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陽 五行의 기원에 대한 제가들의 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설적인 발생기원이 아니라 사상적 기원에 대한 소개입니다. 한의학에 치우친 내용이 아님을 또한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어려운 학설의 기원에 대한 설은 구구하여 아직까지 정설은 없으나, 고대 제가들의 사상을 통해 그 사상적 기원을 더듬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며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陰陽五行說만큼 天地萬物의 諸 現象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理論은 없을 것이다. 現象과 變化가 아무리 복잡하고 미묘하다 해도 陰陽五行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천변만화의 작용을 일으키며 古今往來의 理致를 모두 다 밝히고 있는 易卦도 그 근본은 陰陽이며, 측량하기 어려운 生克制化, 會合刑沖의 다단한 변화도 그 근본은 五行을 떠나지 않는다. 수천년동안 사물에 대한 인식의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철학적 자연관을 형성해 온 두가지 思惟는 천문, 지리, 인사, 의학 등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전 영역에 걸쳐 고루 적용되면서 思惟의 기초가 되었으니 陰陽五行에 대한 인식은 동양의 정신문화를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五行에 관하여 가장 오래된 표현이 보이는 곳은 "書經"의 洪範이라할 수 있으며, "左傳"의 襄公 27년조에서 [天生五材]라 하였고, "國語" -(左丘明의 撰으로 左傳을 內傳, 國語를 外傳이라 함)- 의 鄭語에서는 [故先王以土與金木水火 雜以成百物, 是和五味調口 : 고로 선왕이 以하야 토와 더불어 금 목 수 화를 섞어서 백물을 이루니, 이는 오미로써 맛을 고르게 맞추자는 것이다] 라 하여 五行에 관한 표현이보인다.
"書經"이나 "左傳", "國語" 모두가 史書라는 점에서 볼때, 역사적인 기록에 五行說이 자주 보이는 것은 民生, 民用에 자주 쓰였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특히 書經에서는 "五"라는 표현이 103군데나 보이며, 五事, 五味, 五行, 五色, 五采, 五典 등 天地人에 관한 표현이 37곳에 나타나고 있으니, "五"는 가히 신비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五"라는 숫자에 관하여 문자훈석학자들의 해설을 살펴보면 [二와 X가 합하여 五가 되었으며 二는 天과 地를 가리키는데, 天은 陽, 地는 陰이며, X는 그 음과 양이 서로 사귀어 합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훈석은 "說問"으로부터 비롯되는 바 "說問"의 원문을 살펴보면 [五는 五行也라, 從二하니 陰陽在天地間交午也] 라 하여 "五"를 아예 五行으로 못 박았으며, 交午라는 語義는 陰陽이 천지간에 있어서 실타래처럼 많은 가닥이 종횡으로 뒤섞여 사귄다는 뜻이 된다.
天地間에 陰陽이 두 기운이 서로 사귀어 五行을 이룬다는 五行說이 諸子書에서 한결같이 일치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呂氏春秋, 淮南子, 春秋繁露, 太玄經, 白虎通義, 黃帝內經素問, 靈樞, 등에 나타난 五行說을 순서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관자"는 管仲(B.C.?-B.C.645)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24권, 76편의 책으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관중은 공자보다 약 200여년 앞서 살다간 춘추시대의 정치가요, 사상가이다.
B.C. 685년부터 죽을 때까지 약 40년동안 齊나라의 재상을 지내면서 桓公을 도와서 무력으로서 제후를 통치하는 우두머리가 되도록 하여 이른바 覇者가 되도록 하였다.
그는 활의 명수로 활 한자루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활로써 환공을 쏘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을 때 환공의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적장이던 관중은 일약 재상으로 영입이 되었으니, 그의 활솜씨는 그 후 여러 제후국을 다스리는 명수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王道가 이미 쇠미하는 때라고 파악하여 覇道를 세우고자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예에 능한 만큼이나 자기의 사상을 설파하는 문예에도 능하여 오늘날까지 그가 撰한 管子書 76편이 전해오고있는데, 유가, 도가, 법가의 사상이 망라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4편목에서 五行說을 언급하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1) 管子書의 "幼官"편에는 木 火 土 金 水의 五行에 관한 표현은 없으나 "五和時節"이라 하여 논술을 전개시키고 있으며, "五和時節"의문구에 관한 註에는, 土는 數五를 生하고, 土氣가 和한즉 인군이 시절에 순응하여 정사를 베푼다고 되어있다. 또한 "유관"이라는 편명에관한 주에도 정사의 법도를 가지런히 하려고 도울 것을 알아서 베푼다는 뜻이 있다. 그 뜻을 종합한다면 백성을 돕는 정사를 하는데 인군은 시절에 순응하여 五數를 가지고 한다는 것으로 간과할 수 있다.이곳에서 生數 五는 사용하였으나 成數 十은 사용하지 않았고, 生數 一 二 三 四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成數 六 七 八 九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며 "五和時節"이라는 문구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2) 管子書의 "四時"편에는 五方을 기준으로 하여 日月星辰과 時, 氣, 德, 體, 天干을 配屬시키고있다.
