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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건하게 되는 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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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 고침을 받는 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저절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받아 누리는 우리 인간 편에서 믿음의 결단과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신유의 축복도 그 축복을 받아들일 마음의
그릇이 준비되어야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가?
1) 건강을 열망하라
병 고침도 다른 복과 마찬가지로 열망하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바라고 열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이 없는 한 역사 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질병의 대속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건강을 뜨겁게 열망해야 한다.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만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고 물으셨다. 이 말씀 속에는 '네가 낫기로 결단을 내렸으며, 실제로 병 나음을 뜨겁게 소원하고 있느냐?'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인생은 누구나 결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결단은 우리를 좋은 길로도, 나쁜 길로도 인도한다. 환자가 낫기로 결단하면 복용하는
약도 약효가 빠르고 효과가 있지만, 일단 낫지 않기로 작정하고 죽음을 바라보면 백약이 무효이다. 이러므로 병든 자가 주님의 피흘리심과 채찍에
맞으심으로 다가오는 병 고침의 축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병이 나아야 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마음에 불타는 열망 없이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다. 성령님은 언제나 인간의 뜨거운 소원을 바탕으로 역사하신다(빌 2:13).
2) 죄 사함을 받으라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죄책으로 말미암아 불안과 공포에 쫓겨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되면 행복과 기쁨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왜냐 하면 죄책감이 자아의 양심 속에 끊임없이 불안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파수꾼인 양심이 죄에 대해서 끊임없이 심판한다. 그 때문에 죄를 지으면 양심의 정죄를 받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죄를 짓고 나면 그것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기 때문에 주위에 작은 일이 일어나도 불안과 초조에 떨게 된다. 더
나아가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불안에 언제나 떨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생활 속에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중대한 사고가 생기거나
천재 지변이 일어나면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가 보다.'라고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죄를 지은 영혼 속에는 참된 평안이
없으며 끝내는 질병에 걸려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에는 과거의 모든 언행 심사를 돌이켜 보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죄와 이웃에게 해를 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낱낱이 회개하여 죄 사함을 먼저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요일 1:9).
3) 마음을 지키라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우리의 존재적인 변화이다. 그 결과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되었던 처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넘어뜨리고 다시 지배하려고 한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분명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개 기도를 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한 번 회개하고 마음속의 평안으로 용서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책이 다가오는 것은 마귀의 참소요, 속임수이다. 우리가 마귀의 이러한 참소로 인해 하나님의 치료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되면 질병에서 놓여날 수 없다. 또한 치료를 받았으나, 다시 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질병에서 고침받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귀신의 생각들을 씻어내야 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림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딤전
4:5). 주의 말씀이 항상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생각을 귀신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지켜
하나님께 향하면 귀신이 가져다 준 질병도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을 지켜 주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심하는 사람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질병에서 해방받는 치료를 베풀어 주신다.
4) 미움, 시기, 질투, 분노를 해결하라
우리는 먼저 미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움을 해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면 그 용서의 기쁨과 은혜가 먼저 우리를 통하여 나가기
때문에 우리의 영, 혼, 육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미움이 먼저 우리 생각과
마음을 지나면서 마귀가 거할 곳을 마련하기 때문에 온갖 질병이 발생할 여건이 조성되어지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 그 이유는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이며,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이고, 또한 이웃과
따뜻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다. 용서는 우리 기도가 응답받는 중요한 조건이 되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는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마
6:14,15). 또한 남을 지나치게 부러워함으로 인해 마음속에 시기, 질투, 분노의 쓴 연못이 있으면 건강을 얻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분노를 가진 채 마음의 평안을 잃고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보다 잘 살고 성공하고 축복받는 사람을 끊임없이 시기하고
질투하면 평안을 잃고 잠을 자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함으로 건강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시기와 다툼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약 3:13-16).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시기와 분노와 질투가 있으면 모두 다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될 때 건겅한 마음과 몸을 갖게 되는 것이다.
5) 믿음의 기도를 하라
믿음의 기도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고 바라는 창조적인
선언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실상'이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인데, 이는 '재산' 또는 '토지 문서'를 뜻한다. 이러므로 우리는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건강을 이미 손에 쥔 것과
같은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자기 땅을 찾으러 나서는 사람처럼 건강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채찍에 맞게 하시고
물과 피를 쏟으시게 할만큼 우리의 건강을 소원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다. 어찌하든지 죄사함과 함께 질병의 고통도 제하시기 위해 우리를
치료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에 대한 이 감격적인 믿음이 우리에게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믿는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고 기적과 병 고침을 베풀어준다(행 3:6,4:12).
