
칭기스칸은 초원 유목민의 고대 정주민에 대한 침략의 화신으로, 인류의 재앙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 동부 이란의 파괴는 유럽이 앗틸라의, 혹은 인도가 미히라쿨라의 탓으로 돌린 그 어떤 것보다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몽골 정복자들이 수행한 집단 처형은 전쟁 체계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빨리 항복하지 않은 정주민족들에게, 그리고 항복한 뒤에 다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가해진 유목민의 무기였다. 슬픈 일은 이 유목민이 농경과 도시 경제의 본질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칭기스칸은 동부 이란과 북부 중국을 정복하고서 도시와 전답을 파괴하여 초원으로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문명의 문턱과 오래된 경작지 언저리에 대한 약탈이라는 유목 전통에서 그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그의 생활방식과 환경과 종족이라는 틀 안에서 사려깊은 심성과 건전한 상식을 가진 균형잡힌 사람이자 남의 말도 잘 경청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행정가로서의 자질도 있었으나 그것은 유목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정주민족의 경제에 대해서는 극히 미미한 개념밖에 없었다.
라시드 웃 딘과 『몽골비사』가 그의 특성으로 공통적으로 드는 것은 불행할 때의 용기에 대한 존경과 그의 통치가 건전한 도덕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 전쟁에서 격파된 적들인 위구르와 거란도 그가 가장 믿을 만한 보호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훗날 그의 손자들이 시리아 기독교도들과 아르메니아 인들을 확실하게 보호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정책에 확고하면서도 개화된 사람의 경험의 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많은 조언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타타통아 같은 위구르인, 마흐무드 얄라바치같은 무슬림, 야율초재같은 거란인들이 그들이다. 칭기스칸은 그들 중에서도 투르크 - 몽골 세계에서 가장 개화된 민족들인 거란과 위구르에 특히 끌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거란인들은 칭기스칸 일족의 제국에게 몽골인들의 민족성을 박탈하지 않고 중국문화를 전수할 수 있었으며, 위구르인들은 오르콘과 투르판의 고대 투르크 문명에서, 시리아와 마니교 - 네스토리우스교 및 불교적 전통이 남긴 모든 유산에서 그 일부를 몽골인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칭기스칸과 그의 계승자들이 그들의 관방 사무어와 문자는 물론 민간행정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위구르어로부터였다. 훗날 위구르어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몽골인들의 민족문자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살은 잊혀졌고 대신 칭기스칸 국가의 규율과 위구르식 관제의 혼합물인 행정적 성취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초기의 막대한 파괴 뒤에 마침내 문명에 혜택을 주게 되었다. 칭기스칸이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이 평가는 외면상으로는 역설적이다. 모든 투르크 - 몽골민족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고 중국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기까지 철의 기율을 강요함으로써 칭기스칸은 끝없는 부족전쟁을 억누르고 대상들에게 그들이 일찍이 알지 못하던 안전을 제공하였다. 그는 전몽골과 투르키스탄에 '팍스 칭기스카나'를 확립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시대에는 분명히 무서운 것이었으나 그의 후계자들의 시대에는 부드러워졌고, 14세기의 위대한 여행가들의 성취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칭기스칸은 일종의 '야만인 알렉산더'로서 문명에 이르는 새 길을 연 개척자였다.
미국이 보는 칭기스칸의 리더십
미국에서는 칭기스칸의 리더십에서 현대 기업들이 배울 요소를 찾으려는
분석이 활발하다. 그런 노력은 갈수록 더 본격화되고 있다. 그 중에서 미국의 건설팅 회사인 '리더 벨류사'의 컨설트 믹 예이츠의 견해를
소개한다.
