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에서 이 장면은 폐쇄된 고성과 같은 장소에 유리벽을 놓아 대립적인 두명의 관계를 한장소에 몰아 놓고 있다. 더욱이 현실적인 종속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수감자는 공격적인 자세로 서있고 형사는 피동적인 자세로 앉아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전체를 흐르는 암시이기도 하다. 공간의 플롯이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교묘히 전달하는 부분이다.



































































































'12몽키스'의 이 장면은 표현주의적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레비우스 우즈의 스케치를 보면 여러분은 이 공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 공간 표현은 '카프카'나 '브라질'에서도 보여지는 유형이다.

 

                              
영화, 그리고 배경으로서 공간

 

 

우리가 사는 현대는 고도의 정보 산업 기술 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소외현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의 영화들은 다양한 대상 중에 이러한 주제를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부 묵시론적인 공상영화는 많은 메시지를 담으며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묵시론적 영화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전제한다. 즉. 한 집단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면 그 구성원인 개인은 하나의 소모품이 되어 인간적인 개성이 소멸되어 간다. 더욱이 그 권력집단이 국가에서 한 개인으로 넘어가게 되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오늘날 국가의 권력이나 양상이 아직도 강력히 남아 있지만 기업은 점차 이에 대항할 정도로 커져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업이란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권력을 능가하게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일 개인과 기업의 관계는 냉정해 질 것이다. 결국 현대의 기계문명이 발달해감에 따라 인간의 소외도 덩달아 커지고...... 일련의 공상영화들은 이러한 전제아래에 만들어지고 있다. 절대 권력과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풀어나가는 많은 영화는 미래영화도 있고 오늘을 이야기하는 영화도 있다. 이러한 영화들을 보면 배경으로서 플롯의 한 부분으로 배경공간이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짐을 알 수 있다. 배경은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영화에서의 요소라는 것은 그저 우연히 만들어지거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라는 것이 제한적 상황아래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요소들은 이미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에 의해 계획되어지고 계산되어져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의 어떠한 요소도 거기에 있어야 하는 논리적인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기대할 수 있다. 때로는 현존하는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배경이 전체 내용상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지고 깊이 있는 역할을 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례로 많은 감독들이 배경에 대해 무척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음을 인터뷰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배경이 단순한 주인공을 위한 장치로서만이 아닌 적극적으로 영화전체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임을 인식하고 있어서 이다. 어차피 영화라는 게 실존하지 않는 가상현실에 리얼리티를 부여하여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인만큼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거의 영화이론상 절반을 차지하고 있음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과 가상의 넘나듦은 영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쟝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서는 이러한 존재와 가상의 관계를 다양한 설명을 통해 정의 하고 있으며 특히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상매체의 환상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글에나오는 -라우드가의 사람들-이라는 인용부분을 보면 영상의 세계가 주는 가공과 현실의 모호성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많은 상상력을 근간으로 하는 창조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디자이너들은 영화를 촉매제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중 보통 디자이너들에게 권하는 영화 중엔 대표적인 것으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연출한 블레이드 런너가 있다.) 리들리 스콧트는 회화와 사진을 전공하고 세트 설치가로 활동하였다. 그 이후 광고 스포트 회사를 운영한 전력이 있다 이 영화의 경우는 일본의 신건축에서 나온 건축연감특집에 그해의 건축으로 유일하게 영화가 선정될 정도로 다양한 건 축적 공간이 리얼하게 나온다. 산성비가 내리고 초고층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찬 도시를 배경으로 초대형 스크린에서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의 광고가 나오고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온 도시를 보고 미소짓고 있다.(사실 이 장면은 상당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영화 제작당시 일본의 경제는 가히 위력적으로 뻗어나가고 있고 이념체제보다는 기업논리가 활발하기 시작한 때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로서 이 장면은 연출되고 있으며 영화에서는 권력집단이 기업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부연하자면 이러한 미래세계의 권력집단을 국가에서 기업으로 상정한 영화는 무수히 많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국가관에 대한 변화이다. 특히 최근에는 자본국가에 대한 상대적 국가들의 붕괴로 일반 상업적인 영화들은 그 나쁜편(상대)을 찾지 못해 그 대상을 내부모순이나 기업들을 새로운 대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플러가 말했듯이 국가체제보다는 다국적 형태의 공격적인 기업이 권력의 장악에 앞설 가능성이 높기에 상대적으로 위험수위가 올라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인지 몇 해전 MBC를 통해 방영된 가공의 컴퓨터상의 기자가 나오는 맥스시리즈나 로보캅, 배트맨, 브레이드 러너, 백투더퓨쳐, 에어리언등에서는 대규모 언론사, 다국적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고있다. 그사이를 넘나드는 공중 패트롤카는 모뉴멘탈하고 거대한 미래파의 투시도를 보는 듯한 아방가르드의 미래도시를 더욱 과장하고 비장하게 보여 지고 있다.)

