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받은 여자

- 마르가리따의 자서전 -

신부님의 고통

   나는 여러 해 동안 Y신부님의 지도를 받았다. 신부님은 내 영혼에 애착을 가지셨었다. 우리는 완전한 이해로 연결되어 있었다.
   신부님은 그의 자녀, 그의 작은 작품에 대하여 얼마나 친절하셨는가! 실제에 있어서 내가 그분의 작품이 아니었느냐 말이다.
   나는 신부님을 매주 만나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충실히 보고하였다. 신부님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잘 알고 계셨고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 실제의 위안이 되었다.

   병 때문에 벨기에에 돌아온 이전 선교사인 신부님은 중한 병에 걸렸었다. 나는 그분이 다리를 전다는 것과 의사에게서 진찰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여러번 지적하였었다. 신부님은 내가 항사을 겁을 내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너무나 뜨거운 탕파(湯婆)로 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신부님에게 발을 절단해야 될 지경에 이르면 얼마나 더 불행하게 되겠는지를 지적하였다.
   신부님은 의사의 도움을 청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도움을 청하셨다.

   의사는 신부님을 병원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 당뇨병에서 오는 괴저(壞疽)라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였다. 나는 날마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혀 간호원들에게 물어보곤 하였다. 신부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신부님 곁에 있는 것을 느끼고 떨리는 손으로 내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 주시곤 하였다.
   나는 흐느껴 울었다. 가엾은 신부님, 얼마나 괴로우셨는가! 나는 열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신부님은 수술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좀 나으셨다. 다리를 무릎까지 잘랐다. 얼마나 용맹하셨는가!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훌륭하게 따르셨는가! 그것은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항상 내 걱정을 하셨다. 신부님은 내가 머리맡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위안이 된다고 여러번 털어 놓으셨다. 신부님은 여러 해 동안을 병원에서 지내셨다. 그러나 신부님의 소속 수도원에서 한 동안 신부님을 다시 돌보았다.
   그렇지만 신부님의 상태는 너무나 위독해서 계속적인 치료를 요하기 때문에 신부님은 결정적으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셨다. 매우 음산하고 겨울에는 꽤 추운 지붕밑 방에 신부님을 있게 하였다. 몹시 쇠약해진 신부님에게서 그래도 힘과 위로를 얻으려고 나는 그리로 계속 찾아갔다.

   신부님은 고통을 많이 당하시면서도 불평하시는 일이 드물었다. 신부님의 다른 발마저 괴저에 걸렸다. 신부님은 엉덩이에 냉성농양(冷性膿瘍)으로도 고통을 당하셨다. 게다가 실명까지 하셨다. 아리고! 신부님의 고통은 얼머나 큰 고통이었는가! 그런데 신부님은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나는 신부님이 내 모든 죄의 값을 치르는 책임을 떠맡으셨던 것으로 생각한다.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신부님을 알기를 원하던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문병을 갔다. 신부님은 내가 화요일에나 신부님을 다시 만나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는데 주일인 그날 나를 보는 것을 매우 기뻐하셨다. 신부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 친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르가리따가 나더러 죽지 말라는군요."
   나는 "그렇지만 신부님이 안계시면 저는 어떻게 되란 말씀이에요?" 하고 대답하였다.

   아아! 나는 신부님 생전에는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둘이 다 신부님의 강복을 받고 하직인사를 하였다. 나는 문을 닫기 전에 조용히 입속으로 노래하였다. "신부님, 이것은 또 만납시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만납시다에 지나지 않아요" 하고.
   신부님은 아직도 웃을 힘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마지막 하직인사를 하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화요일에 나는 신부님이 3월 6일 월요일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내게 연락을 하려고 해 보았다. 그러나 내 주소를 모르고 있었고 또 나는 전화가 없었다.

   수요일에 나는 수도원으로 신부님을 찾아갔다.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기운이 없어서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우리 신부님을 잊지 않고 있으며,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를 잃으면서 무서운 고통을 맛보았지만 사랑하는 내 지도자를 잃으면서도 그만큼 고통을 당하였다.
   어쩌면 내 고통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부님은 항상 내 영혼을 걱정하셨고, 또 그분의 덕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아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얼마 지난 다음 신부님의 무덤에 기도하러 갔었는데, 신부님은 큰 은총의 은인이 되셨다. 신부님은 내가 가는 길에 내게 또 한 사람의 다인 자신이 된 사람을 놓아 주셨다. 그런데 그분은 또 매우 달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에게서 내 영혼과 아주 닮은 영혼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영적 지도신부님이 별세하신 후 체험한 과도기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말해야 하겠다.

   3년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맡겨졌다. 나는 몹시 고독함을 느꼈다... 누구에게 마음 속을 털어놓을 것인가? 우리 본당신부님께 가끔 고백을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 속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안하셨다. 그때 나는 대단히 무감동의 시대를 겪었고, 뒷걸음질은 하지 않는다 하여도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비록 내가 묵상기도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하여 대단히 영향을 받았다. Y신부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있다가 우리 본당신부님도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그 때에 나는 주일마다 미사 참례하려 갔으나 주중에는 한번도 안갔다. 이것에 관하여 Y신부님은 내가 날마다 네 구세주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이를 위하여 이겨야 할 장애들을 생각하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하였었다.
   그동안 우리 새 본당신부님이 취임하셨고 나는 마음 속에 희망을 가졌다.
   혹 새 본당신부님에게서 우리 신부님다운 면과 내 영혼 상태에 필요한 충고를 다시 얻게 될 것인가? 본당신부님은 나에게 한달에 한번씩 오라고 권하셨는데, 이것은 분명히 부족한 것이었다.
   한편 새 본당 신부님에게서는 내가 Y신부님 곁에서 느끼던 그 소박함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내게 일어나는 일로 인하여 약간 어리둥절하겼다고 생각한다. 본당신부님에 대하여는 내가 더 조심성있게 되는 것을 깨달았다. 신부님이 늘 바쁘기 때문에 한층 더 그러하였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본당신부님에게 방해가 되는 것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내 영혼이 활짝 피어나기보다는 오히려 완전히 다시 닫히는 데에는 그것으로 넉넉하였다. 그래서 방문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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