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여 일어나라

 다시 '아줌마론'이 일고 있다. 왜?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아트선재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아줌마 전>(3월13일∼4월25일)이 일등 공신. 이 사진 전시회는 아줌마는 물론이고, 아줌마가 아닌 이들에게 아줌마 이야기를 풀어놓게 했다. 또 한가지, '아줌마 씹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사상 최초로 아줌마 토론방(연세대 가상대학의 가족사회학 강의)을 개설한 '이변'도 일어났다. 이 토론방을 개설하는 데 앞장선 이는 조한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 그는 지금 '아줌마 제대로 보기'를 열심히 '강요'하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아줌마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리 야단법석일까. 도대체 한국사회는 아줌마라는 집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아줌마는 뻔뻔스럽고 무례하며 탐욕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기혼여성집단 매도하는 '아줌마' 호칭
 우리 사회에서 수다·무례·탐욕·억척·무식·무능의 대명사인 것이다. 그래서 아줌마가 조금이라도 지적으로 보이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면 '아줌마가 이런 일을…'하며 놀라워한다. 매춘이나 도박 같은 반사회적 행위에 아줌마가 한 사람이라도 들어가면 언론은 '아줌마 매춘''아줌마 도박'이라며 아저씨의 그것에 비해 훨씬 큰 비중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재 아줌마란 말에 얹혀 있는 온갖 부정적 인식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아줌마가 아주머니의 줄임 말이 맞다면, 원래 아주머니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나 항렬이 같은 남자의 아내 등 부인네를 높여 정답게 부르는 말이었다. 여성학 동호회에서 아줌마 제대로 보기를 '선동'하고 있는 오조영란씨(캐나다 토론토대학 과학사학 박사 과정)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아줌마 죽이기 풍조에 대해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여성을 차별하는 한국의 악명 높은 가부장적 문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집단적·위계적 사회 관습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아줌마로 부를까. 우선 아직 할머니 소리를 듣지 않는 기혼 여성을 아줌마 집단에 넣을 수 있다. 약 천만명에 육박하는 아줌마들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되, 사회적으로는 여성이 아니다. 영화<코르셋>은 유명한 대사를 하나 남겼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 아줌마는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갖지 못한 '제3의 성(性)'이라는 것이다. 아줌마는 일부 여성과 구별되는 존재이다.
 '존재의 이유'를 박탈당하는 아줌마들
 아가씨들 사이에, 아니 젊은이들 사이에 아줌마 같다는 것은 천박·무능·무식·염치없음·촌스러움을 뜻한다(최성욱 연세대2년). 그러니 진짜 아줌마들도 아줌마를 싫어한다. 특히 젊은 아줌마들이 그렇다. 한국에서 어머니, 아니 아줌마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고통과 인내와 희생의 지겨운 학습과정을 거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줌마들은 자신의 이름을 반납하고 누구의 아내와 엄마로 살아야 하며 자기를 잊기 위해 반항하거나 분노하는 일없이 자신을 거세해야 한다(차현숙 소설 분노의 강). 그러나 아줌마들은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도 아이들마저 더 이상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중년의 나이에 서면 대개 '빈 둥지'증후군이나 우울증을 경험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살았지만 사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조차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줌마들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한국사회 도처에 '여성출입금지 구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0대 후반인 한 아줌마는 "세상이라는 톱니바퀴 중에서 아주 작은 나사로라도 살아 보려고 기를 썼지만, 1년이 못가 나는 어디에도 끼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토로했다.
 30대 여성90% "성공하고 싶다"
 페미니스트 저널<이프>가 97년 서울과 경기 지역의 30대 여성 1백29명에게 성공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무려 90%가 성공하고 싶다고 답했다. 평범한 아줌마들에게 조안리·전여옥·최유라등으로 상징되는 커리어 우먼의 성공담과, 장덕희·조양희·엄애란 류 전업 주부의 화려한 변신을 담은 성공서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 성공한 여자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으로서의 고민과 갈등을 담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최대 약점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성공하기에 어떤 현실적 걸림돌도 없었던 '특별한' 여성들인 것이다. 이들은 남자들로서는 천사표 아내인 '돈도 잘 벌고 살림도 잘하는 현대판 슈퍼 우먼이 되라'고 아줌마들을 윽박지르고 있을 뿐이다(여성학자 박혜숙).