리들리 스콧트는 회화와 사진을 전공하고 세트 설치가로 활동하였다. 그 이후 광고 스포트 회사를 운영한 전력이 있다.

부연하자면 이러한 미래세계의 권력집단을 국가에서 기업으로 상정한 영화는 무수히 많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국가관에 대한 변화이다. 특히 최근에는 자본국가에 대한 상대적 국가들의 붕괴로 일반 상업적인 영화들은 그 나쁜편(상대)을 찾지 못해 그 대상을 내부모순이나 기업들을 새로운 대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플러가 말했듯이 국가체제보다는 다국적 형태의 공격적인 기업이 권력의 장악에 앞설 가능성이 높기에 상대적으로 위험수위가 올라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인지 몇 해전 MBC를 통해 방영된 가공의 컴퓨터상의 기자가 나오는 맥스시리즈나 로보캅, 배트맨, 브레이드 러너, 백투더퓨쳐, 에어리언등에서는 대규모 언론사, 다국적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고있다.

리들리 스콧트는 이러한 전체 장면을 많은 건축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예로 리처드 로저스의 로이드 보험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스케치, 그리고 고딕건축을 말하고 있다.

도시의 익명성과 과장성, 그리고 몰 인간적인 이미지는 이미 우리주변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이나 홍콩의 정리되지 않는 밤풍경을 보라! 영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다이내믹한 힘이 느껴지지만 안정된 심리적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는다. 블레이드 런너의 이러한 배경은 전체 내용과 비교해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영화로 브라질은 어떤가? 아예 건축사무소 경험이 있는 정치학도 출신의 테리길리엄 역시 비극적이고 획일화된 권력과 개인의 소외라는 복잡한 주제를 미래로 옮겨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브라질은 매우 다양한 도시공간의 실험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극도의 시간이 혼합된 배경은 최 첨단과 과거의 핸드메이드 제품을 연결시켜 아이러니하고 미묘한 배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듯이 마이클 그레이브스나 리카르도 보필등의 일련의 포스트모던계열의 건축물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듯하다. 그의 영화 속의 배경은 감독자신의 영화내용과 유사한 이미지를 얻고자 각종 건축물을 나름대로 재해석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브라질 역시 다양한 건축공간 요소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 유명건축물도 배경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하며 나타난다. 특히 관청건물들은 이태리 미래파 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공간의 구조를 이용하여 현실과 가상, 그리고 시간의 모호함을 표현하는 작가로 테리길리엄이 있다. 그는 영화 「브라질」 에서와 마찬가지로 「12몽키스」 역시 묵시론적 미래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확연한 내용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요소로 배경을 매우 신중하게 사용한다. 「브라질」에서는 포스트 모던 작가인 스페인의 리카르도 보필의 주택, 리차드 마이어의 공예미술관 등의 실제 건축물과 코이덴파워스테이션 냉각타워가 마지막 주인공의 세뇌, 혹 죽음의 장소로 매우 강한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으며, 「12 몽키스」 의 경우는 레비우스우즈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무대를 만들어 냈다. 그의 영화에서 구성되는 세트는 전체 이야기 구조와 동일시되어 표현되어지고 있다. 이 영화는 사이버네틱스를 접목한 건축적 프로세스를 가진 레비우스 우즈의 독특한 공간해석이 나온다. 이 복잡하고 난해한 영화 속에 부르스 윌리스는 허공에 앉아 있고, 이 공간의 플롯은 전체영화의 내용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하는 현실 속에 그는 불행하게도 정신병원에 갇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내용의 어두움과 난해함은 바로 영화의 배경으로 이어져 이 영화는 거의 파괴되어 가는 배경으로가득차 있다. 이 암울한 미래에 네델란드 출신의 폴 베호벤 도 참가하고 있다. 다소 파괴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감독이 만든 <로보캅> 은 새도시 주창을 위한 다국적 기업 OCP의 야망을 담고 있다. 