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단군 연구를 통한 단군 논쟁 검토

심용환(5기 인문사회분과, lyanga@dreamwiz.com)


서  론

현재 한국사회는 한편에선 종교적 문제로 인해 대중들을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학문적 차이로 인해 지식인들간의 격론이 빚어지고 있다. 수년동안 진행되어왔고 여러 가지 폭력사건을 야기했으며, 각종 매체와 게시판을 달군 단군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단군논쟁'은 지극히 감정적이며 주관주의적이다.

단군 인식의 역사적 변천

㈎ 단군 : 역사 과정의 산물과 창조된 전통 사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군이 최초의 국가 건설자이므로 개국시조로서 전역사 동안 숭배 대상이었을 것이라 상상한다. 하지만 민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단군에 대한 현대의 인식은 사실 역사의 선배들에 의해 강요되어온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의 실재가 허구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민족사의 오랜 역사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히려 단군이 '민족의 시조'가 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는 점이다.

㈏ 민족 형성과 발전의 '일부' 단군
삼국이 모두 고조선 시조 단군을 자신들의 시조와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할지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뿐 아니라 그 다음 대의 고려까지도 각각 독자적으로 하늘과 연결성을 가지는 건국신화로써 '각자의 국가 시조를 신적 존재로 받들고 있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13세기 이전 고려 사람들은 대체로 '단군'을 평양 사당에 모셔진 지역신, 또는 황해도 구월산 지역 등에 모셔진 민간신앙적 자연신으로 생각해 왔다. 즉 고려 건국 초기까지만 해도 '단군'의 의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한 국가의 창건자에 불과했다.

㈐ 조선 : 역사공동체의 정신적 일부 '단군'
 이러한 양상은 고려중기부터 바뀐다.『삼국유사』에서는 최초로 역사공동체 시조로서 단군을 채록했다. 그러나 삼한 중에 진한을 중국인 혈통으로 인정하는등 단일 혈연공동체에서 이어진다는 의식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제왕운기』는 단군(혈연공동체)→기자(문화공동체)→위만(민족생활권)으로 이어지는 '3조선계승의식'을 체계화했다. 이는 분명 혈통, 문화, 생활권에 바탕한 역사공동체 의식의 형성을 의미한다.

 조선왕조는 단군이 시조이자 동방 역사공동체의 시조라고 선포했다. 또한 국가 명칭을 단군의 옛 국호를 이어받아 '조선'이라 함으로써, 단군 받들기를 명확하게 했다. 또한 조선중기의 역사적 변동은 단군에 대한 보다 새로운 접근을 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를 통해 단군은 문화공동체의 창출자로 등장한다. 홍만종은『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摠目)』에서 단군→기자→마한→삼국→통일신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정리하는 한편, 이제까지의 단군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군 인식이 결코 조선의 중심에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 사회가 사대부에게 지배받는 향촌 공동체 중심의 농업국가였다는 점, 이들 사대부가 성리학에 의해서 훈육된 지배층이었다는 점, 유가사상 자체가 합리성과 독자적 사상성을 바탕으로 전통을 끊임없이 변용적으로 수용했다는 점등을 통해 씨족신앙에서 출발한 단군 숭배가 얼만큼 조선사회에서 변용되고 의미를 상실한 채 실재적으로 필요자의 요구에 도구화되어 사용되었는지는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목할 사실은 단군정통론이 단군부정론에 대항해 나왔듯이 조선중기 이후를 수놓는 역사인식에 단군부정론이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16세기 전후부터 지속적으로 단군부정론은 대두된다. 한백겸은『동국지리지』를 통해 북방의 조선과 남방의 한이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는 점을 제시함으로 역사공동체는 '조선'계승의식과 '한'계승의식으로, 2원적으로 파악된다고 보았다. 즉, 단군부정론(무의미론)은 단군정통론과 병존했었다.

