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인도

네팔 포카라에서 본 마차푸차레

오른쪽이 물고기 꼬리모양이라는 마차푸차레이다. 왼쪽은 안나푸르나

사랑곶에서 내려다본 페화 호수 왼쪽이 호텔과 식당이 밀집한 포카라의 레이크 사이드 오른쪽 산꼭대기의 흰점이 일본 탑 이곳에서 보는 설산이 장관이다

포카라, 스무살, 마오이스트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살에는

이외수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므살에는

선잠결에 스쳐가는

실낱같은 그리움도

어느새 등넝쿨처엄 내 몸을 휘감아서

몸살이 되더라

떠나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세상은 왜 그리 텅 비어있었을까

날마다 하늘 가득

황사 바람

목 메이는 울음소리로

불어나고

나는 휴지처럼 부질없이

거리를 떠돌았어

사무치는 외로움도 칼날이었어

밤이면 일기장에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의 숫자만큼

사랑

이라는 단어를 채워넣고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살에는

내 나이 스무살, 수첩 맨 앞장에 베껴 놓았던 시다. 내겐 그 당시 대학 생활이 인기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처럼 재밋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대학교 1학년. 학교에는 향내가 무겁 게 깔렸다. 대학생들이 분신자살하여 학교 입구에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한명, 또 한명, 또 한명... 사진이 자꾸 늘어갔다. 흑백 사진 속의 그들은 투명한 젊은이들이었다. 난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많은 경험을 하고 스스로 공부도 하고 가슴저린 사랑도 하고 싶었다. 그 꿈에 끔찍한 고등학교 3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들도 공부하고 사랑하고 싶었을텐데 잘못된 세상 에 저항하기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향내 퍼지는 교정에서 난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사랑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열 심히 한 것은 아르바이트였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돈주는 사람들은 항상 팍팍했다. 대학은 최고의 지성을 길러내는 곳답게 비용도 최고로 비쌌다.

10년 뒤 내나이 서른. 인도에서 6개월 비자를 꽉 채우고 나와 난 심신이 지쳐있었다. 호수 와 설산이 그림같이 어루러진 네팔의 포카라에서 난 정말 푹 잘 쉬었다. 2개월 비자를 받아 서 45일을 포카라에서 보냈다. 안나푸르나 트렉킹의 시발지로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 답게 가격대비하여 훌륭한 호텔과 각국의 음식이 제대로 나오는 식당이 나를 한없이 게으르 게 만들었다. 고아에서부터 사들고 다닌 무거운 등산화를 생각해서라도 트렉킹을 했어야했 는데... 살짝 성수기를 벗어난 탓에 종종 구름에 설산이 가려졌고 트렉킹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거 머리 떼의 공격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했다. 그래서 나는 첵크 포인트인 단프스까지만 올라 갔다. 게다가 난 방향치에 길치인데 지도 한 장 들고 그 산길을 헤멜 수는 없었다. 가이드와 단 둘이 올라가기도 찜찜하고.... 그곳을 넘어가면 입산료도 내야했고 ....

내가 그 짧은 트렉킹을 하는 동안 산 아래서는 큰일이 일어났다. 네팔의 국왕이 암살당한 것이다. 신문에는 망나니였던 왕자가 가족모임을 하는데 늦게 나타나 총으로 간난 아기까지 모두 열 댓명을 쏘아 죽이고 자살하였다고 보도했고 국민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모든 상 점은 문을 닫고 밤이면 횃불을 들고 시위를 했고 네팔 남자들은 삭발을 했다. 버스도 끊겨 서 사랑곶으로 해서 빗 속을 터덜 터덜 걸어서 마침내 포카라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스무살의 마오이스트가 걱정되었다. 삭발을 하면서 다른 힌두교도들처럼 꼬리 머리를 남기지 않아 할머니께 혼날까봐 고향에도 못가는 칼(가명). 그는 경영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방학동안 형의 여행사 일을 봐주고 있었다. 그를 알게된 것은 한국서 영어 강사 를 하던 홍이(가명) 덕이다. 그녀는 단체 관광단에 끼어 포카라에 왔으나 발목이 약해 트렉 킹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와 함께 며칠 방을 쓰다가 인도로 떠났다. 그녀가 칼에게서 버스표 를 샀다. 여행사 몇군데를 돌다가 제일 믿을만(?)하고 순진해보이는 칼에게 표를 샀다.

