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교 과정

(7) 운동장 확장 공사

 학교를 개교하고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졌다. 운동장 확장 공사는 매일 계속되었다. 인력거꾼과 물장수 회원들이 약 200여명씩 교대로 동원되어 열심히 작업을 하였으나 워낙 난공사라 공사의 진척은 빠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돌담(현재 본관 서쪽 끝에서 식당 뒤로 이어지는 돌담)을 쌓고, 또 한편에서는 흙을 파서 돌담 쌓는 지점까지 구루마로 운반 하여야 하였다. 왕모래는 곡괭이로 찍어도 잘 파이지 않아 인부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따. 한여름 땡볕 아래서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땀을 흘리며 곡괭이를 하늘 높이 올려서 있는 힘을 다하여 땅을 내려 찍었다.그래서 조금씩 모인 흙을 구루마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그밖의 건축 자재 운반은 공사의 가장 큰 문제였다. 본관 3층 건물을 지을 때부터 운동장 확장 공사에 이르기 까지 시멘트, 목재, 벽돌, 기와, 모래 등은 계동 골목에서 당시의 학교 정문까지 옮겨와야 했다. 학교정문에 이르기 위해서는 약 200미터의 고갯길과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했다. 운반하는 인부들의 몸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교사와 학생들도 동원되어 운반 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당시의 운반 작업에 참여했던 김재형 동문의 회고를 들어본다.

 "운동장 확장 공사 때 흘린 땀방울은 늘 내복까지 풀 적시었다. 흑선백색(黑線白色) 운동모에 흰 체조복을 입고 구루마를 끌던 학우들!"

현재 대동의 학교 건물, 운동장, 돌담 등은 그 때의 학생들, 인력거꾼, 물장수 회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전축 장비가 기계화된 시절이 아니라 모든 공사는 사람의 힘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런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도 그들은 단 한 푼의 보수도 없이 일을 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자식들이 대대로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신설된다는 희망과 조국의 광복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 것이었다.

 그들은 "청년들은 목숨을 바쳐 가면서 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3.1독립 운동으로 전국민의 애국심이 어떠한가를 평가할 수 있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서울 장안의 높은 하늘에는 대동의 운동장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애국의 열기가 한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 공사의 총책은 人力車部의 김일봉씨와 물장수 협회장인 백발 수염의 김완용씨였다. 두사람은 매일 현장에 나와서 동지들을 지도 격려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도 자주 일어났다. 밤중에 폭우가 와서 공사중인 돌담이 무너져 동지들이 총동원 되어 여러날 복구작업도 하였으며, 공사장에서 부상을 당하여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도 잇었다.

고창한 선생은 매일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일이 끝나면 냉막걸이와 안주를 준비하여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며 술을 권하였다. 동지들은 하루 동안의 피로를 술과 춤, 노래로 달래며 한없이 술에 취하여 하루의 일이 무사히 끝나게 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짖ㅂ으로 돌아갔다.

 학교의 2부 수업까지 완전히 끝나고 학교 안이 조용해지면 고창한 선생은 학교 건물 입구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 장안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만끽하면서 하루의 일을 곰곰이 되돌아보곤 하였다.

 날마다 각 교실에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동지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일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매우 흡족하엿따. 수십 년을 애써 모은 전재산을 교육사업에 희사한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따. 생각할수록 잘한 일이었고, 뜻깊은 일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고창한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중나온 아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대궐처럼 큰 집이었단 가회동 208번지는 이제 남의 소유가 되었고 계동 입구 147번지(현대 건물 옆)의 전셋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李 仁은 "계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으니, 오두막 집이나 다름없었다."라고 1973년 4월 3일자 한국일보에 기술하고 있다. 또 고창한 선생의 장남인 고홍석 선생은 "나로서는 아버님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딘가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대궐 같이 큰집을 교육 사업을 위해 아낌없이 팔아 넘기고, 자신은 전세집에서 어렵게 생활한 고창한 선생의 그 큰 뜻과 인품은 길이 대동한 정신이요 삶의 자세인 것이다.

 운동장 확장 공사가 끝난후 재단 이사회에서는 물장수 협회장이었던 김완영(金完永)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학교의 자투리 땅을 그에게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