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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마야의 거주 역사는 서기 300년
부터 시작 되었다. 후기 고전기 시대 동안에 꼬수멜은 마야인들의
중요한 의식의 중심지로서 마야인들은 풍요의 여신이자 달의
신이었던 "이스쩰" 에게 바쳐진 성전을 순례하기 위해 이곳까지 항해해
왔었다. 그후 1518년 "후안 데 그리할바" 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복 되었으나
이듬해 꼬르떼스 탐험대는 본토를 정복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차에
꼬수멜의 마야 사당들을 파괴해 버렸다. 마야인들은 1545년 정복 당할때 까지
군사적으로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정복 이후 이 섬의 인구는 격감되어
마야인과 스페인 인 을 합처 300명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질병 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이 섬에 스페인 인 들이 천연두와 각종 질병들을 죽음의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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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수멜은 당시 악명높았던 해적 "장 리피뜨" 와 "헨리 모건" 과 같은
악당들의 본거지가 되었기 때문에 해적들의 포악한 횡포에 못 견뎌
남아있던 주민들 마저 본토로 이주해 버리고 17세기까지 거의 황무지로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1848년 본토에서 계급전쟁을 피해 도망쳐 온 원주민들이 정착하며
서서히 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했다. 그후 이곳은 한때 치클껌의 원료를 운반하는
루투로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공군기지의
건설과 함께 다시 한번 호황을 이루었으나 미군 철수와함께
대부분의 주민들은 다시 이주해가고 남아있던 주민들은
고기잡이로 연명 하다가 1961년 해저 과학자 쟈끄 꾸스또가 해안초를 조사
탐방하고 꼬수멜의 아름다움 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꼬수멜의 운명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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