첫 만남부터 난 잔뜩 경계하고 인도의 껄떡쇠 대하듯 했는데 그는 정말 그 투명한 스무살의 미소로 내 무례함을 날려버렸다. 홍이가 떠난후 풀죽어 호숫가를 배회하는 나를 그가 구해주 었다. 혼자 오래 여행하다보면 어느 순간 무척이나 외로워진다. 그러면 혼잣말을 하게 되고 주변을 기웃거린다. 혼자 먹으면 Rs40하는 쵸우면을 그와 함께 시켜 먹으면 Rs20에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여행사 사무실서 낮은 탁자에 신문지 깔고 코를 박고 불편하게 먹었지만 난 기분 좋게 빈그릇을 배달하고 두 그릇 값을 내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에만 잠깐 볼 수 있는 설산을 감상하고 호숫가를 한 바퀴 산책하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해리포터를 읽다가 저녁에는 그의 여행사 앞을 지나갔다. 운이 좋으면 그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 다. 그러면 여행사 문턱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주는 군것질 거리를 얻어먹거나 함께 쵸우면을 시켜 먹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나 말고도 챙겨줘야 할 사람이 많았다. 식당 아저씨, 옷가게 아줌마, 식당집 딸내미, 항상 교복만 입고 다니는 어린 남매, 야채 리어커 아저씨, 과일 파는 아줌마 등 모두 그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가끔 오이나 과일을 사거나 얻으면 그는 혼자 먹는 법이 없었다. 능숙하게 예쁘게 깍아서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자신도 먹었다. 그는 예의 바르고 살가운 그러기쉽지않 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일듯했다. 그는 영어를 곧잘 했으며 웃음이 많았다. 누구든지 웃으며 인사했고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항상 웃으며 열심히 들었다. 식당집 딸내미에게는 종종 짖궂게 굴었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녀가 발끈하는게 재미있어서 그렇다"고 대답 했다. 그럴때는 아직 장난끼 가득한 어린 소년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난 그에게 마오이스트에 관해 물었다. 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종종 파업을 일으키고 산속에 숨어 산다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난 막연한 동정심을 가졌던 것 같다. 칼 의 대답은 의외였다. "I am a maoist. I can't say this out loud, because I am living here . But if they come down, I would like to join them. I think they are better than our government now. " 91학번인 내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치를 가진 포카라의 호숫가에서 석양을 감상하다 스 무살의 공산주의자를 만났다. 그는 마오이스트들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내게 설명하기 위해 꽤 애를 썼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산속 마을은 거의 마오이스트들이 장악했으며 그들은 좀더 실용적인 것을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하고 사람들이 협동하여 험란한 자연환경 을 극복하고 모두 평등하게 살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 대학을 다녀야 하고 학교 선생님인 아버지와 여러 가족들을 생각해서 산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 다고 하면서 항상 미소가 있던 그의 얼굴이 잠깐 어두어졌다. 그랬던 그가 젊은 혈기에 이제 횃불을 들고 시위대 속에 있을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 고 며칠동안 난 그를 보지 못했다. 여행사도 다른 상점들처럼 문을 닫았다. 난 파업 중인 가 게의 셔터 밑으로 물과 과자를 사서 끼니를 떼웠다. 한국 아저씨가 계신 식당에서 문을 잠 그고 세 끼를 해결하기도 했다. 레이크 사이드의 큰 길 중앙에 마련된 국왕의 영정사진 앞 에 선동적인 빨간 색의 꽃들이 쌓였다. 파업이 끝나고 포카라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그 래도 억울하게 죽은 국왕보다 장사가 안되는 것을 더 걱정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빈곤한 나라 사람들일수록 정이 많은 것 같다. 덩치 큰 남자들이 종종 눈물을 흘리며 분개했다. 정 치적 음모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어린 공주와 왕자들이 불쌍하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며칠 만에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의외로 그는 냉소적이었다. 지난 영자신문들을 뒤져 내와 서 내게 읽어보라며 엉성한 사건 정황과 그것을 지적했다가 신문 발행을 잠시 중지 당한 기 사 등을 짚어주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올 것이 오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스무살 답 지 않은 침착함과 여유로움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고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게 할 사태를 관 망하고 있었다. 과격한 시위대에 대해서는 "미련한 짓"이라는 입장이었다. 내정이 불안하면 외침의 구실을 제공할 뿐이라며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인도, 덩치큰 나라들이 도와준답시고 개입하게되면 네팔은 없어질거라고 했다. 그도 가난한 나라에서 너무 많이 배워서 너무 괴로운 젊은이였다. 이상과 현실은 결코 일치하지않고 잘못된 것이 보이는데 뛰어들어 고치겠 다고 나서기는 이미 머리 속에서 계산하여 답이 나와있었다. 너무 무모한 것이다.

