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술의 정의

침술은 인체의 체표에 흐르고 있는 경락과 경혈에 일정량의 자극을 가하여 기혈의 순환을 조절하고 원활하게 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의술이다. 인체는 기와 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기혈이 원활하게 순환한다면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만약 기혈이 어떤 원인에 의하여 순환장애를 일으키면 그것이 바로 질병으로 되어 경락과 경혈에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침술은 침이라고 하는 특별히 제조된 도구를 활용하여 일정한 경락과 경혈을 선택하여 일정량의 자극을 가하고 그에 따라서 부조한 기혈순환을 정상으로 회복하게 하는 의술이다.
침술이 인체에 일정량의 자극을 가한다는 데서 일반적으로 자극요법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침술은 극히 한정된 점상의 부위인 경혈을 시술부위로 택하고 있으며, 치료점으로서의 경혈의 선택과 시술수기의 차이에 따라서 침술의 효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침술은 단순한 자극요법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침술의 효과는 가장 빠르고 가장 신기한 것인데, 그 효과는 경락을 어지럽게 자침하여 과도하게 출혈을 한다든지 혼란스럽게 하는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질병의 허와 실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보법과 사법을 운용하므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술은 고도로 발달한 손가락의 지각신경과 섬세하고 치밀한 기술로써 질병의 치료 이전에 인체의 기혈의 조화를 꾀하는 의술이다.
또한 이런 점에서 침술은 치료의학일 뿐만 아니라 예방의학으로서도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1침 2구 3약]이라 하여 침술을 모든 의술의 단연 상위에 놓았다.

침술의 연혁

침술의 발상지가 한국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요,따라서 동양의학의 최고 경전이라고 하는 황제내경은,황제가 동류할 때 태백산에서 자부선생을 만나 뵙고 술서를 얻어 정리한 책이다.

이황제내경은 소문편 이법방의론에도 "동방지역은 삼면이 바다이어서 주민은 자연히 짠 음식과 생선을 즐기게 되고 그로 인해서 종기와 같은 질병이 흔하게 되므로 그들은 일찍부터 폄석이나 패각을 이용하여 기를 통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는 치료법이 성행해 왔다"고 기록해 놓음으로써 우리 조상들이 이미 유사이전부터 침과 부항을 시술해 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1929년에 함경북도 웅기면 송평동에서 석기시대의 유물인 돌침과 뼈침이 발견(현재 중앙박물관에 보존 중)되었는데 이는 황제내경의 기록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침술은 원래 돌침(폄석)으로 부터 발전한 것으로 석기시대에 이미 그싹이 있었다. 그 뒤 쇠붙이가 발견된 시대에 와서 침의 재료로 금속을 이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침술이 애당초에는 압통점이나 반응점을 목표로 하던 것이 차츰 체계화되고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침술을 다른 의술과 분리하여 침술만을 단독으로 행하는 전문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침술 전문인이 배출되어 국내외에 명성을 날리게 되면서, 일본에 침술을 전파하였던 것 같다.
일본사기에는 황극주 4년 여름 4월에 안작득지가 고구려의 학승에게 들어 전하기를 호랑이와 글벗이 되어 그시술을 하였는데 호랑이가 그 침을 주면서 "삼가하라, 사람에게 알게 하지말라. 이것으로 치료하면 치료되지 않는 병이 없다"하였다.
과연 말과 같이 치료하여 차도가 생기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고, 또 일본의학사(부사천유지음)에는 "기하기남마가 신라에 들어가 침술을 배우고 황극주 원년(서기642년)에 일본에 돌아와 침박사가 되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우리의 침술이 일본인들에게 선망되었던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침술 교재로 내경,침경,명당경,갑을경등이 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중세에 와서 고려조에서는 의업과거제도에 명당경을 통달하고 또 침경등 9권과 난경 1권을 합한 10권을 통달해야 했던 것으로 보아 침술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상당하였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와같은 전문적 침술은 근세에 와서 이성익(번침술의 대가),허임(허임 침구경헝방),사암(사암도인 침구요결)등 대가를 배출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사암도인은 오행침법의 완성자로서 유명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훌륭한 침술도 의업을 천시하던 조선지배층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국내에서는 음지로 숨어들게 되고 오히려 외국으로 건너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일제 치하에서는 한민족 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침술은 기진맥진하게 되더니 다시 미군정법에 의해 침구사에 관한 법령이 유보되고 또 5.16최고회의에서는 국의법 제9장 59조(침사법)조항이 삭제되어 이땅에서 침술은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되는가 싶었는데 1972년에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공 방문으로 침술이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되자 다시 이땅에서도 회생의 기미를 나타냈다.

맹인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직업교육의 하나로 해부 생리 , 한방 , 침 , 병리 , 임상 , 진단등의 과목으로 삼년동안 침을 배우며 익히고 있다. 한약에 대한 교육과정은 없으나 한국 맹인 이료 연구회에서 2 년간의 교육을 통하여 다시 한번 침에 대한 이해와 한약 그리고 임상실습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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