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敎育의 諸 樣相

 (1) 전반적 상황

 1977년도부터 1986년 사이는 본교가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교육의 내실을 다지면서 학교는 발전하였다. 1978년도에는 중, 고 교장의 분리로 중학교에 한균필 교장이 3월 1일자로 새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974년도에 부임하여 중, 고 교장을 겸임했던 박지돈 교장은 1979년 2월 28일 퇴임하였다. 그 후임으로는 이수근 교장이 1979년 3월 1일 부임하여 고등학교 교장의 임무를 시작했다.

 7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적인 상황은 교육 기능 강화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우리나라 교육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충효교육(忠孝敎育)과 전인교육(全人敎育)이 강조되었다. 충효교육의 방안은 국기(國旗), 국가, 국가 원수(元首)에 대한 예절 지도, 계획적인 정신 훈화 지도, 충효교육자료의 활용, 선행, 효행자 표창 등이며 전인교육은 인간 형성과 인류의 가치 실현을 위한 인간교육이었다.

 둘째 교육과정의 충실한 운영을 위한 방안으로써 기초 학력 신장(伸長)에 역점을 두는 동시에 국어, 영어, 수학의 학력평가제도의 신설, 각종 학력경진대회의 활성화, 과열 과외 해소 방안으로서의 보충수업제도 등의 창의적 활동이 있었다.

 학교의 학력평가에 있어서는 주관식 출제 형식이 권장된 바 있는 데, 그것은 평가 방법의 개선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교수법(敎授法) 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학생을 학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보충수업 제도는 1980년 7월 30일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과열과외해소방안'에 따 폐지되었다.

 셋째 학도호국단이 부활되었다. 1975년 6월에 전국의 중등학교 및 대학에서 학도호국단을 결성하게 되자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는 同年 7월에 서울시 학도호국단 운영 규칙을 공포하고 그 내실을 기하였다.

 넷째 인근 학교 교원간의 자율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중, 고등학교별, 지구별(地區別) 장학협력회(奬學協力會)를 두었으며 공개 수업, 연구발표회, 합동강연회, 학교협의회, 학예행사 지구별 대회와 같은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다섯째 도시 새마을 교육을 적극 추진하였다. 새마을 교육은 새마을 운동의 일환(一環)으로 1972년에 시작되었으나 그간 도시 지역에서는 부진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1974년부터 도시 새마을 운동이 추진됨에 따라 1975년부터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며 중점 사업으로 는 저축 교육, 물자절약 교육, 자연보호운동, 불우이웃돕기, 새마을학교 운영 등이 있었다.

 여섯째 실업교육이 그 어느때보다 강화되었다. 상업고등학교는 교육과정 운영의 충실(充實)을 기하는 동시에 내부 시설을 확충하였다. 실업교육(실업교육)의 실기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실기경진대회, 국가 기술자격검정(技術資格檢定), 실무능력검정(實務能力檢定)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고 교원 자격향상을 위한 연수 활동을 강화하고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장학금의 수혜(受惠) 대상자도 크게 늘렸다.

 그 밖의 중요 사업으로는 국보위(國保衛) 조치에 따른 학교정화운동 추진, 능력별 학습 지도의 권장, 학생 교복의 자율화, 학교 새마을 교육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