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태담론

생명사상의 역사와 철학 글 : 김지하

오늘 얘기 주제는 '한국의 생태담론'인데, 그러니까 생명론이 되겠죠.
한국 전통적인 생명론에 대해서 한번 정리를 해달라는 얘긴 것 같습니다.
기왕에 20여 년 넘게 그쪽 공부랄까 얘기를 해왔는데, 난 공부를 열심히 못합니다. 학자가 아니 니까.
그러나 조금씩이나마 하는 과정에서 도달한 결론은 생태 담론·생명론의 핵심, 그건 동서 양이 합쳐서 특히 동북아시아 한국의 생명론의 핵심은 '모심' 한 데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모심이 충족이 되야 살림이 가능하고, 살림이 충족돼야 아름다움이 결실을 맺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은 모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심을 통해서 생명론, 환경운동, 생태학적인 모든 모색의 결론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또는 미적 충 족감에 도달해야 끝이 나는 것 같습니다.
또 진정한 시작이 미적 판단에 도달할 때에 비로소 가 능하지 않느냐. 생명은 아름답다는 것에 도달해야 그것이 각 수위, 교육, 문화, 언론, 기타 과 학에 있어서까지도 그 아름다움의 인식을 딛고서야 함부로 생명 복제니 뭐니 그런 얘기 함부로 접근 안하고,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한국적 사유의 원형

한국은 아시아의 모든 오래된 전승들을 원형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가 질 만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얘기한다는 것은, 인류의 시원으로서의 아시아의 고대, 아 시아의 상고, 원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족의식은 전세계적입니다. 이점을 꼭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의 전승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곧 세계적 전승의 한 중요한 부분을 얘기하는 것이 됩니다.

우선 이 네 글자를 아시죠?  ,  , ��,  .
 은 광명, 빛, 햇빛, 태양 이런 겁니다만,
또   은 어둠, 물, 구멍, 여성성, 어둑어둑한, 노자가 동굴이나 현빈(玄牝)이라고 표현했던 그런 것 이 다  입니다.
�坪� 아시다시피 우주, 큰 것, 낱 개, 한 개, 중앙, 뭐 이런 게 있습니다. 우 주죠.  은 햇살, 솔개, 새, 생명, 이런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말이 우선 우리 민족 또는 한국 의 사유방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것들이 모두가 생명 과 연관됩니다.
이것은 우선 묵상을 통해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그래서 맨 먼저  · ·�阪ㄱ÷� 모두 생명의 원초적인 것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사상, 동아시아 고대의 전승은 생명과 깊이 뿌리를 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 다.

두 번째는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은 북두칠성을 보고 경배하고, 북두칠성을 통해서 우주에 대한 인식을 키워왔고, 특히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관계를 통해서 종교적 심성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런데, 북극은 바로 물입니다. 어디서 보니까 스티븐 호킹도 지구생명의 기원을 북극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전승들도 모두 북극, 북극성에서 생명의 기원을 찾고 있습니다.
한민족, 또는 동아시아, 또는 중앙 아시아의 고대 생명론, 고대 생태담론의 기원은 바로 북극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생성도 북극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냥 설화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아주 쉬운 얘기지만 그 우리 할머니들 보면 정화수 떠놓고 빌 때 삼신할머니한테 빌 죠.
그게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는 겁니다. 좋은 아들 점지해달라고 할 때.
그래서, 삼신(三神), 북두칠성, 북극성,  · ·�阪ㄱ�, 이것이 전부 한민족의 고대 종교의 핵 심사상들인데, 그 중에 삼신은 직접적으로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는 생명과 아주 직결되는 신앙 대상이었습니다.
또 삼신은 아시다시피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삼극(三極)사상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또 1만 4천년, 2만년전 지구의 가장 평화로웠던 우주적 상태의 기원을 지구 중력권에 직녀성, 태양계 중심의 남두성, 은하계 중심의 북두성(북두칠성), 이렇게 해서 삼신의 거리가 가까워지 면서 이루어졌던 그 당시의 우주 상태가 가장 지구 중심의 우주 판도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 이었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삼신은 생명론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는 예맥·숙신 등 동이족, 한민족에 대해서 얘기 중 호생불살 생군자지국(好生不殺生君子之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산 것을 좋아한다. 살리기를 좋아한다. 생명을 사랑한다. 이것이 호생입니다.
그 다음에 불살생. 산 것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죽 인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족성이 그렇다는 겁니다. 엄밀히 따져서 민족성이라는 것이 존 재하는가 하는 질문은 철학적으로 제기될 수 있습니다만 실제에 의해서 민족적인 근성이 불살생 즉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지국(君子之國)라, 군자의 나라다 이런 말이 있습 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동시에 생명, 생명 살리기, 또는 산 것을 좋아하는,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 그런 근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가 됩니다.

接化群生-생명론의 핵심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의 종교, 시원의 종교는 풍류도(風流道)입니다.
풍류도에 대해서 고운 최 치원 선생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나라에 현명한 도가 있으니 그 이름 이 풍류다. 그것은 포함삼교(包含三敎)하고, 애당초부터 유(儒)·불(佛)·선(仙) 삼교를 아울러 포함하고 있고,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 인간뿐 아니라 뭇 동식물과 무기물까지도, 산 것, 존 재하는 것 일체를 사랑해서, 가까이 사귀어서 감화, 변화, 진화시킨다.
인간만이 아니라 뭇 동 식물, 산 것들, 그리고 살았다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실지에 있어서 산 것과 다름없는 무기물들, 돌, 흙, 물, 바람, 티끌마저도 다 산 것으로 인정해서 접하고, 즉 사귀어서 가까이 사귀어서 감 화시키고 진화시키고, 변화시킨다.
이것이 사실상 제가 한 20년 생태학이니 환경이니 생명이니 이렇게 얘기하면서 한 4-5년 전에 도달한 결론입니다.
접화군생(接化群生) 네 글자 안에 현대생 태학, 생명론의 핵심이 들어있는 것 아니냐.
생명의 가장 큰 특성은 세 가지 또는 네 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영성이 있다. 생명은 관계한다, 관계성이 있다. 생명은 순환성이 있다. 그리고 생명은 근본적으로 다양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영성을 다양성 안에 포함시키기도 합 니다.
그러나 다양성에만 영성이 포함된 것은 아닙니다. 관계성, 순환성에도 다 근본적으로 영 성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영성만 따로 떼서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가 되던지 네 가지가 됩니다. 그런데 이 接이라는 것이 관계성입니다.
化는 순환성입니다. 무리 群자는 다 양성. 생은 영성이라고 불러도 좋고,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여튼 생명의 중요한 특성들을 접화군생 네 글자가 다 압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자를 중심 으로 해서 기록되어 있는 동양문학의 고전들을 읽을 때에 그 고전의 희귀성을 감안해서 이 방 법, 저 방법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접은 뭐고, 화는 뭐고 해보는 거죠. 좀 우습습니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뭔가 접근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대생태학뿐만 아니라 탈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철학 쪽에서도 중요하게 제시되는 소 위 삶의, 문화의 미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인 패러다임을 모색할 때 接化群生이라는 말처럼 정 확하게 이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말은 드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변화한다 할 때 이 화(化)가 진화라고 한다면 생태윤리적 패러다임이 되지만, 이것이 감화라고 할 때는 상당히 미적인 패러 다임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옛날에 나왔던 영화입니다만, 제가 젊었을 때 '나의 청춘 마리안느'라는 영화를 봤 습니다. 그 영화에 보면 뱅상이라는 주인공이 기타를 심오하게 치는데, 그 기타를 치니까 기숙 사안에 있던 친구들이 다 감동을 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창밖의 사슴들, 토끼, 다람쥐들이 와서 다 감동을 해요. 거기 뭐 물, 돌까지 감동을 했다는 말은 없지마는 그것까지 가능하겠지요. 이 게 接化群生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술의 최고 목표는 뭇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감동시켜서 그의 행동이라든가 인생을 변화 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예술의 진정한 그랜드 마스터들은 대개 비밀의 일기라든지 여 러 가지 그 흔적 없는 기록들을 통해서 또는 대화를 통해서 사물까지도 감동시키는 것을 예술의 최고목표로 하라고 말해왔습니다.
동서양이 같습니다. 동식물뿐만이 아니라 무기물까지도 감동 시킬 수 있을 때에 예술은 비로소 종교의 높이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목표입니다.
그렇다면 接化群生이, 풍류도가 어째서 화랑들의 수련지침이었는지, 그리고 많은 仙人들의 수련 목표였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고, 오늘 우리가 모심이라고 했고, 한국의 생태담론의 맨 마지 막 결론을, 생명론의 결론을 미적 판단, 미적 체험에 두는지, 풍류가 왜 종교이면서 동시에 예 술인지, 또 생태운동이라든가 환경운동이 어째서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문화운동 쪽에서 인간의 마음을 생명론으로 생태적 감각으로 바꿔야만 해결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감시 고발 만 일삼는 환경운동이 어째서 미래의 전망이 없는지 알게 될 겁니다.

고대 사상의 인간규정
삼일신고라는 천부경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 한민족의 고전 가운데는 인간의 규정은 성(性)·명 (命)·정(精), 즉 성품, 목숨, 그리고 정기로 사람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진 (眞)'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규정의 진면목이죠. 그런데, '망(妄)', 이것은 거짓이 라는 뜻이 아니라 보이는 측면을 말합니다.
거기에 대응해 보이지 않는 본질 측면을 '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진'의 측면의 성(性)·명(命)·정(精)은 요샛말로 인간의 영성과 생명이라 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눈에 보이는 차원 '망'은 정(精, 정력)·기(氣, 기운)·신(神, 신명) 이 렇게 불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반망환진(返妄還眞), '망' 즉 보이는 차원이 도리어 수련을 통해 서 보이지 않는 진실, 성(性)·명(命)·정(精)으로 돌아가는 것을 수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데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생명의 규정으로서 두 면목이 있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모두 생명의 여러 가지 특징들입니다.
다음으로 삼일신고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천부경에 가장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즉, 여러 가지 얘기가 81자로 전개되는 중에 그 핵심부분에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사람가운데는 천지가, 우 주가,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일돼있다.
하나다. 人中의 가운데 중(中)자는 인간의 마음이겠습니 다.
또는 인간의 속, 내부, 내면에는 우주가 하나로 통일돼있다. 또는 하늘과 땅이 통일돼있다.
이때 이 중(中)은 객관적으로 표시해서 中이 되었습니다만 이것을 껑충 뛰어서 19세기에 동학에 나타난 人中天地一의 표현을 본다면 시천주(侍天主)가 되겠습니다.
이게 '모심'이죠.
사람은 천 지를, 통일된 우주를 또는 하늘과 땅이라는 즉, 개념과 물질 또는 벼리와 진료를 모시고 있는 것이죠.
수운 선생은 天地人을 설명하면서 天을 五行의 벼리, 강(綱)으로 보았고, 地를 오행의 질(質), 바탕, 질료, 물질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 인(人)을 사람을 오행의 수기(秀氣), 주 체로서의 생명으로 보았습니 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생명은 자기 안에 우주의 벼리, 큰 기틀, 그리고 개념, 법칙, 원칙과 우주의 구성의 물질, 진료, 바탕, 그것을 하나로 통일해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고, 동학에서는 모신다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이 모심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풀지 못한 일체존재와 생명의 존재근거가 아닌가.
모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봐야하는 거 아닌가. (이제 좀 개똥철학적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자각했을 때, 누구를 섬기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떠 받드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우리가 윤리적으로나 감성 적으로 모시는 마음이 됐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바로 그렇다면 이 모심으로부터 새로운 생 명운동, 환경운동을 시작해야되지 않겠는가. 제가 결론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만. 그러면 우리나라 한민족의 전통 종교가 風流인데, 풍류는 仙道입니다.
전통적인 神仙道는 오늘 제가 누누이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철두철미한 생명사상입니다.
중국 쪽으로 발전한 선도, 중국선도라고 볼 수 있는 노장학이 근본을 따지면 모두가 생명론인 것처럼 동으로 흘러온 선도, 우리 나라의 풍류도 역시 철두철미한 생명사상입니다.
4천 7백여 년 전에 황제(黃帝)가 기백(岐 伯)과 대담한 황제내경이라는 책이 있지요. 상당히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중국사상에 가장 시원 을 만드는 황제내경. 이는 한의학의 원조이면서 지금까지도 한 자도 수정이 안 되고 그대로 온 존돼 있고, 전승되고 있지요.
수정이 안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런데 황제내경은 중국인까 지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황제가 묻고, 東夷族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제자인 기백이 대 답합니다.
기백(岐伯)은, 紫府仙人은 東夷族으로서 당시에 청구(靑丘, 푸른 언덕)라고 불렀던 해동, 산동성에서 출현한 선인들입니다.
이건 중국인들이 인정하는 겁니다. 따라서 岐伯의 사상은 紫府仙人의 사상이고, 紫府仙人의 사상은 東夷族의 신선도, 생명사상입니다.
그런데, 대강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저도 황제내경을 깊이 못 들어가 봤습니다. 한번 정도 읽었 지 너무 어려워서 뭔지 모르겠는데, 중국철학, 중국의 생명사상, 중국의 우주사상의 근본을 이 루는 것 같습니다.
황제내경은 첫째, 생명의 책입니다. 앞으로 어느 분이 촘촘히 연구해서 발표 를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선도가 그렇다고 그랬습니다. 풍류도가 그렇다고 그랬었고.

