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인 봉평은 온 천지가 메밀투성이다. 하얗 게 대지를 수놓은 메밀밭을 찾아 일본에서 온 두 명의 여인들과 함께 떠나는 1박 2일의 가을여행.
함께 떠난 독자는요
나라 유리에(26)는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환학생.
일본에서는 도쿄 이케부쿠루에서 살고 있으며 한국문화에 대해 호감 이 많은 매력있는 아가씨. 한국의 매운음식이 특히 마음에 든다는 유 리에씨는 솔직하면서도 열정적인 한국사람이 마음에 든다는 그녀는 한국에도 많은 친구들이 있는 붙임성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유리에씨가 어학연수를 하는 어학당에서 만난 에미꼬는 히로시마출신 의 화끈한 성격의 아가씨. 한국어가 너무 어렵지만 한국은 다 좋다는 대책없는 한국사랑을 가진 에미꼬는 자신이 혹시 전생에 한국에서 태 어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너스레를 늘어놓기도 할 정도로 농담도 잘하고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소금을 뿌린 듯한 풍경의 메밀밭을 보다
여행을 떠나는 날은 마침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 여름 폭염에 시달린 대지를 위로하듯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를 반복하며 쉬임없이 흩뿌렸다. 날씨 때문인지 사방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빗속을 뚫고 두 명의 아가씨들이 종종걸음으로 달 려왔다. 비록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한국에서 처음 으로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의 마음만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아 보였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기울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 었지만 일본인 두 아가씨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목적지인 장평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경 일행은 봉평 입구에서 메밀 정식과 메밀국수등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메밀로만 차려진 상은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우리나라의 소바를 한국에서는 메밀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오늘 처 음 알았어요. 우리는 소바를 먹을 때 그냥 소스에 찍어먹는데 수제비 나 칼국수처럼 다양하게 만들어서 먹는다는 것이 참 신기하네요.”
봉평은 마침 메밀꽃이 활짝 피어서 메밀축제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다양한 현수막이 어지러울 정도로 붙어있고 비가 오는 중에도 가설무 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설무대 뒤편으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하 얀 메밀꽃이 점점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메밀꽃은 밤에 아름답다고 했다. 이효석은 달빛에 비친 메밀꽃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을 통해 섬세하게 기록해놓았다.
“대화까지는 80리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 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날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 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 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과연 그러했다. 일행이 봉평을 떠나기까지 메밀밭을 여러 번 보았지만 그때마다 메밀밭은 소금을 뿌린 듯한 사태진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효석의 생가에는 음식점만이 서있고
누가 그처럼 메밀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으랴? 가산 이효석 은 봉평을 대표하는 일반명사였다. 봉평의 볼거리중 절반 이상이 이효 석이나 그의 작품과 관련된 것이었다. 1907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출생.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당시 최고 명문인 경성대학교 영문학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초기에는 당시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사회성짙은 작품들 을 썼지만 조선총독부 검열계에 취직해 작품을 검열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효석의 삶은 경성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시도 평탄하지 못했다. 일제말기 아내와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만주일대를 떠돌다 뇌막염으로 객지에서 사망 했다. 그때 나이가 불과 36세였다.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문학적 업적은 탁월했다. 경성고등 학교 교사 시절 창작한 메밀꽃 필무렵이나 ‘산’ ‘들’등의 자연주 의 문학은 아직도 백미로 꼽히고 있다. 특히 ‘메밀꽃 필 무렵’의 봇 짐을 멘 장돌뱅이의 묘사나 메밀밭에 대한 묘사 등은 금방이라도 튀 어나올 것처럼 탁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두 일본인 아가씨들에게 이효석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아무 래도 역부족했다. 우리말로는 그의 서정을 담아내기에 충분했지만 향 토적 색채가 짙게 깔린 가산의 문학을 에누리없이 전달하기란 애초부 터 무리였다. 하지만 두 아가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메밀밭의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에 취한 것 같았다.
“일본에서도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마치 염전에 들어 선 것 같네요.” 나라에씨는 일본에 가서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 라며 이리저리 메밀밭을 헤치고 다녔다. 아직까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에미꼬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벙긋거렸다.
