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연구하고 또한 그것으로 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홈 페이지인데, "열"을 소홀하게 생각하지는 아니 할 수 없다.
사암 침구 요결에도 한열 보사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곳에서는 열을 통한 치료에 치중하지 않고 단지 "열"의 실체에 관하여 한 걸음 나아가 보기로 한다.
열의 엔트로피에 대해서 깊이 다룬것은 내가 과거에 물리나 열역학 그리고 열전달과목 등에서 "열"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다. 열은 우리 인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물리적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 진단의 한가지 측정요소인 음양 한열 표리 허실의 진단법에 속하는 대표적 요인이며, 치료에 있어서도 한하면 온하게 해주는 등의 개념으로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열역학을 공부하다 보면 엔트로피라는 것이 중요한 개념으로 부상하는데, 여담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엔트로피가 가장 적은 사람은 성직자인 스님 같으신 분일 게다. 구도자의 무념 무상 구도에 정진하는 삶의 태도야 말로 엔트로피의 축적(소비)을 가장 적게 할 테니까.
우리 신체의 움직임은 열의 이동으로써도 관측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생각 해 보면 알 수 있다. 침 공부 만큼 딱딱한 얘기이지만 끝까지 이 곳을 자세하게 작성하고 싶다. 하지만 워낙 열의 연구가 다방면에서 연구되고 실용화 되는 추세를 따라가야만 하는 처지임을 미리 밝혀두면서 미진함을 아쉽게 생각 한다.

온도와 열소

1) 온도 : 열량의 크기를 물리적 수치로 표시한 것으로 섭씨온도, 화씨온도, 절대온도가 있다.
2) 열소 : 열량을 전달하는 물질, 열소의 양은 열량에 비례하며 접촉된 물체는 열적으로 평형을 유지하게 된다.
3) 비열 : 어떤 물질 1g을 온도1도씨 상승시킬 때 필요한 열량, 물질마다 다르며, 열용 량이 크다는 것은 쉽게 데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의 이동

1) 대류 : 열이 유체를 통하여 이동하는 현상으로, 이는 유체의 열팽창으로 인한 밀도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물질의 순환운동이다.
2) 전도 : 저온부와 고온부의 온도차에 의해 일어나는 열의 이동현상을 말한다.
3) 복사 : 열이 중간에 다른 물질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4) 열역학 제2법칙 : 열은 스스로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며, 저온에서 고온으로는 이동하지 않는다(비가역법칙).

- 일의 단위 : Newton
- 열의 단위 : Joule
- 일률의 단위 : W(와트)-1초 동안에 1J의 일을 하는 단위
- 섭씨온도 : 물의 어는점을 온도0도씨, 끓는점을 온도 100도씨로 하고 그 사이를 100 등분하여 한 눈금을 온도1도씨로 한다.
- 화씨온도 : 물의 어는점을 온도 32도F, 끓는점을 212도F로하고 그 사이를 180등분하 여 한 눈금을 온도1도F로 한다.
- 절대온도 : 물체가 가질수 있는 최저온도(-273도씨)를 0도K로 하며, 절대온도 0도K 는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0인 상태를 말한다.
절대온도(K)=섭씨온도(C)=273이다.

열과 열기관

주울(Joule)의 실험에 의하면 熱은 기계적 일에 의하여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물리적 과정에서 보존되는 것과 같은 물질은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의 逆變換, 즉 熱을 유효한 일로 바꾸는 것은,1769년 James Watt의 蒸氣機關 의 발명 이래 항상 현장의 기술자들에게 흥미있는 대상이 되어왔다.
이런 熱氣關의 작업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熱源(예를 들면 석탄의 불)을 사용하여 작업물질(예를 들면 수증기)을 가열하고,이것을 적당한 밸브를 통해 피스톤이 달려있는 원통 속으로 팽창시킨다. 이 팽창에 의하여 피스톤을 앞으로 내밀게 하고 적당한 연결을 사용하면 기계적인 일을 얻을수가 있다.
한편 作業物質은 팽창에 의하여 냉각되며,원통에서 밸브를 통하여 회수된다. 피스톤은 플라이 휘일(flywheel) 작용에 의하여 원위치로 되돌아가 다음 팽창과정에 대비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熱氣關은 어느 것이나 高熱源에서 熱을 흡수하여 일부를 일로 변환시키고,나머지를 低熱源에 버린다. 실제로는 기관이 움직이는 각 부분에서의 마찰에 의한 일의 손실을 피하기는 어렵다.
19세기 초엽 産業革命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후 점차적으로 증기기관은 향상 되었다. 그런데 이들 증기기관은 연소된 석탄에 대한 일출력의 고유한 比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比는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향상되었고,증기기관의 효율에 대한 아무것도 예기할 수가 없었다. 효율ε에 대한 일반적인 법칙은 없었기 때문에 단지 일출력 -w와 熱入力 q2 와의 비로써 정의했다.

열역학

열역학 : 열과 역학적 일과의 기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열현상을 비롯 해서 자연계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통일적으로 다루는 물리학의 한 분야.
생물계나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모든 자연현상을 에너 지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학문분야 로, 화학이나 공학방면에서 많이 이용된다. 19세기 중엽에 열기 관의 개량이라는 기술적인 요청을 배경으로 시작된 학문으로 N.L.S.카르노를 위시해서 J.P.줄, R.E.클라우지우스, W.캘빈 등 에 의해서 그의 열역학 제1법칙 및 제2법칙 기초가 되는 법칙이 경험적으로 세워졌다.
그 후 이 법칙이 가지는 의미를 J.맥스웰과 L.볼츠만, 그리고J.W. 깁즈 등이 미시적 입장에서 통계역학적으로 해명하였다. 이는 물리 이론에 확률의 의미를 도입함으로써 열역학의 이론에 새 로운 해석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 후 W.H.네른스트는 절대영도에서의 네른스트의 열정리 엔트로피에 관한 정리 를 제창하였고, M.플랑크가 이 정리를 손질하여 열역학 제3법 칙이 확립되었다. 열역학은 이들 3개의 주법칙과 열역학 제0법칙 열평형개념 의 성립에 관한 법칙을 기초로 하여 구성된 이론체계로, 그 적 용범위는 광범위하고, 그 결과는 보편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열역학방법이 가지는 일반성에 의한 것으로, 여러가지영역 에 이용되어 많은 유용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상론적인 성격에서 오는 한계도 있다.

열역학 제 0 법칙

물체간 또는 물체의 각 부분간에 열적인 평형을 이룬상태. 즉, 서로간의 열적인 교환을 할 수 있도록 연락된 몇개의 물체또는 한 물체의 어느 부분에서나 열이 이동하지 않고 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이다.
A와 B가 열평형 상태에 있고 B와 C가 열평형 상태에 있으면, A와 C를 직접 접촉시켰을 때 반드 시 열평형 상태를 이루게 된다는 법칙이 있다. 이것을 열역학 제 0 법칙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온도의 개념이 성립한다는 것이 증명되며, 열평형의 조건을 온도의 상등성으로 나타낼 수 있다. 물체의 온도를 온도계로 측정하는 것은 바로 이 원리에 의해서 이다.
그런데 열평형 상태로서는 기체의 과포화나 액체의 과냉 각같이 외부로서의 작은 자극에 의해서도 깨어져버리는 불안정 한 상태도 있다. 열역학적으로는 엔트로피가 극대인 상태를 말 하며, 통계역학적으로는 분자의 평균 운동에너지가 같게 된 상 태라고 할 수 있겠다.

열역학 제 1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어 이제까지 역 학적 에너지 계에만 국한해서 생각해 오던 에너지 보존법칙을 열 현상에까지 확장한 법칙.
즉, 일과 역학적 에너지를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어 이 두 가지 형태의 에너지를 합한 에너지의 보존법칙이다. 어떤 물질계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할 때, 그 사이에 얻어진 총 에너지는 외부에서 행하여진 역학적 일 W와 외부에서 들어온 열량Q의 합 W+Q와 같고, 이 값은 초기 상태와 나중상태만으로 결정되고 변화과정에는 무관한 양이다.
이 W+Q는 두 상태량의 차와 같고 이를 내부에너지라 한다.
외부에서 열의 흡입이 없고, 일도 받지 않았다면, 그 물질계의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질계의 에너지를 감소시 키지 않고 외부에 일을 할 수 있는 장치, 즉 제1종 영구기관 (에너지 공급이 없이도 스스로 에너지를 창조하면서 계속하여 영구히 작동이 가능한 기관) 은 원리적으로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
※ U = JQ - P V
단 J는 열의 일당량, P는 기체의 압력, V는 부피 팽창량
U 〉0 → 내부에너지 증가로 온도 상승
U〈 0 → 내부에너지 감소로 온도 하강
V 〉0 → 부피 팽창으로 외부에 일을 함

V〈 0 → 부피 수축으로 외부에서 일을 받음

열역학 제 2 법칙

자연현상에는 비가역적인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법칙.
제1법칙이 과정의 전과 후에 있어서의 에너지를 양적으 로 규제하고 있는 데 대하여, 제 2법칙은 에너지가 흐르는 방 향을 규제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법칙의 표현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열은 고온부에서 저온부로 흐르는 것이며 저 온부에서 고온부로 흐르지는 않는다라는 것도 그 한 표현이다.
자연현상 가운데는 이와 같은 비가역과정이 매우 많다.
예컨대 마찰에 의한 열의 발생, 기체의 확산등은 주위에 아무런 영향 도 주지 않고, 이것을 역으로 진행시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또 열기관에서는 고온의 열원에서 열을 얻어 이열 의 일부를 냉각기 같은 저온열원으로 흘려 보내는 과정에서만 일을 할 수 있고, 고온에서 얻은 열을 모두 일로 바꿀 수는 없 다.
따라서, 다만 하나의 열원에서 열을 받아 이것을 바꾸되 그 외에 어떤 외부의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열기관, 즉 제2종의 영구기관 (저온부에서 고온부로 열을 이동시켜 운행되는 기관으로 열손실이 전혀 없다 )을 원리적으로 제작이 불가능 하다라고 하는 표현이 가능하다.
한편 물체의 상태만으로 결정되는 엔트로피라는 양 을 정의하고, 이것으로 제2법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즉, "열의 출입이 차단된 고립계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 하고, 결국에는 엔트로피가 극대값을 가지는 평형상태에 도달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 넓은 의미의 열역학 제2법칙

