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大東의 상징

 (3) 校服(교복)과 校帽(교모)

 대동의 교복은 초창기부터 다른 학교와 달리 특이한 점이 있었다. 즉 동복인 경우 검정 상하의를 착용하였지만 상의 팔목 윗부분에 백색 선이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 보더라도 금방 '大東' 학생임을 알 게 하였다.

 그러나 전시(전시)에 들어서자 학원은 온갖 수난을 겪게 되어 교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중일전쟁 이후에 교복은 군복 형태로 바뀌었다. 국방색 각반을 차야 했고, 모자도 일본 군인들의 모자 모양과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가방도 군사 훈련에 사용하기 위하여 배낭식 가방으로 바뀌었다.

 전쟁이 한층 가열된 1941년부터는 국방색 둥근 모자와 전투모를 병행하게 되었는데 전투모는 교련 시간이 있는 날만 교모 대신 쓰고 등교하였다.

 1942년 매일신보 3월 19일자에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제복을 착용한 이유와 제복의 특징을 설명한 기사가 실려 있다.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建設)하는 데도 1억의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 때, 조선에서도 중등학교의 교수 내용을 '대동아적(大東亞的)'으로 강화하여 학원의 결전체제(決戰體制)를 확립(確立)하기로 되었거니와, 이와 동시에 4월의 새 학기부터는 중등정도(中等程度) 남녀 학교의 제복도 전선적(全鮮的)으로 통일하기로 되었다.

 통일하게 된 취지는 국방적(國防的)이요, 실용적인 복장을 학도들에게 입혀 가지고 일상 생활은 물론이요, 일조유사(一朝有事)한 때에는 군국학도(軍國學徒)다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외에 물자와 경비를 절약하자는 것이다. 금년 봄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은 전부 이 제복을 입게 된 것이다. 상급생들만은 새로 만들 게 될 때에 이 양복을 지어 입게 될 것이다.

 여학생도 제복은 감색(紺色) '사지'로 짓는데 종래의 수병제복(水兵制服)과 비슷하게 접어부치던 것(세일러복)을 없애 버리고 치마의 주름은 잡지 않는다. 그리고 웃양복, 웃소매 끝은 졸라매게 되는데 옷감은 지금까지의 보통제복(普通制服)에 비하여 3할 가량 절약된다. 가격(價格)은 동복(冬服)이 23원이요, 하복(夏服)은 8원50전가량인데 여자 제복의 특징은 국방적(國防的)이요 위생적(衛生的)인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복장(服裝) 통일(統一)의 목적이 군사 훈련에 유용한 것 외에 물자와 경비를 절약하는 데에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통일된 제복을 입히기 위한 하나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군국학도'를 거론한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의 속셈을 빤히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1944년부터 1945년 8월까지 본교에 재학했던 여학생들은 당시에 자신들이 입었던 전시복(戰時服) 바지(혹은 몸뻬)에 대해 한결같이 '지긋지긋 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학생 복장이 얼마나 획일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말만 교복이지 실제는 군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