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주요 무대는 서양의 중세시대이다.  물론 SF등의 미래와 동양 또한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서양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잠시 설명하겠다.

중세시대의 신분층으로는 기사, 성직자(마법사),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도 농노, 상인들 여러 계층으로 분화된다.

나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제국 : 봉적제로 황제가 다스리는 거대한 나라이다.
왕국 :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제국의 축소 형태로 보면 되겠다.
공국 : 제국중 일부를 그 제국의 공작이 왕국 형식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공국 : 한문으로 뜻이 다른데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 공국은 여러 소규모 왕국이 공왕을 추대해 만든 나라를 말한다.
신성제국 : 교황, 성기사, 고위 성직자들의 집합체인 주교원(성황청)이 최고 권력기관인 나라를 말한다.
마도왕국 : 원로원이라는 최고위 마법사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를 말한다.
도시국가 : 대부분 무역으로 부를 쌓는 도시규모의 나라를 말한다.
국가연합 : 국가연합은 소규모 왕국이 의장을 선출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2번째의 공국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공국의 공왕은 어느 정도 권력이 있지만 국가연합의 의장은 있으나 마나 할 때가 많다.
부족국가·연합 : 대부분 사막에 있는 나라들로 목축업을 주로하며 세력이 약한 편이다.

         귀족(기사)들의 작위

    서 열

    작    위

    1

     공작 : Duke

    2

     후작 : Marqus

    3

     백작 : Count

    4

     자작 : Viscaun

    5

     남작 : Baron

    6

     기사 : Knight

 

이들은 왕(황제)로부터 작위와 함께 영지를 하사받는다.  즉 봉건제이기 때문에 자기
영지 안에서는 황제와 같은 권력을 가지고 영주로 행세한다.
또한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영지를 자신의 성으로 할 때가 있는데, 봉건제 타락으로 영지가
세습되면서 굳어지게 된다.

백작과 공작은 독립된 왕국이나 비슷한 규모의 영역을 다스리는데 공국이 대표적으로 공국안에서 대공으로 불리며 다스린다.  휘하에는 자작, 남작등을 거느리며 기사단을 가지고 있지만 왕이나 황제같은 근위 기사단은 가지지 못한다.
또한 공작은 왕자와도 같은 극존칭으로 전하라는 소리를 듣는다.(후작은 각하라고 불리운다.)

농민은 어느정도 자유와 사유지가 주어졌고 장원제 안의 농노들의 영지에 귀속되어 생산을 담당한다.  중세시대에는 상인들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지만 대규모 무역은 유럽의 지리상 발전하게 된다.

- 참고 : 묵향

 

귀족의 세계

출처 : 서양사의 기초지식 - 신서원, 1990    http://dreamwith.kim.as

 

*. 귀족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귀족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Nobiesse Oblige)'는 프랑스어 표현이 있다. 귀족은 그 이름에 걸맞게 품격높은 태도를 지니고 귀족이기 때문에 사회적 의무를 갖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19세기 프랑스 문학자이며 프랑스학술원(Acad-emy Franseis) 회원이였던 가스통 레뷔공이였다.

유럽사회는 반복된 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군대적, 전투적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소위 사령관 내지 지배자의 책임과 권한(재판권)은 현저히 크고 명확하다. '사람이 어떻게 재판받는가 하는 것이 그 사회조직을 알 수 있는 시금석이다.' (마르크블로크, 封建社會(Fendalism)).

 사령관과 병사, 지도자와 일반대중과의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고, 상층 엘리트는 더욱 고독하다. 그가 병사와 친숙히 동화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외로이 심신의 단련에 힘쓰고, 혼자만의 용기를 가지고 결정하고, 명령하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혼자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만 했다. 그는 권력과 부귀를 손에 쥐는 대신 조직의 선두에 서서 긴장하여 싸울 수 있는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을 요구받는다. 보호, 지배하의 일반 서민이 여전히 천하, 국가와 같은 전체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기분내키는 대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 귀족의 출현.

이러한 사회의 지배, 피지배관계가 서유럽에서 본격화된 것은 농업사회의 성립과 함께 지역방위 권력, 지역내 질서유지 권력으로서의 귀족, 영주층이 출현한 12세기 전후 200여 년간의 봉건사회에서였다. 이 시기 각 지역의 성주들은 프랑크시대의 고급관리와 국왕과 인척관계에 있던 유력자의 자손들이였다.  