3) 管子書에는 "五行"편이 있는데 [五行以正天時, 五官以正人位 :五行으로 천시를 바르게 하고, 오관으로써 인위를 바르게 한다]라고 피력하면서 비로소 木 火 土 金 水에 관한 언급을 보이고있다.
4) 인체의 생리에 관한 언급이 관자의 "水地"편에 보이는데 그 내용이 素問에 나타나는 인체 五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酸主脾 鹹主肺 辛主腎 苦主肝 甘主心 : 신맛은 비를 주하고, 짠맛은 폐를 주하고, 매운 맛은 신을 주하고, 쓴맛은 간을 주하고, 단맛은 심을 주한다]라고 되어 있다.
A.D.99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宋나라의 李昉이 왕명에 의하여 撰한 "太平御覽"의 人事部에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인체생리에 관한 언급이 보이는데 [脾生髓, 肝生骨, 腎生筋, 肺生革, 心生肉]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 肺生革의 '革'은 피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이상으로 管子書에는 五行에 관한 언급이 유관편, 사시편, 五行편, 수지편에 흩어져서 기록되어 있으며, 통치자의 통치수단으로서五行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진다.
管仲은 한 나라의 재상이 되어 五行을 술법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五行의 理致로서 백성을 교화하고 재화를 유통시켜 자원을 증산시키고, 의식주를 풍족하게 하여 그 위에 법도를 세워서 부국강병책을 시행하는데 성공하였다.
또 한편으로 공자도 그러한 공적을 인정하여 [관중이 없었다면 나는 머리를 풀고, 오랑캐의 풍습을 따랐을 것이다] 라고 논어에서 피력하여 놓았다.
呂氏春秋는 책 이름에 비록 春秋라는 말이 들어갔으나, 史書類가아니고 雜家類에 속하는 諸子書이다.
이 책은 秦始皇의 의붓 아버지가 되는 呂不韋(?-B.C.235)가 食客들을 모아서 撰한 것이다. 여불위는 본래 재치있는 큰 상인으로서 자기의 애첩을 상납하고 진나라의 재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상납했던 애첩이 황후가 되고 진의 시황제를 출산한 뒤 선왕이 죽고 시황제가 등극하자, 다시 애첩과 간통하다가 그 혐의를 밝히려는 시황제로부터 유배당하자 후환이 두려워서 자살하고 말았으니, 여자관계로 재상이 되기도 하고 여자관계로 목숨을 버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불위가 자살하기 4년 전인 B.C. 239년에 완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12紀, 8覽, 6論으로 이루어져 있으며,12기 속에 五行說이 산견되고 있다.
12기란 1년 열두달의 자연현상을기록한 것으로 61篇目이나 된다. 이 12기에는 춘 하 추 동 사계절을 孟 仲 季로 나누어서 기록함으로서 12기가 되었으며, 여기에서 산견되는 五行說은 전국시대 말기에 통용되었던 五行說로 그 시대의 五行에 관한 학술적 검토를 해 볼 수 있는 중요자료라고 생각된다.
인체생리구조에 관한 五行說도 내경의 素問이나 靈樞에 나타나는 인체의 생리구조적 五行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臭에서 형은 나무향기를 말함, 본래는 누린내를 표시하는 글자.
牲은 제사 지낼 때 희생으로 쓰는 짐승.
祀는 제사지내는 장소를 말하는 듯하며, 여기서 行은 대문 안쪽이라고 注에 보인다.
淮南子는 前漢의 淮南王인 劉安(B.C.179-B.C.122)이 문객들과 함께지은 雜家書이다.
淮南이란 지역의 이름이며 한나라때 제후국이었다.