여기서 구 도시의 모습은 암울한 범죄로 가득한 동물의 세계로 묘사되고 있다. 이 기업의 끊임없는 욕구는 초고층의 기계적 이미지를 가진 빌딩이다. 철강도시인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강철인간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자기 파괴적이고 암울한 미래는 죤 카펜 터의 <뉴욕탈출> 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더욱이 그의 <뉴욕탈출> 에 이은 속편 격인 에서는 극단적이고 우화적인 문명의 파괴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을 자랑하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고 용도전이가 되어 비극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팀 버튼의 그 음울한 유머가 가득한 배트맨은 매우 어둡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물론 만화를 재구성한 영화지만 구성이나 형식 같은 부분에서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 속의 배경은 거대하고 어두운 도시인 고담이 나온다.(고담은 뉴욕에 대한 풍자적인 별칭) 이 고담의 시청을 비롯한 건물들은 매우 공예 적이고 뉴욕의 마천루상부의 장식 같은 아르데코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 하필 많은 표현 중에 이러한 양식을 음울하게 묘사하는 배경으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이러한 중세적 그로테스크를 영화 전체에 대한 복선으로 확장한 듯 싶다.(부연하자면 확인되지 않은 정보지만 일본 건축가인 다까마스 신의 디자인이 참여ㄷ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의 건축언어와 유사한 디자인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 화가로 유명한 로버트 롱고의 코드명 J 는 작가로서 명망으로 상당한 기대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화면을 보여주고 말았다. 이 영화에서 작가의 주목할만한 상상은 이 게릴라 집단의 은신처이다. 거대한 다리를 엮어만든 이 기지는 그의 설치미술작품과 비슷한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매우 혼합적이고 복합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영화내용과 관계에 있어 그다지 성공하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기실 이 영화보다는 오히려 케네스 브레너의 프랑켄 쉬타인을 보면 그 공간의 절대적 표현에 놀라게 된다. 이 고독한 이미지의 배우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몇가지 주목할만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거대하면서도 암울한 닥터 프랑켄쉬타인의 거실, 곡면을 따라 헨드레일이 없는 백색의 계단과 단 피아노밖에 없는 거실, 원형의 오페라 하우스 같은 구조를 보여주는 중세의 대학병원 실습실, 그리고 인간의 허망함을 대비시켜주는 거대하게 펼쳐진 공간으로서 초원. 전체 영화를 꿰뜷는 단순하지만 매우 강한 요소들인 것이다. 다소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이러한 공간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동반하기도 한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전설에 대한 SFX영화도 이 대열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금 이 글에서 거론되는 영화에서의 공간해석과 반대로 영화적 상상력을 실제 건축작업에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건축가들도 많다. 예를 들면 HODGETTS & FUNG 을 들수 있다. 그들의 영화및 연극에 대한 이해는 과다한 기동성과 공상으로 기술성에 배가하여 그들의 작업배경이 되는 켈리포니아적인 꿈의 요소가 되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캘리포니아라는 지역적 특성은 이러한 작업 과정의 그에게 시사하는 것은 허구성이라는 것과 그 허구성이 지금 생활전반의 현장에서 움직이고, 영화적 상상력뿐만이 아닌 이 지방의 정체성에도 뿌리내린 독자적인 가치 기준을 자유로이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적 기법은 라빌레트 공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츄미와 같은 건축가도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였다. 점으로서 폴리와 이를 이어주는 선적요소에 대해 시퀀스라는 영화언어를 사용하며 설명하고 있다. 즉 장면장면의 체험자의 시간적인 이동에 따라 공간적인 변위를 체험하게 되고 이러한 체험은 영화의 시퀀스와 같은 구성을 한다는 것이다.

