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 상황과 교육의 현실

 (1) 야간부 신설

 1957년 한상길 교장의 후임으로 제6대 김한범 교장이 취임하였다. 취임일은 1957년 9월 22일이었다. 김 교장은 일본 早稻田大學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본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한범 교장의 취임 전인 3월 14일 본교는 야간부 6학급 인가를 받았고, 1960년 1월에는 중학교에 2학급이 증설되었다. 그리고 1963년에는 야간부가 12학급이 되어 주간부 18학급을 포함하여 전체 30학급이 되었다. 이러한 하교의 발전은 어렵고 힘든 여건 가운데에서도 교육에대한 투철한 신념과 설립자의 교육 이념을 충실히 이어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본교 재단은 고흥석 이사장의 뒤를 이어 설립자 고창한 선생의 장녀인 고귀동씨가 1961년 12월 23일 새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소귀동 이사장은 1965년도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김영주씨가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 하였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본교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야간부의 신설은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원래 '대동'의 초창기는 보통학교의 형태로 교육이 이루어졌는 데, 입학생은 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학생들이었다. 당시에 시설이 비좁아 지원 학생들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어서 야간부까지 두고 교육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대동상업고등학교의 야간부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따른 필연적인 것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모자라는 학급 시설을 보충하고 불우한 청소년의 교육을 돕고자 주간학교에 야간학교를 병설(倂設) 운영하고 있었다. 1957년도의 병설 상황을 보면 95개 중학교 중 20개교, 93개 고등학교 중 25개교에 달하며, 학생수는 고등학교의 경우 4681명의 학생을 수용하였다. 이 병설된 학급수나 학생수는 주간의 경우와 비교하여 5% 정도에 불과하지만 불우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서는 보호 육성되어야 할 계제에 있었다.

 공, 사립학교수를 비교해 보면 중학교는 20개교 중에서 공립중학교가 2개교, 사립학교가 18개교이고, 고등학교는 25개교 중에서 공립고등학교가 2개교, 사립고등학교가 23개교로서 야간학교 교육은 사립학교가 맡아서 의욕적으로 실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 남녀별로 비교해 보면 공립학교에서 여자야간학교는 전무한 상태였고, 사립학교에서 10개교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본교 야간부의 신설은 가정 형편상 학교에 가지 못하는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희망이었다. 그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등교하여 공부하면서 자신들의 꿈을 키워 나갔다. 야간부 학생들에게 '대동'은 절실한 배움의 터전이었고, 꿈과 희망의 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