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에서 세상을 통치하실 분을 세우시고 주 또는 여호와라 불릴 분을 세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것이 그의 이름이니 그는 '주(여호와) 우리의 의'라 불리리라"(렘 23:6).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며, 주 우리의 의라 불리실 분이시다.
누가 안식일의 주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바로 안식일의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의 주니라.'고 하시더라"(막 2:28).
신약 전체를 통하여 구속주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정의내려져 있다. 신약에서 구속주 예수님은 주(여호와)라고 불리신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말은 구속주 여호와께 속하는 말이다. 그 어디에 이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처음"은 하나뿐이며 "마지막"도 하나뿐이다. 또한 두 번재인 "처음"도 있을 수 없고 두 번째인 "마지막"도 있을 수 없다.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며,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애곡하리라. 그대로 되리로도. 아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주, 곧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분이 말하노라"(계 1:7,8).
과거에 창에 찔리셨고 앞으로 구름을 타고 오실 예수님께서 여호와이심은 여호와의 증인이 사용하는 <신세계역본>에서도 확인된다.
"보십시오! 그분이 구름과 함께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사람들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부족이 그분 때문에 비탄에 잠겨 가슴을 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또 장차 올 자요, 전능자다"(신세계역본, 계 1:7,8).
이 구절과 짝을 이루는 구절은 앞서 인용한 이사야 44:6인데, 이 구절에서도 이전에 창에 찔리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과 끝이라 불리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짝을 이루는 계시록 1:7,8과 이사야 44:5을 <신세계역본>으로 비교해보자.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를 도로 사는 이인 여호와, 곧 만군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니, 나 외에는 하느님이 없다"(신세계역본, 사 44:6).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또 장차 올 자요, 전능자다"(신세계역본, 계 1:17,18).
<신섹계역본>은 여호와께서 죽은 자였으나 살아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 시작(First)과 끝(Last)을 대문자로 강조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죽으셨으나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 구절에서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은 보좌에 앉으계신 하나님을 지칭한다. 이 구절과 짝을 이루는 구절(계 22:12,13)에서는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와 오메가시며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며, 처음과 마지막이라"(계 22:12,13).
요한계시록 21:5-7에서 보좌에 앉으신 분과 요한계시록 22:13의 그리스도께 똑같은 표현이 쓰였을 뿐만 아니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사 44:6)고 여호와를 일컫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쓰인 것이다.
만일 당신이 "여호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나 예수는..."(계 22:16). 이 말씀을 하신 분이 바로 "내가 속히 오리니.."(계22:12,13)라고 하신 분과 동일한 분이시다.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논리적으로 시작과 끝,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은 둘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곧게 하라"(사 40:3).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인 <신세계역본>은 이 구절에서 주를 여호와로 바꿔 놓았다.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닦아라'.."(신세계역본, 사 40:3).
마태복음은 침례인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함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성취시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마 3:3,11-17). 마가복음은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라.."(막 1:1-3)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침례인 요한을 보내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케 하셨다고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구절도 <신세계역본>은 '여호와의 길'이라고 바꿔 놓았다. 침례인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면서 이 예언을 성취시켰다. 여호와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침례인 요한은 여호와의 길을 준비한 것이다.
누가복음은 침례인 요한의 출생 때 그의 아버지가 요한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너 아기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의 선지자라 불리리니, 이는 네가 주의 앞에 앞서 가서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며"(눅 1:76). 이 구절 역시 <신세계역본>은 주를 여호와라 쓰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면서 여호와의 길을 곧게 한 것이다(눅 3:4,16).
요한복음 1장에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요한이 답하기를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 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라"(요 1:23)고 대답하였다. <신세계역본>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주를 여호와라고 쓰고 있다. 침례인 요한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시는데,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나보다 앞선 분이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는니라.'고 하더라... 그 다음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내가 물로 침례를 주러 왔노라."(요 1:26-27,29,31)
침례인 요한은 누구를 위한 길을 예비하러 왔다고 하였는가? 바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러 온 것이다. 때문에 침례인 요한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온 이유는 그분을 이스라엘에 알리고자 함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침례인 요한은 자신이 길을 곧게 만들어서 드리게 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밝히고 있다.
"그 다음날 다시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께서 거니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니"(요 1:35,36).
아들 하나님은 침례인 요한이 나기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그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마 1:23)이란 뜻의 임마누엘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침례인 요한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이유이다(빌 2:5-8).
