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경상대학교의 명예교수로서 『日本に生きる 異敎徒 1972』, 『日本人과文化 1990』, 『일본은 있다 없다를 넘어서 1996』등의
저서와 「日本武士道」외의 다수의 논문을 낸 일본 전문가이다.
저자는 그의 서문에서 '일본은 있다 없다' 등의 가벼운 일본 평가가 아니라 일본의 문화를 낳게 한 일본인들의 심성을 알아보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란 한 사회의 생명 전체의 정신적 내용의 제 상징에 있어서 창조적으로 발현하는 표현이며 그 표현은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날
수있다. 우리는 어떤 민족의 문화를 있다 없다로 힘겨루기 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친근감으로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선의의 경쟁 상대로
미래지향적으로 일본을 이해하는데 힘써야 하겠다고 본다.
이 책은 482쪽이나 되는 방대한 저서이다. 구성은 17장으로 일본의 지리, 역사, 문학, 정치, 경제, 사상등에 걸쳐 일본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배경을 잘 설명해 줌으로 우리들 독자들로 하여금 일본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특히 각 장마다 자세한 주석을 달아
일본문화에 대해서 사전과도 같은 정도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일본은 고온다습하여 생산성이 높은 점이 천혜(天惠)인 반면에 대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천재(天災)이다. 고온다습한 풍토적 특성으로 해서
청결지향적인 경향이 그들의 목욕문화를 비롯하여 일본문화 전반에 걸쳐 '청결기호'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고온다습의 조건으로부터 과다한 살갗의 노출에 대한 습관을 들 수있다. 이에 대하여 민족적 도덕관을 거론하는 서양인들도 있으나 일본의
여름의 습도를 감안하면 이해가 가능해진다.
자연 그대로의 美를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해서 일본요리, 일본무용 등에서도 자연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일본은 자연풍토가 풍요롭고
극동의 소외된 외딴 섬이라는 조건으로 오랜기간 평화적인 수렵과 채집생활을 해왔고, 따라서 대자연과의 유착히 특별히 긴밀하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관은 自然物神的이고 多神敎이다.
'わび'와 'さび'ん는 일본인들의 미의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며 그 원천은 멀리 헤이안 왕조(10세기) 후기의 몰락한 귀족들의
한(恨)이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볼 수있다. 와비는 '번민하는 것, 한가롭게 있는 것 또는 그러한 장소, 한적한 풍취'를 가리킨다.
사비는 '낡아 닳아서 정취가 있는 것, 쓸쓸함'을 뜻한다. 이러한 사상은 그들의 다도 즉 차(茶)의 마음과 하이쿠(徘句)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은 광택을 낸 은그릇 보다 자연적으로 녹이 슨 은그릇을 선호한다. 그리고 옛 것에 대한 동경 즉 현재는 보잘 것 없이 되었으나 과거에는
화려했고 꿈속에서도 그것을 잊을 수 없는 한스러움 쓸쓸한 아쉬움이 이 두가지 말의 속뜻이라고 이해할 수있다.
작은 것과 가벼운 것이 아름답다는 미의식이 작은 그릇 안에 대자연을 담아보고자 하는 분재미학에 나타나며 이는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의식이다. 축소의 경향은 외래어의 일본식 축약현상에서도 찾아볼 수있다. ( 참고:cozykim의 Live Japanese를 클릭하면 일본식
외래어의 용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의 건축물은 여러 가지 건재를 섞어서 건물의 경량화와 유연성을 염두에 둔다. 물리적인 축소화나 경량화
이외에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축소화하고 일상생활에서 감정을 억제하는 과잉겸양이 일본인의 성격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있다. 실수로 남의 발을
밟게되면 일본인의 경우 밟은 사람이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한다. 자기가 민첩하지 못해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이와같이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즉 페나 괴로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본에서는 모든 행사에서 엄격한 위계질서와 세칙이 정해져 있고 개인은 이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관혼상제에 관한 책자들이 늘 잘 팔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있다. 일상생활에서 철두철미하게 주고 받는 관습이 지켜지고 있다. 신년연하장, 여름의 더위에 문안인사,
사람과 만났다가 헤어질 때의 인사를 몇번 씩이나 허리를 굽혀가며 그칠 줄 모르고 되풀이하는 습관등이 있다. 일본의 서민들의 교제의 덕목은
'의리, 인정, 돌봐줌(世話 세와), 남의 딱한 사정을 도우는 것(面倒見 멘도미), 배려(氣配 기구바리)등이다.
합의와 상호수용을 중요시하는 사상이 현대의 시각문화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인들은 옛부터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골몰하기 보다 오히려 외래문화를 협동을 통해 자신들의 것에 맞추고 개량, 부가해서 좀 더 쓰기 편하게, 좀 더 보기에 아름답게, 가지고
다니기에 편하게, 작게 하려는 것이다. 생활용품에서만이 아니라 일본도(刀)나 일본요리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있다. 도시락(弁當 벤또오)의
틀에 밖힌듯한 형식도 그 중의 한가지 예이다. 인내(忍び 시노비)와 폭발성 기질도 多極文化共同體로서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흔히 외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색체감각이 매우 정교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48茶 100ねずみ'라는 일본의 속담이 있다. 그것은 48가지의
차색과 100가지의 쥐색이라는 말로 일본인의 색채에 대한 표현이 미분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있다. 그들은 대체로 떫은(しぶい 시부이) 색을
선호하며 사실은 화사함(派手 하데)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굴절된 반문화적인 것으로 말한다. 흔히 중세 무로마치 시대 이래의 수묵화에서 보듯이
일본인의 색채기호는 우울하고 어두운 측면이 있다고 보여지나 실은 그것은 建前(다테마에)이며 그 이면에는 타민족을 능가하는 원색의 세계가
本音(혼네)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새해에 꾸는 길몽으로 그 첫 번째는 후지산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해도 서양인들이 일본을 논할
때에 후지산(富士山), 게이샤(藝者),그리고 사무라이(士)의 세가지를 드는 경우가 많았다. 후지산은 일본열도의 혼슈(本州)에 수려한 모습으로
솟아 있어서 일찍이 고대로부터 일본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고대와 중세까지는 교토지역이 도읍지였고 도읍지로부터 멀리있는 후지산은 직접
보이지 않고 소문으로만 들렸다. 특히 불을 뿜는 활화산으로 문학 작품등에 자주 묘사되었다. 화산은 '神火' 로서 성스러운 불이며, 그곳은 신이
거처라는 곳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헤이안 시대까지도 후지산은 활화산이었다.
근세 에도(江戶) 에 와서는 휴화산으로 되었고 수도인 토쿄에서 맑은 날에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후지산 기슭에서
솟아나는 무진장의 담수와 수산시험장의 송어 양식장으로도 이용된다. 후지산은 일본열도에서 최고봉이라는 영광을 차지하여 일본인들의 생활주변에 이
'富士'라는 접두어를 붙인 후지전기, 후지은행, 후지 텔레비 등의 이름을 애호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