원숭이의 기억, 미나토 찌히로, InterCommunication no.18 , NTT出版, 1996.(P14에서) -12몽키스는 내용에 있어서 크리스마커의 1962년 실험영화 라 즈테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참고로 여러분은 라즈테의 홈페이지를 보길 바란다. ( http://www.favela.org/frenzy/lajette/lajette1.html) -정림사보 대청마루 96년 겨울호를 참조

로버트 롱고는 댄스시리즈로 유명한 화가이며 미국의 포스트 모던적 경향을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설치미술가이다. 몇 해전 호암에서 열렸던 미국의 포스트모던작가전에 댄스시리즈와 포스트 모던적 조각을 전시했었다.

달리 매우 음울하게 묘사하는 영화도 있다. 이런 음울하고 신비주의적인 배경및 공간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는 <엑스칼리버> 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설에 대한 특수 효과를 이용한 영화다. 이 엑스컬리버를 감독한 존 부어만 은 영화를 위한 직접 스케치를 한다. 실제 그의 엑스칼리버를 보면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퇴폐미가 화면 가득하다. 더욱이 전체 이미지는 구스타프 클림프의 회화에서 보는 듯한 환상적인 장면의 연출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화면구성은 매우 다중 적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즉 그 자신이 말했듯이 2차원의 트릭이다. 이러한 트릭 자체를 고의로 노출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공간구성에는 빛의 강약의 구성과 빛의 흐름은 각각의 공간에 대해 특정한 성격을 매우 잘 부여하고 있다. 존부어만의 영화가 다이나믹하고 환상적인 공간을 보여주었다면 전형적인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러한 새로운 공간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카메라의 완만한 시각변동은 새로운 느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노스탈지어의 타르코프스키역시 공간에 대한 그의 시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원근감이 있는 공간에 대해 카메라는 서서히 좌우로 움직이면서 전체 공간을 비추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다빈치의 원근법과 같은 시각을 제공하게 되며 우리의 시각으로도 인식할 수 있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장면들은 공간에 대한 경험으로서 익사이팅한 부분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정지된 화면이 아닌 시간이나 동적이라는 차원에서 공간을 읽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식화되고 분석적인 서구의 전통보다는 동양회화에서 나타나는 방식이다.즉 카메라의 공간이동 없이 장면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는 이러한 방식을 아주 극명하게 사용하였다. 항상 앉아 있는 방안이 주 무대가 되는 그의 영화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미묘한 갈등과 변화가 주 내용으로서 공간적으로 매우 한정시켜 놓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풀어 가고 있다. 일상적 내용을 잔잔하게 그려대는 이 사람의 영화 속의 공간은 동양적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스트레이트 컷(straight cut)은 삼각대를 잘라 다다미에서의 좌식생활을 하는 시각레벨을 포착하므로 써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을 보여주는 이유는 서구의 입식문화에서 나타나는 아이레벨이 결코 좌식생활을 하는 시각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적 눈 높이를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촬영은 결국 공간에 대한 표현으로 이어져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일본 가옥의 수평적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일본인 영화감독인 구로자와 아끼라의 화면 구성과 비교해 볼 때 그 스케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구로 자와의 영화 역시 스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일본적인 공간과 화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화면과 일본의 풍속화 등을 비교해 본다면 이러한 유사성은 쉽게 발견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나타내는 일본적 공간특징은 어떤가? 의외로 일본적인 공간의 특징은 잘 나타나고 있으며 공통적 요소마저 보인다. 극히 절제되고 단순화된 사각형의 공간과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우울한 빛, 그리고 단위 공간의 협소함. 이러한 공간표현들을 볼 때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왜 일본적인지 떠오르게 된다. 일본의 하이쿠처럼 간결한 다다오의 건축은 그 절제된 기하적 구성이 오히려 회색 톤의 칼라와 극렬한 빛의 대비를 통해 전통의 맥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장르나 유형의 영화 속에는 어떻게 공간을 표현하고 있을까? 그 중의 하나로 코미디 영화인 허드서커 대리인을 보자. 이 영화는 팀로빈스 주연의 코엔 형제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저예산영화로 유명한 코엔 형제가 4천만불이라는 거금을 들인 코미디영화인데 이 많은 예산의 상당부분을 영화를 위한 세트를 구성하는데 지불하였다. 이러한 투자는 이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간구성이 영화 전체의 방향과 밀접한 관계를 드러내는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르누보풍의 거대한 초고층 건물, 거대한 시계, 사장실과 시드니의 집무실을 연결하는 시계의 태엽장치,건물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들, 지하공간의 쉴틈없이 움직이는 포디즘 스타일의 작업환경, 그리고 건물 안팎의 수많은 다른 고층건물들. 이러한 공간의 구성은 전체 영화의 흐름을 교묘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 영화는 매우 단순한 카메라 워크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코엔식 코미디인 것이다. (실제 그 내용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배경이미지로 인해 시네21의 조사에 의하면 약 15%가 테리길리엄의 브라질이 연상된다고 하였다.) 동양권 작가로는 장이예모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건축공간을 들 수 있다. 다양한 그의 영화에서 건축물들과 도시를 줌아웃하며 보여주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거대한 구조로서의 건축물들은 그 안에 다양한 사건을 안고 있으며 홍등에서는 거대하고 폐쇄적인 상류층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태를 그리고 있으며 거대한 건축물 속에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암투를 암시하고 있다. 조직 안에서의 인간의 희생은 관습, 권력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상태인가를 배경이 되는 대규모 건축물을 통해 암시하는 것이다. 다른 상황이지만 역시 권력에 대한 개인의 철저함을 보여주고 있다.

자 여기까지 너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탈지어'에서는 르네상스적인 원근법을 사용한 대칭적인 장면묘사가 많다. 더욱이 관찰자의 수평이동에 의한 장면의 전환은 매우 사색적이며 인간적인 시각을 전달하고 있다.

   '흐드서커 대리인'의 경우는 매우 치밀한 공간 설정이 되어 있다. 이 장면 역시 거대한 톱니 바퀴와 최소의 설치로 구조화된 계단을 통해 냉혹하고 정밀한 메카니즘의 기업을 암시하고 있으며 인간의 도구화에 대한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키텍토니카의 '페루은행'에서의 입구홀을 보면 대단히 드라마틱한 공간이 연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영화적인 공상력이 그대로 현실화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