믹 예이츠는 칭기스칸의 리더십을 '4E'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먼저 비전이 있었고
다음으로 이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며(Enable), 또 부하들이 목표를 향해 정력적으로 일하게 했는가 하면,이를 위해 권한을 최대한
아래에 위임했다 는 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비전이 있었다. 칭기스칸은 정복을 통한 경제적 약탈만이 초원의 빈약한 물산을 놓고 벌어지는 만성적인 동족간 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광대한 제국 건설'도 결국은 이런 비전의 확대판이었다. 유라시아의 푸른 초원이야말로 유목민들이 꿈꾸는 이상향이자 낙원이었다.
둘째, 비전을 성취할 능력을 갖췄다. 칭기스칸의 군대가 단지 남들이 갖지 못한 기발한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군사 기술을 형편에 맞게 적절히 활용했다는 데 그의 탁월함이 잇다. 엄한 군율과 철저한 메리트시스템, 천호제 같은 효율적인 군사, 행정 조직 등을 통해 군사 능력을 극대화한 점등이 칭기스칸 군대의 강점이다. 초원의 다른 정복자들과 달리 칭기스칸만이 갖고 있는 이러한 독특한 능력이 제국 건설의 원동력이었다.
셋째, 부하들을 정력적으로 일하게 했다. 칭기스칸은 부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하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부하들의 가장 큰 희망은 만성적인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칭기스칸은 여기에 맞게 정복의 부산물인 전리품을 부하들과 철저히 공유하는 이익 분배 시스템을 갖췄다. 부하들은 그를 따라 정복에 성공하면 반드시 약탈물이 자신에게도 배당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 정복 전쟁에 임했다.
넷째, 권한을 위임할 줄 알았다. 칭기스칸 같은 엄격한 지도자가 권한을 아래로 위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는 권한을 위임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지도자였다. 칭기스칸은 싸움터에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면 누구든 신분에 관계없이 지휘관으로 발탁했고, 그 지휘관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권한을 부여했다.
칭기스칸의 '대자사크'
제 1 조
간통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자기만
살려고 지랄거리는 놈들은 죽여)
제 2 조
수간을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당연 하하하)
제 3 조
거짓말을 한 자,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몰래 훔쳐본
자, 마술을 부리는 자, 남의 싸움에 개입해 한쪽을 편드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 4 조
물과 재에 오줌을 눈 자는 사형에
처한다.(물을 신성시하기 때문)
제 5 조
물건을 사고 세 번 갚지 않거나 세 번 무르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 6 조
구금자의 허락 없이 피구금자에게 음식물이나 의복을 준
자는 사형에 처한 다.
제 7 조
노예나 죄인을 발견하고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제 8 조
짐승을 잡을 때에는 먼저 사지(四肢)를 묶고 배를
가르며 짐승이 고통스럽지 않게 죽도록 심장을 단단히 죄어야 한다. 이슬람교도처럼 짐승을 함부로 도살하는 자는 그같이 도살당할
것이다.(당연 한국백정들도 이렇게 죽어야해)
제 9 조
전투중 앞사람이 무기를 놓쳤을 때에는 뒤따르던 사람이
반드시 주워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만일 그 무기를 반환하지 않고 가질 때에는 사형에 처한다.
제 10 조
알레 베크와 아부 탈레브의 자존에게 세세손손 조세와
부역을 면제한다. 그밖에 승려, 사법관, 의사, 학자에게 조세를 받거나 부역을 시켜서는 안 된다.(이건
이슬람의 문화를 배낀것임)
제 11 조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존중해야
한다.(기독교만 빼고)
제 12 조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은 먼저 그 음식에 독이 없는지
먹어 보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다. 음식을 얻어 먹는 사람 역시 음식에 독이 있는가 알아보지 않고 먹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음식을
동료보다 더 많이 먹어서도 안 되고, 음식상을 넘어가서도 안 된다.
제 13 조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의 옆을 지나가는 손님은
말에서 내려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그 음식물을 먹을 수 있다. 주인은 그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제 14 조
물에 직접 손을 담가서는 안 된다. 물을 쓸 때에는
반드시 그릇에 담아야 한다.(물을 신성시하니까)
제 15 조
옷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빨래를 해서는 안
된다.(이것도 물을 신성시하니까)
제 16 조
만물은 모두 청정하다. 부정한 것은
없으므로 정과 부정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제 17 조
다른 사람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말하지 말고,
호언장담하지 말라. 그리고 누구든 경칭을 쓰지 말고 이름을 불러라. 천호장이나 칸을 부를 때에도 마찬가지다.