그러나 9, 10세기경 노르만인의 프랑크지역 침략 이후 영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성을 중심으로 일원적인 재판권(사형집행권)을 행사하고, 효과적인 정치권력으로 성장하였으며 또 세습성을 확립한 점에서 봉권귀족은 프랑크 시대의 유력자와는 다르다.  당시 정비된 촌락의 형태도 영주가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민중(농민)을 지도했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점이 중시되고 있다. 귀족은 영주로써 농민을 지배, 보호하고 군사방위, 질서유지에 필요한 비용(租稅)을 성의 수리, 도로건설 기타 토목공사 등에 필요한 부역, 현품, 화폐의 형태로 징수하였다. 그들의 성곽이 작은 언덕 위에서 쓰러져 가면서도 고고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듯이 귀족들은 그들의 가구, 의복, 식사, 예의작법, 말씨와 체격, 용모까지도 민중과는 다른 우월한 존재였다.

 *. 국제성.

유럽의 귀족은 성직자와 도시민처럼 넓은 국제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귀족이 고독한 존재였다는 것과 통하는 것인데, 하나는 혼인을 통하여 또 하나는 봉건적 주종관계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귀족의 딸은 독신으로 지낼 자유가 없었고 남편이 죽으면 제2, 제3의 남편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는 정략 결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성을 도구화했다기보다는 부친의 딸에 대한 애정이 친정과 시집을 결합시킴으로써, 양가사이의 평화를 효과적으로 담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국가, 사회의 제도가 불비했던 시대에 혈연관계가 사회질서 유지에 하나의 유력한 수단이였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비해 封(Feud)관계 내지 봉건적 주종관계는 封(土)의 수수라는 물질적 관계를 매개로 한 인적 상하 주종관게인데, 그 본질은 양국간의 평화조약, 상호 사회보장의 관계였다. 즉 주군은 신하에게 봉토를 수여하고 신하는 주군에게 조력(군사적 의무와 경제적 원조)과 조언(助言)의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하가 자신의 영지를 일단 주군께 바치고 다시 봉토로 받는 것일 따름이고, 영지의 지배권은 이전부터 신하에게 있었다.
 
원정에 종군하는 의무는 년1회 40일로 규정되어 있었고, 또 신하는 보통 년3회(군사적 의무와 경제적 원조) 봉신회의에 참석하여, 주군에게 조언을 했고 봉건재판에도 참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 포로가 된 주군의 몸값 조달, 주군 장자의 기사서임식, 장녀의 혼인, 주군의 십자군출정 등에 금전적으로 원조할 의무가 있었다.

*. 정의의 관념.

封 관계의 본질은 지방적인 두 정치권력간의 공수동맹이며, 국가를 초월해 체결되는 동시에 한 사람이 여러 주군을 모시는 것(複從家臣制)이 보통이였다. 13세기 독일에서는 한 사람이 20인 혹은 43인이나 되는 주군을 섬긴 기록도 있다. 유럽봉건제에서는 고독한 귀족 사이의 소위 2인관계가 난무하였고, 주군과 신하라 하더라도 서로 상대적 자립성을 갖고 있는 쌍무적 계약관계였다.

귀족들은 서로 상대에 대해 철저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으므로, 기독교 윤리를 빌어 스스로의 행동이 세계질서 형성의 방향과 합치한다는 정의의 관념을 유일한 윤리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스스로의 실력에 따라 정의에 근거해 싸운다는 의지와 조건을 갖추고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였던 고독한 귀족의 정신은, 첨예한 정신적 긴장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개척했던 근대시민, 현대엘리트 정신으로 이어졌다.

 
기병에 대하여

출처 : http://my.netian.com/~panzer99/ ,  http://dreamwith.kim.as

폴란드의 기병은 여러종류가 있었습니다. 후사르, 팬저, 드라군경기병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후사르는 폴란드의 엘리트 기병으로 중, 상급의 젊은 귀족들로 구성되었습니다. 17세기 후반의 후사르는 당시로 치면 상당히 고풍스런 기병이었고, 오로지 폴란드에서나 볼 수 있는 좀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당시 서방의 일반적인 중기병들은 창을 포기하고, 큰말, 기수를 보호하는 흉갑, 그리고 직선형의 롱 소드로 무장했습니다. 통상 이런 기병을 쇄사르(Cuirassiers)라 불렀지요. 이들이 사용했던 직선형 롱 소드는 기병 돌격시 기수들의 부츠끼리 맞부닥칠 정도로 집단대형으로 돌격했기 때문에 상대를 베기 위해 칼을 이리 저리 휘두를 공간이 부족한데서 나온 발상이었습니다.

