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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령충만의 복음 중생을 체험한 신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권능을 얻고 복음을 증거하게 되며, 또한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를 힘입어 죄악의
권세와 본성적인 타락에서 벗어나 성결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메마르고 소극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감격과 감동이 넘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복음이다.
1.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
1)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
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 마치
전부인 것처럼 사도들을 속일 때 베드로는 성령을 속임이 곧 하나님을 속임이라는 말로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행 5:3,4).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동일한 하나님의 반열에 세워 놓으심으로 성령님이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여 주셨다. 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속성인 영원성(히 9:14), 전능성(눅 1:35), 전지성(고전 2:10), 무소 부재하심(시 139:7,8)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2) 인격을 지니신 성령님
성령께서 인격을 지니고
계신다는 깨달음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 생활이 보다 깊어지고 능력이 따르며 현재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 역사가 바로 인격적인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일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격적인 성령님을 모셔들이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성령님께 예배하게 된다. 둘째, 자신을 성령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겸손한 심령으로 그 앞에 내어 드리게
된다. 셋째,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 인격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물을 깨달아 아는 지(知)와
희노애락의 느낌을 갖는 정(情)과 사물을 판단하고 자기의 태도를 결정짓는 의지(意志)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지성(롬 8:27;
고전 2:10)과 감정(롬 5:5,8:27; 엡 4:30)과 의지(행 16:6,7; 고전 12:11)를 갖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는
인격적 성품을 갖고 계시므로 어떤 힘이나 능력같은 비인격적 존재가 아닌 인격적 존재이시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되 특별히
다른 보혜사가 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구주로서 보혜사이셨다면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도우신다
(요 14:16,17).
2. 성령의 사역
1) 불신자와 관련된 사역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8-11). 성령님은 예수를 믿지 않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신다. 또한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책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의롭게 되며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세상 임금인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은 장차 있을 마지막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시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내세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신다.
2) 신자와 관련된 사역
성령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요 3:5). 성령님은 믿는 사람들 안에 내주하셔서(요 14:16) 가르치시고(요 14:26),
인도하시며(롬 8:14),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자들을 위해 간구해 주신다(롬 8:26). 그 외에도 신자를 인치시며(엡 1:13,14;
딤후 2:19), 일을 시키시며(행 13:4; 16:6,7; 고전 12:11), 보증이 되시며(고후 1:22; 엡 1:14), 능력과 기름
부음을 주시며(눅 24:49; 행 2:1-4; 고후 1:21; 요일 2:20,27), 몸을 부활시키시며(롬 8:11; 고후 4:14),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거하는 사역을 행하신다 (롬 8:16; 갈 4:6).
3. 중생과 성령 세례
중생과 성령 세례는 분명히 다른 별개의 체험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체험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기간을 두고
일어날 수도 있으나 분명히 다른 체험인 것만은 확실하다. 성경에는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들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예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택함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순종하였음으로 이미 중생을 체험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이외에는 모두 깨끗하다고 하심으로써 그들의 중생을 보증하셨다(요 13: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또한 사도행전 8장 5절부터 13절까지를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 8장 14절부터 17절까지를 보면, 세례는
받았으나 동시에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확실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가서 제일 처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는 질문을 하였다. 이 말은 우리가 믿을 때에 자동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성경적 증거를 볼 때, 중생과 성령 세례는 확연히 다른 별개의 체험임을 알 수 있다.
