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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 (1995년-1997년)

달려라! 차돌이!!
If you can dream it , you can do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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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자 곧바로 복학을 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방황을 하고 있던 나에게 그나마 중심이 되어 준 것 같다. 4월과 5월에는 DJ. Duck의 노래 가사 써 주는 일을 했었다. 사촌형이 옛날에 시 써 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한번 써 보라는 것이었다. 날 아니는 사람은 알겠지만 도저히 분위기가 맞지 않는 글이 나왔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절규에 가까운 아우성이다. 한번도 편한 마음으로 글을 써 본적인 없다. 그러니 편안하게 춤추면서 부를 수 있는 가사가 나올리가 없지.

 

 

본격적으로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여름 방학에 들어가면서 한쪽으로는 졸업을 위한 학점준비를 하고, "컴쏘시개"라는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컴퓨터와 불쏘시개의 합성어었다. 나름데로 컴퓨터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을때 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한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한권 만들었다. 출판을 계약을 하지 못한 관계로 그냥 자료로만 남아 있지만, 장마를 독방에서 지내면서 500여 페이지의 책을 완성시켰다.
또하나의 작은 종지부!

책을 만드는 그 기간!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과제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간단하게 두가지 경우가 있다. 한가지는 주어진 삶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따르면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속에서 누구든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길이든 그것은 철저한 자신과의 싸움을 수반한다. 그것은 살아 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삶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했느냐 하는 문제이다.

 

 

9월이 되면서 새로운 준비를 했다. 한국통신에서 논문현상공모가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제일 큰 이유는 용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동상을 받는다고 해도 일주일 정도 수고한 댓가치고는 짭짤한 것이었다. 자료는 풍부하게 조사했다. 신선한 내용이 참으로 많았다. 정보화 사회에 대한 개념이 확 잡혀 들어왔다. 너무나 사회가 급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 가고 있었다. 모두들 투덜대며 따라가기 바빠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군대 시절에 읽어 온 미래학과 경영학이 바라보는 조직원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미래학 서적에서 변화의 방향을 배웠다면 이 논문을 준비하면서는 이 흐름의 빠르기와 주체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내 이름은 당선자 발표 명단에 있었고(일간지에 처음으로 내 이름이 났다!) 나는 술값을 두둑이 벌었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논문은 선경그룹에서 주최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한층 구미를 당기는 것이 있었다. 당선자 전원에게 해외 견학을 시켜 준다는 대목이었다. 나는 이 두번째 논문을 준비하면서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놀라움을 맞보았다.

그것은 현대 물리학의 흐름에 대한 것과 이성의 몰락으로부터 서구 철학의 방향 전환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마르크스주의로 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우리에게는 중심이 철학적 또는 사상적 기준이 없고 작은 패러다임만 있다는 것이었다. 21세기의 주인된 사상이 없었다. 정보화 사회는 물질적인, 시간적인 여유와 소비로 가고 있는데 중심된 사상이 없다니....

 

 

두번째 논문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고민의 과제와 불안과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혹시 아니? 고민의 과제와 불안과 가능성은 거의 같은 말이다.) 아무튼 나의 수준에 비해 너무 어려운 주제를 잡았고, 방향도 논문 당선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잡으면서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화서역앞에서 노가다를 했다. 쓰레기 매립장을 파내는(파낸 위에 아파트를 지었음)일을 했는데 마치 나의 모습과 상태를 확대시켜 놓은 것 같았다. 한달간 이 일을 하면서 난 내가 본 세상과 인간에 대한 도전과 가능성과 기대와 ...등등 모든 것에 대한 무가치성과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정보화 사회에 있어서 1차 산업의 가능성이 새롭게 열리고 있음을 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 한계와 사상적인 공허함, 사람들과 어울림이 싫어졌고 또한 도시생활이 싫어졌다.

 

 

나는 그 쓰레기 더미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초라하고, 허무한 것인가를 종합해서 줍고 있었다. 그리고 과감해 버렸다.

1월 중순부터 전국을 두루 누비며 고향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염소나 끼우며 바다를 쳐다보며 살아야 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에 실패를 하고, 원양어선을 타고 2~3년 바다를 떠돈다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있을 때, 누나의 강력한 권유로 성경공부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