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제하의 실업교육

(2) 1915년 개정 사립학교 규칙

 일제의 사학에 대한 억압책은 합병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통감부 시대의 學部는 1908년에 사립학교령을 만들어, 당시 민족의식과 애국사상의 색채가 농후하였던 사학을 통제 하였다. 1910년 합병 이후에는 그들의 교육 방침이 사상 감시에 있었기 때문에 종래의 사립학교령을 개정하여 사립학교 규칙을 공표함으로서 감독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그러나 총독부는 이러한 규칙만을 가지고는 사학을 관(官), 공립학교(公立學校)처럼 철저하게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총독부는 1915년 3월에 사학을 그들의 계획대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개정사립학교규칙(改正私立學校規則)을 공표하였다. 이 때 寺內 총독은 사학(私學)에 대한 통제의 농도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모름지기 국민 교육을 베푸는 학교에 있어서는 공, 사립을 막론하고 일정한 교육 방침을 준수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만약 官의 구속을 그리 받지 읺는 처지에서 이를 무시한 잡된 교육을 행한다면 국가는 드디어 일귀(一貴)한 완전교육을 보급시킬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사립학교 가운데 한국인이 경영하는 것과 외국인이 경영하는 것과 두 가지가 있으나 앞으로는 그 어느 것이든지 이번에 개정된 규칙에 의하여 그 모든 것을 행하여야 한다.

 이는 민간인이 세운 사립학교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까지 어느 정도 치외법권에 속해 있던 외국 선교사가 경영해온 기독교계 학교도 사립학교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획책은 모두는 그들 통치의 방해가 되는 사학을 단절하려는 심산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사립학교 규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사학에 대한 커다란 압력이 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의 사립학교의 교육을 통제하여 자기들이 의도하는 교육 방향이나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의 교육기관을 전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 한 것이다. 이러한 획책은 한국인을 일본인화 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둘째 교과 과정 및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은 우리의 애국심을 말살하는 사상 감시의 한 방안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 교원 자격에 대한 엄격한 규칙은 일본인 교원을 대폭적으로 사립학교에까지 채용하도록 하는데 그 저의가 있었다. 또 사립학교 교원까지 교수 용어를 일본어로 하라고 지시한 것은 한국인 교원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넷째 사립학교의 설립자, 교장, 교원을 변경하려 할 때도 초소한 道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민족주의자는 사학을 경영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다섯째 교과목에서 우리의 역사와 지리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의식과 주체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