4.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
1) 성령 세례 성령 세례는 중생한 자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령께 사로잡히는 영적 체험의 출발이다. 성령 세례의 증거는 다양하나 그 대표적인 외적 표현으로 '방언'을 들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 세례의 체험을 기록한 기사가 네 군데 나와 있는데(2:1-4, 8:4-24, 10장, 19:1-7), 이 중 8장의
사마리아 부흥회 때 외에는 모두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성령 세례의 대표적 표적은 방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한 성령 세례의 증거는 '능력 있는 복음 전파'에 있다. 즉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행 2:14-41). 성령 세례는, 그 증거가 방언이든 혹은 복음을 능력있게 증거하는 전도의 생활화든, 성령 세례를 받은 신자의 마음에
큰 확신으로 경험될 수 있는 사건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는 그 결과로서 자신에게 허락된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령의 은사로는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2절까지에 기록된 아홉 가지의 은사,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성령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각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고전 12:7).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그것을 소유물로 여기거나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되며, 오직 겸손하게 성령의 뜻을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활용케 할 뿐 아니라, 성도의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롬 8:29; 고후 3:18). 예수님께서는 과실을 맺게
할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셨다(요 15:16).
2)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외적)와 성령의 열매(내적)가 계속적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 충만이라 부른다. 성령 충만한 삶은
곧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이다(롬 6:11).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다(갈 2:20). 나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쓰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은 주의 마음이 되고, 나의 의지는 주의 의지의 지배를 받고,
나의 전인격과 재능은 남김없이 주의 것이 되는 삶인 것이다. 이러한 성령 충만한 삶은 기쁨이 넘치는 삶(살전 1:6,7), 담대한 믿음이 넘치는
삶(히 11:1,2),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삶(롬 5:5), 생명력이 넘치는 삶(요 6:63), 병 고침의 능력이 넘치는 삶(막
16:18), 감사와 평화가 넘치는 삶(엡 5:20; 빌 4:7), 방언 기도가 넘치는 삶(행 2:4), 기적이 충만한 삶(막
16:17,18), 열매가 충만한 삶 (갈 5:22,23), 전도하는 삶(행 1:8)으로 나타난다.
※성령
세례의 성경적 위치※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대로 서로 다른 세례(침례)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모세의 침례
성경에 제시된 첫 번째 침례는 모세의 침례이다. 이 침례에 관해서는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볼 수 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 조상들이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통과하였으며,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모세에게
침례를 받았고, 또 모두 같은 영적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라. 이는 그들이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음이요,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느니라"(고전 10:1-5).
여기서 보듯이 성경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넜을 때의 일을 두고 "구름과 바다 속에서 모세에게 침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홍해를 건넜을 때의 이 사건이 침례가 되는 것인가?
이는 우리가 받았던 침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홍해라는 물 아래로 지나감으로 세상으로 예표되는 이집트로부터 성별되었고 하나의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2. 요한의 침례
성경에 제시된 두 번째 침례는 요한의 침례이다. 마태복음 3:11을 보자. "나는 정녕 회개시키기 위하여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여기서 침례인 요한은 요단 강변에 나타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러면 그는 어떠한 목적으로 침례를 주었겠는가?
이 침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침례인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왕이 오시는
시점이었고 이에 앞서 예언에 기록된 대로 반드시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바로 예언된 엘리야로서(말 4:5) 왕의 길을
예비해야 하는 침례인 요한의 사역이었다(사 40:3, 마 3:3).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마음을 주께로 돌이켰듯이 그 사역의 핵심은 왕이 일하시기
전에 회개의 표시로 침례를 줌으로 왕의 길을 닦아 놓는 사역이었다.
그래서 그가 침례를 행하기 전에 전파했던 것은 "회개하라"였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람들은 침례를 받는 것이었다. 이 일은 당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를 왕으로 맞아들이는 준비이자 왕국이 임하기 위한 선행 조건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의 유대인의
침례와 일치한다.)
요한복음 1:31에서 침례인 요한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내가 물로
침례를 주러 왔노라." 여기서도 보듯이 요한의 침례의 목적은 왕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이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심판의 도끼가 그 뿌리에 찍힐 것이라고 경고한다. 만왕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백성으로의
새 출발이 없는 침례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침례는 회개함에 합당한 새 출발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새 생명을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 알리는 것이다.