"이는 오늘 다윗의 고을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눅 2:11).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증거하고 있다(행 4:12). 디도서 2:13, 베드로후서 3:18도 읽어 보라.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그것이 드러났으니, 그는 죽음을 폐기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히셨느니라"(딤후 1:10).
"이같이 하면 우리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는 입구가 너희에게 풍성하게 마련될 것이니라"(벧후 1:11).
물론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기 전부터 이미 신성을 가지고 계셨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요 1:14).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빌 2:7) 되셨을 때, 이미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처녀에게 잉태되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불리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니라"(행 1:8). "그리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사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지정하신 분이 바로 그분임을 증거하게 하셨느니라. 그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기를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함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행 10:42,43).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다녔다. "그리하여 사도들이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더라"(행 4:33).
성령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셨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들을 다 사해주셨다는 것을 선포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한 그의 증인들이요, 또 하나님께서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고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의논하니라"(행 5:32,33).
당신은 이제 누구의 증인이 되겠는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분만이 유일하시고 참된 구원자이심을 증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위대한 주제로서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성경은 우리에게 수차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한다. 왜냐하면 성경말씀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며,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써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요 1:12,13).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또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서도 제대로 알지를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모르며 내 아버지도 모르느니라.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 8:19).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종교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관점을 받아들였는데, 그들이 보는 관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로는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고 지금도 구원할 수 없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바라보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보라. 그리고 당신 자신의 믿음이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를 확인하기 바란다. 당신의 영원한 삶이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더라"(요 3:39).
자, 그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띠고 인간들 가운데 거하셨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문맥을 살펴보면, 이 구절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예언인 시편 45:6을 인용하고 있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 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로운 홀이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탄생으로 인간의 본성을 지니고 계신 이후에도 계속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당신이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곳도 바로 그분의 왕국인 것이다.
홀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홀을 잡고 계시며 당신은 오로지 그분께서 제시하신 방법(마태복음 22:8-14을 보라.)을 통해서만이 그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요 1:1-3).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역본>은 그 구절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 말씀은 한 신이었더라." 그 어떤 역본을 봐도 이렇게 기록된 것은 없다.
이에 대한 그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다. 헬라어 원문에 "하나님"(God)이라는 단어가 관사없이 쓰였으므로 이렇게 옮긴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원문에 관사가 없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변명이 진짜 이유가 아님은 확실하다. 요한복음 1:6,12,13도 ㄱ관사없이 그냥 "God"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구절들에 대해서 <신세계역본>은 관사 "a"를 넣지 않았으며 대문자 "G"를 그대로 썼다.
<신세계역본>에서 "God"을 소문자 "a"로 바꾸어 쓴 유일한 예들은 "God"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관사가 없는 "God"이 일관적으로 소문자로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3:21; 8:54; 9:16; 9:33 등을 더 살펴보라.) 요한복음 1:1-3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정확히 밝히는 구절인데 그것을 제대로 옮기지 않아, <신세계역본>은 온 우주만물의 창조를 한낱 "신"에게 돌려 버린 것이다.
왜 그들은 그들이 말한 규칙을 따라서 "a god"이라고 옮기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요한복음 6:45은 구약을 인용한 것으로서 하나님이란 뜻의 히브리어로 "여호와"(Jehovah)가 쓰였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같이 사셨으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라는 처녀에게서 나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마 1:23)이란 뜻의 '임마누엘'이라 불리셨던 이유이다.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딛 2:13,14).
빌립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다(요 14:8,9).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요한복음 20:28,29에서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이라 불리셨다.
"도마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마야,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하시니라"(요 20:28,29).
당신도 복을 받고 싶은가? 도마가 믿은 것을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곧 하나님 자신의 피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행 20:28). 이외에도 로마서 9:5, 골로새서 2:9, 디도서 2:13, 빌립보서 2:5-11을 보라.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도 되고 하나님의 영도 되신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고 있는가? 당신의 영이 거듭나면(요 3:3-7,14-18) 당신의 마음 속에 그분께서 들어오실 것이다.
이 구절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들 중 으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그 어떤 질문일지라도 한 번에 끝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왕이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요한계시록 19:13,16도 보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까닭은 그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분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 사실을 믿지만 경우에 따라서 믿음이 흔들린다 하여도 절대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말라. 침례인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을 동안 비록 그가 의심하고 그리스도께 사람을 보내어 당신이 오시기로 한 그분이 맞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행하는 일들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시고 "소경들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문둥병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머거리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2)고 대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셨다고 굳게 믿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신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셨다는 것을 입증하라.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요 11:25). 또 다른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들아, 네 죄들이 용서받았느니라.'하시니, 그 말을 들은 무리 중 한 사람이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막 2:5,7).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 중풍병자를 완전히 치유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음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리스도가 죄들을 용서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실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행위가 필요한 것인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자신이 하신 말씀을 입증하셨다.