1. 진공 중의 단진자 운동
2. 물에 떨어트린 잉크물의 확산
3. 고기압에서 저기압쪽으로의 공기의 흐름

엔트로피와 엔탈피

엔트로피

물질계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의 하나.
1865년 R.E. 클라우지우스가 변화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서 위의 물리 량을 엔트로피라 이름하였다. 이론적으로는 물질계가 흡수하는 열량 dQ와 절대온도 T와의 비 dS=dQ/T로 정의한다.
여기서 dS는 물질계가 열을 흡수하는 동안의 엔트로피 변화량이다. 열 기관의 효율을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이상 기관에서는 모든 과 정이 가역과정이므로 엔트로피는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일반적 으로 현상이 비가역과정인 자연적인 과정을 따르게 될때에는 이 양은 증가하고 자연적인 과정에 역행할 때에는 감소하는 성 질이 있다.
말하자면 자연현상의 변화가 자연상의 방향을 따라 발생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로 다루어진다. 대부분 자연현상의 변화는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즉, 자연현상의 변화 는 물질계의 에너지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것을 엔 트로피의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온도의 차가 있 는 어떤 두 물체를 접촉시켰을때, 고온부에서 저온부로 열q가 흐른다고 하면 고온부(온도 T )의 엔트로피는 q/T 만큼 감소 하고, 저온부(온도 T )의 엔트로피는 q/T 만큼 증가하므로, 전 체의 엔트로피는 이 변화를 통하여 증가하고 있다.
역으로 저 온부에서 고온부로 열이 이동한다고 하는 자연현상에 역행하는 과정, 예를 들면 냉동기의 저온부에서 열을 빼앗아 고온부로 방출하는 과정에서는 확실히 국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만, 이것에는 냉동기를 작동시키는 모터 내에서 전류가 열로 바뀐다고 하는 자연적인 과정이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므로 전체로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 지로 역학적인 일이 열로 바뀌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자연적인 과정이지만, 열이 역학적인 일로 바뀌는 것은 비자연 적인 것으로, 이것은 열의 일부가 저온부를 데운다고 하는 자 연적인 과정이 선행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연현상은 때때로 국부적인 부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비자연적인 변화를 따르 는 것도 있지만, 그것에 관계되는 물질계전체를 다루어 보면, 항상 엔트로피를 증가하는 방향으로 현상이 변화한다.
이 이론 은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서, 에너지 보존 의 법칙과 함께 열역학의 기본법칙으로 중요하다.
이상기체에 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는 것은 가역변화라고 하는 비현실 적인 변화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무엇보다도 물질계의 열적 상태로 부터 정해진 양으로서, 통계역학의 입 장에서는 열역학적인 확률을 나타내는 양으로 엔트로피 증가의 원리는 분자운동이 확률이 적은 질서 있는 상태로 부터 확률이 큰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해 가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면, 마찰에 의한 열이 발생하는 것은 역학적 운동(분자 의 질서 있는 운동)이 열운동(무질서한 분자운동)으로 변하는 과정이며 고온 물체에서 저온 물체로 열이 이동하는 것은 국부 적으로 분자운동에 개별성이 있다고 하는 질서 있는 상태에서 분자운동이 균일해지는 무질서 상태로 이동해 가는 것이다.
이 들은 어느 경우에나 엔트로피가 증가 하지만 그 반대의 과정은 마치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실내를 원래의 정연한 상태로 정리 하는 것처럼 무질서에서 질서로 옮겨가는 것이며 이 과정은 자 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열역학적 확률의 최대 값은 온도가 균일한 열평형 상태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고찰하 고 있는 물질계가 다른 에너지의 출입이 없는 고립계인 경우에 는 늦던 빠르던 전체가 열평형에 도달하여 모든 열과정이 정지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로부터 엔트로피 증가의 원리가 발 표된 직후 만약 이 원리가 정당하다면 우주는 어느 것이나 열 평형에 도달하여 모든종류의 에너지가 분자의 불규칙적인 열운 동으로 변하여, 소위 열의 종말, 즉 우주의 종말이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논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우주를 고립된 유한한 계라고 가정했을 때의 결론이다.

엔탈피

주어진 체계의 상태를 나타내는 열역학적 양의 하나.
H.카메 를링오네스는 이것을 엔탈피라 하고, J.W.깁즈는 열함수라고 했다.
물질계의 내부에너지가 U, 압력이 p,부피가 V일 때 그 상태에서의 열함량 H는 H=U+pV로 표시된다.
원래 내부에너지 는 절대값을 얻기 힘든 양이므로 보통 열함량도 열적 변화에 따르는 증감만을 문제 삼는다.
부피를 일정하게 유지한채 물질 계가 주고받은 열량이 그대로 내부에너지의 증감으로 되는 데 반해 압력을 일정하게 한 채 물질계에 드나든 열량은 물질계의 열함량의 증감과 같게 된다. 화학반응에서의 반응열을 표시하 는 데 쓰이는 외에, 이론화학 등에서 분자열이나 원자열을 계 산할 때 문제가 되는 양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아이디 RAINBOWJ님께서 │올린 글을 참고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엔트로피에 대하여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世界觀 (WORLDVIEWS)

세계관 (World Views)
세계관(世界觀)이란 무엇일까?말 그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觀點)일 것이다. 또,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세계전체(世界全體),곧 인간,자연 모두를 포함한 우리 행성-지구-,또는 우주전체(宇宙全體)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현상들을 일으키는가를 본다는 것이라 할 수도 있고,자연계(自然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인간이 그 두뇌 속에서 어떻게 판단(判斷)하는가 일수도 있다.
여하튼 세계관은 현상이나 일들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價値判斷 基準)을 설정(設定)해 주는 기본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세계관에 대한 부연정의(附椽定意)에 있어서 "규범(規範)의 틀(a frame of reference)","패러다임(paradigm:a very clear or typical example of something)"같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인간이 하나의 computer라 한다면 세계관이란 그것의 hardware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리스와 다섯 역사 시대-순환과 소멸

(The Greeks and the Five Ages of History -Cycles and Decay)

그리스 시대의 지식인(知識人)들이나 철학자(哲學者)들은 인간의 물질적 생활(物質的 生活)보다는 정신적 생활(精神的 生活)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Socrates(B.C.469[70]∼399),Platon(B.C.427∼347),Aristotel'es(B.C.384[3]∼322[1])등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인간이 사는 생,즉 인생에 있어서의 목표(目標),의의(意義),방법(方法)등에 관하여 관심을 두고 그들의 논리(論理)를 펴 나갔다.
나는 그들이 세계가 변해 가는 과정(過程),즉 역사(歷史)를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全無)하다.그래서 저자(著者)가 말하듯이 "황금-은-청동-영웅-철기(黃金-銀-靑銅-英雄-鐵器)"의 다섯 시대로 인식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判斷)할 수 없다.아마도 대부분의 이들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내가 보아 왔던 어떤 책에도 기원전(紀元前)의 사실에 대하여 확신에 가까운 말투로 기록해 놓은 자료(資料)는 없었기에 이 part의 내용들은 독자의 전폭적(傳爆的)인 지지(支持)를 얻어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적 세계관

(The Christian World View)

중세시대(中世時代)는 기독교적 세계관(基督敎的 世界觀)에 의해서 지배(支配)되었다.기독교적 세계관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천지창조(天地創造)의 주체인 하나님을 절대유일(絶對唯一)의 신(神)으로 보는 것을 바탕으로 한 자세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 하에서는 세계를 -인간사를- 마치 Ski Jump처럼 직선적(直線的)으로 운동(運動)하는 것으로 인지(認知)하도록 허락(許諾)했다.
모든 것은 유일신(唯一神)이 정해 놓은 것이기에 개인(個人)의 어떠한 개성적 가치관(個性的 價値觀)이나 생활도 용납(容納)되지 않음에 따라 중세의 경제(經濟),사회(社會)등 기타 여러 방면의 발전 속도(發展 速度)는 아주 느려지게 되었다.

기계 시대

(The Machine Age)

현재 세계는 기계시대(機械時代)라는 저자의 생각에 나는 전적(全的)으로 동의(同義)한다.
성능(性能)과 효율(效率)이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현대는 어떻게 형성(形成)되었는가?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기계시대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된 기계론적 패러다임(機械論的 paradigm)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누가 그것의 선구적 역할(先驅的 役闊)을 담당(擔當)했는지 살펴볼 필요(必要)가 있다.

기계적 세계관의 건축가

(The Architects of the Mechanical World View)

베이컨(Bacon,Francis Baron Verulam Viscount St Albans:1561∼1626)
베이컨은 영국 최대의 철학자로서 데카르트(Ren'e Descartes)와 더불어 근세 철학의 비조(鼻祖)로서,그의 시대는 영국의 자본주의(資本主義)가 흥성(興盛)하기 시작한 때였으며,따라서 그도 자연(自然)을 정복(征服),개조(改造)함으로써 인간이 만족(滿足)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그는 지식을 얻는 "방법론(方法論)"에 관심을 가지고 실험관찰(實驗觀察)에 의하여 자연의 법칙(法則)을 알아내는 귀납법(歸納法)을,"신 기관(新 機關;Novum Organum,[20])"이라는 이름으로 써서,연역법(演繹法)에 의한 사변적 철학(思辨的 哲學)을 창도(唱導)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論理學;Organum)"에 대항(對抗)하였다.
그는 여기서 네 가지 우상(偶像;idola ; 종족의 우상[種族의 偶像],동굴의 우상[洞窟의 偶像],극장의 우상[劇場의 偶像],시장의 우상[市場의 偶像])을 파괴(破壞)하고,스콜라적 3단 논법을 비판(批判)하였다.
귀납적 방법은 근대사상(近代思想)을 발전시킨 원동력(原動力)으로서 뒤에 밀(J.S.Mill)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가 당시의 자연 과학적(自然科學的)인 새 발견(發見)의 업적(業績)에 맹목적(盲目的)이었음과 그의 관념(觀念)이 중세풍적 요소(中世諷的 要素)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이 비난(非難)되기도 하나,자연을 개조하려는 대담(大膽)한 설계자(設計者)로서 영국 경험론 철학(英國 經驗論 哲學)을 통해 객관성(客觀性)을 강조(强調)하고 세상의 모든 일들을 객관적,과학적 근거(科學的 根據)에 입각(立脚)하여 판단(判斷)하도록 당시 사람들에게 설파(說破)하며 세계에 미친 영향(影響)은 지대한 것이다.