3. 십자가의 침례
성경에 제시된 세 번째 침례는 죽음의 침례이다. 특별히 이 침례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20:22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고 하는 그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또 내가 받는 그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고 하시니, 그들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우리가 받을 수 있나이다.' 하고 하더라."
주님은 이미 침례인 요한에게 물 침례를 받으셨다. 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미니가 그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각각 오른 편과 왼 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했을 때, 주님은 이 침례를 받을 수 있냐고 물으셨다. 당시 이 상황은 곧 있으면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여기서
이 침례는 주님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침례는 죽음의 침례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주님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죽음을 대신 받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구원 받아 침례를 받는 자마다 그 죽으심의 고난의 잔을 헛되이 하지 않는
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 받은 성도마다 많은 환란 고통이 다가와도 그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는 자이다.
4. 유대인의 침례
성경에 제시된 네 번째 침례는 유대인의 침례이다. 이 침례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2:38에 잘 나와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이 구절은 특히 그리스도의 교회를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기 쉬운 구절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침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직접적으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침례의 상황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왕으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렸던 왕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처형시키므로 그 왕을 거부했다. 지금 사도행전 2장에서의 유대인들은 바로 그 왕을 거부한 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왕을
거부한 그 죄를 씻으라고 설교한 것이고, 더불어 그 왕께의 회개와 그 표시로써 침례를 요구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8:19에 따르면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니 이는 결국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5. 이방인의 침례
성경에 제시된 다섯 번째 침례는 이방인의 침례이다. 사도행전 10:47,48을 보자. "이 사람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어느 누가 물로 침례받는 것을 금하리요?"하며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그들에게 명하더라..."
이 침례가 바로 교회시대의 구원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침례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믿음에 대한 공개적인
간증으로써 받는 침례인 것이다. 이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로 인한 우리를 구원한 모형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다(벧전 3:21).
여기서 보면 이 침례는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지 유대인의 침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는 것이다. 사도행전
10장의 상황은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집안에서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었던 때인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중에 고넬료의 집안에 있었던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성령을 받았는데 "어느 누가 물로 침례받는 것을 금하리요?"하며 그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던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 "주"(Lord)라는 말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말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주"(Lord)"이듯이
아들도 "주"(Lord)"이시고 성령 또한 "주"(Lord)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빌 2:11, 고후 3:17). 마태복음
28:19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했을 때 "이름들"(복수)이라고 하지 않고 왜 "이름"(단수)이라고 했겠는가?
6. 성령(그리스도의 몸으로의) 침례(1)
성경에 제시된 여섯 번째 침례는 "영적 침례"라고도 불리는 성령침례이다. 고린도전서 12:13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
여기서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고린도전서 12장은 "몸", 즉 "그리스도의 몸"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영적 유기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몸 안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결코 함께 끼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한 성령에 의하여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의 몸은 한 몸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그 한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바로 한 성령에 의하여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고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이
침례는 세상에 속해 있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잠기는 침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침례는 물 침례로 잠기는 물에 참여하듯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에 참여함을 말하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거듭남과 동시에 이 침례를 받았다.
7. 성령(성령의 능력으로의) 침례(2)
성경에 제시된 두 번째 성령 침례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으로의 침례이다(행1:5, 눅 24:49). 유월절과 오순절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으나 종말의 날까지 얼마든지 계속되어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은혜인 것이다(행 2:39).
구원과 동시에 일어나는 몸으로의 침례와는 다른 면에서 사역을 위한 능력을 주시는 성령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기름붓듯하는 능력, 옷입히듯하는
능력이 12사도만이 아닌 얼마든지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사건으로서의 성령 침례이다. 첫 사건인 다락방을 보라(행 2:).
