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촌학원 설립과 대동

 (2) 설립자 이종근 회장

 본교가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은 종근당 이종근 회장이 고촌학원을 설립한 이후부터이다.

 이 회장은 학교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고, 획기적인 육성 방안도 마련하였다.

 이 회장의 사심없는 교육에 대한 일념은 이미 1972년도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평소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할 방법을 모색하던 그는 72년 12월 12일 종근당 장학회 창립 회의를 열었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 사업 및 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종근당 장학 재단은 73년 3월 7일 문교부에 정식 등록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후 종근당 장학 재단은 이 회장의 사재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78년 9월 고촌장학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고촌학원을 설립하여 본교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본교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이종근 회장은 191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75세의 나이로 영면할 때까지 한국 의약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고 원료 공업의 개척자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 한균필 교장은 이 회장과 본교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회장은 독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미 반 세기 전에 인술의 기업을 세움으로써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어 그들의 생명을 구해주는 사랑의 실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육영 재단을 설립하여 수많은 장학생을 키우고 계시던 가운데 1987년에는 여건이 어려운 우리 대동을 인수하여 자라나는 세대에게 꿈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명실공히 한국의 명문 상고로 면모를 일신시켜 놓았습니다. 이는 청소년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기업에서 얻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이 회장의 뜻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이종근 회장은 우리나라 약업계의 원로로 추앙을 받았고, 평소 신용과 절약을 생명처럼 여겼다. 본교 천명기 이사장은 이 회장에 대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이종근 종근당 회장. 그는 그의 가까운 친지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사람이다. 또 사회에서는 그 분을 근면과 절약으로 오늘의 종근당을 키워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이종근씨, 그의 인생 역정을 내가 아는 범위에서 더듬어 볼 때 오늘의 위치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더구나 운이 좋아서 오늘의 정상을 차지한 것이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이 회장과의 교분은 61년도쯤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실은 집안 관계로 이 회장을 알 게 됐었다. 당시만 해도 종근당은 조그마한 제약회사로 성장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지금도 여전하다고 듣고 있지만 이 회장은 무척 부지런한 노익장이다. 아침 여섯 시면 이미 회사에 나와 있을 정도로 출근시간이 빨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 회사와 관계가 있는 거래처를 모조리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이것이 하루도 빼놓지 않는 그의 일과라고 들었다. 말하자면 그의 유명한 현장 확인 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 회장에게 부하 직원들이 어떻게 안일한 근무 자세며 거짓보고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종근당의 직원이나 그곳을 거쳐간 인사들이 정직하고 근면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도 이 회장 밑에서 그러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조그마한 실수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불 같은 그의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들었다. 그러나 다혈질의 그의 질타 뒤에는 뒤끝이 없다고 들었고 돌아서서는 눈시울을 붉히는 정감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 회장의 이러한 성격은 회사를 이끌어 가는데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고 그러한 면이 오히려 기업을 키우는데 결정ㅂ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회장의 상표는 역시 절약이 아닌가 여겨진다. 늘 그러했지만 불필요한 낭비는 그에게 있어서는 금물이었다. 지금까지 이 회장은 자기 회사라고 하여 회사 돈을 마음대로 쓰는 법이 없었다. 이 회장의 이러한 검소한 습성은 다른 활동에서도 예외없이 엿볼 수 있다. 연전에 일본여행을 함께 하는 기회가 있었다. 드 때 여행 비용으로 비행기 삯과 숙식비를 제외하고 4천엔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재벌이라 할 수 있는 회장이 해외 여행에서 4천엔을 용돈으로 썼다면 그 인색함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종근씨는 그런 분임을 나는 현장에서 확인했다. 그것도 4천엔 가운데 2천 5백엔은 만보기라는 걷기 운동에 쓰는 기구를 사는데 썼으니 실제 용돈은 1천 5백엔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 회장은 사장 등 중역 네 사람을 대동했는데 회장의 돈 아껴쓰는 솔선수범을 보고 사고 싶은 물건도, 먹고 싶은 음식도 다 접어두고 눈요기만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화제 거리가 되고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행기도 1등석이 아닌 2등석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몸에 벤 절약 정신을 큰기업의 총수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보여준 셈이다.

 이밖에도 이종근 회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삶의 중요한 깨달음들을 여러 자리에서 자주 말하였다. 그 중 하나가 '사각을 맞추어야 한다.'였다. 일에는 순리와 순서가 있어서 무턱대고 덤벼들어 정력을 쏟는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편에 치우쳐 다른 한편의 일이 텅 비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이쪽 일과 저쪽 일이 균형을 이루어 그릇에 물이 차오르듯 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송곳은 끝부터 들어간다.'라는 말도 자주 하였다. 논리적으로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강행하려 드는 것은 송곳을 거꾸로 쥐고 구멍을 뚫으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떼인 사람은 흥할 수 있어도 남의 돈을 떼어 먹은 사람은 언젠가는 망하게 마련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신용을 강조한 말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의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되고, 신용을 생명처럼 여겨야 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종근 회장은 한 인간으로서 많은 이로부터 추앙을 받고, 올바른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또한 그가 대동을 인수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한 것은 숭고한 교육 이념의 실천으로 그 공적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