이 예언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직전에 한 천사에 의해서 요셉에게 설명되어졌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마 1;23).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실히 하나님으로 불리셨던 또 다른 예언이 이사야서 9:6에 나타나 있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음이니 정부가 그의 어깨 위에 있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경이로운 분이라, 상담자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원하신 아버지라, 화평의 통치자라 불리리라"(사 9:6).
<신세계역본>도 이 구절에서 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이라고 대문자로 씀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 모두 자신을 "나니라"(I AM)고 칭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의 이름은 "나이신 분"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고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하시니라...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출 3:14,15).
예수님 또한 "나니라"(I am)는 이름을 자신에게 적용하셨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죽이려고 하였다.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니라. 그들이 돌을 집어서 주께 던지려고 하였으나.."(요 8:57-59).
당신을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가?
아니면 그분을 거짓말쟁이나 신성모독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므로 이사야는 신성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 즉 놀라운 분, 상담자, 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화평의 통치자라 불리며 태어날 아이가 메시야임을 증거한 것이다. 이 아이가 바로 마태가 알고 있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다(마1:22,23).
이사야 43:10,11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다른 곳에서는 "능하신 하나님"(사10:21)이라 불리신다. 그리고 출애굽기 3:6에서는 "야곱의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 기록되었다. 즉 명백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능하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같은 분이시다(렘32:18). 그러므로 성경해석학이나 주석을 들먹거릴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 즉 "놀라운 분, 상담자, 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화평의 통치자"이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능하신 하나의 신"이라고 하며, 이사야에서 말한 "능하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이사야 9:6에는 히브리어 관사가 없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 10:21에도 히브리어 관사는 없다. 그렇다면 여곱의 하나님이 여호와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는 출애굽기 3:6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언어학자들과는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는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것은 관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성경전체를 통해 문맥에서 어떻게 가르치느냐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의 생각에도 그러했고 요한의 생각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대표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은 요한이 단지 유대인들이 말했던 것을 기록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유대인들의 견해일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자신이 같다고 주장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억지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요한은 분명히 이렇게 기록하였다.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즉 이 부분은 유대인들의 견해가 아니라 성령님의 직접적인 영감을 받고 기록하였던 요한의 의견이다.
믿음과 실행의유일한 규범으로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하다도 주장했던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심과 신격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골2:9).
이 "I am"은 출애굽기 3:14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하려는 의도로 "I am"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분명한 것은 59절에서 유대인들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에 돌로 예수 그리스도를 쳐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보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모세의 율법(레24:16)을 범했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8장에서 분명하게 자신은 영원부터 있었고 아브라함보다 앞섰으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면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I am)"고 정확하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나는 여호와이다(I am Jehovah)!"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 경배하고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정직하게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받았던 상처가 있는 몸의 형태를 가지고 나타나셨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형태로 부활하신 것이지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르치는 대로 단지 영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둘째, 모세의 율법 하에서는 그 누구도 경배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경배받으신다(출 20장).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경배했을 때 실제로는 신성모독죄를 범한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도마를 꾸짖으셨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도마가 말한 것은 사실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주님이시고 그의 하나님이시며, 아들 하나님인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도마를 꾸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과 앞으로의 계획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이러한 성경 진리의 계시 앞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논쟁은 박살나고 만다. 도마와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또한 17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 이전에 계셨고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존속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중"의 하나가 아니라 만물의 창조 주, 즉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변개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재림을 가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구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출판하는 어떤 출판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또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고 있다.