그리고 난 그의 형을 만났다. 그를 보면서 칼도 10년 후면 형처럼 살겠구나 싶어서 마음 이 짠했다. 그는 나와 동갑인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네팔도 전통적으로 10대 후반이나 늦어도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데 그는 인도로 유학까지 다녀온 수재로 뉴욕에 살았으면 여피족이 되었을텐데 포카라에 갖혀서 요기(요가하는 사람) 가 된 사람같았다. 카스트는 높지 않지만 교사인 아버지 덕택에 이 집안 자식들은 하고자하 면 모두 대학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도 사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교육열 과 집안의 장남이라는 부담감, 낮은 카스트에 대한 반항심, 호랑이 보호구역이 있는 시골마 을인 치트완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비상한 머리가진 그는 장학금을 받고 인도의 대도시 뭄 바이로 유학을 가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곳서 신분이 다른 (물론 자신보다 높은 카스트의) 꽃다운 여학생과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롭고 화가 났으나 욕심을 버리 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의 기도로 그녀가 더 행복해질것이며 그녀가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처음 에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감정은 단지 그녀를 옆에 두고 소유하려고 했던 유치 한 단계의 애정일 뿐이며 지금 그가 하는 사랑이 더 고귀하고 높은 차원이라고 했다. 그러 면서 나에게도 욕심을 버리라고 했다. 그는 내가 남자친구와 잘안되어서 여린 여자의 몸으로 홀홀단신 험한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나의 문제는 욕심을 부릴래야 부릴 수도 없이 근본적으로 아무도 주위에 없다는 것인데.

그에 비하면 난 한참 어린애 같았으나 우린 동갑내기 친구 하기로 하고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알고 보니 상당한 바람둥이였다. 궂이 여자들을 꼬신다기보다 홀리데이를 즐기러 오는 외국여성들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속세에 무관심한 듯 한 그의 묘한 분위기는 노랑머리 몇 명과 일본 여성 몇 명이 목 을 매고 쫓아다니게 만들었다. 유럽으로 장가가서 풍요롭게 사는 친구들의 얘기를 하면서도 딱히 그럴작정으로 덤비는 것 같지는 않고 명상과 요가를 즐기면서 그녀들과 enjoy하겠다는 그가 그다지 밉지 않았던 이유는 항상 예의 바르고 유쾌하면서도 현실에 발이 묶인 무기력 한 지식인의 나른한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공부하든 네팔에서는 관 광사업외엔 할 일이 마땅히 없는 듯 했다. 똑같이 짐지고 산에 오르는 것외엔 그닥 돈벌이 가 될만한 사업이 별로 없다. 영어를 잘하니 외국인에게 인기가 있어 단골 손님이 조금 생 긴 것이 잇점이라면 잇점일 수도 있겠지만 산골서 살다가 포카라로 내려와 트렉킹에 따라 다니는 소년들과 벌이가 그닥 차이날 것 같지 않았다. 오는 여자 마다않고 가는 여자 잡지않으며 결혼 안하고 자식을 만들지 않는 것을 걱정하 는 부모님과 할머니의 눈물바람이 무서워 집에도 자주 못가면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고 그 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며 욕심을 버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쿨한 듯 자유연애 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 대해 토로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사용해도 가족얘기를 할 때만은 가 난한 집에서 끈끈한 정으로 뭉친 가족공동체에서 자란 네팔인이 분명했다.

그는 해질녘 호 수와 설산이 붉게 물들면 가끔 대금보다 조금 더큰 나무 피리를 불었는데 소리가 깊고 곡조 가 조금 슬펐다. 사실 내가 조금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거나 연애 경험이 많았으면 나도 enjoy하자고 달라들었을지 모른다. 그랬으면 그에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를 떠올리지도 다시 찾아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의 집에 초대받아 여동생이 해주는 밥도 먹고 네팔민요에 맞춰 춤도 추고 사진도 보고 망고도 먹고...

포카라를 떠날때는 버스에서 사는 것보다 50루피가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버스표를 샀다. 트렉킹을 안내했던 손님들이 보내준 사진을 상자에 보관하고 있던 것이 생각 나서 made in korea라고 써진 앨범을 선물했다. 코스별로 사진을 잘 정리하여 여행사에서 다른 손님들이 오면 보여 주고 장사 잘 하라고 하면서. 여동생에게는 들고만 다녔지 한번도 쓰지않은 만년필을 선물 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시험을 잘 보고 좋아하고 있었기에 열심히 공부하라고. 그녀는 막연히 직업여성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