풍류도는 접화군생을 핵심내용으로 한다고 돼있는데, 접화군생이라는 말 앞에 포함삼교라는 말 이 있습니다. 삼교는 유불선을 말하는 것으로 유불선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敎旨, 즉 그 종 교의 근본 뜻들이 애당초부터 풍류도에 포함돼 있다. 아우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는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교, 불교, 그리고 중국 선도라고 할 수 있는 노장학, 또는 도가 사상들이 쉽게 들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 쉽게 흘러 들어왔죠. 마치 기독교가 우리 나라의 신 선도가 하느님 사상이었기 때문에 쉽게 들어온 것처럼 삼교도 쉽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불교 의 중생관, 생명관입니다. 또는 자비관. 노장학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근본적인 현빈사 상, 생명사상이 모두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많이 공부하고, 두고두고 울궈먹어 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울궈먹기 이전에 그 중심에 많은 기록이 안 남아 있지만은 한국의 원형적인 생명 사상에 대해서 천착해야 합니다.
이것을 중심에 놓고 유불선과 기독교와 현대생태학을 끌어들이 고, 서양의 생태학에 좌지우지 휘둘려, 또 노자, 공자, 또 석가 이쪽에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중심을 못 잡는 그런 공부태도보다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된 아시아 고대 상고대의 근본 생명 사상에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기록은 많지 않지만, 한국민족의 고전적인 생명사상을 중심에 놓 고 유불선과 기독교 또는 현대 생명과학들, 생태학사상들을 공부해나가는 종합, 이 렇게 해서 동서양이 종합을 이루는 공부태도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제가 권유하는 바입니다.

유교의 생태정치사상 - 왕도정치의 재해석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제가 오늘 중심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유교의 생태적인 정치사상, 이것과의 관련입니다.
중국정치의 고전적인 정치의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생태 생명적인 우 주사상이 가장 근본에 있습니다. 유가의 왕도정치가 가장 현실적인 생명생태사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천을 앞에 두고, 여러분들이 구하는 생태적 담론에 중요성을 얘기할 때 에 유가 흐름에 한국의 유가 흐름에 한국의 생태사상, 또는 중국 자신의 생명사상을 따져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유가의 생명 생태사상, 즉 왕도정치사상에 있어서 왕도정치란 인간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천자, 즉 임금은 모든 이 우주상의 나타난 모든 존재에 대해서 덕을 베풀어야되고, 치화(治化), 즉 왕화(王化) 정치에 영향력을 베풀어야 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유가의 왕도사상에 있어서 왕도정치에서 가장 핵심으로 삼는 것은 세 가지, 오행(五行), 오사(五事), 황극(皇極)이라는 3 가지 디멘션이 중요합니다.
우선 여기까지 얘기해놓고, 한민족의 전통적인 생태담론 가운데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것은 원효입니다.
이미 들어와서 불교가 무르익기 시작했을 때에 튀어나온 원효의 무애(無碍) 사상은 거칠 것이 없이 툭 터진, 오픈마인드해서 어떤 불교학, 교학으로서의 불교라든가 선불교 라든가 일체의 계라든가 무슨 까다로운 학적 체계 같은 것을 다 뛰어넘는 그야말로 툭 터진 민 중적 불교사상, 이거야말로 一心, 한마음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이 마음이나 저 마음 또는 무 의식이나 초의식이나 현실의식, 이 모두를 뛰어넘는 한 차원, 즉 이게 생명입니다.
우리가 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생명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말이 없습니다. 생명이라는 거, 생명 현상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생명현상을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無碍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 무애는 바로 내가 공부하기에는 천부경의 無 化三 어떤 울타리나 테두리를 치지 않고, 오픈시켜 버릴 때 비로소 天地人이라는 우주의 가장 기본적 구성원리가 감각 적 체험을 통해서 굴러간다는 얘기입니다.
또 이 천지인은 인간의 몸으로 따지면 정기신이라 그 랬고, 성명정이라고 했는데,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라는 인체구성의 모든 780개 안팍 경락계 모든 핵심, 소위 생명의 조절 센타가 다같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化三. 천지 인이면서 정기신입니다.
신명정충기장(神明精充氣壯)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 제대로 다 굴러 가는데, 무엇이 필요하냐. 조건은 오픈시켜 버리는 것. 그러니까 천지인이라는 것까지도 오픈시 켜 버립니다.
자기를 해방시킬 때에 비로소 우주의 생명이 제대로 굴러간다.
그런데 이런 기본 적인 일심사상, 한마음 사상, 한 생명 사상, 또는 무에 가까운 한 근본적인 생명에 대한 얘기들 은 그 뒤로도 이어집니다.
그가 불교를 했든, 유교를 했든, 노장학을 했든, 그리스도교, 최근에 는 그리스도교도 제대로 하는 분들 보면 바로 이 일심이, 해방하는 일심사상이, 한 생명사상이 밑에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을 여러분들이 주의해서 모든 사상가를 통해서 봐 야할 것 같습니다.

이규보, 그 뒤에 정제두, 이영익, 정인보까지 이어지는 양명학, 花潭 서경덕, 鹿門 임성주, 惠 崗 최한기까지 이어지는 소위 기철학, 이 모두가 생명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국적 기철학을 우리나라에 선도, 풍류도의 일심사상, 一始無始 한 생명이 최초의 생명이, 생명이 없는 무라는, '활동하는 무'에 관한 생명사상에 바탕을 대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남명 조식이나 퇴계 이황까지도, 율곡은 물론이고 밑에 생명사상을 깔고 있다는 얘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 다.
그러니까 이것을 미리 말씀드린다면 無 化三, 테두리 울타리를 다 치워버릴 때, 천지인이 라고 부를 수 있는 우주구성의 세 특징이 제대로 굴러가게 된다.
이것이 원효의 무애 사상이고, 이것이 한국불교의 큰 기둥이 아닌가 그렇게도 보입니다.

아까 얘기로 돌아가서 그러면 오행, 오사, 황극으로 표시되는 소위 왕도정치 생명정치의 고전적 핵심, 동양정치의 핵심, 이것에 이르기 위해서 조금 살펴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여러 가지 천재지변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은 중국의 왕도정치와 관련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한서나 후한서, 또는 수서 이런 것들을 베껴온 것만은 아닙 니다. 이미 아시다시피 고구려 天象列次分野地圖와 같은 천문도와 관련된 것으로 봐서 당시에 평양이라든가 국내에,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하여튼 간에 천문이 있었 다는 것, 한민족에 천문지능이 있었다는 것. 왜 그러냐면 삼국사기에 나타난 천재지변의 열거, 내용들이 수서, 한서, 후한서에 나타난 천재지변 형태하고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낀 게 아 니라는 얘깁니다. 해서 일부에서 김부식도 재평가하자는 얘기들 있지요.
단재가 몰아쳐 가지고 김부식은 사람 같지 않은 사람으로 내쳐버렸는데, 아 사람 같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친일파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 공적이 있으면 건져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상적으로는. 그런 것처럼 한번 평가를 해볼 때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지요. 일식, 삼국시대에 나타난 천문현상으로서 일식, 일 변(해가 이상해지는 것), 월변(달이 이상해지는 것), 오성변(별들이 성좌가 이상해지는 것), 성 운, 이런 천재들이나 큰 뱀, 그러니까 용이 나타났다든가, 여름이나 가을에 이화도화가 다시 핀 다든가, 큰 바람, 나무가 뽑혔다든가, 지진, 산이 무너지는 거, 큰 돌이 스스로 굴러가는 거, 흰 고기, 흰 꿩, 붉은 새 이런 것들이 나타나는 거. 이런 것들이 전부 천재지변 희귀죠.
이런 것들이 나타나면 임금한테 문제가 있다 이렇게 봤던 겁니다.
그러니까 임금한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중국 유학의 영향인데, 이런 현상들을 열거한 것은 이쪽 삼국시대에 이쪽에서 본 천문현상 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덮어놓고 김부식이 중국 것을 완전히 베껴왔다고는 이렇게는 말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말 어렵습니까? 이것은 앞으로 김부식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왜냐면 삼 국사기에는 이것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담론체계가 그 나름대로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평가를 해야된다는 얘기입니다. 우린 삼국유사만 제일로 알았죠.
삼국유사도 훌륭하고, 삼국사기도, 가 난한 집에서 보리밥, 쌀밥 찾을 필요는 없죠. 뭐, 봐야되는데, 그 보는 각도가 뭐냐면 災害, 災異, 수상, 상스러운 조짐, 이런 것에 대한 얘기를 우리 나라에서 관측해 가지고 우리 나라에 서 판단하는데, 판단근거를 중국 유학에서 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 거기서 가져왔다, 영향 을 받았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올바른 게 아니냐 이거죠.
그러니까 김부식에 대해서도 정당하 게 평가하자 이겁니다. 흥분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봐서는 안 된다.