제 18 조
전쟁에 나설 때 장수는 부하들의 군장을 바늘과 실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검사해야 한다.
제 19 조
종군하는 부녀자는 남편이 싸움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남편을 대신하여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제 20 조
전쟁이 끝나 개선하면 병사들은 소속 천호장을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한다.
제 21 조
모든 부족민들은 매년 초에 모든 딸을 술탄에게
내놓아야 한다. 술탄은 그중에서 자신의 아내와 자식의 처를 고를 수 있다.(이 조항은 이슬람의 습속을 기술한 것으로 칭기스칸의 '대자사크'와는
거리가 있다)
제 22 조
천호장, 백호장, 십호장은 각각 부족민을 지휘할 수
있다.
제 27 조
전투에 태만한 병사와 사냥중 짐승을 놓친 자는
태형 내지 사형에 처한다.
제 28 조
사람을 죽인 사람도 몸값을 내면 죄를 면제한다.
이슬람교도를 죽이면 40발리쉬를 내야 하고, 한족을 죽이면 당나귀 한 마리만 내도 죄를 면제해야 한다.(어차피
중국인을 죽인 것은 죄가 안됨)
제 29 조
말을 훔친 자는 한 마리당 아홉 마리를 변상해야
한다. 변상할 말이 없으면 아들을 내주어야 한다. 아들도 없으면 양처럼 본인이 도살될 것이다.
제 30 조
절도, 거짓말, 간통을 금한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제 31 조
서로 사랑하라. 간통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 모반하지 말라. 노인과 가난한 사람을 돌봐주어라.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
제 32 조
음식을 먹고 질식한 사람은 겔 밖으로 끌어내 바로
죽여야 한다. 그리고 사령관의 군영(軍營) 문턱을 함부로 넘어온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학자들은 이 조항의 처음 부분은 뭔가 오해나 문장의
탈락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제 33 조
만약 술을 끊일 수 없으면 한 달에 세 번만
마셔라. 그 이상 마시면 처벌하라. 한 달에 두 번 마신다면 참 좋고, 한 번만 마신다면 더 좋다. 안 마신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으랴.(지금은 1년에 20번마시는걸로 바꿨음)
제 34 조
첩이 낳은 아들도 똑같이 상속받아야 한다. 연장자는
연소자보다 재산을 많이 받고, 막내는 겔과 가재 도구 일체를 상속받는다.
제 35 조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들은 생모(生母)를 제외한 모든
처첩(妻妾)을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데, 결혼해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도 좋다.
제 36조
상속자 외의 사람은 죽은 자의 물건을 쓰지
말라.