漢을 개국한 高祖에게는 서출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劉長이었다. 長은 남을 깔보며 교활한 행동을 할 뿐 아니라 高祖의 적출로 왕위에 오른 文帝를 여러가지로 괴롭혔다. 물론 長도 제후국의 왕으로 봉해져서 려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文帝는 수모와 업신여기는것을 참을 수 없어 長을 단죄하여 죽이고 말았다. 적출과 서출간의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죽은 長의 아들이 淮南王 劉安으로 漢을 개국한 劉邦의 서출 손자가 되는 것이다. 회남왕은 자기 아버지가 억울하게 설움받다가 죽임을 당하였다고 믿었으며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한 왕실의 정권을 넘보다가 발각되어 자살하고 말았다.
여불위는 왕후와 간통하다가 발각되어 자살하였고, 회남왕 유안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정권 찬탈을 획책하다가 발각되어 자살하였다. 이 두 사람의 지위가 백성을 통치하는 지위에 있었으며, 五行을 백성을 교화하는 법도로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술법으로 받아들인 점이 두사람에게는 공통된 점이며, 자살한 것 또한 공통된 점으로 다소 풍자적인 면이 있다.
淮南子의 敍目을 살펴보면 빈객과 方術之士 수천인을 불러다가 淮南子를 저술하였으므로 그 내용이 일관성이 없으며 여러사람의 사상이 종합된 잡가서가 되고 말았다.
그 한 예로서 淮南子의 문장 속에는 [주나라의 왕실이 소퇴하자 예의가 퇴폐해졌으므로, 공자는 三代의 道로써 세상을 교화하였다]고 儒家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는가 하면 유가를 [俗世之學]이라고 공격하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21권의 淮南子의 내용 중에는 "天文訓"과 "墜形訓"과 "時則訓"의 3권 속에 五行說이 散見되고 있다.
墜形訓은 地形訓으로 쓰여지기도 하였거니와, 그 내용은 동서남북의 산천과 지형을 다루었으며 여기에서는 산천의 모양과 지형을 견주어서 인체생리에 관계되는 五行을 논술하였다.
臭의 형은 呂氏春秋의 내용과 같으며 앞에서 설명이 있었음.
兵에 있어서 矛는 창끝 날에 가지가 없는 창.
戟은 창자루에서 창날쪽으로 가지가 있는 창(槍)
劍은 칼날이 양쪽에 있는 긴 칼.
戈는 창끝날에 가지가 있는 창.
는 목까지 감추게 하는 투구.
이 책은 西漢의 재상이었던 董仲舒(B.C.179-B.C.104)에 의하여 직접 씌여진 글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諸子書와는 그 가치가 다른 책이다.
呂氏春秋라든지 淮南子와 같은 책들은 撰者가 직접 쓴 것이 아니고, 문객이나 빈객 혹은 방술지사 수천인을 불러다가, 그들로 하여금 찬한 글을 모아서 제명을 붙인 것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책은 잡가서에 속하지만 "春秋繁露"는 전통적인 儒家類에 속한다.
이 책 또한 陰陽五行사상을 거론하면서도 술법에 흐르지 아니하고,오히려 인가을 인간답게 교화하려는 의지와 함께 역사의식을 전개함으로써,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도덕율을 도출하려는 의지를 서술한 글이므로 유교사상의 흐름에 하나의 큰 획을 그려왔다.
또 청나라 말기에는 康有爲 (1858-1927)가 <春秋董氏學> 이라는 저술을 하므로써 그 사상의 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 책에 의하여 공자의 歿年으로부터 343년만에 유가사상은 한나라의 국교로 정해진 것이다.
백가쟁명의 전국시대와 억압정치의 秦이 무너진 후, 漢나라가 등장하였으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만한 사상적 정립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나간 역사의 흐름을 교훈삼아서 새로운 역사의 발전의식에 陰陽五行思想을 결합한 "春秋繁露"는 [天人感應說]을 정립한 책이라는 점에서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五行說을 피력하면서도 술법에 흐르지 아니하고 도덕율을 도출하려는 시도가 여러곳에서 보이고 있는데, 그 한 예를 든다면 "五行對"편에서 五行상생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木生火하듯이 夫生子하니 子는 마땅히 孝行하여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理致를 피력한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木生火하듯 夫生子한다는 논리하에 족보상의 항열(行列)이 木 火 土 金 水의 상생의 理致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생각도 든다.