홍범구주와 황극사상

서경의 홍범구주에는 五行, 五事, 皇極이 있고, 八政, 五紀, 三德, 六極, 뭐 이런 것들이 있습 니다만 이중에 가장 중요한 게 오행, 황극, 오사입니다.
이것이 왕도정치, 도덕정치에 핵심부분 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행이라는 것은 자연적이 형태로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거, 이게 오행입니다.
그리고 이건 자연적인 생태입니다. 불이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거, 또 나무는 꾸부러지든가 펴서 쓸 수 있다는 거, 또 쇠, 금은 이렇게 꾸부러트려서 다른 걸로 여러 가지 모습을 만들어 쓸 수 있다는 거, 토 흙은 농사지을 때 근본이 된다는 거. 이것이 오행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의 생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틀릴 수가 있습니다. 나무가 꾸부려지든가 펼 수 없고, 또 쇠를 꾸부려트려서 뭘 만들어 쓸 수 없고, 물이 아래로 흐르질 않고, 불이 위로 타오르질 않고, 또 흙을 농업에 사 용할 수, 농사짓는 데 사용을 못한다는 상태가 나타날 때, 이것은 문제가 생겼다 이겁니다.
이 때는 책임이 군주의 부덕의 탓이거나 정치를 잘못했거나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오행이 그 본 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렇게 판단을 내렸다 이겁니다.
누가? 군자들이.
즉 지식인들이. 그러니 까 고대 자연관, 왕도정치를 쓴 이희덕 선생 같은 분은 나보고 낄낄 웃으면서, '그 당시 임금을 갖고 놀았지 뭐', 그렇게 농담을 하더라고.
그러니까 지식인들이 까딱하면 임금더러, '저기 물 이 아래로 흐리지 않는데, 당신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된 거냐' 이러는 거야.
하늘이 군주의 부덕한 행위나 잘못된 정치에 대해서 견책(천변이라고 그럽니다.)을 내리는 걸로 봤습니다.
오사 다섯 가지 일은 뭐냐면 군주가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주의해야 될 것이, 얼굴, 말, 눈동자, 귀(듣는 거), 그리고 생각하는 겁니다.
용모를 단정히 해야되고, 그러니까 뭐, 뻘 건 새가 나타나서 춤춘다 이거 불길한 조짐이다 그러면 당신이 용모를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렇게 된 거 아니냐. 이렇게 따졌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왕이라는 게 꼼짝을 못했어요. 지식인들 한테. 군자들한테.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은 정직하게 하고, 또 정직한 도에 따라야 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밝게 보고, 일체의 행동에 근본을 세우고, 총명하게 듣고, 만사를 바로 이해해야 되고, 생각은 깊이 하고, 원만하게 해야된다. 이것이 오사입니다.
왕이 오사에 주력해서 오사를 이루면 세상이 반드시 잘 다스려지고, 수상, 상서로운 일이 생기 는데, 만약 그렇지 않고, 얼굴이 공손스럽지 못하고, 말이 제멋대로 나가고, 보는 것이 밝지 못 하고, 듣는 것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을 할 때에는 오사가 부정해서 구징(咎徵 허물이라는 뜻이죠)으로 나타나죠.
그 징표로서 잘못했다는 지적으로서 견책으로서 재해가 일어난다. 아까 얘기한 그런 이상한 일들이 나타나고, 물이 흐르질 않고, 불이 타오르질 않고... 있을 수 있을까요? 불이 위로 안 올라가고 밑으로 내려가고, 물이 위로 올라가고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이거죠.
라리냐나 엘리뇨나 그게 뭐예요? 그 형태만 조금 다를 뿐이지.
그런데 이 셋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皇極인데요. 이 황극은 홍범구주, 아홉 가지 원칙의 하 난데, 군주가 도를 세워야하고, 스스로 그 도를 실행하고, 인민을 잘 교도하면(잘 가르치면) 인 민도 왕을 본받아서 선행을 하게 되고, 오복을 누리게 되는 거, 이것을 황극이라고 합니다.
이 것은 또 우주적 측면에서 보면 千人合一입니다.
이것이 황극인데요. 황극은 인극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하늘의 뜻을 잘 이루는 것을 인극이라고 합니다. 임금이 인간으로서 하늘의 도를 이루기 때문에 황극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인간이 도덕의 극치에 도달하는 거, 이것이 인극이고 또 이 것을 임금이 그렇게 할 때 황극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군주가 왕도의 중정(中正) 그 중 심을 잃고, 도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즉, 황지불극, 자기가 할 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이때 재해가 발생합니다.
자연생태계 파괴, 오염, 붕괴, 아까 얘기한 그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중국적인 천인합일 사상인데, 이것은 천부경에 일관되 게 제시된 천인합일사상, 인중천지일입니다.
인간 가운데에 천지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천 부경의 사상이야말로 천인합일사상의 근겁니다.
그래서 동학도 천인합일사상 아닙니까. 바로 그 점에 주의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유학의 생태사상 즉 오행, 오사, 특히 천인합일을 뜻하는 황극은 정역(正易)에 오면은, 천인합일 사상을 周易으로 푼다면 2,800년동안 주역이 지배해왔죠.
중국사상이 아시아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역에 나타난 황극은 임금의 도덕이고, 임금의 왕도정치를 위한 본이죠,
본, 본분인데, 이것을 정역에 오면 1879년에서 1885년까지 저술되고, 공포된 김일부 선생, 연산 띄 울 인내강변에 김일부 선생이 발표한 정역에 의하면 군주만이 아니라 일체의 민중이 황극을 실 현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민중시대가 도래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임금만이 아니라 선 택된 자만이 아니라 모든 아녀자, 아이들까지도 남자는 물론이고, 모든 민중이 황극을 즉, 하늘 의 가르침대로 따르고, 하늘과 일치하고, 천인합일 해서 아까 얘기한 오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야된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민중성인시대가 와야된다. 민중이 성인이 되야 된다. 이 말은 모든 민중이 오행을 따라서 오사를 지켜야 된다는 얘기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뭐를 암시 받을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고전을 추수, 뭐 그렇게 해서 여기 인기 날리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뭐, 그것만 꽁지 따라다닌다고 뭐 나오는 거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버리지 않고, 오늘에 맞게, 또 미래에 맞게 우리가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느냐 못하느냐에 고민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옛날 것 좋다고 뭐 따라다녀야 나올 거 별로 없어요.
내가 상고사 뭐 한다고 단군 한다고 욕을 막 살쾡이같이 하는데, 하도 오해를 너무나 크게 해버리니까 나 할말이 없어져요. 그러니 뭐, 맘대로 생각해라. 거기서 뭔가 우리 가 찾아낼 게 있으니까 그걸 찾는 거지.
덮어놓고 쫓아다니면 어떡합니까. 지금이 고대도 아닌 데.
유가의 천인합일과 왕도로 표현된 중국적인 그러면서 그 근거를 따져 가면 동학, 혹은 고대 상 고대에 있었던 생명생태사상을 오늘날 모두가 왕자요, 모두가 군주요, 모두가 임금인 이 민주주 의 시대에 실천할 수 있겠는가.
실천한다면 그 모양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그러니 까 생태, 환경, 생명사상을 추구하는 여러분들의 경우에 이것은 어떤 모양이 될 것인가 한번 생 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모든 민중운동, 그 중에 특히 시민운동을 도맡아하는 지식인들이 이 일을 한다면 그 모양은 어떻게 될 것이냐.
오행, 오사, 황극을 실현한다면 우리도 얼굴을 공손히 하고, 허허, 참 힘들 거예요.
거, 누가 내가 대학교 때 율곡의 持身章 꼼짝하지 마라 이거야. 눈도 왔다갔다해선 안되고, 손도 까딱까 딱하면 안되고, 가만히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라고. 건들거리지 마라 이거예요.
그래 내보고 난 원래 손가락도 까딱까딱 하고, 발가락도 까딱까딱 하고, 눈도 왔다갔다한다 이거야.
에라이 소 인이다. 다해 먹어라. 못하겠어요. 못하면 소인이라고 했어요.
근데, 난 소인이거든. 공자가 소 인이라고 할 때는 북방계 이 동이족같은 유목민들을 전부 소인이라고 했어요. 줏대도 없이 막 이 나라 들어가고, 저 나라 들어가고 왔다갔다 떠들고, 말 타고 댕기고, 발가락 아니라 엉덩이 까지 실룩실룩하고 그러니까 이거는 소인이다 이거야.
군자라는 건 동쪽에서 해가 뜨면 탁 일어 나고, 큰 논밭을 갈다가, 서쪽으로 해가 지면 탁 잠자고, 또 동쪽에서 해가 뜨면 또 일어나고.
이게 농민이죠. 그 농민적인 덕을 세계관을 갖추고 지식화한 것이 군자고, 뭐, 이렇게 봤다는 겁니다.
이 천지는 네모가 난 모난 땅이고, 하늘은 둥글고, 그러니까 천지는 무너질 까닭이 없 죠.
가만히 있는 것이 죠. 이 동이족 유목민계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세계는 둥글고, 갈 데는 많고, 허허, 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뭐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이 몽골리안 루트라는 게 이 소인들의 땅이라 소인들끼리.

예, 황극을 실현하기가 힘듭니다. 해석을 잘 해야될 것 같습니다.
생각을 바로 하고 등등. 임금 이나 천자 같은 기품을, 기품 있게 사는 것이 황극일텐데, 이렇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 몫입니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늘 얘기해왔던 우주 사회적 공공성, 공 심.
공공성의 근본은 公心입니다. 아니면 공공성이 근본이고, 공신이 용이던가. 하여튼 천지가 다 내 집이고, 만물이 다 내 형제고, 내 몸이고, 이런 마음을 꼭 갖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갖출 려고 애를 쓰는 것 이 天地公心을 갖는 것이 황극의 기본 조건이 아닌가. 우주사회적 공공성.
그래서 시민운동이 매일 밥 먹는 문제, 똥싸는 문제, 뭐 상수도, 하수도 문제를 전부 공기오염 이나 물의 오염으로 연결시켜서, 국회에서 저 지랄들 할 것이 아니라 물을 맑게 하자고 막 떠드 는 놈이 나와 가지고 물을 맑게 하는 데 뭐 5%만 맑게 할거냐, 뭐 100% 맑게 할거냐 뭐 이렇게 싸워야합니다.
이것 가지고 여야가 딱 갈라져 가지고 예산책정 하는데 시비가 붙고 이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 김상종 교수가 외롭게 싸우는데, 수돗물에 바이러스 있냐 없냐 가지고 그게 사실은 정당에서 싸워야될 문제라고.