 만약 한국사회가 여전히 아줌마들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놓는다면 잃는 것이 무엇일까.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고은광순씨(한의사)는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명 존중사상을 갖게 된다. 그것은 사회를 살리는 원초적 힘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의 저력으로 키워야 할 '아줌마의 힘'
 아줌마의 힘을 끌어내려는 노력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두 가지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는 아줌마들의 못말리는 가족 이기주의. 내 새끼 내 남편 잘먹고 잘되게 하기 위한 일인데 무엇이 나쁘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가령 생필품 사재기나 학교에 대한 치맛바람, 금품을 동반한 남편 승진운동 같은 행위는 종종 사회 질서와 정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닫게 한다. 또 하나는 조직적 노력이다.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해 사회를 살리는 모성을 발휘할 때 아줌마는 다른 이름으로 승화되지만, 오랫동안 집에 '갇혀'지낸 아줌마들에게는 그들을 유인할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여성운동가 오한숙희씨). 이미 많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동네마다 뜻을 같이하는 아줌마조직이 활성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줌마 부대'가 세상 바꾼다
 주책 맞고, 수다스럽고, 억세고…,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아줌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어떤 이미지와 연결될까. 강인함, 너그러움, 솔직함….
 서울 구로초등학교 학부모회장 배옥병씨(42)는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아줌마'이다. 지난 반년간 그는 학교 앞에 새로 생기는 도로의 설계변경을 요구하며 서울시와 구청을 상대로 질긴 싸움을 벌여왔다.
 '수다'라는 무기로 무장한 '아줌마 파워'
 대한민국에서 목청 크기로 아줌마를 따라갈 집단이 어디 흔한가. 아줌마를 우습게 본 공무원들은 결국 큰 코를 다쳤다. 그렇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또 한 차례 힘겨운 싸움이 남겨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하는 아줌마 부대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여성이 아이들 교육을 거의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건만 학부모 회장으로 선출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 명망가였다. 한술 더 떠 학교측은 사회운동을 했던 배씨의 경력을 문제 삼아 '저 사람이 운영위원이 되면 학교를 말아먹는다'고 악선전을 했다. '아줌마는 강하지만 엄마는 약하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아이를 둔 엄마가 학교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섰을 때 '아줌마 파워'는 제대로 발휘된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아파트 11단지에 사는 서미경씨(34)는 지난해 같은 단지 주민들과 '녹색 아파트 모임'을 결성했다. 아파트 주부 하면, 사람들은 흔히 떼지어 몰려다니며 쇼핑하고 수다 떠는 아줌마 집단을 떠올린다. 이런 것들이 서씨는 싫었다.
 모임에 동참한 이들은 살맛 나는 아파트, 미래 지향적인 환경 친화형 아파트를 만들지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이들이 맨 먼저 벌인 일은 생활 쓰레기 분리수거운동이었다.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어 이중으로 이익이었다. '아줌마는 어머니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표현대로 모성은 아줌마 파워의 숨겨진 원천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언론위원회 모니터 팀장 임순혜씨(50)는 '아줌마가 없으면 이 사회는 무너진다'고 큰소리치는 시민운동판의 '아줌마'이다. 아줌마는 기본적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살림을 하는 사람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막강 위력…성폭력 방지앞장
 96년 발족한 이래 주부 네트워크는 체벌·성희롱·실업 같은 사회적 쟁점들을 그때그때 발 빠르게 토론해 왔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세대'가 동호회 활동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인지 이들의 사회 비판 의식은 높은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페미니스트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이들 대부분이 가부장적 사회질서·가치관을 가차없이 공격한다는 사실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그래서 성적 매력을 잃은 '아줌마'를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그래, 나 아줌마다. 어쩔래' 하는 식으로 당당해지기 때문이다. '수다'라는 의사 소통 도구와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 물러설 수 없는 '생활력'을 고루 갖춘 아줌마들이 당당한 정체성을 갖고 세상을 향해 발언할 때 어 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아줌마'들의 각성은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