春秋繁露는 82편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에 삼분의 일에 가까운 25편목에 陰陽과 五行思想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어 있다. 그토록 많은 편목에서 五行說을 다루었음에도 방술적인 거론없이 순수한 五行說의 기본 논리만을 전개하고 있으니, 과거에 있었던 五行說과 함께 유행하던 五行술법을 타파하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타인의 五行술법을 소원시킨다거나 배척한다는 표현없이 순수논리를 전개하였다는 것이 깨끗한 학자적 양심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여기에는 잘못된 술법은 자연도태된다는 역사의식이 작용하였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동중서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춘추공양학을전공하여 史家的 차원에서 재상이 되었으며, 그의 모든 학술논리의 전개도 사가적 입장에서 피력하였기 때문이다. 春秋三傳 중에 춘추공양전은 "말이 적으나 뜻이 큰" 공자의 숭고한 정치이념과 뜻깊은 역사철학을 밝히는데 충실한 책으로써, 동중서에게 감화를 주어서 한나라의 정치이념과 제도를 통일하도록 한 사상서였던 것이다.
동중서의 五行사상이 얼마나 순수한가를 살펴보고자, "春秋繁露"의 제42편목인 五行之義에 나타난 도덕률의 한부분이 되는 대목을 여기에 소개한다.
[相受而布, 是故木受水 而火受木, 土受火, 金受土, 水受金也. 諸授之者, 皆其父也. 受之者皆其子也. 常因其父以使其子, 天之道也. : 서로 받아서 넓게 펴는 고로 木은 水를 받고, 火는 木을 받고, 土는火를 받고, 金은 土를 받고, 水는 金을 받는데, 주는 자는 모두 아비가 되고 받는 자는 모두 자식이 된다. 떳떳한 인연으로 그 아비가 그자식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 天의 道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五行의 理致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려는 도덕율을 도출시키고자 하는 논술로 일관되게 25편목에서 陰陽과 五行의 理致에 관한 논리전개를 하였으나, 五行配屬 관계는 불과 여섯가지로 일관하고 있으니, 방술적인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적인 五行 논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五行의 술법이 늘어나 횡행하게 되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나, 세상이 바로 잡힐수록 사술은 줄어들게 되는 것인즉, 이것은 마치 진실과 정성은 수단을 거치지 않고도 그 본체를 항상 드러내 보이는 理致와 같은 것이다. 어느 일에나 수단이 거듭될수록 그 일은 마침내 꼬이고 뒤틀리는 결과가 오는 것인즉, 동중서의 "春秋繁露"에 나타난 五行 논리는 그 수단을 배격하고 원리 원칙이 되는 알맹이만을 논술한 역사의식을 여러가지 면으로 깊이 생각해 봄직한 것이다.
太玄經은 西漢 末에 楊雄(B.C.53-A.D.18)이 易經을 모방하여 인사와 자연을 논한 術家書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양웅은 뿐만 아니라 논어를 모방하여 <법어>를 저술하기도 하였거니와 王莽(왕망)이 서한의 마지막 왕인 平帝를 죽이고 新나라를 세운후 자기의 신분에도 넘치게도 15년 동안이나 자칭 왕이라고 할 때에, 새 정권을 찬미하는 글을 써 올리고 大夫의 벼슬을 지내기도 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宋代의 新儒家사상이 정립된 이후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양웅이 太玄經을 쓴 시기는 B.C. 6년부터 A.D. 2년 사이이며 왕망이 전한의 정권을 찬탈한 시기는 A.D. 8년으로 되어 있음을 살펴볼 때, 그의 나이 55세때에 太玄經을 완성하였으며 61세때에 왕망 앞에 나아가 벼슬을 한 것이니, 術法에 관한 대작을 남긴 사람으로써 술법에 의한 판단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잘못 판단하고 벼슬길에 나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宮庭文人으로써 동양의 전통적인 不事二君의 정신을 송두리째 버린 사람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太玄經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易의 理致는 陰과 陽으로 되어 있으나 太玄의 理致는 始, 中, 終의 三數에 근거를 두고 있다.