모심의 미학

바이블에 제일 아름다운 부분이 하느님이 창조를 끝내고 나서 아 좋다 이거지. 그것처럼 멋진 부분이 없다고.
아름답다 이 말이야, 자기가 해놓고. 아름답다. 이 판단. 완성입니다.
프리드리히 실러가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에서 프랑스 혁명을 실패작으로 규정하죠.
아주 갈깁니다. 정치나 경제, 즉 도덕과 자연 충동, 이 두 개 그러니까 정치나 경제적 충동, 또 는 그 방향에서 혁명을 다그치기 때문에 그렇게 혼란이 왔다는 겁니다. 5월 학살이라든가 루이 16세 처형이라든가 그 뒤로 전세계를 막 짓밟고 다니죠.
만약에 제 3의 충동인 미의 충동 미 또 는 종교적 충동인 유희충동에 기초를 두어 가지고 미적 교양과 미적 교육을 통해서 완성된 평형 잡힌 인간, 즉 종교나 종교라든가 성스러움, 옛날 종교적인 인간에 대해서 요구했던 그런 근본 적인 어떤 아름다운 인간, 온전한 인간에 대한 교육을 대중화시켜서 그런 인간들이 세계를 변혁 시키는 운동을 했더라면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수 백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다시 문제가 되는 내용입니다.
미적 교육과 상상력, 미적 판단 의 온전함, 이것들을 통해서 성스러움에 거룩함에 도달하고, 최고의 미는 숭고미입니다.
이랬을 때 세계가 다시 제 모습을 찾지 않겠는가. 황극이 이것이 아닌가요? 즉 하느님이 자기가 만든 예술품을 보고 아름답다 라고 하듯이 우리가 변혁시킨, 치유한 세계를 두고 아름답다하고, 우리 가 치유해야 할 세계의 미래상을 아름답다고 보고, 거기에 근접한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그 런 미적 의식을 가질 때, 우리 쌍놈들도 황극에 도달하는 거 아니냐. 적어도 아름답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에 못 미칠 때는 치유를 해야죠.
물도 우선 봅시다. 우리 시커먼 물은 아무리 막 조사해봐도 깨끗하지 않아요.
눈으로 보는 게 제일 빠르다고. 저 목포의 서한태 박사가 전문가 좀 와주쇼 해도 목포니까 못 간다 어쩐다 그러 면 이 눈이 전문가야, 눈이 . 보고 시커머면 그게 절대로 깨끗할 리가 없어.
그래 눈으로 찾아다닌 거야. 그것도 한계는 있 겠죠, 한계는 있겠지만. 하여튼 그래서 생태 환경, 생명사상과 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 가 천지공심과 미적 의식이 아니겠느냐.
디멘션으로 따지자면 종교심과 소위 그 아름다운 마음.

그런데 이러니까 또 자꾸 국수주의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바로 동학이 그것을 시도한 것 같다 이 런 얘깁니다.
시가 그것입니다, 모실 시. 그런데 사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서화담이나 혜강 최한기의 기학 사상이나 동무 이제마의 의학사상, 또는 김일부나 강증산 사상까지도 왜 그러냐 면 동무 이제마도 보면 인간의 현대인, 근대인들이 이렇게 병이 많은 것은 지구가 몇도 기울어 서 경사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고 까지 봤어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도 다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

이 하여튼 동학 얘기를 다시 한다면 동학의 시천주, 동학의 시천 주를 모심, 하늘을 모심, 이때 그 시, 이 모심 안에 어떤 비밀이 있는게 아니냐. 천지공심도 미 적 판단, 세계에 대한 미적 판단에 근거한 거 아니냐.
우선 모심은 세 가지 생명의 특성을 모십니다. 영성과 관계성 및 순환성과 다양성을 모십니다.
모심, 시에 대한 최수운 선생 자신의 해석에 내유신령 외유기화 일세지인 각지불이(內有神靈 外 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유신령, 인간의 모심이란 한울님을 모신다 는 것은 안으로 신령함을 모시고, 밖으로 기화, 기운의 변화. 인간과 모든 존재는 동식물이나 무기물까지도 하늘님을 모셨다고 봅니다.
동학에서는 일체, 一物도 다 하늘님을 모시지 않은 게 없다고까지 봅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모든 욕망이나 추한 의식까지도 모든 욕구나 어 떤 망상까지도 그 안에 하늘님을 모신다고 봅니다.
그것이 마귀로 둔갑해서 나타나서 그렇지 그 안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령이죠. 그러니까 영성을 가지고 있다. 외유기화, 기화, 기운의 변화란 바로 관계하고 순환하는 일체의 生生化化, 동양의 고전적인 철학에서 유학에서 말하는 일체 우 주는 생생화화 한다. 낳고 낳고 변화하고 또 변화한다. 또 죽고 또 태어난다. 이게 기화입니다.
이게 순환과 상호 관계를 전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래서 기화란 아주 가장 작게 얘기하면 사 랑입니다.
사랑, 우정, 친교, 이런 것을 기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동학에서는 술을 氣化茶라고 하죠. 그러니까 생생화화하고 순환시키고, 좋게 떠들고 서로 상호 뽀뽀하고 이런 걸 전부 기화 라고 합니다.
안으로 신령하고 밖으로 기화하고, 관계성, 순환성이죠. 그 다음에 일세지인 각지 불이 원래 떨어지지 않는, 떨어지면서 떨어지지 않는 어떤 이상한 우주의 기운 우주의 유출, 총 유출 우주기운의 총유출로부터 떨어지지 않는 통일성을 각자 각자가 다 알아서 깨닫고 실천한 다. 각지불이 이게 다양성입니다.
우선 생명의 세 가지 특성을 모시는 것을 모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생태운동에 있 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모심이 아닐까 나는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모심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모든 것을 모든 사물과 인간을 또는 욕망까지도, 무기물까지도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를 모심을 뜻합니다.
이 모심은 해월 선생에 오면은 포태로 발전합니다. 포태, 애기를 갖는 것. 이것이 모심의 시각 적으로 가장 분명한 형태입니다.
그래서 동학에서는(지금 천도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 습니다만) 부인도통을 제일로 치죠. 부인은 애당초부터 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시천주 시대에 있어서 타고난 도인이다 고 보는 거죠. 아이를 갖는다는 거 아무리 극악한 여자 들도 이 배를 중심으로 살고, 이 배를 중심으로 사고하죠. 아이를 자기보다 더 중요시합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이게 남자는 모르는 세계죠. 그 벌써 아이를 가지면 태교라 그래가지고 악한 거 생각하지 말고, 많이 움직이지도 말고,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요?
이것이 벌써 하나의 종교 라 이 말이야. 모심. 이래 서 여자들이 애를 한번 낳고 나면 아주 성숙한다는 이 말이에요.
정신적으로 성숙한다고. 바로 이것은 교육에도 해당되고, 미적 판단에도 해당됩니다.
우리가 서양인들한테 항상, 그런 게 없다 이러는데, 뭐가 없다는 얘기냐 했을 때, 이 모시는 태 도가 부족하다.
허나 기독교인들은 또 다르죠.
성 프란치스코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노래, 시 자 체가, 사물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봤지만 하느님의 피조물이지만 낮춰보지를 않죠. 한 형제로 보 고 높이 보죠.
그러니까 동서양을 통해서 이 모심 그런데 이 유물주의자들의 모심이라는 거 하 고는 거리가 멀죠.
물건 이상 뭐가 더 있냐 이런 식으로 보는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죠. 그러니 까 벌써, 아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모시는 마음 아닙니까?
또 모심은 어디로 발전하느냐 하면 동사(同事)로 발전합니다.
天 - 활동하는 무
그런데 시천주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뭘 것 같습니까?
시천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천(天)'이죠,
하늘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하늘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어요.
수운선생 자신의 해설 가운데, 하늘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나는 이것을 '활동하는 무'라고 부릅니다.
하느 님은 활동하는 '무'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그러한 창조적 활동이다. 미의 근거를 무에 두어 야합니다.
즉 가질 수 있는 것,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키는 것, 또는 기타의 번잡스러운 욕 구를 일으키는 것과 욕구 자체, 이런 것은 우리가 보면 안보입니다.
내가 미학과를 공부를 해 도, 그런 것을 미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관심적 쾌'라는 말이 있죠. 그러니까 무관심이라고까지는 안 하더라도 관심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당히 높은 관심이야. 이것을 모 심이라고 볼 수는 없겠는가.
모신다는 마음자세가 미적 쾌감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칸트는 무관 심적 쾌감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뭐, 쓸모 없는 거예요.
특히 한국민처럼 한국의 예술품처럼 좀 어리숙하고, 빤들빤들하지 않고, 많아요 그런 규정이 많 아요, 무작위적이고, 쓸쓸하고, 균형도 잘 안 잡히고, 삐뚜람하니 항아리 같은 거 봐도 주둥이 가 이쪽으로 나있다고.
요렇게 나있질 않고.
그런데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같은 사람은 만세를 부르잖아. 한국 거라면 환장을 하지요.
왜 그럴까요? 반듯할려고 하는 관심, 무엇인가 이렇게 발산하고자 하는 욕구, 누구를 압도하고자 하는 마음, 이런 것이 없다는 얘깁니다.
고개를 끼웃 하고 가만히 있어요. 이러고 빙긋이 웃고, 누구를 이렇게 설득하지도 않고, 나하고는 거리가 먼 데. 사실은. 나도 그런 사람되고 싶지만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뭘까? 그런 대상들이 이런 모 시는 자세 아니냐. 고개를 이렇게 숙이고. 이래서 해월 선생은 삼경, 경천, 경인, 경물까지 가 야, 물건까지, 물건이라는 건 동학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는 물건 이럴 때는 동식물까지 포함합니 다. 그냥 무기물만이 아니라. 또 인 간이 만든 공구, 연장까지도 다 포함합니다. 그 심지어는 물(物) 할 때는 육체로서의 인물까지 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죠. 그러니 이 동식물까지도 모심, 공경, 모셔야 도덕의 극 치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셔서, 무기물까지 모셔서 어떻게 합니까?
모신다는 것은 접화한다는 거죠? 접 화군생한다는 거 아닙니까?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 무기물까지도 모조리 산 것, 또 죽었다고 보지만 사실은 살아있는 것까지도 또는 생겨나는 것, 인간의 욕망, 추한, 악한 생각까지도 다 접화해서 가까이 사귀어서, 대접해서 감화시키고, 변화시키고, 진화시켜서 완성 해방시킨다.
이 게 접화군생입니다.
바로 이렇게 되려면 먼저 우리가 모시는 태도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 또 모 심의 활동적 전개가 접화군생이 아니겠느냐. 이게 '살림' 아니겠습니까?
모셔야 살립니다. 모심 뒤에 살림이 온다. 또는 모심과 살림, 이것 아니냐.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다 이 모심과 살림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완성, 나는 흰 그늘이라고 봅니다만 미학적으로는. 이런 것을 조직적으로 ...(아, 이걸 얘기를 안했구나.)
그래서 하늘을 설명을 안 한다는 거, 하늘을 자유로 남겨두는 거,
그래서 근원적 자유, 자유의 진화론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동학이 이랬다고 해서 그것을 다 존중할 것이 아니라 동학이 이렇 게 얘기한 것을 우리 것으로 배워야 하죠.
그런데, 서양에서도 지금 자유의 진화론이나 자기 조 직화의 진화론 같은 것은 다윈의 적자생존론하고는 전혀 다르죠.
모든 물질은 내 위에 소위 신 이라고 불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이 자기의 'Life Form' 생활형식을 만들기 위해서 이웃에 있는 물질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이 자기조직화입니다.
이것이 진화의 기초입니다. 또 먼저 다윈은 군집, 즉 종이 먼저 발생해 가지고, 종적 특성이 발전함에 따라서 개체적인 각자 개성적 으로 개체로 분화한다고 봤습니다. 이게 거 꾸롭니다.
다양성, 돌연변이와 같은 이상한 밑에 규정하기 힘든 자유의 움직임에 따라서 먼저 개체가 발생하고, 그 개체 안에 있는 군집에 대한 욕구나 군집, 그 전체성이 움직여서 자기 나 름의 독특한 군집들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마구리스나 요즘의 생태학자들은 이 소생태에 상당 히 중심을 둡니다, 소생태. 아마 환경운동도 그 길로 가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생태. 자기 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이 젊은이들이 요즘 중요한 뭐를 갖고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영 안 낄려고 하잖아. 군대가기 싫어하고... 그런데 지 좋아하는 놈들끼리 10여명이 모여 가지 고, 뭐 대여섯 명이 모여 가지고, 밴드도 만들려고 하고...
부모들은 참 애를 먹지만은 그것이 하나의 생태계 지향 같다는 얘기예요. 소사회.
그런데, 이상하게도 혜강 최한기는 19세기 말엽, 고종때 무슨 얘기를 했냐면 '交接運化'라는 말 을 했어요.
아마도 혜강 최한기는 그 조선 말기를 해체기로 본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회해체기 로, 문명의 해체기로 봤습니다. 이것을 재건하는 데,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 가 할 때 一身運 化, 운화라는 것은 기화하고 똑같습니다.
저, 일종의 자기 완성이죠. 한 몸의 완성. 그 동학의 기화라는 거하고 비슷합니다. 자기를 해결,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거.
일신운화는 곧 뭐냐면 大 氣運化입니다. 우주의 기운과 자기가 기화하는 거, 하나가 되는 거.
그 다음에 '交接運化'입니 다. 자기가 부딪치는 사람, 일신과 저 일신과 나 일신이 하나로 부딪쳤을 때, 교접운화 서로 좋 아하는 기화가 생긴다. 이게 소생태계입니다.
이 감의 통일문화, 민족 전체, 민중전체의 기화가 생긴다. 통민, 민중을 통일하는 운화가 생긴다. 이래서 교접운화를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얘기가 지금 딴대로 갔는데, 하여튼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 생태학, 밑에 아무 것도 없는 무, 공, 허, 또는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난 그게 '신' 같애요.
그런데 우리 나라 식 19세 기 식 얘긴데, 그것이 움직여 가지고 무엇을 만들려고 한다. 이것을 활동하는 무라고 그랬는데, 하여 튼 동학에서는 신, 천, 하늘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이것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어떤 민족의 신화적 세계나 신관도 신을 말하지 않고 넘어간 적은 없습니다. '그것을 말하지 말고 넘어가자' 라는 말하고 넘어가는 한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넘어 간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예 말이 없어요. 이거 상당히 곤란합니다, 동학의 미스테리인 데...