데카르트(Descartes',Ren'e 1596∼1650)
프랑스의 대 철학자,수학자(數學者),자연 과학자인 데카르트는 근세철학(近世哲學)의 시조(始祖)로서 수학(數學)만이 명증(明證)적인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문(學文) 중에서 수학만이 확실(確實)한 것으로 철학도 또한 수학과 같은 명석 판명(明晳 判明)한 진리(眞理)를 출발점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그는 기존(旣存)의 모든 지식을 의심(疑心)했는데,그렇지만 최후에 의심할 수 없는 명제(命題)"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Ergo Sum)"에 도달(到達),이것이 철학의 근본 기초(根本 基礎)라고 설명했다.
다음에 신(神)의 존재(存在)를 증명하여 의심하는 내가 불완전한 것을 자각(自覺)하기 위해서는 완전자(完全者)의 관념(觀念)이 내 속에 있을 것인데,이 관념은 불완전한 내게서 생겨날 리 없으므로 실제로 "완전한 존재자 신"이 있는 것이다라는 추리(推理)를 채용(採用)했다.
다음으로 수학의 확실성을 여기서 끌어내고,거기서 다시 물체 세계(物體 世界)의 확실성을 논증(論證)한 후,신을 중심으로 하는 물심(物心)의 이원론(二元論)을 조직(組織)했다.
수학에 있어서는 해석 기하학(解析 幾何學)을 창시(創始)하여 종래의 그리스 수학의 제한(制限)을 깨치고,근대 수학의 길을 열었다. 이로써 그는 근대의 철학,수학,일반적인 근대적 사상의 시조로 불리우게 되었다.
세상만물(世上萬物)은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수학적 법칙(數學的 法則)에 따른다는 그의 주장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그 맹위(猛威)를 떨칠 수 있는 방법적 근거(方法的 根據)를 제시(提示)해 주었다.
데카르트로부터 기계론적 paradigm의 설계(設計)가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뉴턴(Newton,Sir Isaac 1643∼1727)
뉴턴은 영국의 물리학자(物理學者),천문학자(天文學者),수학자로서 그의 3대 발견이라고 하는 광(光)의 스펙트럼 분석,만유 인력 법칙(萬有 引力 法則),미적분법(微積分法)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천문학,물리학,수학상의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근대 과학 성립(近代 科學 成立)의 최대 공로자이며 근대 과학의 원조(元祖)로 자연(自然)을 일정한 법칙(法則)에 따라 운동(運動)하는 복잡(複雜)하고 거대(巨大)한 기계라고 하는 역학적 자연관(力學的 自然觀)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학문 활동은 자연을 인간에게 종속(從屬)시킴으로서 그 둘의 실재 포함 관계를 역전시켰다.
뉴턴에 이르러 기계론적 세계관은 그 자체가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되었고,그 힘으로 사람들을 매료(魅了)시켰다.
그의 세가지 법칙-관성(慣性),가속도(加速度),작용 반작용(作用 反作用)-은 자연계 모든 현상들을 기계적으로 -생명이 없는 물질로-인식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提供)하였고 세계는 곧 그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기계론적 paradigm은 그 설계가 끝나고 조물주(造物主) 앞에 제출(提出)되었다.

로크(Locke,John 1632∼1704)
로크는 영국의 철학자,정치 사상가(政治 思想家)로서 영국 경험론(英國 經驗論)의 대표적 철학자이자,근대 민주주의(近代 民主主義)의 대표적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白紙)와 같은 것으로 어떠한 성분도 생득적 관념(生得的 觀念:본유관념[本有觀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에게 지식(智識)과 추리(推理)의 재료인 관념을 주는 것은 경험뿐인데,경험은 감각(感覺)과 반성(反省)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는 감각에 의하여 달다,짜다, 희다, 둥글다 등의 관념을 가지며 반성에 의하여 사유(思惟), 의지(意志), 상기(想起) 등의 관념을 가진다. 이들은 단순관념(單純觀念)으로서 이들이 복합(複合)하여 복합관념이 생긴다. 이성론(理性論)에서 말하는 실체(實體)도 복합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경험론(經驗論)의 입장을 취했다.
그의 정치,철학의 근본적 주장은 어떻게 하여 인간의 자연권(自然權)을 옹호(擁護)하는가에 있다.
그래서 그는 불확실한 신(神)의 존재를 인간사(人間事)로부터 배제(排除)시키고,사람들에게 미신적 습관(迷信的 習慣)을 버리고 자신들을 자연의 일부(一部)로서만 인식(認識)하라고 강조(强調)했다.
로크는 사회의 목적(目的)을 물질적 부(物質的 富)의 추구(追求)라고 보고 사회 구성원(社會 構成員)들도 그들의 목표(目標)를 물질적 풍요로움에 두라고 주장했다. 물질적 부의 무한대적(無限大的)인 축적(蓄積)은 과학기술(科學技術)에 의해 개발된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했으며 그것은 이미 뉴턴 이래로 그 기초가 충분히 준비(準備)되어 있었기에 로크의 이러한 논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당연히 환영(歡迎)받았던 것이다.
로크 이래로 기계론적 paradigm은 사회 과학 관련 분야(社會 科學 關聯 分野)에도 적용(適用)되기 시작되었다.

애덤 스미스(Smith,Adam 1723∼1790)
영국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著書)인 "국부론(國富論;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76])에서 자유경쟁(自由競爭)으로 사회 진보(社會 進步)의 요건(要件)을 삼고,각 개인이 공평한 제 3자의 동감(同感)을 얻을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것은 궁극(窮極)에 있어서 사회의 이익(利益)에 일치한다고 논하였다.
그는 경제적 현상에 기계적 세계관을 도입하여 자유 방임 주의 경제 체제(自由 放任 主義 經濟 體制)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는 정부(政府)의 개입(介入)이 경제 활동의 효율(效率)을 떨어뜨린다고 생 각하고 가장 잘 작동(作動)하는 기계(機械)로서의 경제 체제를 자유 방임 주의 라고 말했다. 그러한 논리에 기초(基礎)하여 경제가 진행되면서 수정(修正)과 수정(修正)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수정 자본주의(修正 資本主義)가 존재(存在)하게 되었다. 기계론적 paradigm을 쉽게 말한다면 "성능(性能)좋고 효율(效率)이 높은 것만이 최고 가치(最高 價値)를 지닌다."라고 요약(要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이 주장한 것 -우주(宇宙)에는 수학적인 질서(秩序)가 있고 자연계 모든 현상들은,그 질서에 바로 맞추어 질 때 무질서(無秩序)와 혼돈(混沌)이 없다.-들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가정적 진리(假定的 眞理)이다. 이런 주장들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지속적(持續的)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계론적 paradigm이 가진 엄청난 매력(魅力) 때문일 것이다.
편하고 안락한 즐거움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은 길들여진 편안함을 스스로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엔트로피法則

(THE ENTROPY LAW)

엔트로피 법칙 (The Entropy Law)

entropy(entropy:a measure of the sameness between the temperature of something which heats and of something which is being heated;the tendency of heat and other forms of ENERGY in the universe to spread out evenly and gradually disappear),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熱力學 第二法則)의 기본개념(基本槪念)으로서 사용 가능한 에너지(available energy)가 그렇지 못한 형태(形態)로 변환(變換)될 때의 에너지 손실량(損失量),즉 에너지의 쓸모 없어짐에 대한 척도(尺度)이다.
우리가 주위의 어떠한 물질(物質)을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성냥을 켰다.
불을 붙인 순간부터 작은 나무 장작 끝의 황은 더 이상 담배불을 붙이는데 사용(使用) 할 수없다. 그것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을 한 후에는 탄소(炭素;C), 수소(水素;H), 산소(酸素;O) 등의 원소(元素)로서 공기중(空氣中)에, 자연계(自然界)로 흩어져 버리고 까맣게 타버린 재(災)만 남겨 버리고 만다.
이때 성냥 끝의 황은 높은 에너지원이며 그 에너지가 일정량(一定量)의 일을 한 후에는 인간에게는 -적어도 담배불을 붙이는 데는- 쓸모 없는 에너지,즉 낮은 에너지원으로 변환된 것이다.
담배도 똑같이 이해될 수 있으며 gas나 oil lighter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마찰열(摩擦熱)과 그 외의 미소 에너지량을 무시한다면,일을 하는데 쓰인 에너지와 낮은 에너지원의 에너지량과의 합(合)은 높은 에너지원의 총 에너지량과 같다.
낮은 에너지원으로 진행되면서 손실된 양(量)-일을 할 수 없도록 바뀌어진 에너지량-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entropy이다.
마찰과 같은 에너지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 기계나 일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entropy는 항상 증가하게 된다.
수업 시간에 배운대로 entropy의 학문적 기호(學文的 記號)를 "S"라 하면 이것의 공식적 정의(公式的 定意)는 s= q/T 〔KJ/。K〕 이다.
자연계에서 열이 발생(發生)하지 않는 현상은 없는데 -그것이 열의 (+)방향이든 (-)방향이든- 거의 모든 것은 열이 증가하는 쪽이므로 자연계(自然界)의 entropy는 항상 그 증가(增加)의 추세(趨勢)로만 진행(進行)된다고 하겠다.
entropy가 증가했는데 무엇이 문제되는가?
entropy가 증가되었다는 것은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량(unavailable energy amount)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것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쓰레기라는 것을 말한다.
쓰레기가 많아져서 인류(人類)의 설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차치(次置)하더라도 사방팔방(四方八方) 온통 기계뿐인 현 기계론적 paradigm하의 세계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쓰레기로 인간이 무엇을 하겠는가?
현대(現代)의 기계(機械)는 그것을 작동 가능(作動 可能)케하는 에너지원의 형태(形態)가 한정(限定)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계속적(繼續的)인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찌꺼기로 작동되는 기계를 만들어 내거나,쓰레기를 다시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개발 해내야한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수준(科學水準)은 그런 일들을 효과적(效果的)으로 수행(修行)할 정도가 못된다.
entropy 증가의 흐름을 정지(靜止)시키거나 역행(逆行)시킬 수는 없으니 최선(最善)의 대안(對案)은 그 흐름을 둔화(鈍化)시키는 것이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소모(消耗)되는 에너지량만큼 외부에서 보충(補充)시켜야 하지만 우주(宇宙)로부터 유입(流入)되는 먼지 조각은 우리에겐 쓰레기의 추가(追加)일 뿐이다. 인간이 직접 우주에서 끌어오려해도 그것 역시 능력부족(能力不足)의 한계(限界)에 부딪치게 된다.-태양에너지는 후반부에서 얘기하기로 한다.-
오직 할수있는 일은 entropy 증가의 흐름을 느리게 하는 것이다.
고갈되는 양 만큼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보충시켜 주거나,점점 많이 쌓여가는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원의 효율적인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계속되는 entropy증가는 멈출 수 없으며 그런 상태로 진행된 인류의 미래도 또한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가지 명심(銘心)할 점은 "entropy 법칙"이라는 것이 학문적(學文的),추상적(抽象的)인 관념(觀念)의 이론(理論)이 빚어낸 언어유희(言語遊戱:language funny)가 아니라 인류 생존을 위협(威脅)하는 커다란 위기(危機)에 대한 경종(警鍾)이라는 것이다.
자연(自然)은 본시 끝없이 순환(循環)하는 존재였었다.
인간이 엄청난 물질적 풍요(物質的 豊饒)를 누리는 동안 자연이 재순환 작용(再循環 作用)으로 처리(處理)해야 하는 숙제 더미는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늘어만 왔고 재순환 창구(再循環 窓口)의 용량(容量)은 그대로 였기에 오늘날의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이것 역시 자연의 재순환 작용에 있어서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우주는 원래부터 "CHAOS"라 하지 않았던가!