칭기즈칸이 직접 말했다는 격언 30가지. 이것은 그가 죽을 때까지 한 말을 모은 것으로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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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명분이 있어야 확고하게 지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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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대야사>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 나라가 망한다. 그때 가서 나 칭기즈칸을 불러도 소용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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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모든 만호장, 천호장, 백호장은 연초와 연말에 나의 훈시를 들어야 지휘하는 데 지장이 없다. 자기 겔에 들어앉아 내 말을 듣지 않은 자는 물에 빠진 돌처럼, 갈대밭에 떨어진 화살처럼 없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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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천호장은 천호를, 만호장은 만호를 다스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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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몸을 깨끗이 하듯 각자의 영지에서 도적을 없애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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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자격이 없는 십호장, 백호장, 천호장은 그 안에서 교체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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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어른 세 명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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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윗사람이 말하기 전에 입을 열지 말라. 자신의 의견과 다른 말을 들으면 잘 비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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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살이 쪄도 잘 달리고, 적당히 살이 올라도 잘 달리며, 여위어도 잘 달리면 좋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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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신에게 열심히 기도하여 전쟁에서 명예를 빛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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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평소에는 입다문 송아지가 되고, 전쟁터에서는 굶주린 매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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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진실한 말(言)은 사람을 움직인다. 노닥거리는 말은 힘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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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자신을 알아야 남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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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남편은 태양처럼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이 사냥을 가거나 전쟁에 나가도 집안을 잘 꾸리고 깨끗이 해야 한다. 또한 남편을 받들어 험준한 산처럼 우뚝 놓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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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일을 성사시키려면 세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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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사냥을 나가면 짐승을 많이 잡아야 하고, 전쟁에 나가면 사람을 많이 죽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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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예순 베이는 참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고 피로한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병사들이 자기 같은 줄 알고 성을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자가 될 수 없다. 군사를 통솔하려면 병사들과 똑같이 갈증을 느끼고, 똑같이 허기를 느끼며, 똑같이 피곤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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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상인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물건을 잘 고르고 값을 잘 매기는 것처러, 자식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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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내가 죽고 나서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걸치고, 맛있는 음식과 안주를 먹고, 좋은 말을 타고, 미녀를 품에 안고서도 그것을 갖다준 이가 그 아버지와 형임을 말하지 않거나 나 칭기즈칸의 위대한 업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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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만약 술을 끊을 수 없으면 한 달에 세 번만 마셔라. 그 이상 마시면 처벌하라. 한 달에 두 번 마신다면 참 좋고, 한 번만 마신다면 더 좋다. 안 마신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으라(<대야사>와 똑같은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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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오, 신이시여, 저는 암바가이칸을 무참하게 살해한 알탄제국에 복수해야 합니다. 그들의 피를 보려 하니 저에게 힘을 주소서. 