始, 中, 終을 다시 네가지로 나누어서 方, 州, 部, 家로 구성하여 方은 三變, 州는 9變, 部는 27變, 家는 81變하여 우주 만물을 전부 이 가운데에 포함시켰다. 玄은 天 地 人을 낳고, 天 地 人도 三數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고 하여, 天은 始中終, 地는 上中下, 人은 思福禍의 三數의 변화속에서 생성 발전한다고 보았다.
太玄經의 편명을 주역과 관련시켜 비교하여 보면 家는 卦辭, 玄音은 彖辭에, 玄贊은 爻辭에, 玄測은 象辭에, 玄文은 文言傳에, 玄告는 繫辭傳에, 玄數는 說卦傳에, 玄衝은 序卦傳에, 玄錯은 雜卦傳에 해당하는데, 玄數篇에 五行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으며 五行에 관한 配屬이 50여가지로 되어 있다.
五行에 관한 거론은 3-8木에 54가지를 配屬하고, 4-9金에 67가지를 配屬하고, 2-7火에 54가지를 配屬하고, 1-6水에 52가지를 配屬하고, 5-5土에는 65가지를 配屬하고 있는데, 그 거론하는 순서가 東, 西, 南, 北, 中央의 순으로 되어 있으며, 5-10土가 아니라 5-5土로 표현하고 있다. 가지수가 많아서 표를 1, 2, 3으로 나누어 정리하여 본다.
臭의 형은 나무의 향기 냄새.
腥은 비린내.
焦는 타는 냄새.
朽는 썩는내 또는 구린내.
芳은 물의 향기냄새.
形은 변형을 말함.
生은 相生을 勝한 相克을 말함.
兵에 있어서 矛는 가지가 없는 창날.
鉞(월)은 자루가 긴 도끼.
盾은 방패.
弓矢는 활과 화살을 말함.
白虎通義는 後漢의 사학자인 班固(32-92)가 찬한 43편목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백호통]이라고도 하며 [白虎通論說]이라고도 한다.
진의 시황제때에 焚書사건이 일어난 이후, 西漢시대에는 당시에 통용되던 문자로 씌여진 今文經典과, 감추어 두었다가 나타난 옛날의 문자로 씌여진 古文經典이 있었으며, 서한이 망할 무렵에 이르러서는 경학의 학술사상이 금문경학과 고문경학의 두파로 갈라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서한이 망하고 다시 동한의 정권이 들어섰으나 금,고문학파간의 논쟁은 끊이지 않았으며, 동한의 제3대 제왕인 章帝는 재위 4년인 A.D. 79년 11월에 북궁의 백호관에 금,고문학자들을 모이도록 하여, 오경에 있어서 금문과 고문의 다른 점을 강론하도록 하고, 반고로 하여금 그 내용을 찬집하도록 명하여서 [白虎通義]를 지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고문학파들의 세력이 약한 반면 금문학자들은 높은 벼슬길에 올라 있었으며 그 세력과 숫자가 우세하여 그 논쟁에서는 금문학파들의 우세로 끝막음 되었지만, 반고는 사학자적인 입장에서 책의 내용을 금문학파의 주장대로 찬집하지 않고, 소수의견이지만 고문학파의 학설과 융화, 관통시켜 금,고문학을 조화시키려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白虎通義에 나타난 五行說은 유가의 전통적인五行說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금문학파의 五行說이나 고문학파의 五行說에는 일치점을 보여왔던 것으로, 그 당시의 五行說의 내용을 살펴보는 데에 있어서 금문이나 고문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을 것으로보인다.
반고는 알려진 바와 같이 二十五史의 하나인 한서 100권을 찬집한 史家로서, 사가의 안목으로 정리 정돈된 五行說은 동중서의 春秋繁露에 나타난 五行說과 함께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될 것이다.
白虎通義에 나타난 五行표를 살펴볼 때, 대부분의 내용이 오늘날에 통용되고 있는 五行說과 일치하고 있으며, 인체의 생리에 관계되는 臟에 관한 것도 黃帝內經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 또 五行說을 설파한 諸子書 중 四時에 있어서 木春, 火夏, 金秋, 水冬은 전통적으로일치하고 있으나, [土에 대한 配屬을 각 계절마다 90일에서 土旺日18일씩 配屬하였다]라는 표현이 白虎通義에서 처음으로 보이는데, 그이전의 五行說에서는 長夏 또는 季夏로 표현되기도 하고 뚜렷한 配屬이 없기도 하였다. 여기에 白虎通義 五行편에 나타나 있는 土와 四季의 관계를 서술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土는 四季의 각 18일씩을 기운이 성한 것이다. 토의 기운이 사계를 왕한다는 것은 어찌한 까닭인가? 목은 토가 아니면 不生하는 것이며, 화는 토가 아니면 不榮하는 것이며, 금은 토가 아니면 不成하는것이며, 수는 토가 없으면 不高하는 것이다. : 土王四季 各十八日 土所以王四季何 木非土不生 火非土不榮 金非土不成 水無土不高] 한가지 더 밝혀 본다면 사람에게는 아홉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을 竅라는 글자로 표현해 오고 있다.