님 - 기룸의 미학

그 다음에 그 대신 主가 있어요. 주, 그런데 주를 稱其尊. 님이라 불러. 아무 말도 안 해 놓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자유를, 공을, 허를, 무를, 또 무도, 공도, 허도 아닌 뭐라고 말하기 힘든 것을 님이라 불러. 님. 그리고 님이라는 호칭. 이것은 철학적으로 앞으로 한국철학이 나오게 되면 앞으로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님이라 불러. 그리고 이것은 예술작품에도 적용됩니다. 이 것은 미학적 원리로서도 호칭과 님. 에, 호칭이란 뭘까요? 문학은 무에 대한 호칭운동입니다.
원래가 언어의 발생이라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호칭운동이었듯이 문학은 그것의 합치입니다. 문학은 없는 것, 뭐라고 무기적인 것, 무기정적인 것, 아직 이미지가 떠오르기 이전에 평범한 상태에서 예감을 언어화합니다.
그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그 얘기입니다. 호칭, 님이라는 건 뭘까.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모두 님이다.' 기룸. 이 기룸이라는 말이 묘한 말입니다.
기리다, 그립다, 기른다, 내 마 음 안에서 자꾸 생성시킨다, 크게 한다, 기억한다. 이게 전부 기룸입니다.
그러니 이 물건도 님 이 될 수 있고. 그리움의 근본은 뭘까요?
한(恨)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한입니다.
즉 그리움이 있어서 저 세상까지 가고싶고, 우주의 끝까지 가고 싶은데, 인간은 유한해서 70년 만에 죽어야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한입니다.
우리 민족의 경우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머니들이 얘기하는 거 보면 어째 인간은 80년까지 못살까. 100년까지 못살까. 자꾸 그 런다고. 또 자기 죽은 어머니가 마치 여기 텃밭 앞에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한다고. 봤으면 좋겠 는데, 죽은 사람을 가지고, 어찌, 잘 계실까.
그리고 제일 웃기는 것은 무덤 앞에 가서 중얼중 얼 대는 거. 멀쩡한 사람이 가 가지고,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우리 맏아들 놈 장가갔어요.' '저도 이번엔 월급이 300만원으로 올랐어요.' 미친 놈 아니에요.
그게 뭐예요? 님이지. 그 밑에는 한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어요.
이게 한국미의 가장 중요한 본 질중의 하나입니다.
일본사람들이, 내가 아는 윤광조라고 도자기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잘해요, 미친놈이 지, 그놈도.
그런데, 일본의 아주 유명한 젊은 도공 하나가 한국 도예가 유명하다 그래가지고, 거기서는 한국도예를 알아주니까, 공부하러 왔어요.
그래 이 사람은 일본에서 알아주는 도공이 라 턱 폼을 잡고 왔는데, 윤광조는 맨 술만 쳐먹거든. 술쳐먹고는 아침에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흙을 막 반죽을 해가지고, 이렇게 비틀어가지고 옆에다 턱 놓고, 탁치고 이래가지고 쪼몰락쪼몰 락 해, 보지도 않고. 그래가지고 이렇게 삐뚤어진 항아리를 만들어 놨거든. 저게 무슨 예술이라 고 하고 자빠졌나... 윤광조를 아주 미친놈 취급을 했어요.
근데, 윤광조는 그러고 나가버려. 그럼 낮에 말이지 그 삐뚤어진 항아리를 이렇게 보니, 보면 볼수록 매력있단 말이야. 그 사람도 안목은 최고의 예술가니까...
어째서 그렇게 쭈물락쭈물락 만든 것이, 삐둘어 진 것이 매력을 주느냐 이거야. 자기도 인제 해보는 거지. 죽어라고 안 되는 거야.
안돼. 그래 일본에 가서 자 살을 해버렸어요. 편지를 쓰고, 윤광조 마누라한테 유서를 쓰고는 죽어버렸어. 난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이 죄다 이거야.
내 얘기는 이 민족이 갖고 있는 심성 가운데, 타민족이 따라올 수 없는, 그 타민족은 자기 나름 대로 뭐가 또 있겠죠. 그런 게 있다 이 거에요.
님, 그 밑에 있는 한, 거기서 자꾸 우러나오는 그리움. 이게 있다 이거죠. 그런데 이것이 물건에까지도 확대된다.
이게 만해의 세계고, 해월의 세계라고 난 봅니다. 바로 그 호칭과 님이라는 그 속에는 그 무한한, 그것이 나는 근본적으로 생명,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그 다음이 동사(同事)인데, 이게 중요한데, 동사. 모심은 동삽니다.
하느님을 모시면 하느님과 똑같이 노는 거죠. 그런데, 똑 같이 노는 것은 흉내가 아니고, 자주의식을 같고, 동사는 친구란 뜻입니다, 친구.
백범일지 보 면 동사란 말이 많이 나오죠. 같은 길을 가는 동지다, 동무다 이런 뜻이죠. 그런데, 저 동사의 事는 숭배입니다, 섬김. 저게 그러면 뜻이 어떻게 되죠?
친군데도 섬긴다 이거야. 섬기는 친구, 그러니까 거리를 둔 사랑. 섬기는 친구. 부부지간도 그래야 될 것 같고, 부자지간도 그렇고, 친 구도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물질이나 동식물에까지도 확대시키는 동삽니다. 그리 고 그 동사를 통해서 섬김. 그게 사인여천이겠죠.
그리고 物吾同胞, 그러니까 모든 물건까지도 동포로 생각하는 거, 동지로 생각하는 거. 이 동사야말로 모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가.
교육도 앞으로는 그래야 될 것 같애요. 학생들한테 말 올리고, 학생의 안에 있는 하늘님을 모시 는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님을 향하듯이 학생들한테 교육을 해야되는 거 아니냐.
미적 교육은 더군다나 그런 거 아니냐. 미적 대상, 예술품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 없이 전시장에 들 어가는 그런 사람은 없어요. 아무리 못난 그림을 그려놔도 전시장 들어가는 사람은 일단 이렇게 무슨 그림이 있을까 이렇게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본다는 행위자체가 인식인데, 인식 자체가 올려보는 겁니다. 높이 보는 겁니다. 즉 값어치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보는 겁니다.
그러 니까 모심이죠.
그런데, 그때에 보다 더 한 발짝 더 들어간다면 동사, 파트너쉽으로서의 신과 인간의 관계, 신인합일이 아니라 神人合發, 같이 창조하는 이런 세계가 된다고 봅니다.
그게 모 심이죠. 모심에 대해서는 이제 앞으로 책도 좀 쓰고 싶고 그렇습니다만. 하여튼 모심은 살림으 로 드러나기 마련이고, 살림을 할 수 있는 죽임에 대해서 살림, 죽은 걸 살릴 뿐만 아니라, 죽 을 운명에 있는 것을 살릴 뿐 아니라, 산 채로 죽은 것, 살아있다고는 하는데, 사실은 죽은 것, 이 모든 게 죽임이죠.
이걸 살리는 겁니다.
또 살아있는 것도 살림의 도리에 따라 서 더욱더 살리는 것.