신약성경의 어느 책보다도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증명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며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중보자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히4:12)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판별하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심을 가르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의 위치에서 피조물로 끌어내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히브리서 저자가 교회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주님은 결코 피조물이 아니라 진리 안에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에 의해 새겨진 바로 그 형상이라는 사실이며, 그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셨다는 사실이다(히1:1-3, 딤전3:16, 골2:9).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교리이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 인격이신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주고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마태복음 3장 16절과 17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받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말씀하셨고 아들 하나님은 지상에서 침례를 받으셨고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의 형태로 내려오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격 안에서 세 분이 존재하시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던 제자 요한은 요한복음 5:23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을 존경하게 하려 함이라." 여호와의 증인들이 분명하게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고백했더라도 요한이 말한 견지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아들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한 아버지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고, 그 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리라."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도하신 분은 예수님이고 그 기도를 직접 들으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며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분은 다른 위로자, 즉 성령님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장 26절에서는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같은 한 절에서 하나님의 세 인격이 모두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 세 분 인격은 하나로서 하나님의 일들을 하신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1:35을 읽어보라.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49절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던 구절이다. 16절에서는 분명하게 "그들의 눈은 가려져서 주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지만 예수님의 뜻에 의해 제자들의 눈을 가리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과 말씀하실 수 있었지만 그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님인지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하셨다.
31절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부활이 그 제자들에게 임하였다. "그 때 그들의 눈이 열려서 주를 알아보자 주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시더라." 그때서야 그 두 제자는 자신들과 걷고 이야기했던 그 분이 영광 중에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다. 이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모여 있던 열 한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고 그 말을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앞에 나타나신 것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놀라고 무서워서 어떤 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성경 본문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야말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에 대해 확고부동한 기초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본문은 계속된다. 제자들이 유령으로 알았던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가졌던 모든 의심은 제거되었다. "어찌하여 너희는 불안해 하며,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의심이 생기느냐? 나의 손과 나의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자기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여 주시더라"(눅24:38-40).
아무리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에 세뇌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직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36절부터 43절까지 읽은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몸을 가지고 부활하셨고 자신의 말로 영의 개념은 살과 뼈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하지만 자신은 살과 뼈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은 또한 자기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여주시기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예수님께서 몸을 가지고 부활하셨다는 또 다른 증거는 42,4절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과 벌집을 드리자 그것을 잡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행위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만들어 낸 신화에 나오는 "영적인 피조물"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요한복음 20장에서 의심많은 도마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도마는 문자적으로 예수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했었다. "내가 주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또 내 손가락으로 그 못자국에 대어 보고, 나의 손으로 주의 옆구리에 넣어보기 전에는 결코 믿지 않겠노라"(요20:25). 26절부터 31절까지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처음 나타나신 때로부터 8일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 다음과 같이 계시하셨다. "...문이 잠겼는데 예수께서 오셔서...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나의 손을 보고 너의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요29:26,27).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또 럿셀이 만들었던 신화대로 "영적 피조물"이었다면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손을 보고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말했겠는가! 이 본문에서 가르치는 결론은 오직 하나, 도마에게 만져 보라고 하셨던 것은 실제적인 손과 실제 옆구리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 자신이 부활하신 몸에 대해 예언하셨다.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삼일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요2:17-19). 요한은 그 성전이 "자기 몸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요2:21)이라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자신은 몸을 가지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셨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며,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능력이 있으시므로 필요할 때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나타나실 뿐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분해되었거나 어딘가에 보존되었으므로 십자가 사건 이후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Studies in the Scriptues Vol. v. p.454). 그러나 이것은 부활하신 지 약 30년 후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친 바울의 교리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론이다(딤전 2:!5).
요한복음 20:25,26에서 제자 도마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고(27절) 통렬하게 후회한(28절) 것을 읽는다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려 하지 않는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마에게 보여주신 몸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몸"이 아니라 나무에 달리셨던 주님의 "육체적" 몸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인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몸으로 살아나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용하는 구절은 베드로전서 3:18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사셨으며 하나님이신 성령님에 의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음을 입증하는 말씀이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영적 부활'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는 로마서 8:11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예수글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따라서 베드로전서 3:18의 의미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영적 존재로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육체적인 부활을 하셨다. 환영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썩는 것을 보게 하지 않으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거룩한 몸으로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한 성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와 다시는 죽지 않은 몸이 되셨다. 영원히 죽음을 이기신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분의 교회를 데리러 오실 때 우리도 그와 같은 몸이 될 것이다(살전 4장, 고전 15장).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있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최종 권위는 온갖 학자들의 서로 다른 견해로 뒤범벅이 된 그들의 교리이다. 그들은 그 거짓 교리에 근거하여 성경을 고치고 비유적으로 문맥을 해석하는 것이다. 말씀은 곧 능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지 않고 그 말씀 앞에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그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역사하지지 않는다. 이단 교리와 건전한 교리의 차이는 곧 지옥과 천국의 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은 이러한 거짓 교리에 대적하여 건전한 교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부터 돌이킬 수 있게 해야 한다(딛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