그 때문에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묶고 치료의 능력을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이 건강하게 되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이미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말은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생각은 다시 온몸의 신경에 건강을 명령하게 되며, 그
명령을 따라 온몸에 생명력이 공급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져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 없으며 아무
소리 안 들릴지라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2. 건강을 유지하는 길
질병에서 치료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 죄를 짓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신유의 기적을 체험하고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육체를 병들게 하는 것은
더러운 귀신이다. 따라서 병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귀신이 우리에게서 묶음을 놓고 떠나갔다는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다. 이 그릇 속에 하나님을 모시든지 귀신을 섬기든지 둘 중의 하나가 있어야 한다. 빈 그릇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이름의 권세로 병 고침을 받고 강건하게 된 후에 우리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면 귀신이 다시 들어 올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이 쫓겨나간 빈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셔들임으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해서
병마가 다시는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뜻과 행실을 거룩하게 하고 죄악을 멀리 해야만 하는 것이다.
2)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오늘날은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과도하게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이긴다면 우리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로 한다.
(1) 인생의 원리를 밝히 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문점인 '나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얻게 되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쉽게 이길 수 있다. 삶의
원리를 밝히 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하찮은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영원토록 계속된다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권세,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다만 행인과 나그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인생의
종국적인 성공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천국 시민권을 얻었으니 성공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성공을 이루었다고 무엇을 그리 좋아하겠으며, 세상적으로 성공을 못했다고 낙심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적인 일에 집착하지 않게 되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생의 진리를 밝히
알고 자족함을 배울 때 스트레스에 눌려 시달리지 않고 밝고 환한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께 맡겨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염려와 근심이 다가온다. 가정 문제, 사업 문제, 생활 문제 등이 마음을 짓눌러 잠 못 이루는 밤이 다가오고, 고통과 괴로움이 심장을 짓누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책임져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마 11:28). 이러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혼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다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파괴된다면 가련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의지한 이상, 우리는 생활 속에 다가오는 문제를 끊임없이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와 짐을
맡길 수 있는가? 성경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읽고 난 다음에 그 말씀대로 염려와 근심을 내어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염려와
근심을 제하여 주시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기도와 간구로 내어 맡기되,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강이 채워질 때까지 해야 한다. 마음에 불안과 초조가 있으면 아직 완전히 맡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계속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에게
있던 무거운 짐이 주의 약속의 말씀 위에 실려 주님께로 옮겨지게 되고 우리 마음에는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평안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3) 정기적인 휴식을 취해야 한다.
사람은 365일 끊임없이
일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휴식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레째는
일을 쉬셨던 것이다. 우리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이레째는 휴식을 취하여 영과 마음과 몸을 재창조해야 한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문제로 365일 동안 계속 뛰다가 제대로 먹고, 마시고, 입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지치셔서 광야로 쉬러 가시고, 따르는 무리를 피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신 적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들이야 어떻게 지치지
않겠는가? 이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엿새 동안에는 열심히 일하고, 이레째에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마음도 휴식하고 몸도 휴식하여
피로를 없애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4) 내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외부에서 아무리 압력이 강하게 가해져도 내부에서 그것을 이길만한 힘이 있으면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적인
힘이 없으면 외부에서 조금만 압력이 들어와도 붕괴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내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가족, 친구, 이웃과의
따뜻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의 보이지 않는 끈은 우리를 용기와 희망의 세계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스트레스에 의해 좌절하지
않게 한다. 또한 신체적인 단련도 유익이 있다. 영혼과 육체는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육체적 단련을 통하여
풀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건전한 스포츠나 오락, 취미 활동은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내적인 힘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어떠한 처지나 역경에서도 이를 능히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핍박을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스트레스를
받아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굳건하게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의 연약한 심성이 강인하게 변화되고 새 능력으로
덧입혀지게 되는 것이다.