조직원리로서의 포접

우리가 교육 얘기를 자꾸 하게 되는 데, 교육 중에서도 미적 교육, 이런 것이 중요한 때입니다.
이때 살림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여러분들이 생명민회 한다는 것도 살림이니까 이 살림을 어떻게 살 것이냐. 모심과 살림을 생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날 이것을 잘 생각해야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것을 동학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학의 포 (包)와 접(接). 조직의 명칭이면서 활동의 총개념입니다.
동학은 묘한 겁니다, 그래서. 이게 어 디서부터 왔을까요?
최치원 고운, 그러니까 최수운의 선조죠. 고운 최치원의 '포함삼교'하고, '접화군생'에서부터 따온 겁니다.
삼교, 유불선을 다 아울러 갖추면서 군생을 사랑해서 변화시 킨다.
포는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 동학에 대한 상식이 있지요?
큰 거고, 접은 작은 거다. 그 러면 우리가 동학을 잘 몰라요. 공부도 안 해봤고, 우습게 본거라.
어느 내가 말은 못합니다만 어느 공산주의자가 내가 고등학교 때 만났는데, 동학 공부해봐. 동 학에, 자네는 공산주의 세포조직이 굉장히 세계 제일이라고 그러는데, 그 세포조직보다 더 낫다 고는 할 순 없지만은 그 이전 시대에는 동학이 최고야.
동학의 포접제야. 그런데 고등학교 3학 년 때부터 포접제, 그러니 고등학교때부터 동학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런데, 공부를 못했지요.
포라는 것은 접이 여러 개 모여서 포처럼 보여요. 언뜻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포 안에는 뭐가 있냐면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공산주의 식으로 말하면. 명망가, 각계각층의 명망 가들을 다 이렇게 끌어서 모시는 모심입니다, 모심. 특히 그 당시에는 유불선, 그중에 유학자들 이 많았습니다.
중, 아니면 산에서 선도 수련하는 사람들. 동학이 말이죠,
태초에 해월, 수운의 제자들은 몇 명 안돼요, 내가 보기에는. 이게 한 깃발을 탁 드니까 그 당시에 산에서 숨어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동네도 살면서도 그 당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찬성을 못하는 불 만분자들, 불평분자들, 서출들. 뭐 많았다고. 다 모인 거야.
그러니까 갑자기 세가 그렇게 불어 난 겁니다. 즉 운동, 조직운동이라는 게 꼭 수학하듯이 1 + 1 = 2로 하는 사람은 그거 운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핵심을 잘 양성하고, 그것이 이념을 갖추고, 잘 다지고, 닦고, 갈고, 이래가지고, 어느 때가 왔을 때, 때, 천시가 왔을 때 지리를 활용해서 그때 이루어지는 것이 인 화입니다.
인화가 이루어지는 때는 바로 목적을 달성하는 때입니다.
목적을 완전히 달성한 뒤에 도 인화는 힘들지만은. 하여튼 그렇게 봐야지, 처음부터 하나에서 열까지 다 조직을 해가지고 이렇게 가는 것은 우수운 얘기지요.
통일전선이란 뭘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모시면서 접이 몇 개 그러니까 밑에서 하부조직의 접들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요.
하겠지만은 그들이 모 신 한 시골의 유학자가 있는데, 항상 맹자 얘기를 하면서 민이 천이야 한다든가, 뭐 가렴주구 하는 놈을 나쁘다고 본다든가, 동헌에 나쁜 착취자, 군수하고는 항상 싸운다든가, 또는 절에 중 이 있는데, 먹을 궁리는 않고, 그래도 중생을 위해서 뭘 좀 걱정을 한다든가 이런 중, 아니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산에서 수련을 하는 응큼한 도사, 이런 사람들이 그 지방에 다 있다고.
아무개, 아무개. 모시는 거예요.
접은 그야말로 생명조직입니다. 두레, 계, 공제조합, 공제조합은 아니죠, 공제회. 그러니까 호 혜적 조직을 갖추는 게 접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새로 보기 시작해야지. 접이 여러 개 붙으면 포가 되고, 포가 뭐 여러 개 붙으면 대접이 되고, 대접이 열 개 붙으면 대포가 되고, 뭐 이런 식으로 하면 한도 끝도 없어. 아 그런 것도 순차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너무 얕 게 보는 거다 이거야. 포함삼교하고 접화군생 한다. 이것이 활동의 총개념이면서 동시에 조직의 명칭이다. 그렇게 봐야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의 우리의 얘기 가운데서 본다면은 접은 바로 살림이고, 포는 모심이고, 이렇게 배당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런데 오늘 결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오늘에 재창조할 수 있는 포접제의 모습이나 운동양 태는 무엇일까? 이걸 좀 생각해 봐야돼요.
접화군생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어떤 게(나는 계라는 것을 좀 많이 생각합니다만) 계라고 한다면 포함삼교는 하나의 네트워크 아니냐. 다른 조직들하 고의 관련.
그래서 계도 많이 늘어나야 되지만 네트워크도 잘 해야되는 거 아니냐.
새 문명의 비전, 혹은 새로운 거대담론 지금 말이죠, 우리나라 가장 중요한 게, 담론 부재에요.
소위 사회 변혁론 증발이후에 외피로서 중요시됐던 자유나 민주주의는 덩렁 남아가지고 그거 가지고 지금 집권을 했는데, 김씨 정권이.
허구만 있지 내실은 다 증발해 버리고 말았어. 그러니 개혁해봐야 되질 않아요.
개혁할 만한 주 민들은 다 포기해버렸어요, 무장해재해 버렸다고.
그리고 그 원인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중장기 적인 담론 모색을 했어야하는데, 안 했다고. 그러니까 우선 바쁘다고 5공 타도만 자꾸 악을 쓰 고.
이런 일이 있어요. 이런 얘기는 내가 해야겠는데, 어느 후배보고 너 지금 병정놀이 하냐, 전쟁 하냐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전쟁이래요. 그럼 엄숙한 거 아니냐. 엄숙하다 이거야. 목숨을 거는 거지. 그렇다 이거야.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놈의 장군이 병사 오 천명을 전부 보병으로 투입하는 바보 장군이 어디 있냐. 너 나보고도 맨날 보병으로 나가라는 거 아니냐.
그 심리전 사령부는 어떡하고, 전략사령부, 병참, 포병, 공병, 이런 건 어떡할 거냐 이거야. 그러 니 가만히 보더니 뭘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해 가지고 빠져나가려고 한다고. 그때 분위기가 그랬 어요.
전부 보병이야. 그래서 가서 폭탄하나 들고 '나가자' 그렇게 말을 하래.
그러면 자기들이 준비하고 있다가 '얏'하고 나간다는 거야. 야, 그게 무슨 전쟁이냐.
야, 그게 무슨 데모지, 그 게 전쟁이냐. 데모는 전쟁의 한 방편, 그것도 아주 초기단계의 시가전에 불과하다. 그러니 또 시가전도 아니다 이거야. 너 화염병가지고 누구 죽일 수 있겠냐.
부상이나 시키지... 너처럼 정 직하게 하려면 리벌버 수입 해다가 드르륵 갈겨야 되는 거 아니냐 이거야.
백기완이 선생 말도 못 들었냐. 쏴라 이 말이야. 그러니까 나보고 나는 못한다 이거야.
결론은 이건데, 하여튼....
그런데, 지금 담론부재 문제를 뚫고 나오는 게 겨우 환경, 생명, 생태 이 얘기입니다. 이 얘기 를 순전히 부분 운동으로만 생각하지 마 세요.
세계관 문제고, 문명의 문제고, 그러면서도 우선 우리가 마시는 물, 숨쉬는 공기의 문제 고, 밥의 문제고, 반찬의 문제고, 또 도로교통의 문제고...
즉, 가장 구체적인 일상적이면서도 굉장히 깊은 철학적인 과학적인 문명론적인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이 담론을 중심으로 해서 재건을, 사회 재건을 해야되는 데, 여기에 대해서 전부 쪼가리 쪼가리 여기 저기서 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이들 사이의 네트워킹이 전혀 안되고 있다고. 그러니까 힘을 어 디서 딴데서, 하늘에서 꿔올려고 생각하지 말고, 또 과거의 추억, 아직도 추억주의자들이 있어.
술만 마시면 아~, 그때말야. 뭐 어쩌고. 그때가 데모하던 때인데, 에~ 그래선 안되죠.
그러나 또 접화군생, 같은 모이는 사람들끼리는 계를 묶고, 그것이 호혜적이고, 공제적이고, 생활 좀 어려운 사람들 많잖아요.
그럼 그 계의 기능을 저기하자고요, 공제기능을...
그 사람은 피가 통 해야지. 우선 살고, 그 다음에 네트워크 통해서 딴 일도 하고, 좋은 일도 하고...
동학은 아시다시피 국내 보수파 유학계통들과 일본 제국주의세력에 의해서 좌절됐습니다.
그러 나 완전히 좌절된 것은 아니고, 아직도 미약하게나마 이어지는데, 난 동학과 증산 일부, 19세기 에 튀어나온 원시반본, 상고사를 살리자는 이 운동이 절대 그때에 끝났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 러나 오늘날에 부활시키는 데는 오늘날의 논리와 오늘날의 해석 각도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을 논의해 봐야 됩니다. 무슨 각도에서 어떤 각도에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이렇 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 저 북친이나 뭐 이런 쪽 끌고, 바로나 이런 거 끌고 들어와 가지고, 요기에 맞는 것만 쏙쏙 골라먹으면 된다. 그게 오리엔탈리즘인데, 누가 나한테 그 얘기 하다가 혼났어요.
왜 그러냐면, 나는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얼마나 얌체스러우냐 이거 야.
얌체, 그 얌체가 되거나 진짜가 되거나 그 차이는 간단해서 어느 쪽에 중심을 두느냐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쪽에. 그러면 한민족의 전통사상, 동양적인 거에 중심 을 두고, 서양 것을 잘 흡수를 해야지,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삶 가운데서 발생한 사상에 씨앗이 라는 것은 그렇게 한순간에 없애고 자시고 할 게 아니다 이거야.
그게 다 이유가 있다고...
그 안에는 체질적으로, 정서적으로, 논리적으로 배어 있는 자기 것이 있어요. 이걸 거부해서는 안 돼요.
또 그렇기 때문에 외래사상이 들어오면 토착화해야 되는 것이지.

