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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화의 원리를 찾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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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변화라는 것을 특별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정의 반복이라는 것을 보면 당연한 듯 합니다. 낮과 밤이 반복되고 여름과 겨울이 뒤바뀌는 것을 보면서도 당연하게 느낍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일련의 반복이기에 뚜렷한 특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변화는 자연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에도 찾아옵니다. 어려서 세상물정 모르는 나이와 나이들어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기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변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가 오고 난 후에 당황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조용히 그 단계를 즐기기도 하며 동시에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작은 의문점을 갖게 됩니다. 무엇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며 변화는 어떤 원리로 진행되는 것일까? 이것은 마치 석가모니가 인생의 희로애락의 원인을 찾았던 심오한 질문같기도 합니다. 수행승이 일생동안 매달려야 풀 수 있는 화두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뛰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인생을 논할 만한 나이도 아니고 그럴만한 식견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변화의 원리 즉 易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의 개인적인 일상사 얘기를 꺼내봐야겠군요.
1. 주역을 접하다 제가 이런 질문을 처음 접했던 것은 주역이라는 학문을 알았던 무렵이었습니다. 뚜렷한 계기가 되어 주역에 심취했다기 보다는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전제가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쎄요.. 미래를 알 수 있다니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위하여 사람들은 수천년간 연구를 해왔던 겁니다. 그렇게 지속된 학문의 명맥이라면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그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때까진 특별히 이것을 어떻게 응용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당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는데(참 이것저것 관심은 많았습니다^^) 컴퓨터의 이진법 체계를 그대로 64괘와 384효에 담아내는 주역의 논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복희씨(주역의 괘를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물)와 컴퓨터가 일대일로 만나 논리가 전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글쎄요. 아직 지식과 생각이 짧은 까닭에 그 심오한 이치를 전부 파악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연관이 있다!'는 본능적인 감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복희씨가 컴퓨터의 발명을 예언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학문은 결국 하나의 진리로 통일되기 마련인데 컴퓨터와 주역은 적어도 (언제 만날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하나로 통일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컴퓨터 => 주역 => 미래예측' 이것은 생각할수록 어렵고 오묘한 하지만 신나는 생각거리였습니다. 흔히 주역을 공부하면 수명이 단축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주역의 진리에 한번 빠지게 되면 밤이고 낮이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이 공부에 매달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위편삼절을 하면서까지 공부한 공자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군요. '독서를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제시하는 위편삼절(책을 묶은 가죽끈이 낡아 떨어져 세번 묶다)이라는 말에서 책은 바로 주역책이었음을 아시는 분은 잘 아실 겁니다. 공자가 인간수명이 짧음을 한탄하며 "내게 50년만 더 주어졌더라도 역의 진리를 좀더 깨칠텐데..." 탄식했다는 일화도 공자가 역공부에 푹 빠져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걸로 뭘 해먹겠다는 뚜렷한 목적은 없었지만 저도 그냥 주역을 공부한다는 게 좋았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재밌었습니다. 64괘를 이렇게도 봐보고 저렇게 배열해보고... 8괘의 조합으로 세상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합된 괘에서 옛날 이야기같은 내용들이 술술 풀려나오는 것을 보면 놀랍기도 했습니다. 초효부터 상효까지가 일의 시작부터 끝이라는 시간개념과 아랫부분부터 윗부분까지라는 공간개념을 동시에 상징한다는 사실에서도 그 논리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이부분에서 끄덕끄덕 저부분에서 끄덕끄덕.. 적당한 난이도에 내가 이미 알고있던 사실이 스무고개하듯이 하나씩 접목되가는 맛이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사건을 해결해 가는 맛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처음 주역을 접하고 1년여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가 역을 구했던 것은 단순한 호기심만족이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듯 합니다. 가끔씩 주역점을 치기도 하고 상당히 정확한 결과에 나 자신도 놀라워한 적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제 역은 생활 자체와는 무관한, 진리로서의 역일 뿐이었습니다.
2. 역이 번져서 投資의 문제로 당시 2000년은 나의 최대의 관심사가 된 자산관리가 시작된 해였습니다. 윗제목에선 역에서 시작된 듯하나 처음엔 역과 투자가 아무 관련이 없었죠. 당시 난 투자에 있어서 왕초보였고 당연한 결과로 자산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연구, 반성에도 큰 변화가 없던 내게 워렌버펫과 피터린치를 안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천천히 정도를 걸어라. 그러면 성공한다.' 바로 이거였습니다. 내일의 기온을 예측하려는 어리석음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그만 놓친겁니다. 이것은 투자의 정도가 사계절에 따른 '장기투자'라는 것을 그리고 해당 작물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분산된 집중투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투자도 사계절의 변화가 적용되는 역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달았을때 내 역은 새로운 세계로 붉게 번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히 내가 역을 찾는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3. 명리학과 역
4. 마라톤의 역 그후 나는 운동에도 역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라톤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는 힘든 스포츠입니다. 그 안에는 인생의 굴곡을 상징하듯 수많은 부침이 존재합니다.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아스팔트길인지, 앞에서 바람이 부는 건지 다양한 변수가 순위와 컨디션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인생속에 사계절이 있고 그 안에 여름과 겨울이 반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라톤에서 우리가 오버페이스할 때 얼마못가 기운이 부치는 것처럼 그리고 스피드를 내야할 때와 현상유지하며 체력을 쌓아두어야 하는 구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항상 똑같은 속도와 힘으로 달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집중해야할 때와 쉬어야할 때를 먼저 구분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겨울에는 꼭 쉬어야하고 봄에는 꼭 씨를 뿌려야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게 바로 역을 알고 행하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내가 역을 찾는 또다른 이유입니다.
5. 인간관계와 역
역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속에 존재합니다. 물론 인간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랑과 갈등, 행복과 분노, 증오, 집착, 섭섭함 등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 사람'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합니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일종의 윤회라고 설명합니다. 아마 죽어야만
윤회한다고 아셨던 님들이 많을 것입니다.
6. 내가 변화의 원리를 찾는 이유 - 봄여름가을겨울과 행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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