120여문도(행 1:15, 2:1,4)가 다 받았다. 그 중 어떤이들은 특히 12 제자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 방언으로 외치고 있지
않았는가? 또 다른 제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술 취했다고 오해받은 그 방언들로 말하는 능력을 받았다. 왜 500여문도가 승천을 보았는데
120여문도일까?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뜻이 거기에도 보이지 않는가? 성경을 보면, 12는 선택의 수요, 10은
땅의 만수를 나타내고 있다. 행 2:39에서 재차 강조하신 말씀을 보라. 복음을 위한 능력은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만이라거나 사도시대만이 아닌
교회시대 전체를 위한 것이다. 역사를 보면 분명하지 않은가? 교회가 주님없이 배불러서 그 능력이 안 나타났을뿐 주님의 성령의 능력 주심과 그
뜻이 변한 것이 아니다(렘 20:9, 23:29, 눅 11:13, 12:10,12,49).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천신지의 생명수가 황금길
가운데로 흐르는 곳이 아니다. 악의 세력이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대처럼 아니 더 나아가 우는 사자처럼 전 세계적으로 전 인간적으로 설치고 있다.
주님은 몸된 교회로 하여금 실제적이고 역동적인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다. 철학적 현학적 궤변적 상상적인 차원의 침례가 아닌
에스겔서의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고 열방을 살리는 바다를 이루는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 능력을 성령으로 주시겠다느 것이다. 이
시대는 그 은혜의 시대이다. 초대교회처럼 전심으로 주를 섬겨 금식하며 기도해 보라. 주의 약속이 성취되어 교회마다 성령의 살아계신 능력의 역사가
파도치게 될 것이다.
8. 불침례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마지막 일곱 번째 침례는 심판의 불 침례이다.
이 불침례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3:11,12에 기록되어 있다. "...그분은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실 것이며,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
여기서 이 두 구절을 그대로 종합하면, 불이 의미하는 것은 심판의 불이고 지옥의 불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말 4:1, 막
9:44,46,48, 고전 3:12-15, 히 6:8, 계20:13,14 등). 이 불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받게 될
문자적인 지옥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침례를 받은 자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하기를 불 속에서 뛰쳐나오듯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침례주는 심판의 침례주이시기도 함을 알면서 어찌 죄를 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죄의 종 되어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다고
말씀하셨다.
레위기 2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
즉 언약의 하나님의 영원한 절기들이 있다. 골 2:16 말씀대로
영원하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의 생명 속에 성취되었고
성취될 것이다. 그 중 특히 3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들인데 유월절은 영적 첫 열매 그리스도의 부활에의
동참으로의 물세례를, 오순절은 주곡식 추수와 새 법 주어진
성령세례를, 장막절은 모든 열매 추수로의 불세례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우리 안에 그림자가 실체로 체험
될 것이다. 넓게는 그리스도 언약 하나이나 구체적으로는
각각의 언약인 것이다.
출 6:2~8에도 넓게는 아브라함(그 후손 이스라엘)과의
한 언약이, 세부적으로는 세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언약마다 언약의 이름 여호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6절의 애굽에서 구속, 7절의 하나님 백성 됨, 8절의 유업으로의
가나안 땅 등의 언약은 좁게 보면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과
각각 연결 되는 각각의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새 언약 속에 들어온 사람은
부요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의 언약들을 모두
다 누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농사요 그리스도
백성의 길인 것이다. 단편적인 이해가 아닌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고 각각의 언약에의 결단과 헌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침례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에는 모두 여덟 가지의 침례가 있다. 그 여덟 가지 모두는 서로 다른 면들을 계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 6: 에서는 '세례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알 수 있기에 침례는 또한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물침례를 받는 것은 구원받음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난 것을 외적으로 표시하는 공개적인 믿음의 고백이자
하나님께 대한 첫 섬김과 순종의 언약식이다.
세상에서 불러냄 받은 무리 속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새 왕국 천국 백성의 새 출발이다. 지옥 같은 고난이라도 이기는 믿음의 출발이다. 예수님과의
새 출발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새로운 삶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새롭게 소속된 것이다. 성령을 먹고 마시는 역동적인 새 생명 언약식에의
동참이다. 죄악을 지옥불을 무서워하듯이 버리는 참된 성결 언약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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