신이시여, 모든 사람들과 정령들, 요정들,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저에게 힘을 내리도록 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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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내 병사들은 밀림처럼 떠오르고, 그들의 처와 딸들은 붉은 꽃잎처럼 빛나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 모든 목적은 바로 그들의 입에 달콤한 설탕과 맛있는 음식을 물 게 하고, 가슴과 어깨에 비단옷을 늘어뜨리며, 좋은 말을 타게 하고, 그 말에게 맑은 물과 싱싱한 풀을 마음껏 뜯도록 하며,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 그루터기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하고 그들의 겔에 근심과 고뇌의 씨앗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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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대야사>를 어기면 먼저 말로 훈계하라. 그래도 세 번 어기면 멀리 발주나(칭기즈칸의 너커르, 즉 맹우들이 서약을 했던 곳) 계곡으로 보내 반성하게 하라.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쇠사슬로 묶어 감옥에 보내라. 그러고 나서 반성하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으면 친족을 모아 처리를 논의하라(<대야사>에서는 사형이라는 말을 자주 했으나 격언에서는 훈계를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훗일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는 <대야사>를 어기는 자는 누구든 죽인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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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내 명령을 받으면 한밤중이라도 지체 없이 말을 달려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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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오논강과 케룰렌강 사이의 발주나 계곡에서 태어난 사람은 남자라면 씩씩하게 자랄 것이며, 여자라면 꾸미지 않아도 예쁠 것이다(너커르들과 맹약을 가졌던 장소를 신성시하기 위한 말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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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칭기즈칸이 말하기를)무칼리는 칭기즈칸에게 보냈던 사신이 돌아오자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사신은 칭기즈칸이 엄지손가락을 구부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무칼리는 내가 죽음으로써 대칸을 모신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누구한테 엄지손가락을 구부리더냐고 물으니 사신은 너커르들의 이름을 대었다. 그러자 무칼리는 그들은 나의 앞뒤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니 마땅하다고 말했다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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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 할라자가 묻기를, 짐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 대칸이 되었느냐고 했다. 나는 칸이 되기 훨씬 오래 전에 적병 여섯 명을 혼자서 대적한 적이 있다. 그놈들이 내게 화살을 비 오듯이 퍼부었지만 나는 한 대도 맞지 않고 놈들을 모두 무찔렀다. 그리고 상처 하나 없이 그들이 탔던 말 여섯 마리를 몰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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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꼭대기에서 매복병 20명을 만나 싸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뺨에 화살 한 대를 맞았다. 그런데 젤메가 입으로 내 뺨의 독을 빨아내고, 물을 데워 상처를 씻어주고, 적진에서 마유주를 구해다가 마른 입을 축여주어 겨우 살아났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적을 공격하자 그들은 산꼭대기로 기어 올라가 몸을 던져 죽었다(제베의 화살을 맞았을 때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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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새치가 눈에 띄었다. 누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전능하신 신이 성공의 깃발을 높이 올리려 하심이다. 그래서 윗사람의 표시인 회색의 상징을 내게 주셨도다 하고 말했다(정, 부정을 가르지 말라는 <대야사>와 통하는 것으로, 칭기즈칸은 모든 징조를 무조전 유리하게만 해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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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이란 배신자와 적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며, 그들의 종과 백성들을 소리 높여 울 게 해 그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얼룩지게 하고, 그의 말을 타며, 그들의 처첩과 딸의 배꼽을 침대나 이부자리로 삼아 깔고 누워, 그 붉은 입술을 빠는 데 있다. |
칭기즈칸은 키가 크고 몸집이 탄탄하였다. 눈은 고양이 눈이고 노년에도 흰머리가 없었으며 성욕이 대단하였다.
칭기즈칸은 알탄제국의 수탈대상인 유목부족에서 태어나 유목사회의 생존질서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복수의 한을 풀기 위해 흩어진 부족을 하나로
끌어 모아 정착지 주변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그는 몽골을 통일한 이후 그의 주위에 몰려든 전사들에게 나누어줄 약탈물을 얻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였다. 몽골초원에 있던 가축의 숫자는 패권을 두고 벌어진 내전과 기후변화로 격감하였으므로 그는 이것을 채워야 했다. 당시 몽골인들은 말을 수출하고 밀가루와 무기, 직물 등을 수입했는데, 만성적인 무역역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약탈물에 대한 기대야말로 흩어지기 쉬운 집단을
묶어두고 추종자들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주로 동물 뼈나 가죽으로 만들던 병기는 쇠와 구리 등 철기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전쟁을 벌일
기술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칭기즈칸은 말하였다.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적을 추격해 쓰러뜨리고 그들 소유물을 독차지하여 그 여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다니고 그 여자들의 몸을 침대와 베개삼아 노는 것이다."
유목민의 지도자들은
어느 정도 세력이 엮어지면 바로 중국 땅에 쳐들어 감으로서 이 공백을 메우는 또 다른 유목세력이 나타나 중국지역을 선점한 기존 유목세력을
쓸어버리곤 하였지만, 이를 잘아는 칭기스칸은 탕구트와 알탄 침공에서 보듯 기선을 제압하여 적의 공격능력을 마비시킨 다음, 몽골고원으로 돌아가
초원에 남아있는 적대세력을 신속히 단속하여 힘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칭기즈칸은 샤머니즘의 신봉자였다. 그는 스스로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후예로서 탱그리(하늘)에 의해 선택받았으며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의 모든 세계를 정복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확신하였다. "당신들이 순순히 복속하고 나오면 좋은 대우와 안식을 얻을 것이나 만약 저항한다면 영원한 하늘만이 당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
것이다." "(우리는) 투항하지 않는 사람을 잡아 눈을 멀게 하였고 손을 없앴으며 다리를 분질러 버렸다." 이런 사명감과 의지가 경제적 실익과
한 덩어리가 되면서 그의 정복욕에 거대한 추진력을 부여하였다. 젊은 시절 자신이 겪은 고난과 운명의 시련을 되돌아볼 때 유라시아의 막강한 군주가
된 것을 초월적인 힘의 덕택으로 돌린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언제나 자기 최면을 걸듯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무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골몰하였다.