이 竅에 관한 五行配屬은 아직까지도 統一性이 없으며 黃帝內經의 素問에서의 竅에 관한 五行 配屬과 靈樞에서의 配屬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黃帝內經의 要義는 陰陽과 五行의 理致로써 인체의 생명을 꿰뚫어보는데 있으며, 또한 陰陽과 五行의 理致로써 인간에게 엄습해 오는 질병과의 투쟁적 기록이다.
그동안 고서에 나타난 五行說을 살펴오면서 여러 곳에서 [五行의 으뜸은 土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土는 數로는 5가 되며, 中央이요, 黃色일 뿐 아니라, 五行의 으뜸이라는 뜻과 함께 五行의 理致로써 마련된 글이라는 데에서 黃帝內經의 이름이 가탁되지 않았겠느냐고 여겨지는 것이다.
황제의 黃은 土요, 土는 數로 5가 되며 土는 五行이 으뜸이요, 중앙을 뜻하므로 실제적으로는 황제시대에 쓰여질 수 없는 글이지만, 황제의 칭호를 빌어서 黃帝內經이라 칭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이책 속에는 五行의 理致를 응용하고 피력하여 놓았다.
서경에서 "五"라는 표현을 하였고, 五와 더불어 天地人에 관한 표현이 37곳에 나타난다는 내용을 이미 위에서의 "五行說의 형성 기원"에서 살펴 보았거니와, 黃帝內經에서는 五와 관계 되는 특유한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으니,
五入, 五中, 五化, 五氣, 五風, 五火, 五主, 五邪, 五行, 五色, 五脈, 五陽, 五陰, 五運, 五聲, 五時, 五亂, 五體, 五位, 五兵, 五穀, 五味, 五果, 五變, 五法, 五治, 五宜, 五官, 五實, 五經, 五決, 五音, 五度, 五宮, 五類, 五逆, 五惡, 五臟, 五畜, 五人, 五月, 五節, 五發, 五過, 五奪, 五幷, 五部, 五病, 五菜, 五虛, 五常, 五液, 五栽, 五禁, 五輸, 五精, 五閱, 五使, 五수, 五痺 백여가지의 五와 관계되는 어휘들을 구사하고 있다.
黃帝內經의 素問과 靈樞의 내용을 면밀하게 살펴본 바로는 陰으로 시작되는 어휘가 52가지를 사용하였고, 陽으로 시작되는 어휘를 34가지 사용하였으며, 五로 시작되는 어휘는 100가지가 넘고 있어 五와함께 사용되는 어휘의 빈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어휘들은 五行思想이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음으로 해서 형성된 어휘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黃帝內經을 五行說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莊周가 易을 가리켜서 [易以道陰陽]이라고 표현한 말을 빌어서 사용한다면, [內經以道五行]이라고 표현한들 거리낌이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살펴볼때에 五行의 으뜸이 되는 것은 土, 土는 황색으로 이 "黃"에 "帝"를 붙여 黃帝內經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겠느냐 하는 가설을 도출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黃帝內經의 撰者뿐만 아니라 그 著成年代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처지이고,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로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黃帝內經은 韓醫學에서 宗經으로 쓰여오고 있으며, 그 내용을 능가할 만한 醫書가 아직까지 출현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책속에 담겨져 있는 理致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五菜에서 는 부추(정구지).
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써 염교라고 한다. 그 뿌리는 마늘과 비슷하며 식초에 담갔다가 식용으로 쓰인다. 한국에서도 상당량 재배되고 있다.