 이러한 '단군'에 대한 역사적 '변천'과 '다의성'은 단군이라는 존재가 한민족 가운데 불변하는 민족 시조라는 인식에 반대한다. 단군이 한민족 역사 발전 속에, 특히 조선의 건립과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적 고민, 현재적 고민의 '변형되고 이용된 해답체'로써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이는 민족 시조로써 단군이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절대성'을 획득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단군은 본유의 '독자성'마저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과연 역사적 연속성이 없고, 독자성이 없는 '단군'이라는 선험적 개념,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로부터 도출된 '형상'이 오늘 우리에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현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매우 심각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근현대 단군인식의 새로운 변용
 어찌되었건 중요한 사실은 조선시대까지의 단군이라는 개념은 역사공동체의 힘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선택의 기재로 사용되었다면 오늘 우리가 알고 쉽게 배워왔던 당연함 속의 '단군'은 조선 사대부들이 선택했던 단군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절박감' 속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말기 사회의 부패와 열강의 침입 가운데 결국 한민족은 역사공동체로써 준거가 되는 '영토'와 '주권'을 상실한다. 이는 '역사공동체'로써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음을 의미하는데, 결국 위기 극복으로 이 시기 단군에 대한 인식은 민족 '독립'과 '자주'라는 이중의 과제를 극복하는 '운동의 구심체' 혹은 '종교적 심성'의 구심체로 전환한다.

㈀ 운동의 구심체로써의 단군
 전자는 '대(大)단군주의'로 드러난다. 대단군주의는 민족주의 진영에서 시작된 것으로 한민족의 역사적 연속성과 민족적 탁월성을 강조하는 신채호가 단군 계승의식을 표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운동의 주체로써 '단군'에 대한 인식은 조선의 '단군'에 대한 초상과는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조선이 사대주의적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적 성리학의 재발견과 사대부 사회의 발전을 바탕으로 민족적 자긍심과 유교문화의 자부심이 전제된 상태에서 '단군'을 그 시대의 존재가치를 합리화시키는데 사용했다면 근현대의 '단군'은 역사공동체의 위기 극복을 위해 '미래적 가치'를 향한 '과거상'으로 설정했다. 즉, 단군이라는 과거상은 현재의 민족적 소망과 결합해서 새로운 '미래의 표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절박한 구심체로 등장한 '단군'은 그 실재성과 상관없이 민족적 표상으로 승화됨은 물론 시대적 절박함이라는 상황에 힘입어 절대적인 '정서의 공감대' 영역을 점유하게 되었으며 민족의 시조라는 '상상의 전통'을 창출해냈다.

 근현대에 형성된 '단군'의 의미는 조선의 그것이 현존하는 가치의 보지자(保持者)로써 존재했던 것에 비해 '미래적 표상'을 획득하게 됨으로 '초월적 권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즉,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단군'은 영원한 민족 시조이며 반(反)단군은 반(反)민족 적어도 비(非) 혹은 탈(脫) 민족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역사공동체의 인적기반인 민족구성원의 무의식 속에 '당연함'으로 이식되었다. 따라서 중심체이며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초월성과 미래적 초상을 획득한 '단군'의 지위는 민족의 해방과 독립, 자주와 자치의 실현이라는 역사 발전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시 그 지위를 점유하게 되며 이 현상의 연속은 오늘의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 종교로써의 단군
 운동으로써의 단군과 더불어 주목할 것은 종교적 심성을 장악한 단군이다. 근대 '신흥종교'로서 단군을 받드는 민족교단, 후천 개벽을 바탕으로 하는 민중교단은 1860년 동학 창도, 1901년 증산도, 1909년 단군교로 이어졌으며 '국조숭배의식'과 '천신숭배의식'의 결합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민족 종교 안에서의 단군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는 절대적 구심체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종교성의 결합을 통해 시대적 위험을 극복하고자 한 '역사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종교로써 단군은 시대적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민족 종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논하는 '민족종교'와 '외래종교'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모순임을 증명한다. 민족종교의 기반을 제공하며 역으로 단군교라는 독자적 종파를 창출해 낸 '단군'의 존재는 마치 민족종교가 역사적 '신흥종교'인 것과 같이 근현대사에 새롭게 등장한 '종교 개념의 구심체'일 뿐이다.

결  론

 이상의 고찰을 통해 단군의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았다. 역사적 결론과 이에 따른 해석의 결과는 현대의 '단군주의자들'의 다양한 주장을 근본적으로 역행한다. 단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단군에 대한 인식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 결론이 '단군반대론자들', 보다 직접적으로 '기독교인'들의 그간의 모든 행위와 주장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군은 기독교인들이 흔히 주장하듯 '종교성'만으로 파악될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들의 입장과 경험을 새로운 문제에 아무런 고려 없이 마구잡이로 대입한다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고려와 근거를 바탕으로 논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내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