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敎育 現實의 變化

 (1) 大東의 陸盛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기까지 본교는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으로 교육의 융성기를 맞게 된다. 우선 1968년 목조건물 968평을 시멘트 건물로 개축하고, 60평 크기의 도서관을 증축 완공한 것은 전반적인 교육 시설의 완비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본관과 구관이 오늘날과 같이 연결되고, 학생들은 보다 좋은 여건하에서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

 시멘트 건물로 개축하기 이전에는 강당 및 별관 건물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 무렵의 상황을 제9대 조은택 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학교 강당과 별관 뒤쪽에는 유리 없는 창문이 대부분이었어요. 교실도 그렇고 별관도 벽돌도 그냥 쌓기만 했지 건물이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이러한 시설의 미비 때문에 당시에 큰 책임감을 느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본교는  A, F, A, K의 지원으로 1964년 7월 25일부터 별관 증축공사를 시작하여 1966년 3월 24일에서야 완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개축과 증축 공사가 끝나고 학교의 모습은 새롭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1968년도에는 운동장의 맘모스 사열대도 준공되었다. 이제부터는 보다 알찬 교육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1968년도의 상황을 보면 우선 해방 이후 가장 많은 학생들을 취업시켰고, 학생들의 전문 기능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 무렵 가장주목할 만한 것은 본교가 주산왕국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새벽4시부터 밤 10시까지 주산반원들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그 기능이 신기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도 놀랄 만한 성장을 하였다. 1968년도에 중학교는 입학시험을 후기에서 전기로 전환하여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였다. 당시의 중학교 입시 경쟁률은  3 : 1 이었다.

 한편 1967년도에는 주산왕국이었던 본교에서 전국 국민학교 대항 주산대회가 개최 되었고, 외국 손님의 내방도 많았던 해였다. 특히 중화민국의 이아빈 교장의 본교 내방은 해외 학교와의 첫 교류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중화민국의 상업전과 및 상공업직업학교는 다까오市에 所在한 학교로 상업고등학교인 본교와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