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敎育 現實의 變化

(2) 중학교 무시험 진학과 학교 平準化

 문교부는 1968년 7월 15일, 1969년부터 1971년도까지 3개년 계획으로 중학교 입시 지옥으로 인한 수업의 폐단을 근절하고 학부형 사교육비 부담 과중(過重) 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시험제도를 전폐하고, 학교군별(學校群別) 추첨제를 실시하여 무시험 진학을 시키겠다는 획기적인 선언을 했다.

 당시 문교부 장관은 이 입학 추첨제는 행정 구역과 현재 국민학교수를 고려한 學校群을 설치, 學校群 내에 있는 중학교 지원자를 은행알 추첨에 의하여 무시험 진학토록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1969학년도에 우선 서울시내에 무시험 진학을 실시하고 1970년도부터는 전국 6대 도시를 중점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세칭(世稱) '7.15 교육개혁'이라고까지 불리우며 그 세부 계획을 세우는 동안 부유층의 반발도 많았으나 205일간의 치밀한 계획으로 1969년 2월 5일(남자)과 6일(여자)에 추첨을 실시하였다. 처음 2년간은 수동식 추첨기에 의하여 아동이나 그 대리인이 직접 추첨하다가 1971학년도부터는 컴퓨터에 의하여 추첨 배정(配定)하였다.

 본교 중학교도 예외가 될 수가 없었다. 1968년도까지 입학시험을 치뤄서 우수 학생들을 선발해오던 중학교는 제도의 변화에 따라 추첨제로 신입생을 배정받았다.

 한편 고등학교는 입시 경쟁 과열로 입시제도의 개혁과 평준화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문교부는 선발고사(연합고사)를 거쳐 인문고교(人文高校)는 학군제에 의한 추첨 배정, 실업고교는 임의 지원에 의한 선발(選拔) 등을 골자로 하는 입시제도 개혁 방안을 결정하여 1973년 2월 28일 그 시안(試案)을 발표하였다.

 그 후 다시 4개월간 문교부는 동시안(同試案)에 대한 일선 교육계, 학부형, 일반 사회의 여론을 모아 이를 학계(學界) 전문 이사(人士)들로 구성된 입학제도연구위원회에 부의(附議), 연구 검토를 계속한 끝에 1973년 6월 28일 최종안을 발표하여 1974학년도부터 그 시행(施行)을 보게 되었다.

 제 1차 연도(年度)에 서울, 부산에서 실시한 결과 종래의 과열 입시 경쟁으로 인한 폐단의 해소 및 학교 평준화의 추진에 있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됨에 따라 제 2차 年度인 1974년에는 새 입시제도의 확대 적용(適用) 시안(試案)을 재차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1975학년도부터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의 5개시에 새 입시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다음은 당시에 서울에서 실시한 고등학교 입시제도의 개요(槪要)이다.

내용/계별(系別)

인문고등학교

실업계 및 2부고등학교

요지(要指)

 * 市를 단위(單位)로
 * 학군(學群)을 설정
 * 선발고사를 실시
 *추첨하여 학교에 배정(配定)
 * 후기(後期)에 선발

 * 市를 단위로
 * 희망학교에 임의(任意) 지원(志願)
 * 선발고사를 실시
 * 학교별로 전형(銓衡)
 * 前期에 선발

학군(學群)

 * 전체학교를 남녀별 수개(數個) 
학군으로 구분설정
 * 고교 학군에 속하는 중학교
지정(指定)

 * 학군은 없으나 市 전체가 하나의 단위

지원(志願)

 * 소정(所定) 학군(學群)에 지원

 * 희망하는 학교에 지원

선발고사
(選拔考査)

 * 인문, 실업 共히 동일 문제로 실시

배정

 * 시단위(市單位) 모집 정원만큼
사정(査定)
 * 학군별로 추첨 해서 학교에 배정

 * 배정재(配定制)가 아니고 학군별로 査定
 * 합격자는 인문고 지원
불허(不許)

시기

 *후기에 실시(實施)

 * 전기에 實施

비고(備考)

 * 실업 및 이부고교 합격자는 인문고교 지원을 不許한다.
 * 특수목적고교  학생 선발은 전국 단위로 선발한다.
 * 특수지(特殊地) 학교는 임의 지원 선발한다.
 * 체육특기자 및 지체부자유자는 별도 규정을 준용(準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