葵는 해바라기, 여기서는 미나리를 말함.---(본인 주; 이 규는아욱 규, 해바라기 규로 나와 있으나,, 본인은 아욱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음)
蔥은 파,
藿은 미역...(본인 주: 이 곽은 콩 곽, 콩잎 곽, 미역 곽 등의훈으로 본인은 콩이나 콩잎이 아닐까? 또한 다섯가지 채소를 나누고 있는 조목에서 미역은 해당이 안되므로 콩, 콩잎이 맞을 것같다)
五味篇에서 논술되고 있는 핵심은 五臟에 병이 있을 때 치유를 목적으로 과일 채소 고기 곡식을 이렇게 섭취하라는 뜻이며, 五味의 금기사항을 이렇게 적고 있다.
肝病에는 매운 것을 금하고, 心病에는 짠 것을 금하고, 脾臟病에는신 것을 금하고, 肺病에는 쓴 것을 금하고, 腎臟病에는 단 것을 금한다.
主氣에서 語는 말이 많아지는 것.
噫는 애로 발음하며, 트림 또는 탄식하는 소리.
呑은 숨이 넘어가는 듯함.
咳는 기침하는 것.
欠은 하품 또는 재채기하는 것
幷은 어떠한 기가 모여서 장과 함께 하여 나타나는 결과.
惡는 싫어하는 것.(오로 발음)
走는 五味가 과다하게 섭취되므로써 나타나는 질병부위.
위의 표에 나타나 있는 것 외에도 九鍼論에는 五勞, 五栽, 五發,五邪에 관한 내용도 있으나, 의술적 표현이므로 五行配屬은 약술한다. 五勞의 내용을 풀어서 소개하면 "久視하면 傷血하고, 久臥하면傷氣하고, 久坐하면 傷肉하고, 久立하면 傷骨하고, 久行하면 傷筋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黃帝內經이 동양의학에 있어서 위대한 공헌을 해 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陰陽五行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인체의 생명을 보다 더 건강하게 보존유지하고, 질병의 예방과 퇴치법을 理致에 맞도록 서술해 놓은 책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질병치료방법에 중점을 두지 않고 질병의 예방법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질병의 예방이란 그 질병에 관한 핵심적 속성을 잘 파악하므로써 가능하였을것이며,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는 方藥보다는 針刺法을 제시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① 易의 理致를 응용하여 五行을 五味에 配屬하여 五臟을 다스리는 법술을 개발하였다는 점.
② 易의 理致를 응용하여 氣와 味를 陰陽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陰陽에 配屬시켜서 風熱濕燥寒의 氣를 升散작용으로 이끌어내기도 하는 법술을 개발하였다는 점.
③ 易의 理致를 응용하여 爻位升降의 理致에 따라 氣와 血을 升降浮沈시키는 법술을 개발하였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五行을 五味에 配屬시켜서 五臟을 다스림으로서 인체의 생리구조를 건강유지시키고 발병을 억제시킨다는 理論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竅에 대한 五行配屬은 素問의 金櫃眞言論과 陰陽應象大論 두군데에 보이는데 서로 상이하다.
穀에 있어 黍는 찰기장, 稷은 메기장. 陰陽應象大論
臭에 있어 조는 누린내, 焦는 타는내, 腥은 비린내, 腐는 썩는내를 뜻함.
金櫃眞言論의 金櫃라는 것은 옛날에 제왕이 주요서적을 갈무리 하는 그릇으로써, 다시 말해서 金櫃속에 眞言을 보관해 둔다는 의미로서, 청나라의 의술가인 張志聰(1610-1695)은 [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금궤진언론의 편명에 주해하였다.
2) 黃帝內經의 陰陽應象大論은 이 책의 핵심적 편목인 바, 素問을 접하는 자는 이 편에서 매료되고 만다. 이 편목에서는 天地水火와 四時五行, 寒熱氣味가 인체장부와 形身에 부합되는 것과, 淸濁氣血의 表裏上下를 논술하였을 뿐 아니라, 成象, 成形이 陰陽과 부합되는 理致와 진맥과 찰색과 치료법을 陰陽의 법으로 논술하여 놓았다.
오주(근 맥 기육 피부 골)는 오미(시고 쓰고 달며 맵고 짠 맛)가 과다섭취됨으로써 나타나는 질병부위로 靈樞 九針論의 내용과 조금 다르다.