그는 평생 소치기나 마부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소박한 생활을 하였고, 병사들을
형제애로서 대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주인을 배반한 자들은 적과 아군을 막론하고 죽였으며, 자신의 밑에 들어온 사람들은 끝까지 보호하였다. 그는
자신과 부하들의 모든 잠재력을 점화하고 송두리째 분출시켜 하나가 되도록 하였다. 그는 싸움터에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면 누구든 신분에 관계없이
지휘관으로 발탁했고, 이 지휘관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권한을 부여했다. 칭기즈칸의 유명한 장군 중에는 목수, 양치기, 대장장이, 노비가 많았고
이들은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쟁터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칭기즈칸은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발휘하는 충성과 능력에 대하여 승진으로써
보답하였다. 이러한 선발체제로 몽골군은 무카리, 체페, 수보타이와 같은 엘리트 군관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 밖의 일을 바라지 않았으나 몽골의 병사들은 신체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잘 단련되었고, 집단수렵을 통해 전술을 익혔으며 고난과 고통을 견딜
줄 알았다. 또 몽골군 안에서는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였다. "모든 몽골군은 옆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은 노력을 하였고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며
재산과 권력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병사들은 상급자들과 똑같은 양의 음식을 요구할 수 있었다. 어떠한 지휘관도 사람들 앞에서 혼자 포식할 수
없었다. 양식은 똑같이 나누었다." 또 칭기즈칸은 철저히 부하들과 약탈물을 분배하였으므로 부하들은 열과 성을 다해 정복전쟁에
임했다.
결국 그는 중국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역대 정복자들, 즉, 알렉산더, 히틀러, 나폴레옹이 차지한 면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넓은
땅을 정복하여 이곳을 지나는 대상들에게 전에 없던 안전을 제공하였다. "칭기즈칸의 치세 아래 이란과 투르키스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어떠한
폭행도 없이 황금쟁반을 머리에 이고 해가 뜨는 땅에서 해가 지는 땅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칭기즈칸은 거대한 규모로 심리전을 사용하였다. 칭기즈칸은 군사적인 승리의 전제로서 적 내부의 반목을 이용하였다.
불교도인 쿠쉬룩을 정벌할 때, 그는 민중들이 무슬림인 점을 이용해 이슬람을 옹호함으로서 해방군으로 행세하였다. 중국적인 문화에 물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전쟁 수행능력을 가지고 있는 알탄의 강력한 저항은 키타이인에게 몽골과의 민족적 유사성과 만주족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김으로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여러 민족들이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통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코라즘에게는 민족적 반목을
이용하였다. 이미 몽골초원의 전쟁에서 하늘이 자신을 군주로 선정했다고 소문을 널리 퍼뜨려 샤머니즘이 강한 당시 몽골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칭기즈칸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 초원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국제상인들의 활동을 장려하고 안전을 약속함으로서 이들의 도움도 빌렸다.
몽골의 승리만이 상업에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한 이들은 각 민족의 국내정세에 관련된 정보를 칭기즈칸에게 넘겨주었으며 오아시스 주민들에게
저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받지만 저항할 경우에는 처참한 학살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을 퍼뜨려 주민들의 저항의지를
꺾었다.
칭기즈칸은 무슬림 상인들을 처음에는 첩자로 이용했으며 다음으로는 중재자로 그리고 나중에는 사신과 지역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이들은 지주들에게 멸시 당했던 중국의 상인들보다 지적이었고 자유분방하였으므로, 여러 정복지역 특히 서아시아의 몽골 정복지를 잘 통치하였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대외정복보다는 고향인 몽골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관심이 더커서 메르키트와 삼림민을 치고 나이만족의 쿠쉬룩을 추격하였으며 탕구트를
치려고 서방작전을 중지하기도 하였다. 몽골제국은 아직도 풀 냄새나는 초원의 제국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