우주론과 제2법칙

(Cosmology and the Second Low)

시간,형이상학,그리고 엔트로피 (Time,Metaphysics and Entropy)

시간(時間)이란 무엇일까?
나는 시간의 개념(槪念)조차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의 개념을 보통 사람들 사이의 묵계(默契)처럼 정해진 것이라 가정(假定)하고 얘기를 해 보겠다.
물론 그것은 보편적(普遍的)인 성질(性質)일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인류나 다른 동물들이 존재(存在)한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곧 어떤 현상이나 일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자연계의 모든 일은 entropy가 증가(增加)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시간의 흐름이 정지(靜止)된다면 모든 현상도 정지(靜止)됨으로써 entropy 증가의 흐름도 정지(靜止)된다.
시간은 계속하여 흐른다. 사람들이 늙어가고 자연(自然)의 형태(形態)가 변해가는 등의 그런 일들은 entropy 증가가 계속(繼續)되어 축적(蓄積)되어진 쓰레기로 인해 이 세상이 멸망(滅亡)고 그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은 멈춤 없이 흐를 것이다.
곧 시간과 entropy의 진행방향(進行方向)은 동일(同一)하다.
그런데 시간은 일정(一定)하게 흐르지만 entropy 흐름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을 포함(包含)한 자연의 에너지원 활용방법(活用方法)에 따라 그 속도(速度)는 가감(加減) 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그들의 생활방식(生活方式)-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의 문제에 직면(直面)하게 된다.
이 시점(時點)에서 entropy의 개념은 형이상학과 상봉(相逢)하게 된다. 최선책이 제시하는 방향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을 것이다.
즉 인류의 생활방식은 entropy 증가의 흐름을 둔화시키는 쪽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생명과 제2법칙 (Life and the Second Law)

신체 외적인 기구와 에너지 (Exosomatic Instruments and Energy)

생명(生命)에 있어서 사용 가능한 에너지란 그들의 활동(活動)을 위해 섭취(攝取)해야 할 양분(養分)을 의미하고,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란 다 섭취하고 남은 배설물(排泄物)이다.
높은 에너지원으로부터 낮은 에너지원으로의 진행은 그 생명의 활동,즉 생명의 일에 의해 이어진다.
먹이사슬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속에서 최대다수(最大多數)는 1차 생산자(一次 生産者)이다.
엄청난 숫자가 흡수(吸收)한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그들의 생명체(生命體)를 지나면서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변하게 되고 역시 결과적(結果的)으로는 자연계의 총체적(總體的) entropy를 증가(增加)시키게 된다.
다음에는 그들의 소비자(消費者)가 1차 생산자를 먹이로 삼아 다시 entropy를 증가시키게 된다. 이런 과정(過程)은 최종 소비자(最終 消費者)에 이를때까지 반복적(反復的)으로 일어나게 된다.
전체적(全體的)으로 볼 때 생명의 경우에 있어서도 역시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생명체의 존재(存在)도 또한 entropy 법칙을 따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고도(高度)로 발달한 문명(文明)을 가진 최종 소비자,인간(人間)은 많은 유용지물(有用之物)을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신속(迅速)하게 바꾸는 "배설물 생산기관(排泄物 生産機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의 신체 외적인 기구(身體 外的 機具;Exosomatic Instruments)를 이용(利用)하여 타 종(他 種)의 동물들과 차별적(差別的)으로 훌륭한 "배설물 생산기관"의 "흡입 덕트(internal duct)","압축기(compressor)","연소실(combustion chamber)","터빈(turbine)","노즐(nozzle)"등과 같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효과적(效果的)인 system 보조 기구(補助 機具)들을 만들어 왔다.
그들은 에너지 흐름 -그들의 체내에서든 체외에서든-의 효율(效率)을 최대로 하기 위해 기존문명(旣存文明)이나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발전을 더 가속화(加速化)시켜왔고,그것은 곧 entropy 증가의 양(量)이 커짐을 의미한다.
비대(肥大)하게 진행되어버린 인류의 수많은 system들은 이제부터라도 entropy증가를 둔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정(調整)되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entropy 법칙은 거의 모든 인간 생활에 있어서 적용(適用)되며,그 흐름의 증가는 현재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다.
결국 현대 사회의 기계론적 paradigm은 불가피(不可避)하게 폐기처분(廢棄處分)되어야 하고 그것의 빈자리를 entropy론적 paradigm으로서 채워야 할 것 같다.

엔트로피-새로운 歷史의 틀

(ENTROPY-A NEW HISTORICAL FRAME)

역사와 엔트로피 분수령

(History and Entropy Watersheds)
역사(歷史)는 발전(發展)한다고 할 수도 있고 순환(循環)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entropy 법칙에 의거(義擧)해서 역사의 속성(屬性)을 바라본다면 유용한 에너지원을 소모시켜가며 진행된 역사 과정은 entropy 분수령(分水嶺)에 이르러 붕괴(崩壞)되고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轉換)된 뒤에도 그같은 진행(進行)을 되풀이하는 역사는 붕괴(崩壞)의 연속(連續)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entropy 분수령이란 사용 에너지원의 종류에 대한 전환시점(轉換時點)이다.
entropy 법칙은 에너지원의 흐름을 근본(根本)으로 성립(成立)된다. 따라서 역사의 흐름을 entropy 법칙에 입각(立脚)하여 생각해 본다면 역사가 흘러가는 것,시대가 변하는 것,사회형태(社會形態)가 바뀌는 것,경제수단(經濟手段)이나 생산수단(生産手段)이 바뀌는 것 등의 모든 일련(一連)의 변화(變化)들은 에너지원의 변천(變遷) 때문에 생긴다.
한 세대가 흘러가면서 사용해 버린 에너지원은 무용지물인 쓰레기로 변해 쌓이게 되고 다음 세대가 존속(存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모색(摸索)이 불가피하다.
결국 시대를 진행시키는 바탕은 에너지원의 변화에 있다 하겠다.
entropy가 최대치(最大値)에 달하여 한 세대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때 시대는 변화하게 된다. 만일 유용한 에너지원이 남아 있다면 변화(變化)보다는 정체(停滯)쪽으로 인간사(人間事)는 흐를 것이다.
조물주(造物主)는 "지구(地球)"라는 큰 "집"속에 -바닥,지붕,벽 등지에- 많은 에너지원을 숨겨 놓았다. 인간들은 집안의 모든 에너지원을 다 쓴뒤에 집을 분해(分解)해 가며 쓸만한 에너지원을 찾기 시작한다. 깊이 숨겨진 에너지원은 그것의 단위 에너지량이 크고 효율(效率)도 역시 높다. 인간들에게는 깊이 숨겨진,곧 더 우수한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 더 나은 기술이 요구되었다. 더 나은 기술은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초래했고 인류가 과학기술을 발달시킬수록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되어야 할 주기(週期)는 점점 더 짧아지게 되었다.
그 주기의 기준이 바로 entropy 분수령이다.
entropy 분수령의 발현시기(發現時期)를 늦추는 길이 인류 생존 여행의 새로운 진입로(進入路)라는 것은 어렵잖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에너지 대 분수령

(The Last Great Energy Watershed)

위에서 entropy 법칙을 역사의 진행과정에 적용(適用)시켜 생각을 해 보았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환(變換) : 역시 entropy의 개념이 관여(關與)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세 유럽 문화의 주요 에너지원은 나무였다. 집을 짓고 난방(煖房)을 하며 많은 생활 용품의 제작(製作)과 보수(補修),수리에 쓰이는 대부분의 원자재(原資材)는 나무였다. 증가되는 벌초량(伐草量)로 인해 유용한 에너지원인 나무의 보유량은 줄어갔다. 그래서 그 시대의 entropy는 계속 축적(蓄積)되어 갔고 결국 분수령(分水嶺)에 이르러 중세 사회(中世 社會)는 붕괴(崩壞)되기 시작했고 에너지원의 변천도 진행되었다.
즉,나무에 의존해 온 중세 시대는 17세기에 이르러 삼림 자원의 고갈로 -유용한 에너지원의 고갈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야만 했다. 역사적 전환기(歷史的 轉換期)가 다가온 것이다.
그들이 찾아낸 새로운 에너지원은 석탄(石炭)이었다. 조물주(造物主)는 나무보다 석탄을 더 깊이 숨겨 놓았고 결국 인간이 석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지불했던 에너지원 사용 부대비용(使用 附帶費用)보다 많은 수고를 부담(負擔)해야 했다.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탄은 나무보다 생산(生産),가공(加工), 운반(運搬)하기 어려웠고 그것의 공해(公害)는 더욱 심했다.
이런 여러가지 원인으로 새로운 동력기기(動力器機)가 필요해졌고 당시 증기기관(蒸氣機關)의 출현은 그 요구를 충족(充足)시키게 되었다.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석탄은 더 빨리,많이 생산되고 운반되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근대 산업 사회(近代 産業 社會)는 성급히 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유용한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전의 나무에서보다 훨씬 복잡다단(複雜多端)하고 많은 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자원 사용의 가속화(加速化)로 인해 entropy 증가는 그 폭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숨은 에너지원을 찾아낼 때마다 자연계의 entropy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중세보다 더 짧은 근세가 지나고 또 다시 인류는 에너지원의 갈증(渴症)과 만나게 되었다.
석탄,석유,우라늄 등의 현대 에너지원들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급속히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다른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제때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류 생존(人類 生存)의 연속성(連續性)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기술 (Technology)

쓸모 있는 에너지원이 인간의 뜻대로 이용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기(器機)나 기계(機械),기관(機關)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은 바로 기술(技術)을 바탕으로 해서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기계 문명(現代 機械 文明)의 옷을 벗겨 본다면 기술이라는 변환기(變換機;transformer:an apparatus for changing electrical force,usu.from one VOLTAGE to another)가 남게 된다.
기술이라는 제목(題目)의 문장(文章)은 "period(.)"를 찍을 수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종속문(從屬文)들을 취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복잡해지고 그 주목적적 의미(主目的的 意味)를 찾기가 상당히 난해(難解)해 진다.
기술이라는 변환기는 사용할수록 식욕(食慾)이 커진다. 즉 더 많은 쓸모 있는 에너지원을 더 많은 쓰레기로 그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에너지원들은 자연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므로 기술은 인간(人間)이 자연(自然)을 지배(支配)하도록 도운게 아니고 자연에 종속(從屬)되도록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자연과의 조화(造化)를 통해 entropy 증가를 둔화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이용하여 더 큰 용량(容量)의 변환기를 개발해 내는 인류,과연 entropy 분수령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부대 비용 (External Costs)

부대비용(附帶費用)이란 글자(영문) 그대로 -external:on,of,or for the outside;that can be seen but is not natural or real;foreign- 내부(內部)가 아닌 외부(外部)의 원인(原因)에 의해 지불(支拂)되는 경제적 댓가(經濟的 對價)를 말한다.
그렇다면 내부와 외부의 구분기준(區分基準)은 무엇일까?
구소련(舊蘇聯)의 체르노빌 핵 발전소가 폭발(爆發)했을때를 생각해 보자.
구소련 정부는 그 발전소를 짓는데 엄청난 재화(財貨)를 지불했을 것이다. 그것의 지불 목적은 전기와 플루토늄의 공급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발전소의 폭발을 미리 예견(豫見)해서 거기에 따르는 예산을 책정(策定)해 놓았을까? 발전소가 폭발하고 나서야 구소련 정부는 적지 않은 재화를 지불했다.
그들이 본래의 그들 목적(目的)에 따라 투자(投資)한 것은 내부비용(內部費用)이라 할 수 있고 거기서 벗어난 부작용(副作用) 같은 것에 대한 것은 외부비용(外部費用),즉 부대비용(附帶費用)이라 할 수 있다.
현 문명(現 文明)을 성립(成立)시키는 것은 기술(技術)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술은 갈수록 복잡(複雜)해진다.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것은 부대비용의 증가를 말한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류가 얻는 이득(利得)의 양(量)이 산술급수적(算術級數的)으로 커왔다면 부대비용(附帶費用)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증가해 왔다. 부대비용의 증가속도가 느리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 속도는 거기에 대처(對處)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기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현재에도 간신히 인류 편익(人類 便益)에 대한 댓가(對價)를 지불하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 비용(費用)을 처리(處理) 할 것인가?