사실 메밀밭이 무성한 봉평은 다른 곳보다 고도가 높은 곳이다. 보통 7백 미터 정도의 고지가 대부분이다 보니 아무리 사람이 활동하기에 좋은 높이가 7백 미터라고 하지만 논농사를 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님 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다보니 옥수수나 메밀같은 고랭지 작물들 만이 자랄 수밖에 없었다. 메밀은 어찌보면 가난했던 시절의 상징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식민지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한번도 중심이 되지 못한 지역의 한과 가난의 설움이 모여서 저토록 하얗게 빛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현재의 봉평은 예전의 시골스러움을 조금씩 벗겨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 시절의 정겨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봉평 면소재지로 들어서니 마치 봉평의 상징이라도 한 것처럼 이효석 의 동상이 일행을 반겼다. 가산문학공원이라는 이곳에는 이효석 문학 비와 함께 가산의 생애와 문학적 성취를 적어놓은 비문이 새겨져 있 다. ‘귀공자’와도 같은 이효석의 풍모가 느껴지는 문학비를 지나 남 안교를 건너면 허생원이 하룻밤 몰래 사랑을 나누었다는 물레방아터 가 복원되어 있다. 그 앞에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을 성 싶은 ‘메밀꽃 필 무렵’의 일부를 옮겨놓은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 물레방아는 시원 한 물줄기와 함께 돌아가고 내부에는 실제로 곡식을 빻을 수 있을 것 처럼 절구가 파여져 있었다.
허브나라에서 허브 향취에 취하고
두 일본인 아가씨는 물레방아를 보며 물었다. “아레와 난데스까?(이 것은 무엇입니까?)곡식을 물레방아의 힘으로 빻는 기구라고 설명하며 원리를 이야기해주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절구부분을 만졌다. 물레방 아를 지나 메밀밭을 따라가다 보면 이효석 선생의 생가가 보인다. 가 산의 생가는 아무런 꾸밈이 없다. 안타깝게도 생가를 알리는 표지판조 차 두동강이 나 있었고, 이효석 생가라는 현판과 방명록마저 없다면 이곳이 어디인지조차도 모를 지경이다.
그저 전형적인 강원도 농가의 하나일 따름이었다. 생가의 처마밑에는 몸집이 큰 개 한 마리가 게으른 하품을 하고 있었고, 생가옆으로는 메 밀로 만든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만 생가에서 눈길을 끄는 것 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승과 돌탑뿐이었다.
생가를 나오니 오락가락하던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한치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어두워졌고, 겨우 4시도 넘지 않은 시 간인데도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다. 바람마저 거세어져 있었고, 간판이 흔들릴 정도였다. 방송에서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가을을 시샘하는 듯한 비바람 때문에 일행은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발이 가늘어진 틈을 타서 일행은 흥정계곡과 허브들이 살고 있는 허브나라로 향했다.
흥정계곡은 봉평에서 6번 도로를 타고 가면 약 5분 거리에 있다. 계 곡의 입구에서부터 수정같이 맑은 물줄기가 반기고 점차로 넓어지는 계곡이 빼어난 볼거리를 제공했다. 계곡의 모습을 마치 두고온 고향처 럼 푸근하기만 하다. 금방이라도 계곡으로 뛰어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 고 싶을 정도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흥정계곡에서 일행은 비를 맞으 며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계곡에 물이 비가 오면서 불어나서인지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형성되 어 있었고 계곡의 끝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깊기만 하다. 그렇게 10 분 정도를 달리다 보면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곳이 바로 허 브들이 살고 있는 허브나라다. 향도 향이지만 허브나라를 들어가는 입 구는 마치 요정의 나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오목조목 귀엽게 치장되 어 있었다. 허브나라 안으로 들어가자 갖가지 허브가 구획별로 자라고 있고, 동화의 성처럼 아름다운 카페가 여러채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에도 허브가 유행이에요. 저도 허브를 참 좋아하고요. 허브는 쓰임새도 참 많아요. 차로 끓여 먹기도 하고, 향을 맡기도 하고, 바르 기도 해요. 하지만 이렇게 예쁘게 꽃밭처럼 꾸며놓은 것은 처음 보네 요.”
허브나라 농장은 약 6천여 평의 허브 꽃밭이 있다고 했다. 쏘는 듯한 박하냄새같기도 하고 장미내음 같기도 한 냄새가 아련하게 코 끝을 자극했다. 카페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허브의 성처럼 허브꽃이 사방에 걸려있었다. 허브를 응용한 제품은 수도 없이 많았다. 허브를 이용한 방향제품은 물론이고, 허브차와 허브 베개, 허브인형, 허브 액자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개발되어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중의 상당수가 국 내산이라기보다 일본이나 동남아에서 만들어진 것을 수입해 온 것이 었다.
