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광란
에디 기인의 농장에서 수사관들이 무언가를 알아낼 때마다, 그 소식은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퍼졌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기자들은 이 위스콘신 주의 플레인필드라는 작은 마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 마을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에디 기인은 거의 유명인사 취급을 받았다. 사람들은 한편으론 분노했으나, 동시에 에디 기인의 농장에서 일어난 이 흉악한 범죄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쏟았다. 세계 곳곳에서 몰린 심리학자들은 무엇이 에디를 왜 미치광이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밝히려 들었다. 1950년대를 통틀어 그는 시체도착과 복장도착이 관련된 범죄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악명을 떨쳤다. 심지어 에디 기인을 알게 된 어린애들 사이에 그 사건을 소재로 한 노래와 우스개가 유행하기까지 했는데, 해롤드 쉑터는 이 현상을 그의 책 '이상성격자'에서 "웃음을 통한 엑소시즘"으로 해석하였다. 이런 불유쾌한 농담들은 '기이너즈(Geiner's)'라고 알려졌고 전세계로 유행되었다. 기자들이 에디에 관해 퍼붓는 수많은 질문공세로 플레인필드의 주민들은 일상생활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결국 에디를 둘러싼 열광적 군중의 하나가 되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십분 활용하였다. 플레인필드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에디 기인의 고향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에디를 알고 있는 많은 주민들은 에디가 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왔고, 그가 약간은 특이한 사람이며 어색한 미소에 이상한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도의 평가가 고작이었다. 주민들은 그가 그런 흉폭한 범죄를 저지를 만한 인물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실은 비켜가기 어려운 법, 그들이 알고 있던 이 키작고 숫기없는 조용한 남자는 사실 친구와 친인척의 무덤을 더럽힌 살인자였던 것이다. 에디가 정신병원에서 30일정도를 보내며 정신적으로 비정상임이 밝혀진 이상, 일급 살인죄가 적용되기는 어려웠다. 플레인필드의 주민들은 즉각적으로 에디가 버니스 워든의 죽음에 대한 죄값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법정의 판결을 뒤집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에디는 위스콘신주의 워푼이란 곳에 있는 주립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에디가 그 곳으로 이송되자마자, 그의 농장은 다른 그의 물건들과 함께 경매에 붙여졌다. 수천명의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어떤 물건이 경매에 붙여지는지 구경하려고 이 작은 마을에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경매에 붙여질 물건들은 그의 차와 가구, 그리고 악기들이었다. 경매를 주관하는 회사는 이 경매에서 한사람당 50센트씩 관람료를 챙길 계획이었다. 플레인필드의 주민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에디의 집이 소위 '잔혹 박물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당장 그 계획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회사는 저지당했지만, 주민들의 분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1958년 3월 20일의 이른 아침, 플레인필드 지부 소방관들은 에디의 집으로 출동했다. 에디의 집이 불이 난 것이었다.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켜보았고, 집은 걷잡을 수 없이 불에 휩싸여 결국 전소했다. 전기 누선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자, 경찰은 방화범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용의자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에디는 자신의 집이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듣자, 단순히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랬구만." 화재로 인해 에디의 물품 대부분이 불타버렸지만, 아직도 남은 물건들도 상당했다. 여전히 남겨진 것들은 곧 경매에 붙여질 것이었고, 그 중엔 자동차와 농기구등이 있었다. 시체운반에 쓰였던 에디의 1949년형 포드 세단은 경매 참가자들 사이에 한바탕 낙찰 전쟁을 일으킨 다음, 결국 760달러에 팔리게 되었다. 이 차를 구입한 남자는 나중에 군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에디의 "귀신 붙은 차"를 구경하는 데 한사람당 25센트씩 받아냈다. 플레인필드에 사는 사람들에겐 에디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