기술의 수확체감 (Diminishing Returns of Technology)

요즘 들어 인류가 이제껏 투자(投資)해서 개발(開發),발전(發展)시킨 기술(技術)은 더이상 과거처럼 많은 양의 물질적 부(物質的 富)를 제공해 주지 않고 있다.
바로 기술의 수확체감(收穫體感)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큰 원인(原因)중의 하나가 부대비용(附帶費用)의 증가(增加)이다.
이전 기술이 그것의 이익보다 기술 자체의 부작용(副作用)을 막는데 더 많은 투자(投資)를 필요(必要)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대비용의 증가는 새기술 개발에 드는 재원을 부족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자원고갈(資源枯渴)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기계적 세계관(機械的 世界觀)을 유지시켜 주던 에너지원,즉 석유,석탄 같은 것들이 고갈되어 이제 그 한계치(限界値)에 달했기에 인류는 다른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시도 해야만하게 되었다. 변화에 필요한 기술은 현재로서는 초보적(初步的)인 단계(段階)여서 엄청난 자원과 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기존 기술(旣存 技術)에 대한 관심을 감소시켜 그것의 수확을 느리게 하고 있다.
곧 에너지의 총체적(總體的) 흐름이 일대 분수령(一帶 分水嶺)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대비용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의 획기적 전환(劃期的 轉換)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현재의 기계론적 paradigm위의 세계는 퇴보(退步)할 수 밖에 없다.

제도적 발달 (Institutional Development)

인간이 경제(經濟),정치(政治)등 그들의 생존집단(生存集團)을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함에 따라서 그 집단의 유지(維持)에 필요한 제도(濟度)와 물질(物質)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내를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이 국가의 부강(富强)을 결정함에 따라서 모든 사회는 그들의 에너지 흐름 효율(效率)을 최대로 하기 위해 그것의 관리(管理)에 관여(關與)하는 제도들을 더 확장(擴張)시켜 왔다.
사회구성(社會構成)의 초기단계(初期段階)에서는 관리조직(管理組織)들이 그다지 비대(肥大)하거나 조직적이지 않다. 어떤 부분에 대한 어떤 관리가 효율적(效率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모든 가능성(可能性)을 타진(打診)해 보기 위해서 그 적용범위(適用範圍)를 넓혀 가지만 그 내용은 그렇게 충실(忠實)하지 못하다.
사회가 발전을 거듭할 수록 적용 범위는 필요한 만큼으로 조정(調整)되고 그 내용은 전문적(專門的)으로 취급(取扱)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잠시 후면 기존 조직체의 고장난 부분을 고치기 위한 또다른 제도가 추가(追加)되며 그러한 반복은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몸무게가 늘어나면 식사량도 늘어나는 법이다. 수많은 조직의 제도들이 먹어 치우는 에너지원의 계속적 사용량 증가(繼續的 使用量 增加)는 더 많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타 지역이나 국가로의 침략(侵掠)을 유도(誘導)하게 된 것이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제국주의(帝國主義)가 그런 한 예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의 다음에는 해결된 줄로만 알았던 에너지원 문제가 더 심각(深刻)해 졌으며 수급(受給)의 불균형에 의해 식민 제도는 붕괴되어지고 제국주의 역시 사라져갔다.
세계가 이제까지의 행보를 계속한다면 위의 현상들을 답습할 수 밖에 없다.
즉,붕괴(崩壞)의 연속(連續)이 반복된다.

전문화 (Specialization)

산업화 과정(産業化 過程)에서 분업화(分業化),전문화(專門化)는 필수적이었다.
효율(效率)을 중요시 하는 기계론적 paradigm하에서는 생산효율(生産效率),즉 에너지 흐름의 효율을 증대시키는데 있어서 분업화,전문화보다 더 나은게 없었다.
그렇게 지나오면서 전문화는 현대 산업 사회(現代 産業 社會)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그것의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자신이 맡은 일만 할 수 있을 뿐이지 그 외의 분야(分野)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할 능력도 없는 현대인들.그들에게는 이제 융통성(融通性)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곧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회사의 관리 part에 근무하는 사람이면서 tire의 교환순서(交換順序)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건축회사에서 설계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시멘트와 모래의 혼합비(混合比)를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직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든면에 초보자(初步者;novice:a person with no experience in a skill or subject;beginner)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에너지원을 바꿔야 할 압력(壓力)을 받고 있다. 에너지 환경의 변화는 결코 질서(秩序)있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계속되는 전문화는 변화에 필수적인 융통성(融通性)을 상실(喪失)시키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러한 혼란은 인류를 멸망(滅亡)시킬 수도 있는 위력(威力)을 지닐 것이다.

세계관과 에너지 환경

(World Views and Energy Environments)

역사시대(歷史時代)에 한하여 생각해 볼 때 세계관이 없었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 수록 세계관과 에너지원과의 관계는 밀접(密接)해져 가고 있다.
중세시대의 에너지 환경과 세계관은 그다지 복잡한 상호 연계성(相互 連繫性)을 가지지 못했지만 산업혁명(産業革命)을 거치며 근세사로 접어들면서 기계론적 paradigm은 석유,석탄 같은 에너지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었다.
기계론적 paradigm은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방법론적(方法論的)인 방향으로 세계를 이끌어 왔다. 그리하여 인류는 지구(地球)가 생성(生成)되면서부터 축적(蓄積)되어 온 태양 에너지 등의 유용한 에너지원들을 불과 200년도 안되는 세월동안 그것의 대부분을 소모(消耗)하여 왔다.
이제는 자원의 한계와 만난 기계론적 paradigm은 방향전환(方向轉換)을 하거나 폐기처분(廢棄處分)을 당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에너지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는데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entropy 증가의 흐름을 둔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Computer를 Up-Grade시키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것만은 확실하다.
불행히도 현대의학은 인간의 CPU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再生 不可能한 에너지와 다가오는 엔트로피 分水嶺

(NONRENEWABLE ENERGY AND THE APPROACHING ENTROPY WATERSHED)

에너지 위기 (The Energy Crisis)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現在)는 유용한 에너지원 위에서 지어진 집이다.
그러한 에너지원이 없다면 현상태(現狀態)는 존재 � 할 수 없다. 그런데 인류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점점더 빠른 속도(速度)로 고갈(枯渴)시켜 가고 있다.
과거보다 엄청나게 늘어난 인구가 그 원인(原因)의 비중(比重)을 많이 차지하였을 것이다. 인구가 지금과 같이 유지(維持)되거나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인류는 오늘날의 에너지 위기를 헤쳐 나갈지도 모르겠으나 부대비용의 증가만큼이나 빠르게 늘어만 가는 것이 지구상의 인구상태(人口狀態)이다.-현재 약 53억인 세계인구는 2100년에는 지금의 배가 넘는 약 110억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인구 증가 속도를 감안한 수치이다.-
인구의 증가속도와 유용한 에너지원의 고갈속도가 비등(比等)하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인류가 소모해야 할 에너지원의 양은 늘어만 가고 유용한 에너지원은 줄어만 간다. 이제 지구상의 문명은 내용상 같지만 그 이름만 다른 여러가지 문제들을 직시(直視)해야 할 것이다.
entropy의 증가,인구의 증가,에너지의 위기상태 등의 문제들을.
이미 여러가지의 자료(資料)들은 지구상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의 존재 시한(存在 時限)을 수치적으로 계산해 놓았다.

합성 연료 (synfuels)

기계론적 paradigm이 제작한 현대 산업 사회(現代 産業 社會)는 그 먹이로서 주로 석탄(石炭)과 석유(石油)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석탄,석유의 매장량(埋葬量)이 이제 그 한계치(限界値)에 달함으로서 세계는 사용해 오던 에너지원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런 노력의 한 갈래가 합성연료(合成燃料)에 대한 연구(硏究)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기계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원을 사용 가능한 형태(形態)로 바꾸는 여러가지 실험(實驗)을 시행(施行)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기존의 석탄,석유와 같은 에너지원을 쓰는 기계로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에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합성연료 생산에 관한 경제성(經濟性)은 기존 연료의 그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엉망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세계의 위기를 인식했다는 점을 반영(反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노골적으로 비웃고 싶지는 않다.
기계론적 paradigm하에서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 entropy를 증가시켜 쓰레기만 늘려갈 뿐이다.
지금 당장 이제까지의 세계관을 벗어버리고 다른 세계로의 전환이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보신(保身)을 위한 의식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서 지금의 세계를,아니 우리 주위를 냉철(冷徹)하게 관찰(觀察)하고 난 후에 더 나은 길을 위한 선택(選擇)을 내려야 할 것이다.
어느 에너지원의 사용노선(使用路線)이 인간에게 더 유익한 존재가치(存在價値)를 부여(附與)할지 잘 판단(判斷)해야만 인류(人類)는 공룡(恐龍)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해온 그 어떤 일들보다 어렵다.

핵 분열 (Nuclear Fission)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 世界大戰)을 종식(終熄)시킨 고맙고 시원한 원자폭탄(原子爆彈)은 세계를 핵 연구(劾 硏究)에 몰두(沒頭)하게 만들었다.
일본(日本)에서 있었던 핵 폭발의 놀라운 위력(威力)은 강대국들의 연구를 가속화 시켰고,핵 폭발을 이용한 전력생산(電力生産) 역시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연료(化石燃料)의 공해(公害)에 시달리던 여러 국가들을 이끌었다.

하지만 데탕트 시대를 거쳐 신 데탕트의 분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근래에 와서는 핵에 관련된 것들을 꺼리는 추세(趨勢)가 지배적(支配的)이다. 이것은 핵 무기 개발에 대한 제재(制裁)로서 확인되며,핵 폭발을 이용한 발전도 마찬가지로 감소일로(減少一路)를 걷고 있다.
핵 폭발을 이용한 전력생산에 드는 내부비용은 그전의 발전방식보다 경제적일지라도 방사능 오염(放射能 汚染)을 막기 위한 시설과 폐기물 처리에 드는 부대비용은 그 경제성(經濟性)을 무력화(無力化)시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자연계(自然界)의 entropy는 항상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 되어 버렸다. 석탄은 약 200년간,우라늄은 100년도 사용하지 못한 이 시점에서 "어디서,어떻게 오래갈 수 있는 에너지원을 찾는가?"는 인류최대(人類最大)의 숙제(宿題)이다.