내가 보기에는 천시가 순환해서 다시 부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까 공공성 문제하고, 생명적인 판단은 미적 판단을 기초로 한다는 점을, 아무 것도 아닌 얘기 같지만 이점을 잘 착안을 해야합니다.
지금은 사이버공간에서 젊은 사람들이 뭐 채팅하고, 뭐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의미 있는 사이버 프로그램들은 전부가 문화, 미, 예술, 이런 쪽으로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적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서 세계를 접수하려고 하는 태도가 일 반적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도 이제 상당한 부분이 문화자본주의로 움직일 것같 습니다.
그리 고 소프트웨어 단계를 거쳐서, 컨텐츠웨어, 그것보다 미학적 생산성, 즉, 대중적이면서도 아름 다울 수 없느냐. 이런 쪽으로 인제 많이 갈 겁니다만 이 기류를 생태운동이 타야하지 않겠느냐.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것은 농업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농업은 중요합니다. 농업자본이 되야 되고, 식량생산 우리가 해야되고, 다 그걸 통해서 환경조정도 해야되고, 멸종되 가고,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의 균형, 사십년이 마지노선, 데드라인이라고 그러는데, 농업, 그것도 가장 이상적 인 살아있는 생명농업을 통해서 해야 되요.
그렇지만 한편에 어떤 사람들이 있냐면 앞으로의 문 명은 농업문명이라는 사람이 있어. 또 농업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 이거야. 시골가면 다 해결 된다는 거야.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이 인제 부패해서 농사꾼답지 않은 농사꾼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가서 하면 되죠. 그쪽 많이 힘을 써야 합니다.
그건 난 일단 인정하고, 그러나 동시에 도시에서 새롭게 형성하는 유목민적인 문화, 특히 전세계의 정보하이 웨이, 이거 어떡할 거냐 이거야.
그리고 우리 나라가 인구 4천만에 1천만 명이 인터넷인구입니 다. 그런데, 농촌에 앉아 가지고, 어떤 친구, 물론 한이 많겠지만 좌절 때문에... 앞으로 올 사 회는 모든 인간이 자기 식량을 생산하는 시대가 와야된다 이거야.
그것을 다섯 번이나 물어. 내 가 눈을 깜빡깜빡하고 있으니까 답답했던지 다섯 번이나 물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 완전히 파시 스트다. 이럴 때 파시즘이라는 말을 쓴다는 말이야.
그 사회가 어떻게 된 사회가 그런 사회가 있을 수 있냐 이거야.
그러면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 딴 일도 해야되고, 뭐뭐 많은 데, 그놈보 고 지 농사지라 그러면 그 어떻게 되냐 이거야. 그 농사지도원에서 나온 놈이 제일 아니야, 그 러면은. 그거 박정희 시대하고 똑같지 않느냐. 뭐, 통일벼 심어라 이건 된다, 그건 안 된다, 농 사꾼, 수 십 년 농사꾼 앞에 가서 새파란 놈 이, 이런 때하고 똑같다 말이야.
그런데, 그런 식 으로 가서는 안 되요. 또 중세 또는 수공업시대, 부분적으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지혜로워야지요. 또 그런 얘기가 생태적 사고입니다. 그것은 많이 나와야죠.
그러나 이 정보 하이웨이란 말이에요. 컴퓨터, 인터넷, 사이버 소사이어티라는 것은 생명의 안 쪽이 영성입니다. 마음이죠. 마음을 생명의 안쪽이라고 볼 수 있죠.
그 말도 조금 이상하지만.
마음의 발전과정, 마음의 발전과정에서 오는 겁니다. 즉, 떼이야르 식으로 얘기하면 지구 전체 가 신경망화, 영권, 누스피아가 돼서 새롭게 비약한다는 거죠.
오메가 포인트. 그걸 그렇게 봐 야지. 전 지구가 신경망화 한다는 것은 전부 하이웨이가 생긴다는 거고, 그 안의 컨텐츠웨어, 즉 영적 내용에 의해서 하드웨어를 수정하는 관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봐야지.
그렇다면 그것과 농업생산 생태계문제, 조율, 여러 가지 이 생태문제의 균형, 이런 것과 사이에 균형을 잡도록 해야지 그 것이 미래에 와야 될 사회지, 어느 한 쪽으로만.
또 한사람은 또 그러죠, 아, 지금 뭐 문명바뀌고 있다 이거야.
사람들이 전부 막 PC방에 가서 막 이러니까 이미 끝났다 이거야. 그러니까 사이버소사이어티다, 앞으로... 그러면 봅시다.
이 일본의 15년 17년전 건담 세대, 건담세대라는 것은 뭐예요?
나도 이거 컴퓨터 잘 모르지만 요새 아들놈한테 배우는 데, 17년 전입니까. 일본 연합적군이 산장에서 인민재판 해 가지고, 다 막 괴멸돼 버리고, 신문이 막 연일 두드려 부시고 그러니까 일본 좌익운동이 끝나버렸죠.
그러니까 초급학년들이 우하니 어디로 들어갔느냐면 PC방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몰렸다고. 애니메이션과 PC를 통해서 막 우주로 탈출도 하고, 우주에 가서 식민지도 건설하고, 거기서 막 이상한 종족들 하고 대 전쟁도 벌이고, 무기 개발하고, 로봇 앞세우고, 건담이 그거 아니에요.
그러니 이게 크 니까, 신문기자들이 저널지즘 센스로 아, 자기들이 문화혁명한다 그랬거든. 그런데 이게 될 리 가 없어요.
PC방을 딱 나오면 아무 것도 없는 거라. 취직도 못해, 마누라도 없어, 애인도 다 도 망가 버려. 일본이라는 사회는 정말 취직 제대로 하고, 월급 제대로 받아야 사람대접을 하는 데 라고.
우리나라는 그래도 좀 나은 것 같애요.
그러니까 거기서 완전히 좌절해 버린거야. 그러니 까 지구 중력장하고, 영혼의 환상적 탈출하고 사이에 만날 길이 없는 거야.
그것을 통일적으로 지지해주는 어떤 철학적 배경도 없다고.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나?
그러니까 아까 그 균형, 농업과 도시적인 유목민적 지식산업 사회 사이의 균형, 또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균형, 또는 생명적 사고와 또는 이 영적 사고, 영적 사유. 앞으로 힘이 들겠지만 그거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경 컴퓨터 이후에 신령 컴퓨터가 온다고 그래요.

율려 - 생명의 用, 혹은 살림 모심의 극치는 律呂, 또 나왔습니다.
율려 얘기만 하면 신경질을 내고, 어렵다고 그러는데, 어 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주 문학이에요. 또 동양에만 있는 거 아니고, 희랍의 피타고라스가 음 악을 우주적인 어떤 질서로 파악했을 때, 아주 가볍게 보면 그것이 율려입니다.
왜냐면 5음계가 있고, 12음률이 있고, 그게 합치면 율려입니다.
12달에 오행, 다섯 가지의 성분들이 이 생극, 생생도 하고, 극극도 해서 이루어지는 이 우주 질서를 담는 음악이 율려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율려를 예를 들면 정역 김일부 같은 사람은 여율, 음, 여성성이 앞에 가고, 더 중요시되 고, 율, 양, 남성성이 뒤에 가고, 카오스가 먼저 가고, 코스모스가 뒤에 오는 배합하는 그런 관 계로 바꾸자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게 일부죠. 이래야 황극이 이루어진다.
하여튼 모심의 극치는 율려를 모시며, 살림의 극치는 인간 안에, 세계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유출(flux), 기의 유출과정, 생명의 유출과정에 율려를 살리는 것, 이것이 살림의 극치 가 아니겠는가.

조금 더 나가보겠습니다.
이래서 김일부 식으로 얘기하면 황극, 사람이 스스로 하늘이 되는 것, 즉 하늘과 같은 천품을 갖는 것, 이 황극을 체라고 한다면 동양철학 하는 분들은 다 알아요.
체 와 용 아시죠?
본질과 현상 그거하고는 조금 틀린데, 본체와 현상, 체를 본체라고 하고, 현상을 용(用)이라고 하죠. 이게 동양철학 주역하시는 분들은 황극을 체라고 하면, 율려는 용이다.
아 주 초보적인 얘기입니다.
즉, 인간과 사물이 그 보이지 않는 하늘과 합치되는 것이 체고, 주역 의 핵심도 그겁니다. 체고, 그것이 체를 이루었을 때, 그렇게 움직이는 현상은 율려 라고 그런 다 이거죠.
그러니까 간단히 얘기합시다. 12월에는 12월의 삶의 양식이 있다고. 그러니까 차마 어렵다고만 생각하니까 더 어려운 거야. 봄에는 봄의 생활질서가 있어요.
또 우주질서가 있다고, 봄에 꽃 피 죠. 그러면 두꺼운 옷 벗죠. 그 어디고 싱숭생숭해 가지고 나가고 싶잖아. 연애도 하고싶고...
이게 율려예요. 12율려가 이름이 다 다릅니다. 뭐 이칙, 황종, 임종, 뭐 다 있는데, 그것들이 다 그걸 뜻하는 거예요.
그것들을 음으로 표현했을 때, 그런 어려운 문자가 되는 거예요, 중국 말로 해놓으니까. 그러면 여름에는 옷 벗고싶죠. 물에 들어가고 싶죠.
이게 다 율려야. 이 자연 과 일치됐을 때, 아주 이상적인 상태에서 일치됐을 때, 그것을 뭐라 그러냐.
인품, 능력, 신비 적인 신통력, 이런 것들을 황극이라고 부릅니다.
천인합일했다. 여기까지 안 들어와요? 여기까지 들어와야 그 다음 말을 할 수 있겠는데...
그러면 용과 체, 항 상 모든 사물은 용과 체가 있는 거니까, 본질과 현상, 보이지 않는 내면과 보이는 외면적 전개 가 있는 거니까 이 둘 사이에서 관계를 볼 때, 황극을 이룬 사람은 율려를 하게 돼있고, 율려를 하는 사람은 황극에 접근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야.
생명이라는 것은 이렇게도 이론화시키고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황극을 모시는 것은 율려를 살리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모심은 황극이고, 살림은 율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거야.
왜 이 얘기를 자꾸하느냐. 우리는 동양의 비밀스러운 밀림 속으로 들어가야 되요. 안 들어가고, 한문 천자도 안하고, 들어가지도 않고, 아 모른다 그러고, 자꾸 한글하고 영어하고 붙이자 그러 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자꾸 한다고.
서양에서 희랍을 모르고, 로마를 모르면 서양의 역사를 어 떻게 말을 합니까. 그거 알려면 라틴어 해야 되잖아요. 나중에 희랍어도 해야되고...
우린 맨날 영어, 아이들까지도. 저번에 어딜 가다보니까 왠 아주머니가 쪼꼬만한 딸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 면서, 뒤에 가면서, 뭐라 그러더라, 데이지, 응 데이지, Where are you going. 그러더라구. I'm going, I'm going 이러더라구. 재미는 있는데, 자기 딸을, 조그만한 애를 데이지라고 부른다고.
인간은 언어에 의해서 사고합니다.
특히 출발점에. 유아기에는 언 어를 통한 사유가 가장 직접적이에요.
그리고 페리퍼리 그 촘스키 문자입니다만. 핵심문법하고 이론적 형질사이에 구체적인 언어양상을 결정하는 것은 주변부라고 불리는 페리퍼리, 이것이 민 족어입니다.
그러니까 혁명적이라고. 민족언어를 무시하고, 사유력을 창조력을 키운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아요.
더군다나 한글도 그렇지만 우리는 동양적인 고전적인 숲에 들어가기를 겁낸 다고.
우리 나라의 고전들도 전부 한문으로 돼있다 이 말이야.
그러면 한문을 조금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니냐 이 말이야. 나도 많은 걸 몰라요. 나는 모르면 옥편 찾아보니까 그 정도지.
옥편 찾을 수 있는 정도면 조금씩 책을 읽지요. 구독법 좀 배우고.

