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수
병원에서 10년 동안 치료를 받고 나서, 드디어 법원은 에디가 재판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정상인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가 버니스 워든의 살인에 대해 유죄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이유로 무죄인지를 밝히는 재판 준비는 1968년 1월 22일 부터 시작되었다. 실질적인 재판은 1968년 11월 7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에디는 7명의 증인이 증언대에 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 가운데는 실험실에서 버니스 워든을 검시했던 2명의 연구원과 전직 경찰관 1명, 현직 경찰관 1명이 포함되었다. 에디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산을 이룰 정도였으며 겨우 일주일만에 판사는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에디는 일급살인범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살인 당시 정신적으로 거의 혼수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참작되어 판결은 다시 무죄로 내려졌고 에디는 용케도 전기의자를 피할 수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그는 다시 중앙주립병원 내의 정신이상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병동으로 호송되었다. 버니스 워든과 메리호건, 그리고 무덤이 파헤쳐진 사람의 가족들은 이 판결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에디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을 교묘히 피해갔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판결을 뒤집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에디는 정신병원에 남겨져 남은 생애를 즐겁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쉑터는 그가 아주 모범적인 환자였다고 묘사했다.
모든 점에서, 에디는 완벽할 정도로 온화하고 심지어 고분고분하기까지한 환자였다. 사실 병동에서 그는 광기를 잠재우는 데 쓰이는 트랜퀼라이저라는 기계 치료를 한번도 받지 않았던 몇몇 안되는 환자들 중 하나였다. 몇몇 이상한 점을 빼곤-그는 간호사들이나 다른 여자 직원들이 자기 앞을 지나가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빤히 쳐다보곤 했다-특별히 정신병자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는 찾기 힘들었다... 총책임자인 슈버트씨는 기자들에게 에디는 모범환자였다고 밝혔다. "만약 모든 환자가 그와 같았다면, 우리는 전혀 고생할 일이 없었을 겁니다." 1984년 7월 26일, 에디는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그는 플레인필드의 공동묘지에 묻혔고, 묻힌 곳은 그가 예전에 파헤쳤던 무덤들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머니 곁이었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