3) 성령충만한 삶을 산다.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최대의 비결은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유지하는 것이다. 음식을 잘 먹고 휴식을 취하고 병원의 치료를 잘 받는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평안이 없으면 참행복과 진정한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특히 현대인의 모든 질병의 70% 이상은 마음의 불안과 정서적인 질환에서 비롯된다고
의사들이 진단을 내리고 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무한한 위로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성령님께서는 그 어려운 일보다 더 크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감싸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성령의 위대한 능력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삶의 무서운 경쟁,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의 분주함,
일의 중압과 스트레스, 이 세상 어디를 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깨뜨릴 것들로만 가득 차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태풍이 아무리 요란해도
바다 밑 10m 이하는 조용하다고 한다.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통하여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평화를 갖고 있으면 환난의 태풍이 아무리
요란하게 불어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마음이 평안할 때 비로소 우리의 육신도 지속적인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3. 가시의 문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날마다
성령충만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에 쉬지 않고 육신의 질병과 같은 가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마음에 당황할 때가 있다.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가시에 대해 살펴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가시를 허용하시는 이유
사도 바울은 교만할 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학문적으로 볼 때 로마의
법률과 헬라의 철학과 유대인의 종교에 통달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신령한 면에 있어서도 모든 사람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계시와
묵시를 받아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사람이다. 바울은 육신에 있을 때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의 모든 신비와 영광을 친히 보는 체험을 했다(고전
12:1-4). 그는 낙원의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목격한 뒤에 이 세상에서의 삶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바울은 깊은 신앙의 체험과 심오한 묵시를
계속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깊은 은혜를 체험한 것으로 말미암아 교만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가시, 즉 사단의 사자를 그에게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 결과 바울이 태만하거나 믿음이 식어지면 가시가 그를 괴롭혔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헤와 능력을 구하였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의 체험과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체험과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진리 안에서 떠나거나
나태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육체의 가시, 즉 사단의 사자를 보내시는 것이다.
2) 가시의
종류 바울은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가시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고후 12:10).
(1) 허약의 가시
허약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튼튼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의지하고 인본주의적으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드신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놀라운 힘을 공급해 주신다.
(2) 능욕의 가시
능욕이란
업신여겨 욕보임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세속화하거나 교만해지면 우리의 남편, 아내, 자녀 혹은 은혜를 베푼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고 욕보임을 당하여 마음에 고통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가시에 찔리면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게 된다. 가시를 통하여
회개하고 돌아서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3) 궁핍의 가시
궁핍은 곤궁하고 가난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섭리로써 사랑하는 자녀가 세상적인 쾌락과 탐욕에 빠져 타락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궁핍의 가시를 쓰신다. 우리가 궁핍의 가시에 찔리게 되면 돈과 세상에 대하여 등지고 주님만을 섬기고 따라가게 된다.
(4) 핍박의 가시
핍박은 괴롭힘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 가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 의존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사회적인 핍박, 환경적인 핍박, 가정적인 핍박을 말한다.
(5) 곤란의 가시
곤란이란 처리하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살림이
어려워지고 일이 될 듯 될 듯하고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틀어져 버리는 것이 곤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때로는 곤란의 가시를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3) 가시의 유익성
(1)
가시는 우리 자신을 깨뜨린다.
하나님의 가시는 인간의 교만과 오만을 들추어내고 연약한 모습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가시를 맛본 사람은 하나님 없는 삶이 얼마나 연약하고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이 좋은 본보기이다. 그는 75세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으로 향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여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그를 통하여 온 인류를
축복하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서 그가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완전히 깨어지는데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오면서 교만과 자기 중심적인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시를 보내 주신다. 이 가시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다. 즉, 가시는 우리가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에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사랑의 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의 가시들을 만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3) 가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 위해 능력 주기를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유한한 인간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가시를 보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시에 찔려 괴로움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겸손하게 그리고 잘 감당하게 해주신다.
(4)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한다.
가시는 인간의 교만과
오만을 드러내고 연약한 모습을 깨닫게 한다. 우리에게 다가온 가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쓰시고자 하는 자에게 가시를 보내서 교만과 자아를 깨뜨려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은 우리가 낮아져서 구하고 바랄 때 덧입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깨뜨리려고 다가오는 가시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이 가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케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고후 12:9).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잃었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건강을 계속 유지하고 증진할 수 있는 길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심신의 건강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 문제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그러므로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하게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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