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제하의 실업교육

(3) 일제하의 실업 교육

 실업교육은 농업, 상업, 공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쳐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실업학교는 농업학교, 상업학교, 공업학교 및 간이실업학교 외에 수산학교, 직업학교 등으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지적했듯이 일제의 실업교육의 이면에는 식민 체제의 충성스런 일꾼을 기른다는 흉계가 숨어 있었다.

 이렇게 식민지 교육은 노예 교육의 속성을 벗지 못하고 민족 교육에 역행하였다. 일본은 식민지인 한국의 교육을 중요시하면서도 피교육자들이 고등지식을 흡수할수록 자유에 눈뜨고 비판의 힘이 생기는 것을 미리부터 경계하였다.

 1921년 10월 8일 서울 조선 호텔에서 미즈노 정무총감이 일본인 중학교 교장들에게 한 말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조선 사람에게 교육을 시키면 저들의 지식이나 사상이 점점 늘어가서 결국 독립심을 양성하는 일이 되고 만다.

 요컨대 실용 교육으로 조선인의 마음을 안정시켜 일본에 의존하는 생각을 갖게 하자는 것아 일제의 교육 방침이었다.

 그리고 식민지 교육으로 지도적인 인물을 육성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기술이나 산업에 종사하는 심부름꾼을 다량으로 양성하는 교육을 시키면 그만이었다. 정신을 개발하는 교육을 극도로 억제하고 실업 기술 교육으로 단순한 기능공을 만들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리하여 일본 교육 당국은 실용주의 교육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大東"은 실용적인 교육을 통하여 민족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설립자 고창한 선생, 초대 교장 김만수 선생 등은 학생들에게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사실과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일본을 능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하였다. 물론 외적인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민족 정기를 고취하고 학생들이 올바른 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학교측에서는 많은 애를 썼다.

 특히 고창한 선생은 강압적인 식민지 통치에 굴하지 않고 끝으로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베풀었다.

 " 사회에 나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아무쪼록 일본을 이겨야 한다."

 " 불학위빈(不學謂貧)."

 이와 같은 말들은 평소 고창한 선생께서 학생들에게 힘주어 강조한 말들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학생들은 올바른 민족 정신을 간직할 수 있었고, 독립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