허브카페에서는 허브차는 물론 허브를 이용한 토스트와 허브로 쌈을 싸서 먹는 정식까지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냄새만으로도 행 복했다. 허브차 한잔을 마시며 하늘을 보니 허브향을 머금은 하늘이 보인다. 그 냄새는 가을의 냄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행은 모두 말을 잃었다. 다만 허브냄새처럼 포근한 자연을 느낄 뿐이었다.
이승복 기념관에서 느낀 씁쓸한 비애의 역사
봉평을 떠나기 전에 일행이 들린 곳은 유명한 봉평시장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은 열리지 않았다. 비가 너무 내려서 장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좌판도 판을 걷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올챙이 국수를 먹고 싶었다. 2년전인가 봉평에 찾아왔을 때 맛을 보았던 올챙이 국수는 조미료가 없이 양념장 만으로 먹는 강원도만의 별미였다. 짙은 조미료에 입맛이 길들여진 사람들이야 싱겁기 그지 없 고 씹을 틈도 없이 스르르 분해되는 올챙이 국수에서 풍미를 느끼기 힘들겠지만 한번 입맛을 들이면 마치 고향의 맛처럼 잊을 수 없게 만 드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에미꼬에게 올챙이 국수의 아련한 향수를 이야기 하자 어떻게 올챙이 를 넣은 국수를 먹느냐며 질색을 했다. 면발이 마치 올챙이 처럼 톡톡 끊어져서 올챙이 국수로 부른다고 하자 마치 메밀꽃처럼 환하게 웃으 며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일행은 끝내 올챙이 국수를 먹을 수 없었다.
길을 따라 일행은 이승복 기념관으로 향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다 만 분단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그 시절의 모습을 일본 아가씨들에게 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승복 기념관은 남북화해무 드가 본격화된 때문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면적만도 족히 수천 평이 넘는 기념관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오히려 이승복의 동 상이 측은하게 보일 정도였다. 반공기념관 내부에는 끔찍해보이는 인 민군의 모습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이승복과는 별로 관련이 없을 성 싶은 전시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반공기념관 옆에는 엉뚱하게도 동식물 기념관이 가건물로 세워져 있 다.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서인지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쾌쾌한 냄새가 불쾌하기 그지 없다. 여러 종류의 화석과 동식물의 박제가 있었지만 불과 5분을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 나와야 했다. 기념관 좌측으로 는 대포와 전차 비행기 모양이 엉성하게 세워져 있었다.
기념관을 돌면서 두 일본인 아가씨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만 유리 에씨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일들이 이제는 없어야 할 것 같 다”는 성숙한 소감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이제는 봉평과 아쉬운 이별을 할 시간이다. 일행은 마지막으로 팔각정에서 장쾌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 저멀리서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가 손 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끝내 떨치지 못할 그리움을 담은 메 밀밭이 사르락 거리며 이별인사를 한다.
에미꼬와 유리에는 봉평의 이곳저곳을 마치 사진기로 담아두고 싶은 사람처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일본에 가서도 사람들에게 이곳을 한 번 꼭 들려 보라고 권하고 싶 어요. 한국에서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풍경중에 하나라고요. 그리고 다시 한국에 오면 들르고 싶어요.”
어느새 날이 저물고 어둠이 내려왔다. 메밀밭이 소금을 뿌린 듯 하얗 게 빛을 발하고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서울로 향했다.
글 / 최병일 기자
사진 / 황성우
봉평가는 길
서울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로 신갈 인터체인지나 중부고속도로로 호법 인터체인지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여주, 원주를 지나 면 온이나 장평에서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오면 봉평가는 이정표가 보인 다.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동서울 버스터미널이나 상봉 시외버스터 미널에서 첫차 6시 30분에서 막차 18시 55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수시 운행된다.
봉평의 특산물과 식당 (지역번호 033)
메밀국수와 메밀가루는 담백하면서도 깔끔함 맛이 일품이다. 특히 봉 평에서 판매하는 메밀국수 팩은 품질면에서도 최고로 처준다.
막국수 집은 어느 곳이 제일 맛있다는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어느곳 을 들려도 강원도의 풍부한 인심과 맛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곳으 로는 기풍메밀면옥(335-0242), 청옥막국수(333-3311), 백조막국수 (333-2280)등이 있다.
잠자리
봉평에는 휘닉스 파크가 유명하다.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라 미래형 산 악도시를 지향하는 곳으로 21세기형 종합레저타운이다. 스키장, 골프 장을 비롯해서 수영, 테니스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국제 수준의 연 수호텔기능을 갖추고 있어 기업체 단위로 연수를 오기도 한다.
(문의 서울 02-508-3400 , 033-333-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