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족 해방과 6.25동란

(2) 정부수립기의 교육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미군정(美軍政)은 종식되었다. 신생국가는 분단된 국토와 여러 가지 취약한 조건 밑에서 국방, 경제 등과 더불어 교육의 건설을 서둘러야 했다. 정부 수립에 앞서 同年 7월 17일에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교육의 기회 균등, 초등의무교육(初等義務敎育)의 무상 원칙 등과 함께 교육제도의 법정주의 원칙을 제시 하였다. 따라서 신생국가의 교육 사업 중 먼저 서둘러야 했던 것은 교육 기본법의 제정이었다. 교육 기본법에 관해서는 여러 안이 제시되었으나 백낙준, 현산윤, 유진오, 장이옥,오천석 등 5인위원회가 기초(起草)한 교육법으로 낙착되었다. 동법(同法)은 1949년 12월 31일에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되었으며 학제, 교육자치제, 지방교육재정제도(地方敎育財政制度) 등을 비롯하여 신생국가의 교육제도와 교과서, 장학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교육제도 운영의 대강을 법제화(法制化)한 것이다.

 교육법에 있어서 교육의 기본 이념은 이미 美軍政下에서 제시된 기본방향과 유사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의 완성과 생활 능력의 함양을 지향하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공영(人類共榮)에 이바지할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교육의 기본 방침으로서
(1)건전한 신체의 발달  
(2)애국애족의 정신 함양  
(3)민족 문화의 창달과 세계 문화에의 공헌  
(4)진리 탐구와 과학적 사고력의 함양  
(5)자유, 책임, 신의, 협동, 경애 등의 정신 함양  
(6)심미적(審美的) 정신 함양  
(7)근검노작과 무실역행(務實力行)
의 정신 진작 등을 강조하였다.

 한편 교육법에 제정된 학제는 국민학교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4년, 대학 4년(의대는 6년)을 기간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양한 안의 절충안으로 낙착된 것이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문제점을 내포하였으며 곧 국회에서 교육법 수정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학제는 1950년 3월에 고등학교를 3년으로 하고 초급대학은 중학교에서 연결되는 4년제와 고등 학교에서 연결되는 2년제로 두기로 하였으나 1951년 3월 20일 재수정을 거쳐 중학교를 4년제에서 3년제로 하고 중하교에서 연결되는 4년제 초급대학을 폐지함으로써 이른 바 6, 3, 3, 4 제 기간학제가 성립되었다. 이것은 그 후 부분적인 수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우리나라 학제의 근간이 되었다.

 한편 6.25 직전까지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매우 심각하였다. 본교에도 좌익 교사들과 좌익 학생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었고, 이들은  6. 25를 전후하여 대부분 월북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 6월에 졸업한 14회 졸업생들의 경우를 보면 학적부는 있지만 졸업대장에는 그 이름이 누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졸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월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6. 25 발발 이후 민웅기, 김재형 교사 등은 납북되어 북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예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