핵 융합 (Nuclear Fusion)

핵 분열을 이용한 발전에의 문제점 때문에 핵 발전소의 건설이나 핵에 대한 연구가 주춤하고 있는 20세기 말에 핵 융합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이 제기되고 있다.
분열(分裂;fission:the splitting into parts of certain atoms to free their powerful forces)과 융합(融合;fusion:the combining of atomic nuclei,which releases huge amounts of energy)은 반대 개념이다.
내게 있어서 핵 융합이 핵 분열만큼이나 큰 물리적 위력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그래서 저자의 자료와 설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금은 책의 논지에 동의한다.
핵을 이용한 융합이나 분열은 두가지 모두가 그 재료의 선택문제와 결과적 파생문제가 거의 비슷하다.
오히려 핵 융합에서의 경제적,환경적 문제들은 현재로서는 핵 분열보다 심각하다. 아마도 그 연구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핵 융합 역시 핵 분열이 극복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해결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광물 (Minerals)

산업활동(産業活動)에 있어서 광물(鑛物)은 없어서는 안될 주요 원자재(主要 源資材)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광물도 역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를 의미한다.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에 있어서 광물 또한 그 엄청난 수요(需要) 때문에 자연(自然)의 재순환(再循環)을 무력화(無力化)시킬 만큼 고갈(枯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이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지금도 공업화(工業化),도시화(都市化),기계화(機械化)에 박차(拍車)를 가하고 있다.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에너지원은 고갈시기가 수치적(數値的)으로 산출(算出)되어 있다.
해결책(解決策)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는 하더라도 기계론적 paradigm하에서는 헛수고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摸索)해야 할 것이다.

대체,재순환,보존

(Substitution,Recycling,and Conservation)

고갈되어 가는 광물에 대하여 대체(代替),재순환(再循環),보존(保存)이 해결책으로서 거론(擧論)되지만 그런 것들이 이론상 성립될지 몰라도 실제적으로는 문제에 대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광물의 대체는 앞에서 말했던 합성연료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쓸데없는 짓이라는걸 어렵잖게 알수있다.
자연의 재순환에 맡기는 경우도 불가능하다.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현 세계의 진행을 거의 정지(靜止)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할 지도자는 거의 없다는게 이유이다. 보존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원고갈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이 제시한 어떤 방안도 entropy 증가의 흐름을 멈추거나 역행시키지 못했다.
이론적인 논리성(論理的)은 충분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자연계의 총체적 entropy를 증가시켰다.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을 더 발달시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러번 배신당했던 애인에게 계속해서 구애(求愛)하는 바보일 것이다.
60∼70년대의 우리사회의 표어 짓기 대회에서 자주 등장한 말처럼 지금 세계는 "절약(節約)!절약(節約)!"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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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OPY AND THE INDUSTRIAL AGE)

경제학 (Economics)

entropy 법칙은 자연과학(自然科學)에서 그 유래(由來)가 발견된다.
산업(産業)이 발달(發達)하면서,다시 말해서 기계(機械)와 같은 에너지 변환기(變換機)가 발달하면서 그것의 개념은 명시화(明示化) 되었다.
그런데 경제학(經濟學)과 entropy 법칙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경제학은 사회과학(社會科學)쪽에 가깝다.그러나 entropy 법칙은 여기서도 그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모양이다.
현재의 세계경제(世界經濟)는 시장경제주의(市場經濟主義)의 원칙(原則)이 주도(主導)해 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정자본주의(修正資本主義)가 이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경제원칙(經濟原則)에서는 모든 경제활동이 시장(市場)에서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시장이라는 중간적 기구(中間的 器具)를 지배(支配)하는 것이 바로 entropy 법칙이다.
시장이라는 기구가 주로 관여하는 것은 공급(供給)과 수요(需要)의 조절(調節),곧 가격(價格)이다. 이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결정한다. 공급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물질적인 것이다.
여기서 이제껏 해온바와 같이 entropy 법칙을 적용시켜 본다면 더 타당성(妥當性) 있는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ntropy 법칙을 가장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경제적 현상에 삽입(揷入)시켜 보겠다. 앞에서 말했던 주요 에너지원들-석탄,석유,광물등-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따른 entropy가 급속도로 증가되어 그것의 생산,즉 공급에 관련된 비용(費用)이 증가(增加)하게 되었다.
또 그 이외의 부대비용(附帶費用)도 큰 폭으로 신장(伸張)되었으며 투자(投資)에 대한 수확(收穫)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시장으로 공급되는 것은 위의 에너지원들을 사용하여 생산된 상품(商品)들이다. 에너지원의 생산비용(生産費用)이 증가되면 그에 따라 여러가지 상품들의 생산도 역시 쉽지 않게 된다. 결국 시장으로 유입(流入)되는 공급량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서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가격상승(價格上昇)은 수요자의 구매력(購買力)을 하락(下落)시키고 총 통화량(總 通貨量)을 증가시키게 되어 인플레이션(inflation:the rate of a continuing rise in prices)을 유발(誘發)시키게 된다.
이제 entropy 법칙이 경제현상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1990년의 지구촌의 인구 53억 중에서,연간소득이 6,684,800원이상되는 이는 4억에 불과하며 540,000원 이하는 32억이나 된다.
이러한 극빈자의 수는 2100년에는 전체인구 110억 중에서 71억이나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통계는 entropy 분수령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아마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런 사람들이 꼬박꼬박 세금을 잘내고 말 잘듣는 시민으로 남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entropy의 개념이 경제현상까지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기계론적 paradigm에 의한 경제활동의 해석만이 이루어져왔던 현 세계에 대하여 다른 관점(觀點)에서의 인식(認識)을 제안(提案)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농업 (Agriculture)

인간(人間)이 존재(存在)하는데 있어서 식량(食糧)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인류는 고래(古來)로 필요한 식량을 농업(農業)으로부터 충당(充當)해 왔다. 과거의 농업은 인구와 서로 조화(調和)를 이루었으나,지금은 늘어난 인구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농업기술(農業技術)이 절실히 필요하다. 농업기술이란 좀더 많은 양의 곡식을 생산하는 문제하에서 그 개념이 이루어진다.
좀더 효율적으로 해충을 죽이고 곡식의 생산량(生産量)을 높이는 것이 그것의 내용이다. 해충을 없애는데 있어서 농약을 사용하게 되고,농약(農藥)은 해충(害蟲)과 함께 이충(利蟲)마저 제거(除去)함으로써 토양을 척박(斥迫)하게 만든다. 한해는 최고의 식량생산을 이룰 수 있으나 갈수록 수확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토양이란 식량을 생산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원이다. 인간은 토양을 황폐화(荒廢化)시켜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부대비용(附帶費用)을 지불(支拂)하게 되었다.
그리고 투자(投資)에 대한 수확(收穫) 역시 감소되었다.
토양의 오염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威脅)할 지경에 이르렀다.
농업활동에 있어서도 entropy 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부대비용과 수확체감이 그 근거(根據)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entropy 증가는 가속화 되고 있다.

수송 (Transportation)

과거(過去)의 수송수단(輸送手段)은 자연에서 빌려온 일차적(一次的)인 방법이었다.
가축(家畜)을 이용하여 인간(人間)의 생존(生存)을 위한 분야(分野)의 애로(隘路)를 덜어 왔다.
이제 수송은 과거와는 달리 인간의 생존보다는 문명(文明)의 유지(維持)를 위한 개념(槪念)이 강해졌다.
산업혁명(産業革命) 이후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발달은 굉장한 힘을 가진 에너지 변환기를 만들어 내었다. 요즘의 1500cc 이상의 배기량을 가진 자동차들은 보통 100HP 이상,즉 100마리의 말이 끄는 힘이상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자동차 문명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중진국에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生活必需品)이 되어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런 물질을 이루어 낸 인간이라는 동물이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말의 방향이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자동차(自動車)는 인력(人力)의 수송(輸送)을 담당한다. 인력의 수송이란 대부분 집에서부터 직장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현대의 도시화(都市化)로 인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이동거리는 멀어지고 이동속도는 느려지는 수송효율(輸送效率)의 하락(下落)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효율의 하락은 더 큰 entropy 증가를 의미한다.
화물(貨物)과 생산재(生産財)의 수송은 아직까지는 기차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것의 비용(費用) 역시 증가 추세이다. 항공이나 해운수단도 증가하는 내(內),외(外)의 비용 때문에 비싼 돈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만이 살아남고 있다. 대기업도 비대해진 사회 조직체처럼 많은 양의 entropy를 증가시킨다.
결국 수송분야(輸送分野)에 있어서도 entropy 증가의 법칙은 그 오류(誤謬)가 발견되지 않는다.
인류생존에 필요하다면 그 어떤 행위도 변명(辨明)의 여지(餘地)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entropy를 증가시킨다 하더라도.하지만 지금의 세상 속에는 무가치(無價値)한 이유로 인한 낭비(浪費)가 너무 많은 것 같다. GULF 전쟁으로 세계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도시화 (Urbanization)

현대의 도시(都市)는 그 규모(規模)나 내용(內容)면에서 과거 중세(中世)까지의 도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마 서울과 김해를 비교하는 것보다 그 격차(格差)가 더 클지도 모른다.
산업혁명 이후,아니 기계론적 paradigm이 성립된 후부터 전통적인 농업이나 그 밖의 1차산업(一次産業)에 종사하던 인구(人口)의 대부분이 한곳에 집중(集中)되면서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화려했던 명성을 잃어 가는 대신에 심각한 폐해(弊害)를 드러내고 있다.
환경 등,사회 전반에 걸친 도시화의 문제점은 더이상 방치하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할 점은 도시의 먹이이다.
바로 에너지원이 문제이다.
산업발달(産業發達)을 계속해온 나라들은 늘어나는 도시의 필요 에너지원을 감당하기 위해 개발이 미숙한 국가를 침략(侵略)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데올로기(ideology:a set of ideas,esp.one on which a politicalor or ECONOMIC system is based)를 파생시켰다.
그러나 식민시대(植民時代)도 entropy 분수령을 만나면서 무너져 버렸다. 결국 인류는 계속해서 에너지원의 공급처(供給處)를 바꾸어와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의 진행이 유발한 막대한 양의 entropy 증가를 무시하더라도 도시는 그 자체의 호흡(呼吸)에 드는 에너지원만 하더라도 엄청난 양을 필요로 한다. 지금도 도시는 에너지 변환기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지만 이제는 공급될 에너지원이 부족함에 따라 도시문제(都市問題)는 더욱더 심화(深化)되고 있다.
도시는 그 왕성한 식욕(食慾)때문에 많은 부대시설(附帶施設)들을 필요로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수송문제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시라는 거대한 변환기가 엄청난 양의 entropy를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서울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먹으면서 대부분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가!
도시화 비율(都市化 比率)이 높을수록 잘살았던 이제까지의 상황은 역전(逆轉)되어야 한다. 현재의 도시는 그 image에서 볼 때 크고 복잡한 마을이다. 그것은 이제 작고 단순한 마을로 바뀌어야 한다.
비대해진 도시를 유지시킬 만한 유용한 에너지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도시라는 돼지는 도살장(屠殺場)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
인류는 GRANDEUZER를 폐차시키고 TICO를 타야 할 시기가 온 것같다.
도시 성립(成立)의 토대는 기계론적 paradigm이 제공했었다.
도시 붕괴(崩壞)의 근거는 entropy론적 paradigm이 제공하고 있다.

