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학도호국단의 결성

(1) 학도호국단의 결성

  해방 후 군정 3년간의 신탁통치의 국대안을 둘러싼 동맹 휴학 등의 학원 소요 사태를 비롯하여 1948년 제주도의 4.3 사건, 동년 10월의 여순반란사건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국토의 분단과 사상의 분열로 인한 이러한 사회 혼란은 남한에 총선거가 실시될 무렵에도 그 심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되고 초대 문교부 장관에 취임한 안호상은 이와 같은 당시의 사회 정세에 비추어 민주주의 민족교육을 강력히 주창하였고, 반공정신을 확립하기 위하여 일민주의 사상 보급에 시정의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문교부는 학생 훈련을 위하여 1948년 11월 13일 중학교 이상의 각급 학교에 군사 훈련을 정규 과목으로 결정하게 하고 동년 12월에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학도호국단 조직 문제는 일제 통치에서 갓 벗어난 때에 군국주의적 인상을 주고 민주주의 교육에 역행하는 조직이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한때 국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친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49년 2월 중에 중등학교의 학도호국단이 시내 각 학교에서 일제히 조직되었고, 3월 8일에는 서울시 학도호국단 결성식이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써 각 학교에 설치된 학도호국단은 교내 학생 조직을 통합하여 모든 교내 행사를 관장하였으며 각교의 학도호국단은 서로 연결되어 모든 학생 단체가 굳건한 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