藏은 五臟속에 숨어 있는 心神과 魂魄
참고로 靈樞 九鍼論에 나타나 있는 五勞에 관한 똑같은내용이 宣明五氣篇의 끝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陰陽과 五行說의 기원을 샅샅이 뒤져 살핀다는 의욕을 가지고, 考察이라는 어휘를 제명에 붙였으나 기대에 못미치는 감이 있다. 그 기원을 諸子書에서 찾는다고 하였으나, 그 범위가 九流十家라 하여 많게는 100子에 이르고 적게는 22子에 이른다. 이 중에서 五行을 핵심적으로 설파한 것으로 보이는 8子8冊으로 범위를 좁혀서 그 내용을 23개의 도표로 만들어 보았다. 유교의 경전인 禮記, 月令의 전체문장이 五行에 관계되는 내용이지만, 呂氏春秋에 나타난 문장과 똑같은 내용으로써 글자하나 틀리지 않기 때문에, 8子8冊의 五行에 관계되는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五行논리의 핵심적인 것은 거의 다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고에서 소개되고 있는 8권의 諸子書의 著成年代를 著者의 沒年기준으로 그 연대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管子 -- 관중 -- 몰 B.C. 645.
周易십익 -- 공자 -- 몰 B.C. 479.
黃帝內經 -- 전국시대 -- 몰 B.C. 403-220
呂氏春秋 -- 여불위 -- 몰 B.C. 235.
淮南子 -- 유안 -- 몰 B.C. 122.
春秋繁露 -- 동중서 -- 몰 B.C. 104.
太玄經 -- 양웅 -- 몰 A.D. 18.
白虎通義 -- 반고 -- 몰 A.D. 92.
五行說의 기원을 살펴본 바로는 五行에 관하여 두가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① 그 첫째로는 五行의 相生과 相克說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相生說이 먼저 나타나고 相克說이 후에 나타난 것은 왜였을까 하는 것이다.
② 그 둘째로는 五行의 配屬문제인 것이다. 思惟의 차이에 따라서 다르고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은 왜였을까 하는 것이다.
첫째 의문인 五行상생설의 시원은 河圖의 左旋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상극설은 洛書의 右旋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學易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아는 사실이거니와, 諸子書에는 相生의 논리가 相勝(相克)의 논리보다 우선하고 여러차례 취급하고 있다.
두번째 의문인 五行配屬은 그 기본은 통일되었으나, 그 理致는 思惟에 따라서 혹은 시각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여러 도표에서 알수있다. 呂氏春秋와 내용상 일치하고 있는 禮記의 月令에서 五行配屬이思惟에 따라서 달리하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니, 당나라 孔穎達(공영달,574-648)은 禮記, 月令의 한구절인 [봄제사에서 희생물의 脾臟을 먼저 바친다: 祭先脾]의 주에서 [희생물의 머리를 남쪽으로 놓고 보면 肺가 제사상의 앞쪽이니 마땅히 夏가 되고, 腎은 제사상의 뒤쪽이니 마땅히 冬이 되므로 脾臟은 마땅히 春位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 所以春位當脾者, 牲立南首, 肺祭在前而當夏腎最左后而當東...]라고하여 희생물이 놓이는 방법에 따라 희생물의 五臟이 五行에 配屬되는 순서가 달라지고 있으며, 이것은 인체생리의 五臟을 五行에 配屬하는 理致와 완전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가적인 안목으로 五行說을 설파한 春秋繁露와 白虎通義에서는 五行의 기본만을 논술하였을 뿐 확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며, 五行配屬을 지나치게 확대하다 보면 마치 동요에서 상상력의 고리를 연결하여 바나나가 백두산이 되고마는 실수 아닌 과오를 불러들이고 말 것이며, 五行의 配屬이 그 기본은 고정화 되었을지라도, 때로는 역학의 理致에 따라 知時識辨하여 五行의 원리에 접근하여야 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글은 洪易學會의 회지인 同人에 장봉혁씨가 게재한 글입니다.
내용은 춘추전국 시대의 諸子書에서 五行의 配屬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으로 시대와 저자에 따라 그 配屬관계가 약간씩 다름을 볼 수있읍니다.
춘추 전국의 백가쟁명 시대에 陰陽五行說을 정비하고 완성한 사람이鄒衍(추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그 이전에는 상당히 많은 理論들이 난무했으며,
이 잡다한 五行논리는 문헌적으로 거의 白虎通義와 黃帝內經에 이르러 정비되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면,
왜 이 五行配屬에 관한 理論이 시대마다 달랐을까?
내경에서조차도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 건 어떤 이유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각자의 시각으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