군대 (The Military)

20세기 중반까지의 제국주의(帝國主義)가 무너진후 세계는 양극냉전체제(兩極冷戰體制)를 최근까지 이어왔다.
냉전이라는 제목의 연극 속에서 각 나라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서로의 군체제(軍體制)를 관리해 왔다.
좀더 많은 인명을 효과적(效果的)으로 살상(殺傷)할 수 있는 무기(武器)의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天文學的)인 투자(投資)가 필요했었고 그 투자는 어떤것보다도 중요시 되어 왔다.
비용,돈, 투자는 모두가 유용한 에너지원을 뜻한다.
군대가 만들어 낸 비싼 무기들,그것들은 대부분 고갈되어 가고 있어서 대체 에너지원을 찾고 있는 석유나 그 밖의 축적된 태양에너지,화석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변환기(變換機)이다. 이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도 걱정스러운 마당에,그러한 무기제작에 이제까지의 낭비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이제는 만들어 봤자 유지할 기름도 넉넉치 못하다. 게다가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던 무기들은 모두 쓰레기로 바뀌어 버렸다.
비싼돈 들여서 만들어 낸 핵 폭탄(劾 爆彈)들은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해체되어 가고 있다.
군인의 숫자는 줄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인력들을 위한 부대비용도 어김없이 늘어만 가고 있다. 전투기 생산비용(戰鬪機 生産費用)과 조종사(操縱士)의 양성비(養成費)가 비슷하다는 것은 거의 모든 국민이 알 것이다.
갈수록 과시(誇示)와 위협(威脅)의 수단(手段)으로 변질(變質)되어 가고 있는 듯 보이는 존재가 군대이다.
결국 군대라는 변환기는 굉장한 양의 entropy를 증가시킨 셈이 되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세계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影響力)을 충분히 확보(確保)하기 위해서 군비의 비율을 높이고 싶을 것이다. 강대국들은 기존의 기득권(旣得權)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의 군비증강(軍費增强)을 견제하고 있다. 어쩌면 좀더 많은 유용한 에너지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군대(軍隊)라는 조직체를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바꾸어 왔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쓰레기로 동력전달과 system 운용을 하는 신(新) 군대의 신(新) patriot missile을 개발해 내어야 한다.

교육 (Education)

오늘날의 교육(敎育)은 예전에 비해 환경적인 요소인 시설면(施設面)에서 월등히 나아졌는지 몰라도 교육의 내용면에서는 그다지 많은 진보(進步)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교육에서 물질적 환경이 갖는 비중(比重)은 그다지 높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좋은 책상,적은 인원수,넓은 학교,편리한 교통같은 것들이 나아진 환경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좋아진 환경속에서 교육의 질(質)은 자꾸만 내려가고 있다. 학생들은 쾌락을 탐미하는 쪽으로 빠져들고 교육자(敎育者)들의 태도는 더 무관심화(無關心化) 되어 간다.
청소년들이 담배와 술,여자를 알게 되는 나이는 점점더 어려지고 폭행,강간 등의 범죄발생율(犯罪發生率)이나 그 연령(年齡)도 점차 내려가고 있다.
가구당 자녀수(家口當 子女數)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사회의 익명성(匿名性)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부모의 관심이 그 역활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3년,미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殺人事件)의 희생자(犧牲者)는 약24,500명이며,살인자의 가장 높은 비율은 18∼24세의 사람들이 책임지고 담당(擔當)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의 대부분은 마약(痲藥)과 관련되어 있다.
진보된 교육환경과 타락한 사회환경과의 첫번쨰 전투에서는,좀더 재미있고 감각적인 후자가 우세했다.
아마도 개인주의,물질만능주의라는 무기떄문일 것이다.
교육의 효율이 떨어짐에 있어서 entropy 법칙은 또하나의 타당성(妥當性)을 획득(獲得)하게 된다.
학교교육이 entropy 법칙과 관련된 부분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역시 고등학교의 교육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의무교육 과정(義務敎育 科程)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영어,수학,과학이다. 왜 그럴까?
현 세계는 그들의 에너지 흐름을 가속화 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라는 기계를 잘 따라가는 사람이 소위 말하는 출세를 할 수 있다.
좀더 나은 기계를 배우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야하며,대학은 몇 가지 과목을 중심으로 초보자-기술에서의-를 받아들인다.
결국 교육은 세계라는 기계(機械)의 유지(維持)와 보수(補修)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곧 학교교육이 간접적으로 지구의 총체적 entropy를 증가시켰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에너지 흐름의 증가는 쓰레기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교육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개성화(個性化)보다는 기계화(機械化),전문화(專門化)의 개념을 깊이 주입함으로써 기계로서의 역활(役活)을 다하라고 말해 왔다.
세계라는 기계의 부속(部屬)으로서의 기계를 생산하는 현대의 기계적 교육-내가 모르는 2차적인 사회화 교육은 제외하고-은 이제 그 문제점이 너무 많이 노출되었다.
어떻게 대처(對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후의 책임(責任)은 모두 인류에게 남겨진 것이다. 언제나처럼.

건강 (Health)

현대인(現代人)의 평균수명(平均壽命)은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어났으며 이러한 것들은 의학(醫學)이 entropy 증가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사실상 의학은 entropy를 빨리 증가시키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무릎에 "wire remove"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다. 의학적인 혜택(惠澤)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상태지만 의학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예전의 병원에서는 거의 모든일-진찰(診察),검사(檢査) 등-을 의사(醫師)와 간호사(看護師)가 해 왔다. 의료기계(醫療機械)는 X-RAY에서부터 최근의 CT(컴퓨터 단층촬영;Computer Tomography),MRI(자기공명촬영;Magnetic Resonance Imaging)까지 꾸준히 발전해 왔다. 아마 그런 기기들은 다른 산업에서 쓰이는 기계들과 비교해서 덜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복잡(複雜)하다는 것은 많은 entropy를 증가 시켰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의료시술(醫療施術)에서 하나의 주체(主體)로서 자리잡게 되어 인간을 그것에 의존(依存)하게 만들었다.
인류는 의료산업에 아낌없이 투자해 왔다. 그들은 의학이 항상 자신들을 구해주는 공해없는 훌륭한 학문이라고 여기지만,그것은 아마도 틀린 견해일 것이다.
의학은 그 진행과정에서 인간의 몸속에 수많은 공해(公害)를 만들어 왔으며 그건 의원성 질환(醫院性 疾患;iatrogenic disease)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수명의 연장은 위생 시설의 향상에 의해 과거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傳染病)의 감소(減少)가 의료 기술의 개선보다 그 비중이 크다 하겠다.
위생산업(衛生産業)도 마찬가지로 entropy 증가에 일조(一助)를 했다. 깨끗한 환경을 위해 뿌렸던 수없이 많은 약물들은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병원균(病原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의학은 콜레라,장티푸스를 해치우고 이제 새로운 적인 암을 맞아 분전(奮戰)하고 있다. 그 적은 누가 만들었을까?


엔트로피-새로운 세계관 (ENTROPY-A NEW WORLD VIEW)

새로운 경제 이론을 향하여

(Toward a New Economic Theory)

이제까지의 기계론적 paradigm하에서 인간은 그의 사회(社會) 및 과학(科學)등의 분야에서 entropy 증가의 흐름을 둔화(鈍化)시키려고 하지 않았고 그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 했었다.
즉 에너지 흐름을 가속화(加速化) 시켜왔다는 것이다. 기존 경제이론(旣存 經濟理論)은 기계론적 paradigm의 속성(屬性)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인 조화(調和)보다는 부분의 효율증진(效率增進)에만 주력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상호 연관성(相互 聯關性)을 가지고 있다. 뿌리는 갈라져 있더라도 같은 나무에서 자란 것이다. 새로운 경제이론은 가시거리를 좀더 확장하여 한정(限定)되어 있는 유용한 에너지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公平)하게 분배(分配)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펼쳐질 것이다.
분배되는 양은 반드시 필요한 만큼일 것이다.
또 그것은 줄어든 물질에 대한 인류의 혼란(混亂)을 효과적으로 흡수(吸收)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제까지의 세계관(世界觀)을 바꾸는 것,곧 자연계의 모든일을 인식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 새 경제이론의 첫발이 될 것이다.

제3세계의 발전 (Third World Development)

서구 민주주의 선진국(西歐 民主主義 先進國)을 지칭하는 제1세계,동구 공산주의 국가(東歐 共産主義 國家)를 가리키는 제2세계와 더불어 제3세계는 개발도상국(開發途上國)들을 말한다.
제1세계는 자본주의 경제체제(資本主義 經濟體制)-그 바탕은 기계론적 paradigm이다.-를 기본으로 하여 가능한 한 많은 변환기(變換機)를 만들어 내어 풍요로운 물질적 부(物質的 富)를 구가해 왔다.
제2세계는 공산경제의 한계에 부딪쳐 이제 그 이데올로기(ideology;a set of ideas,esp.one on which a political or economic system is based)는 거의 무너져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세계 국가들은 그들의 국토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미개발된 자원(資源),곧 쓸모 있는 유용한 에너지원을 이용하여 제1세계 선진국들과 같은 경제적 풍요로움을 이루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아마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의 성장을 방관(傍觀)할 인자한 국제사회(國際社會)도 아닐 뿐더러,현재의 에너지 소비 증가율(消費 增加率)을 감안해 볼 때 지금의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그 한정된 매장량(埋藏量) 때문에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흥청망청 소비할 기회를 주지않을것 같다.

따라서 제3세계는 그들의 미래(未來)를 구미 선진국에서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모형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또 한 국가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발전상은 적은 양의 에너지원을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분배받아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세계이다. 제3세계는 발전(發展)의 주체(主體)를 그들 하나로만 지정하여,강대국의 간섭이나 방해없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방어벽(防禦壁)으로서 유용한 에너지원을 무기로 하는 kartell과 같은 것을 제의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中東 産油國)들의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a group of countries that produce oil and plan together how to sell it)는 그것의 성공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현상들은 그다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국가적 이기주의(國家的 利己主義)는 에너지 위기를 호전시키는데 별 도움이 안될 것이다. 오히려 인류를 파멸(破滅)로 이끌 위험성(危險性)이 크다.
20세기의 강대국처럼 제3세계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에너지원의 매장량은 그것을 제한하기 떄문에 어쩔 수 없다.
인류의 미래는 단체 예약석(團體 豫約席)으로 설정(設定)되어 있다.
지구(地球)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태양시대의 새로운 하부구조 (A New Infrastructure for the Solor Age)

이제까지 언급(言及)했던 여러가지의 사실들은 인류생존(人類生存)의 근거-기계론적 paradigm하의 산업 시대에서의 근거-가 박탈(剝奪)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말해 주었다.
이제까지의 세계가 추구해 온 기계론적 paradigm이 지금 entropy 분수령(分水嶺)에 접근(接近)해감에 따라 에너지원을 대체(代替),혹은 변화(變化)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공해(公害)와 오염(汚染)이 적은 에너지원의 활용방안으로 태양 에너지의 이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화석연료 에너지에서 태양 에너지로의 전환이 무난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 두가지의 에너지원은 같은 근원(根源)에서 파생(派生)된 것이다.
지구가 생성된 이후로 자연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그같은 자원들을 그 순환의 한 형태로 만들었으니 태양 에너지의 농축(濃縮)된 형태(形態)가 바로 석유,석탄과 같은 것들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농축되었다는 것은 곧 단위 에너지량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50억년간 축적된 태양 에너지는 불과 200여년 만에 인류에 의해 소모되어 쓰레기로 변했다.
공짜로 이룩된 기계문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세계의 주 에너지원을 바꿈에 있어서 태양 에너지는 그 중요성(重要性)이 상당히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축적된 에너지원,즉 단위 에너지량이 큰 에너지원의 사용에서 작은 에너지원의 사용으로의 전환은 결코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과학기술로는 태양 에너지로서 현재 세계가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만큼을 충당(充當)하려면 엄청난 투자(投資)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여기서의 투자란 유용한 에너지원,즉 화석연료(化石燃料)이다.
현재의 기계는 대부분이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에너지원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류는 에너지 위기가 아닌 멸망(滅亡)의 위기(危期)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분산(分散)된 에너지 형태인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대형화(大型化),복잡화(複雜化),밀집화(密集化) 되어 있는 인류문명을 소형화(小形化),단순화(單純化),분산화(分散化) 시켜야 할 것이다.