후사르는 상대적으로 쇄사르보다 작은말에 타고 있었지만, 이들 쇄사르의 흉갑을 관통할수 있는 16.5피트(약 5m)짜리 헤비 랜스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적의 대형이 이 돌격에 의해 무너지던가, 아니면 충돌시의 충격으로 창이 부러지면, 그때는 칼(세이버, 롱 소드)을 휘둘러 돌파구를 확장해갔죠.

후사르는 헬멧(이걸쓰면 얼굴 대부분이 가려지고 오직 눈만 노출됨)과 적의 권총탄 사격을 막아내기 위한 흉갑, 등뒤에 꼿꼿이 선 ?표 모양의 한쌍의 날개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개는 단지 장식품으로서만이 아니라, 매우 실전적인 것으로, 후사르보다 빠르고(갑옷이 없으니, 빠른건 당연!) 기동성이 좋은 타타르나 코사크인들이 던지는 올가미를 미끄러지게 해서 기수가 말에서 떨어지는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상대가 올가미를 던질 경우 후사르는 마상에서 몸을 전방으로 기울이는 것만으로 상대의 올가미로부터 자신을 충분히 보호할수가 있습니다.


후사르는 무기로서, 창 이외에 두정의 권총과 적의 갑옷을 뚫기 위한 롱 소드(Koncerz)를 안장에 매달고 다녔습니다. 행군중, 이 헤비 랜스나 기타 여러 물건들때문에 방해받지 않도록, 모든 후사르는 전장에 나갈때 항상 한명 혹은 두명의 시종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기본적인 전술단위는 100-150명 정도로 구성되는 choragiew(flag)였으며, 지휘관은 중위나 대위였습니다. 각 깃발에는 부대장의 이름을 적었으며, 각각의 부대원들은 자신이 누구의 부대라는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헤비 랜서에 페넌트를 달고 다녔습니다.

팬저(Panzer)는 중하위 귀족들로 이루어진 기병으로 그들의 경쟁자였던 러시아, 터키, 헝가리의 기병들과 비숫했습니다. 후사르의 갑옷 대신에 이들은 메일셔츠를 입었고, 8.25피트(2.5m)짜리 단창(short spear)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어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그들은 kalkan이라는 원형의 방패를 가지고 다녔지요. 또한 2정의 권총과 롱소드(koncerz), 복합 활,철퇴로 무장했고, 나중에는 기병총 (short musket)으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후사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각자의 단창에 부대이름을 나타내는 페넌트를 달고 다녔으며 한개의 Panzer Choragiew는 약 20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폴란드의 드라군은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보병과 유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화시에 드라군들은 국경을 경비하다가, 일단 전시가 되면 귀족들의 지휘 아래로 들어갑니다.

 드라군은 특성상, 기병에서 보병으로 전환이 쉽고, 또 이러한 특성이 전투에 유용한적이 많았습니다. 최초의 왕립 드라군 연대는 1630년 결성되었고, 제2 연대는 1682년 만들어졌습니다. 긴 전쟁중에 많은 말들이 죽어가기 대문에, 드라군들의 말은 종종 다른 주인들을 태울 때가 많았었습니다. 만일 말을 상실할 경우 보병으로 전투를 계속할수 있다는 것이, 다른 기병과 확실히 차이가 나는 점입니다.

드라군의 통상 무장은 한두정의 권총, 머스켓, 그리고 소드였습니다. 유갑스럽게도, 드라군의 말들은 다른 기병에 비해서 그리 좋은편이 못되었습니다. 아마도 본격적인 기병이 아닌, 기병전투가 가능한, 말타고 이동하는 보병 정도로 취급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하층의 가난한 귀족들은 Jezda lekka라고 불리는 경기병을 구성했습니다. 무장은 각 구성원들의 부의 정도에따라 달랐습니다. 이들에게 복합 활은 가장 탐나는 무기로, 이들의 부의 정도나 지위를 가늠해볼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