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 상황과 교육의 현실

(4) 5.16 혁명과 교육 시책

 4.19 학생 의거의 벅찬 과업을 짊어지고 민주당 정권은 출범하였으나 사회 불안과 혼란은 극심하였고, 무질서와 위험이 증대해가는 가운데 정치적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났다. 1961년부터 1963년에 이르는 혁명 정부는 조국 근대화를 표방하고 거기에 선행되는 조건으로 인간 개조 운동을 교육에서 강조하는 한편 그 동안 혼란했던 학원의 질서를 바로 잡아 교육의 정상화를 촉진(促進)해 나갔다. 군사 혁명의 성공과 동시에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혁명공약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문교 시책을 내걸었고 교육 혁신에 착수했다.

 혁명 정부의 문교 시책
   1. 간접 침략 분쇄  
    가) 반공 및 국방 교육의 철저  
    나) 부패 일소          
    다) 학원 분규 근절   
   2. 인간 개조             
     가) 정신 혁명           
     나) 교육 혁명           
     다) 교육 행정의 혁신
   3. 빈곤 타파              
     가) 생산기술교육 강화
     나) 향토 교육 강화     
     다) 교육 원조 도입 촉진
   4. 문화 혁신               
     가) 신민족문화 창조    
     나) 신문화기구 재편    
     다) 국제문화 교류 강화

 1962년도의 혁명 문화 정책에서는 간접 침략 분쇄는 국가적 구호로서 이는 문교 정책 '인간개조'에 의하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문교 정책에서는 제외되었다. 이 문교 정책은 각급 학교에 시달되어 교육에 반영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혁명 정부는 1961년 9월 1일에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臨時特例法)을  제정 공포하여 학원을 정비하였으며, 경제 5개년 계획의 달성과 인간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교육의 재건을 위한 시책을 펴 나갔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격랑(激浪)을 헤치며 대동은 꾸준히 발전해 나갔다.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에서 발행한 '서울교육사'에서는 대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특정한 영역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림으로써 그 학교의 전통으로까지 발전시킨 학교들이 많이 생긴 것도 이 시기이었으니 양정(養正)의 육상은 원래 전통적인 것이었지만 성남(城南)의 교련과 사관학교 입학 성적, 한양공고, 동북고, 낙양공고(洛陽工高), 영등포공고, 등의 축구, 배재(培材) 및 대동상고(大東商高)낙대(樂隊), 선린의 야구, 동명여고의 육상 등등은 오늘에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동의 발전은 자발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교직원 및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다양한 교육 활동을 통해 학교의 발전을 도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