태양에너지의 성격(性格)과 내용(內容)은 기존(旣存)의 화석연료(化石燃料)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엄청난 화석연료 에너지를 소모하며 만들고 발전시켜 온 기계들은 모두 쓰레기로 폐기처분(廢棄處分)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 보다는 태양에너지에 알맞도록 개조(改造)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없는 낭비를 줄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거쳐야 되는 여러가지의 단계들은 인류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비록 태양에너지는 무해하더라도 그것의 사용을 위한 변환기(變換機)는 역시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상당한 양의 entropy 증가를 초래할지 모른다.
어떤 형태로든지 전환시의 혼란(混亂),고통(苦痛) 같은 것들은 다가온다. 그런 현상을 위한 충격완화장치(衝擊緩和裝置)가 필요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노력으로 주 에너지원을 태양으로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자연계의 entropy 증가의 흐름은 멈출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만 그 증가흐름을 둔화시키는데 주목적을 두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물질추구(物質追求)의 즐거움을 억제하고 비대한 에너지 변환기를 분해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와 제도들

(Values and Institutions in a Entropic Society)

앞에서 말해 왔듯이 기계론적 paradigm하의 세계에서 entropy론적 paradigm하의 세계로 전향(轉向)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두가지 세계관이 추구하는 가치(價値)가 각각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론적 paradigm은 서양의 가치를 확연히 보여준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일을 분석적(分析的)으로 생각한다. 사회(社會)라는 개념보다 개인(個人)이라는 생각이 강하고 전체(全體)를 보기보다는 부분(部分)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계(機械)의 행동반경(行動半徑) 내에서만 모든 상황(狀況)을 고려(考慮)하고 예측(豫測)한다. 그 기계의 부작용(副作用)이 초래(招來)할 부대상황(附帶狀況)에 대해서는 생각치 않는다. 역 작용(逆 作用)이 방치하지 못할 상태에 이르면 잘못된 부분만을 수선(修繕)한다.
그리고 나면 다시 전체적(全體的)인 부조화(不調和)가 발생되는 악순환(惡循環)을 계속해 왔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서양은 사태의 심각성(深刻性)을 깨닫고 그들의 발전노선(發展路線)을 변경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entropy 사회의 가치라는 것은 기계-효율과 기능만을 중요시하는 거대한 에너지 변환기-의 역할을 축소(縮小)시킨 좀더 과거에 가까운 것이다.
현대의 기계화(機械化),대중화(大衆化)의 벽을 탈피하여 인간의 본래 기능을 추구하는,즉 인간이 인간의 중심이 되는 것을 가치(價値)로 삼는다. 그런 사회에서의 제도들도 역시 지금과 많은 격차가 있다. 정치제도(政治制度)는 한곳에 집중되기 보다는 골고루 분산(分散)된 형태가 되어 에너지 흐름을 둔화시킬 것이다. 경제제도(經濟制度)도 물질적 부의 추구보다 적은 에너지원으로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entropy 사회는 그전처럼 전체에 무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의 문명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인류가 초래하는 자연계의 모든 현상까지 포함(包含)하고 해결(解決)하려는 것이 entropy 사회이다.
요즘 들어 "동서양(東西洋)의 조화(調和)"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이는 것은 동양이 지닌 숨겨진 힘 때문일 것이다.
서양이 부분 분석적 사고(部分 分析的 思考)의 한계에 부딪치자 전체적으로 조화하며 살려는 동양의 사고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그 조화가 잘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동양의 특징을 많이 가지는 것이 entropy 사회로의 근사치(近似値)가 아닌가 생각된다. entropy 사회가 자연계의 자체 순환 능력(自體 循環 能力)을 복구(復舊)시키려는 노력이고 보면,동양의 "자연(自然)에의 동화(同和)"라는 개념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점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현재의 동양도 이제까지의 서양의 실패를 답습(踏襲)하려하고 있다. 제3세계를 포함한 그들은 부족한 화석연료를 염두에 두지 않고 서구 선진국을 그들의 발전모형으로 제시하여 에너지 흐름을 극대화(極大化) 시키고 있다.
어쩌면 지금 세계는 같은 출발선상(出發線上)에 서 있는지 모른다. 오히려 포기해야 할 물질의 양이 적은 후진국이 미래(未來)의 선진국(先進國)이 될 가능성(可能性)이 더 클수도 있다.

과학의 재구성 (Reformulating Science)

뉴턴이 기계론적 paradigm에 실질적인 위력(威力)을 부여한 이후,과학(科學)은 인간의 편에 서서 자연을 분석(分析)하고 개조(改造)하고 이용(利用)해 왔다.
과학자들은 많은 자연의 법칙들을 알아내어 세상에 발표한후 그것을 발판으로 계속 앞으로 전진해 왔다. 이렇게 알게 된 자연법칙(自然法則)은 산업활동(産業活動)에 적용되어 인류는 찬란한 물질문명(物質文明)을 꽃피우게 되었다.
이제 기계론적 paradigm이라는 비료(肥料)가 땅위에 뿌려져 스며든지가 200여년이 되어간다. 세계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를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지구에는 양자역학(量子力學)과 같은 기계론적 paradigm에 대한 반론(反論)과 혼란(混亂),혼돈(混沌),자연(自然)의 무질서화(無秩序化) 같은 회의(懷疑)가 더 많이 뿌려지고 있다.
20세기를 끝낼 무렵부터 과학은 이제껏 뿌려 왔던 씨앗이 자라서 배출한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으며,사회체제(社會體制)는 그들의 몸뚱이를 직립(直立)시키는데 더 많은 돈을,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근대과학(近代科學)의 진행방향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것이다.
이제부터 그 진행속도(進行速度)를 조금씩 감소시켜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轉換)에 뒤따르는 혼란을 극소화(極小化) 시켜야 한다.

교육의 개편 (Reformulation Education)

대한민국의 교육(敎育)은 그 문제점이 수없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수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분 좋아하지 않는다. 6년간 배운 것은 맹목적 도피의식(盲目的 逃避意識)뿐인가 보다.
"수학(數學)"이라는 과목에서 인간이 찾아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계론적 paradigm을 좀더 잘 이해하여 지구(地球)라는 기계 덩어리 속에서 타인(他人)보다 많은 물질(物質)을 소유(所有)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手段)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인간은 학문을 자꾸만 구분(區分)한다. 과학도 불필요하게 사회과학,자연과학으로 가른다. 교육의 주된 과정(科程)은 전문화(專門化)이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교육을 마친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의 대부분은 직장 밖에서 모든 일에 초보자(初步者)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위기상황(危期狀況)에 필수적(必需的)인 융통성(融通性)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에너지원의 고갈은 명백한 위기이다.
이제 교육은 바뀌어져야 한다. 이제까지의 부분만을 잘라서 분석하는 방식을 뿌리치고 한 걸음만 물러서서 전체적(全體的)인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을 맞추는 식으로 재개편(再改編)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윤리 점수가 왜 국어,영어,수학의 점수보다 낮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인류(人類)의 존재(存在)로부터 계속되어 온 윤리적 탐구(倫理的 探究)의 성과가 200여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해 온 수학적 업적보다 가치가 없다는 말은 헛소리일 것이다.
내 생각에 가장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은 철학(哲學)과 관련된 것이다.
기계론적 paradigm과 더 가까운 분야가 더 가치(價値)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제2의 종교개혁 (A Second Christian Reformation)

종교개혁(宗敎改革)이란 르네상스 시대에 기존의 구교(舊敎)에 대해 반동적(反動的)으로 일어났던 신교 운동(新敎 運動)를 뜻한다.
당시 종교개혁의 원인은 구교의 천동설과 여러가지 주장들이 새로운 발견에 의해 거짓임이 밝혀짐과 종교의 부패에 있었다.
이제 다시 그러한 반동적 종교운동이 일어나리라는 저자(著者)의 견해(見解)는 많은 이의 공감(共感)을 사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주로 기독교를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주창해 온 여러 얘기들은 후기 산업사회(後期 産業社會)로 접어들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인류에게 현실 타개(現實 打開)의 어떠한 실마리도 주지 못하고 있다.
서양(西洋)의 가치관(價値觀),종교(宗敎) 등이 이제는 동양(東洋)의 것들과 접목(接木)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부분적인 성격의 서양이 전체적인 성격의 동양과의 접촉을 통해 인류 앞에 놓여진 위기(危期)를 극복(克服)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종교라고 할수있는 불교(佛敎),도교(道敎) 등에서 말하는 것은 서양 종교에서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전자의 내용은 욕심을 버리고 자연(自然)과 조화(調和)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지만,서양의 신교에서는 자연을 쪼개서 먹는 것은 먹고,입는 것은 입고,쓰레기는 버리는 생활을 인정(認定)해 왔다.
그 근거는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개혁가(宗敎改革家)들이 기계론적 paradigm에 첫눈에 반해 만들어 준 것이다.이제 기계론적 paradigm이 존폐(存廢)의 위기에 서 있는데 종교라고 무사할 것 같지는 않다.
한시바삐 이제까지의 오류(誤謬)를 인정하고 바른길로 되돌아 가려는 노력만이 최선일 것이다.

엔트로피 위기를 맞이하여 (Facing the Entropy Crisis)

절망에서 희망으로 (From Despair to Hope)

에너지 위기를 맞은 인류는 여러가지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것들은 대략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끝까지 기계론적 paradigm을 사수(死守)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물욕(物慾)을 충족시켜준 기계론적 paradigm을 배신(背信)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앞으로 더 훌륭한 기계(機械)가 만들어져서 지금의 문제들을 말끔히 해소시켜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entropy의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 될 것이다.
둘째,에너지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지금의 세계를 버리겠냐는 방법론적(方法論的)인 문제 때문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 역시 앞의 사람들과 별로 다른점이 없다.-실제적으로는-
마지막으로 entropy론적 paradigm을 추구할 수 있는 빠른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肯定)하는 사람과 부정(否定)하는 사람,그리고 언제나처럼 회색분자(灰色分子)가 존재한다. 어느 쪽의 의견이 옳은지 누가 판정할 수 있겠는가?
아뭏튼 모두가 위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것 같다.
"위기(危期)"라는 말은 어감(語感)에서부터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인간이 느끼는 위기는 자신들의 물욕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들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한 것들은 실망스럽게도 추상적(抽象的)인 것이다. 어둠 속에서의 빛과 태양 아래서의 암흑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전부이다. 곧 현상의 인식태도(認識態度)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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