예, 모심은 살림이 될 수도 있고, 살림이 거꾸로 모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거는 뭐죠? 예컨 대, 율려는 역동과 균형입니다.
예를 들어서 음악에서, 음악적으로 얘기한다면 리듬과 발란스입 니다.
리듬과 발란스로써 구성되는 것이 음악입니다. 율려는 음악이라고 했습니다.
리듬과 발란 스를 좀 개념으로 발전시키면 역동 다이나미즘과 균형 이퀼리브리엄이 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 루이스 멈포드라고 얼마 전에 죽은 아주 유명한 유럽의 문명사가죠, 문명론 자죠. 아주 뛰어난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음양론을 끄집어 들여가지고, 유럽문명의 미래를 역 동적 균형론으로 풀었습니다.
다이나믹 이퀼리브리엄. 이건 뭐냐면, 유럽문명이 생산과 과학발 전만을 중시해서 빨리 가고, 멀리 가고, 그리고 새롭게 가는 것만 중시해왔다 이거야.
그리고 사회적인 분배를 소홀시 하고, 계층간의 위화감을 극복하려고 안 했다 이거야.
그래서 막 첨단 적으로 파이어니어한 것만 강조해 왔다 이거야. 새로운 것만 높이 칭찬하고. 이게 역동입니다.
다이나믹이즘만 남아있다 이거야. 이퀴리브리엄, 발란스, 균형은 생각을 안했다 그거야. 그 결 과 사회가, 인간이 살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거야.
언제 자기 삶이 어떻게 변할런지 알 수 없는 감측을 할 수 없는 덧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다고. 항상 불안하고, 항상 초조하고, 항상 새로워야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이 반대되는 것, 역동과 균형을 합체하는 게 율려입니다.
율려, 율이 양이고, 여가 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 세요,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연대 중문과에 좋은 후배가 있는데, 내가 율려를 한다니까 이 사람이 아, 김지하 선생이 또 새 로운 얘기해 가지고, 또 고생하는구나.
뭐 될만하면 딴 데로 가고, 딴 데로 가고 그래가지고 고 생만 한다고.
그런데 중문학을 하는 사람이니까 책을 막 뒤져본 거야. 그랬더니 100년 전만 해 도 시중에 나도는 책들이 율려라는 말이 흔했다 이거야.
상식이에요, 상식적인 용어입니다. 우 리가 모르는 거죠. 이거 계속 어려우니까 그만두라고 할 겁니까.
더해야지. 그러니까 모심과 살 림의 율려와 황극을 결합시킨다면 이렇게 된다. 그래서 루이스 멈포드는 역동적 균형이 앞으로 도래할 문명의 기본적 사회리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이 영향이 어떻게 일 어나는냐. 성찰적 근대화로 나타나요. 그래서 시간적 근대화보다는 공간적 근대화를 생각합니 다.
많이들 얘기하죠. 공간개념. 그게 뭐예요? 분배 또는 균형, 또는 편재, 이런 것들을 중요시 하는 겁니다.
또, 개성, 다중심, 탈중심, 이런 거. 그런데 아직도 시간관은 안 바뀌어. 유럽적 인 진보가 시간관이 제일 앞에 있으니까 이것만은 포기 못해.
다만 그렇게 근대화하는 방식은 공간적 조건, 문명의 조건이 상이하니까 뭐 1미터 갈 수도 있고, 뭐 2미터 갈 수도 있지 않는 냐.
이것도 되먹지 못했지, 1미터는 뭐고, 2미터는 뭡니까.
난 그렇게 안 봅니다만 그 얘기까지 는 여기서 할 수는 없고. 역동적 균형 혹은 카오스모스 역동적 균형은 또 다른 말로 어떻게 보느냐. 카오스와 코스모스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려는 또는 여율이라고도 부른다고 그랬습니다만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 코스모스이면서 카오 스인 그런 독특한 문명론이라고 볼 수 있죠.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야기입니다만.
새로운, 다가 오는 민중의 문화, 다가오는 미래에 대중적 민중의 문화는 카오스 문환데, 그것을 좀 더 규정한 다면, 카오이드, 빈발하는 카오이드에 의해서 카오스가 질서 잡는, 그러니까 카오스 나름의 질 서지. 카오스모스, 카오스 코스모스. 어떻게 많이 접근했죠.
이 황극론이라든가, 율려하고. 그 래서 나는 탈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하고, 우리의 노력이 앞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새로운 담 론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들뢰즈나 가타리 푸코의 어떤 부분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래서 이런 카오스모스, 카오스이면서도 그 나름의 어떤 질서를 가진 완전히 탈중심, 다중심적이면서도, 중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 탈중심 속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말로는 쉽게 할 수 없는 희망과 같고, 소망과 같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것 같은, 시 한 구절 같은 어떤 중심 이, 중심이라고 부르지 맙시다.
그걸 바탕이라고 부르자고. 뭐라고 불러야 좋을 지 모르지만, 촉매라고 불러도 좋고, 에드가 엘런포우는 촉매라고 그랬죠.
이 언어들, 전부 분산된 언어들을 안에서 추종하고, 뭔가 생성시키고 하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야.
그게 뭐까요?
그건 논리적으 로 설명하면 안됩니다. 기껏 한다는 게 카오스모스지. 카오스적 코스모스. 또는 들뢰즈는 카오 이드라고 부르고. 이런 카오스모스를 일신에, 자기 몸에 미치는 것이 황극이다. 나는 이렇게 봅 니다.

아주 파격적인데, 그러니까 고전적인 수혈을 통해서, 막 눈 내리는 데 자기 주변에는 눈이 안 쌓이고, 따뜻하고, 이상하게 보이고, 이렇게 가지 말자고.
나도 해봤어. 그런데, 정신병원 가는 것밖에는 결론이 없다고.
그렇게 가지 말고, 미적 판단이라는 것을 내가 세운 게 거기 있어요.
예술적 체험을 통해서, 예술창작을 통해서, 예술의 공유를 통해서, 문화운동이라든가 문화를 중심 으로 한 아주 열기 띤 감상과 토론과 자기 생활에 있어서의 예술의 도입이라고 그럴까, 예술을 좀 더 본격적으로 생활화하는 것을 통해서 카오스모스를 카오스적인 그 나름의 질서를 자꾸 익 히는 것, 몸에다 익히는 것, 생활화하는 것, 이런 걸 통해서 도달하는 게 황극이 아닌가.

그러나 이때의 조건은 우주사회적 공공성입니다. 즉, 천지공심.
저기 유럽에 어떤 뒷골목에 노 숙자 한사람이 자면서, 자기가 이렇게 추운데, 자기만이 아니라 그 유럽의 뒷골목의 거지의 마음도 생각할 수 있는 것, 또 내 등뼈가 아픈데, 유럽의 어느 호수에 또는 아프리카의 어느 호수 에 중금속을 먹고 등뼈가 휜 고기가 왔다갔다한다, 그 고기의 아픔이 내 아픔이다 이거야.
내 얘기가 굉장히 위선적으로 들릴 거예요.
그러나, 차를 한잔 들면서 저기 인도의 한 숲에 하얀 꽃이 피었다가 팍 지는 것 같은 환영을 여기서 본다던가 보진 않더라도 느낀다던가. 지구시대에 세계화하는 시대에 인간은 아무리 민족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정도의 상상력의 세계 에는 들어 가야되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이게 생태, 생명, 지구시대를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 냐. 느껴야, 그 다음에 거기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고, 느낀다는 게 모신는 건데, 초청 아니예 요?
모신다는 건. 자기 안으로 오십시오, 하는 거지. 나는 이렇게 황극이 이루어지는 것이 춤과 노래로 나타나고 또 춤과 노래를 통해서 이것을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심과 살림, 황극과 율려 사이의 관계. 또는 역동과 균형, 또는 역동적 균형을 체현하 는 것이, 또는 역동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모심과 살림이라고 합니다.
루이스 맘포드는 동양과 서양의 관계에도 역동적 균형으로 봤고, 이 제 3세계와 선진 자본주의 제국사이에도 역동적 균 형으로 봤어요.
그걸 거꾸로 뒤집어서 역동이 너무 지나친 곳에는 균형이, 균형이 사멸의 상태 까지 가는 적막한 사회에는 역동이 이게 기우뚱한 균형입니다.
내 문자로 쓴다면. 균형은 균형 인데, 어느 쪽으로 좀 중심이 가는 발전적 균형, 움직이는 균형.
또 너무 균형적인 것(?), 완전 한 균형은 죽은 균형이죠, 그건 공상 속의 균형이지.
그런데, 인류의 성인시대, 차출시대에 들 어와서 유행한 논리가 균형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사랑이 그렇게 유행이었지. 사랑,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자유로운 사랑이어야 될 것 같애.
자기가 이렇게 변할 수 있는 사 랑.

그런데, 대개 보면 난 저 성인들은 다 배우고 그래야 되지만 이분들이 중심으로 잡았던 것이 균 형인 것 같애요, 역동이 아니라. 지금은 이게 막 무너지는 때예요.
그래서 카오스모스, 역동적 균형,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니냐. 이랬을 때에 모심과 살림에서 제가 제일적으로 흰 그늘이라고 부르는 초월적인 미감의 상태가 오지 않겠는가.
이것을 이야기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랬을 때 미적 판단에 입각한 생명론, 또 생태적 사유가 가능해지지 않나. 이래야 에트리즘 수 양, 또는 아주 어려운 현대인들한테는 접근하기 힘든 그런 수양방법, 또는 이상해지기 쉬운 이 런 접근 방법이 아닌 예술과 미적 판단, 미적 교육에 의한 인성 완성이랄까 또는 생명론적 전 개, 사유, 생태적 담론 이런 것들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것이 한국사상입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건지리라
 과  , 빛과 어둠 이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 이것을 풍류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도가 선도가 왜 종교적이면서도 예술적인지를 이해해야 됩니다. 이때에 우리가 예를 들어서 환웅족, 천손족이죠. 저 바이칸 호수쪽으로부터 온 유목민, 이동하는 유목민족적인 천손족, 하늘을 숭배 하는 민족과 감족, 곰족, 남방계 농업문명을 대표하는 곰족, 웅녀가 결합해서 고조선사회라는 다양성이 있는 부족연합에 의해서 다양성이 있는 소위 농업정착적인 유목이동민족 문화. 이걸 결집시킨 역사적 비전이랄까 이걸 잡을 수가 있지 않느냐.
아까 농업문명과 도시문명 사이에 균 형 얘기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모심은 包含이기도 하고, 살림은 接化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즉 내가 보기에 또 내 어렸을 적의 기억, 우리 집안이 동학이기 때문에 내가 기 억을 합니다. 먼 당숙도 그런 얘기를 하고 그랬는데, 이 포함, 유명인사라든가 이런 사람만이 아니고, 오늘날의 무슨 기독교, 유불선, 또는 과학자들, 학자들, 이 다 존중합시다.
지식인 개 새끼들 이러지 말고, 존중하고, 종교지도자들 존중하고, 이게 포입니다.
그래서 이게 모심이 아 니겠느냐. 또 하나의 모심죠. 접화할 때는 살림, 계를 만들어서 친구들끼리 이쪽은 진짜 서로 도와야 될 것 같애요, 없으면 쌀도 좀 갖다주고, 이게 필요해요.
무정한 이 세상에 마음 주고받 을 뿐만이, 마음만이 아니라 쌀도 좀 갖다주는 김치도 좀 퍼다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무정해서 못산다고. 그래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나같은 사람, 무정한 사 람. 뭐라고 떠들다가 없어진 뒤에는 소식도 끊어지는 이런 사람.
나도 애를 씁니다만 무정을 극 복해야 되지 않느냐. 이게 살림이고, 또 경건한 마음, 공경하는 마음, 유명한 사람을 모시는 마 음,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포함하는. 그래서 포함은 삼교에 대한 공경, 모심이기도 하다.
이 랬을 때에 우리가  · ·�阪ㄱ�, 이런 말들이 포함하고 있는 생명 성과 우주성, 천지중심과 감각적인 아름다움의 관계를 알 수 있지 않느냐.
이럴 때, 북극성, 수, 물이었고, 생명의 근원이라는 이유, 호생, 살리는 걸 좋아하는, 그리고 불살생, 산 것을 죽 이지 않는 이 민족의 근원적인 성품. 그렇게 해서 드디어 접화군생에 도달한, 이런 길을 따라가 야만 인중천지일, 즉 모심입니다.
내 안에 천지를 모시는 것, 즉 천지공심에 도달하는 거 아니 냐.
아름다움의 판단, 미적 교육을 통해서도 천지공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꼭 뭐 절에 가서 아, 나도 해봐서 알아요. 이렇게 하면 위험하다고.
참 그리고 이 도사들이 사기꾼 많고, 아 사기꾼 많은 데가 이 동네야. 그렇다고 기성 고등 종교 이 사람들을 존중은 하지만은 너무 딱딱하게 굳 어가지고, 이게 또 문제야.
새로 누가 또 나왔는가 하면 이건 또 사기꾼들이고. 그러니 우리 식 으로 한다면 미, 예술, 감수성, 상상력, 이걸 통해서도 가는 길을 찾아봐야지. 이게 난 무에 도 달할 때 자유로운 표현과 자유로운 어떤 생각과 자유로운 행동에 도달할 때에 새 문명의 씨앗이 자라지 않는가.
내 너무 길게 떠들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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